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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미

last modified: 2015-04-05 10:58:43 by Contributors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No.11
한유미(韓有美)
생년월일 1982년 2월 5일
출신학교 수원전산여자고등학교[1]-경기대학교
포지션 레프트
신체사이즈 신장 180cm, 체중 61kg
점프 높이 스파이크 높이 307cm, 블로킹 높이 297cm
소속팀 현대건설 (1999~2010)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11.5.31)
대전 KGC인삼공사 (2011.6.1~2012)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14~)

2006 KOVO컵 프로배구 여자부 MVP
대회 창설 한유미
(마산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정대영
(GS 칼텍스)

한국의 배구선수. 포지션은 레프트. 현재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소속이다.

한국 여자배구계를 대표하는 미녀 중 한 명이다. 별명은 배구코트의 패션모델[2], 유미여신[3], 제빵의 명장. 실제로도 자주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걸로 유명한데, 레게머리, 탈색, 백발염색 등을 과감히 시도했다.


한국 여자배구에서 동생인 한송이와 함께 대표적인 자매선수로 유명하다.[4] 여러모로 큰언니 한유미와 많이 비교되는데, 한송이는 약간 보이쉬한 면은 있으나 여성적인 면이 언니보다 더 부각되지만, 한유미는 털털한 파이터 스타일이다. 특히 경기가 안 풀릴 때 둘의 성격이 드러나기도(...)[5] 스파이크를 성공한 후 보여주는 화끈한 세리머리가 특징.

한유미-한송이의 고등학교 직속후배인 김연경이 가장 부러워하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김연경은 큰언니가 배구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배구선수가 되었는데 정작 큰언니는 배구를 그만두었다.

수원 한일전산여고 출신으로, 1999년 현대건설에 입단한다. 입단 당시 81동기인 정대영과 함께 현대건설은 물론 한국 여자배구를 이끌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이에 증명이라도 하듯 2001년 포르투갈 세계 청소년 배구선수권대회에서 주포로 활약, 한국 청대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슈퍼리그-V투어 시절 팀의 선배인 민정, 혜미, 장소연과 함께 현대건설의 5연패(1999-00 시즌~2004 시즌)를 이끌었다. 신인시절 구민정의 그림자에 가려 교체요원으로 출장했지만, 점차 성장하여 팀에서는 없어선 안 될 선수로 성장했다. 이 즈음 한국 여자배구 거포의 계보가 구민정에서 한유미로 넘어갈 것으로 보였는데...

2003년 여름 그랑프리 대회에서 왼쪽무릎 인대 파열로 1년 가까이 개점휴업했다.[6] 이 부상 이후 제 기량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4년 V투어를 끝으로 구민정, 강혜미, 장소연이 은퇴하며 본격적으로 팀의 간판이 된다. 하지만 무릎부상 여파로 공격 중심의 플레이를 하게 된다. 무리한 플레이를 팀에서나 국가대표에서나 많이 막고 보호하는 편이다.

노장 트리오가 은퇴한 뒤 현대건설의 전력은 많이 약화됐다. 센터 정대영이 서브리시브를 받을 정도였으니... 하지만 한유미, 정대영 이 둘이 팀의 간판으로 열심히 헌신한 끝에 2006-07 시즌 정규시즌 3위를 기록하고 도로공사를 플레이오프에서 꺾고 팀을 챔피언결정전까지 이끈다. 그러나 챔피언전에서 흥국생명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2006-07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었는데, 결국 원 소속구단인 현대건설에 당시 최고 금액[7]을 받고 남게됐다. 반면 팀의 주축이었던 이숙자, 정대영이 FA로 풀려 GS칼텍스로 떠나게 되자 결국 한유미가 거의 혼자서 고군분투를 했다. 2007-08 시즌 현대건설은 꼴찌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한유미는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로 '아직 한유미는 살아있다.'를 몸소 보여줬다.

한동안 팀이 어려운 가운데 있었으나 팀의 큰 언니로 2009-10 시즌 현대건설이 정규리그 1위로 이끌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 KT&G에게 밀리며 준우승하게 되지만. 그리고 계약 만료로 오프시즌에 FA 자격을 다시 얻었다. 그런데 우승 과정에서 외국인 선수 케니, 양효진, 황연주 중심으로 팀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한유미와 프론트와의 갈등이 발생했고 결국 외국진출을 선언했다. 이탈리아 리그의 모 팀과 계약직전까지 갔으나 국내에 남기로 다짐하고 결국 어느 팀과도 계약하지 못하고 무적신분이 되고 말았다. KOVO 규정상 오프시즌에 연봉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선수는 다음 해에 뛸 수 없는 조항으로 1년 통째로 쉬게됐다. 개인적으로 안습적인 흑역사.

그렇게 소속팀이 없는 상황에서 대한배구협회 소속의 선수로 간간이 국제대회에 나가기도 했지만, 결국 겨울에 무적신분으로 조용조용 살아갈 줄 알았는데...라곤 하지만, 쉬는 틈틈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교공부도 충실히 하면서 선수생활 마무리를 준비했다. 그리고 2010-11 시즌 중 농구선수 이승준과 함께 여자농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 사진에 찍혀 열애설 드립이 있기도 했다.

2010-11 시즌을 백조로 보내다 2011-12 시즌에 현대건설과 FA 계약을 맺은 후 사인앤트레이드 방식으로 대전 KGC인삼공사로 이적했다. 델레이네 몬타뇨 혼자 가빈놀이를 하느라 대각에서 제대로 해줄 선수가 없던 KGC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했고 결국 2011-12 시즌 정규시즌, 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8]에 큰 공을 세웠다. 본인에게는 첫 우승 경험.

한유미는 V-리그 컵대회를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유는 결혼 때문이라고. 이미 구단 관계자와 런던 올림픽 때 같이 뛰었던 선수들에게 은퇴 결정을 전했다고 한다.[9] 그래서 그런지 런던 올림픽에서는 주전이 아니라 동생 한송이가 부진할 때 교체되 들어가는 조커 역할을 했다. 출전한 경기 중에서는, 터키와의 조별 예선전 때 C속공 등의 빠른 공격으로 그날 지쳐보였던 주전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줬던 경기가 백미. 다만 경기는 2:3으로 져서 승점 1점을 얻는데 그치긴 했지만 국가대표팀이 모처럼 8강 토너먼트에 올라가는데 보탬이 되는 활약을 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이로써 한유미는 13년 간의 프로생활(실업시절 포함)을 마감했다.

다만, 배구계를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고 잠시간의 미국 유학 후에 2013년에 실업리그 부산시체육회에서 뛰었다. 부산시체육회 소속의 몇몇 선수와 함께 비치발리볼로 전향하여 2013년 해운대에서 열린 FIVB 세계비치발리볼 코리아 투어에 참가했다. ###

2014년 5월 27일 친정팀인 현대건설로 복귀한다는 사실이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2013-14 시즌 팀의 외국인 잔혹사도 당연히 있었지만 황연주의 커리어 로우와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세번째 공격 옵션의 부재와 최선참급 선수가 없어서 너무 어린 선수들이 즐비한 현대건설의 상황 때문에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2 런던 올림픽 이후 상기됐듯 실업리그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감을 찾는 데는 어렵지 않을 듯싶다. 덤으로 인삼시절 동료도 같이 데려왔다. 오오 여신님... 코보컵에서는 그나마 활약을 했지만, 정규리그에서는 실업리그와 프로리그의 차이가 있어서인지 감독의 요상한 용병술처럼 불안한 공격과 리시브로 그동안 쌓아놓은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김주하, 황연주, 폴리 등의 체력안배를 위해 들어가는 형식의 백업이 되버렸다. 대신 폐습을 끊은 것이 가장 큰 업적.

여담으로 남자부의 김상우와 더불어 V-리그 최초의 득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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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옛 수원 한일전산여자고등학교. 2013년에 개명했다.
  • [2] KBS N 스포츠의 허주 옹이 한유미 데뷔 시절에 붙여준 별명이다.
  • [3] 디시인사이드에 배구갤러리가 생긴 이래 제일 먼저 인증했다. 이 덕택으로 배구갤러리에서는 여신으로 추앙받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배구팬들에게는 언제나 유미여신님
  • [4] 한때 한유미-한송이 사이에 있는 작은언니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는 유언 비어로, 한유미-한송이 자매의 극성팬이 퍼트린 낭설이다. 실제로는 한유미-한송이 두 자매이다.
  • [5] 한유미는 제빵의 명장답게 시원시원하게(?) 신경질을 부리는데 비해 한송이는 무한 실책 루프에 빠지게 된다(...)
  • [6] 한유미가 국가대표팀 전력에서 이탈될 때 임유진(당시 도로공사), 이정옥(당시 LG정유) 등의 신인급 선수들을 기용했으나 임유진 역시 무릎인대 파열 부상으로, 이정옥은 포지션상의 문제(윙리베로에 가까운 플레이스타일)로 한유미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던 구민정이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다시 돌아오게 된다.
  • [7] 1억 2천만원. 지금 최고 연봉자인 후배의 반도 안 되지만.
  • [8] 인삼공사의 지난 2번의 우승은 정규리그 성적이 1위가 아니었다.
  • [9] 하지만, 이후 결혼 얘기가 없는 걸로 봐서는 파혼한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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