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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last modified: 2015-06-07 12:47:46 by Contributors

漢中

Contents

1. 개요
2. 관련 항목


1. 개요


중국의 지역명.

오늘날의 중국 섬서성 한중시 일대로 지형적으로 한중분지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링 산맥(진령산맥)에서 시안(서안)이 있는 관중쪽으로 향하며 남쪽은 바 산맥(대파산맥)에서 오늘날의 중경시가 있는 촨 분지(사천분지)로 연결된다. 동쪽으로는 장강 유역에 이르며 서쪽으로는 천수에 이른다.

한수와 장강사이에 위치한 비옥한 분지로 경제적으로는 풍요롭다고 할 수는 없으나 군사적으로는 엄청나게 중요한 지역이다. 북으로는 관중 평야, 남으로는 쓰촨 성, 동으로는 장강 유역으로 갈수있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아찔하게 험준한 산악 지대라서 한중을 통과하지 않으면 사천 평야로 들어가는 것도, 나가는 것도 매우 어렵다.

이런 중요한 곳인 탓에 세간에서는 항우가 유방에게 관중 대신 한왕으로 봉하고 한중에 가둔 게 가장 큰 실책이라고 평할 정도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들에겐 오두미도장로의 본거지와 유비한중왕을 자칭한 것으로 유명하다. 삼국지에서는 사천성 지방을 서천(西川)이라고 하는 것과 상대적으로 한중 지방을 동천(東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진수정사 삼국지에서 조비의 위황제 등극보다 유비의 한중왕 선언에 더 많은 기록을 할애하고 있다. 이는 진수가 촉 출신이라서는 얘기도 있지만 삼국지의 전체 흐름, 특히 촉한의 대립에선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조비가 위나라 황제에 오른 것은 당시 거의 멸망한 거나 다름없었던 후한의 공식적인 소멸이었으므로 비중이 있다. 하지만 유비가 한중왕을 칭한 것은 역사적인 흐름보다 당시에는 엄청난 정치적 제스처였다.

고조 유방항우와 대립하다가 한중 땅을 분봉받아 한왕이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 왕조가 일어섰다. 그의 후손 유비는 한중왕에 오르면서 선조인 유방과 자신을 동일시한 것이다. 망해가는 한나라를 부흥시키겠다는 유비가 그 옛날 유방처럼 제2의 한고조가 된다는 제스쳐는 정치적으로 큰 상징을 가진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돗자리나 짜던 놈이 나와 맞먹으려고 하다니!"[1]라고 단순히 빡쳐서 유비를 치려고 했지만 괜히 정사나 창천항로에서 조조가 유비의 한중왕 등극 소식을 듣고 충격 받은게 아니다.

간단 요약으로 정치적인 입장에서 유비가 '조조 이 색휘는 항우와 같은 역적이고 나는 한 황실의 종친이니 한고제의 뜻을 이어받아 역적을 무찌르고 천하를 통일하겠다!' 라고 한 것. 결국 승자는 사마씨였지만...

2.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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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시 조조는 위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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