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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푸

last modified: 2015-04-01 11:05:36 by Contributors

한푸를 입은 중국 여인.

Contents

1. 개요
1.1. 호복이란?
2. 시대별 한푸의 모습
2.1. 한나라 이전
2.2. 한나라,삼국시대
2.3. 당나라
2.4. 송나라
2.5. 명나라

1. 개요

漢服 han-fu
한국식 한문 독음으로는 우리나라의 전통의상처럼 둘 다 한복이지만, 한자가 漢服과 韓服으로 다르다. 때문에 중국식 한문 독음에 따라 '한푸(han-fu)'라고 구분에서 일컫는다.

현재 중국 전통 의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치파오(旗袍)는 조 이후 전래된 만주족의 전통복장에서 비롯된 복식으로, 이전 한족의 복식과는 차이가 크다. 한복(漢服)의 경우 본래 남녀를 불문하고 바지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복(韓服)의 근간이 되기도 하는 북방계 호복을 들여오면서 바지를 도입하게 된다. 중국의 한복은 여러모로 한국의 한복과 깊은 연관을 맺어왔는데, 중국식 관복제와 문물을 수입하면서 한푸도 함께 들어왔기 때문. 특히 곤룡포 같은 어의나 관복은 전부 중국식이다. 본래 북방계 복식의 특징이던 좁은 소매를 지니고 있던 한복(韓服)은 한복(漢服)의 영향을 받아 소매가 넓어졌다.

최근 대장금의 인기와 한류의 영향에 의한 한복의 인지도 상승으로 중국에서는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6년 베이징대 역사학과 학생들이 복원한 한푸를 홍보하기 위해 입고 시민들과 만났으나 한복 또는 대장금 옷이라는 반응이 상당수였다고 한다.(...) (링크)

현대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민족주의 의식의 고취와 더불어 한족의 한푸를 입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근데 전국 시대부터 이민족들의 옷(호복)이 유입(참조 링크)되어 중국 역사가 흘러가면 갈수록 이런 경향은 점점 더 심해진다. 이유야 당연히 활동이 편해서. 실제로 호복 유입 전의 한푸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진심으로 한족의 한푸를 입자고 할 거면 한국의 심의 비슷한 옷을 입어야 한다.

즉, 치파오 인민복 외 모든 중국 시대의 복식을 한푸라 할 수 있다.

사실 같은 시대라도 의복은 천차만별이라, 가령 조복식의 예복.단령같은 공복. 평상복등등 종류가 매우다양해 여기에 나와있는 옷들은 아주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자세한 의복들은 관련 링크의 "연관복차"를 클릭하여 왕과 귀족들 의복을 확인하면 볼수있다. 일단 고대 한국의 의복이지만 상위층은 중국의 의복을 채용 하였으므로 참고하면 좋다, 조복 면복 구장복 칠장복 공복 등등을 참고하면 된다, 친절하게도 그 의복에 대한 상세한 출처가 있어 어느 시대 중국것인지 확인이 가능하다(사실 본 링크의 의복들 대다수가 복원 사료로 중국의 의복에 근거하여 복원)

1.1. 호복이란?


이것이 바로 호복.

한푸보다 오히려 한복과 비슷하지 않은가? 모자에 깃털이 있는 등, 고구려 벽화에 등장하는 복식과도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 한복 자체가 북방계인 알타이계 복식이 근간이다. 호복이란 게 이런 북방계 복식을 받아들인 것이니 비슷한 것은 당연지사. 소매가 좁은 것이 바로 정통 한푸의 통소매와 대비되는 활동성이 높은 호복의 특징이다.

2. 시대별 한푸의 모습

2.1. 한나라 이전

상(은)/주나라 시대 한푸. 오스프리에서 그린 주나라 시대 한푸.
알타이 복식 계통인 호복 스타일과 달리 바지가 없고 남녀 모두 치마가 발달했으며, 몹에 겹겹이 둘둘 감는 형식이다. 조선시대 한국의 선비들이 주로 입은 심의는 이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2.2. 한나라,삼국시대

참고로 이 시기 복식은 한중일 모두 비슷하다. 사진은 한나라,삼국시대(위,촉,오…등) 여성 한푸.


2.3. 당나라

당나라 시대 여성 한푸. 당은 실크로드를 통해 외국과의 교류도 많고 문화와 경제가 크게 번성했던 시기였다. 중국 고유의 문화에 여러 지역의 문화가 융합하여 많은 발전을 보였다. 의복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러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유교적인 관습에 제한받던 여성들의 의복은 굉장히 개방적으로 변해갔다. 옷깃이 내려가고 소매가 넓고 크며 치마를 허리 높이 묶어 가슴을 강조했으며, 투명한 얇은 비단으로 몸만 가리는 대담한 형태의 복식이었다. 통일신라 시대에 들어 왕족, 귀족 등 고위층을 중심으로 이러한 당나라풍 복식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또, 미를 추구하는 풍조가 성행해 화장술이 발달했다. 얼굴을 새하얗게 칠하고 짙은 눈썹, 펭귄같은 입술, 과한 볼터치로 포인트를 주는게 특징이다.

2.4. 송나라

송나라 시대 여성 한푸.



송나라 때 의복은 당나라의 의복에 송나라만의 특징을 더했다. 당나라와 달리 정세가 안정적이지 못한데다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대담하고 화려함보다는 보수적이고 소박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당나라 때의 대담함은 어디로 가고 여러 겹으로 꽁꽁 싸맸다.

기본적으로 상류층 여자들은 긴 치마 위에 짧은 치마를 둘렀고 그 위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배자을 입었다. 이 배자의 소매와 옷깃에 자수를 넣어 장식했다.

2.5. 명나라

여러모로 조선시대 한복과 많이 닮았는데 이는 원나라 말기 기황후원순제의 황후가 되면서 고려양이라고 하여 한복 형태의 복장이 유행하게 되고 명나라 초기 복식에 그 영향이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링크

명나라 초기의 여성 고려양 한푸.
이 한푸는 누가 봐도 조선의 한복과 지나치게 닮았는데 이건 중국의 전통 한푸가 아니라 고려양 한푸(高丽样 汉服)라고 원말명초에 북경을 중심으로한 북중국 일대에 잠시 유행했던 복장이다.[1] 이후 명나라 시대에도 영락제의 북경 천도로 계속 유행하다가 홍치제 때 고려양 한푸를 금지하여 짦은 시간에 투피스 형태의 고려양 한푸에서 원피스 형태의 전통 한푸로 돌아간다. 한반도의 복식은 역사시대 초기부터 계속 중국의 영향을 받아왔고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짧은 시간이지만[2] 이때만큼은 중국 복식이 오히려 한복의 영향을 받았다. 이 그림을 대며 해당 복식 형태는 송나라 고유의 전통복식이라고 주장하며 한복은 중국 복식의 짝퉁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근본적으로 원말에 유행했던 고려양이나 북방계 호복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무지로서 더불어 중국에서도 원말명초에 고려양이 있었다는 걸 모르고 이 한푸가 조선 한복의 원형이 된줄 아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명나라 중~후기의 여성 한푸

이후 명나라 여성들은 흔히 위 그림과 같은 의복을 입었다. 전체적인 실루엣이 1자로 떨어지는 이 의복은 주름진 긴 치마에 소매와 옷깃에 자수가 들어간 겉옷이나 조끼를 입었다. 겉옷의 네모난 네크라인에 장식물을 달곤 했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모습.

참고로 남성의 복장이 한국에서도 전통 혼례복으로 사용되는 조선시대 관복과 비슷한 것은 단령 자체가 중국에서 들어온 옷이기 때문이다.[3] 그래서 청나라 때는 조선 사람들이 사신으로 오거나 중국 유학자들이 조선에 갔을때 조선사람들의 옷과 상투를 보고 '이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명나라의 옷이다!' 라면서 통곡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한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심의, 관복인 단령은 모두 한푸가 넘어간 것이니 당연한 일이다. 반면, 조선인들은 청나라에 가서 변발 치파오 오랑캐(...)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통곡했다고 한다(...). 아아, 중원의 세계에 오랑캐가 가득해

이들에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아주 없어지진 않고 승려와 도사라는 특정 신분은 여전히 한푸를 입었다는 것. 게다가 도사들은 청나라 때에도 변발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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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잠시라고 해도100년이 조금 넘으며 이 유행이 남중국 일대로까지 퍼지지는 않은 듯하다.
  • [2] 위에서도 말했지만 짧다고 해도 100년 좀 넘는다
  • [3] 단령 자체도 중국 전통복식은 아니고 당나라 때 들어온 호복의 일종이다. 다만 유목민 계통출신으로 이민족 왕조가 아닌 정통 한족왕조를 자칭한 수나라 당나라의 영향으로 중국화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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