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함경도

last modified: 2015-04-13 23:10:05 by Contributors

咸鏡道

목차

1. 개요
2. 지리
3. 역사
3.1. 조선 시대 이전
3.2. 차별과 멸시의 조선 시대
3.3. 근현대사
3.4. 북한 치하의 함경도
3.5. 통일 이후의 전망

한국의 전통적 지리구분
경기 호서 영남 호남 해서 관동(영동/영서) 관서 관북

1. 개요

함경남도함경북도(북한 행정구역상 함경남도, 함경북도, 양강도[1], 안변 이북의 강원도, 라선특별시)를 합쳐서 부르는 말. 함남 함흥과 함북 경성(鏡城)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안변부터 이북, 관북 지방이라고 한다.

조선 건국 초엔 동북면(태조, 정종), 길도(태종 ~ 세조)라고도 불리었는데, 이 경우는 경성 대신 길주에서 따와 붙인 것. 북방 영토가 확립되기 전에는 길주가 동북 지역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시애의 난으로 함길도가 성종 때 영안도(영흥, 안변)이 되었다가, 다시 연산군 4년부터 함경도가 되었다.

2. 지리

1896년 이전에도 남·북도로 나뉘었는데[2], 그 기준은 압록강두만강의 발원지인 백두산이었다. 경계는 현재 함경남도·함경북도와 비슷했다. 1945년 대한민국이북 5도 기준으로는 혜산무산(북한 행정구역 상 대홍단군) 사이.

함경남도와 함경북도의 면적을 합하면 약 51,000㎢ 정도. 개마고원을 필두로 한 산지가 많고 평야는 주로 동해안에 있다. 방언은 정평 이북은 동북 방언을 쓰고, 그 이남은 중부 방언권에 속한다.

극한지(極寒地)로 알려진 평안북도(자강도) 중강진후창군(김형직군)에서 바로 이웃 고을이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국 해병대가 한파로 고전한 장진호 전투의 무대 장진군도 이곳에 있다.

당연히 농작물은 잘 자라지 못한다. 때문에 조선 시대에 함경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과일조차도 3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3. 역사

3.1. 조선 시대 이전

흥평야 일대의 지역을 제외하고는 별 쓸모가 없는 땅으로 여겨졌다. 말갈의 땅이었으며, 신라 진흥왕고구려에게 빼앗고 다시 연개소문이 고구려 땅으로 쓸어 갔으며, 통일신라발해의 국경이 되고도 한 차례 밖에 충돌 하지 않은 동네였다. 윤관동북 9성이 있던 땅. 고려시대부터 함경도 출신 병사들은 정예중의 정예였다고 한다.

고려 말기, 원나라성 총관부가 된 이 땅에 전주 이씨 일가가 자리잡았고 고향으로 삼은 땅("흥왕지지")이 바로 "영흥", "화주"의 동북면(함경도)였지만, 조사의의 난(함흥차사) 이후 함흥 행궁이 별 의미 없어지면서 조선 멸망 때까지 최악의 땅으로 멸시를 받았으며 민정책도 상당히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 4군 6진이라든가...

3.2. 차별과 멸시의 조선 시대

조선왕조 초기부터 1402년의 조사의의 난과 1467년의 이시애의 난 탓에 반역향으로 낙인찍히고 계속 멸시를 받았으며, 자신들을 차별해온 조정에 대한 분노는 급기야 임진왜란 때 북상한 가토 기요마사에게 조선 최북단 회령 아전 이름도 국경 지역에 걸맞는 국경인(鞠景仁) 등이 임해군, 순화군을 팔아넘긴데서 여실히 드러난다. 국경인은 전주에서 유배 당한 출신으로, 나중에 물론 의병장과 유생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근현대 이후의 호남지방, 아니 일본의 도호쿠 지방 수준은 되는 변방 중의 변방이었던 것(...)

오성대감 이항복과 추사체로 알려진 김정희도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온 적이 있을만큼 유배지로 이용되기도 했고, 역시 유배지이자 첩첩산중의 대명사로도 유명한 개마고원삼수, 갑산도 바로 이곳에 있다.

국사 교과서에서도 수록된 리지에서도 함흥 이북으로는 설명이 사실상 없다!! 세종 시절에 6진을 개척하였다는 말과 함흥 이북 지역의 한 두개 정도의 성씨를 제외하고는 정말로 없다!! 조금 더 설명을 부연하자면 택리지에서 각 지역을 설명할 때, 각 도에 속한 지금의 우리로 치자면 광역시나 시나 군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인 부나 목, 군, 현에 대한 개괄적인 위치나 이름은 모두 언급한다. 물론 대도시나 역사가 깊은 도시라면 자세한 설명이 더해진다. 그런데 함경도의 경우, 함흥과 원산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전혀 언급도 않는다. 얼마나 이 지역이 조선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는 지 보여주는 하나의 예. 이젠 남한이니 더욱 더

요컨대 평안도에 대한 지역차별이 야기한 홍경래의 난이 19세기에야 발발했다는 점을 비교한다면 함경도의 불우한 역사는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고 하겠다. ''니 '돌상놈'이니 하는 비하어도 이때 모두 나왔다. '타박 타박 타박네야 너 어디메 울고 가니'로 시작되는 함경도 전래 민요의 배경설화도 매우 비극적이다. 물론 이 설화의 경우 함경도 출신이라서 보다는 무당의 딸로써 겪을 수밖에 없었던 신분계급상 극심한 천대에 더 중점을 맞추긴 하였지만. 언어영역 고전시가 부문에서 '묏버들 가려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데'로 시작하는 기생 홍랑의 시조에 담긴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도 함경도이다. 당시 함경도 주민들은 한양은 고사하고 강원도마저 내려올 수 없게 아예 법으로 막아놔서 생긴 비극이었다.[3][4]

3.3. 근현대사

하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개화기, 일제강점기에 더 적극적이었다. 개항 직후 원산의 엄청난 발전이 좋은 예. 공업도시 흥남, 항구도시 청진나진, 무산철광과 장진/부전호 수력발전소 등이 이때 만들어졌다. 덕분에 '동양의 덴마크'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로 생활수준이 남부 지방보다 높아지긴 했지만,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일제의 한반도 병참기지화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을 의미할 뿐 식민지 피지배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함경도민의 강한 자립심은 '북청 물장수'라는 말로도 알려져 있다. 아직 서울 시내에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은 시절에는 일일이 물동이를 지고 떠서 날라야 했는데, 이 일을 맡은 사람들이 대개 북청 출신이라는 점에 기인했다.

또 함경도에 없는 것 세 가지는 노복(奴僕, 머슴), 기생, 거지라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양반가가 없었다는 의미도 되지만... 지금의 사정은...

광복 전의 기행문에 묘사된 바로는 함경도 일대의 장터는 거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장마당 상인들 중에서 여성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달한다고 한다. #


위너의 고장
평균 신장 역시 1937년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수준(166.8cm)이었다.[5] 프로레슬러 역도산(김신락)도 함경남도 홍원군 출신이다. 가히 한국의 네덜란드라 할 수준이었으나, 북한에 경제난이 닥쳐오고 굶주리는 지역이 되면서 오늘날에는 남한이 더 크다. 남한은 173 북한은 평균이 158cm로 줄었다. 좋은 유전자 김씨 3부자들이 다 말아먹었꼬마 조상보다 키가 머리 반개 작다는 이야기가 된다 안습. 그래도 함경북도 지방은 스포츠 스타가 많다니, 항목 참고.

해방 이후 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되자 함경도 출신 군 장성들이 대거 월남하였고, 6.25 전쟁을 거치면서 나름의 세력을 구축하여 5.16 군사정변에 일조하지만,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및 군 수뇌부에 발생한 파벌싸움에서 '알래스카 소탕작전'에 의해 모두 반혁명 분자로 기소되어 숙청된다. 당시 '알래스카'가 군내에서 함경도 출신 인사를 가리키는 암호명이었다. 안습...

3.4. 북한 치하의 함경도

러시아가 연해주를 먹으면서 독립운동의 기지가 되기도 했고, 간도 떡밥도 다 여기서 온 것이다. 반면 일제가 패전 할 때는 8월의 폭풍 작전에서 가장 먼저 점령된(청진) 곳이기도 하다.

억척스러운 여성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남존여비가 뿌리박혀 있기로 유명한 북한 중에서도 함경도 남자는 기가 세고 남존여비를 내세우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북한 내의 지역감정 때문에 평안도와 알력이 심하다고 한다. 물론 피양피양 특권층의 본거지인 평안도에 많이 밀리지만(…).

탈북자 강연에 의하면 2000년대 이후로 함경도가 탈북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탈북자 가족들이나 바깥세계에 끈이 닿아 있는 주민들이 꽤 많다고[6]...그리고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 역시 탈북 브로커가 거의 본업 수준이라 한다.[7] 거기다 상술했듯이 차별을 꽤 많이 당해온 지역이라 체제에 대한 감정도 나빠 폭동이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8]. 북한 최대의 쿠데타 기도 사건인 6군단 반란사건도 유명하다. 라선특별시(라진, 선봉)은 남포특별시보다도 잘 살아서 북한에서 제2의 소득을 자랑하는데, 이것이 다 중국, 러시아와의 무역 때문이다.

3.5. 통일 이후의 전망

풍부한 지하자원, 임산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발전 잠재력이 높다. 게다가 중국,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바다 건너 일본까지도 왕래가 가능하므로, 넓은 배후 시장도 확보되어 있다. 또한 백두산, 칠보산 같은 명산이 있고 두만강과 동해안을 끼고 있어 관광지로서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실제로 해방 전까지만 하더라도 함경도 지역은 전국 제일의 중화학 공업 지역이었으며, 관광 명소이기도 했다. 때문에 통일이 이루어진 후 이 지역에 대한 개발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상당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물론 현실은 시궁창이지만 그리고 경기도, 강원도에 있던 메이커 사단의 일부가 이쪽으로 옮겨 가서 이 쪽이 전방이 될 것이다.
----
  • [1] 압록강, 두만강의 두 강을 끼고 있다 하여 명명되었다.
  • [2] 함경도는 다른 도들과는 달리 조선 시대에도 좌·우도가 아닌 남·북도로 나뉘었다.
  • [3] 실향민 출신인 윤승운 화백이 분개하는 부분이다. 명배우 이순재도 회령 출신.
  • [4] 함경도 음식에 대한 대목이므로 이순재씨의 회고를 그대로 기록한다. "국수를 말고 떡을 쳤죠. 함경도식 국수를 즐겨 먹었습니다. 함경도식은 메밀이 아니라 당면으로 만들어요. 양념을 해서 고기와 오이무침을 같이 말아 먹는데 상당히 쫄깃쫄깃합니다. 냉면이 아니라 으로 만들어 먹었어요. 서울시내에서 그런 국수를 파는 데는 없죠. 떡도 그렇습니다. 도 함경도 식으로 먹었죠. 보통 가루에 묻혀 먹잖아요. 우리는 가루에 묻혀 먹었습니다. 모양도 형태도 제각각이지만 그 맛을 무엇에 비교하겠습니까."
  • [5] 김연옥의 "기후학개론"에 따르면, 중국의 경우는 가장 큰 허베이 성이 165.9cm, 가장 작은 후난 성이 161.5, 몽골계 칼카스는 165.4cm, 퉁구스계 만주족 164.2cm. 한국은 평균 162.4, 일본은 가장 큰 지역이 161.3(간사이)이었다. 당시 한국 최단은 161.7의 충청남도전라북도.
  • [6] 탈북자의 80%정도가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하는 탈북미녀들 대부분이 이 지역 출신들이다.
  • [7] 아무리 북한이 선군정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해도 뿌리깊은 부정부패때문에 물자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을 때가 많은게 원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에서 직접 돈을 주는것도 아니니...
  • [8] 강명도는 한 좌담 프로에서 김일성"함경도 사람들은 간부로 등용하지 마라!"란 교시를 내렸을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3 23:10:05
Processing time 0.1399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