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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

last modified: 2015-03-31 21:27:09 by Contributors


함부르크 시청의 모습

함부르크
Hamburg
(ɔ) Freie und Hansestadt Hamburg from
© TUBS (cc-by-sa-3.0) from
함부르크의 문장 함부르크의 위치
국가 독일
함부르크
시간대 UTC+1 (서머타임 준수)
서울까지 9시간 20분
8243킬로미터
한국과의 시차 -8시간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산업
4. 교육
5. 환경
6. 기후
7. 관광
8. 대항해시대 온라인
9. 기타

1. 개요

함부르크 자유 한자시, Freie und Hansestadt Hamburg [1]
독일의 도시[2]. 시 공식 웹사이트
세계 최초로 햄버거를 개발한 곳
북해 연안에서 독일 최대의 항구[3]이며 엘베강 하구 110km 상류의 양안에 걸쳐 위치하고 있다. 인구 규모로는 독일 제2의 대도시이다.[4] 독일에서 가장 큰 도시는 당연히 독일의 수도베를린.[5] 유럽 전체로서는 7번째로 큰 도시이다. 이곳이 항구이기도 하고 부산을 떠올리면 된다.

독일 전체에서 1인당 주민소득 1위[6]를 달릴 정도로 부자도시이기도 하다. 2014년 기준으로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이른바 '백만장자'의 숫자만 4만 2천 명에 달하는데, 이 숫자는 당연히 독일에서 가장 많은 숫자이다. 2014년 기준으로 함부르크에 거주하며 1년 연봉이 백만 유로 (약 십여 억 원)를 넘는 사람들의 숫자만 해도 1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7] 이것도 거의 넘사벽일 정도로 독일에서 가장 많은 숫자이다. 그 밖에 3,000개가 넘는 세계 각국의 회사들이 수입과 수출 거래를 위해 이곳 함부르크에 상주하고 있으며, 95개의 영사관을 갖고 있어 세계 제1의 영사관 도시이기도 하다.

함부르크는 일찍부터 세계적으로 개방화되고, 자유화된 도시라는 명성을 갖고 있었다. 역사학자 엑크하르트 클레쓰만은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유입이 없었다면 함부르크는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함부르크는 옛날부터 외국인이 많은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함부르크가 그의 역사에 빚지고 있는 것처럼, 1952년에 제정된 함부르크 헌법 전문은 명시적으로 도시의 세계개방성을 규정하고 있다. "자유 한자도시 함부르크는 역사와 지리를 통해 주어진 세계 항구도시로서의 특별한 임무를 독일민족을 위해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자유의 정신 속에서 세계의 모든 나라, 모든 민족간의 매개자가 되는 것이다."가 그것이다.

2. 역사

함부르크는 북해와 가까이 있으면서 엘베강 하구를 끼고 있다는 천혜의 지리적 요건을 갖춘 곳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을 수 없었다. 기원전 4세기때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고, 그 유물도 이미 발견된 바 있다.[8] 기원후 4세기부터 6세기까지는 작센족이 이곳에 몰려와 살았으며, 이곳에 작센 부족의 근거지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기원후 810년 경에 카알 대제가 이곳에 교회를 건립하면서, 그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알스터강이 엘베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하마부르크라는 성을 쌓음으로써 오늘날의 함부르크라는 도시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9] 기원후 831년에는 루드비히 신성왕이 이곳에 주교구를 세웠고, 이 교구는 834년에 대주교구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대주교구는 이미 베르덩조약 때부터 바이킹들이 출몰하여 파괴하였고, 이후에는 슬라브족들이 함부르크에 침입하였으므로, 그 대주교구는 함부르크로부터 브레멘으로 옮겨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12세기에 샤우엔부르크-홀슈타인 공작 아돌프 3세가 이곳 함부르크에 다시 시장을 열었고,[10] 1189년에 프리드리히 1세 황제가 함부르크에 항구로서의 특권 및 무역의 특권을 부여하여 이곳에 대단히 융성한 중세무역도시가 만들어졌다고 한다.[11] 1241년에 뤼베크와 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독일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기초를 굳히고 14세기에 함부르크는 한자동맹의 일원이 되어 북해와 동해 사이의 중개무역 중심지 역할을 했고, 1510년부터는 도시국가로서의 독립된 주권을 인정받았다. 1558년에는 세계에서 두번째, 독일에서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이곳 함부르크에 만들어졌고,[12] 1678년에는 지금의 갠제맑 근처에 독일 최초의 오페라극장이 건설되어, 바흐, 핸델 등이 이곳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아무런 유혈사태 없이 개신교의 도시국가가 되었고,[13] 1767년에는 함부르크 국립극장이 만들어져, 북유럽의 예술중심지로 각광받기도 하였다.


함부르크 국립극장의 모습

한자동맹의 몰락 및 산업화 이후에도 함부르크는 계속해서 북독일의 경제중심지로 성장을 거듭하였으며,[14] 아메리카 대륙과도 무역을 하면서 덴마크와 독일 간의 국경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도 하였으나, 19세기초 나폴레옹 전쟁 당시 함부르크는 나폴레옹 군대의 점령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이후 1813-1814년에 함부르크는 러시아 군대에 의해 점령되기도 하였지만 1815년 자유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1842년의 대화재 때에는 도시 건물의 거의 대부분이 불에 타 없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함부르크의 지리적 위치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대화재 이후 함부르크는 매우 빠른 속도로 옛날의 입지를 회복하였으며, 그때의 대화재 덕분으로 함부르크는 오히려 도시 전체의 리모델링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함부르크 옛날항구의 모습

그 후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함부르크는 도시국가로서의 주권을 포기하고, 1867년에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주도하는 북독연방에 편입하였으며, 1871년에는 독일제국의 일원이 되기에 이르렀다.[15] 1892년에는 콜레라의 창궐로 인하여 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으나, 그 직후 상하수도를 정비하고 시가지를 정비한 함부르크는 더욱 더 번성하여, 유럽 최대의 항구로 발돋움하기도 하였다.[16] 그 당시 세계 최대의 해운회사들은 모두 함부르크에 있었고, 함부르크시의 재정은 유럽 최고의 건실함을 자랑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패망하고 난 뒤, 동독이 공산화되고 동유럽과의 무역이 거의 없어지면서, 함부르크는 옛날만큼의 명성을 보유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물론 서독이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키면서 함부르크의 경제 역시 급속히 성장하긴 하였으나, 최전성기인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성세에 비하면 아직은 부족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20세기 말 이후 철의 장막이 걷히고, 동서독이 통일되고, 유럽이 통합되어 국경이 사라지면서, 함부르크는 서유럽과 동유럽, 북유럽을 연결하던 지리적 요충으로서의 옛 명성을 급격하게 회복해가고 있는 중이다.

3. 산업

함부르크 경제의 중점은 역시 항구업과 무역업에 있다. 함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여러 해운회사들은 비록 더 이상 세계 최대의 회사들은 아니지만, 유럽에서 가장 큰 매출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17] 여행사로서도 유럽 전체에서 상위 랭킹을 휩쓸다시피 하고 있다.

하지만 함부르크 경제의 새로운 중점은 요즘 정보산업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함부르크는 옛날부터 독일 최고의 신문 잡지들을 거느린 독일 언론의 중심지였고, 오늘날에도 3,300개의 정보산업체를 보유한, 독일 정보산업의 명실상부한 메카이다. 슈피겔, 슈테른, 짜이트, 빌트 등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사들이 모두 함부르크에 있으며,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매일 함부르크에서 발행된 신문과 주간지를 읽으며 정치, 경제, 사회문제를 조망한다. 물론 일본과 한국의 대부분의 전자정보업체들도 그 지사를 함부르크에 두고 있다.

함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유명기업으로는 팍로이드,[18] 이어스도르프,[19] 몽블랑,[20] 바우어그룹,[21] 오토사,[22] 사,[23] 피터돌레사,[24] 코너지사,[25] 한제-메르쿠어[26] 등이 있다.

4. 교육

함부르크에는 9개의 대학교가 있어, 6만 8천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9개의 대학교는 종합대학교 함부르크(함부르크 대학교), 직업전문대학 함부르크, 함부르크하부르크 공과대학, 경제정치전문대, 연방방위군대학교, 음악예술전문대(세계적인 거장들이 교수진으로 있는 부르크 음대), 미술전문대, 개신교 사회교육전문대, 공공행정전문대이다. 특별한 연구기관으로서는 막스플랑크 비교사법연구소, 함부르크 세계경제문고, 하인리히 페테 베른하르트 녹흐트 바이러스 면역학 연구소를 비롯한 250개의 연구기구를 꼽을 수 있다.


함부르크에서 대부분의 대학들은 시 한가운데에 위치해있다. 4만의 학생과 900명의 교수를 보유한 종합대학교 함부르크의 경우 함부르크 도심에서 겨우 도보로 몇분 정도 거리에 있는 시내 가장 유리한 부지에 위치해있으며, 점증하는 공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점점 더 그 면적을 넓혀가고 있다. 바렌펠트와 플롯벡 그리고 슈텔링엔에 있는 새로운 캠퍼스는 전산학을 비롯한 새로운 자연과학 분야에도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5. 환경

한국의 서울과 비슷한 면적을 가졌으면서도 인구는 서울의 7분의 1밖에 안 된다. 시 전체 면적의 14%가 녹색 숲으로 뒤덮여있는 것 뿐만 아니라 시청건물을 보아도 알 수 있듯 다른 도시에 비해 녹색 지붕을 가진 건물들이 많다. 또한 산이 없고 대부분 호수와 평야로 뒤덮여 있는 북독일의 특성상 호수가 많다는 것도 함부르크의 특징이다. 호수와 강, 그리고 수로가 시면적의 8%에 달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 전 면적의 28%가 경관보호 및 자연보호 지역이며, 120개가 넘는 공원에 가로수만 20만 그루가 넘어 독일 최고의 녹색 도시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로 이 도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은 하셀브라크 언덕으로 해발고도가 겨우 116m에 불과하다.

6. 기후

함부르크가 독일 북부에 위치해 있다는 이유로 '엄청 추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크게 착각하는 것이다. 분지가 아닌 해안가 평야지대라는 특성상 아주 춥지도 아주 덥지도 않은 날씨가 계속되며, 평균기온은 오히려 남부 산악지대보다 더 높다. 1월달 평균기온이 영상 1도이고 7월달 평균기온이 영상 18도일 정도이다. 또 함부르크 날씨가 엄청 흐리고 비만 온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1년의 66%면 사실 견딜 만한 수준이다(세시간 중 한시간은 맑다는 얘기)[27]. 함부르크보다 남쪽에 위치한 이곳보다 일조량도 많다.[28] 1년 강수량이 760mm면 서울에 비해 오히려 비가 훨씬 적게 오는 편이다.

7. 관광

수많은 선박들의 불빛으로 찬란한 베강의 야경과 이를 굽어보는 미하엘리스 교회(일명 미헬)의 132미터 높이는 함부르크 경치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터 호수도 볼거리로서 빼놓을 수 없다. 알스터 호수는 지금으로부터 810년전인 1190년에 인공적으로 함부르크 중앙에 만들어진 호수로서, 원래의 목적은 함부르크에서 커다란 물레방앗간을 돌리기 위한 저수지용도에 있었다. 크기는 274만 평방피트 정도이고, 1620년에 함부르크시가 요새로 재건되면서 롬바르스브뤼케, 케네디브뤼케 두 다리에 의해 빈넨(內)알스터와 아우센(外)알스터로 나뉘어졌다.

레퍼반과 함께 함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인 융페른슈티크(Jungfernstieg) 가로 양쪽에 보리수가 쭉 늘어서있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하며, 반대편에는 백조들이 헤엄치고 다니는 조그마한 호수가 있다. 이 융페른슈티크의 아름다움은 일찍이 인리히 하이네도 감탄하여 노래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융페른슈티크의 사진


부르크 시청의 전면모습

부르크 시청 건물의 아름다움도 매우 유명하다. 시청 전면 가까이로 가보면 "선조가 쟁취한 자유를 후세들이 지켜내기를 바라며"라는 라틴어 글귀와 함모니아 벽화로부터 시작해서, 독일황제 20명의 입상들과 여러가지 조각들이 아름답다. 내부로 들어가보면 으리으리한 회랑과 고급스런 장식, 미술품 등이 한마디로 여긴 궁전이지 절대 시청이 아님을 과시한다.[29] 겉보기보다 크기도 꽤 커서, 지상 112미터, 지하 70미터에 폭 111미터, 방 647개를 자랑하는, 영국의 버킹엄궁(방 641개)보다도 더 큰 건물이며, 건물 안마당에 들어가보면 크고 아름다운 나체의 남녀동상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는 휘기아이아 분수대도 볼 수 있다.


부르크 시청 내부 모습

8. 대항해시대 온라인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북해에서 주조 스킬을 연마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도시로, 플리머스와 함께 북해 주조 투탑. 투자를 안 해도 주조스킬 랭작에 필요한 석탄, 납광석, 동광석, 주석, 철광석이 모두 나오는 것이다. 플리머스가 잉글랜드 동맹항인 관계로 타국 사람들이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투자도 많이 하는 곳.
게다가 보석과 공예품 내성항이기 때문에 과거 보석무역이 흥했을 때는 함부르크가 보석 드랍 장소 중 하나였다.[30] 보석무역이 쇠락하고, 2nd Age 패치 기준으로 남만무역이 쇠락함에 따라 공예품도 메리트가 떨어져서 내성항으로서의 가치는 다소 낮아졌지만 그래도 주조 스킬 랭작과 함께 북해에서 중요한 도시.

9. 기타

함부르크는 그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햄버그 스테이크의 원산지이며, 이것이 미국에 전파되어 미국사람들이 빵 사이에 햄버그를 끼워서 먹은 것으로부터 햄버거가 유래되었다.[31] 함부르크 사람들은 햄버거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여기 사는 사람들 이름도 함부르거(Hamburger)다.[32]

항구도시라서 그런지 이곳 사람들은 확실히 생선을 즐겨 먹는다.[33] 매주 일요일 새벽마다 항구에서 대규모로 열리는 어시장(Fischmarkt)도 있다.

공창제를 인정하고 있는 독일 내에서도 손꼽힐정도로 거대한 환락가를 가지고있는 도시다. 독일에선 레퍼반(Reeperbahn)이라고 부르는 번화가가 유명한데,이 레퍼반 안에 헤르베르트슈트라세(Herbertstraße)라는 30m도 안 되는 곳에 집창촌이 가득하다.[34]환락가는 엄청나게 유명해서 네덜란드암스테르담과 함께 유럽의 2대 환락가로 꼽힌다.근데 대마빨 수 있는 암스테르담이 더 해 보이는건 뭐지

독일 최고의 부촌(富村)도 함부르크에 위치해 있다. 엘프쇼쎄, 블랑케네제, 아우쎈알스터 지역에는 커다란 단독주택들과 빌라들이 밀집해 있는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수백년 된 재벌가문의 자손들이나 은퇴한 대기업 CEO들, 연예인들이 많고, 함부르크에 있는 커다란 무역회사의 사장들도 많다. 이곳에 있는 부동산의 시가는 우리나라 성북동, 청담동, 압구정동, 배동의 부동산 시가에 맞먹는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부자들은 수도 서울에 몰려 살지만, 독일에서 최고의 부자들은 수도 베를린이 아니라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에 산다는 얘기이다.

함부르크, 브레멘,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니더작센[35]를 관할하는 총영사관이 시내에 있다.

함부르크 SVFC St.파울리 그리고 야구 구단인 HSV 스틸러의 연고지역이다. 함부르크 SV 축구단은 여기서 공격수로 뛰었던 손흥민 선수의 활약으로 한국인들에게 많이 친숙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건축가이자 군수장관이었던 알베르트 슈페어가 체포된 곳이 바로 함부르크다. 아더 해리스에 의해 쾰른, 드레스덴과 함께 3대 주요 폭격 목표가 되기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철도 모형 전시관 역시 함부르크에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ACkmg3Y64_s

게임 네이비필드에선 독일의 항구로 나온다.

존 르카레티드 맨은 이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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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저지독일어에서는 Hamborg라는 철자로 쓰기도 한다.
  • [2] 도시 하나가 그대로 주(state)이기도 한 곳이다. 독일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16개 주들 중에는 이런 도시주가 함부르크 말고도 2개 더 있는데 그게 바로 베를린브레멘이다. 독일어로는 der Stadtstaat
  • [3] 예전엔 나름대로 유럽 최대의 항구였으나 지금은 네덜란드로테르담이나 벨기에앤트워프에 꽤 밀린 상태.
  • [4] 많은 이들이 뮌헨을 독일 제2의 도시로 알고있으나 함부르크의 인구는 약 178만명이지만 뮌헨은 130만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독일에서 일반적으로 대도시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트(65만)와 슈투트가르트(59만), 뒤쎌도르프(58만) 인구를 다 합쳐야 겨우 함부르크 한 도시 인구에 미칠 수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함부르크가 얼마나 큰 도시인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더군다나 함부르크를 둘러싸고 있는 함부르크 도시근교에는 무려 330만의 인구가 살고 있다.
  • [5] 함부르크는 178만의 인구와 755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졌고, 베를린은 340만의 인구와 889평방킬로미터의 면적을 가졌다
  • [6] 무려 5만 유로에 육박한다. 이웃하는 주들보다 1만 유로가 더 많으며, 베를린의 두 배나 되는 1인당 주민소득을 자랑한다고 한다.
  • [7] 함부르크에서도 가장 부자 동네인 니엔슈테텐 지구의 경우 주민 1인당 평균 연봉이 2억 원에 육박한다. 가구당 평균연봉이 아니라 1인당 평균연봉이 그렇다.
  • [8] 클라우디오 프톨로모이스라는 고고학자가 그 유물을 발견했다. 지금의 페트리교회 바로 남쪽이 그곳이다.
  • [9] 원래 독일의 도시 가운데 '~부르크'란 이름의 도시들은 모두 옛날에 성곽도시들이었다.
  • [10]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알스터 호수 서쪽편에 시장을 열었다고 함
  • [11] 그 당시부터 이곳 함부르크에는 이미 600개의 양조장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도시가 컸는지 짐작할 만하다.
  • [12]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는 벨기에의 안트워프에 세워졌다고 함.
  • [13] 그 당시 30년 전쟁에서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은 덕에 함부르크는 , 브레멘 등의 여러 경쟁도시들을 앞질러 한자동맹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가장 번성한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 [14] 이때 이미 함부르크는 독일 전체에서 베를린 다음의 대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 [15] 물론 함부르크시는 그때에 하나의 분국(Gliedstaat)으로서 독일제국에 편입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함부르크시는 일정한 자치권을 보유하고 있다.
  • [16] 대략 지금의 상하이를 생각하면 된다. 이때 독일의 국력은 욱일승천하여 급기야 영국을 앞질러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하려 하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함부르크 역시 영국의 런던, 리버풀, 맨체스터 등을 앞지를 수 있었다고 한다.
  • [17] 지금 현재 세계최대의 무역회사는 홍콩의 Orient Overseas Container Lines이며, 함부르크의 하팍로이드사는 세계 2위를 마크하고 있다.
  • [18] 세계 제2위의 해운-여행사이다. 정식명칭은 함부르크-아메리카우선회사(郵船會社)이다.
  • [19] 1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케어제품 제조회사이다. 대표상품은 니베아 크림이다.
  • [20] 고급필기구, 액세서리 회사로 만년필이 특히 유명하다.
  • [21] 그라지아(Grazia), FHM, 영국에서 주(Zoo) 등 잡지를 발간하고 있다.
  • [22] 세계 제1위의 통신판매회사이다.
  • [23] 세계적인 커피 제조 및 유통회사이다. 전세계 11개국에 12개의 커피공장을 두고 있고, 독일 내 약 400여 점포와 유럽 및 미주지역에 350여 개 직영 커피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 [24] 150여 척의 선박을 운용하고 있는 세계적인 컨테이너선사이다.
  • [25] 세계적인 태양광전지회사이다.
  • [26]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세계적 보험사이다.
  • [27] 함부르크의 연 평균 일조량은 1560.7시간이다.
  • [28] 런던의 연 평균 일조량은 약 1480시간으로 함부르크 사람들이 런던 사람보다 매일 평균 13분정도 더 햇빛을 쬘 수 있다.
  • [29] 당시 함부르크시청 내부를 장식하는 데 독일에서 내로라하는 최고의 미술가들이 모두 집결, 참여해서 완성했다고 하니, 이 건물 하나 만드는 데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알 수 있다(예나 지금이나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첫째둘째를 다투는 부자도시다).
  • [30] 또다른 보석 내성항 암스테르담은 네덜란드 본거지이기 때문에 이윤이 덜 나온다.
  • [31] 그래도 함부르크시에 가보면 원조 햄버거를 판매한다는 가게들이 있다.
  • [32] 함부르크 사람들은 영어로 자기 자신들을 지칭할 때 "아이엠 햄버~ㄹ거ㄹ"라고 말한다
  • [33] 거의 내륙국이나 마찬가지인 독일 사람들은 생선보다 육류를 더 즐겨먹는 편인데, 함부르크 사람들의 식성은 좀 특이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 [34] 지뢰진2권에 자세하게 나온다.
  • [35] 여기서 이 4개의 주는 북해에 접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4개 주와 클렌부르크-포어폼메른(발트해에만 접해 있음)를 제외한 나머지 11개 주는 바다에 접하지 않는 내륙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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