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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시



여권법에 의한 여행금지국가
아프가니스탄리비아소말리아시리아예멘이라크
별도의 국내법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지역
북한(국가보안법) 남극(남극활동법)


위험 : 이곳은 여행금지 또는 기타 법률에 의해 출입이 금지된 국가·지역입니다. 이 국가는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여행경보 4단계인 여행금지 또는 특별여행경보 2단계인 특별여행경보로 지정된 국가입니다. 현지에 체류하시는 분들은 즉시 철수 및 귀국해야 하며 외교부의 허가 없이 방문하면 여권법에 의해 처벌됩니다. 특히 이런 지역은 테러, 전쟁 등으로 인해 매우 위험해 다른 국가에서도 비슷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국민들의 탈출 시도도 빈번한 매우 위험한 국가이니 어떤 이유로든 절대로 가면 안됩니다. 또한 국가보안법 및 남극활동법으로 입국이 금지된 국가를 방문하여도 관련 법률에 의해 처벌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법률에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군사목적 등의 이유로 현지 법률로 출입을 금지하는 지역도 있기에 이러한 지역 주변을 여행할 때는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여행금지국가 이외에도 특별여행경보 발령 국가, 철수권고 국가 등 방문시 위험한 곳이 있습니다. 해외로 여행하시려는 분들은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사이트에서 해당국에 대한 정보를 반드시 숙지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위 권고사항을 따르지 않았을 시 발생한 피해나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咸興市 / Hamhung City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교통
4. 기타
5.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1. 개요


함흥의 선화당(宣化堂: 조선시대 관찰사가 사무를 보던 곳)

함흥에 관광 갔던 한 외국인이 몰래 찍은 영상으로 보인다.

북한 함경남도의 인민위원회 소재지. 광복 당시에는 함주군, 흥남시와 경계를 접했다. 함흥평야 위에 뻗어나간 도시로, 함흥냉면이 유명하며, 한편 함흥차사의 속담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인구 약 77만 명(2008년 현재, 흥남 포함)으로 평양 다음가는 북한 제2의 도시이다.[1] # # 사진들.

2. 역사

원삼국시대에는 대략 옥저 땅이었다가[2]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역이었다.[3] 이후 발해의 오경 중 하나인 남경남해부로, 고려윤관의 여진정벌으로 확보한 동북9성 가운데 하나인 함주(咸州)였다. 그러나 몽골(원나라)에게 정복되어 성총관부에 의해 98년간 통치되었고, 이성계도 이 시기에 태어났다.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의 본거지[4]로 유명하여 '풍패지향(豊沛之鄕)'이란 별명[5]이 있었다. 경흥동에 정화릉(定和陵)·덕안릉(德安陵) 등 왕릉이 있고, 귀루동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태어난 준원전(濬源殿), 경흥동에는 그가 왕이 되기 전에 살던 집 가운데 하나인 경흥전(慶興殿)이 있다. 별궁 격인 함흥 본궁(구 사포구역 → 흥남시 소재) 역시 존재했으며 백사진으로만 남은 이성계의 젊은 어진은 함흥 본궁에서 촬영된 것이다.

원래 함흥군이었다가, 1914년 동북부 지역을 신흥군으로 분리하였다. 1930년 함흥면이 함흥부로 승격되고, 함흥군의 잔여지역은 함주군으로 개칭되었다. 해방 이후 소련군정 치하에서 함흥부가 함흥시로 개칭되었다.

북한 치하에서는 다른 도시들처럼 파란만장한 변천을 겪었다. 6.25 전쟁 때 크게 파괴되었으나, 소련동독의 지원을 얻어 재건되었다. 한때 함흥에는 동독의 초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헬름 피크 거리'가 있었을 정도. 1952년 12월 함주군을 일부 흡수했다가, 다시 1954년 함주와 오로군(현 영광군)에 일부지역을 편입시켰다.

1960년 함흥직할시로 승격되었고, 이 과정에서 흥남시, 퇴조군(현 락원군), 함주군, 오로군을 함흥직할시로 편입하였다가, 1970년 8월 다시 함경남도 도청소재지인 일반시로 격하되었다. 이때 덕산구역, 퇴조구역을 덕산군, 퇴조군으로 독립시켰으나, 덕산군은 1974년 1월 다시 함흥시 회상구역에 편입되었으며, 이때 본궁구역이 사포구역에 통합되었다. 그해 8월에는 반룡구역이 동흥산구역으로 개칭되었다.

2001년 8월에 인구 약 36만의 흥남구역, 해안구역, 흥덕구역, 사포구역의 일부를 독립시인 흥남시로 만들었으나, 4년만인 2005년에 다시 폐지하고 흥남시는 함흥시로 돌아왔다. 2001년 당시 함흥시는 흥남시를 만들면서 동흥산구역, 성천강구역, 회상구역 등 각 행정구역들을 폐지하였고,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961년부터 흥남에 2·8비날론연합기업소가 있으나 알다시피 비날론("주체섬유")이란 것이 참 안습한 녀석이다. 비날론 항목 참조.

3. 교통

철도 시설로는 함흥역, 서함흥역, 함흥조차장역 등이 있다. 북한 철도망의 가운데에 함흥이 있고 북한 서부와 동부는 함흥을 거쳐야만 지나다닐 수 있는 형태로 교통의 요충지이다.

신흥선, 장진선, 서호선 등이 지난다.

4. 기타

  • 훗날 대한민국 주도의 남북통일이 이뤄지면 함경도의 주요 거점도시로서 평양과 함께 광역시 승격의 가능성이 높은 도시다. 옛 함흥, 함주, 흥남 지역을 다 엮으면[6] 대충 100만 정도의 인구가 되고, 또 함경도에 대한 배려 차원도 고려한다면… 오오 그곳은 함흥광역시

  • 북한에서는 이 도시 사람들의 성격을 가리켜 함흥얄개라고 한다. 사막에 떨어뜨려 놔도 살아남는 기질이라고(…).

5.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아래 행정동과 법정동은 《이북5도 명예읍·면·동장 위촉에 관한 규정》 제8조 별표2에 규정되어 있다. 광복 당시 행정구역이니만큼 일본식 지명도 많이 보인다.

행정동 법정동·리
경흥동 경흥리(慶興里)·부평리(富坪里)·상수리(上水里)·심동리(深洞里)·하수리(下水里)
반용동 금일리(錦一里)·반룡리(盤龍里)·산수리(山手里)야마노테·서일리(曙一里)·운흥리(雲興里)·지락리(知樂里)·출운리(出雲里)
보고동 보고리(保古里)·상보리(上保里)·신보리(新保里)·자흥리(自興里)·중보리(中保里)
사포동 사포리(沙浦里)·신흥리(新興里)·용호리(龍湖里)
서상동 서상리(西祥里)·신흥리(新興里)·풍호리(豊湖里)·흥도리(興島里)
성천동 만세리(萬歲里)·성천리(城川里)·황금리(黃金里)
중앙동 남문리(南門里)·대화리(大和里)야마토·복부리(福富里)·소화리(昭和里)쇼와·연지리(蓮池里)·조일리(朝日里)아사히·중앙리(中央里)
치마동 일출리(日出里)·춘일리(春日里)카스가·치마리(馳馬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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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 다음 제3의 도시는 청진(약 68만 명)이다.
  • [2] 교과서의 지도에는 항상 함흥 일대에 옥저를 집어넣는다.
  • [3] 진흥왕 대에 잠깐 신라 땅이 되었다가 다시 고구려에 빼앗겼는데, 이후 신라는 삼국통일 이후에도 함흥평야를 다시 차지하지 못했다. 통일 이전엔 신라가 먹었다가 통일 이후엔 오히려 발을 못 붙인 특이한 케이스.
  • [4] 고향은 정확히는 화령(영흥. 오늘날 금야군)이다.
  • [5] 한고조 유방의 고향인 풍읍 패현과 동급으로 간주해 이런 별명이 붙었다.
  • [6] 사실 1914년 이전에는 역시 함흥군 땅이었던 신흥군도 역사성을 따져 추가 편입할 수도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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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4 1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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