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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참모의장

대한민국 국군의 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육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Contents

1. 개요
2. 육해공의 비중
3. 대한민국 국군
3.1. 역대 합동참모의장
4. 미군
4.1. 역대 합참의장
5. 자위대
5.1. 주요 출신 주특기
6. 중국


1. 개요

合同參謀議長,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많은 나라 군대의 3군(육군, 해군(+해병대), 공군) 통합 의결기구인 합동참모본부의 의장으로 줄여서 합참의장이라고 부른다. 유럽 쪽에서는 '국방참모총장(Chief of the Defence Staff)'(영국)이나 '국방감찰총감(Generalinspekteur der Bundeswehr)'(독일)이라고 부른다. 중화민국군에서는 특이하게 합참의장을 '참모총장'이라고 부르고, 우리나라의 참모총장에 해당하는 직위는 육/해/공군 사령이라고 부른다. 이 기구가 보통 그 나라 군대의 가장 높은 의결기구이며 이 자리는 그 기구의 총책임자인 만큼 경험이 제일 많은 대장이 보임된다. 대한민국 국군의 대장 8명 중에서도 서열이 가장 높기 때문에 합참의장은 현역 군인의 좌장(座長)이라고도 불린다.

보통 장성들에게는 신변보호와 사무연락 등의 일을 하는 전속부관이 있으며 야전 지휘관의 경우 사무비서인 비서실장도 지원된다. 합동참모의장은 이 두명외에도 '보좌관'이라는 직함을 가진 비서 보직이 있다. 이 보좌관은 전도유망한 국군 대령이 보임된다. 일례로 제42대 국방부장관을 지낸 김태영 예비역 대장도 대령 시절 합참의장 보좌관을 역임했다.

참고로 국군 대장 8명의 의전서열은 '합참의장 > 육군참모총장 > 해군참모총장 > 공군참모총장 > 그외 4성장군 4명'순이다. 나머지 4성장군인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육군의 야전군사령관들 4명중에서는 진급일이 빠른 순으로 서열이 높아진다. 국방일보 기사 정확한 서열은 대한민국 국군/장관급 장교 문서 참조.

2. 육해공의 비중

한국군의 경우 38대 최윤희 합참의장까지 육군이 36명, 해군이 1명, 공군이 1명이다.

미군의 경우 18대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까지 육군이 9명, 해군이 4명, 해병대가 1명, 공군이 4명이다.

자위대의 경우 통합막료회의의장과 통합막료장을 합쳐 이와사키 시게루 4대 통합막료장까지 총 29명인데 이중 육상자위대가 14명, 해상자위대가 8명, 항공자위대가 7명이다.

3. 대한민국 국군


현직
이름 최윤희(崔潤喜)
출신 해사 31기
생년월일 1952. 6. 9(음)
임관일 1977. 3. 1

제복군인 중 최선임이다. 한국군에서는 원래 합참의장은 실권이 없는 명예직으로 군령권(軍令權)과 군정권(軍政權)은 각군 참모총장이 갖고 있었다. 군정권은 인사를 포함한 일반 지휘권, 군령권은 작전 지휘권이다. 그 중에서도 육군 강세인 한국군의 특성으로 인해 육군참모총장이 사실상 국군의 수장이었다(12.12 군사반란 때 쿠데타군의 목표가 당시 합참의장인 김종환 대장이 아닌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점,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당시 '전국계엄사령관'에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 이희성 대장이 임명된 점 등을 상기해보자). 합참의장이 그나마 군령권을 가진 실세로 부상한 것은 국군조직법이 개정된 1991년부터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1988년 착수한 8·18계획 아래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합참의장이 군정권과 군령권 모두를 갖는 강력한 '통합군'으로 군을 개편하려 했으나 소군(小軍)인 해·공군의 반발에 밀려 일단 합참의장이 군령권만을 보유한 형태의 '합동군'으로 개편했다. 그러나 ·평시작전권을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는 현실에서 의장이 보유한 군령권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 그후 1994년 2월 1일 한·미간의 밀고 당기는 실랑이 끝에 '평시작전권'을 미군측으로부터 이양받으면서 합참의장직은 다소의 실권을 가진 주요보직으로 부상했다. 한 마디로 '총을 지휘하는 대장'과 '사람을 지휘하는 대장'을 각각 의장과 각군 총장으로 나눔으로써 합참의장은 한국군 전체의 최고 작전지휘관이 되었다. 그리고 주의할 것이 합참의장은 엄연히 한국군의 '작전지휘관'이지 최고지휘관은 아니다. 한국군 최고 통수권자는 대통령이다. 그래서인지 합동참모의장은 중대급 부대 지휘관[1]도 다는 지휘관 견장(육/공군 한정)과 휘장을 달지 않으며, 이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지휘관이 아니라 (대통령의) 참모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제복 군인 중 유일하게 인사청문회를 거친다.

사실 합참이 처음 만들어질 때에는 영국처럼 국방참모총장이라고 부르려 했으나 헌법에 합동참모의장이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합참의장이라는 명칭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군인사법 제18조(합동참모의장 임명)
① 합동참모의장(이하 "합참의장"이라 한다)은 참모총장을 역임한 사람이나 장관급 장교 중에서 국방부장관의 추천을 받아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경우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② 합참의장은 재임기간 동안 군에서 복무하는 현역장교 중 최고의 서열을 가진다.
③ 합참의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 다만, 전시·사변 또는 국방상 필요할 때에는 1년 이내의 범위에서 그 임기를 연장할 수 있다.
④ 합참의장에 대하여는 임기 동안 제8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연령정년을 적용하지 아니하며, 그 직위에서 해임 또는 면직되거나 그 임기가 끝났을 때에는 현역에서 전역된다.
(전문개정 2011.5.24)


육군이 초강세인 한국군의 특성상 관례적으로 육군대장이 합참의장에 가장 많이 보임된다. 1963년 합동참모본부가 창설된 이래 50여 년이 지난 동안 단 2명뿐인 예외는 25대 이양호 공군대장과 38대 최윤희 해군대장. 이양호 장군의 임명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를 제거하면서 장성들의 대다수를 물갈이했기에 가능했다. 최윤희 제독 또한 현 정부의 육군 위주의 인사 탈피라는 측면보다는, 인사 시기가 꼬여서 육군 장교들 중 합참의장에 보직될 만한 적합한 기수가 없었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증언도 있다.[2] 합동참모차장의 경우에는 관례적으로 해군대장과 공군대장이 번갈아가며 맡게 하는 것이 원칙이나 실제로는 합참차장에 보임되고도 중장 계급이 유지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나마도 현 합참차장은 해군이 의장을 맡았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육군중장이 보직되었다.

합참의장은 군내 서열 1위이긴 하나 군령(軍令)만을 담당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일과 시간표나 평소 군기, 병영내 부조리 등에 대한 통제는 권한 밖이다. 이쪽은 군내 군정(軍政)을 담당하는 각군 참모총장의 몫. 삐딱하게 보자면, 육군사관학교 출신 최고 엘리트들이 을 달고 승승장구하면서 국방부장관으로서 내각에 입문하기 전까지 군 내에서 밟는 마지막 코스이기도 하다.[3] 굳이 국방부장관이 아니더라도 합참의장이란 경력은 현역 군인 신분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책이기 때문에, 예편 후에도 각 정당의 국방·안보 분야의 전문가로 초청되는 경우가 많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방개혁을 위해 신설한 국가안보총괄회의에서 제시한 개혁안에 따르면, 합참의장은 군령권을 내놓고 대통령의 보좌와 총괄적인 군사작전 지도만을 맡게 한다. 또한 합참의장이 가졌던 군령권은 새로 신설되는 '합동군사령부'의 지휘관인 '합동군사령관'에게 넘어가며, 육·해·공군 본부를 육·해·공군 총사령부로, 각군 참모총장을 각군 총사령관으로 변경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각군 총사령관이 합동군사령관의 지휘를 받아 군령권과 군정권을 행사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합동참모의장은 20여 년만에 다시 명예직으로 돌아가게 될뻔 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헌법 조항의 문제도 있고, 군 내외의 반발도 심해 결국 합동군사령부 신설과 총사령부 개편은 없던 일이 되었고 합참의장에게 일부 군정권을, 각군 참모총장에게 일부 군령권을 나눠주는 식으로 방향이 잡혔다.

3.1. 역대 합동참모의장

괄호 안은 대수와 기간.

  • 이형근 육군대장(1대, 1954. 02 ~ 1956. 06)
  • 정일권 육군대장(2대, 1956. 06 ~ 1957. 05)
  • 유재흥 육군중장(3대, 1957. 05 ~ 1959. 02)
  • 백선엽 육군대장(4대, 1959. 02 ~ 1960. 05)
  • 최영희 육군중장(5대, 1960. 08 ~ 1960. 10)
  • 김종오 육군대장(6 ~ 8대, 1960. 10 ~ 1965. 04)
  • 창국 육군대장(9대, 1965. 04 ~ 1967. 04)
  • 충식 육군대장(10대, 1967. 04 ~ 1968. 08)
  • 문형태 육군대장(11대, 1968. 08 ~ 1970. 08)
  • 흥선 육군대장(12대, 1970. 08 ~ 1972. 06)
  • 한신 육군대장(13대, 1972. 06 ~ 1975. 02)
  • 노재현 육군대장(14대, 1975. 02 ~ 1977. 12)
  • 종환 육군대장(15대, 1977. 12 ~ 1979. 12)
  • 병현 육군대장(16대, 1979. 12 ~ 1981. 05)
  • 성민 육군대장(17대, 1981. 05 ~ 1982. 05)
  • 김윤호 육군대장(18대, 1982. 05 ~ 1983. 06)
  • 이기백 육군대장(19대, 1983. 06 ~ 1985. 06)
  • 진권 육군대장(20대, 1985. 06 ~ 1986. 07)
  • 자복 육군대장(21대, 1986. 07 ~ 1987. 12)
  • 세창 육군대장(22대, 1987. 12 ~ 1989. 04)
  • 호근 육군대장(23대, 1989. 04 ~ 1991. 12)
  • 필섭 육군대장(24대, 1991. 12 ~ 1993. 05)
  • 이양호 공군대장(25대, 1993. 05 ~ 1994. 12)
    최초의 공군 출신 합참의장.
  • 김동진 육군대장(26대, 1994. 12 ~ 1996. 10)
  • 윤용남 육군대장(27대, 1996. 10 ~ 1998. 03)
  • 김진호 육군대장(28대, 1998. 03 ~ 1999. 10)
    학군 2기[4]. 창군 이래 유일한 ROTC 출신 합참의장.
  • 조영길 육군대장(29대, 1999. 10 ~ 2001. 10)
  • 남신 육군대장(30대, 2001. 10 ~ 2003. 04)
  • 종환 육군대장(31대, 2003. 04 ~ 2005. 04)
    15대 합참의장과는 동명이인.
  • 이상희 육군대장(32대, 2005. 04 ~ 2006. 11)
  • 김관진 육군대장(33대, 2006. 11 ~ 2008. 03)
  • 김태영 육군대장(34대, 2008. 03 ~ 2009. 09)
  • 이상의 육군대장(35대, 2009. 09 ~ 2010. 07)
  • 한민구 육군대장(36대, 2010. 07 ~ 2011. 10)
  • 정승조 육군대장(37대, 2011. 10 ~ 2013. 10)
  • 최윤희 해군대장(38대, 2013. 10 ~ )
    최초의 해군 출신 합참의장.

4. 미군


재18대 미군 합참의장인 육군대장 Martin Dempsey 장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지 구글에 martin dempsey singing이 완성된다

현직
(ɔ) United States Department of Defense from
이름 마틴 뎀프시(Martin E. Dempsey)
출신 웨스트포인트 '74
생년월일 1952. 3. 14
임관일 1974. 6. 5

미국 Joint Chiefs of Staff(JCS)의 최고 책임자이자 미군 내 서열 1위이다.[5] 미국-스페인 전쟁 때만 해도 미국 육군과 해군은 따로 놀았다. 그 때문에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육해군 합동위원회(Joint Board)를 설치하였으나 자문기관에 불과하였다.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미국 해군과 육군은 각각 해군부와 육군부 소속이었고 국방부가 생긴 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이었다. 당시 미군은 영국군과 작전을 수행했는데 영국군에 국방참모본부(Chiefs of Staff Committee)[6]가 있던 것과 달리 미국에는 상응할 만한 조직이 없었다. 미군은 영국군과 연합참모본부(Combined Chiefs of Staff)를 구성했는데 영국 국방참모총장에 상응할 만한 위치인 육해군최고사령관(Chief of Staff to the Commander in Chief of the Army and Navy)을 1942년 7월 20일에 창설했다. 이는 오늘날의 합참의장에 해당한다. 최초 합참은 네 명으로 최고사령관은 윌리엄 리히(William D. Leahy) 해군원수였고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 원수, 해군참모총장 어니스트 킹 원수, 육군항공사령관[7] 헨리 아놀드 원수가 나머지 구성원이었다.

1947년에 국방부가 생기면서 합참은 국방부의 산하기관이 되었고, 1949년 오마 브래들리 대장이 취임[8]하면서 해당 보직의 명칭을 오늘날의 명칭(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으로 고쳤다.

한국군과는 달리 각군 대장들이 적어도 한 번씩은 취임한 적이 있다. 이쪽은 육·해·공군뿐만이 아니라 해병대 대장도 합참의장을 역임해왔다. 물론 역대 미 합참의장들의 출신을 거론하면 육군의 비율이 가장 높지만, 각 군별로 그렇게 크게 차이가 나진 않는다. 대충 육군이 역대 합참의장의 과반에 조금 못미치게 임명되었고 나머지 과반을 해군과 공군, 가끔 해병대가 내정되는 식.[9] 한국군 합동참모의장처럼 전군을 대표하는 제복군인의 장이지만 그쪽은 우리와는 달리 군령권이 없다.

JCS는 말 그대로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제복군인들 위에서 군령권을 갖고 있는 국방장관의 참모라고 보면 된다. 미군에서 작전권한을 가진 가장 높은 군인들은 각 통합군사령관들. 지역별로는 6개(중부, 태평양, 북부, 남부, 유럽, 아프리카), 기능별로는 3개(전략, 수송, 특수전) 등 총 9개 사령부가 편성되어 있다. 합동군사령관을 거친 후에 각군 참모총장이나 합참의장에 임명되는 순간부터 야전업무에 관한 직접적인 영향권(작전권)을 거의 상실한다. 이러한 지휘구조는 '장성 1인에게 군 전체의 지휘권을 맡기면 문민통제에 어긋난다'는 지적과 더불어, 전세계를 대상으로 자국 군대를 배치 및 운용하는 미국의 군사적 특수성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만약 미국이 자국 영토의 방어만을 신경써야 하는 평범한 국가라면, 병력 전체를 총괄 지휘하는 최고사령관 1인을 별도로 둘 수밖에 없다). 의장부대와 합참 직속 참모진을 빼고는 예하 부대도 없게 된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군령 자체가 합참의장과 각군 참모총장들을 완벽하게 우회해서 대통령 → 국방장관 → 통합군사령관 → 예하 야전군으로 하달되는 형식이니 정말 실권하나 없는 직책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제1보좌역이자 합동참모회의에서 각군 참모총장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주된 업무인 데다가 명색이 제복군인의 1인자이다 보니 군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군령권만 없을 뿐). 같은 이유로 각군 참모총장들도 은근히 뒷방영감같아 보이지만 영향력이 생각보다 세다. 그래도 통합군사령관 보직이 확실히 제복군인으로서는 가장 간지나는 요직.

합참의장이 군령권 없이 통합사령부들의 전략 기획 및 조율을 담당하는 점이 비효율적이라며 작전권을 줘야한다는 얘기가 1980년대 중반에 나오기도 했지만 미국 의회에서 거부했다. 미국 헌법의 기본이 제복군인 1인에게 미합중국 전군의 작전 지휘권을 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출처

4.1. 역대 합참의장

미국 정부는 합참의장 배분에 있어서 다양한 출신을 등용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미군에서 대장의 70% 정도는 사관학교 출신이긴 하지만[10] 합참의장에선 비사관학교 출신들도 꽤 많다. 재임 중에 6.25 전쟁이 발발하고 원수로 진급한 오마 브래들리를 제외하면 전원 대장이다.

여담으로 미국공군사관학교는 아직 한 명도 합참의장을 배출 못 했다. 미 공군은 역대 4명의 합참의장을 배출했지만 웨스트포인트 출신이 둘, 학사 1명에 학군 1명이다. 미국공군사관학교가 의외로 꽤 늦게, 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보다도 늦게 생겼을 정도로 역사가 짧은 편이라... 참고로 육군에서 독립한 뒤 1959년 공사가 첫 졸업생을 배출할 때까지 10년 넘는 기간에는 미국육군사관학교미국해군사관학교에서 공군 장교가 배출되었다.[11]

사병 출신 장성은 네 명이다. 3대인 네이선 트와이닝과 8대인 조지 브라운은 사병으로 복무중에 사관학교에 진학했고 10대인 존 베시현지임관으로 장교가 됐고 13대인 존 샬리카시빌리는 병으로 복무 중에 학사사관에 지원했다.

역대 사진 이름 군종 임관경로 재임기간
1
(ɔ) Unknown from
오마 브래들리(Omar Bradley) 미 육군 미국육군사관학교 1949-1953
2 아서 래드퍼드(Arthur W. Radford) 미 해군 미국해군사관학교 1953-1957
3
(ɔ) from
네이선 트와이닝(Nathan F. Twining) 미 공군 미국육군사관학교[12] 1957-1960
4
(ɔ) from
라이먼 렘니처(Lyman Lemnitzer) 미 육군 미국육군사관학교 1960-1962
5
(ɔ) Defense Technical Information Center[1] from
맥스웰 테일러(Maxwell D. Taylor) 미 육군 미국육군사관학교 1962-1964
6 얼 휠러(Earle Wheeler) 미 육군 미국육군사관학교 1964-1970
7 토머스 무어(Thomas H. Moorer) 미 해군 미국해군사관학교 1970-1974
8 조지 브라운(George S. Brown) 미 공군 미국육군사관학교[13] 1974-1978
9
(ɔ) Unknown from
데이비드 존스(David C. Jones) 미 공군 학사사관[14] 1978-1982
10 존 베시(John W. Vessey Jr.) 미 육군 현지임관[15] 1982-1985
11 윌리엄 크로(William J. Crowe, Jr.) 미 해군 미국해군사관학교 1985-1989[16]
12 콜린 파월(Colin Powell) 미 육군 학군사관[17] 1989-1993
13 존 샬리카시빌리(John Shalikashvili) 미 육군 학사사관[18] 1993-1997
14
(ɔ) Unknown from
휴 셸턴(Hugh Shelton) 미 육군 학군사관 1997-2001
15
(ɔ) DoD photo by Ron Hall, U.S. Air Force. from
리처드 마이어스(Richard Myers) 미 공군 학군사관 2001-2005
16
(ɔ) DoD photo by Monica King, U.S. Army. (Released) — see XMP info attached to original photo, still available at archive.org from
피터 페이스(Peter Pace) 미 해병대 미국해군사관학교 2005-2007
17 마이크 멀린(Michael Mullen) 미 해군 미국해군사관학교 2007-2011
18
(ɔ) United States Department of Defense from
마틴 뎀프시(Martin Dempsey) 미 육군 미국육군사관학교 2011-

5. 자위대

(ɔ) Japanese Ministry of Defense, vectorized by Los688 from


1. 방위대신의 지휘감독을 받아 통합막료감부의 소장 사무에 관한 육상자위대, 해상자위대항공자위대의 군무[19] 및 통합막료감부 대원의 복무를 감독한다. (자위대법 제9조 제1항)
2. 통합막료감부의 소장 사무에 관한 육상자위대, 해상자위대나 항공자위대의 군무에 관한 최고의 전문 조언자로서 방위대신을 보좌한다. (자위대법 제9조 제2항)
3. 통합막료감부의 소장 사무에 관한 육상자위대, 해상자위대나 항공자위대의 군무에 관해 부대 등에 대한 방위대신의 명령을 집행한다. (자위대법 제9조 제3항)
4. 방위대신의 지휘감독을 받아 통합막료감부의 사무를 관장한다. (방위성설치법 제21조 제3항)


타국군의 합동참모의장에 해당하는 일본의 통합막료장(統合幕僚長)은 일본의 제복 자위관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직위로 2005년까지는 통합막료회의(統合幕僚会議)의 통합부대만 관리했다. 그러나 2006년 통합막료회의가 통합막료감부(統合幕僚監部)로 개편되면서 전·평시에 상관없이 방위대신의 지휘를 받아 각 자위대를 지휘한다.

사실 일본에선 막료란 말은 참모의 대체어로 쓰이며 통합막료장은 지휘관이 아니다. 막료장이란 단어는 참모총장과 동의어로 쓰인다.

현직
이름 가와노 가쓰토시(河野克俊)
출신 방대 21기
생년월일 1954. 11월
임관일 1977년

역대 통합막료장은 총 네 명인데, 육상자위대에 두 명, 해상자위대에 두 명, 항공자위대에 한 명이 있으며 현직인 가와노 가쓰토시는 해상막료장 출신이다.

이들이 전역할 경우에는 황거에서 파티를 열어준다고 한다.

일본의 역대 통합막료장.
통합막료회의 시절에는 통합막료회의의장(統合幕僚会議議長)이라 불렸으며 2006년 3월 27일부로 통합막료감부가 되면서 통합막료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통합막료회의의장
역대 이름 한자 한국 한자음 계급 임기 출신 전직 일본군 경력
1 하야시 게이조 林敬三 임경삼 육장 1954.7.1 - 1964.8.13 도쿄대학 제일막료장 없음
2 스기에 이치조 杉江一三 채강일삼 해장 1964.8.13 - 1966.4.29 해병56기/해대37기 해상막료장 해군 중좌
3 아마노 요시후사 天野良英 천야량영 육장 1966.4.29 - 1967.11.14 육사43기/육대52기 육상막료장 육군 중좌
4 무타 히로쿠니 牟田弘國 모전홍국 공장 1967.11.14 - 1969.6.30 육사43기 항공막료장 육군 중좌
5 이타야 류이치 板谷隆一 판곡융일 해장 1969.6.30 - 1971.6.30 해병60기 해상막료장 해군 중좌
6 기누가사 하야오 衣笠駿雄 의립준웅 육장 1971.6.30 - 1973.1.31 육사48기/육대55기 육상막료장 육군 소좌
7 나카무라 류헤이 中村龍平 중촌용평 육장 1973.1.31 - 1974.6.30 육사49기/육대56기 육상막료장 육군 소좌
8 시라카와 모토하루 白川元春 백천원춘 공장 1974.6.30 - 1976.3.15 육항사51기/육대58기 항공막료장 육군 소좌
9 사메시마 히로이치 鮫島博一 교도전일 해장 1976.3.15 - 1977.10.19 해병66기 해상막료장 해군 소좌
10 구리스 히로오미 栗栖弘臣 율서홍신 육장 1977.10.19 - 1978.7.27 도쿄대학 육상막료장 해군 대위[20]
11 다카시나 다케히코 高品武彦 고품무언 육장 1978.7.27 - 1979.7.31 육사54기 육상막료장 육군 대위
12 다케다 고로 竹田五郞 죽전오랑 공장 1979.7.31 - 1981.2.15 육사55기 항공막료장 육군 대위
13 야다 쓰기오 矢田次夫 시전차부 해장 1981.2.15 - 1983.3.15 해병72기 해상막료장 해군 대위
14 무라이 스미오 村井澄夫 촌정등부 육장 1983.3.15 - 1984.6.30 육사58기 육상막료장 육군 소위
15 와타나베 게이타로 渡部敬太郞 도부경태랑 육장 1984.6.30 - 1986.2.5 육사60기 육상막료장 육군 병장[21]
16 모리 시게히로 森繁弘 삼번홍 공장 1986.2.5 - 1987.12.10 육사60기 항공막료장 사관생도[22]
17 이시이 마사오 石井政雄 석촌정웅 육장 1987.12.10 - 1990.3.15 릿쿄대학 육상막료장 없음
18 데라시마 다이조 寺島泰三 사도태삼 육장 1990.3.15 - 1991.6.30 도호쿠대학 육상막료장 없음
19 사쿠마 마코토 佐久間一 좌구간일 해장 1991.6.30 - 1993.6.30 방대1기 해상막료장 없음
20 니시모토 데쓰야 西元徹也 서원철야 육장 1993.6.30 - 1996.3.24 방대3기 육상막료장 없음
21 스기야마 시게루 杉山蕃 채삼번 공장 1996.3.24 - 1997.9.30 방대4기 항공막료장 없음
22 나쓰카와 가즈야 夏川和也 하천화야 해장 1997.9.30 - 1999.3.30 방대6기 해상막료장 없음
23 후지나와 유지 藤縄祐爾 등승우이 육장 1999.3.30 - 2001.3.27 방대8기 육상막료장 없음
24 다케고치 쇼지 竹河內捷次 죽하내첩차 공장 2001.3.28 - 2003.1.28 방대9기 항공막료장 없음
25 이시카와 도루 石川亨 홍석천 석천형 해장 2003.1.28 - 2004.8.29 방대11기 해상막료장 없음
26 맛사키 하지메 先崎一 선기일 육장 2004.8.29 - 2006.3.26 방대12기 육상막료장 없음
통합막료장
역대 이름 한자 한국 한자음 계급 임기 출신 전직 일본군 경력
1 맛사키 하지메 先崎一 선기일 육장 2006.3.27 - 2006.8.4 방대12기 통합막료회의의장 없음
2 사이토 다카시 齋藤隆 재등융 해장 2006.8.4 - 2009.3.24 방대14기 해상막료장 없음
3 오리키 료이치 折木良一 절목양일 육장 2009.3.24 - 2012.1.31 방대16기 육상막료장 없음
4 이와사키 시게루 岩崎茂 석기무 공장 2012.1.31 - 2014.10.14 방대19기 항공막료장 없음
5 가와노 가쓰토시 河野克俊 하야극순 해장 2014.10.14 - 방대21기 해상막료장 없음

초기에는 일본 육사나 해병 출신들이 차지했다. 자위대의 수뇌부엔 일본군의 상당수가 유입됐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군경력자 차원에서 생각해 본다면 경찰이 거기까지 올라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대좌 이상의 장교에서 통합막료회의의장에 오른 사례는 없다.

다만 초대 통합막료회의의장인 하야시 게이조는 일본군 출신이 아닌 관료 출신이었다. 경찰 예비대를 거쳐 1950년에 육상자위대에 들어갔고 내무부 출신으로 구 육군 출신들과 파벌 싸움을 벌였다. 그나마 이 사람이 통합막료회의의장으로 10년, 그리고 육군막료장의 전신이자 당시 최고 선임 자위관이었던 제1막료장과 그 전신인 경찰 예비대 총감 등 14년이나 해먹은 탓에 육상자위대에 일본 육군 출신들이 덜 들어오게 되었다. 다만 방위성을 엄청난 파벌싸움으로 얼룩지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일본군 출신으로 첫 의장(2대)에 오른 스기에는 일본 해군 중좌 출신이었다. 장성급들은 자위대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맛사키 하지메가 통합막료회의의장에서 통합막료감으로 넘어갔으므로 총 31명이 이 자리릉 역임했다. 육상자위대 출신이 14명, 해상자위대 출신이 9명, 항공자위대 출신이 7명으로 육상자위대가 제일 주축이긴 하지만 한국군과 비교하면 비교적 골고루 한 편. 1990년대부터 방위대학교 출신들이 독점하고 있다.

5.1. 주요 출신 주특기

주특기를 살펴보면 보병, 수상함, 조종 출신들이 가장 많긴 하다. 역대 통합막료회의의장 및 통합막료장 26명 가운데 경찰 관료 출신이 1명(육상자위대), 보병 출신이 5명(육상자위대), 수상함 출신이 4명(해상자위대), 조종 출신이 6명(항공자위대), 포병 출신이 1명(육상자위대), 기갑 출신이 1명(육상자위대), 통신 출신이 1명(육상자위대), 잠수함 출신이 2명(해상자위대), 항공(육상자위대 항공대(1명) 및 해상자위대 항공대(3명)) 출신이 4명, 불명확(육상자위대 3명 및 항공자위대 1명)이 4명이다.

6. 중국


중국인민해방군참모부의 총참모장을 말한다. 이 사람이 육해공을 지휘한다. 국방부가 아닌 중국공산당 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지휘관보다는 참모에 가깝다. 계급은 상장이지만 중국군은 계급이 상-중-소 3단계이므로 러시아군이나 북한군의 상장이 타국의 중장급인데 반해 중국군의 상장은 타국의 대장과 상응한다. 영어로도 Admiral/General(대장)으로 표기하며 사실상 해외 방문 등에서 대장으로 취급한다.

현직
이름 팡펑후이(房峰辉)
출신 인민해방군국방대학 68'[24]
생년월일 1951. 4월
임관일 1968년

인민해방군 육군이 초강세인 육방부스러운 특성상 총참모장은 그와 동시에 육군사령원이다. 한국으로 치면 합참의장과 육참총장을 겸임하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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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보통 지휘자가 아닌 지휘관으로 분류되는 최하위 직책이라 생각하지만, 해군 소형 함정의 정장 등 부사관 지휘관도 존재한다.
  • [2] 당시 유력한 후보자는 육참총장인 조정환이었으나 2013년 초에 국방장관 후보자였던 김병관 전 대장이 인사청문회에서 탈락했는데 인사청문회에서 조장군을 자주 언급한 것 때문에 인사권자들이 부담감 때문에 밀어냈다는 얘기가 있다. 거기다 조정환 장군은 합참 보직을 거의 거치지 않아서 천안함 폭침 당시에 합참의장이었던 이상의 대장처럼 합참 보직을 안 겪은 게 문제시될 수 있단 얘기도 돌았다. 인사권자들이 이런 식으로 문제되는 인원을 돌려막는 이른바 '대장 돌려막기'는 2010년에 황의돈 육참총장과 한민구 합참의장 인사 당시에도 나온 적이 있었다. 관련글
  • [3] 물론, 역대 국방부 장관이 전부 합동참모의장 직을 역임한 것은 아니다. 3군 참모총장이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야전군사령관 출신 장관들도 많이 있다. 심지어 중장, 소장 계급으로 예편하고도 장관을 지낸 사례도 여럿 있다.
  • [4] 고려대 102학군단
  • [5]군번 최선임은 아니다. 콜린 파월은 1958년 임관자였지만 합참의장으로 재직 당시에 1956년 임관자인 노먼 슈워츠코프보다 직책상 선임이었고 2014년 기준 합참의장인 마틴 뎀프시는 1974년 임관자인데 2014년 기준 해병대사령관제임스 에이머스는 1970년 임관자이다. 미국에선 후배 기수가 진급했다고 대장을 벗거나 후배 군번이 최고 서열에 오른다고 전역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기수제가 계급이나 직책을 씹어먹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전역시켜버리지만.
  • [6] 국방참모총장이 최선임 군인이다.
  • [7] 육군항공대는 2차대전기에도 이미 계급체계와 복제만 육군과 동일했다 뿐이지 사실상 공군으로의 분리가 거진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단지 전시상황이라서 편제에서 급격한 변화를 가져가기 어려웠다 뿐. 이후 아놀드 원수는 공군의 분리 몇 년 후까지 생존하며 공군 원수까지 되어 전무후무한 텐스타(...)가 된다.
  • [8] 임기 중 6.25 전쟁이 터지자 원수로 임명된다. 이는 미군 역사상 마지막 원수 임명 사례.
  • [9] 18대인 마틴 뎀프시 대장 이전에는 공군-해병-해군 순으로 합참의장에 내정되었다.
  • [10] 준장만 해도 학군 등이 더 많다.
  • [11] 참고로 이 시기 해군참모총장이 제독들의 반란을 이끌었던 알레이 버크였다. 해사 생도들은 공군 가기가 좀 눈치보였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해사는 육사에는 비할 바가 못되지만 적지 않은 공군 소위들을 임관시켰지만 장교단에서의 목소리가 너무너무 작았다. 역대 육사 출신 공군 장교들은 60명 넘는 인원이 4성을 단 반면 해사 출신은 단 4명만이 4성을 달았다.
  • [12] 입학 전에 사병으로 2년 근무했다. 전시라서 2년 만에 칼졸했다. 공군으로 넘어간 건 1947년의 일이다.
  • [13] 1937년에 입학했는데 1936년에 미주리 주방위군에 입대하여 상병까지 복무했다.
  • [14] 1942년에 조종사 라이선스를 따고 대학을 졸업한 뒤 미 육군 조종장교 과정에 지원하여 임관했다.
  • [15] 1939년에 주방위군에 입대해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가, 1944년에 상사 계급으로 현지임관되어 소위가 되었다.
  • [16] 이 시기부터 합동참모차장직이 신설되었다.
  • [17] 최초의 학군 출신이자 흑인 출신 합참의장이다. 특히나 합참의장이 대장으로 2, 3차 보직인데 비해 콜린 파월은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하자마자 합참의장이 됐다. 2년 선임인 노먼 슈워츠코프가 그의 지휘를 따랐다.
  • [18] 1958년에 병으로 입대했고 1959년에 사관후보생에 지원하여 소위가 되었다. 폴란드에서 넘어온 조지아계로 1958년에 미국 국적을 땄다. 참고로 한국군은 귀화자는 본인은 입대가 안 되고 자녀부터 입대할 수 있다.
  • [19] 일본에선 자위대의 업무란 의미로 대무(隊務)라고 표현.
  • [20] 법무장교였다. 자위대가 초법적 상황에 대처할 수 없다고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 [21] 1945년 8월에 일본 육사 마지막 기수로 입학하는 바람에 임관하지 못 하고 병으로 종전을 맞았다. 소련에 주재한 일본대사관에서 방위주재관(무관)으로 근무했는데 소련 군에게 자위관은 군인이 아니다라고 폭언을 들었다고 한다. 훗날 고위 장성에 오르자 소련을 대상으로 한 북부 방면대를 강화했다. 뒤끝 쩌네 어차피 냉전기 일본의 방위백서상 주적은 소련이긴 했다.
  • [22] 위의 와타나베 케이타로와 육사 동기이다. 다만 동기와 달리 병으로 끌려가진 않은 모양.
  • [23] 일본에선 비행이라고 한다.
  • [24] 뒤에 인민해방군 국방대학을 나온 것이지 처음엔 그냥 직업군인으로 바로 입대하였다. 팡펑후이가 입대한 1968년은 문화대혁명 시기로 중국군은 계급을 철폐하고 직책으로만 군대를 통솔했다. 1980년대에 가서야 계급이 부활하게 되고 팡펑후이는 주로 신장군구에 근무하면서 계급 없이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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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9 17:3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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