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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포드

last modified: 2015-03-25 06:43:29 by Contributors

(ɔ) Photo credit: Jeffrey White Studios, Inc. [1] from


Henry Ford (1863년 7월 30일 ~ 1947년 4월 7일)

"만약 제가 사람들에게 원하는게 뭔지 물었더라면, 그들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토머스 에디슨, 즉 발명왕 에디슨과 교우관계가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기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참고로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가 작고 어렸을 때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느려터진 마차를 타고 오느라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업계에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후 그 앞에서 자신의 가솔린 자동차 개발 계획을 발표했을 때, 에디슨은 그것을 듣고 주변사람이 깜짝 놀랄 정도로 테이블을 쾅 치고는 "자네 듣던대로 현명하군, 생각대로 가솔린 자동차를 만들어보게"[1]라고 격려했다고 하나, 원래부터 전기만 연구하고 살던 에디슨은 곧 잊어버렸다 한다(...) 그런데 포드는 에디슨이 지금껏 아내말고 세상에서 자신의 꿈을 이해해준 두번째 사람이었기에 크게 감명받았는지 에디슨의 마지막 한숨을 손에 넣었다. 이거 장미 향기가 난다.

이후에도 포드는 아내의 도움으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았고 끝내 포드 회사를 세웠다.

중간에 회사를 선전하기 위해서 이싱 경기 등에 참여해 죽을 뻔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포드사를 미국 최대의 회사로 만들어준 자동차 포드 T형은 아이러니하게도 에디슨이 발명한 에디슨 전지를 채용했다.(...)

아무튼 그가 제작한 포드 T형은 값싸고 안전한 좋은 차였기에 여러 계층에서 사랑받게 되었다. 포드 T형의 성공으로 미국 자동차 업계의 시초점이 되었지만 그 후로도 너무 포드 T형에 집착한 나머지 후발 업체들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그 유명한 검은색이기만 하다면 어떠한 색도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라든가.[2] 놀랍게도 T형은 당시엔 냉장고보다도 싸게 살수 있었다. 물론 당시 냉장고가 그만큼 비쌌다는 이야기다.

1913년에 컨베이어 벨트 생산 방식을 만들어 대량 생산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유명하다. 사실 이것이 헨리 포드의 가장 큰 업적이자 산업 혁명의 정점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산업 혁명으로 얻어진 인류의 급격한 기술적 성과를 대중에게 널리 보급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조차 공장에서 찍어내는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는 신급으로 추앙받는다.(...)

컨베이어 벨트의 도입이 노동자들이 불만을 가져오자 그는 대신 임금을 대폭 상승시켜 불만을 무마시키고자 했다. 그래도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자 격렬하게 반대했다. 일한만큼 돈을 더 주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이해할 수 없다는 가치관이었다[3]. 이는 노동자들의 불만이 임금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닌 컨베이어 벨트의 도입에 따른 인간의 기계화, 부속화에 그 근원을 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한 데서 생겨난 갈등이었다.
이 과정에서 마피아가 개입해 토미건으로 농성 중인 노동자 집단을 향해 실탄을 사격하기도 했다. 포드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글쎄올시다...
단 알아둘것은 처음에 포드가 5달러 시급을 주었을때는 포드 자동차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타 업체들이 숙련공을 빼앗긴다고 엄청 걱정했고 포드 공장정문에는 여기서 일하게 해달라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였다고 한다.그때는 일자리 달라는 사람들이 문을 넘어서 공장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경비를 많이 고용했다고.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숙련공에게 그 정도의 임금도 주지 않을 정도로 미국의 노동 시장이 막장이었다는 이야기. 얼마나 임금이 적었으면 숙련공들이 컨베이어 벨트의 부품이 되기 위해 담을 넘었을까.

그리고 그는 상당한 인종차별주의자 였다. 사실 인종 차별주의자 수준이 아니라 나치즘에까지 호감을 가졌고 히틀러에게 접근하기도 했다.[4] 나치 독일에 공장을 세우기도 했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 정부에게서 파괴된 공장에 대한 보상금도 받아냈다(...) 물론 시대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 포드 회사에서 운영하는 포드재단은 그것을 인식한듯 반-인종차별 캠페인에 상당한 지원을 해왔다.

정부 관계의 여자와 관계를 끝낼 때 참 너저분한 방식을 선호했는데, 한 정부가 지겨워지면 자신의 측근 아무나한테 넘겨 반강제로 결혼시켰다. ( 이건 뭐 구멍동서도 아니고 ) 그나마 포드의 제안을 따라 결혼하는 게 정부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포드의 측근이면 전부 회사 고위직들이었으므로 호화스런 생활 유지가 가능했기 때문이다.[5]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기에는 나름 평화주의자로 반전운동을 했는데 그러다가 미국의 개입만 저지할 뻔 했다. 2차 세계대전 기에도...

더불어 살아생전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자동차를 만들던 프레스턴 터커의 야심작 터커 톨페도를 견제하고 크라이슬러, GM과 손잡아 그를 파멸시키는데에도 기여했다....

미국 디트로이트 근처 디어본(Dearborn) 출신으로 해당 도시에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전시물은 당연하게도 자동차가 많지만, 헨리 포드가 수집한 물건들을 가져다 놓았는데, 농기구 및 스팀 엔진은 물론, 소화기(서부 영화에 나오는 무기들), 가구류 부터 심지어는 기관차, DC-3 여객기 등 엄청난 컬렉션을 자랑한다. 심지어는 집도 존재. 여러 방면에서 덕후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기했던 대로 인종차별주의자에 나치즘에 호감까지 가졌다는 점 때문인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는 아예 히틀러와 같은 성당기사단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어쌔신 크리드 2의 퍼즐을 풀다 보면 그가 동료 기사단원 토머스 에디슨에게 보내는 편지를 볼 수 있는데, 쪼잔하게도 에디슨에게 받은 에덴의 조각으로 노동자들을 세뇌시켜 일당이 늘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는 실제로 일당을 삭감하는 짓을 한 걸 자랑스럽게 적어 놓았다(...). 이후 그 에덴의 조각은 포드가 유럽에 있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보냈고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 발발크리. 이 새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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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 당시에는 증기자동차였기 때문에 차가 가다가 멈추면 물 길어와서 넣고, 물이 수증기가 될때까지 10분을 기다리고, 다시 가고를 반복했다.
  • [2] 일설에 의하면 다른 색도 얼마든지 칠할 수 있었는데, 검은색이 가장 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포드는 회사에서건 밖에서건 사람들에게 "검은색은 고객들이 원하는 색"이라고 주장주입했다고. 에덴의 조각 사용
  • [3] 당시 철강 공장 노동자들이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 1달러를 받았는데('시급'이 아니라 '일당'이다!), 포드는 노동자들에게 하루에 8시간 일을 시키고 5달러를 주었다. 단순계산만 해봐도 기존 시급의 약 7.5배를 준 셈이니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임금인상인 셈시급 5000원에서 35000원으로 올려줄테니 대신 인간기계가 되라. 다만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냥 일반적인 노동자들은 평균 9시간 일하고 2달러 34센트를 받았다고 한다. 이 자료가 정확하다면 당시 철강 노동자들은 더욱더 열악한 환경에 있었던듯.
  • [4] 히틀러의 생일선물로 수표를 보내기도 했고 유태인을 매우 싫어하여 동갑내기 재벌인 신문왕 랜돌프 허스트와 이 의견으로 친하게 지냈다.
  • [5] 당시 서양 상류층에서는 비교적 흔한 방식이었다. 정부는 호화스런 생활을 유지할 수 있으니 좋고 수하는 미인과 결혼하는 데다 승진이라든가 저택같은 보너스가 따라오니 양쪽 다 윈윈인 셈이다. 나폴레옹도 바라스의 정부였던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그렇게 결혼했다.그래놓고서는 자서전에는 인생최고의 결정은 본부인과 결혼한것이 었다고 자랑스럽게 써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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