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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last modified: 2015-03-11 20:29:03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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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현대건설 주식회사
영문명칭 Hyundai Engineering & Construction Co.,Ltd.
설립일 1950년 1월 10일
업종명 도로 건설업
상장유무 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아파트 브랜드 힐스테이트(HILLSTATE)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시장 (1984년 ~ 현재)
종목코드 000720
편입지수 코스피지수
KRX100
KOSPI200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인식 및 평가
4. 아파트 브랜드
5. 기타

1. 개요

대한민국 현대자동차그룹 소속 대기업. 본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75(舊 계동 140-2번지) 현대건설빌딩에 위치해 있다.

왕회장 시절 현대그룹의 간판기업으로, 사실상 모든 범현대그룹의 시작이라 할수있다. 오죽하면 현재 재계순위 7위인 현대중공업그룹도 현대건설 조선사업부가 그 출발이었으니.. 현대家의 엑스칼리버

2. 역사

1947년 5월에 이 회사의 전신인 현대토건이 세워지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주식회사가 아니었고, 1950년 현대자동차공업[1]과 합병해서 주식회사로 전환, 현재의 현대건설이 되었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의 숙소와 부대 등을 지으며 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1958년 한강 인도교 공사를 시작으로 경인고속도로, 소양강댐, 고리 원자력 발전소 등을 지으면서 급성장했다.

1965년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따내어서 대한민국 건설업계 최초로 해외건설을 수주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회사의 역작은 1970년에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로, 태국 고속도로 시공 경험 덕분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시공사들 중에 가장 많은 공구를 따내게 된다.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따냈는데, 참고로 사우디 산업항 공사로 벌어들인 돈은 9억 3000만 미국달러로, 당시 대한민국 정부예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고 전해진다.

한편 1970년대 후반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아파트를 지어 분양했는데 이 과정에서 흑역사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이 발생하였다.

또,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소떼방북을 주도한 회사. 그러나, 왕회장 사후 현대그룹이 박살나면서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해 대규모의 부채가 생기고 적자가 터져서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안습한 일도 있다. 2001년의 일로, 현대그룹의 간판기업이 51년만에 현대그룹을 떠나 채권단, 그 중에서도 산업은행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2조 9000억의 당기순손실과 4조 4000억의 당기부채를 안은 상황. 그 이후로 법정관리 체제 하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성실하게 체질개선을 이행하여 5년 2개월 만인 2006년에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했다.

2010년산업은행이 매물로 내놓고선 또 경영권 분쟁이 터졌다. 정몽구 회장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입찰에 참여했는데, 처음에는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한 현대그룹을 우선협상자로 선정하고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을 예비협상자로 선정한 뒤에 현대그룹에 매각하려 했으나, 현대그룹 쪽의 이상한 자금흐름이 발견되어 무산되었고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에 매각했다. 당시 현대그룹은 프랑스의 모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인수자금을 마련하려 했는데, 채권단이 이 대출에 대한 대출계약서를 요구했으나 현대그룹이 대출확약서니 뭐니 하며 이상한 서류를 들이대다가 결국 대출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하여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 때 현대그룹과 현대차 그룹이 신문 1면 광고를 도배하면서 벌인 키배디스는 여러모로 유명했다. 한겨레경향신문에서도 서로 비난하는 광고가 나갔을 정도. 병림픽이라는 말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2011년 3월에 공식적으로 현대차 그룹에 편입되었고, 현대차 그룹은 정주영시절 현대그룹의 정통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차 그룹은 이를 기념하여 그룹 명칭을 공식적으로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바꾸었다.기아차 안습

3. 인식 및 평가

2000년대만 해도 과거에 잘나가던 시절과 다르게 법정관리와 구조조정으로 이빨빠진 호랑이 같은 그저그런 건설회사라는 인식이 있었으나, 지금은 과거의 명성을 되찾으며 정상에 서 있을 정도로 사정이 많이 다르다. 워크아웃 조기 졸업 등으로 기업이 상당이 건실해 졌으며, 건설 회사들의 성적표와 같은 건설회사 도급 순위에서 '''2009년에 대우건설을 꺾고 도급순위 1위를 탈환하여 2013년까지 유지한 이력이 있다. [2] 거기에 탄탄한 자본력을 갖춘 국내 최대 재벌로 손꼽히는 현대자동차그룹에 편입하였고, 그룹 내에서도 정통성을 상징하는 주력기업으로 대접받게 될 것은 기정 사실[3]이기에 자금 유동성이 생명줄인 건설회사로서 미래가 더욱 밝아 보인다.

4. 아파트 브랜드

힐스테이트를 갖고 있다. 이 브랜드는 "당신의 H는 무엇입니까?"로 유명하다.(...) 대산업개발의 아이파크가 아니니 주의. 그 이전에는 '현대홈타운'이라는 아파트를 썼다.

현대산업개발의 '현대아파트'와 구분하기 위해서 이곳에서 짓는 아파트는 특유의 現代 한자표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 왕자의 난 이전 현대그룹이 쪼개지기 전에 현대그룹 내의 주택건설은 이곳이 아닌 현대산업개발 전담이었으며, 왕자의 난 이후 현대그룹이 쪼개지고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남남이 되자 이곳에서도 현대홈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주택건설을 시작하게 된 것.

5. 기타

사족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직금을 지급한 곳이 현대건설이다. 2000년 정주영 현대그룹회장의 퇴직금이 그것이다. 현대그룹 24개 계열사에서 총 217억이 지급되었는데, 그 중 현대건설이 지급한 액수가 157억이다. ㅎㄷㄷ. 정주영 전명예회장이 창립연도인 47년부터 대표이사 재직한것을 근거로, 퇴임 직전 3개월 평균 월급여에 연간 상여금을 12로 나눈 금액을 더한뒤 총 근속 연수를 곱하는 방식으로 계산하고, 대표이사의 경우 근속연수에 4배를 곱해준다. 따라서 정주영 회장이 지난 47년 5월 창립때부터 53년간 대표이사로 근무했기때문에 평균월급(상여금포함)7천4백만원에 가산근속연수 2백12년(53x4)을 곱한 1백57억원의 퇴직금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원래 재벌총수들은 퇴직금의 지급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저런 어마어마한 규모의 퇴직금의 지급은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자금사정에 부담이 되기때문에.. 더군다나 이 퇴직금은 당시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여억원을 지원받은 현대건설의 입장에선 더더욱 부담되는 일 이었고, 현대건설에선 내심 퇴직금 수령을 SKIP해 주시길 바랬으나 그런거 없엉. 그리고 이 퇴직금은 이후 현대그룹 계열분리 당시 현대자동차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고있던 MH를 지원하기위해 기타 계열사 주식을 처분한 자금과 함께 현대자동차 주식의 매입에 사용되었으나, 현대건설이 부도위기에 처하자 모두 처분한 후 현대건설의 회사채 매입에 쓰여졌고, 회사채와 기타지분을 매각한 자금이 출자전환과 유상증자에 투입되어 현대건설 주식으로 바뀌어 졌다. 이 주식은 정주영회장의 사망당시 현대건설에 증여되었고 감자되었다. 결국 돌고돌아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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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재의 현대자동차가 아닌 일제시대부터 운영하다가 일제의 기업정비령으로 일진공작회에 강제합병된 자동차정비업체 아도서비스를 해방후 반환받아 이름을 바꾼것이다. 현대 라는 명칭은 여기서 처음 쓰였다.
  • [2] 2014년 1위는 삼성물산
  • [3] 그동안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은 현대건설의 부재로 정통성 확보에 있어서 현대그룹에 비해 다소 불리한 위치였다. 하지만 현대건설 인수를 통해 정통성을 확보하여, 정몽구 회장도 현대건설 본사가 위치한 계동사옥을 양재동 사옥 못지않게 자주 방문할 정도로 왕회장의 대업을 잇는 정통성과 관련하여 애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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