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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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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 걸작선집/신라의 달밤> 앨범 커버


Contents

1. 개요
2. 생애
3. 히트곡


1. 개요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가수라는 별명이 있는, 해방과 더불어 가요계에 선풍을 일으킨[1] 가수. 본명은 현동주이다. 당시의 대중가수들 중, 가장 학력이 높은데 도쿄 음악학교 (현 쿄 예술대학) 성악과 출신이다. 특유의 떠는 창법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 들으면 좀 촌스럽고 웃겨 보일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인 창법이었다. 백년설도 떠는 창법을 쓰지만, 백년설은 진동 폭(?)이 좁고 진동 횟수가 많은 편이라면, 현인은 진동 폭이 넓고 진동횟수가 적다.뭐야 이 설명은

사실 이 문서는 이 곳에 있던 문서를 가져온 것이다. 저 위키의 설립자가 베다위키러이기도 해서이다. 저 위키와 베다 현인항목의 최초작성자는 안녕하세요, 스타킹에 나온 현인을 존경하는 중딩이라 카더라 http://m.blog.naver.com/goodday114/20195039356

2. 생애

1919년부산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2] 1938년 경성 제2고보를 졸업하고, 1942년에는 도쿄 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했다. 일제의 강제징용이 시작되자 중국 상하이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악단 '신태양'을 조직해서 활동한다. 해방 이후, 귀국하여 악단을 다시 조직하여 극장 무대에서 연주하며 다닌다. 그후 당시의 유명한 작곡가인 시춘이 찾아와서 자신의 곡을 불러달라고 한다.

현인은 "성악도가 유행가 따위를 부를 수는 없다"며 거절했지만, 박시춘이 거듭 권유하자 며칠 생각해본다고 하고, 집에서 며칠 동안 고민 한 뒤, 결국 대중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박시춘은 현인에게 곡을 주었고, 이 곡이 바로 라의 달밤이다. 이 곡은 발표 당시에 정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현인을 가요계의 정상에 등극하게 했다. 이후 현인은 <비 나리는 고모령>, <고향만리> 등을 연달아 히트시킨다. 한국전쟁 당시의 피난민들의 슬픈 정서를 잘 보여주는 <굳세어라 금순아>는 많은 사람들이 즐겨들으며 울기도 했다. 시대를 대변하는 듯한 가수라고 말할 수 있겠다. 1974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로 이민가서 '가스라이트'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했지만, 한국에서의 무대가 그리워서 1981년에 귀국한다. 1991년에는 <노래하는 나그네>, <길> 등의 신곡을 발표한다. 1998년까지는 KBS 가요무대와 악극 등에 출연하여 왕성한 활동을 했었지만, 지병인 당뇨병의 악화로 2002년 4월 13일 돌아가셨다. 향년 84세.

3. 히트곡

*<신라의 달밤>
*<비나리는 고모령>
*<고향만리>
*<굳세어라 금순아>
*<꿈 속의 사랑>
*<서울야곡>
*<체리핑크맘보>
*<럭키 서울>
*<전우야 잘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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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60년에 현인씨가 TV에 나와 <신라의 달밤>을 부를 때, 앞부분에서 아나운서(?)가 소개해주던 멘트
  • [2] 아버지는 영국 스탠다드 석유회사를 다녔고, 어머니는 신여성이었다. 덕분에 현인씨는 대학교까지 졸업할 수 있었고, 풍족하게 살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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