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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 부대

last modified: 2015-03-29 09:25:40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소련군
2.1. 실제 통계
2.2. 구성원
2.3. 종류
2.3.1. 일반 형벌부대
2.3.2. 공군 형벌부대
2.3.3. 지뢰제거부대
2.3.4. 예외
2.4. 1943년 이후
2.5. 독일군의 역이용 가능성
3. 독일군
4. 기타
5. 매체의 형벌 부대

1. 개요

죄수나 범죄를 저지른 병사로 구성된 부대를 말한다. 이런 분야에서는 소련의 "슈트라프바트"가 유명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아득한 옛날부터 구성했다.

2. 소련군

штрафбат (штрафной батальон)
슈트라프바트(슈트라포노이 바탈리온),
2차 세계대전독소전쟁에서 소련이 편성한 형벌부대.

형벌 부대의 개념은 1877~78년 러시아-터키 전쟁 때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당시의 형벌부대는 범죄를 저지른 군인들의 속죄 수단이 아니라 이미 범죄를 지은 범죄자들에게 형을 전시 보병으로써 대체복무 시키는 것이었고, 형벌부대 배치 순간부터 범죄자가 아니라 정규 군인으로서 합당한 대우를 받았다. 물론 그래봤자 러시아군 보병의 삶은 다른 나라의 교도소 복역에 거의 필적하는 고통의 시간이었고, 오히려 유형지가 더 편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러시아 제국의 변경 유형지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노동을 제외하면 일체의 터치가 없었고, 주류를 포함한 각종 보급품도 필요한 만큼은 지급되었기 때문에 유형과 병역이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군인과 죄수는 러시아에서도 취급이 달랐다.

그래서 흔히 '좀 빡센 근무로 징벌을 대체하는' 정도의 형벌부대가 아니라 대놓고 죽으라고 내모는 자살집단으로써의 형벌부대는 실질적으로 1942년 7월 스탈린의 명령 227호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비겁자나 탈주자를 엄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골자가 되는 이 악명높은 명령서에는 형벌 부대의 편성에 관한 항목이 있었다. 이 형벌 부대는 3개의 형벌 중대와 1개의 독전대(감시부대)를 묶어 하나의 형벌 대대를 구성하도록 지시하고 있었으며, 최초의 형벌부대는 42년 8월 22일 스탈린그라드에서 편성되었다.

그래서 소련의 형벌부대는 그 전의 러시아에 있던 부대와는 달리 말 그대로 인민의 적에게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징벌, 한마디로 말해서 총살에 쓸 탄약도 아끼고, 잘하면 적도 죽일 수 있다!를 가하기 위한 특수 수단이며, 스탈린에게는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을 동시에 없애는 제도라는 점에서 과거의 형벌부대와는 현격히 다른 존재다.

경직된 공산주의 체제답게 누명이나 말도 안되는 사소한 일로도 형벌부대 행이 될 수도 있었다. 소련군 장성이자 러시아 대통령 후보였던 알렉산더 레베드(1950~2002)의 아버지는 두 번 5분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형벌부대로 강등되었다고 할 정도. 참고로 레베드는 러시아의 정치가로 소련군 공수부대 중장출신이며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영웅이었다. 옐친치하에서 국방장관을 하다가 충돌하여 해임되었다. 이후 크라노야르스크 크라이 주지사를 하다가 2002년 석연치 않은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는데, 푸틴의 음모라는 설도 있다.

2.1. 실제 통계

하지만 형벌부대는 무조건적인 죽음을 상징하며, 미치광이 독재 정권인 소련의 아군 팀킬의 아이콘이라는 식의 일반적 이미지는 서방의 선전이나 소련에 반대하는 반체제 인사에 의해 다소 부풀려진 부분도 없잖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전까지 형벌부대 복무를 경험한 사람은 소련군 병력의 1.4%에 달한다고 하며, 약 50만 정도의 숫자 중 전사자는 약 17만 정도라고 한다. 문제는 가장 일반적인 통계에 의하면 소련군이 전쟁에 동원한 전체 병력은 약 34,000,000명이고, 그 중 전사자만 해도 7,800,000여 명이라는 것. 형벌부대가 희망이 없는 자살임무에 동원된다는 인상과 달리 사망률은 일반적 근무의 약 1.5배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니 사실 일반적 임무에서 그 정도 전사자가 나온다는 게 진짜로 지독한 거지만 전사율이 10%만 넘어가도 굉장히 심한 타격으로 보고 30%를 넘어가면 말이 필요없다. 과장된 자료들 및 소련을 폄하하기 위한 자료를 근거러 쓰여진 이 항목의 내용은 상당한 필터링을 가해 가며 읽는 것이 추천된다. 물론 정말 지독한 형벌부대의 사용례나 자살돌격에 가까운 임무들은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대중문화나 소련에 적대적인 국가들에서 다소 부풀린 부분이 있다는 얘기.

사실 이런 디스는 냉전시대의 유물로써 소련군을 깎아내리기 위한 여러 근거없는 설은 한국 밀덕계에 널리 퍼져있다. 정치장교의 삽질만 해도 적백내전시면 모를까 2차대전때는 거의 없었는데, 마치 소련군의 대량 인명피해가 정치장교의 삽질때문에 난 것처럼 알려져있기도 하다.

2.2. 구성원

이름만 본다면 죄수 중에서도 매우 중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만 구성되었다는 인상을 받기 쉬운데, 실제 형벌부대의 병사들은 군인과 민간인들이 섞여 있었고 심지어 단지 기도드렸다는 이유로 형벌부대에 끌려간 케이스도 있었다. 또 단순히 직장에 지각했던 자들도 있었다. 당시 소련은 특별한 이유 없이 직장에 지각하면 20분당 1년의 징역을 선고받았다. 게다가 지역 NKVD에 떨어진 체포 할당(!)을 채우지 못할 경우 정당한 사유가 있는데도 체포되거나, 드물게 통근 버스를 통째로 납치해서 사보타지 혐의로 형량을 부과한 후, 통근 버스 납치 때문에 발생한 지각 시간을 기준으로 추가 형량을 부과하기도 했다. 뭐야 이거? 그 외에 수용소에 갇혀있던 인민의 적들, 그리고 소련 형법 58조 B항이라는 조국에 대한 배신을 위반하여 총살을 선고받았다가 형벌부대 복무로 형이 대체된 병사들이었다. 이들은 포로로 잡혔다 구출되거나 탈출한 병사들로 포위 상태에서 부대 편제를 해체하고 개별적으로 탈출한 경우는 원칙적으로 이 형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받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최후까지 저항하는 소련군도 많았지만, 전쟁 말기까지 나치독일군에 투항하는 소련군이 발생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게다가 이탈리아군의 포로가 된 어떤 소련군은 풀렸다가 형벌부대로 끌려가자 결국 탈영해서 다시 이탈리아인으로 귀화해버린 케이스도 있었다.

즉 '넌 어차피 이러나 저러나 죽을 운명이니 기왕이면 그 몸뚱아리를 나라를 위해 쓰고 죽어라' 이런 사람들이였다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민간인과 군인을 가리지 않고 사소한 죄를 저지르거나, 설령 죄가 없더라도 누구나 강제로 끌려갈 수 있는 부대였다. 물론 끌려가면 거기서 인생은 종치는 거다. 삼청교육대가 그랬듯이, NKVD앞에는 할당량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죄없는 사람들을 끌어가는 일도 흔했기 때문. 인명을 경시하는 경직된 체제와 독재자의 잔혹함이 빚어낸 참극이라 할 수 있다.

2.3. 종류

2.3.1. 일반 형벌부대

일반 형벌부대는 형벌부대의 대다수를 구성하며, 전투부대로 사용되었지만, 그 운용법은 나치군의 집행유예부대와 매우 가까웠다.

주요 임무가 공격시에는 적의 강력한 방어선을 때리는 선봉, 후퇴시에는 최후미를 맡아서 그것만으로도 희생이 다대한 업무가 대다수이며, 적의 진형이나 주둔중인 점령지의 방어력을 테스트할때도 동원되었고, 이 모든 과정에서 형벌부대의 피해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게다가 장비도 부실해서 어떤 경우에는 총도 안주고 무작정 최전선에 돌격시켜서 말 그대로 총알받이를 만들었다.[1]
만약 형벌 부대가 그 지역의 독일군을 격퇴하고 승리해서 정규군이 후속으로 투입되며, 형벌 부대는 후방으로 빠져서 휴식도 제대로 안주고 다시 새로운 전장으로 재투입된다. 물론 전장의 공로는 후속 투입되는 정규군의 것이 되었으며, 형벌부대의 전공은 기록되기는 하지만 상당히 축소되서 기록된다. 생존자들의 경우에는 형량이 감소되거나 특별 배급이 주어지는 식의 현지에서의 사소한 보상은 있었다. 다만 보통은 생존율 자체가 낮았으며, 휴식도 없이 반복적으로 격전에 투입되니 살아남을 확률이 바닥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당연하게도 이런 공격을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으므로 이들은 평상시 후방에서 대기하다, 작전이 시작되면 보드카를 잔뜩 먹이거나 한 뒤 감시하에 전방으로 이동하고, 후방에 중무장한 독전대를 진지까지 가설해서 배치한 뒤에 무기를 지급한 후 강제로 투입하며, 후퇴하려는 낌새가 있거나, 심지어는 적과 혼전중이거나, 그럴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조준사격을 해서 즉시 사살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실상 소모품 취급이었다. 잘 연상이 안된다면 에너미 엣 더 게이트 초반부를 생각하면 된다.


2.3.2. 공군 형벌부대

공군 형벌부대는 적기와의 근접 교전 가능성이 높은 지상공격기 IL-2가 제일 많았지만, 원칙적으로 후방기총사수가 탑승하는 모든 폭격기에 기관총 사수로 배치되어 복무했다. 당연하게도 공군 형벌부대원들은 낙하산도 받지 못했고 관련 교육은 당연히 없었다. 따라서 비행기가 격추되면 조종사는 탈출하지만, 형벌부대원은 불타는 비행기와 운명을 함께했다. 게다가, 적 전투기가 폭격기를 공격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집중사격을 해서 제거하는 사람이 후방기총사수라는 것을 감안하면(살려두면 이쪽으로 총질을 하니 당연히 먼저 제거할밖에) 출격해서 살아돌아오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자 다른 부대와는 달리 사실상 감시자라고 할 수 있는 조종사를 빼고는 혼자서 가망없는 전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전투의지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하면 물귀신 정신을 발휘해서 나도 죽고 조종사도 같이 죽자! 식으로 전투를 일부러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효율성이 극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기총사수가 죽거나 전투를 포기한 상태에서는 기총이 축 처지기 때문에 멀리서도 보고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당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공모했고, 그 결과 기총에 용수철 장치가 달려 기총사수가 죽어도 똑바로 후방을 조준하도록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이 수정안을 제출한 자는 훈장을 받았다. 그런데 이럴거면 애초에 기총사수를 안넣어도 되잖아

이 때문에 사기진작의 목적으로 공군형벌부대의 형기는 사실상 형기가 정해지지 않은 다른 형벌부대와는 달리 징역 10년(평균)이었으며, 비행 한번에 1년씩 감형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부대원들이 빠른 감형을 노리고 앞다퉈 출격을 요청하는 경우도 생겼고, 출격했을 때도 좀더 적극적으로 적기의 공격을 방어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형벌부대 병사는 10회의 비행을 채우기 전에 희생되었으며 겨우겨우 9회까지 채우더라도 군의관이 "동무의 육체, 정신상태로는 비행 임무가 불가능함"이라고 판정을 내려버리면 지휘관이 육군의 형벌부대로 강제 전출한다. 이렇게 되면 1년의 형기가 더 남은 상태가 되고 이들의 운명은 지뢰제거부대행이다.

2.3.3. 지뢰제거부대

지뢰제거부대는 사실상 맨몸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지뢰밭에 들어가 지뢰들을 제거하고 죽는 부대였다고 한다.

지뢰를 터뜨리고 죽기보다는 재주껏 지뢰를 해체하는 것이 임무였으나, 이들에게는 충분한 지뢰탐지장비나 제거장비를 지급되지 못했다. 더군다나, 독일군의 끈질긴 방해 때문에, 여기서 살아남을 확률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물론, 상황이 나아지면서, 이들에게 각종 지뢰제거장비 및 지뢰제거전차가 지급되면서 생환율은 많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독일군의 공격으로 인해서 생환율이 많이 낮았다고 한다. 참고로 이전 문서에는 이 부대가 형벌부대의 종착지라고 서술되어있지만, 실제 형벌부대의 종착지는 T-34 조종수였다고 한다.[3]

2.3.4. 예외

물론 형벌부대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콘스탄틴 로코소프스키처럼 대숙청코드카에사형을 선고받고 시베리아 강제노동소에서 복역하던 경우도, 형을 일시 정지시킨 후 형벌부대에 넣지 않고, 소장의 계급과 9기계화군단장의 직책을 수여해서 전쟁에 참여시킨 경우가 있다. 이 때 로코소프스키는 여기서 공을 많이 세워서 나중에 게오르기 주코프의 배려와 스탈린의 승인으로 모스크바에서 열린 승전 기념식에서 자신의 옆자리에서 말을 타고 사열식을 지휘했다. 하지만 이건 예외중의 예외고, 일반 형벌 부대원이 형기를 무사히 마칠 확률은 매우 적었다. 그나마도 저 로코소프스키는 최종적으로 원수 계급까지 진급한 당시 소련의 최고 전쟁영웅중 한명이었지만 스탈린이 죽을때까지는 공식적으로 사형수의 신분이었다고 한다. 그가 복권된 것은 스탈린이 죽은 후였다(...). 대숙청전에 이미 장성이었던 그가 숙청되어 사형언도까지 받은 는 폴란드계로서 당시 소련에 적대적이었던 폴란드 공화국의 간첩이라는 의심을 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공산혁명이 발발하자 적군(공산측)에 가담해 많은 전공을 세우며 장성까지 진급했음에도(...).

물론 서류상으로는 공군 형벌부대는 확실히 형기가 줄어들고, 육군 형벌부대도 복무기간이 존재한다고 했으며 소련 정부는 그들에게 사면을 약속했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껏 지키려 해도 사면 증명서를 보내놓고 보니 당사자가 이미 죽은 지 오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선 진정한 의미의 확인사살

다만 수많은 사선을 넘고 생존자 전원이 일제히 사면 증명서를 받아 정규부대로 개편된 사례도 없지 않다. 심지어 행정착오로 인해 형벌부대 갈 필요도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형벌부대를 만들어놓고 그 부대가 있었다는 걸 NKVD 당국조차 잊어버린 경우조차 있다고 하며, 이 경우는 대부분 행정착오를 그냥 덮어버리기 위해 전원을 명예 제대시켰다. 인생역전 다만 이것도 좋은건 아닌게 어찌되었건 이들은 법적으로 범죄자로 기록이 남았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졸지에 '용서받은 범죄자'가 되었다는 것...

2.4. 1943년 이후

전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해진 1943년 이후에도 여전히 원래 임무를 수행했다. 대부분의 형벌부대 출신들의 증언에 따르면 여전히 총알받이였다고. 게다가 독일군의 저항도 엄청나서 해체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피를 보았다.

이후 1944년 11월 전장이 독일 본토로 옮겨지고 전황 역시 소련군의 절대 우세로 바뀌자 앞서 언급한 소련의 남자 부족사태로 인해 형벌부대의 존재가치 역시 완전하게 사라져서 결국 해체되었다. 이때까지 형기를 마치지 못한 형벌부대원 및 형벌부대 해체 이후 체포된 처벌 대상자는 모두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서 독일군 포로 및 전쟁이 끝난 뒤 소련에 인계된 생존 소련군 포로들과 함께 전후 복구를 위한 중노동에 투입되었다. 이 소련군 포로들은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돌아온 병사들이나 독일군의 강요로 부역을 해야 했던 사람들인데 대부분 소련에 인계된 뒤 다시 강제수용소로 보내졌고 이들 중 일부는 스탈린 치하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자살을 하기도 했다.

종합하자면, 지옥에서 연옥으로 갔다가 다시 지옥으로 간 막장부대라고 보면 딱이다.

2.5. 독일군의 역이용 가능성

만약 독일군에서 형벌 부대의 존재를 알았다면 형벌 부대를 이용하여 소련군을 공격하게 할수도 있었겠지만, 독일군에서는 이 부대의 존재를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게다가 독일군이 형벌 부대란 것을 제대로 알았어도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데, 그 이유는 독일군에게 항복한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자유러시아부대가 한때 그 규모가 100만명에 육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신뢰하지 못해서 거의 전투병력으로 써먹지 못했고, 형벌 부대가 자신들의 독전대에게 총뿌리를 돌리려면 일단 형벌 부대가 한숨을 돌릴 공간이 필요하므로 독일군이 방어하고 있는 진지의 일각을 쉽게 내주어야 하는데, 이럴 경우 형벌 부대가 아군으로 붙는 효과를 기대하기도 전에 방어선이 붕괴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 독일군

독일군의 형벌부대는 일반적으로 소련군의 "스트라프바트"와 어원이 같은 "슈트라프바탈룐"(Strafbattallon)이라고 하며 동부전선의 "500 집행유예부대"(Bewährungsbataillone 500)과 아프리카 군단의 "999 집행유예부대"(Bewährungstruppe 999)가 유명하다. 999 집행유예부대는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독일군은 군법을 어긴 병사들중 용맹하다고 인정된 자들을 대상으로 형의 집행을 유예해주는 대신 이 부대로 전출시켰다. 소련군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위험한 임무에 우선 투입되었으며, 이 때는 전공을 세우면 죄를 사면해주고 원소속부대로 복귀시켜 주었다고 한다. 일단 이때까지는 독일군이 잘나가던 시절이었으므로 전공을 세우기도 쉽고, 다시 원대복귀하기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중노동형벌보다 좀 더 강력한 처벌정도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독일군의 패색이 짙어지자 탈주병이 속출했으며, 독일군 수뇌부는 야전헌병대(Feldjägerkorps)를 조직하여, 탈주병뿐만 아니라 자기 부대로부터 낙오된 병사들도 모두 사형을 선고하여 형벌부대로 보냈고, 이것이 여의치않으면 즉결처분하였다. 게다가 보내진 형벌부대도 앞서 언급한 두개 부대가 아닌 급조한 부대였고, 이런 곳에 일단 떨어지면 다시 원대복귀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거기다가 독일군은 전세가 기운 말기로 가면 육군(Heer)뿐만 아니라 소속이 다른 여러 잡탕 부대들, 즉 공군 팔슈름야거, 헤르만 괴링 기갑부대(...공군 지휘관인 괴링에게 무슨 기갑부대냐 싶겠지만 진짜로 갖고 있었다...), 무장 친위대, 나중에는 국민돌격대히틀러 유겐트, 심지어는 경찰과 소방관까지(...)해서 모두 소련군에 맞서 참전했으며, 탈주병 용의자들을 원소속부대로 되돌려줄 행정처리는 불가능했으니 그냥 이런 급조형벌부대에서 싸우다 종전때까지 운좋으면 살아남는 것이고, 운 나쁘면 그냥 총알받이 신세였다.

1945년 4월에 다달아서 독일군이 항복 직전에 미쳐 돌아갈때는 형벌부대도 필요없고 히틀러의 명령으로 헌병대나 무장친위대가 후방을 돌아다니면서 낙오병을 체포했다. 사실 이때는 독일 국내에서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에, 소련군이 독일군 부대를 섬멸시킬때 도주한 병력이었는데, 탈주병도 있었겠지만 자기 부대체계가 소멸하자 어쩔수 없이 상급부대를 찾아 헤메던 병사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탈주병으로 몰려서 (히틀러와 OKW가 직접 "자기부대를 찾고 있다는 놈들은 탈주병으로 간주해 모조리 처단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모조리 즉결처분되었다. 이때 사살당한 이들이 꽤 되었고, 이런 명령을 내리거나 실행한 자들은 연합국 전범재판에 기소되지 않았더라도 서독-동독 정부하에서 처벌되었다. 기소된 이들은 명령불복종은 곧 범죄였기 때문에 이런 명령을 어쩔수 없이 실행했다고 자신들을 변호했는데, 이때문에 후에 성립된 독일 연방군(서독군)에서는 군법에 "상부의 부당한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명문화 되었다. 이런 야전헌병대(Feldjager)는 가장 악질적인 나치로 독소전을 독일군 입장에서 다루는 매체에서는 빠지지 않고 일종의 클리셰처럼 자주 나온다. 전투라곤 겪어본 적도 없는 후방 찌끄레기에 불과한 골수 나치 헌병들이 용감하게 전투임무를 수행하는 (높은 확률로 나치의 전쟁범죄와 무관한 국방군 소속인) 주인공들을 탈주니 패배주의니 하는 혐의로 죽이려 하는 것이 보통. 예로 들면 '이 씨x 쓰레쉬들아-!!'라고 외치면서 MG34를 난사해대는 유명한 짤방은 사실 탈영한 동료 전차병들이 SS 헌병에 붙잡혀 즉결처형당하려는 판에 나타난 전차장이 헌병들을 기습해 쓸어버리는 장면이다.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만화 "특전대 zbv"는 독일군 형벌부대를 소재로 하고 있다. 단, 여기서 나오는 부대의 이름은 Kampfgrouppe zbV(zur besonderen Verwendung, 직역하면 특별임무를 위한 부대)인데, 실제로는 형벌부대를 묘사한 것이다.

영화 스탈린그라드에도 형벌 부대가 등장한다. 주인공 소대원들이 소련군의 포위망에서 벗어나는 도중 한 병사가 부상을 당한다. 대원들은 그를 병원에 데려오는데, 그 중 흥분한 병사 한 명이 의무병에게 총을 겨눠 진료를 지시하도록 협박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상당한 대원은 죽고, 소대장 폰 비츨란트 소위를 포함한 나머지 소대원들은 현장에서 체포되어 형벌 부대로 끌려간다. 안습. 이후 소대원들은 지뢰 지대 개척 작업, 즉 작대기와 지뢰 탐지기를 활용한 작업인데, 이런 가장 가장 위험한 지뢰 개척 작업에 투입되고, 빵 몇 조각을 얻으려고 형벌 부대의 경비병[4]에게 애걸하는 전임 소대장의 안습한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이후 독일군의 상황이 급박해지자 전선 사수를 위해 형벌 부대가 동원된다. 전선에 투입된 소대원들은 전선 사수 이후 명예가 회복되었으나, 스탈린그라드의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탈출을 결심한다.

독일 드라마 포화 속의 우정[5]에서도 형벌 부대가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전투 중 탈주하여 숨어있다가 잡혀 사형을 선고받은 주인공 빌헬름이 500 집행유예부대에 소속되어, 늪지에서 시체를 수습한다거나 전투 중에 아무런 보호 없이 지뢰를 매설하러 파견되는 등, 일부러 죽이기 위해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하며 구르는 형벌부대원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형벌부대에서 구르는 빌헬름의 모습은 실제로 탈영했다가 붙잡혀 형벌부대에 넘겨졌던 한 독일 병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이 분은 형벌부대에서 끝내 살아남아 전후 평화운동가로서 활동하며 지금까지 생존 중이다. 독일어 위키

4. 기타

독일군이나 소련군은 전체주의 체제 하에서, 그리고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하려는 목적으로 상당히 비인간적으로 굴려져서 유명해졌을 뿐, 형벌부대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의외로 역사가 오래된 군대의 일부다. 인권을 존중한다는 프랑스나 미국[6]에서도 비슷한 부대가 있었고, 심지어 고대인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명장으로 유명했던 오기가 오자병법에서 형벌부대를 추천하고 있다. 관직에 있다가 과실로 쫓겨나 다시 공명을 얻고자 하는 자들로 이루어진 부대, 전에 지키던 성을 버리고 달아나 그 불명예를 씻고자 하는 자들로 이루어진 부대가 형벌부대에 해당한다. 오기는 이들을 정예부대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7] 그리고 다른 정예부대로는 담력과 기백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부대, 적극적으로 용맹과 충성심을 보이려는 자들로 한 부대, 발빠르고 잘 달리는 사람으로 구성되는 부대 등이 있다.

또한 춘추전국시대의 오나라와 월나라의 대결에서 월왕 구천은 전쟁터에 노역부로 끌고온 사형수에게 너희들이 자살하면 유족들에게 후한 보상을 해준다고 독려하여 자살 부대를 조직하여 이들로 하여금 오군앞에서 집단 자살 퍼포먼스를 하도록 했다. 그 신기한 광경에 오군이 어안이 벙벙해진 틈을 타서 월군이 기습, 오왕 합려가 전사했다. 이때문에 아들 부차는 이를 갈고, 와신상담의 고사가 생겨나게 된다.

고대 진나라에서도 진시황 사후 호해 통치시절때,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나라가 막장이라 병력이 없자 진압군 사령관 장한이 역산에서 노역을 하던 죄수들을 모아 부대를 편성해서 반군들을 즈려밞는다.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강제노역하던 죄수들에게 이 싸움을 잘 치루면 자유로 만들어준다고 하자 죄수들이 야수로 돌변하여 실전에서 반군들을 아주 조져놓았다.
덧붙여 이 죄수들은 살인, 강간, 강도 같은 중범죄자들이 아니라 단순 절도범 같은 경범죄자에 가까운 사람들이나, 세금을 못내거나 노역에 늦어서 끌려온 억울한 사람들이 다수였다. 근데 당시 진나라 법에서 지각은 사형(...)이라 어찌 보면 여기 끌려온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수도 있다. 근데 장한 밑에 계속 있었다면 그 끝은 신안대학살.(...)

한무제고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편성한 원정대에도 사면을 미끼로 죄수들을 많이 기용했다. 이것은 중국의 전통으로 통일왕조 진나라도 각지에서 반란군이 잇다르자 죄수부대를 편성했고, 관우 또한 죄를 짓고 쫓겨다니다가 사면을 받기 위해 황건적 진압부대를 자원하려고 했다.

한국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에도 죄수부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소련의 형벌부대처럼 운용한 것은 아니고 주로 강제노역을 시켰다고 한다. 연안파로서 평양방위 사령관을 맞았던 무정김일성에게 평양 함락의 책임을 추궁당해 강등당하고 이 죄수부대에서 노역했다고. 또한 한국에서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에서 총알받이 겸 미끼로 먼저 보내는 선두그룹이 국민당군 패잔병으로 구성된 사실상의 형벌부대였다는 설이 있으나, 중공군을 디스하기 위한 유엔군측의 프로파갠더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이 썼던 인해전술은 엄연히 포위전술로서 단순한 총알받이 전법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이런부대가 존재하지 않지만, 비공식적으로 죄수를 대상으로 북파공작원을 모집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 실미도에서는 이런 684부대원이 이렇게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이들은 그저 무작정 상경한 농촌청년들이 대부분이라 전과자가 아니다.


5. 매체의 형벌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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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기본적으로 무기는 지급해줬다고 한다. 문제는 지급된 무기가 이 아니라는 거다.
  • [2] 참고로 이 얘기는 냉전 당시 소련을 폄하하기 위해 퍼진 내용이고, 보통의 경우에는 T-26과 같은 구식 장비를 잔뜩 쥐어주고, 적에게 돌격시켜서 적들을 분산시켰다고 한다.
  • [3] T-34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설계상의 문제점 때문에 조종수의 생존율이 낮았엇다.
  • [4] 참고로 그는 폰 비츨란트 소위 휘하의 옛 소대원이었는데, 소대장의 명령을 어기고 독단적으로 소련군에게 총을 쏘다가 다른 소대원에게 얻어맞은 녀석이다.(...)
  • [5] 한국 정발명이고 원제는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 [6] 남북전쟁 당시 북군이 남군 포로들 중 전향자를 모병한 부대가 존재했다.
  • [7]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의아하겠지만, 당시 일반 부대가 강제징집 당했거나 급여를 받고 복무하는 모병제였던 것을 감안하면, 강제로 시켜서 하는 사람이나 단순히 먹고 살려고 들어온 사람으로 이루어진 부대와 비교했을 때 '다시 공명을 얻고자 하는' 확고한 동기가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부대는 분명 정예부대로 분류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징병/모병된 일반병들에게도 '내 나라를 지킨다'는 동기부여가 가능하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매우 최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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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29 09: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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