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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민관

last modified: 2015-02-28 13:54:44 by Contributors

로마 제국의 관직. tribunus plebis(직역하면 '평민의 지휘관'). 그 역할이 백성들을 지키는 것이라 하여 호민관(護民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민회에서 선출되며 평민 계급을 대표한다. 오직 평민만이 선출될 수 있었다. 한번의 선거에 10명이 선출되었고 신체에 대한 신성불가침권을 가지며, 민회를 통해 법률을 제정할 수 있고, 원로원의 결의에 거부권을 가지는 등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지니고 있었다. 또 호민관으로 선출되면 다음에 원로원 의원 후보 자격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법무관 선거에 출마할 자격을 얻게 된다.[1] 호민관 바로 위의 법무관 때부터 총독의 직무가 주어졌고 또한 또한 때때로 군사 지휘권까지 행사할 수 있었으므로 호민관의 직위는 상당히 높은 자리였다. 따라서 호민관까지 올라갔다면 입신출세를 어느 정도 이룬 것이나 다름없었다.

호민관이 생기게 된 유래는 다음과 같다. 로마가 도시국가에 지나지 않던 시절 귀족에겐 막강한 권력이 있었고 평민은 이러한 권력을 누릴 수 없었다. 따라서 귀족은 평민들을 부려먹고 또한 이들을 구타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평민들의 권력이 커지자 호민관이라는 직책을 만들었는데 호민관은 이러한 구타를 막을 권한이 주어지게 된다. 이는 거부권이 된다. 그러나 이 권한을 행사하다 호민관도 같이 얻어맞는 일이 생기자 평민들은 호민관이 얻어맞으면 안되는 권한을 요구하였고 이로써 신성불가침권을 받게된 것이다. 물론 뭐든지 미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로마 전설에서는 신성후퇴사건을 통해 한꺼번에 이러한 권한을 얻어낸 것으로 나오지만...[2]

호민관은 민중을 보호하기 위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독립된 입법권, 사법권을 가지고 있는데다 집정관에 대한 거부권까지 행사할 수 있었고, 법으로 보장된 신변불가침권까지 갖고 있었다. 따라서 10명의 호민관중 한명만 변심하면 나라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법안을 입법하고, 유력 정치가를 고발해서 평민집회에서 열리는 법정에 세울 수 있으며, 또한 집정관, 혹은 다른 호민관들의 입법을 거부하여 정국을 마비시킬 수 있었다. 단 호민관은 언제 어떤 사람의 탄원이든 들어줘야할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집의 대문을 잠그면 안되고, 평민집회의 사전 허가없이 로마 성벽 밖으로 벗어나서는 안되었다.

이렇듯 집정관과 맞먹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그라쿠스 형제 이전 까지는 호민관들의 권한 사용은 그다지 과감하지 않았다. 호민관 임기가 끝나면 원로원 의석을 얻는데 원로원과 대립각을 세우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호민관은 반체제적이지 않았고 아무도 그러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라쿠스 형제는 그깟 원로원 의석따위 뭐가 중요해?라는 발상의 전환을 해버린다. 체제를 변혁하기 위해서는 호민관의 권한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호민관 임기가 끝나면 어떻게 하냐고? 아무도 호민관을 연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연임금지 규정도 없었는데, 호민관 임기 끝나면 연임하면 되지 뭐라는 충격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이 문제 역시 해결해버린다.

그라쿠스 형제가 호민관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자 호민관의 권력이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호민관들 스스로 자각하게 된다.[3]

그 결과 그라쿠스 이후로 민중파가 등장하였고 이들 민중파들은 호민관의 권한을 사용하여 원로원과 대결하는 일을 자주 벌여 정국을 소용돌이에 빠뜨리게 된다. 기본적으로 호민관은 갓 정치를 시작한 풋내기가 역임하는 자리로, 10명 중 한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모든 정치세력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어울리지 않게 막강한 권력이 주어졌으니, 호민관 자리만 믿고 개혁을 추진하다가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훗날 술라가 호민관의 권한을 축소하나 이는 술라의 죽음과 함께 모두 폐기되었고 그 이후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모두 호민관들을 매수하여 원로원과 대결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훗날 아우구스투스가 정권을 잡자 호민관은 명목은 남아 있었지만 집정관 이상으로 눈에 띄지 않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이는 아우구스투스가가 호민관의 신체 불가침권과 법률 제정권, 원로원 결의 거부권 등의 권한을 호민관 특권(tribunus potestatis)라는 이름으로 가져가버렸기 때문이다. 그 이후 황제는 군단지휘권, 호민관 특권을 전임 황제로부터 물려받음으로써 세습하게 된다.

그 이후 로마 황제들의 정식 명칭 기록법에는 이름 뒤에 "호민관 특권 몇회 갱신"이라는 항목이 들어간다. 사실상 황제에게 호민관이 흡수되었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호민관은 유명무실화 되었으나 공화정이 지속되는 것처럼 보이길 원했던 아우구스투스는 계속 호민관의 존재를 유지하였으나 알렉산데르 세베루스황제 때에 이르러 소멸되고 만다.

로마 시대를 다룬 헐리우드 고전 영화(벤허, 쿠오 바디스, 성의 등등...)에 보면 젊은 남주인공이 호민관 타이틀을 달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이 항목에서 설명한 큰 권력을 가진 호민관이 아니라, 군사 호민관(tribunus militum)을 가리키는 것이다. 군사 호민관은 이름만 호민관이지 실제로는 군단의 하위부대인 코호르스(cohors)의 지휘관으로, 로마인 이야기 덕분에 한국에서는 대대장으로 알려진 바로 그 직위이다.[4]

흔히 Ombudsman이 이 로마의 호민관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다르다. 부즈맨은 스웨덴에서 비롯된 국민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행정감찰관이다. 이것을 적정한 한글말로 번역하다보니 호민관이라는 용어로 대체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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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귀족이 되어버린다. 실제로 로마의 귀족은 역사 초기부터 귀족이었던 자들과 이런 루트로 평민에서 귀족으로 올라간 자들로 양분되어 있었는데, 원로원 의원이 발언 전에 했던 인삿말인 아버지들이여 그리고 신참자들이여는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신참자'를 뜻하는 라틴어 Nobilis에서 영어의 '귀족'을 뜻하는 Noble이 온 것이다.
  • [2] 즉 원로원이 알아서 이런 직책을 설치해주는 대인배적인 결정을 했다고 은근히 띄워준 것이다.
  • [3]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호민관 하나하나는 왕이나 다름없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황제가 호민관의 권리를 누리는 것으로 황제노릇이 가능했던 것을 상기해보자. 해마다 10명이나 되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호민관들의 난입이라는 이런 기이한 구조는 공화정 말기의 정국불안정의 큰 원인이 된다.
  • [4] 다만 '대대장' 이라 하지는 않더라도, '이름만 호민관' 이라는 이유로 새로운 번역어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신약성서에는 부장(천인대장)으로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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