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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니 무바라크

(ɔ) Presidenza della Repubblica from


영어 : Muhammad Hosni Sayyid Mubarak
아랍어 : محمد حسني سيد مبارك

무함마드 호스니 사이이드 무바라크

1928년 5월 4일~무죄 판결, 죽는날이 멀어질듯 하다.

Contents

1. 소개
2. 유년기
3. 전쟁 영웅
4. 대통령 취임
5. 독재
6. 몰락

1. 소개

이집트의 군인, 정치가, 독재자. 제4대 이집트 공화국 대통령(1981년 10월 14일~2011년 2월 11일).

중동전쟁 때만 해도 이집트의 국민적 영웅이었지만, 30년 가까이 독재하며 군림한 끝에 결국 국민들에 의해 끌어내려진 인물.
딱히 아이러니를 논할 것도 없는, 흔한 독재자가 된 영웅 중 하나.

2. 유년기

무누피아주의 카훌 엘 무스리프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묘하게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도 모누피아주 출신. 아버지는 중소지주이면서 모누피아주의 법무국에서 일하고 있었던 지역 유지였다.

원래는 아버지의 권유로 카이로 대학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1948년에 일어난 제1차 중동전쟁이 무바라크의 인생을 바꾸었다. 본래 아랍권에서는 명문가 자제들만이 사관학교 입학이 허용되었지만 이스라엘에게 철저하게 캐발리게 되자 널리 인재를 구해 군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중산층에게도 사관학교 입학의 문이 열리게 된 것.

3. 전쟁 영웅

무바라크는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가 파일럿의 길을 걷게 된다. 1949년 공군사관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뒤 시나이 반도에서 공군 파일럿 생활을 했다. 1950년대에는 소련으로 유학해 최신 전투기들의 조종법과 공군 전력 등을 배우고 돌아왔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이집트 공군이 궤멸당하자 무바라크는 이집트 공군 재건이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칼루비아주의 군사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해 4년이 걸릴 공군전력 재건을 불과 2년만에 해치웠고 이 공을 인정받아 당시 나세르 대통령 밑에서 공군 참모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사다트 대통령 치하에서 공군 사령관겸 국방차관에 취임했다.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 때는 시나이 반도 탈환을 위한 이집트군의 기습작전을 진두지휘해 이스라엘을 캐발라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고 이를 계기로 사다트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으로 지명되었다.

4. 대통령 취임

1981년, 사다트 대통령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의해 암살되자 그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외교적으로는 사다트의 친미, 친이스라엘 정책을 계승해 중동국가 중에선 요르단과 더불어 이스라엘 편을 드는 두 국가가 되었다(...) 이는 어느 정도 윈윈이 되었는데 이스라엘로선 골란 고원을 둘러싸고 시리아와 으르렁대는 상황에서 이집트와도 으르렁 댈 경우 생길 양면전선을 피할 수 있었고 이집트로서도 미국 등의 서구 국가들과의 유화적인 상황으로 정권의 유지가 가능했다.

단, 대한민국과는 1995년까지 정식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는데 이는 제4차 중동전쟁조선인민군 조종사들이 이집트군을 도와 참전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김일성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대한민국과 수교하지 않겠다는 무바라크의 뜻이었다. 무바라크는 1980년대와 1990년대 내전중인 사하라 사막 이남의 몆몆 아프리카 국가들에게도 무기를 판매하거나 비밀리에 제공하기도 했다.

5. 독재


뭐라고요? 안 들리는데? 내가 요즘 늙어서 말이야... 보청기 껴서 잘 안 들려. 다시 말해봐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철권 통치가 진행되었는데 사다트 대통령의 암살 이후 선포된 계엄령을 국가비상조치법이라는 이름으로 상설화해버렸으며 이를 바탕으로 무바라크에게 조금만 반기를 들어도 탄압해버리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선거 때마다 무바라크는 90%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되었고[1] 여당인 국민민주당은 과반을 넘어선 초과반의석을 확보했다. 야당인 무슬림 형제단이 돌풍을 일으키자 가뿐히 정당 해산 조치를 내렸을 정도(...) 거기에 부유층들이 국가 기간산업을 독점해 엄청난 부를 누린 반면 대다수의 국민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는 형편임에도 이를 개선하지도 못했다.

이런 탓에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의해 몇 번이나 암살기도를 당했지만 사다트와 달리 실패해 정권을 이어나갔고 나이가 들었지만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차남인 가말 무바라크에게 세습 작업을 하는 퇴행적인 양상까지 보여주었다. 2009년에는 귀여워하던 12살짜리 맏손자 무함마드의 갑작스런 죽음[2]으로 한동안 요양하기도 하고 2010년에 담낭의 염증으로 독일 바덴바덴에서 적출수술을 받기도 해 은퇴 가능성이 있어보였지만 2010년 12월, 국민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당장 은퇴할 생각은 없다 라는 병크(...)를 터뜨렸다. 하긴 자기 딴엔 고작 82살이었으니...[3]

하지만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는 그를 물러나게 한 건 국민이었다.

6. 몰락

결국 2011년, 튀니지재스민 혁명에 고무된 이집트 국민들이 무바라크의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고(2011 이집트 혁명) 무바라크는 2011년 9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를 무마하려 했으나 군부와 서방국가들의 압박으로[4] 결국 2011년 2월 11일, 하야하고 만다. 병크를 터뜨린 지 2개월 만이요, 집권한 지 만 30년을 8개월 채우지 못한 시점이었다.

2011년 2월 홍해의 휴양지에서 혼수상태에 빠져있었다고 하며 우간다의 식인종도 받아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망명하면 받아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군부가 임시로 권력을 이양받은 상황이라 무바라크 커넥션 하에서 무바라크가 언제고 다시 재기하려고 국외 망명을 거부하고 있지 않느냐는 추측을 하고 있었지만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사망하면 그것도 다 물거품이 될 듯하다(...)


썬글라스는 독재의 상징 병석은 회피의 상징


2011년 8월 3일부터는 두 아들과 함께 피고인의 신분으로 교도소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혐의는 공권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여 막대한 사상자를 발생시킨 것과 공공 재산을 빼돌려 부정축재를 한 것. 약소하네 누군가랑 완전히 똑같네

2012년 1월 5일, 이집트 검찰은 무바라크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고령이라 실제 판결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 집행 전에 감옥에서 죽을 수도 있고


6월 19일(현지시각), 상태가 악화된 무바라크가 군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심장이 정지해 임상적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상 사망한 듯. 뇌사 여부는 미지수라고 한다. 결국 안 죽고 무슬림 형제단의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당선 소식을 듣고는 다시 혼수수면을 오가는 중이라고. 그런데 결국 안 죽었다.

12월 15일, 교도소 샤워실에서 미끄러져 머리를 다쳐 치료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아깝다

2013년 5월 11일, 구금 2년 만에 이뤄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빈곤층의 궁핍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궁핍하게 만든 게 누구더라

그런데 일부 부패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면서 석방될 가능성이 높다 라는 보도가 나와 충공깽인 상황. 그러나 사법부의 다른 소식통에 의하면 다른 부패 혐의로 구금은 계속 될 것이라고 한다. 시민혁명 당시 무력 진압을 한것에 대해서도 종신형이 선고되었으나 이후 판결을 뒤집고 재심을 하라는 판결이 나온 상황. 일각에서는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다시 무바라크를 앞세우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시민혁명을 다시 무위로 돌리려고? 일단 석방된다면 대선 출마도 가능해지기 때문에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군부 쪽에서 무바라크를 버릴 수도 있겠지만.


무바라크의 석방으로 이집트 군부가 작정하고 무르시를 축출했다는 음모론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무바라크가 다시 대선에 출마하면 확인사살일 듯. 그러나 현재 이집트에서는 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을 거의 29만원 장군식으로 떠받드는 흐름이 감지되어서 무바라크가 직접 권좌에 복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데 무르시 하는 꼴을 보니 차라리 시대를 역행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보다는 세속주의적인 이집트를 위한 더 강력한 지도자가 엘시시가 필요하다.

2014년 11월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1477051
법원에 무죄판결로 법적으로 완전히 자유에 몸이 되었다. 기존에 받은 5년형을 복역 하는 수준에서 마무리 하고 사회로 나올듯 하다. 에초에 이번 판결도 is가 판치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반발로 인한 세속주의자들의 위기의식에 표현이라는 말도 나올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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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선거인 명부를 조작해 사망자들이 여당에 투표한 것처럼 조작했다고 한다. 백골징표
  • [2] 심장에 이상이 있어 수술받다가 뇌출혈로 죽었다. 이제 보니 가족력인 듯? 그리고 결국 이 세손(...)의 죽음은 무바라크의 패망을 부르는 나비효과가 되었다. # 이때 이미 총기를 상실한 무바라크는 세자 격이었던 둘째 가말(무함마드의 삼촌이 된다)조차도 경계하기 시작했다고.
  • [3]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측근들과 많은 전문가들은 동정여론이 일던 그 시점에서 "당시 무바라크가 하야를 선언했다면 국민이 오히려 더 있어달라고 간청했을 것" 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승만도 그랬는데 이승만이 좀 더 똑똑했던 모양이다
  • [4] 이미 버락 오바마는 그 전해 6월부터 민주선거를 지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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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1-23 10: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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