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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노지의 변

last modified: 2015-04-06 19:56:37 by Contributors

本能寺の変

(ɔ) from


1582년 6월 21일, 일본 교토 혼노지에서 일어난 사건.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인 아케치 미츠히데가 주군인 노부나가에게 반란을 일으켜 죽게 한 사건이다.

한국에서는 은근히 10.26 사건과 비교되기도 하는 사건. 삼일천하의 대표적 케이스. 전투하러가다 회군한다는 점에서 위화도 회군과도 비교된다.

목차

1. 혼노지의 변
2. 아케치 미츠히데는 왜 난을 일으켰나?
2.1. 야망설
2.2. 원한설
2.3. 시코쿠 원정 회피설
2.4. 초조설
2.5. 흑막설
2.5.1. 아시카가 요시아키 설
2.5.2. 조정 흑막설
2.5.3. 예수회설
2.5.4. 하시바 히데요시설
2.5.5. 도쿠가와 이에야스 설
2.5.6. 기타설
3. 변 이후
4. 혼노지의 변에 대해 다루고 있는 매체들


1. 혼노지의 변

1582년, 오다 노부나가는 수도인 교토 인근을 거의[1] 장악하고 3월에는 숙적이었던 다케다 가문을 멸망시켰다. 간토와 토호쿠는 노부나가에게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남은 지역은 이제 츄고쿠, 시코쿠, 호쿠리쿠, 큐슈뿐이었다. 츄코쿠의 모리 가문은 하시바 히데요시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세가 약해진 상황이었고, 호쿠리쿠의 우에스기 가문은 우에스기 겐신이 사망한 뒤 후계자 문제로 내분이 일어난 상황이었다. 시코쿠에서는 원래 시코쿠의 절반의 지배자인 미요시씨 일족(소고 마사야스 · 미요시 야스나가 · 아타기 노부야스 등)이 노부나가의 편에 서서 쵸소카베 가문과 일전을 치룰 태세였기 때문에 쵸소카베 가문은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바야흐로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했다.

그런 가운데 미츠히데는 다케다 가문 토벌전에서 귀환한 뒤 다케다 가문 토벌전에서 큰 공이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접대할 것을 명령받고 5월 15일부터 이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하시바 히데요시가 모리 가문을 상대하는 와중에 구원병을 요청하자 노부나가는 미츠히데에게 본거지로 돌아가 츄고쿠로 출전해 히데요시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츠히데는 이에 5월 26일, 자신의 본거지 성 중 하나인 탄바의 카메야마 성으로 가서 출진 준비를 했다. 그리고 5월 28일과 29일, 아타고 산의 신을 숭배하는 아타고 신사에 예물을 바쳤다. 이런 과정을 통상적인 출전 준비의 과정으로 볼 수 있었겠지만 이 때 미츠히데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시를 지었다.

때는 지금, 비가 밑을 적시는 5월이로다.(「時は今 天が下知る 五月哉」 )[2]

한편 노부나가 본인도 5월 29일, 히데요시를 구원하기 위한 병력을 기다리기 위해 아즈치성을 출발해 교토 혼노지로 향했다. 이때 노부나가가 데리고 간 수행원은 100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렇게 적은 수행원만 이끌고 간 것은 혼노지가 있는 기나이 지역을 담당하는 장수가 미츠히데였기 때문이었다. 노부나가는 혹시 문제가 생기더라도 아케치가 이끄는 병력이 있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셈이다(……). 게다가 혼노지는 단순한 절이 아니라 방비가 잘 되어있는 성채이기도 했기 때문에 이 점도 노부나가가 안심한 요인이었다는 지적이 있다.[3]

혼노지 복원도

어쨌든 노부나가는 혼노지에 도착했고, 장남인 오다 노부타다는 교토 안의 묘카쿠지에 들어갔다. 노부나가는 6월 1일, 혼노지에서 다과회를 베풀고 있었다. 한편, 비슷한 시간에 미츠히데는 휘하의 1만 3천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교토로 향했다. 기록중에는 미츠히데가 카메야마 성을 떠나면서는 병사들에게 노부나가가 열병식을 하려한다고 했다가 카츠라가와 강을 건넌 뒤에 노부나가를 치겠다는 이야기를 병사들에게 선포했다고는 하지만, 대체로 역사학자들은 실제 혼노지에 도착할 때까지도 일반 병사들은 미츠히데의 의도를 몰랐고 극소수의 미츠히데의 가신들 말고는 노부나가를 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고 본다.

6월 2일 새벽, 미츠히데가 이끄는 1만 3천여 명의 병력은 혼노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미츠히데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敵は 本能寺に あり!)[4][5]

6월 2일의 이른 아침[6] 미츠히데가 이끄는 병력이 혼노지를 완전 포위했고, 노부나가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처음 노부나가는 하인들이 싸우는 소리로 생각하고 측근에게 무슨 일인지를 보고 오게 했다. 그러나 측근이 혼노지가 많은 병력에 의해 포위되어 있고, 그 문장이 도라지[7]라고 보고하자 노부나가는 미츠히데가 모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노부나가는 도리가 없다, 어쩔수 없군.(是非に及ばず)[8]이라고 말하며 몰려드는 적들에 활을 쏘며 맞섰다. 그러다가 활이 끊어지자 창을 잡고 계속 싸워나갔다. 그러나 적의 숫자는 훨씬 많았고 노부나가는 심한 부상을 입게되자 싸움을 포기하고 안쪽으로 들어가 모리 란마루에게 불을 지르게 한 뒤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재미있게도 혼노지 근처에는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의 성당이 있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서도 혼노지의 변을 다루고 있는데, 프로이스의 기록에 의하면 아케치 군은 새벽 3시 무렵,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혼노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6월 2일에 아케치 군이 합류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다 가의 문지기들이 방심한 탓이었다고. 노부나가는 아케치 군에 맞서다가 아케치 군 휘하의 조총 부대의 총격으로 왼쪽 어깨에 총알이 관통하자 안쪽의 미닫이문을 닫은 뒤 불을 질러 자살했다고 한다.

노부나가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탓에 이것이 후대에 상당한 떡밥으로 남았다. 하지만 불탄 혼노지가 워낙 거대했던 탓에 그 잔해를 헤치고 노부나가의 시체를 찾는 게 무리여서 그냥 내버려뒀다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편 묘카즈지에 들어간 노부나가의 장남 노부타다는 혼노지에서 위급 상황이라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를 구원하러 가려했지만 이미 상황이 종료돼버리자 측근들은 노부타다에게 도망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노부타다는 이미 미츠히데가 아즈치 성으로 향하는 길을 봉쇄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해 도망치는 것을 포기하고 수비가 용이하지 않은 묘카즈지에서 니조 성으로 옮기게 된다.[9]


이에 미츠히데는 노부타다를 잡으러 니조 성으로 향했다. 니조 성의 인원은 소수였으나 워낙 완강하게 저항하여 아케치 군은 세 번이나 퇴각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교토의 기마무사들까지 움직일 조짐을 보여 반란이 실패할 우려가 생기자, 아케치군은 최후의 수단으로 니조 성 바로 옆의 고노에 사키히사의 저택 지붕 위로 올라가 총과 화살을 마구 퍼부었다. 이 공격으로 노부타다의 대부분의 측근들이 사망했고 결국 더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게된 노부타다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 아케치 미츠히데는 왜 난을 일으켰나?

혼노지의 변은 일본 역사의 최대 미스테리로 꼽힌다. 미스테리인 이유는 미츠히데가 대체 왜 노부나가에게 모반을 했는지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츠히데 자신이 왜 노부나가에게 모반을 했는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수많은 주장과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대체로 미츠히데가 천하를 갖기 위해 그랬다는 '야망설'과 노부나가에게 품은 원한 때문에 그랬다는 '원한설', 시코쿠 출전을 회피하기 위해 그랬다는 '시코쿠 원정 회피설', 초조함 때문에 그랬다는 '초조설', 미츠히데의 모반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미츠히데의 뒤에 숨은 흑막이 있을 것이라는 '흑막설' 등으로 크게 다섯 가지 설이 오늘날까지 논의되고 있다.

2.1. 야망설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납득되는 설명. 미츠히데가 날로 먹으려고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해 노부나가를 쳤다는 주장. 전국 시대 연구의 대가인 타카야나기의 주장으로 타카야나기는 원한설의 근거로 제기되는 사항들이 후대에 부풀려지거나 억측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프로이스의 "일본사" 기록을 근거로 합리적인 성격인 미츠히데와 노부나가가 서로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미츠히데가 뜬금없이 모반을 일으켰기 때문에 야망 때문에 그랬을까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상식적으로 아케치가 모반을 일으키면 아케치에게 동조해줄 사람도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진짜 야망이 있었다면 사전 작업도 하지않고 모반을 일으켰을까라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미츠히데는 자신과 친척인 호소카와 유사이(=호소카와 후지타카, 미츠히데와는 서로 사돈 관계였다)나 츠츠이 준케이 등 기나이의 유력자들이 자신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생각대로 되지않아 실패했다. 애당초 노부나가를 뒤엎을 생각이 있었다면 우선 이들부터 완전히 포섭한 뒤에 난을 일으켰어야 정상이 아닐까?그건 그냥 얘가 무뇌아여서가 아닐까?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동서고금의 모반이나 쿠데타 가운데 정말로 철저하게 완벽한 준비를 갖추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대의 권력자가 바보 멍청이가 아닌 이상, 부하들에 대한 경계는 당연히 하기 마련이고, 100%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는 쿠데타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쿠데타는 별별 어처구니 없는 이유, 심지어 지극히 사소한 불운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성공한 경우라도 기록을 자세히 검토하면 필연적이었다기보다는 상당한 '행운'이 따라준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니까 노부나가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미츠히데가 완벽한 모반 준비를 갖추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야망설에 대해서는 혼노지의 변 전후에 미츠히데의 움직임은 일관해서 노부나가를 타도하고 자신이 일본의 정점에 서는 것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근거가 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 '그러기에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상대적으로 사소한 논점 이탈에 불과하다.

2.2. 원한설

아케치가 노부나가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혼노지의 변을 일으켰다는 주장. 에도 시대에는 노부나가가 계속 아케치에게 불합리한 명령을 내리자 아케치가 원한을 품었고 이것이 폭발해 혼노지의 변을 일으키게 된 것이란 식의 설명이 대세였다고 한다. 대체로 원한을 품게 만든 사건들로 제기되는 사항은 이렇다.

  •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접대하다가 그만 악취 나는 물고기가 나오는 바람에 노부나가가 노하여 이에야스의 접대 임무에서 해임되고 체면이 구겨졌다는것. 분노한 아케치는 그릇을 연못에 집어던졌다고 한다.

  • 아직 복속되지 않은 지역인 이즈모, 호키, 이와미로 영지를 옮기라고 명령받은 것.

  • 야카미 성 전투에서 노부나가를 위해 숙모를 죽게한 것.

  • 다케다 가문을 토벌한 뒤 축하 잔치에서 "저희도 애쓴게 있습니다."라고 하자 노부나가가 "이 숑키야, 니가 뭘했는데!"라고 면박을 당한 것.

  • 사카모토 성을 몰수당한 사건.

어떤 기록에는 아케치가 고바야카와 다카카케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나는 요즘 노부나가 때문에 빡쳐서 화가 나서 더 이상 참지 못 하겠다."라고 써보냈다고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고, 원한을 품게된 사항들이란 것도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이야기라는게 중론이다.
일부 학자들은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혼노지의 변 몇 달 전에 아케치가 노부나가에게 뭔가를 말하면 노부나가가 화를 내고 아케치는 방문을 열고 나와버리는 일이 있었다."라는 기록을 근거로 이 때 화가 나서 모반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32권짜리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는 이 설을 채택하였다.

2.3. 시코쿠 원정 회피설

미츠히데가 시코쿠 원정을 피하기 위해 모반을 꾀했다는 설.

이는 시코쿠의 정세와 관련이 있다. 노부나가는 미츠히데에게 시코쿠의 쵸소카베 가문을 복속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츠히데는 자신의 가신인 사이토 토시미츠의 여동생을 쵸소카베 모토치카와 혼인을 맺게 했다. 이로 인해 사이토 토시미츠와 쵸소카베 가문은 인척 관계가 되었고 미츠히데와도 연줄이 닿은 상태였다. 한편 쵸소카베 가문의 아와 침공에 저항하다 성을 내주고 항복한 미요시 야스토시의 아버지 미요시 야스나가(자신은 가와치 슈고다이로 있다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항복해 오다 가문을 섬기고 있었다)는 하시바 히데요시와 연결해 시코쿠를 되찾으려고 하는 중이었다.

미츠히데는 쵸소카베 가문을 앞세워서 시코쿠를 통일해야 한다고 노부나가에게 진언했지만, 노부나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1582년 2월, 미요시 야스나가와 쵸소카베 모토치카에게 교토로 올라올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쵸소카베 모토치카가 이를 거부하자 시코쿠를 무력 정벌하기로 결정하고 간베 노부타카를 총대장으로 삼아 시코쿠 정벌에 나서게 했다. 다시 말해서 미츠히데의 시코쿠 정책이 노부나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

이에 따라 미요시 야스나가가 먼저 선봉으로 시코쿠에 들어가고 노부타카 등이 이끄는 본대가 6월 2일 오사카에서 출진할 예정이었다. 미츠히데는 이를 막기 위해서 혼노지의 변을 일으켰다는 것이 이 설의 핵심이다. 어느 정도는 체면을 구기게 된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게 분노가 생겨 혼노지의 변을 일으켰을 수도 있지만 이것 역시 확실한 증거는 없는 상태다.

2.4. 초조설

미츠히데가 앞날이 어찌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모반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주장. 미츠히데는 사실 오다 가의 고유 가신도 아니었고, 노부나가 밑에 있은지도 몇 년 밖에 되지 않은 가신 중 신참자였다. 그럼에도 미츠히데는 가신들 중에서 상당히 중용되었는데 미츠히데 자신의 능력이 있기도 했지만 노부나가의 신임이 컸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볼수 있다.

그런데 1580년, 노부나가가 여러 가신들을 내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비록 미츠히데는 내쳐지지는 않았으나 노부나가의 신임을 점점 잃어가는게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들었고 이 때문에 모반을 일으켰다는 것이 초조설의 핵심이다. 대체로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의 신임을 잃어가고 있었던게 아닌가에 대한 사항으로 꼽히는 것들은 이렇다.

  • 노부나가에게 시코쿠 정책을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게 복속되기 전에는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가신이었기 때문에 아시카가가 추방된 이후에 노부나가의 심중에 미츠히데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는 것.

  • 히데요시가 츄고쿠를 원정할 때 노부나가 구원하러 가라고 명했는데 미츠히데는 자신보다 낮은 신분 출신인 히데요시의 밑에서 그의 지시를 받으며 전쟁을 치뤄야 하나에 대한 반감 때문에 모반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미 이전에도 미츠히데는 히데요시 밑에서 전투를 치룬 적이 있었기 때문에[10] 이것은 설득력이 없다.

어떤 학자는 당시 미츠히데의 나이가 무려 67세였고, 자신의 뒤를 이을 적자인 아케치 미츠요시의 나이가 겨우 19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자신이 죽은 뒤에 아들이 노부나가에게 기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모반의 원인이 된게 아닌가라고 보기도 한다.

2.5. 흑막설

미츠히데의 모반이 워낙 뜬금없었기 때문에 사실 미츠히데의 뒤에 누군가가 있는게 아닌가라는 주장.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흑막으로 제기되는데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 주장도 있는가 하면 거의 음모론 수준의 주장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된다.

2.5.1. 아시카가 요시아키 설

노부나가에게 추방당한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자신의 원래 가신이었던 미츠히데를 사주하여 노부나가를 쳤다는 설. 미에 대학의 후지타 교수가 이 설을 주장하고 있다.

날로 세력이 커져가는 노부나가에게 불안감을 느낀 조정은 원하는대로 직책을 주겠다고 하는 사네히토 친왕의 친서를 보내 노부나가를 슬쩍 떠보려 했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여기에 답을 하지 않고 친서를 되돌려보냈다. 이 사건을 듣게 된 아시카가는 '노부나가가 조정에 정이대장군, 즉 쇼군의 직을 요구하지 않겠는가.'라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노부나가의 신임을 잃고 한직으로 쫓겨난 자신의 원래 가신인 미츠히데를 사주해 노부나가를 죽이게 했다는 것이 이 설의 핵심이다.

후지타 교수는 이 설의 근거로 미츠히데가 혼노지의 변 직전에 우에스기 카게가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쪽에서 진수성찬을 대접해 드려야 한다."라고 말한것[11]에서 미츠히데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의 존재가 드러나는 점이라든지, 혼노지의 변 이후 미츠히데가 기슈의 사이가당이나 토바시 시게하루에게 보낸 서신에서 "상의(上意)"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는 미츠히데보다 높은 신분의 사람의 명령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는데서 드러난다고 말한다. 또한 노부타다를 제압할 때 실제 전투를 지휘한 인물이 아시카가의 중신인 이세 타다오기였다는 것도 근거로 제기된다.

하지만 이 설을 따르게 될 경우 아시카가를 비호한 모리 가문이 혼노지의 변을 미리 알고있어야 하는데, 모리 가문이 혼노지의 변을 미리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설이 성립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다. 만약 아시카가가 혼노지의 변을 사주했다면 아시카가를 비호하던 모리 가문에게도 이를 미리 알렸어야 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다만 모리 가문이 혼노지의 변을 미리 알았느냐 몰랐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혼노지의 변 이후, 히데요시는 전투 중이던 모리 가문과 급히 강화를 맺게 되는데 모리 가문이 히데요시와 화해할 때의 반응이 이미 혼노지의 변을 알고 있었던게 아닌가라는 추측을 가능케 하고[12] 또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가 "지금 노부나가를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히데요시이기 때문에 지금 화해해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화해를 지지했다는 점도 근거로 제기된다. 또한 기슈의 사이가당이나 토바시 시게하루가 미츠히데를 지지했기 때문에 모리 가문이 혼노지의 변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렇지만 히데요시와 모리 가가 화친할 때 이 조건으로서 모리측의 중신 시미즈 무네하루가 자결했는데, 만약 혼노지의 변을 양쪽 다 알고있는 상황이었으면 어째서 모리가 좀 더 튕겨서 시미즈를 살리도록 하거나 히데요시로서도 이유 없이 강짜를 부렸는지가 의문이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으로는 미츠히데가 아시카가의 가신이었는가를 확실하게 증명할 자료가 없기 때문에 아시카가 흑막설은 나름 근거가 있는 듯 하면서도 여전히 논란 중이다.

2.5.2. 조정 흑막설

노부나가의 힘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조정에서 미츠히데를 사주했다는 설. 사주의 주체로는 호기마치 덴노, 사네가와 친왕, 고노에 사키히사 등의 문신세력 등이 제기된다.

노부나가는 어떤 직책이든지 원하는 대로 주겠다는 사네가와 친왕의 서찰을 받고도 이에 답을 하지 않고 돌려보냈었다. 조정의 의도는 노부나가가 쇼군 직을 원할 것인가를 알아보려고 서찰을 보낸 것이었지만, 노부나가가 답을 하지 않고 돌려보내자 노부나가가 이전의 가마쿠라 막부무로마치 막부같이 바쿠후의 쇼군 직에 만족하지 않고 조정을 토벌하려 하는게 아닌가라고 불안감을 느꼈다는 것이다.(여기에 대해서는 쇼쿠 취임문제 논란참조)

조정 흑막설의 근거로는 노부나가의 장남 노부타다를 평정한 뒤 미츠히데가 조정에 들어가자 조정에서 미츠히데의 공을 치하하며 금품을 하사한 점, 간베 노부타카가 고노에 사키히사에 대해 대해추토령을 내려 집요하게 행방을 뒤쫓은 점, 당대의 중요 기록인 겸전어기에 혼노지의 변의 전후 1개월의 상황이 빠져있다는 점등이 꼽힌다.

당시 조정에서는 '노부나가가 바쿠후의 쇼군이 아니라, 조정의 중요 정무직책인 산쇼쿠(三職)를 요구하려는게 아닌가.'라고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노부나가가 혼노지에 온 것을 사네가와 친왕의 서찰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온 것으로 생각하고 노부나가가 쇼군이 아닌 산쇼쿠를 원한다는 대답을 하는 것을 막기위해 혼노지를 쳤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조정 흑막설 역시 여러가지 반론이 제기된다. 노부나가가 산쇼쿠가 아닌 쇼군에 취임하겠다고 대답하려고 혼노지에 온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흑막의 한 명으로 지적되는 고노에 사키히사는 노부나가가 죽은 뒤에 노부나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와카(和歌)를 남겼다고 한다. 간베 노부타카가 고노에 사키히사의 행방을 뒤쫓은 것은 그가 흑막이라서라기 보다는 니조 성의 바로 옆에 있던 고노에 사키히사의 집의 지붕에 아케치 군이 올라가도록 허용한 것을 따지려고 그랬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오호기마치 덴노나 사네가와 친왕도 명확한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사네가와 친왕은 니조 성의 싸움에 휘말려 위험할 뻔 했던 사실이 알려져서 조정 흑막설의 반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혼노지의 변이 일어난 뒤에 조정에서 내린 칙서나 칼의 하사에서 미츠히데를 칭찬한 부분이 없고 미츠히데 자신도 조정의 칙명을 받아 노부나가를 쳤다고 말한 바가 없다는 점이 가장 강력한 반론의 근거로 제기된다. 만약 미츠히데가 조정의 은밀한 칙명을 받은 것이라면 '왜 조정에서 그에게 전혀 혜택을 주지 않았는가?'라는 모순이 생기는 탓이다.

2.5.3. 예수회설

예수회가 일본의 정권 교체를 획책하여 혼노지의 변이 일어났다는 설. 타치바나 쿄코가 이 설을 주장했다.

이 설은 애당초 노부나가가 예수회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는데, 노부나가가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두자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날것을 우려해 미츠히데를 앞세워 노부나가를 죽이게 했다는 것이다. 예수회의 최종 목적은 명을 정복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노부나가에게서 히데요시로 권력을 넘어가게 해서 이 목적을 이루려 했다는 것이다.

예수회 흑막설의 근거로 제기되는 것은 미츠히데가 그리스도 교인이었다는 것, 예수회가 노부나가에게 막대한 자금 지원을 했다는 것을 들고 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를 말도 안 되는 음모론으로 치부한다. 미츠히데가 그리스도 교인이었을 가능성은 어느 정도 있다. 미츠히데가 사용한 문장이 그리스도 교와 관련된 것이고 딸 타마코와 가신인 타카야마 우곤 등이 그리스도 교인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것이 혼노지의 변의 배후에 예수회가 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또한 예수회가 노부나가에게 막대한 자금 지원을 했다는 것 또한 터무니없는 낭설로 치부되고 있다. 오히려 예수회는 일본에서 얻은 수입의 절반 이상을 인도에 송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내 예수회를 유지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고 한다. 이 설을 주장한 타카야마 쿄코가 근거로 삼는 문헌이 에도 시대에 작성된 신빙성이 떨어지는 "아케치 전쟁기" 등이고 이런 문헌들의 이야기를 검증 없이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학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2.5.4. 하시바 히데요시설

하시바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흑막이라는 설. 만약 이 설이 사실이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전국시대 다이묘의 전형적 모습인 하극상 루트를 탄 인물이 된다.

히데요시는 츄고쿠의 모리 가문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에게 구원병을 요청했다. 당시의 상황은 모리 가문이 매우 불리한 처지였기 때문에 빗추 타카마츠 성을 구원하러 보낼 병력은 1만 5000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서 과연 히데요시가 구원병을 요청할 이유가 있었나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있다. 그리고 혼노지의 변의 소식을 듣자마자 타카마츠 성에 대한 공격을 중단했다. 그리고 모리 가문과 화해한 뒤 전력을 온전히 보전하여 귀환했다. 11일만에 대군을 이끌고 귀환했다는 점에서 히데요시가 미리 혼노지의 변을 알고 있었던게 아닌가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히데요시가 가장 큰 이득을 봤기 때문에 히데요시가 흑막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히데요시가 불필요한 구원 요청을 한 이유에 대해서 이 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노부나가가 관직 취임 문제나 덴노의 퇴위 논란 등으로 교토에 올라와야 했기 때문에 히데요시가 이 때를 노렸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노부나가가 의심하지 않고 노부나가를 칠 병력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히데요시는 불필요한 구원 요청을 하여 미츠히데의 병력이 움직일 근거를 마련했고 이에 노부나가는 의심 없이 미츠히데에게 히데요시를 구원하러 병력을 출동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설의 약점은 히데요시와 미츠히데가 공모했다는 객관적 증거를 전혀 찾을수가 없다는 점이다. 히데요시가 구원을 요청한 것은 히데요시가 출전할 당시 모리 가문의 병력이 5만이라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고, 또한 히데요시의 전선과 미츠히데가 출동할 전선이 서로 달랐으며, 모리 가문과의 화해로 이뤄진 이른바 츄고쿠 반환에 대해서도 히데요시가 우연히 그런 공을 세운 것이지 미리 예측하고 그랬 던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또한 히데요시가 구원을 요청한 것은 히데요시 특유의 보신책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자칫 히데요시 혼자서 큰 공을 세우게 되면 노부나가가 의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구원병을 요청하여 노부나가 자신을 불러서 공을 양보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히데요시와 미츠히데가 공모했다면, 히데요시가 미츠히데를 토벌할때 미츠히데가 왜 이 사실을 폭로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히데요시가 미츠히데와 공모했다는 것을 밝히게 되면 히데요시는 궁지에 빠지게 되는데도 말이다.

또한 히데요시에게 조금이라도 비정상적인 움직임이나 음모의 기미가 보였었다면 히데요시를 적대한 오다 노부오, 시바타 가츠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이 왜 이런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겠는가도 히데요시 흑막설의 약점으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혼노지의 변 최대의 수혜자가 히데요시라서 그런지 흑막설 중에서는 은근히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설로, 창작물에서도 제법 많이 차용되곤 한다. '폭렬닌자 고에몬'이라는 영화와 '효우게모노'가 그 예[13]. 류성룡의 징비록 같은 조선의 기록에서도 '히데요시는 전왕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다'라는 기술이 있을 정도.[14]

2.5.5. 도쿠가와 이에야스 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흑막이었다는 설. 이 설은 흑막설 중에선 가장 정황 증거가 많은 편에 속하며 미츠히데가 히데요시에게 토벌되어 죽은게 아니라 도망쳐서 이후 이에야스의 치세에 중요한 역할을 한 승려인 난코보 텐카이, 즉 텐카이가 되었다는 설과 결부되어 논의되고 있다.

혼노지의 변 직전인 5월 15일, 미츠히데는 이에야스를 접대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런데 이에야스를 접대하는 과정에서 물고기가 썩는 사태가 벌어졌고 노부나가는 미츠히데를 심하게 질책하며 이에야스를 접대하는 임무에서 해제했다고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야스 흑막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노부나가가 심하게 질책한 이유는 물고기가 썩어서가 아니라 실은 미츠히데에게 이에야스를 은밀히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지만 미츠히데가 이를 수행하지 못하자(혹은 수행을 거부하자) 노해서 심하게 질책한 것이 아닌가라고 추측한다.

흔히 노부나가와 이에야스는 의형제를 맺은 사이로 알려졌지만, 실은 노부나가에게 이에야스는 이마가와와 다케다를 견제하기 위한 장기말에 불과했다고 이들은 본다. 그래서 다케다 가문이 멸망하게 되자 노부나가는 '이제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어진 이에야스를 완전히 복속시켜 가신으로 만들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멸망시킬 것인가.'하는 선택만을 남겨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야스도 이런 노부나가의 의도를 간파하고 미츠히데와 공모해 노부나가를 암살하게 된 것이 혼노지의 변이라는게 이 설의 핵심.

어느정도 정황적으로 봤을 때 이에야스로선 노부나가가 일본을 통일한 이후의 상황을 장담하기 힘들었던 것일 수도 있고, 노부나가의 살의를 눈치챈 이에야스가 먼저 선수를 치려했던게 아닌가라는 추측도 있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서는 "아케치의 병사들은 혼노지를 치는 것이 대체 무슨 유익이 있는가라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노부나가를 노린게 아니라 이에야스를 노린게 아닐까."라고 했다는 기록이나, "노인잡담"이라는 책에서 "아케치가 난을 일으켰을 때 이에야스는 이것이 노부나가가 틈을 보아 자신을 죽이려 한 것이다."라고 했다는 라는 것이 근거로 제기된다.

그런데 이에야스의 이용가치가 떨어졌다고 보기는 다소 애매한 감도 있는게 사실이다. 비록 다케다를 복속시켜 영지를 편입해도 동쪽에는 이마가와 잔당과 호조 우지야스호조 우지마사가 버티고 있는 결코 약소하지 않은 후호조씨세력이 있었고, 북쪽에는 우에스기 세력이 버티고 있었다. 게다가 츄고쿠에는 하시바 히데요시를 보내 모리와 일전을 치르고 있었다. 호조나 우에스기나 강성한 세력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동쪽을 막아줄 수 있는 이에야스의 이용가치가 여기서 주장하는대로 적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에야스가 노부나가로 인해 부인 츠키야마도노와 장남 노부야스를 잃은 원한을 풀려했다는 설도 있다. 미츠히데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미츠히데의 가신인 사이토 토시미츠의 딸인 츠쿠(후의 카스카노 츠보네)를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유모로 천거했다는 점에서 양측간에 뭔가 오고가는 것이 있지 않았겠는가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신중한 성격의 이에야스가 과연 이런 모험을 감수하려고 했겠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츠쿠를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유모로 천거한 것은 미츠히데가 아니라 교토의 치안을 맡았단 이타쿠라 가츠시게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미츠히데와 이에야스가 관계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에야스가 흑막이었다면 왜 히데요시보다 먼저 앞서서 행동에 나서지 않았겠는가라는 점 또한 이 설의 약점이다. 당시 이에야스는 히데요시보다 먼저 앞서서 행동에 나서기는 커녕 오히려 이가 닌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도망쳤기 때문이다.

2.5.6. 기타설


  • 노부나가 자작설: 노부나가가 모종의 이유로 미츠히데에게 명하여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것이라는 주장. 근거로는 노부나가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점을 꼽는다. 혹은 노부나가가 이에야스를 궁지로 몰기 위해 미츠히데에게 명한 것이 미츠히데가 진짜로 노부나가를 치는 바람에 혼노지의 변이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 노히메 흑막설: 본래 노히메는 아버지인 사이토 도산에게 "노부나가가 멍청이라면 그를 죽이고 오와리를 손에 넣어라."라는 비밀 명령을 받고 있었는데, 노부나가가 일본 통일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이 비밀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미츠히데와 공모해서 일을 벌였다는 설. 노히메와 미츠히데와의 관계에 대해선 미츠히데가 사이토 도산의 신하였다는 것부터[15] 심지어는 사촌지간, 비밀스런 연인 관계였다는 주장까지 있다. 실제로 미츠히데가 사이토 도산의 신하였던 것은 유력하기 때문에 노히메가 그에게 명령을 내릴수 있는 위치였던건 분명하다. 그러나 혼노지의 변을 전후로 노히메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점이나 혹은 노히메가 혼노지에서 노부나가와 함께 죽었다는 이야기도 전하기 때문에 이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애초에 혼노지 당시면 사이토 도산은 아들의 모반으로 죽고 노부나가는 성공적으로 미노 장악을 끝냈는데..뜬금없이 사이토 도산의 반쯤 농담인 밀명이 근거로 나오는게 우습다.)

  • 노부나가의 적들: 노부나가의 남은 적들이었던 츄고쿠의 모리 가문이나 시코쿠의 쵸소카베 가문, 큐슈의 시마즈 가문 등이 흑막이라는 설. 모리 가문의 경우에는 당장의 위급을 해결하기 위해서, 쵸소카베 가문의 경우는 시코쿠 무력정벌에 대한 원한으로, 시마즈 가문의 경우는 츄고쿠와 시코쿠가 무너지면 다음 차례는 큐슈일 것이기 때문에 불안감에서 노부나가를 암살하려 한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모리 가문의 경우는 미츠히데와의 연계가 없었다는 점, 쵸소카베 가문은 미츠히데와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점이 약점이다. 시마즈 가문의 경우는 조정의 문신들과 공모하고 이 문신들을 통해 미츠히데와 연결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시마즈 요시히사의 측근인 우와이 가쿠켄의 일기가 혼노지의 변이 일어난 1582년에 6월 2일부터 11월 3일까지의 일기가 공백이라서 우와이 가쿠켄이 시마즈 가문의 연루 의혹을 남기지 않으려고 일기 내용을 삭제한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이 있다. 그러나 우와이 가쿠켄의 일기는 그 외에도 수년 동안의 공백이 있는 탓에 이것이 증거가 되기는 어렵다는게 약점이다.

3. 변 이후

변 이후 츄코쿠에 있던 하시바 히데요시는 호죠 가문과 평화 협정을 맺은뒤, 변이 일어난지 열흘만에 귀환, 사카이에 있던 니와 나가히데, 오다 노부타카를 비롯한 노부나가의 잔존세력을 모아 쿄토로 진군했고 야마자키 전투에서 아케치 미츠히데의 군대를 물리친다. 미츠히데는 이 전투에서 후퇴하다 전사.

이에야스는 가신들과 핫토리 한조의 도움을 받아 사카이를 떠돌다 여러 번들과 이가의 산들을 넘어 이세의 해안에 도착, 자신의 영토인 미카와에 도착했지만 그땐 이미 노부나가의 영토들이 죄다 히데요시의 수중에 떨어진 이후였다.

타키가와 카즈마츠는 호죠 가문에게 역공당해 영토를 거의 다 뺐기고, 오다 가문에서의 위치를 상실해버린다. 시바타 카츠이에는 에치젠에서 우에스기 가문에게 역시 역공을 당해 큰 피해를 입고, 일년뒤 시즈카타케 전투에서 전사.

이로서 혼노지의 변은 며칠만에 종식되고 오다 가문의 모든 세력을 손에넣은 하시바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일본 최대의 권력을 손에 넣는다.



4. 혼노지의 변에 대해 다루고 있는 매체들

대체로 근래의 일본 사극들에서는 미츠히데를 모반을 꾀한 인물로 보기보다는 동정적이거나 우호적으로 그리고 있다.

  • 노부나가 킹 오브 지팡구: 1992년 NHK에서 방영된 사극. 당시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된 과로사 문제와 더불어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 반기를 드는 것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을 그린다. 미츠히데가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뒤 한 대사는 이제는 잘 수 있다(…). 미츠히데의 모반에 대해서는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식으로 본다.

  • 히데요시: 1996년, NHK의 사극. 여기서는 이에야스와 다도로 유명한 리큐가 서로 공모하고 노부나가에게 원한을 품은 미츠히데를 충동질하여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것으로 묘사한다. 마왕 급으로 묘사되는 노부나가는 신이...신이 죽다니!!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목을 베어 자결하고, 노부나가를 죽인 후 리큐는 미츠히데를 초청해 차를 대접하는데 차를 마시면서 미츠히데는 "이제야 차 맛을 알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드라마에서 노부나가는 과격한 마왕 같은 캐릭터로 나와 미츠히데의 어머니를 죽게 만들고, 미츠히데는 점잖고 부지런하며 가정을 사랑하는 모범적 샐러리맨으로(...) 나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 공명의 갈림길: 2006년 방영된 NHK의 사극. 여기서는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걸로 해석하며 노히메와 미츠히데의 관계에 초점을 맟춘다.

  • 미츠히데,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 남자: 2007년 후지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여기에서는 노부나가와는 달리 백성들을 위하며 평화적으로 일본을 통일하고자한 미츠히데와 히데요시가 서로 마음이 통하고 있는 가운데 미츠히데가 노부나가를 칠 것을 드러내고, 이후 히데요시에게 자신을 토벌하게 하여 히데요시로 하여금 일본을 통치하도록 했다는 상당히 비약이 심한(…) 설정으로 전개된다. 또 노부나가가 미츠히데에게 조정을 토벌하겠다는 의사를 드러내자, 미츠히데의 반응이 이상해진 것을 보여주어 조정을 지키기 위해 노부나가를 친 것이 아닌가라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 효게모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이자 다도가인 후루타 오리베를 주인공으로 한 만화. 여기에서는 권력욕에 가득찬 히데요시와 그를 이용해 예술의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야심찬 다인 센노 리큐가 공모하여 미츠히데로 하여금 모반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도록 교묘하게 몰고 간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미츠히데가 노부나가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혼자 혼노지에 잠입해 노부나가를 척살한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역사대로의 전개이긴 하다. 노부나가의 몸을 반 토막으로 벤 히데요시였으나 노부나가의 잘린 상하체가 다시 합체(…)하면서 노부나가는 히데요시에게 "이놈! 그 칼은 싸구려로구나!"라고 일갈하고 덤덤하게 걸어가서 앉아서 "대머리(히데요시의 별명), 어렴풋이 이렇게 될 건 알고 있었다"라고 말한 뒤, 자신의 피를 히데요시에게 한 잔 대접(…)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는 일방적으로 빼앗고 뺏기는 관계였지만 오직 너와는 동등하게 주고받는 관계였다[16]라고 한 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잘렸던 상반신이 그제서야 넘어가며 사망. 노부나가의 적장자인 노부타다는 니조에서 할복한 반면 동생인 나가마스는 할복하는 척 하다가 도주한다. 한편 혼노지에서 히데요시가 노부나가를 죽이고 도망치는 것을 목격한 노부나가 휘하의 흑인 사무라이 야스케가 이를 마자키 전투 직전에 주인공 후루타 사스케에게 알려주었고, 사스케는 증거로 삼기 위해 변란이 마무리된 후에 야스케를 보호하려고 하는데, 이것을 눈치챈 히데요시는 후루타에게 죽든가 진상에 대해 침묵하고 부하가 되든가 결정할 것을 강요한다.[17]

  • 몽환처럼(국내 번역명은 '일기당천 노부나가'): 이 만화에서는 미츠히데가 에스파니아의 선교사인 카브릴이나 조정의 신료들에게 충동질 하고, 더욱이 노부나가로 인해 가족을 잃은 미츠히데가 원한을 품어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것으로 묘사한다. 히데요시는 미츠히데의 모반을 어느 정도는 예감했지만 설마하니 모반을 할까 생각했다가 진짜로 모반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대성통곡한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모리 란마루와 함께 혼노지를 탈출하여 결국 모반은 실패로 끝나는 것으로 묘사된다.

  • 귀무자3: 게임 초반에 환마왕이 된 노부나가를 물리치기 위해 미츠히데가 군사를 이끌고 혼노지에 나타난 것으로 말하며, 미츠히데의 조카인 사마노스케가 노부나가와 싸우는 것으로 묘사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츠히데보다는 사마노스케에 초점이 맞춰졌다. 다만 미츠히데의 명대사로 널리 알려진 "적은 혼노지에 있다"라는 말은 나온다(……).

  •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천도에서는 미츠히데가 노부나가를 정이대장군에 취임할 수 있도록 공작했으나, 노부나가는 이것을 각하하고 미츠히데에게 서쪽으로 군을 수송할 것을 명령하고 스스로는 사의를 표할 뜻으로 조정에 갈 채비를 한다. 이 때 모종의 결심을 한 미츠히데는 노부나가가 혼노지에 머무른 날 밤에 야습을 감행한다. 아케치 대의 공격 대상은 혼노지 근처의 니죠 성이고 니죠 성의 성주는 노부타다로 설정되어 있다. 니죠 성이 함락되면 노부나가는 란마루에게 안쪽으로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때를 보아 불을 지를 것을 명한 뒤 안쪽으로 사라진다. 불타는 혼노지를 보며 탄식하는 듯한 미츠히데의 독백으로 혼노지의 변 이벤트는 일단락되며, 결과로 오다가는 사분오열되며 아케치는 야카미 성과 니죠 성을 수중에 두게 된다. 후속 이벤트로 회군하는 히데요시의 군에 대처하기 위해 야카미 성을 버릴지 말지의 여부를 정하는데, 여기서 야카미 성을 버리지 않을 경우 패배하고 미츠히데는 농민들에게 암살당한다. 니죠 성이 함락되지 않은 경우, 오다 가는 유지되고 아케치는 소수의 병력만이 남은 야카미 성에서 독립하게 된다. 여러모로 미츠히데가 주인공 격인 이벤트. 이벤트 내내 이어지는 미츠히데의 독백이 백미.

창조에서는 전국전 이벤트로 노부나가,노부타다,히데요시,미츠히데,카츠이에를 지정된 장소에 옮기면 실행된다. 이벤트 영상 후, 노부나가의 가독이 히데요시에게 계승되고 (만약 서국을 완전히 정벌한 이후라면 서국 전부가 히데요시의 영역이 된다)카츠이에는 북쪽, 이에야스는 동쪽의 전국전 이전 노부나가 영지를 계승하며 미츠히데는 니죠고쇼 주변 지역을 차지한다. 사이슈 오다가가 부활해 있으며 다른 노부나가 진영과는 아케치를 제외하고 모두 동맹 상태. 군사력이 충분하다면 시나리오 시작하자마자 니조고쇼로 쳐들어가 엔딩을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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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신장의 야망에선 시즌 6의 명칭을 혼노지의 변으로 결정.

  • 태합입지전 5: 여기서는 조정 흑막설과 아시카가 요시아키 흑막설이 결합된 형태. 미츠히데가 조정과 요시아키 둘에게 모두 사주를 받아 정변을 일으킨다. 미츠히데로 플레이하여 노부나가를 처치하고, 회군한 히데요시 부대까지 박살내면 역사대로 죽지 않고 계속 플레이가 가능한데, 어이없게도 미츠히데가 다이묘가 되는 게 아니라 아시카가 요시아키 소속 국주(삼국지 시리즈로 치면 군단장)로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를 격파하였다고 하더라도 세력 전부가 와해된 건 아니라, 주변의 히데요시, 가츠이에, 노부오, 노부타카는 물론이고, 도쿠가와와도 적대관계가 되어 난이도가 꽤나 높다. 물론 미츠히데는 국주 신분이라 마음대로 동맹을 맺을 수 있으니 사나다 가문과 동맹을 맺고 유키무라에게 풍림화산을 배운다면 난이도가 매우 낮아진다.[18]

  • 고에몬 : 이시카와 고에몬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최홍만이 나온다고 해서 꽤 말이 많았던 영화다. 하지만 복장 고증부터가 거의 안드로메다로 판타지 영화다. 여기서 노부나가가 꽤 비중있는 역할로 나오는데, 직접 사건이 나오지는 않고 플래시백 형식으로 나온다. 여기서는 히데요시가 흑막. 히데요시가 미츠히데와 정변을 획책하여 노부나가를 제거한 후 미츠히데까지 제거하여 주군 제거의 책임을 모두 미츠히데에게 돌려버린다. 그래 놓고 노부나가의 장례 때 큰 소리로 울어제끼는 이중성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여기서의 히데요시는 엄청나게 비열한 인물.

  • 전국무쌍 시리즈: 미츠히데가 '자신의 능력을 백성을 위해 쓰고 싶어하는 사나이'라는 컨셉이라 그런지 혼노지의 변은 노부나가의 패도가 과연 정도가 맞는가 하는 의문에 빠진 미츠히데가 고뇌 끝에 '자기 손으로 세상을 바꿔 보이겠다'는 이유로 정변을 일으킨다. 불타는 혼노지를 배경으로 노부나가와 미츠히데가 결투를 벌이는데, 노부나가로 진행할 때와 미츠히데로 진행할 때의 스토리가 다르다. 여기선 미츠히데와 노부나가 사이가 엄청나게 끈적끈적하다. 그런 가운데 노부나가에게 한을 품은 사이가 마고이치가 난입하는데…….
    2편은 다음과 같다.
    • 오다 노부나가 플레이: 노부나가가 미츠히데를 제 손으로 직접 베고 눈물을 흘린다!나의 노부나가는 이렇치 않다능! 그리고 미츠히데의 시신을 공주님 안기로 들고 불타는 혼노지로 들어가는 노부나가의 뒷모습. 이 이벤트는 노부나가 스토리의 엔딩이다.(외전 제외)
    • 아케치 미츠히데 플레이: 둘이 칼싸움을 벌이다가 마지막에 결국 미츠히데는 노부나가를 베지 않는다. 노부나가가 왜 베지 않았냐고 묻자 미츠히데 왈, "사실 당신이 만드는 세상을 보는건 누구보다도 내가 원했어!"밥상 다 엎어놓은 주제에 결국 모반 중 끈끈한 분위기가 형성되지만 뒤에서 사이카 마고이치가 노부나가를 저격. 노부나가는 "미츠히데가 만드는 천하, 이 노부나가도 보고 싶군."이란 말을 남기고 죽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츠히데의 절규. 이 장면의 미츠히데 표정은 정말 안습. 쓰러진 노부나가에게서 "살아라, 미츠히데"라는 말이 들려온다.
    • 사이가 마고이치 플레이: 사이가슈를 몰살시켰다는 한 때문에 노부나가를 저격한다. 하지만 저격한 후 내가 뭘 한 거지?라는 자괴감에 빠지는데……. 대충 노부나가가 없는 상황에서 천하의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 나는 개인의 원한 때문에 천하를 통일할 자를 죽인 건가 이런 상황이다. 그 혼란 속에서 안개가 낀 혼노지를 탈출한다. 자신을 쫓는 미츠히데의 부하들을 없애고 나가다 보면 죽었던 노부나가가 등장하는데, 깨고 보니 후마 코타로가 꾸민 것. 결국 탈출한 마고이치는 히데요시를 만나고, 설득돼서 히데요시의 천하를 돕게 된다.

  • 3편, 4편도 혼노지의 변의 기본은 이런 구조다. 중도에 배신의 계기가 추가되고 사이고 마고이치의 비중이 줄어들 뿐. 압권은 3편 오다 노부나가로 플레이시로 아케치 미츠히데를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천하가 자기 생각대로만 움직이는 천하는 재미없다며 미츠히데를 용서하고 불타는 혼노지 본전에 들어가 자살한다(...).

    4편 경우는 '오다의 장'에서 플레이 가능한데 미츠히데 시점만 존재.[19]불타는 혼노지 본전에서 노부나가와의 대결 중, 자신의 노부나가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끝내 그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지만, 노부나가는 그 특유의 무가치란 한 마디과 함께 미츠히데, 끝까지 배신해보거라.란 말을 남기고 불타는 혼노지 본전으로 들어가 역시나 자살한다.
    4-2에서는 '반역의 장'에서는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모반을 일으켜서 폭사하는 이벤트가 있었으나 죽지않고 살아남아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다. 이것을 숨기기 위해서 군기를 아케치 군의 깃발로 바꾸고 아케치 미츠히데가 모반한 듯 속였다. 이때 원군이 탈출하지 못하게 다 막은 후에 마츠나가는 노부나가, 미츠히데, 란마루, 노히메를 모두 죽이고 자신도 혼노지에서 폭사한다.
  • 천지인 : 노부나가가 우에스기와의 전쟁 중인 히데요시를 도우러 가라고 한 명령에 원한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나온다. 노부나가는 불 타는 침소에서 이미 죽은 우에스기 켄신과 심오한(……) 대화를 나눈 후 자결.

  • 우 ~공주들의 전국~ : 노부나가 님이 짱이라능!!!이라는 모토가 돋보이는 대하드라마. 아케치를 업신여기고 영지를 몰수하고 일부러 적대 중인 다이묘의 영지를 하사하면서 죽기살기로 공략하라고 한 것은 모두 아케치를 시험하기 위한 노부나가님의 웅대한 뜻이었다고 나온다(……). 심지어 이 작품에서 오다는 모리 란마루와의 대화에서 아케치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을 것이라는 발언까지 한다!! 아케치 미츠히데가 6살이나 연상인데 후계자라니! 그러나 결국 아케치는 노부나가의 심모원려를 알아채지 못하고 결국 변을 일으킨다. 사망하기전 노부나가는 조카인 고우의 환영을 보고 유유히 불타는 혼노지의 안쪽으로 사라진다. 노부나가를 빨아도 이 정도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 심지어 왜 백부를 죽였느냐는 고우의 질문에 스스로도 정확한 이유는 나 자신도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어이(……).

  • 수라의 각: 무츠원명류의 역사에도 일대 전환점이 된 사건. 무츠 타츠미의 쌍둥이 아들인 무츠 토라히코와 무츠 코마히코가 무츠라는 이름을 이어갈 자를 누구로 할 지 결정하는 싸움을 혼노지에서 벌인다. 노부나가를 이해하는 입장이었던 토라히코가 노부나가를 보호하기 위해 혼노지 본당으로 가려 하나 이를 코마히코가 막고 무츠의 이름을 걸고 싸움을 벌인다. 결과는 코마히코가 승리하여 무츠의 이름을 잇는다. 토라히코는 쓰러져 있다가 노부나가가 죽은 뒤에 시신을 수습하고 야마자키 전투에서 패주하는 미츠히데를 죽여버렸다. 그 후 토라히코는 불타버린 아즈치 성에 노부나가의 시신을 묻고 아버지 타츠미로부터 '후와'라는 이름을 받게 된다. 그 후 4백여년 후에 수라의 문의 주인공인 무츠 츠쿠모와 후와의 계승자 후와 호쿠토가 일전을 벌이게 된다. 미츠히데의 모반 원인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작가 와하라 마사토시는 야망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한다.

  • 4월 이야기: 이 영화가 혼노지의 변을 다룬건 아니고, 주인공이 영화관에서 혼노지의 변에 대한 영화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 속 영화에서 미츠히데는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는 사람으로, 이에야스가 그런 평화로운 세상에 어울리는 사람이란 생각에 혼노지의 변을 일으켜 오다 노부나가를 살해한다. 그러나 히데요시군에 쫓기는 미츠히데 앞에 노부나가가 나타난다. 미츠히데의 속셈을 파악한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에게 카게무샤를 시켰던 것. 노부나가는 자신이 이에야스의 이름으로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겠다고 선언하며 미츠히데와 그의 부하를 죽이는 장면에서 이 영화 속 영화는 끊기고 장면이 전환된다.

  • 오다 노부나가전(KOEI 영걸전 시리즈): 게임 후반부의 중요 전투. 게임 진행중에 나타나는 수많은 선택지들을 미츠히데를 패는 방향(...) 위주로 선택해오면 역사대로 미츠히데가 배신한다. 전투 전에 '도망친다'와 '포기한다'를 선택할 수 있는데, 포기하면 불타는 혼노지에서 자결하는 엔딩 동영상과 함께 게임 오버. 도망친다를 선택하면 전투가 시작된다. 적의 개떼같은 병력을 뚫고 북서쪽의 목표지점에 도달하면 미션 클리어. 적이 엄청 많긴 한데 멍청하게도 북쪽은 텅 비어있는 배치라 너무나도 쉽게 클리어 가능. 시작시에 사쿠마 노부모리와 하야시 히데사다[20], 그리고 몇 턴 지나면 원군으로 아들 노부타다가 등장하므로 얘들로 적당히 길막해주며 그냥 도망가면 된다[21]. 전장이 교토라서 동서남북으로 가도도 시원시원하게 뚫려있는데다가 적군은 대부분 보병인데 노부나가는 기병이라 일찌감치 달아날 수 있다. 참고로 이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면 도망가던 노부나가가 강가에서 체포당하고 안습하게도 미츠히데 면전에서 참수당한다(...)

  • 바사라 2: 작중 시대 배경이 이 때로 미츠히데는 플레이어블 중 하나로, 노부나가는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 오다 노부나의 야망: 전국시대 대체역사물+모에화 작품. 아직 전개상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포지션에 있는 주인공을 두고 히로인인 오다 노부나와 아케치 마츠히데가 삼각관계를 이루면서 혼노지의 변의 씨가 되고있다. 물론 주인공은 이를 막으려고 하고있다.

  • 가면라이더X가면라이더 가이무&위자드 천하를 겨루는 MOVIE 대합전 : 전국무장 노부나가가 최후를 맞이하는 교회의 이름이 HON-NO-JI다.

  • 왜란종결자 : 직접적으로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마수들에게 영혼을 판 오다 노부나가아케치 미츠히데가 일본 각지의 고승들의 법력을 받아 물리친 것으로 작중 인물들이 추정한다. 하지만 나중에 마수들이 히데요시와도 계약해서 도로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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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불교 세력인 고야잔이 아직 노부나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고 기이 지방 무사들도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던지라 완전히 장악한 상황은 아니었다.
  • [2] 이는 단순히 비가 세상을 적시는 5월 풍정 혹은 노부나가가 지배하는 세상의 5월 풍정을 노래한 글(時は今 天が下知る 五月哉)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발음인 ときはいま あめがしたしる さつきかな는 "토키(土岐)는 지금, 천하를 지배하는 5월이로다"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는 '토키(土岐, 무로마치 바쿠후가 미노 슈고로 임명하여 미노를 지배한 집안으로, 아케치 가문의 원류이다)출신의 내가 바야흐로 이 5월에 천하를 호령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미츠히데가 노부나가를 칠 것임을 암시한 걸로 해석하지만 이 해석에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天が下는 天下, 知る는 支配する의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 [3] 1580년 절을 대대적으로 개증축하여 성채를 갖춘 절로 탈바꿈된 상태였다. 2007년 혼노지가 있는 일대를 발굴한 결과 이런 흔적들을 확인했다고 한다.
  • [4] 이 말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에도 시대의 라이 산요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그나마도 역사 기록이 아니라 라이 산요의 시 한 구절이다. 그렇기에 미츠히데가 정말로 이 말을 했는지는 불확실하며, 이 말 자체는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 [5] 현재 일본에서 이 말은 적은 내부에 있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 [6] 대체로 새벽 4시로 추정한다.
  • [7] 아케치 가문의 문장이다.
  • [8] 미카와모노가타리三河物語에 의하면 "죠노스케(城之介=노부타다의 옛 관직명)가 배신했나"라고 했다고 되어 있다. 미카와모노가타리는 신빙성이 좀 의심되는 사료긴 하지만.
  • [9] 하지만 이것은 노부타다의 판단 착오였다. 미츠히데가 포위를 하고는 있었지만 포위망이 허술했던 탓에 오다 나가마스 등은 도망칠수 있었다. 노부다타가 니조성이 아닌 아즈치 성으로 도망쳤다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노부타다의 운명이 거기까지였던 모양.
  • [10] 히데요시가 하리마노쿠니의 칸키성 공략 시나 미타 성을 공격할 때 원군으로 히데요시를 구원했던 적이 있었다. 게다가 히데요시가 비록 천한 신분 출신이라고는 해도 미츠히데보다 먼저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기 때문에 히데요시가 선배인 셈이고 미츠히데도 여기에 딱히 이론을 제기한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 [11] 이 쪽은 우에스기 가문을 말하며, 진수성찬을 대접해 드려야 한다는 것은 협력을 의미한다고 해석된다. 우에스기 가문이 진수성찬을 대접해 드려야 할 존재가 대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아시카가 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12] 사쿠마 전쟁기의 기록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 [13] 효우게모노의 경우, 여기서는 히데요시가 슬쩍 미츠히데를 간접적으로 부추겨 미츠히데가 스스로 봉기하게 유도(+ 아직 정복도 제대로 못한 촌구석으로 보내려함)했다는 설정이다.
  • [14] 단 류성룡은 히데요시가 전왕을 몰아냈다는 기록과 함께, '다른 얘기도 전해지는데 전왕은 다른 이에게 죽었고 히데요시는 그 자를 없앤 후 왕이 되었다고 한다'는 이야기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 [15] 통설로도 미츠히데의 집안이 사이토 도산을 섬겼다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물론 그렇다고 노히메와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는 못 되지만.
  • [16] 후일 주인공인 후루타와 히데요시도 같은 관계를 갖게 되는데, 정치적인 득실을 계산하거나 밀고 당길 것 없이 그냥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사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말년의 히데요시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인 노부나가를 명예욕, 출세욕에 눈이 멀어 죽인 것에 대한 후회 때문에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 [17] 본심은 이런 형태로 후루타에게 일부러 노부나가를 죽인 죄책감을 털어놓고 편해지고 싶어서.
  • [18] 히데요시와의 이벤트 전투에서도 큰 도움이 되며 미츠히데는 1582년 시나리오에선 시작부터 국주이므로 다케다 가문이 망하고 사나다 가문이 독립하자마자 풍림화산을 배워두는 것을 추천.
  • [19] 덕분에 플레이 가능 무장이 아케치 미츠히데 외에는 다 싹쓸이 오다군 이외의 인물로 교체되어 버린다. 분명 오다의 장인데(...)
  • [20] 다만 이들을 추방했다면 원군으로 나오지 않는다.
  • [21] 실제 역사에서 노부타다는 혼노지의 변 때 사망하지만 노부나가가 도망치는데 성공하면 얘들은 퇴각하더라도 사망처리되지 않고 바로 다음 전투에서 버젓이 살아 돌아오니 굳이 살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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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6 19: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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