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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비

last modified: 2015-03-16 22:13:26 by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와 활동
1.1. 디스코그래피 (음반 목록)
1.2. 엔터테이너 활동
1.2.1. 방송출연 및 예능
1.2.2. 알앤비 디바로서의 이미지
1.3. 주요 출연활동
2. 성대결절 및 가창력 논란
3. 가창 및 멀티 보이스 컬러
4. 싱어송라이터
4.1. 작사작곡 목록
5. 트리비아


1. 소개와 활동

대한민국가수. 1982년 2월 11일생. 전북 군산 출생.[1][2]

본명은 박미영이었다가 박레아로 개명하였다. 예명 역시 (박효신 1집 등에 피처링하던 시절에는) 박노미였다가 데뷔하면서 박화요비로 바꿨다. 화요비라는 이름은 '이름을 지은 날(화요일)과 火ようび?[3] R&B의 B(...)'에서 따 왔다는 이야기와 '화요일에 내리는 비'의 줄임말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4] 그녀는 이후 인터뷰에서 각자 기억하고 싶은대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하기도 했다.

소속사는 신촌뮤직과 S&b Ent, 라이온미디어를 거쳐 호기심스튜디오레이블에서 싱글을 냈었고, 이후 합병한 주니힐 엔터테인먼트에서 10월 앨범 발매 예정.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지만, 클래식을 접고 실용음악과로 진로를 바꾸었다. 1집 앨범이 나오던 시절부터 집안의 반대도 어느정도 누그러져갔다고. 그녀는 만약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피아노를 치고 있을 거라고 언급하였다.

포항MBC 라디오 '별밤 뽐내기' 연말 결선에서 이희진의 `용서'를 불러 대상을 타고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 당시에는 박화요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지만, 일본 진출을 위해[5] 예명을 화요비로 바꿨다.

박화요비만의 특유의 뭔가 주술적인 느낌을 좋아하는 팬들도 있지만, 본인은 바뀐 이름에 대해 만족한다고 한다. 다만, 이름을 바꾼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인터넷 뉴스 등에서 아직까지도 '박화요비'로 표기하는 경우가 남아있다. 금영 노래방 등에서도 가수 이름을 처음에 '박화요비'로 등록해놓았기 때문인지 화요비로 바꾸지 않고 박화요비로 남아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점차 사라질 부분이거나 익숙해질 부분.

그녀의 데뷔앨범인 1집 'My all'은, 앨범 타이틀명처럼 당시 그녀의 모든 것을 담은 앨범으로서 타이틀곡 뿐만 아니라 전곡을 타이틀곡으로 선정해도 될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1집을 내고 타이틀 곡 'Lie'의 인기에 힘입어 두 차례의 콘서트를 열고 인기와 실력에 힘입어 창작 뮤지컬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신인으로서는 보기 힘든 업적을 남겼었다.

빠른 생일이지만18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보적인 가창력과 성숙한 목소리로 주목받았으며, 박효신 등과 함께 국내 R&B 아티스트의 대표주자였다. 당시는 박정현, 박화요비, 박효신의 이른바 '3박 알앤비 남매' 시절. 당시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해 환상적인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고 같은 소속사였던 박효신과의 듀엣곡 라이브도 선보였다. 본인의 노래뿐만 아니라 머라이어 캐리 등의 팝을 굉장한 실력으로 소화했다. 화요비의 유명한 팝송 소화 능력은 데뷔때부터 증명된 셈.

1년만에 2집 'Nineteen Plus One'을 내고 자신이 작사한 타이틀곡 '눈물'로 활동. 판매량은 1집에 비해 다소 부진하였지만 환상적인 가창력과 라이브 무대로 주목받았다.

정봉 원곡의 '어떤가요'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타이틀곡으로 한 3집 'Because I Love You' 활동은 '가창력 좋은 가수, 박화요비'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고 판매량 자체도 좋았다. 후속곡인 '끝이 보일때쯤' 뿐만 아니라 수록곡 '사랑은'도 라이브 무대를 많이 가지는 등 다른 수록곡의 인기도 좋았다.

그 이후로는 4집 'Soul saver'의 타이틀곡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보아요', 이하 당키세 활동을 기점으로, 아래 항목에서 후술할 예능활동과 더불어 대중적인 인기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당키세는 화요비의 앨범 타이틀곡 중에서도 1집의 '그런일은'과 더불어 굉장히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곡으로 팬들 사이에서도 역시 지명도가 높다. 원곡은 일본 가수 코야나기 유키의 것인데, 원곡의 락 요소를 발라드적 요소로 편곡하고 가사도 일부 바꾼 리메이크곡. 이후 SBS '김윤아의 뮤직웨이브'에서 두 가수가 한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

이후 일본 활동, 일부 팬들 사이에서 화요비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5집과 리메이크 앨범을 거친다.

2007년, 몇년 전부터 앓아오던 성대낭종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았다.
수술 회복 이후 2008년 초 6집 활동을 시작하고, 예능 우리 결혼했어요로 큰 인기를 얻었다. 특유의 환희와의 앙상블은 코믹 그 자체. 자세한 사항은 후술할 항목 참조.

예능의 파급력은 음원에도 미쳐, 그 때를 즈음 하여 냈던 음원인 반쪽, 나 같은 여자, 마취 모두 음원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KISS KISS KISS는 논외로 친다 정규 7집 타이틀 BYE BYE BYE는 당시의 음원 강자였던 원더걸스의 2DT를 위협하는 성적을 냈다.

2013년 9월 9일, 서울종합예술학교의 실용음악예술학부 보컬과 겸임교수로 임용.

새 미니 앨범 '820211'의 선공개곡인 '마주보기'와 함께 다큐 에세이를 공개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화요비와 함께 출연한 김성주가 나레이션을 맡았다.

2014년 12월 30일, 앨범 발매전 연말공연에서 실신하여 콘서트가 취소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전액 환불 조치를 해주고, 소속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요비가 무릎을 꿇고 사과 동영상까지 올리는 등 상황이 어두웠지만 현재는 잘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 1월 15일, EP 앨범 '820211'을 발매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1.2. 엔터테이너 활동

1.2.1. 방송출연 및 예능

데뷔초부터 지금까지 주로 음악프로그램 위주로 활동하였다. 공중파, 케이블, 지역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꾸준히 출연하였다. 당시에는 활동시기에 긴 공백기가 거의 없어서 TV 음악프로그램에서 그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나중 이야기지만, '윤도현의 러브레터'에는 많이 출연한 가수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4집 활동 도중, 추후 화요비의 제 2의 전성기를 열어준 예능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난 예능 프로그램은 KBS 2-TV의 상상플러스로, 그 전에는 음악방송에만 출연해왔기 때문에 그녀의 발언과 화제성의 파급력이 더 컸다고 볼 수 있다. 이휘재를 비롯한 출연진들을 빵 터지게 한 '케이블 TV는 한 것을 자꾸 틀어준다는 발언'(...)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비슷한 기믹을 이어 '비디오' 관련 소재를 SBS X맨을 찾아라에서 사용하여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비디오 기믹의 유느님과의 콤비네이션이 유려하다!

이후 출연한 SBS X맨을 찾아라를 기점으로 대중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얻으며 화요비란 가수, 아니 '연예인'이자 방송인을 대중에게 알리는 확고한 기회가 된다.

이전의 예능출연에 비해 더더욱 대중적인 알림과 이미지를 구축한 것은 2008년 한가위 특집부터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
지고지순(?)한 여성적인 매력이 부각되고 특유의 말투와 캐릭터성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로 무뚝뚝한 남자인 환희와의 앙상블은 팬들 입장에서보면 거의 환상 그 자체였다. 환희의 다소 마초적인 모습까지 화요비에 대한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도를 상승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이래저래 시너지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던셈. 이후 언터쳐블의 슬리피와 연애 사실이 알려지며 '가상결혼'에 대한 진실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한동안 고정출연한 예능 출연은 없다가 2013년 2월 22일, 마스터셰프 코리아 셀러브리티의 출연자로 참가했다. 평소 요리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보이던 터라 팬들의 이목 집중. 발 부상으로 깁스를 하고 나오는 투혼을 발휘.근데 이거 누구한테서 많이 본거 같은데? 소속사가 문제라고!

1.2.2. 알앤비 디바로서의 이미지

그녀의 연이은 예능 출연이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변화시켰다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다. 실제로 (박)'화요비'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노래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웃기는 사람(...)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늘은 것을 보면 예능의 파급력, 나아가 미디어의 영향력은 방기할 수준이 아니다.

다만 그녀가 예능을 위한 예능을 찍은 것이 아니라, 가수이기 전에 연예인이자 방송인으로서 예능에 출연한점, 본인 스스로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예능 활동에 따른 이미지 변화에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 등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무엇보다 음원 성적으로 연결될만한 예능 출연은 당시에나, 향후 음악 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특별히 논란이라고 부풀려 말할만큼 논란은 아니었지만, '디바 이미지'가 흔들릴만큼의 행보는 '스타 화보'에서 다시 드러났다. 두 차례에 걸쳐 '스타 화보'를 찍어 디지털 판매를 한 이력이 있었는데, 노출도가 ' 스타 화보다워서' 대중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이전의 그녀는 라이브 무대든 어디서든 신체적인 노출이 거의 없었고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주목은 클 수 밖에 없었다. 화보 자체도 팬이든 아니든 본 사람은 입을 벌리게 될만한 수위였기도 했고.

후술할 '가창력 논란'과 더불어 예능 출연, 스타 화보 촬영은 '알앤비 디바'로서의 화요비의 이미지를 바꾸게한 요인이 되었다며 아직까지 걱정을 하는 팬이 남아있는 편이다. 정작 본인은 예능출연이든 화보 촬영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기에 팬으로서 그녀의 다짐과 사상을 믿어주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1.3. 주요 출연활동

2. 성대결절 및 가창력 논란


정규 6집 앨범 녹음 중, 성대 결절 진단을 받아 성대 수술을 받고 잠시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그 이후로 화요비의 가창 스타일은 최대의 변화를 겪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음색의 변화를 '성대 수술이 잘못 되어서 기량이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명백한 오해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목 상태가 가장 나빴던 건, 5집 활동 당시. 성대 수술이후는 그 경과가 좋아 '데뷔 당시처럼 맑은 목소리'를 낼 수 있던 상태라고 한다.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수술 이후가 녹음하기 더 좋은 목상태라고 한다.

스타일의 변화는 어디까지나 흑인 음색과 네오 소울 장르[6]를 추구하는 본인 희망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흔히들 알고 있듯이[7] 성대 수술 때문에 음색이 변한 게 아니다. 애초에 성대 수술 때문에 음색이 변하는 경우는 없다. 창법이 변했기에 음색이 달라진 것처럼 들리는 것 뿐이다. 다만 화요비는 흔한 '성대결절'이 아니라 유착성 '성대낭종'에 가까워 혹을 제거해야 했기에, 다른 가수들의 성대결절과는 많이 다르다고 볼 수도 있고 이에 따른 견해들은 충분히 다를 수도 있다.

다음은 그녀가 건재하다는 증거들.

  • 성대 수술 후인 08년도 콘서트에서는 데뷔 초반의 음색으로 어떤가요,그런일은 등등 성대 수술전의 스타일을 완벽히 재현했다.
  • 2011년 i'm ok 활동 당시 휘트니 휴스턴의 run to you, why does it hurt so bad을 대학 축제에서 완벽히 소화.방송에선 안부르고! 성대 수술전 커버보다 더 감명 깊게 들은 사람이 많다.
  • 2011년 유희열의 스케치북 출연 당시 변화된 창법으로 어떤가요를 불렀지만 최고음 부분에서는 성대 수술전의 음색이 짙게 묻어 나왔다.
  • 자신의 의향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는 드라마 OST에서는 성대 수술전의 음색을 풍기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으로 '마취'.

결론은 '그때의 음색 및 고음은 못 내는게 아니라 안 내는 거다.'

사실 본인도 인터뷰에서 '생각을 많이했고, 다른 음악이 좋아졌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그 시점을 기준으로 본인의 음악지향점에도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목이 점점 안 좋아지던 수술 전이나 현재나, 목상태에 따라 소리를 어떻게 낼 것인지, 무엇을 표현을 해야하는지 완벽하게 아는 천재적인 가수.

또 데뷔 햇수가 10년을 가뿐히 뛰어 넘는 가수가 단순히 대중나가갤러의 말에 자기 스타일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터.

그녀도 자신의 지향점이 흑인음악과 R&B, 소울이기 때문에 머라이어 캐리를 모창하던 시절의 자신은 볼 수 없을 거라고 하였으니..[8]

13년 4월 2일 본인도 이점에도 대해서 스스로 인증. 데뷔 초 때의 창법과 목소리로 '언제나 부를 수 있다. 앞으로 앨범 내에서도 선보이겠다.'

실제로 전성기 시절의 목상태, 컨디션 등을 별개로 놓고 본다면 가창력 자체는 지금이 넘사벽급으로 잘한다. 감정 표현, 가사 전달력 등에 있어서 그녀의 가창력은 현재가 최상이다. 다만 고음과 성량을 가창력의 척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국내음악의 척도상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을 뿐이다.

다만 대중가수는 대중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의 활동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화요비의 이전 음악들은 이른바 '마이너 발라드'로 실력과 음악성에 걸맞는 인기나 음반판매량은 가지지 못했다는 시선이 많은데, 새로운 음악지향점이 또다시 대중성이 결여된다면 이 역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이래저래 '대중성'은 화요비와 자주 얽히는 단어.

그 외, 라이브 무대 등에서의 기복이 많았던 모습과 달라진 창법 등으로 인해 본인의 예전 노래를 부를때 다르게 들리는 느낌 등으로 가창력 논란은 '성대수술의 실패'로 기정사실화 되어 부풀려진 감이 있다. 그녀는 이런 논란을 불식시키는, 콘서트에서의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9]

그리고 수술과는 별개로 데뷔한지도 10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에 10대 후반 전성기 시절의 가창력을 요구하는 건 화요비 아닌 다른 가수라도 무리가 따르는 현실이기도 하다.

3. 가창 및 멀티 보이스 컬러

화요비의 음악적인 강점을 고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고음도 고음이지만 화요비가 다른 아티스트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창법으로 다양한 음색을 구사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면, 이제껏 내왔던 정규앨범은 물론 미니앨범까지 각 앨범마다 전부 창법과 음색이 다를 정도로 10년이 넘는 가수생활에서 다양한 음색을 선보여 왔다. 때로는 음악적 지향에 맞추어서, 앨범 컨셉에 맞추어서, 팔색조 같은 목소리의 매력을 자랑하는 그녀. 화요비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하는 올드 팬들은 목소리만 들어도 이게 몇년도에 불렀던 노래인지를(!) 짐작하기도 한다.

그녀는 EP앨범 '반쪽'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 '가수가 이 노래 저 노래 똑같이 부르면 곡 느낌이 살지 않는다'고 멀티 보이스 컬러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고, 5집 활동 당시 인터뷰에서는 창법이 바뀐 것에 대해서 자신의 꿈은 '멀티 보이스 컬러'라고 밝힌 바 있다.

데뷔 초기의 맑은 음색을 필두로한 테크닉 중심적인 음악에서부터 점점 감성과 소울이 짙어졌다고 하는 5집까지의 가창은 그녀의 목 상태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10] 성공적인 성대 수술 이후의 가창은 '가사중심적이고 감성중심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의향을 확실히 따라가고 있다. 6집에서의 음색은 오히려 5집의 그것보다 부드럽지만, 7집부터는 현재의 목소리로 노선을 전환, 현재는 아무도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가수가 되었다. 현재 팬들도 1~5집을 명반으로 추천하고 있고, 이후 그녀의 음악 역시 팬들 지명도가 굉장히 높은 편.

4. 싱어송라이터

데뷔 앨범때부터 작사와 작곡에 일부 참여했다. 앨범의 숫자가 더해갈수록 참여도도 높아지고, 아예 앨범을 자체 제작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2010년 7집을 기점으로 출연한 방송에서는 '싱어송라이터 화요비'로 MC의 소개 멘트가 바뀔 정도.
싱어송라이터의 본격적인 시작의 앨범인 7집 앨범의 성공 후,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곡을 쓸때는, 느낌이 오는 날 짧은 시간에 완성하는 편이고 '오늘은 날이 아니다' 싶으면 억지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타 가수의 노래를 작사하기도 한다. 대표곡은 윤하의 '오늘 헤어졌어요'
2013년 10월 31일, 남성 솔로가수 '신재'의 타이틀곡 '이 노래 듣고 니가 돌아왔으면'에 작사,작곡,코러스까지 참여하여 작곡까지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절친인 거미의 2014년 6월 10일 자정 공개된 새 미니애범에 휘성과 함께 자작곡을 선물했다. 자세한 것은 /작사작곡 목록 항목 참조.

4.1. 작사작곡 목록

해당 항목 참조.

5. 트리비아

  • 피아노를 잘 쳐 예전의 장래 희망은 클래식 피아니스트 였다는듯. 인터뷰에서도 가수를 하지 않았다면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 성격이 특이하다. 보자마자 알 수 있다 말투 등과 더불어 예능에 매우 적합하고 흥행력(!)도 좋다.
  • EP앨범 '반쪽' 활동 당시 카라의 한승연과, 강민경핑클의 '내 여자친구에게'를 커버한 적이 있다.흠좀무. 포지션은 옥주현이었다. [11]
  • 틴탑 팬이다..라고는 하지만 진중한 노래를 하는건 B1A4산들이라고 생각하는 듯..혼나야겠어요!![12]
  • 언터쳐블의 랩퍼 슬리피와 공개연애를 했었다. 차후 공개 연애는 안할 거라고.
  • 본인 말에 따르면 불같은 사랑을 하는 여자라고.
  • 청담동 황금 비율이 본인 별명.사실은 폭탄주 제조 비율이라고
  • 은근히 문신을 많이 했다. 팔과 다리에 새긴 문신은 성경구절이라고.
  • 창법만큼이나 비주얼도 다이나믹한데, 캐릭터가 확실해서 그렇지 사실 앨범 낼 때 마다 비주얼그리고 살이 확확 변하는 편. 앨범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점점 아름다워진다.
  • 뛰어난 가창력에 대한 일화들이 상당히 많다. 성시경이 여러 차례 그녀의 가창력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 대한민국에서 가장 팝을 잘 소화하는 가수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영어 발음도 수준급이고 팝 표현력과 완창 능력이 출중해 가끔은 본인 노래 라이브보다 팝을 더 잘 소화하기도. 어느 팝을 불러도 기본 중박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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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아버지가 군무원이었던지라 3살때 경북 포항으로 이사가고 어린 시절은 포항에서 보냈다. 고등학교도 포항에서 졸업했다.
  • [2] 데뷔 초에는 창법이나 음색만 보고 윤미래처럼 미국 본토 교포 출신이겠지 하는 오해(?)를 받았었지만 토종 한국인(...)평상시 말하는 스타일도 우물쭈물 어리바리컨셉으로 웅얼거리는게 많아서 아직까지도 교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 [3] 물론 화요일은 일본어로 かようび라고 읽는다.
  • [4] 화요일에 태어나서 화요비란 말이 있지만 전혀 사실무근. 1982년 2월 11일은 화요일이 아닌 목요일이었다. 목요비
  • [5] '박화요비'의 '박하'가 'バカ' 로 들릴 수 있다.
  • [6] 데뷔 때 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언급한 장르
  • [7] 팬들도 모른다..
  • [8] 그녀의 달라진 팝송 커버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지금의 음색은 발라드보다는 R&B 팝송에 적절하다.
  • [9] 위의 방송에선 안 부르고!는 팬의 안타까움이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공연 무대나 콘서트에서는 예전과 다를바 없는, 아니 예전보다 훨씬 풍부해진 가창력을 자랑하는 그녀인데 유독 방송 라이브 무대에서는 그 이상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편은 아니라서...
  • [10] 지금은 리즈 시절로 보는 2~3집 활동 당시에도 1집 때와 창법과 음색이 바뀌었다고 성토하는 팬들도 많았다.
  • [11]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조합일 수 있는데, 그 당시 화요비는 20대였고 한승연과 강민경이 지금과 같은 위상이 아니었고, 당시 화요비는 우결로 상한가를 달리고 있었으니, 그중에 나름대로 가장 핫한 스타였다...
  • [12] '불후의 명곡'에서 그룹 '틴탑'의 무대를 보고 한 조언. 꽤 직접적이었기에 일부 틴탑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된 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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