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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

last modified: 2015-04-14 14:46:03 by Contributors

Contents

1. 무기
1.1. 개요
1.2. 형태
1.2.1. 칼날의 단면
1.2.2. 칼날의 휘임각과 대체적인 형태
1.2.3. 방패
1.2.4. 잠금장치
1.2.5. 칼자루
1.3. 환도의 휴대 방법
1.4. 환도의 제작법
1.5. 환도의 정체성에 대한 비교
1.6. 현대의 환도
2. 한의학에서 말하는 자리의 하나
3. 수도의 복귀

1. 무기


조선시대의 <긴 외날을 가진 단병기>를 대체로 이르는 명칭. .

1.1. 개요

<조선왕조실록>에는 운검, 패도, 패검등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름이 다를 뿐 환도의 일종이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예도, 쌍수도, 쌍검, 왜검 등의 명칭이 나타나지만, 이들은 검범의 명칭일 뿐이며, 실제로는 대부분 환도를 사용하여 수련했다. 우리나라의 기록에서 환도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것은 고려 충렬왕 때이며, 중국에서는 원나라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조선조의 구부러진 환도는 초원에서 널리 유행한 외날 곡도가 몽골의 영향을 받아 고려말부터 유입된 것이 유래이며,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철제대도나 6세기 후반부터 등장하는 심부대도는 칼코등이를 갖추고 뒤에 환두가 작아지는 등 환도와 유사한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곧은 칼날을 갖고 있다.참조링크
길이는 비교적 짧고 칼의 휘임은 일반적으로는 중국과 일본 칼의 중간 정도지라지만 실제로 남아 있는 유물로 보면 그 정도가 제각각이다. <세종실록>과 <국조오례의>의 설명을 보면, 당시의 환도는 칼머리에 두석 장식을 둘렀고, 칼자루에는 구멍을 뚫어 홍조수아紅條穗兒를 드리웠으며, 칼자루감개나 칼자루싸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칼집은 어피로 감싸고 검은색이나 주홍색으로 칠했다.

조선 전기의 환도 규격은 다음과 같다(영조척).
  • 보병용 : 칼날 55.63cm / 자루 20cm / 합계 73.63cm
  • 기병용 : 칼날 49.60cm / 자루 16cm / 합계 65.60cm

개국 초에는 이후부터 병사들이 패용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멋대로 환도의 칼을 분질러서 짧게 해 들고 다니거나 심한 경우 칼 자루만 남겨두고 칼날을 없애는 막장스러운 짓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문종이 법적으로 기병과 보병의 환도 길이를 규정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문종 당시의 척법을 적용하면 여전히 짧다. 기병도의 날 길이가 기껏 해야 30cm~45cm 정도로 계산된다. 후대의 영조척을 적용하면 위와 같이 어느 정도 검의 길이가 나온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영조척을 적용해서 칼 길이를 계산하는 경우가 있으나, 문종 역시 화력적인 측면을 강조하면 면을 볼때 주무기로써의 검이 아니라 호신용 내지는 최소한의 방어를 위한 보조 무기로써의 길이를 규정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선시대의 병사들은 일반적으로 활 1~2자루에 화살 20여 대, 갑옷과 환도를 착용한 중무장이었기 때문에, 이 상태로 300보를 달려갈 수만 있어도 갑사(직업군인)로 채용될 수 있었다.[1] 때문에 가벼운 검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갑옷 때문에 찌르기에 효과적인 직선형의 짧은 칼날을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도에 대항하기 힘들다는 것이 확인되어 환도의 길이가 90cm까지 늘어났지만, 결국 조선 후기에는 환도 자체가 의장품화되어 50cm 정도의 짧은 환도나 아예 대나무로 만든 것들이 제작되었다.

1.2. 형태



사진은 왕의 호위무사인 운검이 소지한 환도인 운검(雲劒).[2]


sbs드라마 무사 백동수에 등장했던 칼 소품들. #

1.2.1. 칼날의 단면

blade_cross_sectio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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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환도는 상당수가 배형도로서, 이 경우 단면의 구조가 완만한 배 모양이다. 이는 중국에서도 당나라 이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 <성호사설>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의 육각도(일본도)를 얻으면 칼등의 경사면을 갈아내서 배형 구조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3]

일본도와 같은 육각구조나 조각도와 같이 한쪽만 깎아 날을 세운 편삼각(사각형)구조도 있다. 일각에서는 편삼각도와 배형도를 혼동하는 것 같은데, 배형도는 칼등이 둥근데 반해 편삼각도는 각이져있고, 칼날 부분은 배형도는 날이 중간에, 편삼각도는 한쪽에 치우쳐있다.

1.2.2. 칼날의 휘임각과 대체적인 형태

사실 한중일 각 문화권의 도검의 휨을 각각 평균내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무의미한 일이다. 동시대, 한 문화권 내에서도 칼날의 휨은 개개의 차이가 워낙 컸다. 단지 조선 초기에는 직도에 가깝게 변화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이후에는 일본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아 곡도 형태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그 휘임 정도는 제각각이었다. 사실 일본도 또한 5cm에 달하는 휨을 가진 물건에서 거의 직도에 가까운 2,3mm 수준의 휨을 가진 물건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일본도의 평균적인 휨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조선의 칼은 칼날과 칼끝이 모호하고 칼끝이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약간 솟아오른다는 얘기도 있고 그에 반하여 그런 얘기는 통칭 버선코형 칼끝이라 부르는 요코테와 킷사키의 선을 재현할 능력이 없던 국내 도검사의 변명거리라는 의견도 있다.[4] 사실 일본도의 킷사키는 그런 식으로 접어 올리지 않으면 그 부분에 신가네가 노출되어 버리는 재질/제법상의 한계 때문에 만들어진 방법이므로, 통짜 쇠를 쓰거나 접쇠를 쓰더라도 칼뿌리 부근에만 시우쇠를 덧대는 조선환도에서는 채용할 필요가 전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구성을 버리고 절삭력에 올인한 '작품'이 아니라 엄연한 군용 보급품이었음을 명심하자.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일본도와는 마무리 연마방식이 다른 조선환도에서는 따로 요코테가 생기지 않으며,그러한 면모에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일본도의 날을 사용한 환도라고 해도 의도적으로 남겨두는 경우는 없다. 환도로 환장한 이후 실제 사용하지 않거나 따로 날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면 남아있을 수도 있으며 실물 환도를 보면 칼날에 다양한 형태가 공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전기부터 일본도를 수입했었기 때문에 일본도의 칼날을 사용하거나 영향을 받은 물건도 물론 있었다.

동래성출토환도유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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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성 출토 환도 유물, 다양한 형태가 공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런걸 따질 필요도 없는 것이 칼을 일본도처럼 고유의 형식을 중시해서 만든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실용적인 병기로서 만든 나라가 조선인데 저런 형식적인 모양새를 굳이 일일히 생각해서 넣었을리가 없다. 어떤 경우엔 그냥 일본도를 손질해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는데.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요코테나 버선코 같은 칼 끝의 형태를 특정하지는 않았으며 칼날 단면의 형태도 다양하기는 하지만 일본처럼 특정한 형식을 정해 따로 구별하지는 않았다,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환도.

조선 후기 관료인 병화 이형상의 유품들 중 일부. 중간에 곡도(曲刀, 장도長刀라고도 한다.)는 임란 이후 조선 도검양식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칼의 크기는 길이 67.8㎝, 폭 3㎝, 자루길이 12.3㎝다.


임경업 장군이 생전에 사용한 환도인 추련도.#

그러나 무예도보통지의 환도가 일단 조선 사람들이 인식했을 평균적인 환도의 모습일 수는 있으므로 대략적인 모습은 위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조선의 환도는 국가에서 지급하는 양산품의 성격도 강한 편이므로 실제 저런 종류를 일반 병사들에게 지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에서는 그냥 대체적으로 외날도면 다 환도라고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도와 어느정도 구분이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대체적으로 환도는 방패를 패용하거나 활을 쏘는 사수가 호신용으로 사용하여 한 손으로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기에 일본도보다는 가볍고 길이도 길지 않은 종류가 많았으며 형태는 일정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는 곧은 편이고 연마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하몬이나 요코테 등이 없는 매끈한 형태를 지닌 배형(5각형) 단면도의 칼날을 가졌으며 밑에서 설명할 특징들이 있다는 정도로만 기억하면 된다.

1.2.3. 방패


소위 이 방패를 코등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은데, 코등이는 죽도의 개념으로서 일본에서 쓰는 말이다.(목차와 이 항목의 코등이라는 말은 수정법을 몰라 그대로 둔다.)
우리나라 말로는 방패라고 해야 맞는 말이 된다. 전통적인 조선 환도의 방패에는 구멍이 없든지, 아니면 비녀장을 끼우기 위한 원형의 구멍이 칼등과 칼날 방향으로 하나 혹은 2개가 존재한다. 일본도, 특히 우치가타나(打刀)의 경우 칼날 좌우에 나이프 정도에 해당하는 작은 칼을 끼우기 위한 소병궤혈이나 머리 손질 도구인 코가이를 끼우기 위한 궤계혈이 존재하는데, 이는 우리 환도에 본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종종 소병궤혈이나 궤계혈이 있는 환도가 있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은 일부 도검 장인들이 그 구멍의 용도를 모른채 형태만을 모방한 결과라고 판단된다.

특징적으로 방패의 재료로 옥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 대게 이것은 어도(왕의 검)나 운검/별운검(국왕 호위무사의 도검)이라고 한다.

1.2.4. 잠금장치

환도의 특징 중 하나이며, 조선 초기에는 비녀장이라고 하는 잠금장치가 사용되었다.# 이는 칼집에서 칼이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코등이 칼등 부분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은 비녀장으로 칼을 고정시키기 위함이다.[5]

이후 조선 중후기에 들어서면서 클립을 이용한 버튼식 잠금장치가 도입되었다.# 이러한 잠금장치는 클립을 호인의 내부에 장착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클립 자체는 물론 잠금장치를 보호하는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6]

1.2.5. 칼자루

칼자루에는 어피나 가죽끈을 감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습도가 낮은 편이기 때문에 일반 호신용 도검에는 칼자루감개나 칼자루싸개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칼집처럼 옻칠이 되어 있다. 다만 조선 후기의 군용 도검에는 칼자루를 가죽끈으로 감는 것이 꽤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예도보통지>에서는 한쪽 방향으로 엇갈려 감기가, <융원필비>에서는 일본도와 유사하지만 끈이 교차하는 매듭의 횟수가 훨씬 적은 방법이 나와있다.

1.3. 환도의 휴대 방법



위 그림들을 그린 분 블로그

조선시대의 도검 패용 방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띠돈을 이용하여 칼자루가 등 뒤로 향하도록 하고 칼집 끝이 전방 아래쪽으로 늘어지도록 허리에 차는 띠돈 매기 방식이다.(위 이미지 참고.)


이러한 패용 방식은 활동상의 편의성, 특히 활을 쏘는 데 있어서의 편의성을 크게 고려한 것이다. 또한 칼을 쉬이 뽑을 수 없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쉽게 회전이 가능한 띠돈이 고안됨으로써, 필요할 경우 칼을 쉽게 돌려 찰 수 있게 되었다. 칼자루가 등 뒤로 향하도록 하는 방식은 기병을 중심으로 운용했던 일부 국가들의 특징인데 칼집이 뒤를 향하도록 패용하면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릴 시 칼집이 말을 때려 움직임을 방해한다고 한다. 중국 청나라와 근세 유럽, 일본 군도 패용 방식에도 나타는 보편적인 패검 방식이나, 미디어 등에서 나오는 칼 패용법에는 가타나 식 패용법이 많아 그에 익숙하다 보니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참고로 칼을 뽑는 방식은 왼손으로 칼집을 잡고 등뒤로 밀어 올리면서 오른손을 머리 위로 넘겨 칼자루를 잡고 발검한다.

환도패용.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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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돈 매기 방식과 더불어 조총수와 창수가 사용한 패용 방식으로 등 뒤의 허리띠에 칼을 찔러넣는 뒤꽃이 방식이 있다. 칼집에 쿠리카타(栗形)가 있어 그냥 허리띠에 꽂아도 충분히 고정되는 가타나와 달리 환도는 뒤춤에 그냥 찔러넣어 휴대하게 되면 칼이 빠져버리기 때문에 칼집 중간의 끈목 안쪽으로 전대를 통과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물론 카타나처럼 칼자루가 앞으로 가게 하여 착용하는 방법 역시 있었다.

참고로 사극에서 정말 무시당하는 고증 가운데 하나, 대부분 한 손에 들고 다니는 괴이한 파지법이 절대 다수다. 추노뿌리깊은 나무 처럼 환도 매기 방식이 고증된 사극도 있지만 이 작품들도 모든 장면에서 고증을 지키는게 아니라 장면 따라 손에 들었다가 놓았다가 제멋대로다.

1.4. 환도의 제작법

일부의 환도에 쓰이는 철은 ㄷ자형으로 구부러진 시우쇠(저탄소강) 판 안으로 뽕쇠(고탄소 공구강)를 물려서 단접했던 것으로 보인다.[7] 이는 뽕쇠를 시우쇠로 완전히 감싸는 것이 아니라, 칼날 부분만을 남겨놓고 감싸서 뽕쇠의 칼날이 1/3정도 드러나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외유내강한 성질의 칼날을 만들어졌다. 전부 이러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고, 일반적인 단조를 통해 모양을 잡는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단조작업을 통해서 칼날의 형태를 잡은 뒤, 까끌질과 거친 숫돌질로 칼날의 기본 형태를 잡은 후 다시 숫돌로 갈아 날을 세웠다.

위에서 보듯이 환도의 단조과정에서 일본도와 유사한 복합재질 구조는 간혹 발견되지만 접쇠 공정의 적용사례는 발견되지 않는다. 접쇠로 제작된 환도는 전부 일본도의 도신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흔히 일본의 접쇠 공정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비감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철 제품의 원료가 되는 철정 자체부터가 접쇠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 이후 시기에 도검제작시 접쇠 공정이 사라진 것은 강철 생산 및 가공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접쇠의 필요성이 감소했기 때문이다.[8]

일반인에게 일본도의 단단함은 세계제일!!!인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많은데 환도의 구조적 강도는 일본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절삭력과 길이에서 차이가 나타날 뿐이다.

칼집은 2개의 나뭇조각에 각각 칼날 모양을 파고, 이 두 조각을 찹쌀풀을 이용하여 붙여서 만든다. 우리 나라의 칼집은 일본에 비해 나무의 두께가 얇은 편인데, 이는 전통 칼집이 전통 한지나 삼베 등에 풀을 발라 단단히 감싸주는 구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옻칠을 하여 완성했다.

칼자루는 칼집과 동일한 목재로 만들고 그 위에 옻칠을 하며, 가끔은 사어피(沙魚皮, 상어가죽)로 싸고 가죽끈으로 감기도 했다. 하지만 위에 언급했듯이, 세종실록에 나타난 환도를 보면 칼자루에 끈으로 감은 모습이 보이지 않으며, 현재 남아있는 환도 중에도 가죽끈으로 칼자루를 감은 것이 오히려 적은 편이다. 또한 칼자루에 홍조수아를 드리우는데, 홍조수아는 붉은색의 유소(流蘇)를 길게 드리워 칼을 장식한 것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장식만을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병사들이 전투 도중에 칼을 놓치지 않도록 끈을 손목에 묶고 싸우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전통야철 기능장 이은철 장인의 환도제작 영상@.

1.5. 환도의 정체성에 대한 비교

1. 환도의 길이
환도의 길이는 시대에 따라 규격과 형식이 지속적으로 변화하여 차이가 크다.
조선 초기~임진왜란까지 평화시기에 길이가 일본도에 비해 짧아지고 임진왜란 후 일본도에 대항하여 길이가 길어졌으며 이후 무예도보통지 저작 시점인 조선 중후기 까지 그 길이가 유지, 권장되다가 구한말 혼란기에 다시 길이가 짧아졌다.

2. 곡률
곡도는 고려 시대부터 이미 존재하였고 반대로 문종실록의 환도는 직단이라는 기록이 있어 매우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환도의 곡률은 매우 다양하여 시대에 따라 직도와 곡도가 혼용되었으며 곡률 유형과 편차가 다양하며 평균의 의미가 없다.

3.칼날과 형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환도의 경우 마무리 연마방식이 달라서 버선코형 칼끝이라 부르는 요코테가 존재하지 않는다. 칼배마루, 즉 일본도의 시노기에 해당하는 부분의 경우 위치가 높다. 이 두가지를 알면 일본도와 환도를 대부분 구분할 수 있다.

칼날의 단면도 다양한 모양을 띠고 있으나 삼각형과 배형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며, 육각도(일본도)를 얻으면 칼등을 갈아내서 배형도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4. 부분 열처리
인문(하몬)의 존재 여부는 환도와 일본도의 차이점 중 하나이다. 환도도 부분 열처리 과정을 거치기에 일본도 양식의 연마과정을 거치면 인문이 드러나게 되지만 환도는 그러한 연마 과정은 생략하고 날 자체를 세우는 마광 과정만 거친다.

이는 하몬 자체가 칼의 성능과는 상관 없는 미학적인 면에서 중요시되기 때문에 팔리는 상품으로서의 일본도의 미학과 제식 군수품으로 실용성 위주의 환도의 차이라고 하겠다. 현존하는 환도 유물 중 유일하게 하몬이 있는 것은 일본도의 날을 재활용하여 만든 환도 한점 뿐이다.

5. 패용장식
칼집에 달린 패용 장식 특히 칼을 차기위한 것에서 환도의 구분을 가능게 해준다. 조선 초기에는 칼을 차기위한 패용 장식에 고리가 달린 것이었고 조선 중후기로 넘어가면서 패용장식에 추가로 띠돈장식을 한 것이 주류가 된다. 이 띠돈 매기는 칼을 차는 실용성을 가지며 환도에서만 보이는 양식이다.

6. 칼자루에서 도신의 고정
대나무 핀인 '메쿠기' 양식으로 분해 재조립이 가능한 일본도와 달리 유소구멍에 금속제 유소관으로 고정하여(리벳 고정과 비슷하다.) 분해 재조립이 불가능하다. 경우에 따라 슴베 끝이 칼자루 윗마개로 뚫고 나온 뒤 두드려 마감하여 이중으로 고정한 경우도 보인다. 일본도의 양식처럼 '메쿠기' 위치에 금속 고정 못으로 고정하고 그 위에 유소 구멍으로 이중고정한 양식도 보인다. 이는 상품으로 팔려 주인 취향에 따라 맞춤 재조립 과정되는 일본도와 관제 군수품으로 실용성 위주의 관제 도검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각각의 문화 특성에 따른 것으로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실용성 측면에서 환도는 전투시 칼날이 부러질지언정 칼자루에서 칼날이 빠지는 경우는 없는 장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7. 칼자루와 코등이
칼자루에 교차매기식 줄감기는 일본도의 양식이나 중후기 이후 환도에서도 이러한 양식을 받아들였다. 이는 실용성 측면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반면에 실용성과 상관 없이 소병궤혈이나 궤계혈 양식이 코등이 장식에 도입되기도 했다.

8. 칼집마감
칼집의 경우 갈대줄기, 어피, 옻칠을 한 복합소재의 칼집이 다수의 환도에서 확인된다. 그에 반해 일본, 중국의 경우 단일방식의 마감 이외에는 드믈다.

9. 환도의 정체성 혼란의 이유
환도의 현존 유물은 300여점 뿐이다. 조선 당시에도 관제 도검 문화로 군용 소모품으로 취급하였고 일제 침략과 군대해산으로 각 군영에 있던 대부분의 환도가 유실되었다. 또한 일본의 일본도 이미지의 선점 효과로 일본도와 차이점외에 환도와 일본도의 유사점의 경우 우리가 인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출처는 "칼, 실용과 상징" 고려대학교 박물관 특별전 도감에 실린 "우리칼의 정체성 인식을 위한 제언'" 참조함.

참조 : 조선의 무기와 갑옷, 가람기획, 민승기 지음[9]

1.6. 현대의 환도

국내 검술계에서는 주구장창 우치카타나형태의 진검만 써 오다가 조선 전통도검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면서 환도의 수요도 약간 생겼다. 주로 무예도보통지관련 단체들에서 많이 사용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찬밥 취급이다. 아무래도 해동검도쪽에서는 그냥 카타나를 쓰기도 하고.. 또 환도 형태도 한가지 형태만 있다. 전통 환도는 중국도와 일본도가 융합된 듯한 형태를 보여주는 것도 있고, 자루와 칼집을 어피로 싼 것도 있고, 일본도와 구분이 안 가게 만든 것도 있는 등 디자인이 매우 다양하지만, 도검사에 취급하는 환도는 거의 다 황동 도장구에 붉은색 칠을 한 목제 손잡이를 가진 천편일률적인 형태이다. 거기에 띠돈을 제대로 고증에 맞춰 포함시킨 곳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 띠돈은 없고 어깨에 매는 끈을 따로 팔거나, 혹은 이상한 끈 장식을 포함하고 있다. 환도의 특징 중 하나인 잠금장치를 구현한 곳은 단 한곳도 없다. 오히려 중국 메이커인 폴첸이 환도의 특징을 잘 살려서 판매[10]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쉽다.

한국 사극에서는 주구장창 카타나만 써대다가[11] 뿌리깊은 나무, 추노, 해를 품은 달 등 무기고증에 어느정도 신경을 쓴 작품이 나오며 고증된 형태의 환도를 볼 수 있는 비율이 높아졌다. 물론, 제대로 패용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상기한 작품들에서도 고증대로 띠돈 쓰다, 손에 들었다 하며 일관성이 없고, 여전히 환도고 나발이고 그냥 일본도만 쓰는 작품도 많다.

2. 한의학에서 말하는 자리의 하나

대둔근 아래로 좌골신경이 지나가는 곳 근처. 정확히 측정하려면 대퇴골의 대전자와, 꼬리뼈와 천골의 연결부위를 잇는 가상의 선에서 외측 3분의 1지점이다. 흔히 환도침 혹은 장침이라고 하는 긴 침을 찌르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좌골신경통, 척추협착증이나 디스크로 인해 유발되는 하지 통증 및 무력감에 효과가 좋다.

그런데 의외로 일상생활 속에 녹아있는 단어인데, 특히 임신 중에 자궁의 회음부 및 골반 압박으로 인해 엉치와 서혜부(사타구니) 쪽이 아프고 당기는 것을 '환도 선다'라고 표현한다. 또 할머니들이 좌골신경통 등에서 엉덩이부터 하지로 쩌릿하게 내려가는 통증도 '환도 선다'라고 표현한다. '환도 시리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개화기에 번역된 성경에서도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창세기 32장, 환도뼈가 부러지는 야곱의 이야기 같은 경우. 한자로 쓰면 위의 1의 한자를 쓰는데 환도뼈는 말 그대로 환도를 찼을 때 환도가 닿는 넙다리뼈 부분을 말하기 때문이다.

3. 수도의 복귀

전쟁이나 반역 등으로 피난 갔던 임금이나 정부가 다시 이전의 수도로 돌아가거나 돌아오는 것. 대표적인 환도 사례로 6.25 전쟁이 끝나고 임시수도였던 부산시에서 서울특별시로 수도를 옮긴 것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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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쉬워보일 수 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시 기준으로 100보는 약 180m 정도. 즉 300보는 500m를 조금 넘는 거리다. 이걸 30kg가 넘는 갑옷에 온갖 무기와 장비를 치렁치렁 매달고 달린다고 생각하면 말 그대로 토 나오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당시 사람들은 현대인들과 달리 영양상태가 상대적으로 열악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 [2] 운검이라는 명칭은 검의 이름이자 동시에 검을 소지한 호위무사의 직책이기도 하다. 다른 명칭은 별운검(別雲劒). 별순검이 아니다.
  • [3] 다만 이렇게 마개조된 도검은 도신(刀身)의 내구력이 상당히 떨어졌을 것이다. 단조법으로 만들어진 환도에 비해 일본도 자체가 유연한 철과 고탄소강을 겹처 고온의 온도를 이용해 접으면서 만들어진 접쇠법으로 만들어져 외부가 고탄소강인 하가네를 갈게 된다면 심하면 중앙인 신가네가 노출이 될 확률이 높아 검이 부러질 확률이 높았다. 단, 일본도 항목의 단면 구조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들 역시 많다.
  • [4] 요즘에는 아예 일본식의 요코테, 하몬은 꼭 넣는게 버릇이 되었다.
  • [5] 일본의 경우, 일본군 부사관용 군도인 '95식 부사관도'에 도입되었다. 다만, 환도처럼 칼집에 달려있지 않고, 손잡이에 달려있다는 점이 다르다.
  • [6] 일본의 경우, 일본군 장교용 군도인 '98식 전도'에 사용되었다.
  • [7] 사실 이 방법은 환도가 아니라 조선시대 호신용 소형칼인 장도 만드는 법 중 하나인데, '조선의 무기와 갑옷의 저자 '민승기씨가 저서에서 환도 제작에 비슷한 방법이 쓰였을지도 모른다는 개인 견해를 밝혔다.
  • [8] 사실 일본의 도검 제작에서 접쇠공정이 발달하였던 것은 일본에서 사출되는 대부분의 철광석이 사철인 타마하가네(玉剛, 옥강)의 형태여서 그 순도가 낮았기 때문이었던 점도 있다.
  • [9] 저서 자체가 이곳 저곳의 정보를 편집한 것이고, 편집에 정확한 사료나 근거가 아닌 작자의 개인적인 추측이 상당량 섞여 자료가 왜곡된 부분이 크기 때문에 해당 도서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위험하며, 결정적으로 작자 역시 학술적으로 미진한 부분을 인정했기도 했다. 또한 해동검도 출신이라 그쪽 편견도 들어갔을 공산이 크다. 그냥 참고서적 수준으로 만족하자. 리그베다 위키의 이 항목도 이 책에서 따오다시피하다가 많은 사람들의 수정을 거쳐 지금의 참조 수준이 된 것이다.
  • [10] 이 문서 최상단의 환도 이미지가 바로 폴첸에서 출시했던 운검이다.
  • [11] 심지어는 조선시대 이전을 그린 천년지애에서도... 백제 파트에서 성유리가 연기한 부여주가 일본도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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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14: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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