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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last modified: 2015-03-24 18:55:57 by Contributors


황해도
황해도 / 黃海道
Hwanghae-do

소속국가 대한민국
면적 16,743.66㎢
하위 행정구역 1시 17군
시간대 UTC+9
인구 약 400만명(추측)
광복 당시 인구 약 200만명
도청소재지 해주시 북본동
도지사 한상순(관선 14대)
별칭 해서(海西), 패서(浿西)[2]


Contents

1. 개요
1.1. 전통적 지역구분
1.2. 산업
1.3. 교통
1.4. 출신인물
1.5. 실향민
1.6. 광복 후의 변천
1.7. 장래
1.7.1. 통일이 될 경우
1.7.2. 통일이 되지 않을 경우
2. 광복 직후 /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1. 개요

한국 중서부에 있는 도. 이북 5도 중 하나. 황주(黃州)와 해주(海州)에서 그 이름을 땄다. 남쪽에 경기도인천광역시, 동쪽에 강원도함경남도, 북쪽에 평안남도와 접경하고 있다. 현재는 서해 5도를 제외한 전지역이 북한 공산정권의 지배 하에 있으며, 현재 서해 5도는 수복지구 임시행정조치에 의하여 경기도 옹진군을 거쳐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편제되어 있다.[3]

역사적으로는 어째 평양서울, 개성 등 당시의 대도시에 끼여서 치이는 경향이 있다. 근초고왕고국원왕의 대결이라든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도 고구려계 호족들의 중심지인 패서 지역으로 자리매김했고 고려가 들어선 이후엔 개성의 주변지(서해도)였다. 때문에 국사 교과서 등에서는 거의 궁예의 점령지, 임꺽정의 활동지 등으로 경기도 등과 묶여서 나올 때만 설명된다. 기껏해야 방곡령 정도만 좀 유명하고[4] 마는 정도. 그러니까 존재감이 별로 없다. 조금 더 보태자면 임진왜란 당시 연안대첩이 일어났던 곳이고, 김구가 여기서 동학군의 를 맡았고, 안중근 일가가 여기서 지주로 살았다는 정도.

행정구역으로서의 연혁으로 통일신라기엔 북한산주 소속이었고, 고려 성종 때 10도 체제에서 관내도가 되었다가 현종 때 서해도로 개편되었다. 문종 때 경기 지역이 늘어나면서 동부 지역을 뺏긴다. 이는 공양왕 때까지 이어진다. 조선이 개국한 후에는 명칭이 풍해도로 바뀌었다가, 태종 대에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 후 현재의 구역과 이름을 얻게 되었다. 광해군 때 명칭이 일시적으로 황연도로 바뀌었지만 인조 대에 명칭이 환원되었다.

북한에서는 신천학살[5] 의 현장으로 반미교육의 중요 스팟으로 이용하고 있는 편이다. 그리고 산지가 엄청나게 많은 윗동네 특성상 황해도가 주요 곡창지대로 중요하게 여기는듯 하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옹진군과 연백군의 대부분, 해주시, 장연군, 벽성군의 각 일부분이 38도선 이남에 위치해 대한민국의 실효지배하에 있었다. 그 후 임시행정조치로 실효통치하의 장연군과 벽성군, 해주시를 옹진군과 연백군에 편입하였다. 한때 38선 이남에 잔류한 연백, 옹진, 남벽성 지역만으로 황해도를 다시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현실화되었다면 중화민국 복건성의 한국 버전, 한국전쟁이 끝나고 옹진군 소속의 서해 5도(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대연평도, 소연평도)를 제외한 육지에 접한 전 황해도 지역이 김씨조선북한 치하로 넘어간 결과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황해도 도청 소재지는 해주시 상동. 현재는 황해남도는 해주, 황해북도사리원에 도 인민위원회가 있다.

조선 후기 황해도를 표기한 지도가 선교사들에게 서해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지면서 Yellow Sea의 어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설이 있으나, 다수설은 아니다. 다만 발해, 와 달리 황해란 단어가 시기적으로 한참 늦게 등장한건 분명한 사실이기에 떡밥은 된다. 거꾸로 19세기에는 외국인들이 황해도를 황해에 인접해서 붙였다고 이해한 경우도 있었다.

1.1. 전통적 지역구분

1.2. 산업

해주시와 사리원시를 중심으로 경공업이 발달했다. 이례적으로 송림시에는 옛 겐지호 제철소를 기반으로 한 제철공업이 발달했다. 옹진에는 금광, 재령에는 철광이 있어 광업도 성행했다. 또한 연백평야와 재령평야를 중심으로 한 비옥한 곡창지대를 끼고 있어 농업도 발달했다. 북한의 제대로된 농사 지대란 평도 있다. 또한 동부 산악의 신계, 수안, 곡산군은 임산자원이 풍부하여 임업도 행해졌다.

1.3. 교통

  • 철도
    -경의선(京義線) : 경기도에서 예성강을 건너 황해도 금천군으로 이어진 선로는 금천, 평산, 신막, 사리원, 황주를 경유하여 평안남도로 이어졌다.
    -토해선(土海線) : 경기도에서 예성강을 건너 황해도 연백군으로 이어진 선로는 배천, 연안, 청단을 거쳐 해주에서 종착한다.
    -해옹선(海甕線) : 해주에서 시작하는 선로는 취야, 신강령을 거쳐 옹진에서 종착한다.
    -해선(沙海線) : 사리원에서 시작하는 선로는 재령을 거쳐 동해주에서 종착한다.
    -장선(沙長線) : 사리원에서 시작하는 선로는 재령, 신천, 송화를 거쳐 장연에서 종착한다.
  • 고속도로
    -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 사실상 직선 구간이 많다.

1.4. 출신인물

해방정국을 주도했던 두 명의 거인을 비롯해서 은근 굵직굵직한 인물들이 황해도 출신이다. 다만, 분단 이후에는 존재감이 급락.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이전에 출생한 인물만 추가할 것.

-김구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치인. 황해도 벽성군 운산면 출신.
-이승만 :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 , 황해도 평산군 출신.
-안중근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황해도 해주시 출신.
-김동엽 :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야구감독. 황해도 사리원시 출신.
-송해 : 대한민국의 가수, 방송인. 황해도 재령군 출신.
-상벽 : 대한민국의 前아나운서, 황해도 옹진군 출신.
-이용식 : 대한민국의 희극인. 황해도 은율군 출신.
-경호 : 대한민국의 목사, 독립운동가. 황해도 옹진군 출신.
-장덕수 : 대한민국독립운동가[6], 정치인. 황해도 재령군 출신.
-나석주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황해도 재령군 출신.
-회창 : 대한민국의 정치인. 황해도 서흥군 출신.
-조영남 : 대한민국의 가수. 황해도 평산군 출신.
-기형도 : 대한민국의 시인. 황해도 벽성군 송림면 연평리 출신.[7]

그 외에 황해도 출신은 아니지만 황해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으로는 주동[8]이 있으며, 화산 이씨의 시조 이용상이 월남에서 피난을 와 정착한 곳이 황해도 옹진군 북면의 화산동이다. 관련 유적으로는 망국단이 있다.

1.5. 실향민

혼란한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많은 사람들이 월남을 하여 실향민이 되었다.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은 고향과 가까운 도서지역이나 인천이나 서울 등 근방 대도시에, 멀리는 전라북도 군산시 등지에 정착했다.[9] 그 중 인천의 경우 황해도 실향민들이 몰려와 일종의 파워그룹을 형성하여서 인천의 지역유지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천 토박이 아니면 황해도 출신의 집안이다.[10]

송도신도시를 제외하면 학교에서 한 반에 실향민 후손을 한 두명 정도는 볼 수 있다. 경기도계 실향민(개성과 그 근교)도 꽤 있지만, 그쪽은 인천 본토보다는 강화도 쪽에 많다. 그리고 경기도계 실향민들이 가장 많은 곳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파주시.] 하지만 황해도에 대한 인식은 개인차가 있어서, 황해도에 관심이 많아 사투리도 할 줄 아는 사람들도 있고, 황해도는 단순히 조상님의 고향일 뿐 자신과는 상관 없는 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서해 5도는 논외로 하시라요. 거이 거긴 원래부터 황해도였잖시까. 옛날에는 인천 토박이들이 황해도 38따라지니 뭐니 하면서 지역감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지금은 황해도 실향민 1세들도 인천사람 다 될 정도로 인천에 살아온지라.

1.6. 광복 후의 변천

육지는 북한 정권에 의해 분도되었다. 자세한 것은 황해남도, 황해북도 참조. 대한민국이 실효통치 중인 도서부는 서해 5도를 참조. 한국전쟁 이후 경기도로부터 편입된 개성시 근교에 대해서는 개성특급시 참고.

1.7. 장래


1.7.1. 통일이 될 경우


현재 전라북도가 대전과 광주에 너무 가까워 끼인 것처럼, 황해도도 제대로 된 지역발전정책이 수립되지 않으면 통일 이후에도 수도의 기능을 유지할 서울(및 그 영향을 받는 개성)과 평양에 끼어 상대적으로 발전이 지체될 가능성이 크다. 보통 지역 발전은 지역의 중심지를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 다만 평안북도 등 평양 이북 지역이 대중국 최전선이 될 가능성이 높아 개발이 쉽지 않음을 고려하면 서울-평양권의 확장에 있어 새로운 대안으로 선정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1.7.2. 통일이 되지 않을 경우


통일이 이뤄지지 않고 북한 체제만 교체되어 정상적인 독립국가가 수립될 경우에는 북한이 상대적으로 중요시하는 사회경제적 인접지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그 동맹국들의 경제적 성장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큰데 만일 한국과 그 동맹국들이 쇠퇴 추세고 중국이 성장 추세라면 황해도는 전시 언제든 잿더미가 될 수 있는 곳이라[11] 앞으로도 제대로 개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남북 대치 상황이 이어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중국이 쇠퇴 추세고 한국과 그 동맹국이 성장 추세라 남방을 중시해야 한다면 황해도의 개발 역시 더 강화될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개성공단이 더 확장, 발전한다면 인근 황해북도[12] 지역이 발전할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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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명목상의 행정구역이며, 대부분은 북한이 실효지배 중이다. 다만 함경남도의 일부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실효지배 중이다.
  • [2] 한국의 패강 서쪽에 있는 지방이라 이렇게 불리운다.
  • [3] 해방 이전까지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옹진군 중 백령면, 대청면, 연평면이 황해도 관할이었다.
  • [4] 함경도 방곡령은 을 주 대상으로 하였다.
  • [5] 1950년 10월 유엔군대한민국 국군이 북진할 당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북한의 주장에 따르면 미군 중대장 해리슨의 지시로 3만 5천명이 학살당한 사건이라고 하나 이는 북한의 역사왜곡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신천군에서 궐기한 반공청년단, 반공유격대 및 보안대가 학살의 주체였다는 것이 통설.자세한 것은 해당항목 참조.
  • [6] 후에 전향하여 친일의 흑역사를 남겼다.
  • [7] 휴전협정 이후 출생자라 취소선 처리. 기형도 출생당시 연평도는 경기도 옹진군 소속이었다.
  • [8] 경기도 개성 출신. 유년을 황해도 장연군에서 보냈다.
  • [9] 대부분 북한지역이였던 황해도는 한국전쟁 당시 후방이라서 피난을 할 필요가 없었다가 국군의 북진 후 다시 후퇴할 무렵 남쪽으로 피난한 경우가 많으며 해안지역이 많아 육로로 피난하기 보다는 미군의 함정을 이용하여 피난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서해에 면한 큰 항구도시인 군산에 정착한 경우가 제법 될 수밖에.
  • [10] 사실 실향민이 피난하여 정착한 지역에서 파워그룹을 이룬 경우는 많다. 대표적으로 김화라든가...
  • [11] 한국의 경우에는 수도권 바로 위가 휴전선이라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북한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상황이다.
  • [12] 해방 당시 개성, 개풍 지역은 경기도였으나 북한 치하에서의 이 지역은 황해북도 소속이다. 60년이 넘는 단절된 기간이 있기 때문에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저 지역은 경기도로 넘어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2. 광복 직후 / 현재의 행정구역 비교


좌측이 광복 직후, 우측이 현 북한에서 사용하는 행정구역.
표에서 기록하는 행정단위의 이동은 면 단위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면적의 단위는 ㎢이며 소수점 이하는 반올림하였다.

황해도의 행정구역 변화
구 행정구역 신 행정구역
번호 시 / 군 면적 번호 시 / 군 면적 참고
황해도 A 송화 723 황해남도 A 과일 324
B 송화 193
H 삼천 353 [13]
황해도 B 장연 1,073 황해남도 C 장연 396
D 룡연 463
J 태탄군 341 [14]
황해도 C 은률 467 황해남도 E 은률 413 [15]
황해도 D 안악 851 황해남도 F 은천 454
G 안악 386 [16]
황해도 E 신천 792 황해남도 [17]
H 삼천 354 [18]
I 신천 490  
황해도 F 벽성 1,564 황해남도 [19]
J 태탄 342 [20]
K 벽성 449
L 신원 479 [21]
M 해주 206 [22]
N 청단 489 [23]
P 강령 506 [24]
황해도 G 옹진 1,062 황해남도 [25]
O 옹진 639
황해도 H 재령 740 황해남도 Q 재령 328
황해북도 T 은파 378 [26]
황해도 I 황주 874 황해북도 R 황주 517
U 연탄 544 [27]
송림 65 [28]
황해도 J 봉산 842 황해북도 S 봉산 436 [29]
T 은파 378 [30]
황해도 K 서흥 914 황해북도 U 연탄 544 [31]
V 서흥 566
W 린산 503 [32]
황해도 L 평산 1,353 황해북도 [33]
황해남도 X 봉천 493 [34]
황해북도 Y 평산 545
황해도 M 연백 936 황해남도 N 청단 489 [35]
Z 연안 479 [36]
a 배천 475 [37]
황해도 N 수안 1,215 황해북도 U 연탄 544 [38]
b 연산 547 [39]
c 수안 666
황해도 O 곡산 1,854 황해북도 d 신평 1,075 [40]
e 곡산 521  
황해도 P 신계 820 황해북도 [41]
f 신계 722
황해도 Q 금천 959 황해남도 X 봉천 493 [42]
황해북도 h 토산 422 [43]
g 금천 498  
경기도 R 개풍 744 황해북도 [44]
i 개성 179 [45]
j 개풍 263
경기도 S 장단 724 황해북도 k 장풍 542
경기도 T 연천 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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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남부 2개의 면만 이동
  • [14] 동부 2개의 면만 이동
  • [15] 일부 면적이 송화군 소속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면적이 줄어든 것.
  • [16] 동남부 4개의 면만 이동
  • [17] 북부 3개의 면이 이동
  • [18] 서부 3개의 면이 이동
  • [19] 북부 1개의 면만 이동
  • [20] 서부 2개의 면만 이동
  • [21] 동부 5개의 면이 이동
  • [22] 중부 1개의 면과 2개 면 일부가 이동. 구 면적은 불과 14.52㎢였다.
  • [23] 동부 5개의 면과 2개 면 일부가 이동
  • [24] 남부 3개의 면이 이동
  • [25] 동부 4개의 면이 이동
  • [26] 동부 1개의 면만 이동
  • [27] 동부 3개의 면이 이동
  • [28] 겸이포읍이 승격됨. 지도에서 R로 표시된 부분 안쪽의 표시되지 않은 부분이 송림시.
  • [29] 각 봉산군 구역 내에 있는 조그만 도시가 사리원시이다. 현재 면적 188㎢.
  • [30] 남부 5개의 면이 이동
  • [31] 북부 3개의 면이 이동
  • [32] 서남부 1개의 면만 이동
  • [33] 북서부 4개의 면이 이동
  • [34] 남부 5개의 면이 이동
  • [35] 북서부 2개의 면과 1개 면 일부가 이동
  • [36] 중부 8개의 면이 이동
  • [37] 동부 9개의 면이 이동
  • [38] 서부 1개의 면만 이동
  • [39] 북부 5개의 면이 이동
  • [40] 북부 5개의 면이 이동
  • [41] 동북부 1개의 면만 이동
  • [42] 서부 2개의 면이 이동
  • [43] 동부 6개의 면이 이동
  • [44] 북부 1개의 면만 이동
  • [45] 중부 1개, 남부 1개의 면이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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