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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량

last modified: 2015-04-07 17:09:41 by Contributors

중국의 국가.
원래 아래의 나라들이 쓴 국호는 양(梁) 또는 양(涼)이지만 동명의 나라들( 항목을 참고.)과 구별하기 위해 후량이라 부른다.

Contents

1. 後梁
1.1. 오대십국시대의 나라
1.1.1. 개요
1.1.2. 후량의 황제
1.2. 서위의 괴뢰국가
1.2.1. 후량의 황제
2. 後涼

1. 後梁

1.1. 오대십국시대의 나라

중국의 역사
오대십국시대/
오대십국시대 후당
  후량   

© Ian Kiu (cc-by-sa-3.0) from

1.1.1. 개요

황소(黃巢)의 반란(874~883)을 토벌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반군 출신의 주전충이 봉지였던 개봉(開封 = 카이펑)에 도읍하여 개창한 왕조이다. 남조의 양과 서위의 괴뢰국 후량과 구분하기 위해 주량(朱梁)이라고도 부른다. 주전충은 살인마 못지 않게 인간도살을 즐긴 폭군이었다. 백성에겐 성군이라지만 신하에겐 폭군이라는 후대의 동성(同姓)의 개국군주가 주전충의 살인감각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처럼 보일 지경. 물론 주전충은 주원장과는 달리 백성들에게도 포악했다.(...)

게다가 황소 토벌 때부터 라이벌이었던 돌궐(투르크)계 장군인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과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주전충은 음탕하기까지 해서 제위를 자신의 마누라를 빌려준 양자에게 물려주려다가 차남인 주우규(朱友珪)에게 살해되었으며, 주우규는 912년 황제가 되어 폭정을 일삼다가 이존욱이 쳐들어와 개봉이 함락되면서 후량 왕조는 불과 16년만에 멸망하였다.

1.1.2. 후량의 황제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숙조(肅祖) 선원황제(宣元皇帝) 주암(朱黯) 흥극릉(興極陵)
- 경조(敬祖) 광헌황제(光獻皇帝) 주무림(朱茂琳) 영안릉(永安陵)
- 헌조(憲祖) 소무황제(昭武皇帝) 주신(朱信) 광천릉(光天陵)
- 열조(烈祖) 문목황제(文穆皇帝) 주성(朱誠) 함녕릉(咸寧陵)
1대 태조(太祖) 신무원성효황제(神武元聖孝皇帝) 주전충(朱全忠) 개평(開平) 907 ~ 911
건화(乾化) 911 ~ 913
907 ~ 912 선릉(宣陵)
2대 - 영왕(郢王) 주우규(朱友珪) 봉력(鳳曆) 913 912 ~ 913 -
3대 - 말제(末帝) 주우정(朱友貞) 건화(乾化) 913 ~ 915
정명(貞明) 915 ~ 921
용덕(龍德) 921 ~ 933
913 ~ 923 -


1.2. 서위의 괴뢰국가

양(육조)의 황족 소찰은 후경의 난 직후, 각지의 황족이 서로 대립하던 중에 소역과 대립하였고 살아남기 위해 서위에게 원군을 요청해 보호를 받는다는 미명하에 실질적인 지배권을 넘겼다. 거기에 소역은 북제와 긴밀한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서위는 이에 대항하고 강남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소찰을 양왕(梁王)으로 삼았다. 그 후 황제가 된 원제 소역과 서위는 대립 끝에 서위의 군대가 강릉에 있던 소역을 공격해 그를 죽이고 소찰을 양나라의 황제에 즉위시켰는데 이것이 후량의 탄생이었다. 오대십국시대의 주전충이 세운 후량과 구분하기 위하여 서량(西梁)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후량이 지배한 영역은 강릉 주변의 일부 지역뿐이었기에 실제로는 서위의 괴뢰정권에 불과했다. 실제로 양나라 정사인 <양서>에는 양나라 황제와 달리 후량의 황제는 본기가 아니라 소정덕, 소기, 소동, 소연명 등 괴뢰 황제와 함께 열전에 수록되어 있다. 한편 북제는 스스로 지배하에 들어온 소연명을 돌려보내 양나라를 계승시키고 이를 실효있게 지배했는데 소연명은 소역이 죽은 후 잠시 황제가 되었다. 이후 경제(敬帝)로 즉위했다. 하지만 소연명은 진패선에 의해 퇴위당하고 소역의 아들 소방지가 뒤를 이었지만 사실상 진패선이 대권을 장악하면서 양나라는 반쯤 멸망한 상태였다.

후량은 서위을 대신한 북주, 북주를 대신한 수나라 때까지 괴뢰정권으로서 명맥을 유지했다. 북주와 수나라는 강남에 지배권을 넓히기 위해 진패선이 세운 진(陣)이 양나라로부터 제위를 찬탈한 정권이며, 그래서 자신의 휘하에 있는 후량이야말로 정통성이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결국 후량은 남북조 통일 직전에 수문제 양견에 의해 사라졌다. 하지만 그 후 진나라 동양주자사 소엄과 오주자사 소환이 황제를 자칭하며 수나라에 대항했다.[1] 이번에는 진의 괴뢰정권이 된 셈이랄까. (얼마못가 진은 망했지만.) 또한 수나라 말기 파릉에서 거병하여 양왕을 칭했던 소선은 소엄의 손자였으며 그는 당고조에게 잡혀 참수되었다. 당나라 때도 많은 양나라 황족 후손들이 등용되었다.

1.2.1. 후량의 황제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양 고조(梁高祖) 무황제(武皇帝) 소연(蕭衍) - - 수릉(修陵)
- 후량 고종(後梁高宗)(후량 선제 추숭) 소명황제(昭明皇帝) 소통(蕭統) - - -
1대 후량 중종(後梁中宗) 효선황제(孝宣皇帝) 소찰(蕭詧) 대정(大定) 555 ~ 562 555년 ~ 562년 평릉(平陵)
2대 후량 세종(後梁世宗) 효명황제(孝明皇帝) 소규(蕭巋) 천보(天保) 562 ~ 585 562 ~ 585 현릉(顯陵)
3대 후량 공종(後梁恭宗)[2] 후주(後主)
효정황제(孝靖皇帝)
소종(蕭琮) 광운(廣運) 586 ~ 587 585 ~ 587 -

2. 後涼

오호십육국시대 여광이 세운 나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 주천공(酒泉公) 여광(呂光) 태안(太安) 386 ~ 389 386 ~ 389 고릉(高陵)
- - 삼하왕(三河王) 여광(呂光) 인가(麟嘉) 389 ~ 396 389 ~ 396 고릉(高陵)
1대 태조(太祖) 의무황제(懿武皇帝) 여광(呂光) 용비(龍飛) 396 ~ 399 396 ~ 399 고릉(高陵)
2대 - 은왕(隱王) 여소(呂紹) - 399 -
3대 - 영황제(靈皇帝) 여찬(呂纂) 함녕(咸寧) 399 ~ 401 399 ~ 401 백석릉(白石陵)
4대 - - 여륭(呂隆) 신정(神鼎) 401 ~ 403 401 ~ 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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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소엄은 후량의 선제 소찰의 5남, 소환은 후량의 명제 소규의 3남이었다.
  • [2] 소선이 추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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