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후진타오

last modified: 2015-02-11 11:41:46 by Contributors

중화인민공화국국가주석
5대 6대 7대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주석[1]
4대 5대 6대
장쩌민 후진타오 (2004 ~ 2012) 시진핑

젊은후진타오.jpg
[JPG image (40.19 KB)]

후진타오가셋.jpg
[JPG image (28.89 KB)]

세명중 누가 후진타오인가 후진타오의 형제들
등소평-후진타오.jpg
[JPG image (29.34 KB)]

등소평과 후진타오 하지만 원본은...[2]
장년기.jpg
[JPG image (15.42 KB)]

장년기2.jpg
[JPG image (31.52 KB)]

Hu_jin_tao.jpg
[JPG image (23.25 KB)]


그대 옆에만 서면 왜 나는 작아지는가 후진타오의 어두운 표정을 주목하라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 18회 전국대표대회에서 찍힌 사진.

胡锦涛·胡錦濤(호금도) / Hú Jǐntāo 후진 tower (1942년 12월 21일 ~ )

중국의 전 국가주석(2003년 3월 15일 ~ 2013년 3월 15일),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당직, 2002년 11월 15일 ~ 2012년 11월 15일) 및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군, 2004년 9월 19일 ~ 2012년 11월 15일).

Contents

1. 소개
2. 자리에 오르기까지
3. 대국굴기 - 대외적 치적
4.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
5. 폭발적 성장의 빛과 성장 후유증과 인권 탄압의 그림자 - 대외적 모습
6. 미국과의 관계
7. 퇴임
8. 후진타오의 이모저모

1. 소개


후진타오는 1998년국인민대표회의 국가부주석으로 임명, 이후 2002년에 중국공산당 총서기, 2003년에 중국의 국가주석에 취임하였으며 2004년에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되어 중국의 국가 지도자가 된 인물이다. 2012년까지 중국을 다스린 후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 18회 전국대표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직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을 시진핑에게 넘겨주었으며 국가주석 직도 2013년 3월 퇴임하였다.

이른바 "과학적 발전관"과 "붉은 자본가", "8영8치" 등의 아이디어를 당의 행동강령에 집어넣으면서 명실상부하게 4세대 중국지도자로서 역사에 남을 모양이다. 과학적 발전관은 인간을 근본으로 한 '지속 가능한 발전'을 내세운 발상이라고 한다. 2007년의 중국공산당 제17회 전국대표대회에서 "주요 전략 사상"으로 "덩샤오핑 이론"과 장쩌민의 "삼개대표사상"과 나란히 당 규약 중에 명기되었다. 뭔가 지도자마다 하나씩 붙이는 것 같지만 그런건 상관 없어 뒤의 두가지 아이디어보다 원자바오의 영향이 더 크다고 보기도 한다.

후계는 자신을 추종하는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파벌인 리커창을 밀었으나 결국 장쩌민의 상하이방과 손을 잡은 태자당시진핑이 되는 등 확고한 당 장악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리커창은 2인자로 차기 국무원 총리 직을 맡는 것으로 타협. 본인도 큰 미련은 없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나이가 젊다는 자체가 시진핑 체제에 대해서는 제법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셈이다. 참고로 1953년생인 부주석 시진핑은 2013년 국가주석에 취임하면 60세로 61세에 주석이 된 그보다 한살이 더 어린 셈이 된다.

러닝메이트인 국무원 총리(내각 수반)은 원자바오(온가보温家宝)로 2003년부터 10년간 계속 함께 한 것이 특징이다.

2. 자리에 오르기까지

문화대혁명 시기 하방(下放)[3]되어 일개 노동자로 간쑤성(甘肅省)에서 말 그대로 굴림당했다. 그러다가 성실함 등을 이유로 하급 관리직으로 올라가고, 이후 지방시찰을 나온 야오방의 눈에 띄어 중앙정계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중앙에서 다시 몇 년 있지 못하고 구이저우 성 당서기로 발령되었는데, 사실상의 성 최고책임자이기는 하나 구이저우가 깡촌 오브 깡촌이라 사실상 여기가 그의 정치적 성장의 한계점이라고 생각되었다. 거기다 그의 정치적 후견인인 후야오방도 급진적 정책을 이유로 실각하여,[4] 그의 실각과 비슷한 즈음에 깡촌 시짱자치구 당 서기로 부임하는데 이것이 역으로 그의 정치인생에 큰 도움을 주었다.

시짱자치구 당 서기가 된 후진타오는 덩샤오핑에게서 과감하고 결단력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급부상했다. 티베트인의 분리독립운동이 발생하자 직접 철모를 쓰고 강경 진압을 진두지휘하여 덩샤오핑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은 대만족(...)하셨고 이것이 중앙정계로 치고 올라가는 발판이었다.
후진타오 본인도 후야오방 라인임을 부정하고 덩샤오핑을 지지, 덩샤오핑의 적극적 지지 속에 1993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마침내 중앙정계의 핵심이 되었다.
그리고 같은 성장 배경을 가진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단) 단원들을 자기 파벌로 삼아 세력을 키워 장쩌민의 후임으로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그런데 일설에 의하면 1992년, 덩샤오핑이 지위를 넘겨주는 대신 차기 국가주석은 후진타오로 삼아달라고 요구했고, 장쩌민도 이를 받아들여 이때부터 국가주석에 등극이 결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3. 대국굴기 - 대외적 치적

그의 통치 시대는 전반기의 화평굴기'(和平崛起, 평화롭게 일어선다)'에 이어 거침없이 상대를 압박한다는 뜻의 '돌돌핍인(咄咄逼人)'까지 나아갔다. # 관련기사

중국은 그의 10년 사이 어느새 부쩍 성장하였다. 처음 4년간(2003년말~2007년말)에는 GDP가 12조위안(1.5조불)에서 24조위안(3조불)으로 2배, 무역액은 3.5배(6천억->21억 달러)나 성장했고, 뒤의 5년동안에도 계속 성장하여 2010년 일본의 경제규모를 추월하고 세계 2위로 올라갔다. 4~5배로 증가한 외환 보유액은 이미 2007년 1조5천억 달러로 세계 1위가 되었다.

여담으로 종합주가지수는 2003년말 1497에서 2005년 6월 998로 최저점을 찍었다가 2007년 5291, 2007년 말 6124로 급상승, 이후 2008년 금융위기를 만나며 다시 추락하여 지금은 2200선까지 빠졌다.#

국민소득은 3천달러가 채 안되던 상황에서 5천달러까지 증가했다. 이는 환율탓이 크긴 해서, 위안상으로는 2002년초 9천위안#[5]에서 2010년 현재 3만 위안에 육박한다#. 여하간, 5천달러니 중진국에 진입했다.

대외적으로는 항공모함(랴오닝급)까지 도입하며 G2, 즉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나아갔다.

4.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

이 시기의 엄청난 성장은 한국에겐 경제 안정의 토대가 되기도 했지만 당장 동북공정이나 이어도와 같은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센카쿠 열도에 대한 위협이 대표적. 경제적으로는 한국, 일본은 미국을 제치고 중국이 최대 수출국이 되었고, 그 정도는 외수의 영향이 큰 한국이 더 심하다. 북한김정일시기 북핵에 의한 대북제재로 사실상 경제적 속국이 되어, 화도 금평나선항을 50년간 임대해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미국은 적절히 활용하면서 TPP한미 FTA등의 경제동맹을 포함한 대중국포위망을 완성시키고 있다. 어느정도는 사실이진 하지만 또 음모론가들이 말하는 수준은 아니며 프리메이슨의 음모 따위는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 아시아에서 중국과 나머지 국가가 패권경쟁해봐야 죽어나는 건 각국 시민(혹은 인민)들 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누가 죽습니까? 바로 네가 죽습니다

5. 폭발적 성장의 빛과 성장 후유증과 인권 탄압의 그림자 - 대외적 모습

경제는 엄청나게 성장하면서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에도 끄떡 없었지만 그만큼 버블경제의 정도가 심해 부동산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 더 심각해진 양극화와 계층갈등도 심각한 문제다. 구체적인 중국 경제의 현황은 중화인민공화국/경제를 참조.명목인구 성장은 10년간 1억(12억->13억)으로 성장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그만큼 눈앞에 다가온 고령화사회도 골치덩이.[6] 후진타오의 시대에 중국인 평균수명은 73세까지 올라갔다. 특히 상하이선전 같은 경우 세계 최고 수준. 하지만 황제가 싫다고 이 땅떵이에서 인구를 더 늘릴 수도 없잖아/인도를 봐라 산아제한따위 가볍게 무시하는 인도를

중국내에서는 이런 빠른 경제성장에 정신없이 달려가는 신세대 들이 천안문 사태 세대보다 더 약한 정치의식을 가진다고 한다. 이른바 '80后(빠링호우)'세대. 중국판 88만원 세대로 그만큼 현실지상주의의 성향도 강해졌다고 한다. 약간 한국과 10년, 미국과 20년 간격을 띄고 X세대 필도 난다.

쓰촨성 대지진 같은 악재도 있었다. 물론 원자바오 같은 인물이 얼굴마담으로 나름 땜빵은 하고 있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성과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 지나친 동원 행사, 인권 탄압 등이 부각되었으며 올림픽 보이콧도 검토되었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역대 가카들은 달라이 라마 입국 따위 불허하신다

6. 미국과의 관계

CA.jpg
[JPG image (303.15 KB)]

부시: 날 버리고 가지 마세요 후진타오찡 ㅠㅠ
후진티아: 어딜 만져? 어딜 만지냐구? 오바마보곤 인사 잘한다고 흡족해하는 듯하다.

사실 이는 조지 W. 부시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고, 그래서 더더욱 화평굴기를 내세운 감도 있지만, 결국 부시의 엄청난 삽질들이 중국이 더 빨리 성장하는데 유리한 국면을 제공한 감도 있다. 사족으로 부시 집권기에 백악관으로 초청해서 만찬을 가지려할 때 사회자가 중화인민공화국중화민국으로 잘못 소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용서할 수 없...[* 사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영문명 차이는 People's를 서두에 붙이냐 안붙이냐의 차이로, 사회자가 조금이라도 실수했으면 가
능한 일이다.(중국: People's Republic of China, 대만: Republic of China)]

한편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경우, 중국을 일찌감치 단독 초대 등 "G2"로 대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 대신 그만큼 더 높은 수준의 인권과 대국으로서의 책임 고다 회의 같이 금리 인하+위안화 절상이라든지 라든지을 요구하면서 "체면은 살리고 이득은 얻자"라는 정책으로 전향하면서 중국 입장에선 반은 뿌듯하지만 반은 떨떠름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여하간, 후진타오의 시대는 드디어 중국이 아직 인구만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미국과 거의 대등한 입장까지 상승한 시기로 자리잡게 되었다.
ca2.jpg
[JPG image (246.84 KB)]

7. 퇴임


2012년 11월 열린 중국공산당 제 18회 전국대표대회에서 예상대로 국가부주석 시진핑에게 중국공산당 총서기 직을 물려주며 권력 이양에 나섰는데, 많은 관측자들은 후진타오도 전임 장쩌민처럼 인민해방군 통수권을 가진 직책인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은 몇년 더 유지하면서 자기 세력을 확실히 심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일단 인민해방군은 국가의 군대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의 군대이다. 따라서 인민해방군의 최고통수권자는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다. 예로부터 군을 장악한 쪽이 진짜 권력가라고 했다. 중국 정치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자리는 국가주석도 아니고 중국공산당 총서기도 아닌 것이다.

보통은 3자리를 1명이 겸임해서 당/정/군의 최고권력자로 군림하지만, 그렇지 않을때 굉장히 황당하면서 미묘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후진타오의 행보를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다. 후진타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중앙군사위 주석 직까지 시진핑에게 이양하고 퇴임하였던 것이다.

이는 자신이 첫 몇년 간 장쩌민의 눈치를 보며 반쪽짜리 국가원수였던 설움을 후임자에게는 겪게 하지 않으려는 의도, 즉 자신이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퇴임함으로써 아직도 상당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장쩌민까지 함께 야인으로 돌아가라는 정치적 메시지로 보인다. 실제로 장쩌민은 18회 전국대표대회에서도 후진타오 바로 옆자리를 항상 차지하는 등 아직 막강한 권력이 있음을 과시하였다.

어쨌거나 후진타오의 국가주석직 임기는 2013년 3월 중국 전국인민대표자대회까지 유지된 후 시진핑에게 넘어갈 예정. 이런 후진타오의 행보에 대해서 '깨끗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하여 바로 넘겨주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기득권을 정말 순수한 의도로 버렸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바로 넘겨준 것 자체가 '빚지게 만든 것'이라는 의견이다. 즉 바로 넘겨주는 은혜를 베풀어 자신과 계파인 공청단을 해코지하는 것을 막은 의도라고 해석하는 쪽도 있다. 사실 둘 다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진실은 후진타오 본인만 알 것이다. 항상 그렇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딱히 만날 일이 없으면 물어 볼 수도 없고...

후진타오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많이 밀리는 계파(공청단)의 세력을 군에서 많이 확보했다고 한다. 실제로 상무위원회 7명 중 2명만 공청단이지만 군의 요직에 많이 진출하였다. 어쩌면 대외적인 군사 경쟁과 충돌이 심화되어 군의 위상이 올라갈 것이라 예상하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것도 후진타오 본인만 알 것이다.

8. 후진타오의 이모저모

먼나라 이웃나라 중국편에 따르면 대학 시절 한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만점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일본 치하에서 선생일을 하다 그만두고 찻집을 운영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찻집을 빼앗겼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 아버님 지못미(...).

애처가라고 한다. 아내 류용칭이 자신의 부탁으로 공산당원으로서의 출세를 포기하자,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아내를 아껴준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고.

올림픽 폐회식 다음날 곧장 방한을 하는 깜짝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각국 정상들을 줄줄이 늘어놓고 황제처럼 알현을 받았다. 이 모습이 중국 각지는 물론 세계로 퍼져나가 후진타오는 자신의 이미지를 강화하여 정계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 중국인들이 뿌듯해한 건 덤이다(...). 관련 기사 #1, #2


부시 부처, 이명박 부처, 후쿠다 야스오 부처 등 우리에게 익숙한 정상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

EXO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중국 정치인이라는 농담이 있다. 후진 타오니까.

  • 약력
1942년 상하이 출생
1965년 베이징 소재 칭화대 수리공정과 졸업
1988년 ~ 1992년 티베트 시짱자치구 당서기, 14차 당대회 최연소 정치국 상무위원 선출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 당국의 무력 진압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짐
1992년 덩샤오핑이 중점배양후계자로 지명, 당서열 7위로 상승
1997년 15차 당대회에서 정치국상무위원 재선출
1998년 국가부주석 임명
1999년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
2001년 2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회동
2002년 4월 미국 방문, 부시와 재회동
2002년 11월 15일 당 총서기 취임
2003년 3월 15일 국가 주석직 취임
2004년 9월 19일 장쩌민 중앙군사위주석의 사임으로 주석직 승계[7]
2012년 11월 15일 당 총서기 및 중앙군사위주석 직 퇴임

보다 자세한 내용은 동아일보 인터넷 사이트에 잘 정리되어 있다. 단, 후진타오의 정치적 평가와 향후 전망 등은 보는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링크

여담으로 중국의 역대 집권자들 중에서 가장 짧은 집권기간을 자랑한다.

이런 낚시를 한 적도 있다(…)
----
  • [1] 국가주석이 법률상 국가원수이나 이자리가 실질적인 국가원수라고 할 수 있다.
  • [2]
    등소평-강택민-호금도.jpg
    [JPG image (148.6 KB)]
    중앙에 있는 장쩌민이 지워져 있다.
  • [3] 쉽게 말해 당.정.군 고위직이 관료주의에 빠지는 것을 막는답시고 시골이나 공장으로 보내 체험 삶의 현장(…)을 시키는 것이다. 이게 전시행정에 그쳤거나 적당한 정도면 또 모르겠는데, 진짜로 보내버리고 사실상 방치했다.(…) 거의 귀양 + 노역급. 덩샤오핑은 물론이고 덕분에 간부와 학생 합쳐서 천만명 가량이 졸지에 노동자가 되어버렸다. 사실 문화대혁명 당시 하방은 마오쩌뚱이 홍위병을 이용해서 '자본주의의 못된 물이 들었으니 다시 혁명화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반대파를 제거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보내놓고 죽던말던 신경끝
  • [4] 정확히 맗하면 중국의 개혁개방은 어디까지나 공산당 일당독재를 확고하게 유지하는 바탕위에서만 진행한다는게 지금까지도 공산당 지도부의 공식입장이다. 이것에는 보수파/개혁파 모두 동의한다.
  • [5] 그때부터 2만위안이란 설도 있으나 뻥튀기로 보인다#.
  • [6] 산아제한정책이 너무 성공적으로 이뤄져서 어떻게 보면 한국보다도 더 처참하게 성공해버렸다.(사실 그래도 한국이나 일본보다 출산율이 비교적 높은편(1.6명대)이긴 하지만 문제는 소득이 중진국 수준인데 벌써 고령화 사회가 닥쳐온다는 점이다.)
  • [7] 이것으로 장쩌민과의 밀고 당기기 권력 암투는 일단락 되었다. 명예로운 퇴장과 승계의 선에서.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2-11 11:41:46
Processing time 0.2817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