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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

last modified: 2015-01-25 12:03:05 by Contributors

중국의 정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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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의 역사를 다룬 역사서로 같은 이름의 제목이 여러 가지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후한서는 남조(南朝) 송나라 범엽(范曄 : 398~446)이 지은 것이다. 그 밖에 각종 후한서는 8명이 각각 지었다고 해서 8가 후한서라고 하지만 범엽의 후한서가 나온 후 모두 사라졌다. 다만 이들 중 일부는 정사 삼국지에 주석으로 남아 있는 것도 있다. 현전하는 후한서는 본기(本紀) 10권, 열전(列傳) 80권, 지(志) 30권으로 되어 있다.[1]

삼국지와 관련해서는 정사 삼국지에는 조금씩 밖에 나오지 않는 인물의 기록이 후한서에는 상세하게 나와 있는 경우가 자주 있다. 책이 다루는 범주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 원소는 양쪽 모두에 열전이 있다. 이렇게 열전이 겹치는 경우 진수가 "이러이러 망해도 싸다"는 식으로 거의 혹평에 가깝게 무자비하게 까내리는 것과는 달리 "장점도 참 많았는데 안타깝다" 같은 식으로 어느 정도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 편이다. 물론 시대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만 원술 같은 개차반은 얄짤없이 그냥 똑같이 깐다.

범엽 이전에는 채옹(蔡邕), 사승(謝承), 설영(薛瑩), 화교(華嶠), 사침(謝沈), 원산송(袁山松), 장번(張璠), 사마표(司馬彪) 등이 후한서를 저술하였는데 이게 위에서 언급한 팔가후한서다. 그러나 이들의 기록은 범엽의 후한서가 나온 후에 안타깝게도 모두 사라졌다. 사승의 후한서에는 고간 등 기록이 별로 없는 인물의 열전도 수록되어 있었고 사마표의 후한서에는 황건적들을 수록한 <황건전>도 따로 있을 정도로 신선했지만 소실되었기 때문에 남아있지 않다. 다만 사승후한서와 위략고려에서 소장 중이었기 때문에 송나라에서 필사본을 부탁하였다는 기록이 《고려사(高麗史)》에 보인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뒤지다 보면 혹시 발견될지도 모른다. 아마 어느 이름모를 시골집에서 벽지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범엽은 채옹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이 쓴 후한서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견해를 넣어 후한서를 만들었다. 하지만 범엽이 후에 반란에 연루되어 처형당하는 바람에 완성되지 못하여 기전체의 구성 요소 중 표와 지가 없다. 그래서 표는 존재하지 않고 오늘날 남아있는 후한서의 지는 양나라유소사마표의 후한서를 인용하고 주석을 붙인 것이다.

후한서 동이열전(東夷列傳)은 부여, 읍루, 고구려, 동옥저, 삼한, 에 관한 기록이 있어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함께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사서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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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본기와 열전은 범엽이 쓴 후한서의 것이고 지는 사마표가 쓴 후한서의 것이다. 범엽이 대역죄에 연루되면서 지를 만들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지는 사마표의 것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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