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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고등학교 야구부

last modified: 2015-04-13 12:06:31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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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주말리그 서울 A
경기고등학교 배재고등학교 서울디자인고등학교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성남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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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고등학교 야구부
창단 1907년
소속 리그 서울권
감독 이명섭
연고구단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넥센 히어로즈
우승 기록[1] 6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2회(1996, 2010) 1회(1995) 3회(1974, 86, 88)
청룡기2회(1994, 96) - 2회(1974, 2002)
황금사자기1회(2001) - 1회(2002)
봉황대기1회(2014) 1회(1989) -
협회장기 - - -

1994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1996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배재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북일고등학교
1996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광주제일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2001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기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북일고등학교
2010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덕수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북일고등학교
2014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군산상업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2015년 우승팀

Contents

1. 연혁
1.1. 조선 대표 야구부
1.2. 암흑기
1.3. 영광의 시대
2. 야구대제전
3. 기타
4. 출신 인물

1. 연혁

1.1. 조선 대표 야구부

1907년에 휘문의숙 시절에 야구부가 생겼고, 기록을 믿는다면 해체되지 않고 꾸준히 역사를 이어온 한국 최고(最古)의 팀이다.[2] 김찬호, 현두섭, 이선규를 중심으로 구성된 초대 야구부는 창단 2년째가 되던 1911년에 당대 최강의 조선인 야구인팀이었던 황성 YMCA 야구단과 맞싸워 승리한 기록이 신문에 나오기도 했으며, 1923년에는 조선예선을 뚫고 제9회 고시엔 본선을 진출하기도 했다.

1923년 고시엔에 진출한 휘문고보

박석윤[3] 감독의 지도로 고시엔에 진출한 휘문고는 1회는 부전승, 2회전에서는 만주대표 다롄상업고등학교를 9:4로 격파하고 8강에 진출했지만 케이지구[4] 예선을 뚫고 올라온 리츠메이칸 중학교[5]에 7:5로 아쉽게 패배했는데 이때 휘문고보가 거둔 8강은 조선인으로 구성된 학교가 고시엔에서 거둔 최고기록이다.[6]

1941년 휘문고보 야구부

1928년, 제3회 4구락부연맹전에서 9월 12일에 가진 배재구락부와의 경기에서는 선발투수 한기준이 22k를 기록하며 한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우기도했으며[7] 1935년 6월 22일 연전구장에서 휘문고보의 투수 송재경이 배재고를 상대로 7이닝[8] 5사사구 1실책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대한민국 야구사 처음으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해 내기도 했다.

1.2. 암흑기

1960년대 휘문고등학교 야구부

그러나 좋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이고(...) 해방 이후에는 야구부 자체가 존속하는게 신기할 정도로 성적을 내지 못했다. 물론 간간히 4강권에는 들 수 있는 저력을 가진 팀이었지만, 하다못해 준우승이라도 하면 뭔가 좀 투자의 의욕도 생길텐데, 준우승도 할 수 없게 결승 자체를 진출을 못하니 고교야구의 붐업이 시작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그리고 프로가 생기는 1980년대까지 휘문고 야구부는 존재감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그나마 1958년에 휘문고 강남규가 서울공고를 상대로 한국야구사 최초의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는 것은 위안거리.

1.3. 영광의 시대

박정혁

휘문고가 깨어난 것은 1989년 봉황기로 고교 최고의 강타자로 대회에서 홈런 8개를 날린 박정혁의 원맨쇼를 앞세워 창단 첫 결승 진출에 성공한 것이 시초였다. 훗날 구타로 허리를 다쳐 선수생명을 잃고, 다시 교통사고 일찍 세상을 떠난 비운의 천재타자는 팀의 결승까지는 이끌었으나, 결승전에서 위재영이 이끌던 동산고에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이 때 1학년으로 팀의 마운드를 책임지던 임선동은 고교 최고의 투수가 되나 그와 비교되던 조성민과 달리 팀의 우승을 이끌지는 못하고 졸업하게 되었다.

휘문고의 한을 풀어준 인물은 김선우였다. 김선우는 1994년 청룡기 결승에서 장충고 상대로 투수로는 승리를, 타자로는 홈런을 날리며 마침내 창단 87년만의 첫 우승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 때를 기점으로 휘문고는 일약 고교야구의 패권자로 도약해 손지환, 박용택, 유재웅같은 우수한 선수들을 바탕으로 1995년 대통령배 준우승, 1996년 대통령배와 청룡기 2관왕에 성공했다.

휘문고등학교 시절 풋풋택

그러나 거침없던 휘문고의 기세는 초고교급 유격수였던 손지환의 진로를 둘러싸고 LG 트윈스와 연세대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게 되면서 꼬이게 되었다. 연세대 행을 확정지었던 손지환이 LG로 막판 방향을 틀면서 대학 야구계가 휘문고 선수들의 진학을 보이콧하기로 했고[9] 진학이 우려되었던 저학년 유망주들이 대거 전학을 가면서 휘문고 야구부의 전성기는 어이없이 끝나게 되었다. 이 때 전학을 간 선수들이 김동건, 허준 같은 선수들로 1999년 춘천고의 청룡기 준우승의 주역들이었다.

다행히 휘문고는 2001년 지석훈우규민의 활약으로 황금사자기 우승에 성공하며 반등에 성공했다. 그 뒤 다시 침체기를 가졌지만, 2010년 임찬규의 활약으로 대통령배 우승에 성공하며 다시금 살아났고, 2014년에는 2학년 에이스 정동현의 활약으로 봉황대기 우승에 성공하며, 4개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한 팀이 되었다.

2. 야구대제전

  • 역대전적 : 4승 4패(부전승 1승 포함)
  • 최고기록 : 4강 (2014 야구대제전)

제1회 야구대제전에서는 최동원을 앞세운 경남고등학교와 1회전에서 만났다. 좌완 김현재가 완투하며 분전했지만 9회말 끝내기 실책을 기록하며 4:3으로 아쉬운 패배를 기록했다.

제2회 야구대제전에서는 1회전 부전승 후 신일고등학교를 상대로 14:1, 5회 콜드게임을 기록한 대전고등학교와 만나게 되었는데 좌완 김현재가 완투하며 3:2로 8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부산고등학교와 만난 8강에서 초반에 4:0으로 앞서나가다 6회 만루상황에서 성옥(당시 동아대)이 주자를 모두 쓸어담는 싹슬이 2루타를 기록하며 동점을 기록했고 9회말에 부산고등학교 대타 장상철에게 끝내기 안타를 얻어 맞으며 아쉬운 패배를 기록했다.

제3회 야구대제전에서는 전주고등학교와 1회전에서 만나 차준섭의 완투를 앞세워 5:1로 승리, 2회전에서는 대구고등학교와 만나 차준섭의 완투를 앞세워 4:3으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부산상업고등학교와 만난 8강전에서 상수와 임윤섭에게 합작 4피안타 완봉을 당하며 5:0으로 패배 8강에서 탈락했다.

2013 야구대제전에서는 조별예선에서 탈락했고 2014 야구대제전에서는 개성고등학교(3:0), 경북고등학교(5:3)를 차례대로 꺽고 4강에 진출했으나 홈그라운드였던 마산용마고에게 4:0으로 패배했다.

3. 기타

  • 2014년 11월 18일에 마리아노 리베라가 방한한후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휘문고등학교를 방문했다.

4. 출신 인물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김영직 외야수 1987년 1차 3라운드 영남대-업은행(1983~1985)-MBC/LG(1987~1995)
이명수 내야수 1989년 2차 2라운드 고려대-OB(1989~1997)-현대(1998~2001)
최규순
류택현 투수 1994년 1차지명 동국대-OB(1994~1998)-LG(1999~2010)-LG[10](2012~2014)
진필중 투수 1995년 2차 2라운드 중앙대-OB/두산(1995~2002)-KIA(2003)-LG(2004~2007)-우리(2008)
임선동 투수 1992년 1차지명 연세대-현대 피닉스(1995~1996)-LG(1997~1998)-현대(1999~2007)
이도형 포수 1993년 고졸우선지명 OB/두산(1993~2001)-한화(2002~2010)
김선우 투수 1996년 고졸우선지명/
1997년 아마추어 자유계약(BOS)
고려대-BOS(2001~2002)-MON/WAS(2002~2005)-COL(2005~2006)-CIN(2006)-두산(2008~2013)-LG(2014)
손지환 내야수 1997년 고졸우선지명 LG(1997~2003)-KIA(2004~2007)-삼성(2008)-SK(2009)-코리아 해치[11](2010)-한화(2010)
오태근 외야수 2002년 신고선수 입단 건국대-LG(2002~2010)
박용택 외야수 1998년 고졸우선지명 고려대[12]-LG(2002~현재)
유재웅 외야수 1998년 고졸우선지명 건국대-두산(2002~2011)-SK(2012)
이재우 투수 1998년 2차 11라운드 탐라대-두산(2001~현재)
채상병 포수, 내야수 1998년 2차 5라운드 연세대-한화(2002~2003)-두산(2004~2009)-삼성(2009~2014)
정재훈 투수 1999년 2차 5라운드 성균관대-두산(2003~2014)-롯데(2015~현재)
이동걸 투수 2007년 2차 7라운드 동국대-삼성(2007~2013)-한화(2014~현재)
우규민 투수 2003년 2차 3라운드 LG(2003~2009)-경찰청(2010~2011)-LG(2012~현재)
지석훈 내야수 2003년 2차 1라운드 현대(2003~2007)-넥센(2008~2013)-NC(2013~현재)
이시찬 내야수 2004년 2차 4라운드 LG(2004~2011)-한화(2012~현재)
김명제 투수 2005년 1차지명 두산(2005~2010)
안규영 투수 2011년 4라운드 경희대-두산(2011~현재)
조승수 투수 2009년 2차 3라운드 두산(2009~현재)
허준혁 투수 2009년 2차 3라운드 롯데(2009~2011)-SK(2011~2013)-두산(2014~현재)
임찬규 투수 2011년 1라운드 LG(2011~2013)-경찰청(2014~2015)-LG(2016~)
박민우 내야수 2012년 1라운드 NC(2012~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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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 [2] (기록이 맞다는 전제하에) 1905년에 창설된 한성고교, 인천고에 이어 3번째로 창설된 야구부.
  • [3] 야구지도자이자 친일파. 1922년 동경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로 투수로써도 뛰어난 활약을 하기도 했다. 휘문고 감독 재직당시 고시엔 8강이라는 기록을 만들어 내기도했으며 이후 심판으로도 활약했다. 이후 조선총독부 재외연구원 직책을 맡았으며 재외연구원 재직시절 영국 임브리지대학에서 유학을 하기도 했다. 1930년에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부사장에 올랐으며 1939년 2월에 만주국의 주폴란드 총영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친일파적인 모습때문에 야구인으로써 "한국팀 유일의 고시엔 8강"이라는 업적을 남겼음에도 흑역사로 남아버렸다. 참고로 1924년에 하와이원정단에 합류해 하와이를 방문했을때 그곳의 동포들이 박석윤을 모래사장에 무릎끓고 옆에 칼을 꽂아 자결하라고 일침을 남긴 일화는 유명하다.(그의 동생이었던 박석기가 그 칼을 집어들어 그자리에서 자신의 가슴을 X자로 그어 평생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기며 그의 결백을 주장해 풀려났다고 한다.)
  • [4] 교토부+시가현
  • [5] 여담으로 리츠메이칸 중학교는 준결승에서 그해 우승팀인 효고현 대표 코요 중학교에 패배했다.
  • [6] 부산상고, 경성중, 대구상고, 선린상고, 인천고등이 고시엔 본선에 참가한적이 있지만 대부분이 일본인이었고 일부 조선인 선수가 포함된 학교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고등학교들도 8강에는 오르지 못했기에 대한민국 고교야구팀중 유일하게 8강에 올라간 팀이 휘문고 야구부다.
  • [7] 1975년 6월 28일 철도고등학교의 선발투수 이진우가 22k를 기록하며 타이기록을 이룬다. 여담으로 KBO 리그 한경기 최다 탈삼진은 류현진의 17K.
  • [8] 13:0으로 승리하면서 7회 콜드게임으로 처리되었다.
  • [9] 실제로 이렇게까지 가지는 않았다. 1993년 말 김재현과 이호준이 고졸 연고 선수 계약 마감일(11월 15일)을 전후해 프로로 방향을 돌리자, 대학에 가등록한 선수가 프로로 방향을 돌릴 경우 대학 팀들이 해당 고교 선수들을 5년 동안 받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는 아마야구에서 제 발목을 도끼질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아 실질적인 효력은 없었고, 1997년 아마야구 일선 지도자 자리가 프로 출신들에게 전면 개방되면서 사실상 폐지되었다.
  • [10] 방출후 재입단
  • [11] 일본의 독립리그 소속 구단. 한국인들 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2011년 해체되었다.
  • [12] 고졸우선지명을 받았지만 이후 고려대로 간후 LG에 입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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