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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휴스턴

last modified: 2015-03-21 00:40:54 by Contributors


리즈 시절의 휘트니 휴스턴. 1991년 'Saving All My Love for You' 을 부르는 모습.


2010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한했을 때 모습.


Contents

1. 개요
2. 디스코그래피
3. 앨범
4. 싱글
4.1. 빌보드 1위
4.2. 빌보드 2위
4.3. 빌보드 3위~10위
4.4. 빌보드 11위~20위
5. 필모그래피


1. 개요

Whitney Elizabeth Houston
(1963년 8월 9일~2012년 2월 11일. 미국 뉴저지 뉴워크 태생)

휘트니 휴스턴은 미국 팝 가수로서 팝계의 전설적인 디바였다.

가창력이 빼어난 여자 가수에게 디바라는 호칭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휘트니 휴스턴부터이다. 말하자면 디바의 원조인 셈.

국내에서도 '3대 xx', '4대 xx'등 순위이 매기기 좋아하는 기자나 팬들 사이에서 머라이어 캐리, 셀린 디옹과 함께 90년대 3대 팝 디바로 꼽힐 정도. 특히 머라이어 캐리와는 언론의 플레이로 자주 라이벌로 부각되었으며 음색의 머라이어 캐리-가창력의 휘트니 휴스턴-기교의 셀린 디옹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줄 정도였다. 물론 결코 이 셋 중 누구도 음색, 가창력, 기교가 모자라다는 뜻은 아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객관적인 수치든 평론가의 평가든 마돈나 이후 이들을 뛰어넘는 여자 솔로 가수를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흔한말로 3대장이란 칭호가 아깝지 않을 정도.

다만 휘트니는 90년대 이후 너무 빨리 쇠락해서인지 이 문서도 사후에야 엔하위키에 작성되었을 정도로 한국에선 다소 잊혀쳤던 편. 꼬꼬마연령층 낮은 팝 팬들에겐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휘트니의 데뷔는 1985년으로 다른 둘보다 무려 5년이나 빨랐으며 데뷔부터 이미 올킬모드로 차트를 접수했고 전세계적으로 솔로여가수 붐을 일으켰다. 그때문에 시기상 쇠락기도 일찍 찾아왔으며 한번 침체기를 겪었다가 다시 재기한 머라이어 캐리와 달리 결국 재기에 실패했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

90년대를 산 위키러라면 대표곡은 몰라도 '엔다~ 이야~'2캐럿은 다 알 것이다. 'I Will Always Love You'은 그녀의 대표곡이자 주연작인 1992년 개봉 영화 보디가드 OST로 널리 알려졌으며 워낙 명장면에 명곡이라 한국에서 엄청나게 패러디되기도 했다. 혹시 아직도 이 노래를 전부 들어본 적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듣자. 소름끼치는 가창력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

어머니가 가스펠 가수인 씨씨 휴스턴이며 사촌인 디온 워윅, 그리고 대모가 '전설의 가창력' 아레사 프랭클린 등 사촌 형제들도 가수인 뮤지션 집안 혈통이다. 어머니 공연 때 코러스로 서다가 음반 기획자 클라이브 데이비스 눈에 들어서 데뷔했다. 1985년 'Whitney Houston' 데뷔음반은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싱글히트와 그래미 후광효과로 2500만장 넘게 팔리면서 여자 가수 데뷔 음반 최고판매기록을 갱신했다. 1995년 발매된 앨라니스 모리셋의 데뷔 앨범 'Jagged Little Pill' 이 3200만장이 판매되면서 기록 갱신. 사실 앨라니스 모리셋의 jagged little pill은 데뷔음반이 아닌 세번째 앨범이지만, 1,2집은 캐나다 한정으로 발표한 앨범이고 세계무대에 들고나온 앨범은 3집이기 때문에 Jagged Little Pill을 1집 취급하기도 한다. 비요크의 데뷔앨범을 1977년에 내놓은 Bjork가 아닌 1993년에 내놓은 Debut로 여기는 것과 비슷한 케이스.

하지만 당시 그래미 어워드 신인상에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게 된다. 이유는 과거 참여했던 듀엣곡들 때문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후 앨라니스 모리셋이나 이미 와인 하우스와 같은 경우를 보면 그냥 그래미 할배들 맘인듯. 그리고 이때부터 빼어난 가창력으로 디바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1987년에 발매된 2집 역시 대성공을 거두면서 80년대 마이클 잭슨 마돈나 프린스와 함께 대표가수로 자리매김한다. 2집 Whitney 앨범은 여성최초로 빌보드 앨범차트 1위로 데뷔했고 4곡의 빌보드 1위곡과 총200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휘트니는 다분히 백인취향의 음악만 한다는 비판에 시달리기도했다. 1989년 대표적 흑인음악 시상식인 소울트레인 어워드에서 후보로 휘트니 휴스턴을 지명하자 관객들이 일제히 야유를 터트릴 정도였다고 하니 흠좀무. 그리고 흑인냄새가 물씬 풍기는 3집으로 쓴맛을 보게된다. 베이비 페이스와 엘에이 레이드를 주축으로 참여한 이 음반은 알앤비 소울에서 뉴질스윙까지 당시 흑인음악 트렌드를 충실히 반영했지만 상업적으론 2곡의 1위곡을 배출하고 '1200만장의 판매량에 그쳤다'.

3집이 부진하던 시기였던 1990년에 혜성처럼 데뷔해서 역시 폭풍 인기몰이하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는 라이벌 구도가 형성된다. 머라이어 캐리는 휘트니 휴스턴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콜롬비아 레코드의 의도였다. 그러다 97년, 셀린 디옹이라는 막강한 후배가 등장하자 디바는 합심해 이집트 왕자 OST 'When You Believe' 를 내놓으나 시발 망했어요... 오히려 셀린은 더 잘 나가게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휘트니는 가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바비브라운과의 결혼과 보디가드라는 영화 출연. 그리고 최고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1992년 영화 보디가드에 여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영화배우로도 활동하게 된다. 영화는 비평적으론 처참했지만 흥행은 대성공했고 삽입된 OST도 45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세계적으로 신드롬적인 인기를 누렸고 1994년 그래미 시상식에선 그래미 최고 알짜배기인 올해의 앨범상과 올해의 레코드 그리고 최우수 여자가수상을 받았다. 특히 OST 앨범의 리드 싱글인 'I Will Always Love You' 가 엄청난 인기를 끌어서 여자 가수의 싱글 중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라는 기록을 세운다. 이 곡은 원래 1974년 돌리 파튼이 작곡하고 불렀던 곡이었다. 영화상에는 여주인공(휘트니 휴스턴 분)이 부르는 곡으로 삽입되었다.

그 이후 정규앨범 없이 사랑을기다리며와 목사의 아내같은 영화출연을 병행하며 OST정도만 발매하며 활동을 이어갔는데. 이때부터 과도한 투어와 마약으로 목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차트 성적도 과거에 비해 떨어진 성적을 보이게 된다. 그러다 1998년 My love is your love로 8년만에 정규앨범으로 컴백한다. 이 앨범은 비평적으론 그녀의 앨범중 최고의 찬사를 받는다. 성숙해진 목소리와 완연한 리듬감으로 알앤비가수로도 인정을 받으며 그래미 최우스 알앤비 보컬까지 수상하게된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루머에 시달리면서 대중들과 점점 멀어졌다. 대표적으로 레즈비언설과 남편과 불화 그리고 마약이었다. 2001년 마이클잭슨 기념공연에서 보여준 해골같이 마른 모습은 그런 논란을 더더욱 가중시켰다.

사실 뉴 에디션 출신인 누룽지 바비 브라운과 1992년에 결혼 이후 휘트니의 이미지는 완전히 달라졌다. 뉴 에디션은 잭슨 파이브를 모델로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통해서 외모와 춤, 노래 실력이 갖춰진 멤버들을 모아서 만든 팀. 데뷔 당시 평균 16세로 현재 K-POP의 주류인 기획형 댄스 아이돌의 시초로 평가된다. 이 팀의 백인 버전이 1990년 초반을 강타한 뉴 키즈 온 더 블락, 한국 버전이 H.O.T. 정도로 볼 수 있다.

본래 백인 흉내내는 흑인 신데렐라 같던 휘트니의 이미지는 악동 남편을 만나면서 대중의 인식이 변하였고 흑인계의 지지도도 엄청 올라갔다. 하지만 남편 바비가 막장인 건지 끊임없이 뉴스에 오르내렸다. 왼쪽 뺨이 멍든 상태로 법원에 나타난적도 있다.# 여기서 '여전히 우리는 함께한다.' 라고 바비와 함께 껴안으며 인터뷰 해 본인이 바비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비치기도 했지만. 이후 술, 마약에 빠지면서 엉망진창이 돼버렸다. 2002년 정규 5집 앨범인 Just whitney를 발매하고 이런 루머를 해명하겠다고 abc방송으로 다이안 소어와 인터뷰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사고 이미지는 완전 망쳐졌다. 이 인터뷰로 휘트니는 마약 사용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희대의 명언인 Crack is cheap Crack is wack을 남긴다 번역하면 마약의 일종인 크랙은 싸구려고 최악이라고 번역되는데 자신은 크랙을 쓰기엔 너무 부자라는 개드립도 날린다. 나름대로 진솔한 인터뷰였지만 팬들에게는 충격이었나 보다 결국 앨범은 대차게 망하고 휘트니는 활동을 거의 중단하게된다. 간간히 시상식이나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등장하긴 했지만 사실상 활동중단.

그러다 2004년 리얼리티 쇼 being bobby brown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녀의 팬들에겐 더욱 실망감을 안겨주고 2006년 충격과 공포의 주유소 파파라치로 완전히 망가져 버린 모습으로 모두를 충격에 빠트리고 결국 2007년 남편 바비 브라운과 이혼하고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파산에 이르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심기일전해서 2009년 여섯 번째 정규 음반 'I Look to You' 를 발표했으며 오프라 윈프리 인터뷰를 시작으로 활발한 프로모션을 통해 빌보드 앨범차트 1위에 오르고 세계 투어 공연을 벌여 재기의 의지를 보여줬다. 2010년 내한 콘서트를 하기도 했으나 엉망진창인 몸 상태에 전성기와는 비교도 안 되는 가창력으로 많은 팬들에게 실망만 안겼다. 당시 첫 방한 콘서트 직후 인터넷에 후회글이 폭주하기도 했다. 유명 팝스타의 내한 공연에 항상 칭찬일색이던 배철수조차 음악캠프 라디오에서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

결국 2012년 2월 11일(현지시각), 우리 나이로 49세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 장소는 캘리포니아 비벌리 힐즈에 있는 비벌리 힐튼 호텔. 사인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마약 중독으로 심신이 망가져 있던 만큼 약물 과다 복용으로 추정하는 중. 이 날은 그래미 시상식 전날 축하파티가 있던 날로 파티 도중 발견되었다. 그래미 시상식 바로 전에 사망하여 더욱 충격을 안겨주었다. 시대를 풍미했던 디바의 씁쓸한 최후에 동료들은 물론 팬들도 큰 충격에 빠졌다. 여담으로 사망원인이 램지의 저주 때문 이라고...

가장 많은 상을 받은 여자 가수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굵직한 상만 해도 에미상 2회, 그래미상 6회, 빌보드 뮤직어워드 30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22회 수상.

소니/컬럼비아 영화사에선 휘트니의 마지막 영화 스파클을 2012년 8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한때 인기를 얻었던 여가수가 폐인 상태에서 재기한다는 줄거리로 휴스턴이 자신의 이야기라면서 열연을 다한 유작으로 촬영을 모두 마친 작품이다.

2012년 2월 22일에는 미국의 National Enquirer지에서 그녀의 시체 사진을 공개해서 논란이 되었다. 제목이 Whitney : The Last Photo.

2012년 3월 22일에 정확한 사인이 밝혀졌다. 코카인 흡입 후 익사라고.#

휘트니 휴스턴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가 만들어 진다.

2015년 2월 5일 휘트니 휴스턴의 딸인 바비 크리스티나 크라운(22)이 마약을 과다복용으로 인해 욕조에서 의식을 잃은체 발견되고 병원에서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가 3월 20일 퇴원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러나 이 퇴원이 사실상의 '포기'로서 치료의 거부인지 '호전'으로 인한 이송이나 자택복귀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태. 더군다나 뇌사상태 이후 친부인 바비 브라운과 바비 크라운의 남편[1]인 닉 고든이 진흙탕 싸움을 한데다 이 와중에 휘트니 휴스턴의 유품으로 딸이 갖고 있던 2억 원 상당의 반지가 도난당하는 등의 악재가 겹쳐있다.

2. 디스코그래피

3. 앨범

  • Whitney Houston (1985)
  • Whitney (1987)
  • I'm Your Baby Tonight (1990)
  • The Bodyguard OST (1992)
  • Waiting To Exhale OST (1995)
  • The Preacher's Wife OST (1996)
  • My Love Is Your Love (1998)
  • Just Whitney (2002)
  • I Look to You (2009)

4. 싱글

4.1. 빌보드 1위

  • Saving All My Love for You (1985)
  • How Will I Know (1985)
  • Greatest Love of All (1986)
  • I Wanna Dance with Somebody (Who Loves Me) (1987)
  • Didn't We Almost Have It All (1987)
  • So Emotional (1987)
  • Where Do Broken Hearts Go (1988)
  • I'm Your Baby Tonight (1990)
  • All the Man That I Need (1990)
  • I Will Always Love You (1992)
  • Exhale (Shoop Shoop) (1995)

4.2. 빌보드 2위

  • Heartbreak Hotel (Feat. Faith Evans & Kelly Price) (1998)

4.3. 빌보드 3위~10위

  • You Give Good Love (1985)
  • Love Will Save the Day (1988)
  • One Moment in Time (1988)
  • The Star Spangled Banner (1991)
  • Miracle (1991)
  • I'm Every Woman (1993)
  • I Have Nothing (1993)
  • Count on Me (Duet with CeCe Winans) (1996)
  • I Believe in You and Me (1996)
  • It's Not Right but It's Okay (1999)
  • My Love Is Your Love (1999)

4.4. 빌보드 11위~20위

  • My Name Is Not Susan (1991)
  • Step by Step (1997)
  • When You Believe (Duet with Mariah Carey) (1998)

5. 필모그래피

  • The Bodyguard (1992)
  • Waiting To Exhale (1995)
  • The Preacher's Wife (1996)
  • Sparkle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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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바비 브라운의 주장에 의하면 법적인 남편이 아니며, 뇌사상태가 된 원인도 닉 고든이 욕조에서 밀쳤기 때문이라고. 바비 크리스티나 크라운이 사고 전 sns에 닉 고든과 결혼했다고 올린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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