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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지마 나츠미

last modified: 2014-07-19 10:27:53 by Contributors

Hirajima Natsumi.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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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지마 나츠미 (平嶋 夏海)
생년월일 1992년 5월 28일
소속 AKB48 팀 B, 유닛 이동복도주행대 7
신체사이즈 154cm B78-W57-H83
혈액형 O형
별명 낫쨩, 여름돼지[1]
출신 도쿄
링크 구글플러스


Contents

1. 개요
1.1. AKB48의 음지의 캡틴
1.2. 대인관계
1.3. 기타
2. 활동
3. 선발 참여곡

1. 개요


소속사는 프로덕션 오기.

AKB48 1기생(오리멘)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존재감이 심히 미약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음지에서 AKB48을 서포트해 지금의 인기를 얻게 한 일등 공신이다.

캐치프레이즈는 첫번째가 노력, 두번째가 근성, 세번째, 네번째가 없고, 다섯번째가 낫쨩.

절대로 안깨질 것 같았던 전설의 극장공연 횟수 838회를 가진 멤버. 이 기록은 코바야시 카나가 2014년 4월 7일에 갱신. 문제는 극장공연 회수가 많다는 건 그만큼 미디어 활동이나 개인 활동이 없다는 소리라 절대 좋은 게 아니라는 거(...).

1.1. AKB48의 음지의 캡틴

아래 내용은 이 블로그에서 대부분을 참고해 작성하였음을 미리 밝힌다.[2]

사실 AKB는 냉정하게 보면, 현재는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하지만, 인기 멤버는 계속 인기 멤버, 비인기 멤버는 끝까지 비인기 멤버인 냉혹한 세계다. 오디션에 합격해서 계속 백댄서만 하다가 졸업하는 멤버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히라지마는 백댄서로 시작해서 백댄서로 끝나는 길을 걸을 확률이 높은 멤버였다. 데뷔 당시 히라지마는 13세(한국 나이로는 14세)였는데, AKB의 첫 기자 회견에서 긴장한 나머지 울어버릴 정도로 여린 소녀였다.

한편 다카하시 미나미와는 비슷한 점이 많은데, 키가 작고 얼굴이 특출나게 이쁜 것도 아니며 이타노와 미네기시와는 달리 오디션 이전에 댄스를 체계적으로 배워 본 적이 없어 레슨이 끝나고 자주 보충 수업을 받았던 점이 그렇다. 다만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가창력. 가수가 목표인 만큼 AKB내에서 가장 가창력이 뛰어났던[3] 다카하시와는 달리 히라지마의 가창력은 그야말로 암울. 차라리 춤이나 버라이어티 같은 부분은 노력하면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지만 가창력은 오랜 시간 체계적인 단련이 필요하고 거기다가 천부적인 자질도 조금이지만 필요하다. 이 점이 다카하시와, 나아가서는 현재까지 남아 있는 1기생들과의 격차를 엄청나게 벌어지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4]

하지만 이때 히라지마에게 위기이자 기회인 상황이 닥친다. 팀 A에 소속되어 있던 히라지마에게 당시 신설된 팀 B로 이적 통보가 온 것이다. 사실상 B팀에 소속될 차기 에이스들을 선배로서 서포트하라는 얘기였다. 이 때 사이좋던 우라노 카즈미, 와타나베 시호와 함께 이동하게 되었는데, 아직 캡틴이란 제도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던 과도기 상황에서 우라노가 멤버들을 혼내는 '메인 캡틴' 역할을, 히라지마가 멤버들과 친하게 지내는 '서포트' 역할을, 그리고 와타나베가 이 둘 사이를 조율해가는 '조정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세 명의 헌신적 노력으로 신생 팀B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이후 와타나베가 졸업하고, 우라노가 SDN48으로 이동하게 된다. 팀B를 이끌었던 세 기둥중 두 개가 순식간에 빠지게 된 상황. 여기에 팀 재구성 및 캡틴 제도가 공식적으로 도입되게 된다. 팀B의 새로운 캡틴으로 임명된 것은 카시와기 유키 였다. 그러나 카시와기는 비록 아이돌로서의 능력은 훌륭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나가는 성격은 아니였기에 캡틴 기질의 멤버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며, 캡틴과 함께 중요한 역할인 센터를 맡고 있던 와타나베 마유 역시 비슷한 케이스. 이 때문에 팀의 얼굴인 이 둘이 연상 멤버들에게는 절대로 강하게 나올 수 없는 타입이라고 판단하고 히라지마가 나서게 된 것이라고 한다. [5][6]

그래도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 당시 중학생에 불과했던 히라지마는 B팀에서 '중간 관리자'라는 별명을 받을 정도로 팀 서포트에 전력을 다하게 된다. AKB 초기 안무 지도가인 나츠 마유미가 직접 지도하는 정식 레슨시간 외에 추가,반복 연습은 팀 내의 최연소인 히라지마가 지도했다고 한다. 연상의 멤버들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이 헛되지 않아, 이후 실질적으로 팀 B에서 음지의 캡틴 역할을 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곡의 백댄서를 맡고 버라이어티에서도 코멘트들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시기에 시작된 CS TV 프로그램 "AKB48+10"에서 거의 주연 멤버가 되었으며, 선발에도 두 번이나 선정되었다.[7]

2008년에 팀 B는 최초의 오리지널 공연 '파자마 드라이브'로 팬들 사이에서 '신의 공연'이라는 말을 듣는 등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이때 히라지마와 함께 팀B를 지탱해온 키쿠치 아야카가 프리쿠라 사건 때문에 AKB에서 쫒겨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큰 동요가 있던 멤버들을 다독거려 팀을 재정비한 것도 히라지마다. 덕분에 콘서트 '세트리스트 베스트 100.2008'에서는 '오오고메 다이아몬드'[8]를 누르고 팀 B의 '쇼니치'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AKB에서 백댄서 역할을 맡은 멤버 중 최초로 대형 프로덕션(다카미나와 같은 오기프로)에 들어간다. 그리고 유닛 이동복도주행대의 리더가 되어 드디어 백댄서에서 탈출하여 메이저 데뷔를 한다.

AKB의 에이스 멤버를 모은데다가 많은 돈을 들인 프로모션, 구성원들을 주연으로 하는 드라마'メン★ドル~イケメンアイドル'가 제작되는 등 처음부터 강력 푸쉬를 받은 노스리브스와 달리 이동복도주행대에는 그런 거 없었다. 하지만 히라지마는 첫 앨범 관련 인터뷰에서 '5일 동안의 악수회를 통해 CD를 5천장 팔아서[9]반드시 오리콘 위클리 차트에서 10위 안쪽에 들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인터뷰 내용대로 10위를 차지한다. 이는 강력 푸쉬를 받은 노스리브스의 첫 앨범과 비슷한 기록이다.

팀B를, 나아가서 초기 AKB를 먹여살렸다는 것 이외에도 히라지마가 AKB 내에서 갖는 존재감은 크다. 백댄서로 시작했는데도 근성으로 메이저까지 치고 올라왔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 지금도 극장 제일 뒷줄의 한쪽 구석에서 매일 백댄서를 맡고 있는 무명의 멤버들이 있어서 히라지마는 큰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10]

히라지마의 극장 공연 출연 횟수는 졸업생 AKB 멤버 가운데 가장 많은 838회다.[11] 바쁜 스케줄 가운데 극장 공연에 성실하게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한 다카하시가 500회를 채웠을 때 히라지마는 이미 600회를 넘었던 것이다. 참고로 졸업생 중 800회 이상 출연한 멤버는 히라지마 외에 우라노 카즈미이며(828회), 현역중에서는 코바야시 카나가 유일하다. 그런데 친구 미네기시 미나미가 연구생으로 강등되면서 출연 횟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팀4 캡틴을 맡으면서 공연횟수가 많이 늘지 않았다. 미네기시 미나미의 공연횟수는 현재 14년 7월 6일 기준 714회이다.

아키P에게도 신망을 얻고 있는 것 같다. 2009년 8월 23일 열린 무도관 콘서트의 마지막 무대에서 소위 'AKB 신 내각 구성'이 발표된다. 주된 내용은 그때 정립되었던 각 팀을 일단 해체한 다음 상당수의 멤버들을 다른 팀으로 이동시키는 것으로, 사실상 '판을 다시 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팬들뿐만 아니라 멤버들도 이 소식을 듣고 쓰러지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멍해잇거나 하는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아키P는 멤버들에게 "이번 개편을 결정하기 위해 나와 스태프들은 며칠동안 밤을 새워 고민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과 특성을 생각해서 어느 팀에 가서 더 성장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내린 결정이다. 너희들은 지금 상태로 만족하고 있는건가? 초기 시절 팀 B로 이적한 우라노[12], 와타나베[13], 히라지마는 팀 A에서 이동해와서 좋은 사무소에 들어가고 메이저 데뷔 앨범을 낸 사례가 있지 않느냐"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위 내용으로 알 수 있듯이 눈에 드러나진 않지만 특유의 근성으로 그룹을 지탱한 멤버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양지에서 다카하시, 오오시마가 AKB를 이끌고, 음지에서는 히라지마가 보이지 않는 서포트를 해 지금의 AKB가 있었다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 다만 위 각주에도 썼지만 히라지마는 AKB 활동보다는 학업을 우선시해 일반 고등학교[14]를 다녔기 때문에, 다른 1기생들에 비해 인기가 적은 건 자기 책임도 있다. 본인도 제 1회 가위바위보 대회 리얼 영상에서 학업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인기가 적은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다카하시 미나미가 주로 하는 원진[15]도 다카미나가 없을 경우, 원진을 하는 멤버도 히라지마라고 한다.

1.2. 대인관계

친한 멤버는 같은 1기생이자 유일한 92년생 동갑내기 미네기시 미나미, 우라노 카즈미.

졸업한 오쿠 마나미와도 친해서 오쿠가 졸업 사실을 제일 먼저 털어놓은 멤버도 히라지마라고 한다.

특이하게도 다카하시 미나미와는 접점이 그다지 없는데, 서로에 대한 언급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은 또 아니다. 상당히 미묘한 관계.

"존경하는 멤버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좋아하는 멤버는 있지만 리스펙트와는 좀 다른걸까나." 하는 대답을 날렸다.(...) 오오 패기 오오 사실 이 드립은 낫짱이나 다카미나 밖에 칠 수 없는 드립이라는 사실에 이 발언의 진짜 의의가 있다.

좋아하는 멤버는 카사이 토모미, 오오바 미나

1.3. 기타

내용과는 별개로 AKB공인 살 잘찌는 멤버이다. 대략 2007년 정도까지는 나름 귀염상이었는데, 어느샌가 덩치가 커져서 2011년의 모습을 보면 팔뚝이며 허벅지가 장난이 아니다.

총선 순위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 26위.

2. 활동

2005년 10월 'AKB48 제1기 멤버 오디션'에 합격. (응모 총수 7924명, 최종 합격자 24명)

2005년 12월 8일 AKB48의 일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12월 'AKB48 제3기 멤버 오디션'에 합격한 20명중 6명이 사퇴해버리는 사태가 벌어진다. 팀 B를 구성하는 16명이 안됐으므로 우라노 카즈미(SDN48), 와타나베 시호(졸업)함께 팀 B의 지원멤버로 팀 B에 이동했다. 사실상 이건 좌천이나 마찬가지 였으므로 무척이나 많이 울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마음을 다잡았다고.

2008년 10월 같은 사무소 소속으로 3기생 오오타 아이카, 와타나베 마유와 이동복도주행대를 결성한다.

2009년 1월 유닛 '이동복도주행대'의 리더로서 활동을 개시했다.

2009년 7월 제1회 총선거에서는 26위를 차지해 언더걸즈에 들어갔다.

2010년 6월 9일 제2회 총선거 에서도 26위를 차지해 언더걸즈에 들어갔다.

2011년 2월 25일 극장공연의 출연횟수가 777회를 달성했다.

2011년 6월 9일 제3회 총선거마저도 26위를 차지해 언더걸즈에 들어갔다.

2012년 1월 27일 요네자와 루미의 숨겨진 블로그 계정이 쟈니스 오타들에게 털렸는데, 그 계정에 히라지마 나츠미와 일반인 남성의 연애로 의심되는 사진이 잔뜩 게재되어 있는 바람에 요네자와와 히라지마 둘 다 AKB를 사퇴(라고 쓰고 해고라고 읽는다.)하게 되었다. 팀킬

그나마 히라지마는 지금까지 1기생이면서도 팀B로 파견돼서 6년간 뒤에서 고생한 점 때문에 짤리는건 짤리는거지만 그래도 동정표가 있어서 요네자와보다는 욕을 덜 먹는 편.[16] 맨 처음에는 2ch 쪽에서도 히라지마는 근신정도로 끝나더라도 납득한다는 의견도 상당했다. 적어도 AKB48이 지금의 자리에 오르도록 무대 뒤에서 쌓은 공헌도는 닼민 못지 않으니까.

2012년 2월 5일 '위로부터 마리코' 악수회를 마지막으로 AKB48을 졸업했다. 예전 구플에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이제는 총선거 26위에서 탈출하겠다고 전의를 불태웠지만, AKB48에서 탈출하게 될 줄이야...

졸업 후로는 대학을 다니면서 학업에 전념했다고 한다. 영어 공부도 시작하고, 요리 교실에도 다니고, AKB48시절에는 못했던 것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2012년 10월 24일, 무대 'GO, JET! GO! GO!'의 공연에 출연했다. 여기서 같이 나온 멤버는 같은 AKB48 1기생이었던 신디로 많이 알려져 있는 우라노 카즈미. AKB48은 졸업했지만, 계속 프로덕션 오기에 소속하면서, 연예활동을 계속해 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2013년 4월 7일, 졸업생도 참가 할 수 있게 룰이 변경된 제 5회 선발 총선거에 입후보하였다. 현지고 한국이고 팬덤은 혼란의 도가니.[17][18]

4월 19일 총선거 입후보에 따라 구글플러스를 약 1년만에 재개했다.

그리고 5회 총선거 에서 11,806표로 62위를 차지했다. 속보에선 권외였지만 졸업 멤버 중에 유일하게 순위권에 들었다. 이건 정말 '오타쿠의 순정'이라고밖에 부를 수가 없다. 히라지마는 투표권이 들어간 <さよならクロール> 싱글 수록곡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졸업생이므로 악수회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즉 히라지마의 팬들은 히라지마를 총선거 권내에 넣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기가 응원하는 멤버가 나오지도 않고 악수회에도 참가할 수 없는 싱글을 10,000장이나 산 것이다 . 이쯤되면 눈물이 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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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름의 夏(나츠)=여름
  • [2] 다만 이 블로그는 히라지마가 오시인 블로그에서 운영하는 것이므로, 미화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른다.
  • [3] 초기에는 정말로 그랬다. 이후 나쁜 습관이 들어서 '코창력'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역변하기는 했지만.
  • [4] 현 1기생들과 스카하라 7 멤버들은 다른 멤버들과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장점이 있다. 마에다는 푸쉬도 푸쉬지만 그 특유의 매력과 자기 관리 능력, 그리고 센터로서의 압박감을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팬들의 공감을 얻고 있고, 오오시마는 엔하위키 항목에 아이돌계의 사기캐릭터라고 호칭될 정도로 다방면에 재능이 있다. 카시와기는 아이돌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큼 정석적인 아이돌이며 시노다는 누님 계열의 사기스러운 체형, 와타나베는 귀여운 로리 계통에다가 애니 오타쿠라는 속성, 코지마는 자타공인 정통파 미녀, 이타노는 쿨한 갸루 컨셉으로 여성들의 지지를 받는다. 미네기시는 다른 1기생들에 비해 인기는 없지만 버라이어티에 능숙한 일명 버라돌로 굳어졌으며, 때문에 장수할 가능성이 크다.(아키모토 프로듀서도 미네기시는 오래갈 것이라고 자주 말한다.) 남은 건 히라지마와 비슷한 다카하시인데, 가창력 문제 하나로 AKB초기때 갈라진 것이 지금까지 오게 돼버렸다. 물론 히라지마가 연예계보다는 학업에 신경쓴 탓도 있지만, 인기가 있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5] AKB48 히스토리 연구생 공식 교본에서 내용을 참조
  • [6] 사실 카시와키 팀B 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케미스트리 부분에서 문제가 좀 있었다. 언급한 대로 캡틴-센터가 모두 앞에서 누구를 이끄는 성격은 아닌데다가, 설상가상으로 둘 다 카미 소리를 듣는 인기 멤버였기 때문에 방송 나가랴 개인 스케줄 뛰느라 바빠서 팀 결속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극장 공연에 많이 나올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멤버들이 개인적으로 나태해져서 사생활적 측면에서 크든 작든 하나씩 터트렸다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된다. 우라노가 완전히 빠져나간 2010년 초에서 2012년까지 언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나마 뚜껑을 덮는 역할을 맡은 것이 히라지마였다.
  • [7] 반면 이 시기 타카하시는 슬럼프인 시기였다. 노래, 춤, 버라이어티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인 다카하시였지만 키가 발목을 잡았다. 148cm라는 키는 센터 보컬을 맡는에는 치명적이었고, 결국​​ 마에다에게 센터 보컬 구도를 내주게 된다. 다행히 이때 대형 사무소인 오기 프로로 이적하는데 성공하고, 춤을 잘 추는 미네기시와 AKB 최고의 비주얼인 코지마와 유닛 노스리브스를 결성해 재기하게 된다.
  • [8] AKB가 본격적인 인기를 끌게 되는 전환점으로 분류되는 기념비적인 곡이다.
  • [9] 악수는 500번만 해도 손이 마비되어 감각이 없어진다고 한다. 이런 악수회를 틈만 나면 하니 멤버들 몸이 남아날 리가 없다.
  • [10]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히라지마가 치고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는 초기 시절이었기 때문이고...지금은 스카하라 7(혹은 이타노까지 8) 멤버들이 졸업해 주지 않는 한 아래 멤버들이 올라올 확률이 매우 낮다. 그런데 이 8명도 솔로로 나가기에는 아직 부족한데다 AKB에 속해 있는 쪽이 훨씬 이익이 크기에 당분간은 졸업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오오시마 마이를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애초에 아키P가 그룹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대표 멤버들을 그렇게 쉽사리 졸업시킬리도 없다. 나카니시 리나오오시마 마이의 경우 아직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전이었다.
  • [11] 현역 멤버중에서는 코바야시 카나가 이 기록을 넘었다.
  • [12]SDN48의 멤버 우라노 카즈미.
  • [13] 와타나베 시호. 현재는 졸업.
  • [14] 일본 아이돌들은 보통 통신 고교나 예능 계열 고교로 진학한다고 한다.
  • [15] 무대 전에 둥글게 원을 모으고 서서 다짐을 외치는 것. 주 대사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아예 안하는 것이 낫다" 등이다.
  • [16] 요네자와는 숨겨둔 트위터 계정이 드러나고, 트윗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욕설, 물담배 흡연과 마약 투약 의혹까지 일어나고 있는 상태.
  • [17] 사실 전원 강제 참가가 아닌 '입후보제'로 바뀐 이유가 히라지마를 부활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음모론 아닌 음모론도 있었다. 애초에 2년도 3년도 아닌 '재적 4년 이상'이라는 기준을 만족시키는 졸업멤버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
  • [18] 게다가 와타나베 마유의 솔로싱글에 히라지마의 대담이 실리고, 2013년도 영화에도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히라지마의 인터뷰를 싣는 등, 운영진이 아직까지 히라지마에게 미련을 갖고 있는 듯 한 부분이 은연중에 많이 드러났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귀착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일부에서는 '1년 넘게 근신하였으니 히라지마의 공적을 보아 복귀시켜도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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