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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도요 카프

last modified: 2015-04-10 01:32:54 by Contributors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Central League) / 파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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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Tokyo Yakult Swall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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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Yomiuri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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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Yokohama DeNA Bay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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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
(Chunichi Drag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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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Hanshin Ti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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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도요 카프
(Hiroshima Toyo C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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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 겸 제 1 마스코트
카프 보야 [1]
제 2 마스코트 슬라이리[2]
히로시마 도요 카프
Hiroshima Toyo Carp
広島東洋カープ
구단 법인명 ㈜히로시마 도요 카프
(株式会社広島東洋カープ)
창단 1950년
연고지 히로시마히로시마
구단 연고지 변천 히로시마 현 (1952~)
구단명 변천 히로시마 카프 (1950~1967)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68~)
홈 구장 히로시마 종합구장 (1950~1957)
히로시마 시민구장 (1958~2008)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히로시마 (2009~)
2군 구장 히로시마 유우 연습장 (1993~)
모기업 마쓰다 자동차 공업[3]
감독 오가타 고이치 (緒方 孝市)
일본시리즈 우승
(3회)
1979, 1980, 1984
센트럴리그 우승
(6회)
1975, 1979, 1980, 1984, 1986, 1991
공식 홈페이지

목차

1. 소개
2. 역사
2.1. 창단 초창기 : 안습의 역사
2.2. 전성기 : 1970년대 중반 ~ 1990년대 초반
2.3. 암흑기의 재래 : 1998년 ~ 2012년
2.3.1. 2011년 시즌
2.3.2. 2012년 시즌
2.4. 시즌 리뷰(2013년 이후)
2.4.1. 2013년 시즌 : 22년만의 가을야구
2.4.2. 2014년 시즌 : 암흑기 탈출(?)
2.4.3. 2015년 시즌 : 강팀으로의 재도약과 히어강의 갈림길
3. 홈구장
4. 이야기거리
4.1. 팀 컬러
4.2. 인기와 팬덤
4.3. 모기업 마쓰다와의 관계
5. 유니폼
6. 대표적인 선수들
6.1. 현역(2015년 기준)
6.1.1. 투수
6.1.2. 포수
6.1.3. 내야수
6.1.4. 외야수
6.2. OB
6.2.1. 투수
6.2.2. 포수
6.2.3. 내야수
6.2.4. 외야수
6.3. 팀 출신 메이저리거
6.4. 영구결번

1. 소개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히로시마 현 히로시마 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히로시마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주기 위해 창단된 팀으로 다른 구단에 비해 시민구단의 성격이 강하다.[4] 그렇기 때문에 당시 전후 히로시마와 관련된 이야기 등에서 주인공이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팬을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5] 히로시마 팬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팀의 컬러가 붉은색이라 팀의 애칭으로 아카헬(赤ヘル, 붉은 헬멧) 군단이라 불린다.

팀 명칭인 카프는 잉여 잉어란 뜻으로 히로시마를 흐르는 오타가와(太田川)에 잉어가 많이 서식해서, 그리고 원자폭탄 공격으로 무너졌던 도시를 살리자는 강렬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 'こいのたきのぼり(코이노타키노보리)' 즉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2012년 까지 이 경구는 대부분 시즌 초반 상위권을 질주하다가도 결국 5월이 지나면 내려가는 안습함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참고로 선수팔이를 해서 흑자를 보고는 있지만,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중 가장 가난한 구단인 현실은 여전하다. 한국으로 와도 넥센 히어로즈를 제외하고는 자금력이 가장 처질거라고 한다.이 팀에 비하면 두산이나 한화는 돈이 있는데도 그냥 안 쓰는 것...[6] 자금력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애초에 경영진은 돈을 쓸 의지 자체가 없는게 문제. 자세한 내용은 아래 모기업과의 관계 항목 참조.

2. 역사

2.1. 창단 초창기 : 안습의 역사

1950년 센트럴 리그에 참가한 이후 줄곧 안습함을 내달리고 있었다. 당시 센트럴 리그 구단이 7개 구단이었는데[7] 1951년에는 다이요 훼일즈에 합병까지 논의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하였으나 히로시마 시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합병만은 면했다. 그리고 1952년 짝수로 팀을 맞추기 위해 승률 3할 이하 팀을 타 구단에 합병하기로 결정하면서 가뜩이나 시민구단으로 창단돼 재정적 받침이 없었던 히로시마 카프의 존속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팀의 에이스인 세가와 료헤이가 이끄는 히로시마 카프는 극적으로 3할 승률에 안착,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면 쇼치쿠 로빈스는 3할 이하로 시즌을 마감하며 다이요 훼일즈에게 통합당하는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시민구단인지라 언제나 재정난에 시달렸고 늘 성적은 B클래스(4위~6위)를 맴돌았다. 1967년까지 18년 연속 B클래스는 NPB 사상 두번째 최장 기록이다. 결국 1968년 히로시마 시민들이 단체로 현내 대표 기업인 도요공업(東洋工業, 현재의 마쓰다)에 구단 좀 맡아 달라고 탄원하여 결국 마쓰다가 히로시마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구단주 마쓰다 쓰네지는 새로 감독에 취임한 네모토 리쿠오 에게 "시즌 전패를 해도 좋으니 히로시마의 기틀을 만들어 달라" 고 요청했고 네모토 감독은 오너의 지시를 받들어 팀을 그해 센트럴 리그 3위로 이끌며 창단 후 첫 A클래스 진입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히로시마는 이후 제자리를 찾으며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본격 센트럴 리그 팀들의 영양간식.

2.2. 전성기 : 1970년대 중반 ~ 1990년대 초반

그래도 이런 노력이 결실을 거둬 고바 타케시 감독이 취임한[8] 1975년, 창단 25년 만에 처음으로 센트럴리그 우승을 달성하면서 안습으로 일관하던 구단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 시작했다. 이 해부터 빨간색 유니폼을 입기 시작한 것과 히로시마 전성기의 시작이 겹쳤기 때문에 세간에서 히로시마를 아카헬 군단(붉은 헬멧 군단)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이 때만 해도 한신 타이거즈팬들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일본시리즈 우승 커리어를 다이요, 야쿠르트에 이어 히로시마에게 까지도 추월당할 줄은. 이후로도 고바 감독의 지휘 하에 1979년[9]과 1980년 일본시리즈 에서 킨테츠 버팔로즈를 상대로 2년 연속 4승 3패의 전적으로 대망의 일본 시리즈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의 콩라인 커리어가 추가되었다. 그 후, 1984년 한큐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현재까지는 최후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당시 팀을 이끌던 선수들은 타자로는 야마모토 코지, 기누가사 사치오, 카하시 요시히코 등이 중심이 된 호타준족의 타자들이 있었고, 에나츠 유타카, 타벳푸 마나부, 장명부, 김기태(항목 2번), 노 유타카, 츠다 츠네미 등의 투수들이 주축이 되어 활약하였다. 1991년에는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야마모토 코지 감독의 지휘 아래 리그 우승을 거두며 일본시리즈에 진출, 7차전까지 가며 분투했으나 당시 황금시대에서도 절정을 달리고 있던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패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22년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1980년대의 활황 덕분에 구단이 어느 정도는 돈을 들일 여력이 있었고, 비교적 드래프트가 공정하게 진행되던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모자라는 자금력을 빡센 훈련으로 메우면서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FA 제도가 실시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사실상 자유 스카우트나 다름없는 역지명 등 각종 기괴한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에는, 자금력이 유리한 팀들에게 극도로 유리해진 리그 환경에서 히로시마 카프는 선수들에게 투자는 커녕 있는 선수도 지키지 못해서 팜에서 애써 키운 뛰어난 선수들이 FA로 줄줄이 유출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1991년 이후 2012년까지 센트럴리그 우승은 고사하고 포스트 시즌 진출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 타 구단에 비해 재정이 빈약한 탓에 타 팀에게 주축 선수들을 뺏기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프랜차이즈 출신 무라 토시유키 감독의 조련 아래 가타 고이치(우익수)-쇼다 고조(2루수)-노무라 켄지로(유격수)-토 아키라(3루수)-에다 토모노리(중견수)-이스 로페스(1루수)-카네모토 토모아키(좌익수)-니시야마 류지(포수)-투수로 이어지는 핵타선 혹은 붉은 악마 타선[10]이 나름 유명했지만 가와구치-기타벳푸의 노쇠화와 츠다 츠네미의 사망으로 겨우 사사오카 신지 한 명만 버티는 투수진 뎁스가 더욱 얄팍해지면서 우승기회에서 번번이 투수 붕괴로 무너지고, 결국 이 무시무시한 타선을 유지할 길이 없어 토 아키라를 FA로 요미우리에게 내준 것을 시작으로, 후에 카네모토 토모아키, 아라이 타카히로 등이 한신 타이거즈로 이적하면서 한신 타이거즈 팜(=2군)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주축 선수들의 전력 유출이 심각했다. 심지어는 디 시츠, 이트 민치, 렉 라로카, 니스 사파테 등 우수한 용병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타 팀으로 빠져나가는 신세를 겪었다!

2.3. 암흑기의 재래 : 1998년 ~ 2012년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5년 연속 4~6위의 하위권에 해당하는 B클래스를 기록 중이다. 게다가 앞으로도 별로 좋아질 건덕지가 안보이기 때문에 난카이 호크스의 암흑기에 세운 20년 연속 B클래스 기록을 갈아 치울 최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타 구단, 특히 한신의 팜 구단이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스타플레이어의 유출이 심각하다. 카네모토 토모아키, 아라이 타카히로, 앤디 시츠 등이 FA로 한신 타이거스로 적을 옮긴 건 상당히 유명하다. 거기에 에이스 쿠로다 히로키메이저리그 진출까지... 정말 꿈도 희망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2013년 CS에서는 멋지게 복수에 성공하였다!

2009년에 오랫동안 써온 히로시마 시민구장을 뒤로하고 일본 최초의 비대칭 야구장인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으로 옮기고, 유니폼도 새롭게 바꾸면서 이미지 쇄신을 감행하고 있다. 거기에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노무라 켄지로가 전격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과거 '붉은 악마 카프'의 재현을 많은 팬들이 바라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여담으로 2009년 교류전 당시 치바 롯데 마린스와의 막장 경기가 유명한데 2009년 6월 10일 QVC 마린 필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히로시마의 선발투수 콜비 루이스의 맹활약으로 치바 롯데가 잔루만 11개에 13삼진을 당하며 완봉패(...)를 기록했는데 다음날 경기에서 23:2로 롯데에게 캐발리는 안습한 상황을 연출했다(...) 특히 치바 롯데는 6회말에만 무려 20명의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고 12안타 4사사구 15타점 15득점을 기록, 6회말만 무려 48분을 까먹는 맹타를 퍼부었다. 그리고 치바롯데의 3번타자 오오마츠는 6회말에만 타석에 3번이나 등판하는 진기록을 세웠다.[11]

2.3.1. 2011년 시즌

센트럴 리그가 전체적으로 혼전양상을 보이면서 근성플레이가 빛을 발하고 있어 시즌 중반까지 이따금(…) 상위권에 올라갔다가 DTD하다를 반복했다. 단 2일이긴 하지만 한때 2위를 기록한 때도 있고, 올스타전까지 줄곧 3-5위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권 내를 서성대면서 히로시마 팬들의 기대를 부풀려 놨지만 올스타전 이후로 DTD 시전. 결국 또 5위로 끝났다. 2011년도 역시나로 끝나면서 연속 B클래스 기록을 14년으로 연장했다. 난카이-다이에로 이어진 호크스의 B클래스 20년 연속 기록 갱신에 7년 남았다.

2.3.2. 2012년 시즌

2012년 시즌에는 7월 경에 4위를 기록하더니,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원정 경기에서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를 3전 전승으로 이기며 3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코앞까지 올라왔다.[12] 그리고 때마침 요코하마도 야쿠르트를 상대로 3전 전승하면서(...)[13], 히로시마는 야쿠르트와 함께 공동 3위로 올라섰다. 그러고 또 며칠 후에는 결국 야쿠르트를 제치고 단독 3위로 등극하였다. 야쿠르트를 1~2게임 차로 앞선 이후로 초기에는 간혹 도로 뒤집히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오히려 굳히기에 들어갔는지 2012년 8월 31일 기준으로 4위 야쿠르트와 2게임 차이로 우위를 유지했다[14]. 그 기세 그대로만 갔으면 연속 B클래스의 기록을 종결하고 2007시즌부터 시행된 클라이맥스 시리즈 사상 첫 진출이 기대되...었으나 역시 그동안 값싼 선수들 위주로 스카우트를 해온 탓에 선수층의 빈약해서인지 오랜만에 피를 말리는 포스트시즌 다툼을 하는 바람에 선수들의 경험부족이 드러난 건지 9월 들어 6승 17패로 급전직하하면서 3위자리를 야쿠르트에게 내주고 2012년에도 포스트 시즌의 꿈은 좌절. 그와는 대조적으로 포스트시즌 경쟁팀이던 야쿠르트는 9월 한달에만 16승 8패의 호성적을 거두면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속담만 입증했다. 특히 9월 17~19일 야쿠르트와의 맞대결에서 싹쓸이 3연패를 당한 게 치명타가 됐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그리고 비밀번호는 555455565545554를 찍으면서 결국 15자리로...6년만 더 찍으면 신기록인데 2013년에서 막았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한신 타이거스DTD력이 상상을 초월한 바람에 4위는 수성하였다. 그것도 무려 4년만에(...). 의외로 비밀번호 찍는동안 6은 한번밖에 안 찍었다. 6위에 워낙 넘사벽의 팀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2.4. 시즌 리뷰(2013년 이후)

2.4.1. 2013년 시즌 : 22년만의 가을야구

2.4.2. 2014년 시즌 : 암흑기 탈출(?)

2.4.3. 2015년 시즌 : 강팀으로의 재도약과 히어강의 갈림길

3. 홈구장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자세한 내용은 항목에.

4. 이야기거리

4.1. 팀 컬러

빨갛다.

태생적인 자금 부족으로 도쿄에 있는 모 구단처럼 비싼 외국인 선수를 마구 현질을 하면서 데려올 사정도 못 돼서 일찌감치 아예 도미니카 공화국에 야구 아카데미를 차려놓고 현지에서 소년들을 훈련시켜서 등용하려 하고 있다. 이 과정을 거친 선수 중에 가장 성공한 선수가 현재 시카고 컵스에 있는 알폰소 소리아노이다. 물론 소리아노는 일본에 있을 시절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고 뉴욕 양키스 입단 후 확 터졌다. 막상 일본에서 제대로 써먹은 선수들은 거의 없다 그리고 2013년 시즌 한국프로야구 최악의 먹튀 용병인 에스마일린 카리대 역시 카프 아카데미 출신이다.

구단 상황이 저러니 우수한 신인선수들도 히로시마 행을 기피하는 바람에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재미를 못 보기 때문에 훈련이 빡세기로 유명하다.

2014년에는 선발진의 부진으로 인해 불펜+뻥야구를 시전하고 있다. 미친 홈런 페이스 보여주는 브레드 엘드레드와 리그 최강의 불펜진으로 막고, 홈런으로 끝내는 2012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비슷한 야구를 보여주고 있다.

4.2. 인기와 팬덤

팀 성적과 팬 수는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팀

  • 2014년에 발표한 구단인기 순위에서 292만명이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팬이라고 밝혔고, 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889만명), 한신 타이거즈(608만명)에 이어 3위의 기록이다.출처/일본어 원문 하지만 이 두팀의 연고지가 대도시인 점을 감안한다면 팬들의 충성도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히로시마 시의 인구는 119만명[15]인데 도요 카프를 응원한다고 밝힌 사람의 수가 3배 가까이 된다.(...) 2군 경기장의 경우에도 히로시마 도요 카프 유우 연습장의 총 입장 관객수가 2만명을 넘어가는데 이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최고 수준.

    이렇듯 지방도시 연고 구단이라는 점과 지역밀착형 마케팅, 시민구단으로서의 역사라는 특수성이 더해져서 팬들의 단결력만은 12개 구단 중 최고다. 하지만 이게 꼭 좋은 쪽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예를 꼽자면 올스타 투표때만 되면 집단으로 실력행사에 들어가는 팬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이미지만 보면 한신이 가장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 한신팬은 아무리 한신의 선수라도 성적이 안좋으면 가차없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는 욕을 안 먹는다. 가장 최근의 사례를 꼽자면 2009년 올스타 투표 마무리 투수 부문에서 방어율 3점대의 나가카와 카츠히로가 투표수에서 임창용의 턱밑까지 쫓아왔던 것. 실제로 마감 3일 전에 나가카와가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지 않았으면 1위를 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16] 이런 무개념한 모습 때문에 2ch에서는 그렇게 멍청한 놈들이니까 원자폭탄이나 쳐맞지 하고 욕하는 사람도 많다. 일본도 지역감정 쩔어준다는 대표적인 증거.

    마쓰다 자동차 다음으로 히로시마 구단의 두번째 큰 스폰서는 놀랍게도 히로시마 어시장이라고 한다. 타팀팬들이나 다른 나라 야구팬들은 이것을 가지고 비꼬기도 하지만 그만큼 지역민들의 충성도는 높다.

  • 또한 2013년 경부터 간토지역을 중심으로 얼빠여성팬들이 대거 생성되면서두산 베어스? 카프 조시(カープ女子)[17]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는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자막: 앞으로도 카프조시가 계속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계속 성적을 내라[18]

    2012, 13시즌을 거치며 팀이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개편되었고, 짠돌이 구단 탓에 매년 스타선수들을 유출시키며 약체화가 지속되어 팀에 남은 선수들만 고생하는 모습이 동정심을 자극한데다, 응원 방식이 재밌어서 본인이나 가족, 친척, 친지들 모두 히로시마와는 큰 상관이 없는 수도권 지역의 여성들이 대거 히로시마의 팬이 되었다.[19] 여기에 일본의 유명한 토크쇼에서도 히로시마 카프편이 호평받으며 팬층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2013시즌 후반부터 마치 그 동안의 고생이 보답을 받는 듯 성적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21년만에 가을야구 하게되자 하나의 유행이 된 것. 이들이 수도권 지역의 원정경기에 몰려다니기 시작하면서 2013년, 2014년에 도쿄돔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한 팀이 최고의 라이벌 팀도 아니고, 지역 라이벌 팀도 아닌 히로시마가 되는 현상까지 발생했고 예전 같으면 그들만의 리그 수준이었던 요코하마 스타디움메이지진구 야구장의 히로시마전 관중동원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들 구장에서 히로시마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좌측 외야 스탠드 쪽에 붉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그게 다 히로시마 팬들이다.
    그러나 구단 입장에서는 이들 수도권 지역의 여성 팬들이 경기를 주최하는 수도권지역 상대팀 영업담당만 신나게 하지 구단의 입장수입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지라 이들의 열기를 마쓰다 스타디움의 관중동원으로 연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14년 5월에는 이들 수도권 지역의 여성 카프팬들을 대상으로 신칸센을 전세내서 원정단관응원을 기획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 안습한 팀 때문인지 팬들의 성격이 다소 자학적이다. 이 팀의 안습함은 미나미가에서도 나왔던 다음 넌센스 퀴즈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Q: 빨간 모자[20]를 쓰면 눈물을 흘리며 작아지는 것은?
A: 연패중인 히로시마 팬[21].

  • 팀이 비밀번호를 신나게 찍어대던 2000년대 후반에는 히로시마 팬의 10계명이란 것도 나왔었다. 벌써부터 눈물이 앞을 가리게 만드는 10계명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팀이 생각난다면 기분탓이다. 어떤 기자는 한반도의 절대 약체인 모팀을 위로한답시고 이 10계명을 기사로 썼다.[22] 물론 이건 2012년까지의 이야기고 2013년 부터는 잘나가는 팀이다. 그리고 이건 자책성 유머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1. 승패에 연연해하지 말 것.
    - 어차피 이기고 지는 세상사.

    2. 남의 FA 선수를 탐내지 마라.
    - 그들의 리스트에는 히로시마의 H따위는 없다 .
    만약 H가 보인다면 그건 모기업이 부자로 소문난 모 팀이나 모 팀의 머릿글자를 잘못 본 것이다.

    3. 외국인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도 좋아하지 말 것.
    - 내년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4. 외국인 선수에 정 주지 말 것.
    - 잘 하면 다음 시즌에 타팀에서 보게 될 것이고, 못 하면 그 날로 인천행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23]

    5. FA를 앞둔 선수는 과감히 버려라.
    - 그들도 사람이다. 승리 또는 돈, 둘 중에 하나는 갖고 싶어한다.[24]

    6.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다.
    - 제구병신 나가카와가 올라온 순간부터 상황은 급반전된다.

    7. A클래스와 B클래스 사이에는 4차원 공간이 존재한다.
    - A클래스의 1, 2, 3위는 왕족, 귀족, 성직자 계급이라고 보면 된다.

    8. 오늘 누가 안타를 칠 것인가보다 티 브라운 감독[25]이 언제 베이스를 뽑으면서 항의할까를 기대하라.
    - 히로시마의 유일한 세일즈 포인트다.

    9. 한신은 우리의 상전.
    - 그들의 수요는 엄청나다. 원활한 공급만이 우호유지의 생명.[26]

    10. 가급적이면 한국프로야구(KBO)와 메이저리그(MLB)로 눈을 돌리자.
    - 이게 답.[27]


한국에서는 팬덤은커녕 인지도조차 희미한데 항목은 NPB구단 중 제일 길다? 선수항목을 제외한 소항목이 두 개나 있다
팬은 적지만 충성도는 높다는 걸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

4.3. 모기업 마쓰다와의 관계

본래 시민구단으로 운영되어 왔으나 성금까지 모으는 정성에도 불구 재정난으로 해체위기에 처하게 됐다. 결국 히로시마 시민들이 1968년 히로시마에 본사가 있는 기업 중에서 제일 큰 회사인 도요공업(東洋工業), 즉 현재의 마쓰다에 구단 좀 맡아달라고 탄원해서 일단 마쓰다 자동차가 구단을 맡게 되었다.[28] 이에 팀 이름도 히로시마 카프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바꾸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마쓰다 자동차는 지분소유와 경영진 파견만 할 뿐, 팀을 유지시키는 이상의 투자는 하지 않고 있다. 대주주인 마쓰다 자동차의 기본 방침은 야구팀을 해체시키지는 않을테니 크게 적자만 내지 말아라...이다. 구단이 자기 힘으로 벌어서 먹고 살아야 되는 것은 여전하다.

이 때문인지 센트럴리그팀 중에서 연봉이 굉장히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아끼고 아껴서인지 NPB에서 흑자를 내는 세 구단 중 하나라고 한다. 2009년 기준으로 요미우리는 15억 엔, 한신은 3억 엔, 히로시마는 4억 엔의 흑자를 기록했다.흑자구단 자부심 하나 추가요 2013시즌까지 39년 연속 흑자라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흑자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팀연봉을 20억엔 이하로 맞추라는 것은 구단 내부의 오랜 불문율이고, FA가 시행되고 나서도 10년 가까이 팀내 최고 연봉 선수를 2억엔 선에 묶어두는 게 내부 방침이었을 정도다. 만약 팀내 선수가 FA를 선언하면 요구액에 상관없이 그냥 떠나보내는 게 연례행사였고 이 때문에 팀의 간판이던 토 아키라, 가네모토 도모아키 등이 FA를 선언했을 때 구단은 잡으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이들이 팀을 떠나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그러나 팀의 리더격이었던 가네모토의 FA 이적 후에 선수들의 팀에 대한 충성도가 눈에 띄게 낮아지고, 팀의 상징이자 기둥인 마에다 도모노리에 대한 미적지근한 처우에 구단 내외로부터 쏟아지는 비판의 후폭풍을 견디다 못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급 한두명에 한해서 내부 FA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적당한 수준의 연봉을 제시하는 선에서 머무르고 있다. FA를 선언하는 프랜차이즈 스타급 선수들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홈디스카운트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들의 요구가 과하다고 생각될 경우 가차없이 결별하는 것도 변함 없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노릴만한 수준의 선수라면 '더 높은 곳에 도전하려는 선수의 꿈을 이루어준다'는 미명하에 포스팅을 통해서 선수를 팔아먹고 포스팅비를 챙겨먹으려는 전략도 여전히 유효하다. 팀의 기둥인 마에다 켄타의 연봉을 감당할 의지조차 없어서 포스팅을 통한 해외 진출을 부추기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돈 남아도는 일부 구단 빼고는 다 똑같아서 히로시마만 그런건 아니다.

민주주 형태의 구단이기는 하지만, 마쓰다 경영진의 입김이 매우 세기 때문에 시민들의 의지는 그다지 반영되지 않고 마쓰다 경영진은 투자를 통한 팀의 성적보다는 적자를 내지 않는 것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2014 시즌 젊은 선수들의 분발로 인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이 걱정되는 이유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쓰다 경영진에 대한 비판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히로시마 미디어 관계자에 따르면, 오너의 경영에 대해서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미디어는 출입 금지를 당하고, 애초에 지방 구단이라 출입 기자수도 많지 않아 후빨하는 경영에 좋은 평가를 내리는 기사만이 나온다고 한다.[29]

5. 유니폼


70년대 후반 ~ 80년대 후반 카프 최전성기의 유니폼.


현재의 유니폼.

팀의 초창기 유니폼은 그 당시 거의 모든 팀이 그랬듯 검정색 위주의 칙칙한 유니폼이었다. 그러나 1975년 카프 최초의 외국인 감독 조 루츠가 '투쟁심의 상징색'으로 빨간 유니폼을 제안했고, 그 이후 카프가 아카헬 돌풍을 일으키면서 팀 컬러로 굳혀졌다.[30] 다만 처음에는 '초등학교 운동회도 아닌데 다 큰 어른이 부끄럽게 빨간 모자를 써야 하냐'는 불평이 잠깐 있기도 했다고 한다. 2004년까지는 유일하게 빨간 모자를 쓴 구단이었으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도 빨간 모자를 쓰면서 유이한 팀이 되었다.[31]

유니폼의 경우 원정에는 회색(7~80년대에는 연한 하늘색)과 빨강을 위주로 썼으며, 홈의 경우 흰색과 빨강을 주로 썼다. 그런데 2009년 새 구장으로 옮기면서 유니폼 역시 새로 바꿨는데, 다른 건 괜찮은데 문제는 SK 와이번스 유니폼과 흡사해졌다. 정작 SK 와이번스도 원정 유니폼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얼트 저지와 매우 흡사하다 시민 중심 체제이니만큼 한신 타이거스[32],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33],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함께 지역명을 원정 유니폼 전면에 붙이는 몇 안되는 구단이다. 1/3이 몇 안되는 것이었나

6. 대표적인 선수들

6.1. 현역(2015년 기준)

6.1.1. 투수

6.1.2. 포수

6.1.3. 내야수

  • 2. 가시데 아키히로
  • 4. 쿠보 테츠야
  • 5. 리하라 켄타
  • 6. 소요기 에이신
  • 7. 바야시 쇼타
  • 13. 라 카아이후에
  • 28. 라이 다카히로
  • 33. 쿠치 료스케
  • 55. 래드 엘드레드
  • 66. 무라 쇼고

6.1.4. 외야수

6.2. OB

6.2.1. 투수

  • 세가와 료헤이 (1950 - 1963)
  • 아니야 소하치 (1964 - 1974, 1980 - 1981)
  • 토코바 요시로 (1965 - 1979)
    통산 노히트노런 3회 기록. 일본프로야구 최고 기록이다. 노히트노런 3회 중에는 퍼펙트 게임도 한 게임 들어있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기록을 세운 투수도 통산 기록이 131승 136패로 승보다 패가 더 많다. 안습.
  • 김기태(재일교포) (1971 - 1976)
  • 케가야 코지로 (1974 - 1985)
  • 타벳푸 마나부 (1976 -1994)
    정밀기계라는 별명답게 정교한 제구력을 가졌던 투수로 9이닝당 볼넷 허용률은 1.90에 불과했고, 홈플레이트 위에 빈 캔 3개를 두고 공 3개로 쓰러뜨렸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 심판이었던 다나카 토시유키(田中俊幸)는 심판 판정에 자주 시비를 걸어오는 투수라 피곤했다는 증언을 했다. 통산 성적 213승 141패, 방어율 3.67. MVP 1회, 사와무라상 2회 등. 현역에서 물러난 지금은 TV 해설, 각종 쇼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창x방패에서는 방범볼vs충격흡수 매트 편에 특별출연했으나... 정밀기계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공을 깨먹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 노 유타카 (1977 - 1998)
    큰 오노(大野)라 불리며 1970년대 말 ~ 1990년대 중후반을 풍미했던 좌완 에이스. 다르빗슈 유가 등장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2년 연속 시즌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한(1988, 1989) 투수였다. 이쪽도 선발-마무리 안 가리고 마구 굴려졌으며(148승-138세이브), 커리어의 막바지에 접어든 1997년 시즌에는 42세의 나이로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을 따내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수코치로는 양상문급...
  • 장명부 (1978 - 1982)
    1979, 1980년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 주력 투수 중 한 명
  • 에나츠 유타카 (1978 - 1980)
  • 츠다 츠네미 (1982 -1991)
  • 사오카 신지 (1991 - 2007)
    138승 - 106세이브를 기록한 카프의 마당쇠. 보직에 상관없이 정상급의 실력을 보여줬으며, 만약 조금 덜 안습한 팀에서 뛰어서 선발로만 뛰었다면 통산 200승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 사이토 유키 (2006 - 2014)
    2번 항목 참조

6.2.2. 포수

  • 츠카와 미츠오 (1978 - 1992)

6.2.3. 내야수

6.2.4. 외야수

  • 즈타니 지츠오 (1966 - 1982)
  • 마우치 카즈히로 91968 - 1970)
  • 야마모토 코지 (1969 - 1986)
    아래 영구결번 항목 참조.
  • 가타 고이치 (1987 - 2009)
    현재 카프의 감독.
  • 에다 토모노리 (1990 - 2013)

6.3. 팀 출신 메이저리거

6.4. 영구결번

3. 기누가사 사치오 : 카네모토 토모아키 이전에 철인이라 일컬어졌던 남자. 2215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44] 504홈런, 266도루, 2543안타, 통산타율 .270. 야마모토 코지와 호타준족의 콤비로 히로시마를 이끌었다.

8. 야마모토 코지 : 히로시마 프랜차이즈 최고의 레전드. 일명 미스터 아카헬. 536홈런, 231도루, 2339안타, 통산타율 .290의 강타자였다. 1980년대 카케후 마사유키와 함께 센트럴리그 홈런왕 경쟁을 했고, 시원한 장타력 뿐만 아니라 정상급의 외야수비능력까지 갖춘 선수였다. 현재 구회 부회장이며, 베이징 올림픽 때 수비주루 코치였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는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그 외 쿠로다 히로키의 15번은 봉인된 상태였는데... 구로다가 2014년 금액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돌아오면서 다시 부활했다. 물론 구로다가 은퇴하면 영구결번은 사실상 확정. 노무라 켄지로의 7번은 봉인된 상태였다가 2012년 시즌이 끝나고 3루수 유망주 바야시 쇼타가 번호를 물려받았으며, 타벳부 마나부의 20번은 2002년까지 영구결번이었다가 볼질 나가카와 카츠히로가 계승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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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과거에는 주니치 드래곤즈, 닛폰햄 파이터즈, 킨테츠 버팔로즈 등 많은 팀들에 '야구 소년'을 모티브로 한 팀 로고나 마스코트 등이 있었으나, 1990년대를 지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히로시마 카프만이 이러한 형태의 팀 로고를 유지하고 있다. 관련 상품 등에도 적극적으로 디자인이 활용되고 있다.
  • [2] 1995년부터 등장한 마스코트로, 세서미 스트리트 제작사가 디자인한 캐릭터이다.
  • [3] 실 지분은 마쓰다 기업이 아닌 창업주 일가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 [4] 당시 일본 축구계는 프로리그 창설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구단이 아시아 최초 시민 프로구단이다. 알비렉스 니가타가 1955년 창단했지만 당시에는 (프로리그도 없었으니) 프로팀도 아니고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닌 친목도모 축구팀이었다.
  • [5] 대표적인 예로 원자폭탄 투하 전후의 히로시마를 그린 맨발의 겐의 등장인물 곤도 류타는 카프의 광적인 팬으로 나온다.
  • [6] 사실 한국에서 야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은 넥센을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모두 대기업이다. 삼성과 KIA(현대자동차)는 그냥 각각 재계 1,2위를 차지하는 쌍두마차. LG, 롯데, SK도 재계순위 10위 안에 들고, 그보다 약간 처지는 두산과 한화 역시 재계순위 20위 안에는 든다. 반대로 일본야구의 모기업은 신문사나 철도회사는 자체로는 재계에 명함 내밀기 어려운 수준이고, 한화와 규모가 유사한 마쓰다가 소프트뱅크와 함께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요미우리나 한신처럼 애초에 야구단이 돈을 벌거나, 오릭스처럼 모기업이 금융과 관련된 사업을 하거나, 세이부처럼 구단주가 돈을 쓰거나 하는 곳이 자금력을 발휘하게 되는 셈. 여담으로 세이부는 전 사주 사망 후 여러 곡절을 거쳐 모기업이 분열되었다.
  • [7] 1950년 양대리그 출범 당시 센트럴리그 팀은 8개 구단이었으나 이듬해 니시닛폰 파이리츠가 퍼시픽리그 소속인 니시테츠 클리퍼스에 합병되어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되면서 7개 구단으로 줄었다.
  • [8] 이 해에는 일본 최초의 메이저리그 출신 감독인 루츠가 감독을 맡으며 시작했다. 캠프에서 워렌 스판을 임시 코치로 대동하는 등 의욕적으로 시작했으나 개막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퇴했다. 그래도 빨간 유니폼을 남겨놓고 갔다.
  • [9] 그 유명한 에나츠의 21구가 벌어졌던 시리즈다. 상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 [10] 70년대 신시내티 레즈의 별명인 빅 레드 머신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고보니 이쪽도 붉은 유니폼에 로고 모양이 'C'...
  • [11] 이닝 선두타자이자 오오마츠의 바로 앞 타자였던 후쿠우라는 도중에 교체되면서 2연타석만 기록.
  • [12] 2012년의 대요코하마 전적은 무려 15승 6패로, 유독 요코하마에게만 강세였다. 아니 요코하마를 제외한 다른 네 팀에게는 전부 근소한 열세였다. 결국 다른 팀과의 대결에서 패한 부분을 제일 만만한 요코하마전에서 메웠다는 소리.
  • [13] 7월 16일부터 18일까지 열린 홈 경기에서 요코하마는 2012 시즌 첫 3연승과 시리즈 스윕을 해내면서. 장하다 색히들아
  • [14] 다만 2위 주니치 드래곤즈와는 여전히 11게임 차이로, 현저하게 밀리고 있다.
  • [15] 2014년 8월기준 1,185,243명
  • [16] 나가카와가 1위가 되는데 거부감을 느낀 다른 팀 팬들이 임창용을 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17] 한국말로 번역하면 카프 여자.
  • [18] 여담으로 경기장 외야가 붉은색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저기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홈구장인 메이지진구 야구장이다. 히로시마에서 1000km가 넘는 동네의 야구장을 정복하는 히로시마 팬덤의 위엄
  • [19] 이들 중에는 본진인 마쓰다 스타디움은 물론 태어나서 히로시마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꽤 있다.
  • [20] 히로시마 유니폼의 모자 색상이다.
  • [21] 원래 정답은 "양초"
  • [22] 대전 한화는 그나마 투자 가능성이 남아 있으니 히로시마보다 나은 편이다.. 대대광강이 봤다면 어떨까?
  • [23] 그 대표가 니 레이번이크 로마노다.
  • [24] 물론 실제로는 다른팀으로 옮기면 얄짤없이 까인다. 가네모토를 따라 한신 타이거즈로 옮겼다가 다시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돌아온 아라이 타카히로는 아직도 팬들의 절반은 용서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올 지경. 물론 돈을 보고 한신으로 떠나갔다는 것과 더불어 언플을 때려 빡친 팬들을 더 빡돌게 만들기도 했지만.
  • [25] 2006년~2009년까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외국인 감독. 재임기간 동안 성적은 5위-5위-4위-5위.
  • [26] 카네모토 토모아키, 아라이 타카히로, 디 시츠가 대표격이다.
  • [27] 그런데 진짜로 메이저리그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게, 한때 카프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구로다 히로키가 메이저리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 구로다는 2015 시즌에 금의환향했다!
  • [28] 한동안 위키에 돈이 없는 기업이라고 했지만 그룹 규모는 한국의 한화 그룹과 비슷하며 현재 일본프로야구팀을 운영하는 기업중에서는 소프트뱅크와 더불어 top2의 규모다. 당연히 한신 전기철도요미우리 신문보다도 규모가 크다.
  • [29] 참고로 한국프로야구는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고 해서 구단 출입이 금지되는 경우는 없다고 박동희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인터뷰 Q.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는 구단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을 때, 해당 구단에서 취재석 출입을 금지시킨 적도 있다고 했어요. 그런 압박을 받은 적은 없나요? A. "한번도 없어요. 팩트가 정확하고 상대방이 반박할 수 없는 팩트라면, 최소한 야구계에서 그런 부당한 일은 생기지 않아요."이런건 한국 야구가 더 낫구만
  • [30] 이 때문인지 유니폼이 MLB의 신시내티 레즈와 흡사하다.
  • [31] 다만, 라쿠텐의 팀 컬러는 정확히 버건디(Burgundy)로 넥센 히어로즈가 팀 컬러로 쓰는 바로 그 색이다.
  • [32] 여기는 기업명칭이 지역명+사업종류라서.
  • [33] 유니폼 교체와 함께 기업명과 같이 부착.
  • [34] 2014 드래프트 2순위
  • [35] 2014 드래프트 1순위
  • [36] 2014년 FA로 풀리자 MLB 구단의 구애를 뿌리치고 돌아왔다. 금액으로만 따져도 최소한 100억은 벌수있었는데 4억엔만 받고 귀환
  • [37] FA로 이적한 다케 칸의 보상선수.
  • [38] 도미니카 카프 아카데미를 거쳐간 선수 중 하나. 1995년 일본에서 평균자책점 2.74, 15승 8패, 166탈삼진의 훌륭한 성적을 거두며 1997년 보스턴에 입단하나, 보스턴에서의 2년간 메이저리그 출장은 단 5경기에 불과했다(...). 구단에서도 '미스테리 맨'사이버 투수이라 불리며 먹튀인증을 철저히 했다.
  • [39] 도미니카의 히로시마 카프 아카데미 출신으로 일단은 선수생활을 일본에서 시작했다. 성적은 1할대 초반을 찍고 퇴출, 퇴출 후 뉴욕 양키스로 이적후 얼마뒤 포텐셜이 폭발했다.
  • [40] 이쪽도 역시 카프 아카데미 출신 도미니카 용병. 96년에서 99년까지 카프에서 뛰며 외야수로 쏠쏠한 활약을 했지만 당시 자국인 선수만으로도 역대급 외야진을 구축했던 카프에서는 기회가 많지 않아 주로 주전 외야수들이 부상당했을 때를 중심으로 활약했다. 미국에서는 저니맨으로 여러 팀들을 오가며 외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활동했다.
  • [41] 2번 항목의 선수. 소리아노처럼 일본에서 아주 잠깐 뛴 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뉴욕 양키스 행
  • [42] 텍사스 레인저스 출신으로 어깨 부상과 부진을 겪으며 일본에 왔다가 강심장을 얻고 슬라이더를 익혀서 빅리그 친정팀으로 돌아가서 대성했다.
  • [43] 좌완투수로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안습한 투수진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40세가 되는 해인 2009년에 마이너 계약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가 메츠에서 잠깐 중간계투로 뛰다가 방출되었고, 다음 해 일본으로 돌아와 은퇴했다.
  • [44] 루 게릭이 가지고 있던 연속출장기록을 넘긴 기록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이 부문만큼은 키누가사의 기록을 인정했다. 하지만 몇 년 뒤 칼 립켄 주니어가 갱신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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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0 01: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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