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히카루GENJI

光GENJI

Contents

1. 개요
2. 그룹명에 대해
3. 활동 이력
4. 멤버
5. 기록
6. 에피소드

1. 개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던 일본의 남성 아이돌 그룹이다.
쟈니즈 사무소 소속이며 1987년 (히카루)와 GENJI라는 두 팀이 합체해 결성되었고, 1995년 해산하였다.

2. 그룹명에 대해

그룹명은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인 히카루 겐지에서 따왔다.
사무소의 쟈니 키타가와 사장이 그냥 아무 생각없이(...) 붙였다고 한다.
이에 멤버들이 '그룹명이 너무 옛스럽지 않은가' 하고 제기하자, 겐지(源氏)를 영어로 하면 된다고 해서 光GENJI라는 이름이 탄생. 멤버 한 명 한 명에게 이미지 컬러를 부여해서 이는 후배 그룹인 SMAP에게도 이어지며, 연장자인 '光'과 연소자인 'GENJI' 유닛으로 나누어 연장자 그룹이 연소자 그룹을 끌어주는 형태가 후일 V6에게 이어졌다.

3. 활동 이력

1987년 데뷔 앨범 'STAR LIGHT'로 데뷔하자마자 바로 남성 아이돌 톱으로 군림하며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 롤러 스케이트를 신고 춤추며 노래하는 퍼포먼스로 유명하며 활동시의 반 누드나 반바지 등 파격적인 컨셉으로 회현상이라고 불릴 만큼 큰 화제를 몰고다녔다.인기의 정점이었던 88년에는 싱글 '파라다이스 은하(パラダイス銀河)'로 일본 레코드 대상을 받았다.

89년부터 90년에 접어들면서 아이돌 붐이 침체하였기 때문에[1]위와 같은 화제를 낳은 히카루GENJI의 인기도 식어가는 듯 보였지만 고정 팬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90년대 초반까지 안정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늘어감에 따라 오오사와 미키오, 사토 히로유키가 탈퇴, 멤버들이 5명으로 줄어버리자 95년에는 '光GENJI SUPER 5'라고 그룹명을 개명. 그 해 마지막 콘서트를 열고 해산하였다.

4. 멤버

히카루
  • 우치우미 코우지(1968년생)
  • 오오사와 미키오(1969년생)

GENJI
  • 모로호시 카즈미(1970년생)
  • 사토 히로유키(1970년생)
  • 야마모토 쥰이치(1972년생)
  • 아카사카 아키라(1973년생)
  • 사토 아츠히로(1973년생)

5. 기록

  • 1988년 발매한 비디오 '太陽がいっぱい 光GENJI'가 약 30만장을 판매. 당시 비디오 판매량으로써 최고 기록이었다.
  • 88년 연간 오리콘 차트에서 'パラダイス銀河(파라다이스 은하)','ガラスの十代(유리의 십대)','Diamondハリケーン(다이아몬드 허리케인)'이 1,2,3위를 독점.
  • 데뷔부터 90년까지 8곡 연속 오리콘차트 1위 달성.
  • 데뷔부터 해산까지 CD와 비디오 총 판매량 1500만장.
  • 팬클럽 회원수는 약 50만명.
  • 아이돌 잡지 'Myojo'가 최고부수를 찍었을 때는 히카루GENJI가 활동하던 시절이다. 히카루GENJI의 전성기가 지나고 SMAP이 인기를 얻을 때까지 수난의 시대가 계속 되었다고한다.

6. 에피소드

  • 전국의 초중학생들에게 롤러 스케이트를 유행시켰다.'光GENJI ローラーパニック'이라는 쿠소게패미컴 게임도 출시되었었다.
  • 초기엔 격렬한 음악이 많았기때문에 땀이 장난아니게 흘러 하루 2번은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고 한다... 응?
  • 매년 발렌타인 데이가 되면 트럭으로 수십대나 되는 초콜렛이 보내졌다. 사무소에 트럭이 도착하는 영상은 당시 방송들의 큰 볼거리였다. 그 수는 4톤 트럭 38대 분이라고 한다. 흠좀무
  • 95년 해산 콘서트 티켓가격이 100만엔(우리나라 돈으로 1000만원 이상) 정도의 가격으로 암표상에게 팔렸으며 실제 그 가격으로 티켓을 구입한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 현재로 말하자면 사생팬들이 지금의 EXO 못지 않게 심하게 극성을 부려 멤버들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도 사생활 보호가 전혀 되지 않았다. 한 멤버는 자신의 집이 무단으로 투어 여행의 관광 루트가 되어 "그런 짓은 그만둬달라"라며 괴로워했다.
  • 88년 인기 정상의 가도를 달리던 시기 최연소 멤버 2명(사토 아츠히로와 아카사카 아키라, 당시 중학교 3학년)이 교토로 수학여행을 갔는데 그 곳까지 진을 치고있는 수백명의 팬들과 카메라맨들에 휩싸여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돌아오는 역인 도쿄에서도 엄청난 수의 팬들이 기다리고있어 변장을 하고 거짓 정보를 흘리는 방법으로 그 자리를 탈출했다는 이야기가 유명.
  • 93년 싱글 '용기 100%'가 애니메이션 닌타마 란타로 주제곡으로 93년부터 2002년까지 쓰였다. 이후 쟈니즈후배인 Ya-Ya-yah가 리메이크.
  • 당시 백댄서로는 현재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SMAP, TOKIO, KinKi Kids등 쟈니즈 사무소의 후배들이 맡았다.
  • 세타가야 '9'자 사건의 범인들의 가짜 협박장에서 목표대상이 된적도 있다. 그만큼 유명했단 뜻도 되겠지만...
  •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도 등장하는데 모든걸 버리고 폐인이 된 마츠코가 TV나 보며 뒹굴거리다가 히카루겐지를 보고 빠지게 된다. 영화만의 오리지널 설정.
  • 오오사와 미키오는 팀 해산 후 주로 연기자로 활동 중이다. 한국에서 가장 익숙한 모습은 백수전대 가오레인저 극장판의 레지스탕스 리더.
  • 오오사와 미키오는 16년 전 여배우 키타지마 마이와 혼전 임신으로 결혼해서 아들을 하나 두었으나 이혼. 오오사와 미키오는 최근 재혼할 때까지 혼자 아들을 키웠는데 아들이 지적장애 및 망상증 등을 가지고 있어 상당히 고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2013년 12월 이 아들이 DNA감정 결과 친아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월 6일 오오사와 미키오는 기자회견을 통해 보도가 사실임을 발표하였고 현재 변호사를 통해서 법률적으로 부자관계를 소멸하는 신청을 했다고 하는데, 일본법상 생물학적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오랜기간 가족으로서 함께 산 경우, 부자관계로 인정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라고 한다.

    키타지마 마이 측은 보도가 나간 직후 왜 이제와서 이런 이야기를 기사로 나가게 만드는지, 어린 아이가 얼마나 충격을 받을 지 생각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며 적반하장의 코멘트를 내보냈다.

    키타지마 마이는 결혼 전부터 남자 관계가 복잡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아마 아이 아버지가 누군지 키타지마 본인도 모를 것 같다는 의견이 많다.

    참고로 아들 측은 주간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아버지가 DNA검사 결과 99.9퍼센트 부자관계라고 적힌 서류를 봤다고 주장했는데, 오오사와 미키오의 말에 따르면 아들에게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한 적이 없고 서류는 본인이 본 후에 회사 금고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아들이 볼 방법이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예전에도 친구집에서 물건을 망가뜨린 걸로 오오사와 미키오가 혼낸걸 가지고 "아버지가 날 죽이려 한다."고 경찰에 신고까지 한 전력이 있어 아들의 주장은 순전히 본인의 망상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3-01 12:47:29
Processing time 0.0652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