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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유겐트

last modified: 2015-10-29 20:38:05 by Contributors

Hitler-Jugend

Contents

1. 소개
2. 역사
3. 히틀러 유겐트의 활동
3.1. 히틀러 유겐트 활동의 의미
3.2. 유겐트 단검
4. 히틀러 유겐트의 세뇌
5. 전쟁 투입
6. 이후
7. 히틀러 유겐트 출신의 유명인물
8. 대중문화에서의 히틀러 유겐트
8.1. 직접 묘사
9. 언급되는 정도
10. 관련있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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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유겐트의 로고

Hitler you can't

Contents

1. 소개
2. 역사
3. 히틀러 유겐트의 활동
3.1. 히틀러 유겐트 활동의 의미
3.2. 유겐트 단검
4. 히틀러 유겐트의 세뇌
5. 전쟁 투입
6. 이후
7. 히틀러 유겐트 출신의 유명인물
8. 대중문화에서의 히틀러 유겐트
8.1. 직접 묘사
9. 언급되는 정도
10. 관련있는 정도

1. 소개

나치 독일의 청소년조직. 설립연도는 1922년.

2. 역사

1922년 3월에 조직되었던 '국가사회주의 청년동맹(NSDAP)'이 1926년 7월에 재건된 것이다. 한번 해산되었던 이유는 히틀러가 체포되서(…).

1932년 말에는 대원이 10만 명이었으나 나치스가 정권을 장악한 후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1934년 말에는 약 358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는 지정하여 전 독일의 정치·종교·군사·스포츠 관계의 전(全) 청소년 단체를 해산, 유겐트에 흡수시켜서 히틀러 유겐트가 유일한 청소년 단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톨릭 계열 청소년 단체들은 교황청과 히틀러의 협약 때문에 얼마동안 무사했지만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아서 해체하고 통합했다.

유겐트법이 지정되어 부모들은 반드시 아이들을 히틀러 유겐트에 등록시키도록 강제되었다. 마치 학교에 무교육으로 다니는 것처럼, 청소년조직인 히틀러 유겐트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여 활동하도록 만든 것이다. '여가활동'의 일종으로 여겨지던 청소년 조직에 이처럼 강제적으로 참가하게 만드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특이한 정책이었는데, 이후 독재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정책을 따라하게 되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반항아들이 없지는 않았으며 에델바이스 해적이나 스윙 청소년, 모이텐 같은 반체제 청소년 집단이 나타났다.[1]

1936년 12월 이래 전독일 청소년 남녀 전원을 강제적으로 조직하는 기관이 되었고, 나치스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교육·체육·통치기관이 되었으며, 점차 스포츠나 사상교육보다도 근로봉사와 전시하의 군사보조노동이 중시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징집 영장의 발송이나 배급카드의 분배 등 간단하고 그리 위험하지 않은 일을 맡았고, 점점 전쟁이 심해지자 군용 병원에서 부상자들을 간호하는 이들을 돕거나 고철을 수집하는 노동을 하게 되었다.

이후 대전 말기가 되면 이미 43년 이후 개막장트리를 걸어가던 제3제국의 상황 덕분에 초기 본격 파시즘 보이스카웃에서 본격 청소년 의용군으로 격상(?)되어 각종 전투병과에 우겨 넣어 소년병으로 활동시켰다.

3. 히틀러 유겐트의 활동

18세까지의 청소년을 대원으로 하고, 대원의 69%는 청년 노동자와 도제, 10%는 상업 관계자, 12%는 학생이었는데, 그 중에서는 실업자의 비율이 높았다. 조직 측면에서 돌격대(SA)의 일부로서 일종의 전체주의적 관념을 가졌지만, 돌격대가 유명무실화 되면서 거의 독자적인 조직이 되었다.

그 내부는 4단체로 나누어졌다. ①10~14세의 소년으로 조직된 독일소년단, ②14~18세의 청년으로 조직된 본래의 히틀러 유겐트로, 18세를 초과한 대원은 나치스당으로 보냈다. ③10~14세의 소녀로 조직된 소녀단, ④14~21세의 여자로 조직된 독일여자청년동맹으로, 그 중 17∼21세의 여자는 '신앙과 미(美)단'이라는 특별조직을 만들었다.

히틀러 유겐트의 나치스 이론학습을 위해서 야간 모임이나 시위·선동 활동을 하였으며, 소풍을 나가서 캠핑을 벌이기도 했다. 또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교육을 한다는 명분하에, 스포츠와 야외 활동, 신체 단련을 중시하였다.

3.1. 히틀러 유겐트 활동의 의미

요즘 생각하면 히틀러 유겐트 활동은 저걸 뭐하러 하냐(…) 싶겠지만. 당시 독일에서는 의외로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일단 알아둘어야 할 것은, 전간기 바이마르 공화국은 당시 기준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민주적인 체계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2차 대전 이전은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인 사회였으며 21세기 선진 세계보다 훨씬 억압적인 분위기를 가진 사회였다. 100년전 이야기다. 뭘 바람 특히 독일제국 시기에 만연했던 보수적인 프로이센 군국주의 기풍의 영향으로 전간기 독일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굉장히 억압적이었다.

부모님이 귓방망이 때리면서 '공부공부공부!'하는건 요즘 대한민국에서 그렇듯이 당연히 있는 일이었고, 약간 머리가 굵어지면 '나가서 일해서 돈이나 벌어!'하고 직업 전선에 투입하는 경우도 당시는 흔히 있었다. 보수주의적이라 여성에 대한 억압이 강한 사회다보니 여자아이들에게는 억압이 더욱 심했다. 도시에서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으나 농촌에서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아주 지독해서 '요놈의 기집애가 바람이 들어서 밖에서 싸돌아다니고! 빨리 밥하고 청소하고! 시집갈 준비나 해!'(…)였다고 보면 딱 맞다.

이런 사회에서 스포츠, 캠핑 등의 여가 활동을 통한 인성교육(?!)을 전면애 내세운 히틀러유겐트는 상당히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 나름대로 '건전'한 활동을 통한 '청소년 육성'을 모토로 하기도 했기 때문에 보수 계층에게도 트집 잡을 거리가 없었다. 특히 '집 안에 콕!' 처박혀 있어야 했던 여자애들은 그냥 '합법적으로' 밖에 나가서 집안 가사일 같은데서 해방되어 또래 친구들하고 이것저것 한다는 것 자체를 재미있어 하는 수준.

히틀러유겐트는 또한 '청년들 사이의 상호 교육'을 중시하였다. 유겐트 지도자는 20대 이하[2]여야 했으며, 말 그대로 '청소년 단체'였던 것이다. 당시 독일 청소년들에게 히틀러 유겐트는 나름대로 '어른들'의 억압적인 지시에서 벗어나, '총통 각하'라는 절대적인 권위 아래에서 자기들끼리 '건전'하게 스포츠나 캠핑 같은걸 즐기면서 해방감을 즐기고, 정치 활동을 통한 사회 참여도 할 수 있는 '멋진 단체'로 다가오게 되었던 것이다.

유겐트에서 할 수 있는 여가활동은 나름대로 공부나 직업활동 보다는 즐거웠고, '위대한 총통 각하 아돌프 히틀러(…)가 시키는 대로 미래의 독일을 위해서!'는 명분까지 있었다. 그러니 "공부도 안하고 일도 안하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캠핑이나 다니고! 운동이나 하고! 그러면서 놀고!"라면서 어른들이 야단치면 유겐트에 소속된 청소년들은 "이건 총통 각하가 시켜서 하는 일이란 말이예요!"라면서 합법적으로 도 수 있었다. 여기다가 유겐트 단검 같은 뽀대나는 아이템도 준다. 당연히 유겐트 활동은 청소년들에게는 '재미있고 보람찬 활동'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히틀러유겐트 지도부는 나치독일 교육부와는 아주 사이가 나빴다. 교육부에서는 당연히 "애들 공부는 안 시키고 뭔 헛짓거리 하냐! 애들한테는 학교가 우선이지!"(…)하고 태클을 걸어댔으니까. 그렇지만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아돌프 히틀러는 기본적으로 독일의 기성 교육 체계에 적대적이었다. 히틀러는 주입식 교육을 하는 학교 교육은 인간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보고 싫어했는데, 이유는 히틀러 자신이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는데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히틀러는 유겐트 같은 '자율적 전인교육'스러운 체계를 상당히 선호했고, 스포츠를 통하여 신체 단련을 하여 '멋진 육체를 가진 독일인'으로 길러낸다는 유겐트의 이론도 아주 좋아했다. 여기다가 청소년들에게 숭배받는 자신의 이미지 역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유겐트는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물자 공급이 어려워지고 상황이 악화되면서 스포츠나 캠핑 같은 여가활동은 줄어들고, 유겐트 조직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이 강제 노역에 동원되면서 유겐트는 그냥 노예+군대나 다름 없는 집단으로 전락했다. 결국 유겐트는 국가적 필요에 따라서 청소년을 묶어놓고 억압하는 조직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러나 유겐트고 뭐고 때려치고 도망쳐다니는 에델바이스 해적단 같은 반항 조직이 나타나게 되었다.

3.2. 유겐트 단검

© Jason Moore (cc-by-sa-3.0) from

유명한 단원이 부모에게 단검을 뽑아 반항한 에피소드 등에서 언급되는 히틀러 유겐트 단검은 꽤 유명한 아이템이다. 히틀러 유겐트에서는 단원들에게 단검을 지급했는데, 나치스 물건답게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써서 상당히 가 나는 아이템이었기 때문. 어린 소년들에게 번쩍거리고 멋지게 생긴 칼은 중2병을 자극하여 상당히 탐나는 장난감이었다.

이 유겐트 단검은 물량이 많았기 때문에 전후에는 연합군이나 소련군에 노획되어 기념품이 되기도 했고, 나치 장식만 떼어내고 팔아치우는 경우가 많았다.

4. 히틀러 유겐트의 세뇌

그러나, 이러한 언듯 '재미있고 보람찬 활동'으로 보이는 유겐트 활동은 청소년들을 자율적인 인격체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세뇌 교육을 동반한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히틀러 유겐트는 독재자들의 필수 교양(…)이라 할수 있었던 독재자 우상화 교육을 위한 기관이기도 했는데, 이런 단체가 흔히 그랬듯 '가족애'를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바꾸는 세뇌를 유도했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니는 가족에 대한 애정을 교묘히 특정 단체에 대한 애정으로 바꾸도록 하는 악랄한 수법이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한 평범한 독일 가정의 아들이 히틀러 유겐트에 나가기 시작하더니 어느날부터 말을 잘 안듣기 시작했는데 이를 야단치자 단검을 빼들면서 자신의 충성은 오로지 총통과 나치 당만을 위한 것이라며 자신의 부모를 위협했다. 중2병 선구자 돋네[3]

사실, 당시 독일 아저씨, 아줌마들은 전쟁으로 나서는 독일의 모습을 보면서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젊을 때 저런 짓 하다가 피봤거든(…). 당연히 아이들이 다칠까봐, 죽을까봐 전쟁에 환호하는 것을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히틀러 유겐트 교육은 이러한 부모님들의 '밥상머리 반전교육'을, 청소년들의 전형적인 '반항기'를 히틀러의 권위로 등을 밀어주는 형태로 가로막고, 아이들이 전쟁에 환호하게 만드는 교묘한 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5. 전쟁 투입

히틀러유겐트는 마치 보이스카웃처럼 전쟁에서 보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고, 독일 국방군과 슈츠슈타펠은 유겐트 출신을 좋은 '병사'로서 탐을 냈다.

1943년에는 아예 1926년에 태어난 히틀러 유겐트 출신 소년들만을 모아 제12SS기갑사단 히틀러 유겐트를 창설했다. 이때 신병들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술과 담배 대신 과자와 사탕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장교와 부사관은 제1SS기갑사단 라이프슈탄다르테 아돌프 히틀러의 베테랑들이 차출되어왔고 그래도 인력이 모자르자 육군에서도 차출되어왔다.

대공 부대에 입대해서(!) 적군 폭격기를 사격하고 탐조등을 조종했다. 무서운건 16세 이하의 어린이도 군대에 갔다는 사실이다…. 1945년에는 아예 군인처럼 취급해서 포위망을 뚫고 들어오는 연합군을 상대로 참호를 파고 부상자를 구하고 불을 끄고 전투를 벌이는 등의 고된 일을 해야 했다. 물론 이 상황에서 도망치기라도 하면 무조건 총살.

이 뿐만 아니라 이들을 글라이더로 훈련시켜 제트 전투기 He 162에 태워 연합군 중(重) 폭격기들을 요격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그러나 해당 제트 전투기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전투기가 아니고 자살기) 애로사항이 꽃피었고, 계획은 무산되었다. 사실은 전쟁 초반기에도 이들을 항공기 조종사로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이 때는 적어도 연습기를 동원하는 등 그럭저럭 갖춘 모양새를 지니고 있었으나 , 후반부에 들어서면 이 훈련 수준또한 어이없을 정도가 되어버린다. 연합군 조종사들은 러더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 하는 안습 독일기를 왕왕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이착륙 도중에 전멸하고 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동아시아의 어느 동맹국과 참 비슷한 상황이다 그래도 여기는 자살특공은 안 시켰다. 자살특공이나 다름없는 짓을 벌이기는 했지만.

광신적 독재자 숭배사상으로 무장한 히틀러유겐트 대원들은 전쟁 말기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망적으로 연합군과 소련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결국 유겐트 조직으로 인하여 엄청난 수의 청소년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다.

6. 이후

몇몇 고령의 독일 노인들은 한때 유겐트 소속임을 부끄럽게 여겼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고 회자한다.

2006~7년 사이 대한민국에선 이걸 모티브로 나치의 문장만 삼족오로 교체한 삼족오 소년단이 등장했으나 사라졌는지 현재 근황을 알 수 없다.

7. 히틀러 유겐트 출신의 유명인물

  • 교황 베네딕토 16세 - 히틀러 유겐트에 소속되어 대공포대에 복무한 경력이 있지만, 위에 나온 내용이나 베네딕토 16세 본인의 항목에도 나와있다시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강제적으로 활동한 것이었으므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알프레드 체크 - 몰락에서도 등장한 12살의 소년. 자세한 것은 해당항목 참고.

8. 대중문화에서의 히틀러 유겐트

8.1. 직접 묘사

  • 베를린 공방전을 다룬 영화 《몰락》에서 유겐트 소속의 소년·소녀들이 88mm 대공포를 맡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한 소년은 판처파우스트 대전차로켓으로 소련군 전차를 격파한 공로를 인정받아 히틀러에게 훈장을 수여받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45년 말년의 히틀러가 유겐트 대원을 만나는 사진을 본딴 듯하다.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이 소년을 제외한 나머지 대원들은 마지막 포탄을 쏜 이후 모두 자살을 하거나 사살당한다. 그러나 소년의 가족들도 헌병대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죽고, 떠돌아 다니다가 트라우들 융에를 만난 소년은 함께 소련군이 점령한 베를린을 빠져나간다.

  • 영화 지옥의 영웅들. 사무엘 풀러가 감독한 전쟁 영화로 원제 The Big Red One은 미 제1보병사단의 부대 상징이며 별명이다. 공 대작전으로 알려진 리 마빈이 양차 대전을 다 겪은 고참 부사관으로 나왔으며, 스타워즈루크 스카이워커로 유명한 마크 해밀도 비중 있게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한 어린 히틀러 유겐트 저격수가 주인공 분대원 한 명을 사살한다. 분대장이 저격수를 생포하여 소대원 앞에 끌고 오자 대원들은 모두 그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분대장은 소년의 볼기손으로 계속 때리는 벌을 내린다. 소년은 맞으면서 계속 히틀러 만세를 외치지만, 결국 울면서 아빠를 찾는다.(#)(…)

  • 영화 《모뉴먼츠 맨:세기의 작전》에서는 미술품 회수부대원 두 명이 건너편 폐건물의 소총수의 견제질에 당황하다가 소총수를 잡기 위해 건물에 진입한 것까지는 성공했는데…소총수의 정체는 히틀러 유겐트(…)였던 것이다. 그 외에도 유겐트 포로들에게 히틀러가 꿍쳐둔 미술품의 행방을 묻는 장면이 나온다.

  • 퓨리(영화)에서는 초반부에 히틀러유겐트 소년병 3명이 판처파우스트로 소대장 전차를 격파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이 장면 이후 컬리어하사에게 사살당한다.

  • 헬싱에 등장하는 《최후의 대대》 소속인 슈뢰딩거 준위의 복장은 히틀러 유겐트의 복장. 나이가 많아봐야 청소년 연령대로 보이는 만큼 그럴싸하다.

9. 언급되는 정도

여담으로 '유겐트 출신'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 당시 독일 청소년들은 죄다 유겐트에 끌고갔기 때문에 그냥 2차 대전 당시 청소년이었던 독일인이면 죄다 유겐트 출신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 월야환담 시리즈빌헬름 마이어가 히틀러 유겐트 출신.

  • 스트라이커즈 1945의 린 바일러(Bf-109 조종사)도 히틀러 유겐트 출신이라고 한다.

  • CSI 뉴욕 시리즈에서는 히틀러 유겐트였는데, 나치에 가담하여 여러 사람들을 죽이고 수십년동안 미국에서 생활한 범인이 잡히는 장면이 나온다.

10. 관련있는 정도

  • 강철의 누이들에서 대대 문장 공모전을 할 때 올라온 것 중 히틀러 유겐트와 같다고 문장 도안이 기각된 것이 있다.

  • 제노기어스의 용어 '유겐트'
    유겐트(Jugend). 게브라 사관 후보의 육성을 목적으로 해서 청년 병사의 교육·훈련을 실시하는 솔라리스 제립 지휘관 양성 학교. 게브라 특부부대의 관련인들은 거의 여기를 거쳤다. 「청춘」「소년 시대」를 의미하는 독일어 '유겐트(Jugend)'에 유래.
    조직으로서의 유겐트는 독일군의 돌격대 청년부로서 설립되어 후의 히틀러 정권에서 강대한 영향력을 가지는 국가적 청소년 단체로서 활동한「히틀러 유겐트」가 그 모델이라고 생각된다. 즉, 유래는 항목 1이다. 이 항목의 1.에서 앞은 빼고 뒷부분 '유겐트'만 따왔다. 분량상 이 '유겐트'만 독립 항목으로 따로 떼어내면 토막글 규정에 걸리게 된다는 문제가 있는 관계로, '유겐트'로 리다이렉트되는 이 항목에 편의상 1.과 함께 같이 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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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93년 영화 스윙키즈를 보면 이들 반나치 청소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저항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 [2] 초대 지도자는 군복무 하고 오니 33세가 되서 퇴임했다. 대신 고문으로 참가.
  • [3] 조지 오웰1984를 보면 주인공 옆집 아줌마 자녀들이 비슷한 식으로 권총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주인공의 독백으로 저 부모들은 자녀들에 의해 증발될 것이다라는 서술이 나오는데 아마 이 일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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