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1812년 서곡

last modified: 2015-03-12 01:35:50 by Contributors

러시아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관현악 작품.

정식 명칭: 장엄 서곡 '1812년' 작품 49
(프랑스어: Ouverture solennelle 1812 op.49)

Contents

1. 개요
2. 곡의 형태
3. 특수 효과
4. 단점
5. 소련 시절의 흑역사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1880년에 모스크바러시아 정교회 성당들 중 '그리스도 구세주 대성당' 이라는 곳에서 위탁받고 만든 곡인데, 이 성당은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짓고 있던 중이었지만 곧 완성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차르였던 알렉산드르 2세가 이듬해인 1881년에 이 성당의 완공 기념식에서 나폴레옹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장대한 행사를 열 예정이었다.[1]

1812년에 나폴레옹은 서유럽 거의 전부를 석권하고도 계속되는 욕심에 러시아를 침공했는데, 처음에는 러시아군이 막강한 전투력과 화력을 보유했던 프랑스군에게 불쌍할 정도로 개털리는 판국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계속 동쪽으로 후퇴하면서 적이 이용할 만한 모든 것들을 부수거나 불태웠고, 프랑스군은 이 때문에 현지에서 전쟁 물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빈약한 보급에 의존해야 했다.

게다가 모스크바까지 손에 넣었음에도 겨울이 다가오자 월동 대책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프랑스군은 서서히 약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었던 러시아군은 서쪽으로 돌아가던 프랑스군을 공격해 역관광시켰고, 수많은 병사들이 전투의 피해보다는 굶주림과 추위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나폴레옹의 운명 뿐 아니라 유럽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되는 승리였고, 러시아에서는 지금도 이 승리를 기념하고 있을 정도다.

꽤 빠듯한 일정의 부탁이었지만, 차이콥스키는 의뢰를 받고 10월 중순~11월 초순에 걸쳐 약 6주 만에 곡을 완성했다. 하지만 성당은 초연이 예정되었던 1881년에도 아직 건축 단계였고,[2] 게다가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하는 바람에 모든 일정은 취소되었다.

가까스로 초연 기회를 잡은 것이 전쟁 승리 70주년이 되던 1882년이었는데, 시간 상으로는 작품의 창작 의도에 가장 걸맞는 해였지만 예산 문제와 혼란한 사회상 등의 이유로 모스크바 산업예술 박람회의 특별 공연에서 비교적 평범하게 초연되었다.[3] 청중들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한 수준이었고, 차이콥스키 자신도 이 곡을 '소음만 가득한 졸작' 이라고 한없이 깎아내렸다.

하지만 그 뒤로도 이런저런 공연에서 계속 연주되었고, 1891년에는 차이콥스키가 미국 방문 일정 중 뉴욕의 카네기홀 개장 축하 공연에서 직접 지휘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4] 지금도 뭔가 큰 스케일의 공연을 한다고 하면, 이 곡을 맨 마지막 곡으로 채택해 연주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2. 곡의 형태

제목이 붙은 표제음악이고, 실제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음악을 진행시키기 때문에 서사시 풍으로 진행된다. 기존의 소나타 형식이나 론도 형식 등 고전 양식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지만, 음악에서 주가 되는 것은 러시아와 프랑스 양군의 전투와 러시아의 승리라는 도식이 되고 있다.

처음에는 비올라 네 대와 첼로 여덟 대가 주가 되어 러시아 정교회의 성가인 '신이여, 백성들을 보호하소서' 를 인트로로 연주하는데, 관현악 전체가 그 흐름을 받아 그대로 다음 섹션으로 넘어간다. 다소 우울하고 불안한 느낌인데, 일단 클라이맥스를 하나 만들어 놓고 스네어드럼의 리듬에 맞추어 호른 주도로 러시아군을 상징하는 군악대풍 주제가 하나 나온다.

이 주제가 잠잠해질 즈음 프랑스군을 상징하는 주제가 금관악기들에 실려 나오는데, 다름아닌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 다. 다만 거의 호른만 연주한 러시아군 주제와 달리, 이 프랑스군 주제는 모든 금관악기가 전부 가세해서 연주하기 때문에 전쟁 초기의 불리한 형세를 상징한다.

프랑스군 주제도 잦아들면 현악기의 주도로 러시아 민요풍의 감미로운 선율이 나오는데, 실제로 노브고로드 지방 민요에서 따온 것이다. 이 선율이 또 잦아들면 프랑스군 주제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돌아가 양군의 격렬한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데, 러시아군과 프랑스군의 주제도 이 부분에서 복잡하게 얽힌다.

이 부분 다음에는 다시 노브고로드 민요가 조성(key)을 바꾸어 다소 짧게 재연되고, 호른을 선두로 다시 '라 마르세예즈' 가 대포소리를 배경으로 힘차게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빠른 음형의 현악기들이 묘사하는 '부란(러시아의 거센 눈보라)' 에 막혀 잘게 쪼개지면서 힘을 잃어버린다.

눈보라가 가시고 나면 첫머리에 소박하게 연주되었던 정교회 성가가 금관악기들의 주도로 장엄하게 재연되고, 승리를 축하하는 교회의 종소리도 같이 울려퍼진다. 성가가 끝나면 러시아군 주제가 타악기와 관악기를 앞세워 빠르고 시끌벅적하게 연주되고, 당시 러시아 국가였던 '신이여 차르를 보호하소서' 의 초반부 선율도 축포소리와 함께 연주되면서 끝을 맺는다.

악기 편성은 약간 변형된 2관편성인데, 다음과 같다;

피콜로/플루트 2/오보에 2/코랑글레/클라리넷 2/바순 2/호른 4/코넷 2/트럼펫 2/트롬본 3/튜바/팀파니/베이스드럼/스네어드럼/심벌즈/탬버린/트라이앵글/현 5부(바이올린 I&II-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그리고 후반부에는 위에 쓴 것처럼 대포와 종, 별도의 금관악기 연주자들이 더해진다.[5]

3. 특수 효과

윗 항목의 악기 편성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 곡은 일반적인 악기들 외에 대포소리와 종소리가 정식으로 포함된 곡으로도 유명하다.[6] 야외 연주를 염두에 둔 것이라 이러한 발상이 가능했는데, 정작 초연 때는 실내에서 얌전히(???) 공연된 것이 안습.

하지만 지금도 많은 공연에서는 이 효과를 생략하거나 축소해서 연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아무리 공포탄을 쓴다고 해도 콘서트홀 안에 대포를 방열하고 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종소리도 교회 등지에서 연주하지 않는 이상 재현하기 어려운 현시창 덕분. 그래서 실내 연주 때 대포 소리는 베이스드럼을 단단한 북채로 힘껏 두드리는 것으로, 종소리는 튜블러 벨을 난타하는 것으로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녹음 기술의 발달 덕에 콘서트홀은 아니더라도 음반에서 이 효과를 구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헝가리 출신의 지휘자 털 도라티가 1958년에 미국 음반사인 '머큐리' 에서 취입한 녹음이 최초로 기록되고 있다. 우선 미니애폴리스 교향악단의 관현악 연주 만으로 녹음을 마친 뒤, 거기에 남북전쟁 당시 쓰였던 대포의 격발음과 교회 종소리를 별도 녹음한 것과 더빙해 레코드로 완성시켰다.

이렇게 나온 음반은 녹음 기술의 발전을 상징하는 아이콘처럼 여겨졌고, 소위 '오디오파일' 에 속하는 매니아들에게 더없이 좋은 수집품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물론 그 뒤로도 이 녹음보다 훨씬 생생한 대포소리와 종소리를 담은 음반들이 계속 나왔고, 몇몇 음반들에는 '스피커 파손 주의' 라는 경고문까지 적혀있을 정도다.

좀 특이한 컨셉의 후속 음반들로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오폴드 스토코프스키, 토니오 파파노, 라디미르 페도세예프가 지휘한 것들인데, 첫머리의 성가 시작 부분을 기악 연주가 아닌 합창단의 노래로 대체했다(스토코프스키와 파파노, 페도세예프는 이 성가가 재현되는 후반부에서도 합창단이 같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 특히 카라얀의 경우 적백내전 때 서방으로 망명한 코사크 기병 출신 남성들로 구성된 돈 코사크 합창단을 기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테너 가수로 유명한 플라시도 도밍고도 차이콥스키 서거 100주년 기념으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해 EMI에 취입한 음반에서 영국 왕실 근위대의 포병대 협조로 별도 녹음한 포성을 더빙했고, 종의 경우 런던의 종 공장에서 주조한 진짜 교회 종을 빌려와 관현악단 뒷편에 설치하고 같이 쳤다. 거기에 후반부 성가 재연 때는 관현악의 금관 스펙 그대로 브라스를 증편한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굵직한 저음을 얻기 위해 콘트라베이스 주자 10명을 추가 기용하고 녹음 장소인 올 세인츠 교회의 파이프오르간까지 동원하는 빠방한 물량 공세로 화제가 되었다.

러시아에서도 1993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차이콥스키 서거 100주년 기념 콘서트의 마지막 곡으로 연주되었는데, 이 때도 종과 대포가 원래 편성 그대로 연주(?)되었다.[7] 미국의 애틀랜타 교향악단은 실내에서 이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 미리 녹음한 대포 소리를 대형 스피커로 보내주면서 무대 앞에 폭죽까지 설치해 펑펑 터뜨리며 연주했는데, 폭죽의 화염 때문에 콘서트홀 내부의 화재경보기와 스프링쿨러가 작동해 오히려 개콘급 연주가 되고 말았다.

이외에 일본에서도 가끔 이 곡의 연주 때 대포와 종소리를 그대로 살려서 공연하는데, 실내 공연은 아니고 육상자위대의 화력전 훈련장 등지에서 대규모 취주악단용으로 편곡한 버전이 공포탄 사격과 함께 연주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음악과 전포대장의 사인이 안맞아 어긋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니...자식들 빠져갖고 이 동영상 참고.

한국에서도 국방부 예포대의 협조를 받아 105mm 견인곡사포의 공포탄 사격과 함께 한 번 연주된 적이 있지만, 국방부의 협조를 받기 어려운지 그 뒤로는 실제 화포 사격이 곁들여진 연주 기회는 없는 듯 하다.

4. 단점

차이콥스키 자신이 지적한 대로, 여타 관현악 작품들에 비하면 겉으로 드러나는 효과에만 치중한 탓에 음악적인 한계도 명백히 드러난다.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8] 에 비견되는 졸작으로 취급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 그리고 대포소리와 종소리의 재현이나 대체가 어렵다는 이유로 공연이 반려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곡이 너무나 명백하게도 프랑스의 패배를 그리고 있기 때문에, 프랑스 뿐 아니라 프랑스어권 지역이나 국가에서도 금지곡은 아니지만 여전히 공연과 녹음을 대단히 꺼려하고 있다는 것이 최대 난점. 음악이 아무리 만국 공통어라지만, 이렇게 역사적인 사실의 묘사에 치중하고 특정 국가를 처참하게 발라버린 음악은 결국 수용에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후새드.

5. 소련 시절의 흑역사

한편, 1917년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소련에서는 이 곡의 연주가 금지되고 말았다. 이유는 후반부에 '인민의 적' 이었던 차르를 찬양하는 구체제 국가가 인용되었다는 것이었는데, 그렇다고 마냥 금지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문제가 된 차르 찬가 대신 다른 선율을 편곡해 땜빵하는 방법이었다. 비사리온 셰발린이라는 작곡가가 소련 정부의 지시로 이 작업을 떠맡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애국심을 상징하던 미하일 글린카의 오페라 '이반 수사닌' 에 나오는 합창 '영광' 의 멜로디를 가지고 짜깁기 작업을 했다.[9]

이 곡 뿐 아니라 슬라브 행진곡, 대관식 축전 행진곡 등등 여타 차르 찬가 인용 작품들도 비슷한 식으로 글린카의 노래 선율 땜빵 아니면 아예 그 부분에 대한 삭제 조치가 내려졌고, 소련 정부에서 공인한 '신 차이콥스키 대전집' 의 악보로 묶여 출판되었다. 하지만 서방에서는 이 작업에 대해 정치적인 목적의 삽질이라며 맹렬히 비판했고, 소련 정부의 신전집은 결국 해외에서 거의 통용되지 않은 채 내수용 악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1991년 소련 체제 붕괴 후에는 러시아에서도 신전집 악보를 버로우시키고 차르 찬가가 그대로 들어간 원래 악보를 사용해 공연하고 있다. 음악적인 문제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문제로도 부침이 심했던 까닭에, 지금도 음악사회학 등 관련 학문에서 자주 떡밥으로 인용되고 있는 사례.[10]

6.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음악성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워낙 유명하고 알아듣기 쉬운 곡이므로 대중매체에서도 적잖이 활용되고 있다. 유명한 사례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국의 국회의사당이 폭파될 때 수많은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군중들이 그것을 지켜보는 장면에 삽입된 음악. 전제왕정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작곡된 곡이, 민주주의 혁명의 상징으로 전용되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폭파 씬의 효과음과 싱크로율이 기가 막혔다. 이 연출의 백미는 연주 중 실제 대포를 쏴야하는 장면에 폭발음으로 씽크로를 맞춘 것도 있지만 이보다 더한 건 음악의 클라이막스에 승전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와야 하는 부분이다. 영상에서 건물 폭발로 종이 흔들리면서 종소리를 내고 있다.

라쳇 & 클랭크 시리즈 중 하나인 시간의 틈새에서는 작중 최강 무기인 라이노 V의 발사음으로 활용되었다.(…)

----
  • [1] 참고로 명분은 승리 기념식이었지만, 자신의 즉위 25주년을 자축하는 행사로 기획되었다.
  • [2] 참고로 최종 완공은 1883년에나 가서야 이루어졌다. 그나마 1931년에 스탈린의 심복 카가노비치가 러시아 정교회 탄압의 일환으로 다이너마이트로 송두리째 날려버렸고, 소련 붕괴 후 재건축이 시작되어 2000년에 완공되었다.
  • [3] 왜 평범한지는 '특수 효과' 항목 참조.
  • [4] 참고로 미국에서는 지금도 이 곡을 독립기념일 같은 국경일에 공연하고 있다. 공교롭게 미국도 1812년에 영국과 독립전쟁 이후 한판 더 붙은 바 있는데, 강화조약 맺는 걸로 끝났다.
  • [5] 추가되는 금관악기는 총보에 'Banda' 라는 이름의 피아노 축약본 형태로 기보되어 있으며, 악기의 종류 및 인원은 지정되어 있지 않다. 이 부분은 실제 정규편성의 금관악기 악보를 모아 2단의 보표로 축약한 것이다. 악보에 구체적인 지시가 없는 만큼 실제 연주에서는 다양한 편성으로 연주된다. 파이프 오르간을 사용하거나 합창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 [6] 다만 이 곡이 처음은 아니다. 헨델이 영국에서 작곡하고 초연한 '왕궁의 불꽃놀이'라는 곡의 야외 연주 버전에서 대포를 동원한 것이 최초이다. 덕분에 초연 도중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 [7] 대포의 경우, 콘서트홀에서 다소 떨어진 거리에 예포대 1개 포대를 배치해 공포탄을 쏴서 소리를 섞었다. 포는 음량 균형을 위해 2차대전 당시의 견인포를 썼지만, 음악과 정확히 맞추기 위해 사격지휘소(FDC) 시스템은 현대화된 그대로 운용했다.
  • [8] 이 곡도 초연 때 여러 대의 베이스 드럼과 스네어 드럼을 동원해서 총소리와 대포소리를 모방했다. 지금 녹음할 때는 물론 실제 소리를 따로 녹음해 더빙하는 경우가 대부분.
  • [9] 좀 웃긴 것은, 해당 오페라도 원제가 '차르에게 바친 목숨' 이었을 만큼 반체제적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가사만 수정되어 평범한 애국주의 찬가로 바뀌었기 때문에, 체제 선전용으로 그럭저럭 쉽게 쓸 수 있었다.
  • [10] 소련 정부의 개찬 신전집과 이전 악보의 차이는 다음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mp3 파일로 들어가며 구별할 수 있으니 참고. http://www.hymn.ru/god-save-in-tchaikovsky/index-en.html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3-12 01:35:50
Processing time 0.0986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