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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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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구분
1992년 1993년 1994년
세기구분
19세기 20세기 21세기
연대구분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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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 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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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력 5753년 ~ 5754년
에티오피아 1985년 ~ 1986년
가상의 표기
UED GD 363년
월야의 프로마쥬 AL 602년

목차

1. 개요
2. 사건
2.1. 실제
2.2. 가상
3. 탄생
3.1. 실존인물
3.2. 가상인물
4. 사망
4.1. 실존인물
4.2. 가상인물

1. 개요

이 해는 이전까지 시행되던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기 시작한 첫 해이다.

나름대로 흥했던 대전 엑스포가 개최된 해다. 그리고 이해 출생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학교 처음 들어간 2012년 여수 엑스포를 즐기게 된다.

또한 1961년 5.16 군사정변 이래 군인 출신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으로 이어진 32년 군사정권의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1]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를 표방했고, 취임 직후부터 대한민국 국군 내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하는 등 개혁에 착수하였다. 한편 김영삼의 라이벌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가게 되면서, 사실상 김영삼 대통령의 일극 체제가 시작된 해.

특히 이 해에 육(열차), 해(여객선), 공(비행기) 분야를 통틀어 교통수단 대형 참사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등, 70년대~80년대 압축 경제성장의 부작용들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2]

그리고, 세계 경제통합의 상징인 유럽연합이 공식적으로 출범한 해도 이 해이다. 스트리흐트 조약이 발효되면서 전경제통합의 단계의 단일경제블록이 출범한 것.

체코슬로바키아가 1993년 1월 1일자로 체코공화국과 슬로바키아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한국에서 사실상 쌀 시장 개방이 확장되면서 외국산 쌀의 국내 수입이 허용되었던 해였다. 국내 농가와 농민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굴욕으로 남았던 편.

이 해 3월부터 1994년 2월까지의 시기에 태어난 이들은 2000년초등학교 입학을 하였으며, 학교에서 처음부터 7차 교육과정으로 공부를 하게 된 최초의 세대가 된다. 다만 장학퀴즈에서는 안습한 세대다. 3년 내내 7연승제 방식으로만 참가했다. 또한 한편 문화체육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이 해를 의 해로 지정하였다.

이 해 여름은 전국적으로 저온현상이 지속되어서 무척 시원했던 편이었다. 하지만 다음 해 여름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한편, 이 해 11월에는 세계 그룹이마트가 서울 창동에 개점하면서 대형 할인점을 처음으로 선보였고, 이후 다른 기업이나 외국 회사들에 의해 우후죽순으로 SSM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1기 신도시 입주가 가장 활발하던 때이기도 하다.[3]

이들 또한 1994년 항목에도 있듯이 1993년 7월 2일생부터 1993년 12월 31일생은 2013년 7월 1일 일제히 성년이 되었다.

2. 사건

2.1. 실제

  • 1월 1일 : 이날을 기해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체코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공화국이 독립 국가를 꾸려나가게 되었다.
  • 1월 7일 : 청주에 위치한 암상가 아파트가 화재 후 무너져 사망자 27명, 부상자 48명의 참사가 일어났다.
  • 1월 15일 : 과천선 금정역 ~ 인덕원역구간 개통. 이 당시에는 안산선하고만 직결되었다.
  • 1월 19일 : 체코슬로바키아국제연합(UN)에 가입하였다.
  • 1월 20일 : 빌 클린턴미국 제4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 1월 26일 : 14대 대선의 김대중 민주당 후보가 영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 1월 29일 : 서석재 국회의원(당시 4선의원)이 1989년 구속되었다가 석방 된 동해시 후보매수 사건으로 형 선고를 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얼마 후 집권할 김영삼 당선자의 최측근이었다는 점에서 큰 타격이 되었다.
  • 2월 2일 : 오! 나의 여신님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는 TV로 직접 방영한 것이 아니라 비디오를 통한 방영이었다.
  • 2월 16일 : 아이티 서부 해안에서 넵튠(Neptune)호가 침몰했다. 사망자 수는 최소 8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 2월 23일 : 드라마 포청천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드라이브와 함께 큰 인기를 끈 프로그램이었다.
  • 2월 25일 : 김영삼대한민국 제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군사정권이 32년 만에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출범하였다.
  • 2월 27일 :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인 1993년 2월 27일 새 정부의 첫 국무회의서 자신과 가족의 재산 17억 7,822만원을 공개함으로써 공직자 재산공개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 3월 8일 : 김진영 육군참모총장, 서완수 기무사 사령관이 전격 해임되고 당일 후임자가 전격 취임했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하나회 척결이 본격화되었다. 김영삼은 이를 최측근을 제외하고는 비밀로 해서, 깜짝 놀란 측근들에게 "어때, 놀랐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
  • 3월 12일 : 북한이 전격적으로 확산 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 3월 13일 : 가야대학교가 설립되었다.
  • 3월 19일 : 문민정부가 비전향 장기수인 이인모를 인도적 차원에서 조건없이 북한으로 송환했다. 그리고 북한은 이를 체제 선전에 잘 이용해 먹었다.
  • 3월 28일 : 부산직할시 구포역에서 열차 전복사고가 일어났다. 사망자 78명, 부상자 193명.
  • 3월 31일 : 대한민국 공직자 재산공개파동. 이로서 공직자의 재산이 공개되면서 김문기, 김재순(13대 국회의장(!)), 유학성 등 3공 5공 보수여당의 핵심인사들이 의원직을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정동호 의원은 제명) 또 정부쪽에서는 정성진 대검 중앙수사부장, 최진석 대검 강력부장, 조규일 농림수산부 차관, 강신태 철도청장, 강두현 경찰위원회 상임위원 등 차관급 5명이 해임되고 10명이 경고를 받았다. 김재순 전 의장은 토사구팽이라고 절규했다고 한다.(응?) 하지만 이런 읍참마속의 개혁운동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도는 초기의 60%에서 95%까지 치솟았다.
  • 4월 2일 : 기동전사 V건담 애니메이션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 4월 8일 : 마케도니아UN에 가입했다.
  • 4월 10일 : 영화 서편제가 개봉하였다.
  • 4월 19일
    • 무장 탈영병 임채성이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총기를 난사하여 8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충남 논산군의 한 정신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수용되어 있던 환자 3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 4월 23일 : 첫 1993년 보궐선거가 벌어졌다.
    • 새로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2월 27일 관용(부산 동래구 갑, 후에 국회의장) 의원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해 보궐이 발생했고, 직을 잃은 서석재 의원(부산 사하구)과 사망한 통일국민당의 윤항렬 의원(1월 25일 졸, 경기도 광명시)의 보궐 선거가 같은 날 치러졌다.
    • "허니문"기간의 선거였던 만큼 결과는 당연히 텃밭인 부산 2곳과 광명까지 3곳 모두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후보가 압승했다. 특히 사하구에 출마했던 민주당정길 후보는 정당의 홍형오와 표가 분열되어 각각 20.5%, 19%만 득표로 합산 득표로도 52.5%의 박종웅 후보를 넘지 못했다.
    • 이로서 신자유주의 개혁의 경식 경제수석(문민정부 말에 제부총리)이 재선 의원이 되었으며, 손학규(후에 보건복지부 최연소 장관) 교수가 정계에 데뷔했다.
  • 4월 27일 :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탄 항공기가 추락해 탑승인원 30명 전원이 사망했다.(선수 18명, 코칭 스태프 4명 포함)
  • 5월 28일 : 모나코에리트레아국제연합(UN)에 가입했다.
  • 6월 9일 : 일본 나루히토 황태자가 외교관 오와다 마사코와 결혼했다.
  • 6월 11일 : 2번째 1993년 보궐선거가 벌어졌다.
    • 공직자 재산공개에 따라 직을 잃은 여당 세 의원의 선거구, 즉 김문기의 강원도 명주군(현 강릉시), 양양군, 김재순 전 의장의 강원 화천군, 철원군, 유학성의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선거가 벌어졌다. 투표율은 4.23 재보선의 41.3%에 비해 평균 68.5%로 크게 뒤집어졌다.
    • 그러나 여당의 높아진 지지도로 다른 선거구에서 압승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명주군/양양군 선거구에서 68.5%의 높은 투표율 속에 민주당의 최욱철 후보(48.9% 득표)가 명주 고향 주문진을 중심으로 민주계 원로인 김명윤 후보(41.3%)를 낙선시켰다.[4] 다음날 경향신문 1면 기사 제목이 "김명윤 낙선"(…)이었을 정도.
    • 하지만 여전히 제3정당인 신정당의 득표도 높아서, 화천철원 선거에서 민주당(이정희, 18.3%)을 밀어내고 김철배 후보가 21.3%를 득표했다. 그러나 여당의 용삼 후보의 더블 스코어(60.3%) 승리.
    • 예천은 여당의 반영식 후보가 45.1%로 민주당의 안희대 후보를 35.4%로 상당히 앞섰다. 통일국민당의 황병호 후보는 11.8%를 득표.
    • 이로서 김영삼 정권의 지지가 조금 삐걱거렸고, 황명수 민자당 사무총장의 입지가 약해졌다. # 황 사무총장은 "이나라 민주화를 위해 최루탄 가스를 그렇게 마셔가며 투쟁한 분을 그렇게 모르느냐"라고 한탄했다고(…) 어디서 국민 탓이야!
  • 6월 14일 : 한강에서 영화 촬영 중에 배우 故 영훈씨와 KBS 연예가중계 취재진들이 탄 헬리콥터가 더 가까이 촬영을 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다가 불시착하여 한강에 추락하였다. 사망자 7명.
  • 6월 30일 : 8선의 박준규(대구광역시 동구, 후에 15대 국회 국회의장) 의원이 공직자 재산파동으로 사퇴했다.
  • 7월 26일 : 목포공항에서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사고가 일어났다. 탑승객 106명중 66명 사망.
  • 7월 27일 : Microsoft Windows NT 3.1이 출시되었다.
  • 8월 5일 : 박은식, 규식, 백린, 인전, 태국 등 애국선열 5인 유해가 상하이에서 운구되어 돌아왔다.
  • 8월 7일 : 대전 엑스포가 개막했다.
  • 8월 9일 : 드라마 일지매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또, 이 날 태풍 로빈이 상륙하는 바람에 사망 실종 69명, 재산피해 2,596억 원의 피해를 입혔다.
  • 8월 10일 : 노르웨이에서 유로니무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 8월 12일
    • 김영삼 대통령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 재정명령'을 발동해서 대한민국의 금융실명제를 실시했다.
    • 3번째 1993년 보궐선거가 벌어졌다. (평균 59.3%의 투표율을 보였다.)
      • 박준규 의원(대구 동구)과 사망한 통일국민당의 손승덕(5월 22일 사망, 강원도 춘천시) 후보의 보궐 선거였다.
      • 경북대학교 학생회장 출신으로 6.3 항쟁에 앞장서며 상도동계의 젊은 세대였으나 3당합당에 반대해 무소속 행보를 보인 52세의 서훈 후보가 민자당 동일 후보에게 45.4%대 27.4%로 압승을 거두었다.[5] 반면 민주당 후보는 홍사덕 선거대책위원장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안택수 후보가 무소속에도 밀려 4위(8.1%)로 그쳤다. 이로서 TK의 "반YS 정서"가 확인되었고, 결국 금융실명제 이후의 혼란과 더불어 김영삼 정권의 개혁조치를 막는 하나의 암초가 되었다.
      • 삼성상용차공장의 대구성서공단 내 유치결정이나 강원대총장 선심 발언, 금품살포 의혹 등 여당의 "깨끗한 선거" 주장이 무색했던 선거였다. 그러나 위에서 보듯 대여공세에 앞장서던 민주당도 승리의 열매를 얻지는 못했다. 특히 춘천에서는 민자당 류종수 후보가 개표 초중반 역전을 거두어 37.5%로 민주당의 수남선 후보 33.9%를 이겼다.
  • 8월 14일 : 한국마사회경마 경주마의 한국마사회 단일마주제를 폐지하고 마주제를 시작했다. 이후 한동안은 정말로 법인을 제외한 개인만이 마주가 되었다.
  • 8월 20일 : 1994학년도 제1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었다.
  • 9월 7일 : 대한민국 정부가 국회, 행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1급 이상 고위공직자와 국영기업체 상근 임원 등 1,166명의 재산을 일괄 공개하는 2차 공직자 재산 공개를 단행했다. 정치인들이 그동안 숨겨온 재산이 폭로되면서 국민들은 제대로 열받았다. 이후로도 공직자 재산 공개는 계속되었다. 금융실명제, 하나회 척결과 함께 문민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로 "역사를 바꾸는 명예혁명", "윗물맑기운동"이라고 명명되며 '돈과 명예는 함께 갖지 말라'라는 명언을 남겼다.
  • 9월 10일 : 덕주 대법원장이 경기도 용인시 등지에 부동산 투기를 하였다는 의혹을 받고 대법원장직을 사퇴했다.
  • 9월 14일 : 빌 클린턴 대통령이 NAFTA에 서명했다.
  • 9월 24일 : 2000년 하계 올림픽의 개최지로 호주시드니가 중국의 베이징을 제치고 결정되었다. 그리고 8년 후...
  • 10월 3일 :
    • 소말리아에서 모가디슈 전투가 벌어졌다. 이 내용은 훗날 블랙 호크 다운으로 영화화된다.
    •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보수파들이 총궐기하면서 내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유혈충돌이 발생한다. 이날 러시아 보수파들은 모스크바 시청 등 주요 기관을 점거하고 루츠코이 부통령을 대통령으로 옹립하여 정부군과 대치하였으나, 다음날 정부군의 총공세로 보수파 시위대의 거점인 국가두마 의사당이 함락됨으로써 진압되었다.
  • 10월 9일 : 내일신문이 창간되었다.
  • 10월 10일 :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가 있었다. 292명 사망.
  • 10월 14일 : 《바우와우애니메이션이 방영되기 시작했다.
  • 10월 28일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1994 FIFA 월드컵 미국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극적으로 본선행 티켓을 획득했다.
  • 10월 31일 :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 ~ 수서역 구간이 개통되었다.
  • 11월 1일 :
    • 세계 경제통합의 상징유럽연합전경제통합의 형태로 출범했다. 단, 진짜 제대로 된 통합의 상징은 공동화폐인 유로6년 뒤에 나왔다.
    • 여행업체인 하나투어가 설립되었다.
  • 11월 5일 : 쌀 시장 개방 확장이 결정되었다. 이로써 한국 내에 외국산 쌀 수입이 사실상 허용되었으나 이에 농촌과 농민들은 쌀 시장 개방 결사반대를 외치며 시위에 돌입하였다.
  • 11월 16일 : 1994학년도 제2회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되었다. 첫 수능에 비해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바람에 피 많이 봤다.
  • 12월 10일 : FPS 게임의 전설이 된 《》 발매.
  • 12월 15일
    • 1986년 9월에 개시된 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최종 타결되었다. 이로써 세계 무역 질서는 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체제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로 개편되었으며, 대한민국은 농산물, 민간 및 공공 서비스, 지적재산권 시장을 전면 개방하게 되었다.
    • 영화쉰들러 리스트》가 개봉하였다.
  • 12월 17일 : 게임록맨 X》가 발매되었다.
  • 12월 18일 : 영화투캅스》가 개봉하였다.
  • 12월 19일 : 바다에서 온 COO 애니메이션영화의 형태로 개봉하였다.
  • 12월 23일 : 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되었다. 2011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으니 혹시 보고 싶은 위키니트들이 있다면 직접 가서 보도록 하자.[6]

2.2. 가상

3. 탄생

3.1. 실존인물

4. 사망

4.1. 실존인물

4.2. 가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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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승만 대통령 집권기까지 포함해서 45년 독재정권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노태우부터는 그나마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했기에 완전히 옳은 견해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 [2] 이러한 부작용들은 이듬해인 1994년과 그 이듬해인 1995년까지 부실공사 참사 시리즈로 넘어가서, 한국 희대의 참사 피날레로 불리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까지 이어진다. 1996년엔 대형 참사는 없었고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비롯한 자잘한 사고들이 몇 개 터졌으며, 1997년 외환위기의 시작으로 수만명이 바닥에 주저앉고, 수백만명이 피눈물을 흘리게 함으로써 사고 공화국이라고 불리우는 문민정부는 끝을 맺었다. 시작과 끝이 사고와 막장으로 끝난 문민정부
  • [3] 1기 신도시는 1991년 10월부터 입주하기 시작했으며, 1995년 5월부터 1996년 10월까지 1기 신도시 사업이 종료되었다.
  • [4] 최 당선자는 14대 총선에서 통일국민당 최각길 후보에게까지 밀려 3위를 기록했던 후보였던지라, 박정희 정권 때 이 지역에서 3선을 기록한 김명윤 후보가 70세의 노령에 주민등록조차 하지 못하는 등 여당의 약세 조짐이 예상되긴 했지만 이정도일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다. 최욱철 후보가 자기 연고지가 아닌 양양군에서도 일부 승리, 선전했을 정도.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욱철 후보는 이후 재선고지에서 통합민주당(1995년)을 거쳐 한나라당에 들어갔다가, 18대 총선으로 3선 복귀했으나 공직선거법 위반 판결로 의원직 상실, 2009년 재보궐선거가 벌어진다. 보궐로 흥한자 재보궐로 망하리니
  • [5] 서훈 후보는 무소속 행보로 15대 총선에서도 재선했으나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가 낙천 당한 후 민주국민당을 거쳐 낙선하며 정치적 야인의 삶을 살게 되었다.
  • [6] 발굴은 10월부터 했었고 발표는 22일에 했는데 23일에 전국 일간지에 실렸다.
  • [7]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둘은 일란성 쌍둥이다.
  • [8] 담당 배우인 사노 가쿠는 92년생이다.
  • [9] 일란성 쌍둥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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