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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2월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2011년 2월 중의 날짜별 전개 양상을 기록한다.

Contents

1. 2월 14일 이전
2. 2월 15일 화요일
3. 2월 16일 수요일
4. 2월 17일 목요일
5. 2월 18일 금요일
6. 2월 19일 토요일
7. 2월 20일 일요일
7.1. 시위의 진행 상황
7.2. 각 주체의 의견표명
8. 2월 21일 월요일
8.1. 시위의 진행 상황
8.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8.3. 기타
9. 2월 22일 화요일
9.1. 시위의 진행 상황
9.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9.3. 기타
10. 2월 23일 수요일
10.1. 시위의 진행 상황
10.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10.3. 기타
11. 2월 24일 목요일
11.1. 시위의 진행 상황
11.2. 각 주체의 의견표명
11.3. 기타
12. 2월 25일 금요일
12.1. 시위의 진행 상황
12.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12.3. 기타
13. 2월 26일 토요일
13.1. 시위의 진행 상황
13.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14. 2월 27일 일요일
14.1. 시위의 진행 상황
14.2. UN 안보리 제재 결의
14.3. 각 주체의 의견 표명
15. 2월 28일 월요일
15.1. 시위의 진행 상황
15.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15.3. 기타


1. 2월 14일 이전

리비아에는 몇 십 년 동안 제대로 된 저항 시위가 없었으며 아랍권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고 나서도 2월 14일 이전에는 미약한 시위만이 있었다.

  • 1월 13-15일: 벵가지, 다나, 반니 왈리드 등에서 정부의 주택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발생.

  • 1월 27일: 리비아 정부가 2조 4천억 달러의 자금을 풀어 주택 문제 등을 해결하겠다고 발표.

  • 1월 말: 작가 자말 알 하지가 "인터넷이 리비아의 큰 자유를 쟁취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라는 발언을 한다.

  • 2월 1일: 자말 알 하지가 평복 경찰에 의해 체포. 이틀 뒤인 2월 3일에는 누군가가 자말 알 하지의 차를 파손시켰다. 엠네스티는 자말 알 하지의 투옥에 항의하며 그의 석방을 촉구했다.

2. 2월 15일 화요일

이 날 오후 리비아의 두번째 도시인 벵가지의 경찰 본부 앞에서 1996년 아부 살림 교도소에서 발생한 정부군의 학살 사건[1]의 유족 200여명이 체포된 변호사 페티 타르벨의 석방을 외치며 시위를 시작했다. 저녁까지 500~600여명이 결집하였고 시위의 구호 수준이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로 진압을 했으며 40명 가량의 부상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시위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 시위가 불 붙기 시작했다.

이 날 밤 타르벨 변호사를 석방했지만 나무 광장(Maydan al-Shajara)으로 시위가 이어졌다. 알 바이다, 아즈진탄 등에서도 수백 명의 시위대가 정권 퇴진을 외쳤다.

3. 2월 16일 수요일

시위가 계속 이어졌으며 알 바이다에서 보안군과 민병대가 시위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실탄을 발사하여 최소 4명이 숨지고 3명의 부상자가 나왔다고 알려졌다. 리비아의 한 페이스북 그룹은 17일 날 '분노의 날' 행사를 제안했다. 이는 2006년 덴마크의 한 만화가가 그린 무함마드 풍자 만평에 대한 벵가지에서의 항의 시위 도중에 경찰이 진압을 하면서 14명이 사망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트리폴리에서는 대규모의 친정부 집회가 열렸으며 카다피가 행사에 참여하였다.

4. 2월 17일 목요일

벵가지, 아즈바디아, 알 베이다, 다나 등에서 '분노의 날' 시위가 열렸다. 리비아 당국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했으며 저격수와 헬기 사격 등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하루에만 벵가지에서 최소 6명이 숨지는 등 최소 14명이 사망하였다. 수십 명이 보안군에 체포,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5. 2월 18일 금요일

의회가 무기한 휴회에 들어갔다. 의회 재개회시 관료들이 대거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망한 시위대의 장례식은 다시 시위로 발전하고 있다. 카다피 친위세력인 리비아 혁명위원회는 인터넷을 통해 강력 대응을 선언하였고 탱크-헬기-중화기가 진압 현장에 등장하였다는 말도 있다. 국제엠네스티의 발표로는 46명, 휴먼라이트워치의 말에 따르면 3일의 시위 동안 85명이 숨졌고 수백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총탄에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6. 2월 19일 토요일

리비아는 사실상 외부 언론의 접근이 원천 차단되어 있다. 그렇기에 정보는 목격자의 국제 전화나 SNS를 통해서 전해지고 있다. 북서쪽 도시 미수라타에서도 시위가 시작되었다고 하며 유튜브에 올라온 비디오에 의하면 외국의 용병이 시위대를 진압하는데 고용된 것으로 보인다.[2] 계속된 시위와 진압으로 사망자는 120명이 넘는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리비아 동쪽의 도시 아즈비디야, 알 베이다를 군대가 포기했다는 걸 보여주는 영상도 올라오고 있다. 포병, 헬리콥터, 대공용 미사일이 시위대를 향해 쏘아졌다는 말도 나왔다. 전직 영국 외무장관이며 정보보안위원회의 의장인 맬컴 리프킨드(Malcolm Rifkind)은 현재의 중동 상황이 1989년 동유럽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7. 2월 20일 일요일


7.1. 시위의 진행 상황


위 사진은 제 2의 도시인 벵가지에서 일어난 수만명 규모의 시위. 출처

바레인의 상황이 유화국면에 접어든 것과는 판이하게 '학살' 수준의 시위 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 장례식장에 모인 조문객 수천명을 향해 군대가 조준 사격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박격포 공격을 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벵가지의 한 의사는 자신이 목격한 사망자가 최근 2일간 최소 200여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인권 그룹의 말에 따르면 최소 233명이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친정부 시위대가 점유하던 트리폴리를 비롯하여 서부 리비아에서도 시위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서 동부 리비아에 시위를 한정 지으려던 노력은 무산되었다. 트리폴리의 녹색 광장에서 수천명의 시위대가 카다피 사진에 돌을 던졌고 군은 실탄과 최루가스를 발사하며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다수의 증언으로는 트리폴리에서 하루종일 총성이 들렸다고 한다. 트리폴리에는 야간 통행 금지령이 내려졌다. 벵가지의 시위대는 최소 1만명으로 불어났으며 군 기지를 포함해서 시위대가 완전히 도시를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의 일부 군대가 시위대에 참여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군대를 믿지 못하는 카다피가 차드 출신을 비롯한 외국 용병들로 시위를 진압하고 있다.

7.2. 각 주체의 의견표명

카다피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아들 세이프 알 이슬람은 국영 TV에 나와 "리비아는 튀니지와 이집트가 아니다" 라고 하면서 마지막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카다피의 베네수엘라 출국설은 공식 부인되었고 일부 군사 시설과 무기들이 시위대에 넘어간 것은 인정했지만 수백명의 사상자는 인정하지 않았다. 군이 시위 대처 훈련을 받지 않아 실수를 저질렀다고 밝히면서 과잉 대응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일부 규제 철폐와 언론법, 형법의 개정 및 헌법 논의를 시작할 용의가 있다면서 개혁의 의사를 살짝 비쳤다. 그러나 자신들이 없었으면 리비아의 40년은 내란과 저개발로 점철되었을 것이라 주장하면서 내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위협했다. 구체적인 사례로 알주와이야 부족의 석유 수출 중단 발표를 지목했다. 일련의 사태의 뒤에 '해외 공작원', '부유한 기업인들이 아랍과 아프리카의 이주민을 고용했다', '정치적 성향의 노동조합과 이슬람 단체들이 배후에 조종한다', '국가 통일을 위협하는 분리주의자들의 움직임' 등으로 배후설을 주장했다. 그리고 만약 이 사태가 계속되면 유고슬라비아보다 상태가 안 좋아질 수 있고 남북한처럼 철망을 두고 갈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The country will be divided like North and South Korea, we will see each other through a fence. You will wait in line for months for a visa")했다. 알지도 못하는 자슥이 어디서 감히 남북한 얘기를 꺼내? 30개 부족이 아웅다웅 하는 것들이 우리 민족의 아픔을 알게 될 듯 싶으냐?

미국 정부가 설립한 아랍 방송인 알 후라(Al Hurra)는 이 방송은 녹음된 것이고 카다피는 이미 떠났다고 하였으나 사실이 아닌 걸로 보인다. 카다피의 아들들이 혼란한 상황을 틈타 서로 간의 권력 경쟁을 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권력 투쟁이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 카다피는 아들 간의 권력 투쟁을 권장하고 있었으며 10년 10월에는 그나마 진보적 성향을 가진 알-이슬람과 보수파 간의 충돌 격화로 알-이슬람이 가진 미디어 그룹의 기자가 구속되는 상황도 벌어졌었다.

리비아 이슬람 지도자 50명은 시위대에 대한 학살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나섰고 리비아의 아랍 연맹 주재 대사와 중국 주재 대사관의 서열 2위 인사는 폭력 진압에 대해 반대하며 사임했다. 주요 부족 중 하나인 리비아 동부의 '알 주와이야' 의 지도자는 시위대의 탄압을 중단하지 않으면 24시간 내에 서방 국가로의 원유 수출을 차단하겠다고 나서고 역시 동부의 '알 와팔라' 부족의 지도자도 카다피에게 떠나라고 하였으며 1993년 카다피에 대한 반발을 일으켰던 투아레그 계열의 리비아 내에서 최대 인원인 바르팔라 부족도 시위에 참여하는 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EU는 현재의 폭력 진압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카다피가 원래도 말을 들어먹는 인사가 아니라서... 이전 리비아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는 이탈리아 외교부는 리비아가 헌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8. 2월 21일 월요일


8.1. 시위의 진행 상황

벵가지에서만 병원에서 확인된 사망자가 300명이 넘는다고 전해졌다. 휴먼 라이트 워치의 발표로는 지난 주의 사망자만 233명. 게다가 혈액과 의약품의 부족으로 부상자가 치료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사망으로 연결되는 안타까운 일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20일 벵가지를 시위대가 장악한 것을 보여주는 영상들이 유투브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벵가지 시위에 대한 사진은 http://www.flickr.com/photos/a7fadhomar/에서 볼 수 있다. 위 링크에서도 볼 수 있지만 벵가지에는 카다피가 혁명을 일으키기 전인 리비아 왕국 시절(1951~69)동안 사용하던 깃발이 게양되어 있는 것이 목격되고 있다.

트리폴리의 경우 월요일 하루에만 의사들의 집계상 최소 61명이 죽었고 시위대가 경찰 건물을 불태웠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부 청사가 불타고 있다는 말도 있다. 시위대가 알 자마히리야 TV와 알 샤바비아 라디오 방송국을 일시 장악하여 방송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보안군이 은행과 정부 청사, 사기업들의 물건을 훔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전기와 휴대폰 서비스마저 중지되었다고 한다. 큰 규모의 시위대가 도시 중앙의 녹색 광장으로 진출을 시도하며 시위를 하고 있고 리비아 정부는 용병들이 트리폴리를 둘러싸고 실탄 사용은 물론이고 비행기와 헬기로 15~20분마다 폭격까지 가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비무장 시위대에게 자국 군대에 의한 비행기 폭격이 진행되고 있다. 폭격으로 250여명이 사망했다는 말이 나오는 시산혈해의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고... 이를 두고 국영 TV는 '테러범의 소굴에 대한 소탕 작전에 착수했다' 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국방장관은 트리폴리 영공이 차단되었다고 밝혔다. 벵가지에서도 폭격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시리아의 하마시 전투[3]의 재현이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트리폴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이미 카다피의 지지를 철회하거나 시위대에게 넘어간 뒤라 사실상 트리폴리마저 내줄 수 없다는 카다피의 마지막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실제로 카다피의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시위대에 전향하는 군인의 수가 늘고 있다는 것도 이를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중요부대는 카다피의 아들들과 최측근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낙관은 이르다.

이집트군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집트에 맞닿은 국경의 리비아 국경수비대가 국경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진압을 위해 이동하는 것인지의 여부는 불명확하다. 반정부 사이트에 의하면 트리폴리 동쪽의 군 공항에 수대의 군용기를 타고 온 용병 수백명이, 알 아라비아에 의하면 벵가지 인근 국제 공항에 도착한 4대의 군용기에서 용병 수백명이 내리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프랑스 24에 따르면 용병은 차드, 모리셔스, 기니, 나이지리아 등 출신으로 보인다. 알 자지라에 따르면 하루에 2000달러를 받기로 하였다고.


몰타섬에 리비아군의 미라지 F1 두대와 헬기 두 대가 착륙했다. 전투기의 경우 폭격 지시를 받고 이에 저항해서 몰타섬으로 온 것이라고. 조종사 4명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헬기는 민수용으로서 프랑스 석유 노동자 7명이 타고 있었다. 알 자지라에 따르면 리비아 장교 일부는 성명을 발표하여 동료 장병들에게 국민의 편에 설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8.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지방 군대가 시위대에 합류하면서 시위대는 벵가지, 시르테와 그 외 다른 주요 도시들을 함락해 통제하고 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성직자들이 무바라크 축출을 지지했던 것처럼 리비아 성직자들도 위대한 창조자가 선물하고 국제 사회가 인정하는 인권을 탄압하는 카다피는 신에 뜻에 반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신의 뜻에 따라 카다피를 몰아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리비아의 인도, 영국, 인도네시아, 스웨덴, 폴란드, 방글라데시 주재 대사가 폭력 진압에 항의하며 추가로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사관 중 몇 곳에는 시위대의 깃발이 내걸렸다. UN 주재 부대사는 알 아라비야에 출현하여 카다피는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실탄 사용에 항의하여 법무부장관도 사임했다고 한다.

영국 외무장관 윌리엄 헤이그(William Hague)는 카다피가 이미 리비아를 떠나 베네수엘라로 갔을 가능성을 다시 제시하였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 언급을 부정하고 나섰다. 리비아 외교차관도 카다피가 리비아를 떠났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카다피는 오후 늦게 직접 국영 TV에 출연하여 자신은 트리폴리에 있다는 것을 밝히는 약 20초 가량의 짧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UN의 반기문 사무총장, EU의 캐서린 애슈턴 외무담당 최고위원, 아랍 연맹의 아미르 무사 사무총장, NATO-미국-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이집트-이탈리아-이스라엘 등의 국가들은 현 폭력 진압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UN 안보리가 열릴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유엔 주재 리비아 대사관의 부대사[4]가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리에서는 리비아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리비아 영공 비행 금지 구역 선포를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세계 각지에서 리비아 연대 시위도 예정되어 있다.

8.3. 기타

세계 각국이 국민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한국의 리비아 여행 경보 등급은 리비아 전역에 3단계인 여행 제한을 발령하였다. 사실상 여행금지국가 지정에 준하는 조치. 그리고 사태가 계속 확산되자 아예 3월 중순부터 한 달간 한시적으로 여행 금지를 발령하고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일본 외무성은 리비아 전역을 소말리아아프가니스탄과 마찬가지로 대피 권고 지역(한국의 여행 금지에 해당)으로 지정했다.

에너지 기업 윈터샬은 리비아에서의 원유 생산 작업 중단을 공식 선언하고 석유 회사인 BP는 사막에서 진행 중이던 유전 탐사 작업을 중단시키고 필수 요원만 남기고 직원 및 가족을 철수시켰다. 에니, 스태토일, OMV 등의 석유 회사들도 작업을 중단하고 근로자들을 철수시키고 있다.

9. 2월 22일 화요일

9.1. 시위의 진행 상황

사망자는 추정 주체마다 다르지만 500~600명이 넘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따르면 최소 600명이, 반정부 세력에 따르면 최소 560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부상당했으며 1200여명이 실종됐다고 한다. ICC에서는 트리폴리에서만 800명 가량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리비아의 인구 수가 고작 600만여명 정도인데 인명 피해는 인구 8천만의 이집트는 물론 다른 나라 시위대 사망자수를 합친 것보다 훨씬 뛰어넘은 상황. 문제는 사망자의 발생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트리폴리에는 비가 오고 있다. 새벽 일시적으로 총성이 멈추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 차단으로 조금씩 나오던 정보는 더욱더 줄어들었다. 시위 관련 영상은 http://www.libyafeb17.com/를 참조. 벵가지의 활주로는 파괴되었다고 한다.

리비아의 동부 주요 도시인 벵가지는 용병으로 포위되어있으며 트리폴리 입구를 시위대의 진입을 방지하기 위해 용병들이 막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알 자지라의 보도에 의하면 용병들로부터 나온 여권은 수단,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니제르등이라고 한다.

폭력 진압에 항의하며 사임한 아랍연맹주재 리비아 대사에 따르면 현재 리비아 육군참모총장이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Al-Mukaraha 부족이 추가로 카다피 반대의 대열에 섰다.

타임지에 따르면 카다피가 산유 시설을 폭파할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실제로 유정이 폭파되지는 않았어도 모든 원유 터미널을 잠그는 조치가 취해졌다. 리비아에 전체 석유의 25%를 의존하는 이탈리아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이날 유가 가격이 105달러를 돌파하면서 3차 오일 쇼크 공포가 주식 시장 등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시위대를 향해 총 쏘기를 거부한 군인 100여명을 화형해 처했다는 이야기가 관련 동영상과 함께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다. 공식 미디어에선 아직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진위 여부에 대해서도 확실히 말할 수 없는 상태. 관련 영상. 감상 시 주의 정보가 나오는 대로 수정 바람.

9.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현지 시각으로 22일 밤에 카다피가 국영 방송에 연설을 하였다. 개혁에 대한 내용이 담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예측도 있었지만 내용은 이전과 같은 내용을 그의 스타일이 그렇듯이[5] 지리하게 반복하는 것에 그쳤다. 과거에 영국미국에 저항했느니, 끝까지 순교자로 남겠느니, 외부 국가들이 지금 사태를 주도하느니, 일부 아랍 TV 방송국은 사탄을 위해서 일하느니, 시위대를 에 비유하여 친위 세력에게 쥐를 잡으라고 하느니, 현재의 시위대는 이슬람 세력이 주동이 된 것으로서 미국이 차지하여 이라크나 아프간처럼 될 것이라느니, 시위대의 운명으로 천안문 사태(천안문 6.4 항쟁)를 들먹이느니 같은 것 말이다. 워낙 장황하고 긴 연설이라 알 자지라의 실시간 번역자가 버티다가 중간에 교체되기도 했다. 알 자지라도 한 시간 정도 보여주다가 그냥 잘라버렸다. 쓸데없이 긴데 내용도 없는지라.

하나 확인된 사실이라면 최소한 카다피가 트리폴리에 있는 건 확실하고 연설 장소로 1986년에 미국이 폭격했던 곳을 잡을 정도로 그는 여전히 나갈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천안문 사태를 들먹일 정도로 현재의 유혈 진압을 멈출 생각도 안하고 있다는 것.

사임한 법무부장관이 이후에 주장한 내용에 따르면 연설에 실망한 비서가 카다피를 저격했지만 실패했다고 한다.

리비아 내무부장관은 이 날 집무실에서 사임과 동시에 시위대를 지지하는 성명을 방송했다. 미국 주재 대사는 카다피의 정부에선 사임하지만 자신은 카다피가 아닌 리비아 사람들을 대표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에 남아있겠다고 밝혔다. 튀니지, 프랑스, 유네스코 대사도 사임하였다. 현재까지 12명. UAE 리비아 대사관에서 녹색 국기를 내리고 시위대의 국기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UN 대사는 사임을 하진 않았지만 본국에 유혈 탄압 중단을 요청하는 등 심리적 동조 입장을 전했다.

유엔 안보리는 긴급 협의에 들어갔다. 공식 협의도 열릴 예정이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카다피와의 통화를 통해 폭력 진압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다. 세계 최대의 무슬림 조직인 이슬람회의기구(OIC)도 리비아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국제인권 비영리기구인 '민간인 학살 개입 네트워크(Genocide Intervention Network)' 는 리비아에 이라크에 예전에 설정되었던 것과 같은 비행 금지 구역의 설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 주장은 폭격을 통한 학살을 막기 위한 것으로써 지금 꽤 많이 나오는 주장. 국제형사재판소는 카다피와 그의 아들, 그리고 이번 학살을 일으킨 인물들을 기소하기로 공식적으로 결정했다. 알 아라비야의 보도에 따르면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리비아의 국가 구조가 무너지는 징후가 있다고 말했다.

9.3. 기타

이집트-리비아 간 국경수비대가 사라진 틈을 타서 이집트인 의사와 의료물자와 함께 CNN 기자가 리비아로 진입하였다. 이후 몇몇 기자들이 이 국경을 통해서 진입하고 있다. 통관 절차니 세관원이니 아무것도 없었다고. 이집트군에서는 수비 병력을 증강하고 몇 시간 동안만 통과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부상자들의 수용을 위해 24시간 동안 통관을 허용하고 수십명의 의사와 간호사로 의료 캠프를 만들어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튀니지-리비아 국경을 통과하려던 알 자지라 기자는 제지당했다. 세관원이 정상적으로 통관 절차를 하고 있다고.

10. 2월 23일 수요일


10.1. 시위의 진행 상황

이탈리아 외무장관에 따르면 사망자는 1000여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키레나이카(동부 리비아)의 북부(벵가지, 토브룩[6], 3번째 크기의 도시 미스라타를 포함한)와 중부는 시위대의 손에 넘어갔음이 이탈리아 외무장관, CNN, 가디언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트리폴리타니아(리비아 서부 해안 지역)에서는 트리폴리의 일부와 남부 사막 지대의 사브하를 점유하고 있다는 말이 있으며 국제인권연맹에 따르면 해안가 도시들인 시르테, 콤스, 타르후나, 질리텐, 아즈 자위야, 주아라를 시위대가 점유하고 있다고 한다. 리비아 신문인 알 퀴리나(Quryna)에 따르면 트리폴리 서부인 사브라사의 정부군이 반란군에 합류했다고 한다.

바야흐로 서부를 점유하는 카다피와 동부를 점유하는 시위대간의 내전양상에 접어들고 있다.

현지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벵가지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수호이-22 전투기가 명령을 거부하고 이탈해 조종사 두 명이 낙하산으로 공중에서 긴급 탈출하였다는 보도가 들어왔다.

10.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페루는 공식적으로 리비아와의 모든 외교 관계를 중단하는 첫 나라가 되었다. UN 안보리는 강경 진압을 규탄하는 언론 발표문을 의결하였다. 안보리 결의나 의장 성명보다 격이 떨어지지만 긴급한 사안이기에 시의적절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산유국으로서의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워낙 커서 비행 금지 구역 설정과 같은 현실적인 압박은 어려워보인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EU 차원에서 여행 금지와 자산 동결을 포함한 제제를 주장하고 나섰으나 이탈리아가 워낙 소극적이라 힘들어보인다.

그러나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이 '가능한 모든 대안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라고 하거나 오바마 미 대통령이 모든 수단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등 워낙 탈상식적인 폭력 진압을 중단시키는 방안에 대해 특정 대안을 포기하지는 않는 상황.

카다피의 아들인 알 이슬람의 측근인 유세프 사와니(Youssef Sawani)는 폭력 진압에 항의하여 카타피 파운데이션 등의 직책을 사임한다고 밝혔다. 국영 방송은 전날 사임을 발표하고 카다피를 비난한 내무장관이 납치되었다고 밝혔다.

리비아 정부는 카타르의 고위 인사가 뒤에 있는 알 자지라가 이집트와 리비아의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공작 중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10.3. 기타

알 자지라에 따르면 카다피의 딸을 태운 리비아 비행기가 몰타 국제 공항에 착륙을 시도했다. 당시 주 몰타 리비아 대사가 나와 착륙 허가 협상에 참여하였으며 협상에서 비행기 조종사는 카다피의 딸이 타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몰타 정부는 예정된 비행이 아니기 때문에 리비아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카다피의 딸 아이샤는 국영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은 리비아에 있다고 밝히며 관련 보도를 부인했다. 몰타 정부는 보도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22일에는 다섯번째 아들 한니발의 부인과 다른 가족들이 타고 있던 개인용 제트 항공기가 레바논 베이루트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였으나 신원을 밝히지 않은 사유로 착륙이 거절당했다고 레바논의 라디오 방송이 보도하였다. 이처럼 카다피의 아내와 딸, 사위와 손자가 이미 리비아를 떠났다는 이야기는 계속 나오고 있다.

리비아-이집트 국경을 통해 수많은 리비아인들이 이집트로 향하고 있으며 그로인해 정체가 심하다고 한다. 리비아-튀니지 국경에서도 적신월사에 따르면 6000여명의 튀니지인들이 탈출했다고.

리비아에서 탈출한 사람들에 의하면 트리폴리 공항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도 없는 카오스 상황이라고.


11. 2월 24일 목요일


11.1. 시위의 진행 상황

프랑수아 지메레이 프랑스 인권대사에 의하면 천명 이상 사망하였으며 최대 2천명이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3번째 규모의 도시이며 트리폴리로부터 동쪽으로 210km 떨어져 있는 미스라타를 시위대가 점령한 것이 확인되었다. 공항과 병영을 두고 시위대와 군대 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듯. 반정부 시위대가 일부 공군학교 장교들과 함께 공군 기지를 장악하고 항공기의 이륙을 못하게 조처한 후에 리비아인과 외국 용병으로 구성된 무장 병력이 박격포 등을 쏘며 공격해왔다고 한다. 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리폴리 서쪽 110km 지점에 있는 자와라를 두고 시위대와 진압군이 대립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시위대가 우세하다고 한다. 점령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알 자지라의 보도에 따르면 트리폴리 서쪽 50km 떨어진 알 자위야에서 반정부 세력과 카다피 세력 간의 교전으로 100여명이 숨졌다고 한다. 대공미사일로 모스크의 첨탑을 폭격하고 주민들을 자동화기로 공격하는 등의 행동으로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다고.

주요 석유 수출항인 라스 라누프와 마르사 엘 브레가의 정유 및 원유 수출 시설을 시위대가 점유했다고 로이터에 벵가지 주민들이 자체 조직한 관리위원회의 관계자가 말하였다. 계약된 석유 수출은 계속 진행 중이라고.

동부 키레나이카 일대는 물론 최서단 등 트리폴리 인근의 도시들도 다수가 시위대(이미 현 상황에선 시위대 수준이 아닌 반란군의 레벨이지만)에 떨어졌으며 벵가지 등에 있던 시위대 및 시위대에 합류한 군 세력이 트리폴리로 진격 중이다. 이에 맞서 카다피도 외국에서 대규모로 용병을 증원하여 트리폴리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 사이에서 24, 25일 트리폴리에서 대규모의 시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는 문자 메시지가 돌고 있다. 현지 한국인 근로자들의 말에 따르면 트리폴리 외곽 지역에 전술적 폭격이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아직 도심은 폭풍의 눈처럼 고요하고 은행이나 상점도 다시 열렸다고 한다.

벵가지의 공군사령관이 시위대에 참여했다는 소문이 있다.

11.2. 각 주체의 의견표명

카다피의 아들인 알 이슬람은 다시 국영 TV에 나와서 외국의 음모를 주장하고 나섰다. 카다피도 전화 통화를 통해 TV에 출연하였다. 25일 트리폴리 인근 알 자위야에서 벌어진 교전을 예로 들면서 시위대는 빈라덴 편으로 돌아섰다고 매도하였다. 알 카에다가 청소년들에게 밀크 커피에 환각제를 타서 먹였고 세뇌를 시켜서 자신들이 시키는 행동을 하도록 지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 카에다를 배후로 이야기 한 것은 이후 폭력 진압을 위한 근거 만들기로 보인다. 그러나 이전까지 화면에 직접 나오던 카다피가 위치를 알 수 없는 전화를 통해서 연설을 했고 이 전화도 갑자기 끊어졌는데 BBC에서는 카다피가 불안정한 상태에 빠져있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몰타 주재 리비아 대사는 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알 카에다와 연계된 외국인 요원 2500여명이 반정부 시위에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리비아 정부는 자신들의 허가 없이 리비아에 들어와있는 외신 기자[7]들을 알 카에다 끄나풀로 규정하고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리비아 정부는 몰타 정부에 지난 21일 망명을 신청한 조종사들의 비행기 두 대를 돌려달라고 요청하고 나섰다. 몰타 정부는 아직 답변을 하지 않았으며 망명 여부는 검토 중이라고.

추가로 요르단 주재 대사가 사임하였다.

사임한 법무장관과 동부 부족장들은 알 베이다에서 회합을 열었다. 알 자지라를 통해 방영된 회합에서 '리비아는 하나의 부족이다' 와 같은 구호로서 통합된 리비아를 외쳤으며 이슬람 세력이나 외국의 연관성 등 카다피 측에서 주장한 프로파간다를 부정하였다. 시위대로 전향하면서 사임한 법무장관의 증언에 따르면 로커비 상공 팬암 103편 폭파 사건을 지시한 것이 카다피이며 그것을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벵가지의 치안 책임자가 사임하고서 시위대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리는 24일 비공개 회의에서 폭력 사용을 중단하라는 요구를 무시하였기에 추가 조치를 논의하자는 안보리 의장인 UN 영국 대사의 의견에 15개 안보리 회원국이 모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비공개 회의는 25일 혹은 주말에 열릴 것으로 보이며 여행 금지-자산 동결-무기 금수-비행 금지 구역 선포 등이 포함된 제재 조치가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UN은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카다피의 딸이 맡고 있던 친선대사 자격을 중단시켰다.

미국과 유럽 연합은 더욱 강도 높은 제재를 준비 중으로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이 가시화 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많다. 또한 유럽 연합은 카다피 정권에게 무기를 수출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NATO 사무총장은 개입할 계획이 없음을 밝혔으며 어떤 행동을 위해서는 UN의 위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랍 세계에서 미국과 사이 나쁘기로 유명한 이란시리아마저도 카다피 정권의 잔혹한 강경 진압에 학살 리비아를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심지어 국제 테러 조직 알 카에다 마저도 "이슬람 형제들을 함부로 죽이는 사기꾼 카다피를 용서할 수 없다. 함께 투쟁해 나가겠다" 라는 말과 함께 리비아 동부 지역으로 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아랍에는 헬게이트가 열렸다 헌데 알카에다는 이집트 시위 때도 성전을 들먹이면서 개입하려고 했었다. 아무에게도 관심은 못 받았지만(...)

11.3. 기타

우크라이나 유력 일간지인 세고드냐에 따르면 리비아 공군기를 우크라이나 출신 용병들이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 An-12. An-26 등의 화물기 뿐 아니라 MiG-21, MiG-23과 같은 전투기도 몰며 월급은 2000~9000 달러라고 한다. 이는 이미 이틀 전 민간 전략정보분석기업인 스트랫포가 주장했던 내용이다.

벵가지 공항에 있는 장갑차를 찍은 유투브의 영상에 의하면 용병들은 보드카를 마시면서 시위 진압을 한 것으로 보인다. 타고 있던 장갑차 안에서 술병이 발견되었다.

각국은 리비아에 있는 자국 국민들을 데려오기 위해 노력 중이며 한국의 경우 이집트-리비아간 특별기 투입, 리비아 벵가지에 투입된 터키 선박에 양해를 통해 50여명을 탑승등으로 400여명의 교민을 소거할 예정이다. 건설회사 직원 32명이 이집트로 육로로 빠져나왔고 상대적으로 안전함이 입증되었지만 튀니지 방향은 안전성이 불확실하여 시도하지 않기로 하였다. 현재 리비아에 있는 한국인은 동부 벵가지에 250여명, 서부 트리폴리에 700여명이다. 이중 대우건설과 발전소 필수 요원은 잔류를 희망한 상태이다. 재외공관장 회의로 리비아를 나와있던 조대식 주 리비아 대사는 튀니지에서 출발하는 트리폴리행 비행기에 탑승하여 다시 들어갈 예정이다. 청해부대 파병으로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 가있던 최영함을 트리폴리 공항 폐쇄시를 대비하여 리비아로 보내기로 하였다. 추가로 국적기인 대한항공 B747 여행기를 25일 트리폴리 공항에 투입하기로 했다.[8]

현재까지 사임하거나 시위대로 전향한 리비아 정부의 인사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법무장관, 내무장관 겸 장군, 석유장관 이자 전직 총리[9], 전직 의전비서관, 리비아-이집트 관계 담당이자 카다피의 사촌, 카다피의 가장 어린 아들인 사이프 알 아랍 카다피[10], 토브룩 사령관, 몰타로 망명한 두명의 조종사.

대사는 아랍 연맹, 호주, 방글라데시, 유럽 연합, 중국, 이집트, 인도, 인도네시아, 요르단, 스웨덴, 영국, UN 부대사, 미국. 여기에 추가로 헝가리-말레이시아-모로코-몰타 대사관의 직원이 있다.

12. 2월 25일 금요일


12.1. 시위의 진행 상황


25일은 트리폴리에서 대규모 시위가 예정되어 있다.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 있는 것처럼 이슬람권의 휴일인 금요일이므로 예배자들이 자연히 시위대로 연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리폴리에서 모스크 주변을 카다피 친위세력이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국영 TV에서 방영된 금요예배에서는 이맘이 시위대를 비난하는 말을 하자 예배자들이 고함을 치면서 항의하였다. 국영 TV는 잠깐동안 천장을 비추면서 오디오를 껐다.

벵가지에서는 반정부 세력이 유력 인사로 구성된 시 자치위원회를 구성했다. 자체 군부대 창설도 진행 중이며 어느정도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아서 가게들이 다시 문을 열고 공공 의료, 식량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프리카 용병들을 생포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카다피에 반대하여 사임한 법무장관은 카다피는 생화학 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카다피는 권좌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것이며 무엇이든 하고 있다고 국제 사회에 경고하였다.

시위대와 카다피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던 트리폴리 서쪽의 주와라와 자히야도 시위대의 손에 넘어갔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제 트리폴리는 동서로 협공을 받는 형국이 된 상황인 듯.

또한 트리폴리 내에서도 강경 진압으로 수그러들었던 시위대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외신 보도로는 트리폴리 동쪽 수그 알조마, 벤 아슈르, 파슐룸과 서쪽 잔주르 지역 등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고 하며 보안군의 무차별 난사로 잔주르에서 최소 5명, 파슐룸에서 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날 카다피가 녹색 광장의 건물 옥상에 나타났다. 카다피는 녹색기를 흔들면서 "석유를 사수하고 리비아의 독립과 영광을 지켜내자. 적당한 시기에 모든 무기고를 열어 모든 리비아인과 부족민들을 무장시킬 것이다. 리비아는 피로 물들 것이다" 라는 연설을 했다. 천하의 개쌍놈

12.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리비아 정부는 리비아 국영 TV를 통해서 모든 가구가 식품 가격 인상을 보전할 수 있도록 500디나르(약 45만원)를 지급받을 것이며 일부 공무원들에 있어서 급여를 150% 인상할 것이라 전했다. 유화책이지만 너무 늦어보인다.

알 이슬람은 CNN-투르크와의 인터뷰에 나와 미스라타와 자위야를 제외한 나머지 리비아는 평온하며 자신들의 통치하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동부에 이슬람 국가가 들어섰다고 주장하였으며 자신들은 절대로 석유 시설을 파괴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플랜 B를 묻는 질문에 자신들의 플랜 A는 리비아에 있다가 죽는 것이며 플랜 B는 리비아에 있다가 죽는 것이고 플랜 C는 리비아에 있다가 죽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아에 있다 죽는 것이라든지 리비아에 있다가 죽는 것이라든지 리비아에 있다가 죽는 것이라든지 왠지 다 똑같은 말인 것 같은데

전 법무장관은 스웨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의 인생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히틀러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 이라고 말했다.

검찰총장도 사임하고 시위대에 합류하겠다고 밝혔다. 주 제네바 유엔 대표부의 2등 서기관은 유엔 인권위원회 특별 회의에 출석하여 제네바 대표부의 외교관이 전원 사퇴했음을 밝히고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의 시간을 제안했다. 이같은 발표에 인권위 위원들은 전원 기립 박수를 보냈다. 카이로의 아랍 연맹 리비아 대표부도 이름을 '아랍 연맹 리비아 국민 대표부' 로 바꾸면서 국민에 동참했음을 발표했다. 추가로 국가상업은행의 CEO가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23일 몰타에 카다피의 딸이, 22일 레바논의 카다피에 며느리가 착륙을 시도했다는 것이 알려진 것처럼 카다피의 가족들이 국외 망명을 시도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카다피의 3남 사디 카다피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형 알 이슬람이 현재 헌법을 제정 중이며 헌법안이 마련되는 대로 이를 발표할 것이다. 새 질서가 구축되면 아버지는 대부(big father)의 위치에서 조언을 해주실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이 인터뷰 내용이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카다피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2선 퇴진을 종용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분석을 하고 있다.

카다피의 사촌인 아흐메드 카다프 알 담은 얼마전 이집트로 망명한 것은 유혈 진압에 반대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측근 보좌관으로서 리비아-이집트 관계를 다루던 그는 유혈 진압은 심각한 인권 침해이자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EU는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리비아를 추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며 미국 또한 이를 지지하며 대량 학살의 진상 조사를 위한 특별조사관 임명을 추진키로 했다. EU와 러시아는 이례적으로 24일 공동 성명을 발표하여 리비아의 시위대 진압을 규탄하고 아랍 세계의 개혁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안보리는 25일 프랑스와 독일이 제출한 제재안에 대한 검토를 했으며 이르면 28일 표결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 정부는 카다피와 측근의 재산 동결 작업을 시작하였다. 영국 정부도 3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카다피의 자산을 동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EU 회원국들은 무기 금수, 비자 발급 중단, 정권 핵심 관계자의 자산 동결 등의 리비아 제재안에 합의했다고 독일 외무부가 밝혔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다음주에 공식화 할 것이라고.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압둘라 귤 터키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으로서 카다피가 퇴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미국과 나토의 리비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이 임박했다는 분위기도 나오고 있다. 나토는 안보리 등의 위임이 있을 경우 군사적 개입도 대비하고 있다고 밝혀 개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2.3. 기타

국제 유가는 두바이유를 제외하고는 상승세가 멈추거나 하락세를 보였는데 카다피의 사망설이 퍼지면서 유가 하락에 한 몫을 했다고 한다. 이 카다피의 사망설은 22일 카다피가 장광설을 늘어놓을때 카다피의 비서가 권총으로 카다피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와전되어 퍼진 걸로 추측된다. 일각에서는 카다피의 주변에는 5천에서 1만여의 혁명 수비대밖에 남지 않았다면서 트리폴리에서 대격돌이 일어나면 카다피가 결국 패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확인할 수 없는 낙관적인 추측이다.

줄기세포 조작 파문의 주인공인 황우석 전 교수가 리비아에서 목격되어서 한국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연구가 조작이라고 결론이 난 후 종적이 묘연했던 터라 과연 리비아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3. 2월 26일 토요일


13.1. 시위의 진행 상황

시위가 내전 수준으로 확대되면서 사임한 법무장관을 지도자로 하여 동부 벵가지에서 과도 정부가 구성되었다. 3개월 후 선거를 치를 계획이며 과도 정부는 그때까지만 존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서 분할 가능성에는 트리폴리는 과거에도 지금에도 미래에도 리비아의 수도라고 말하면서 강력히 부인했다.

전날 트리폴리에서는 모스크에서 예배를 마친 시위대 수천 명이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으나 카다피 친위 세력은 이들을 향해 실탄을 사용하여 총격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한 수십명이 숨졌으며 친위 세력은 시위대가 흩어진 후 사망자의 시체와 부상자를 모처(해변에서 불태워졌다는 말이 있다)로 끌고 가는 등의 증거 인멸 조치를 취했기에 자세한 수치는 불명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친위 세력이 구급차를 타고 위장해서 시위대로 들어와서 총을 쐈다는 주민의 증언도 있다.

트리폴리 시위 중에 일부분의 지역이 시위대에 넘어갔고 계속 유지되고 있다는 말이 있으나 불확실하다. 미수라타 공항을 둘러싼 싸움에서는 친위대가 기지의 상당 부분을 되찾았다고 한다.

트리폴리 인근 자위야의 정유 시설 단지에서 교전이 일어나서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용병들이 사륜구동차에 중화기를 싣고 나타나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가했다고 한다. 용병들은 청년 30여명을 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사 카사 리비아 외무장관은 시위대와 정부 사이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시위대는 즉각 부인했다.

13.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카다피의 차남 알 이슬람은 알 아라비야 TV와의 회견에서 시위대가 외국 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느니, 내전의 가능성이 크다느니, "아랍의 형제 국가들이 언론인들에게 매 달 돈을 주면서 리비아와 카다피에 저항하도록 선동하는 글을 쓰게 하고 있다" 등의 주장을 했다. 또한 용병 투입과 여성과 어린이의 살상을 부인하면서 증거를 보여달라고 부인했다. 현재 리비아의 3/4는 평화로운 상태라면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휴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물론 용병 투입과 여성-어린이에 대한 살상을 입증하는 증거는 많다.

UN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식량, 연료, 의약품의 부족 상태가 심각한 상태이다. 리비아는 원래부터 식량을 수입에 의존해왔지만 수입항들의 폐쇄로 곡물 수송분이 다른 나라로 간 것으로 알려졌다.

포르투갈 주재 대사가 추가로 사임했다.

미국은 철수 작업이 마무리됨에 따라 현지의 외교관을 전원 철수시키고 대사관을 폐쇄했다. 외교 관계 종식은 아니다. 백악관 대변인은 카다피를 맹비난하면서 국제적인 제재와 함께 독자적인 제재를 취할 것이라 밝혔다. 이를 위해 리비아 정권 고위층의 계좌의 금융 거래를 모니터링하기 시작으며 자산 동결 전단계로 보인다. 카다피와 그의 아들들의 계좌에 대해서는 동결 조치를 내렸다. 또한 '모든 조처' 가 가능하다고 밝혀서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지 않았다. 캐나다 또한 총리가 국제적 제재와 별도로 단독 제재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다고 밝혔다.

14. 2월 27일 일요일


14.1. 시위의 진행 상황

시위대의 트리폴리 진격이 가시화되면서 트리폴리 인근 도시인 자위야에서 양 측의 충돌이 일어났다. 자위야는 트리폴리에서 불과 5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양 측이 이곳을 사수하려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시위대가 카다피군을 몰아내 자위야는 다시 시위대의 손에 들어왔다. 자위야에는 리비아 최대 유정과 장교 숙소까지 있어서 카다피 측에게는 매우 뼈 아픈 손실이다.

자위야에는 카다피의 병력 2000여명이 외곽을 포위하고 있고 시위대는 전직 경찰로 구성된 2000여명이 자위야를 수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서부 대부분의 도시가 함락되면서 트리폴리가 포위된 상태가 되었다.

연이은 전투에서 계속 시위대에게 패배하고 서부 지역 대부분을 내주면서 카다피 세력은 수세에 몰려있고 시르테와 트리폴리에는 친 카다피 세력들이 무기를 나눠주는 등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14.2. UN 안보리 제재 결의


UN 안보리(UNSC)는 만장일치로 결의 1970을 통과시켰다. 민간인에 대한 폭력 진압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것을 밝히며 즉각적인 폭력 중단과 정당한 요구를 이행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카다피 국가 원수와 자녀 및 핵심 측근 16명에 대한 여행 금지 및 해외 자산 동결을 골자로 한 강경 결의다. 현재의 리비아 상황을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여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즉각 조사를 착수하도록 요구[11]하였다. 이와 함께 유엔 회원국들에게 무기와 화력, 군용 차량, 장비, 치안 장비 등 군수품 일체와 그 부속품을 비롯해 무장 용병 제공 등 군사 활동이나 계획, 유지 또는 무기 사용과 관련된 기술적 지원이나 훈련, 재정 등 기타 지원을 공급, 판매 또는 제공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즉시 취하도록 하는 금수 조치를 단행했다. 제재 이행을 위한 구속력을 규정하는 유엔 헌장 7장을 인용했다는 점에서 군사력 사용까지 허용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있었으나 유엔 관계자들은 부정하였다.

이는 비교적 빨리 이뤄진 것으로써 사태의 엄중함과 반기문 사무총장이 전날 안보리 전체회의에서 "시간을 끌수록 인명은 그만큼 희생된다" 고 말하면서 즉각적이고 구체적 행동을 촉구한 것이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기 금수, 여행 제한, 자산 동결은 쉽게 결정났으나 안보리 회의에서는 ICC 즉각 회부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적극적인 주장과 중국-인도-브라질-포르투갈의 향후 여지를 남겨놓는 문구 사용, 미국과 러시아의 방관적인 태도로 회의가 길어졌다. 9시간 논의 끝에 훈령이 필요하다고 버티던 중국이 찬성함으로서 모든 회원국이 조항에 찬성했다. ICC 비회원국인 미국도 처음으로(다르푸르 회부 때는 기권했었다) 찬성했다.

본 결의 채택에는 카다피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UN 주재 모하메드 샬람 리비아 대사가 "리비아 국민들에 대한 군사력 사용을 지시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조치가 필요하다" 고 밝힌 것이 일조하였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국제 공동체의 일치된 입장을 보여준 것으로 환영의 입장을 밝혔으며 폭력 중단에 중대한 한 걸음이 될 것으로 말했다.

14.3. 각 주체의 의견 표명

오바마 미 대통령은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통치의 적법성을 잃은 카다피는 지금 당장 리비아를 떠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즉각적인 퇴진을 처음으로 요구했다. 미국은 리비아의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미국 비자를 취소했다.

과도 정부는 카다피에게 권좌를 포기하면 유럽 국가로 망명하는 걸 허락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15. 2월 28일 월요일


15.1. 시위의 진행 상황

리비아는 수도 트리폴리와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반정부 세력에게 넘어간 상황. 중부에 있는 강력한 친정부 세력이 점유하는 요새화된 시르테의 존재가 동부의 반정부 세력이 트리폴리로 가는 것을 힘들게 하고 있다.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200km 떨어진 마스라타에서 시위대와 카다피 측의 교전이 벌어졌다. 카다피군은 군용기로 라디오 탑을 공격했으나 시위대의 반격으로 격추되었다. 마스라다 공군 기지는 시위대와 카다피군이 대치하고 있지만 시위대가 거의 대부분을 점유하였으며 마스라다는 여전히 시위대의 통제하에 놓여있다.

트리폴리에서는 400명 가량의 시위대가 동부 구역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전해졌다.

벵가지를 비롯한 동부는 평상시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은행이 문을 열었고 상점들도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벵가지에서는 '자유 리비아의 목소리', 토브룩에서는 '자유 토브룩 라디오' 를 개국하여 42년만에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국영 방송은 반정부 방송 라디오 주파수와 같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등 재밍에 나서고 있다.

트리폴리의 경우는 100개의 상점이 있다고 하면 4~5개만 연 상황이며 그나마도 식료품의 가격이 엄청나게 오른 상황이라고. 주식인 쌀인 경우 5kg들이 포대 하나가 500% 올라서 40달러를 호가한다고 한다. 그나마도 팔 수 있는 수량이 정해져있다고. 동부도 상황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2~3주 후에 식량과 의약품 부족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귄터 외팅어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유전과 가스전 대부분을 반정부 시위대가 장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안보리의 의결에 따라 카다피 정권의 반인류 범죄에 대해 예비 조사에 착수했다. 모레노-오캄포 수석 검사는 수일 이내에 예비 조사를 완료하여 리비아에 대한 수사를 시작할지의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검찰부가 예비 조사 결과 수사에 착수한다는 결론을 내리면 심층 조사를 벌여 충분한 증거와 증언을 확보하고 공식 기소를 하게 된다.

15.2. 각 주체의 의견 표명

EU가 카다피 및 측근에 대한 비자 발급 중단 및 자산 동결, 무기 금수를 만장일치로 승인하였다. 미국과 유럽은 NATO의 공군력으로 비행 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이는 UNSC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이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피용 총리는 RTL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가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방안을 연구하고 있으며 사람들이 말하는 군사적인 해결책도 정부는 고려하고 있다" 고 밝혔다. 이 외에도 영국, 미국도 군사적 해결책도 신중하게 검토하는 듯.

카다피는 유엔의 제재가 부당하다면서 리비아는 매우 평화롭고 안정적이며 사망자는 알 카에다의 테러로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아프 알 이슬람도 리비아는 평화롭고 바깥에 나가서 보면 알 수 있지만 시위대를 유혈 진압했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이며 해외로 빼돌린 재산도 없으므로 유엔 안보리의 제재는 실용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웃기시네 카다피가 해외 재산을 빼돌리려는 시도를 한 것이 알려져 있는 가운데 이런 발언은 전혀 들어줄 가치가 없다.[12]

카다피는 이외에도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좋은 사람이지만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왜 서방은 우리를 돕긴 커녕 버리고 있는 것인가? 모든 리비아 국민은 나를 사랑하며 나는 대통령도 왕도 아니므로 물러날 수 없다" 고 밝혔다.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는 국민이 결국 당신에게 총을 겨누게 될 때 과연 당신도 그들을 사랑한다고 할지 참 의문이군

미국 의회에서는 비행 금지 구역 설정 등 더 강도 높은 압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리비아 주변으로 해군 함정과 공군 전투기들을 이동시키고 있으며 영국도 군사 개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미군과 나토가 리비아에 군사적 개입을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만 현재 미국이 육군 인력 부족이 심각하기 때문에[13] 개입이 현실화된다 해도 지상군 개입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 외무장관은 리비아 외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민간인에 대한 무력 사용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15.3. 기타

용병들과 구분할 수 없는 외모로 인해[14] 사하라 이남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대부분 튀니지로 피신해 있다고.

먼저 상황을 겪은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리비아에 의약품이나 식량 지원이 계속 이뤄진다고 한다.

그 이후의 일은 2011 리비아 민주화 운동/3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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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재소자들이 가족 면회 금지 해제와 복역 환경 개선을 두고 시위를 벌이자 정부군이 재소자를 학살한 사건. 휴먼 라이트 워치는 1270명의 재소자가 사망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 [2] 흑인 용병의 시체가 찍힌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 [3] 동물 하마가 아닌 작은 도시 이름으로 이슬람 과격파의 근거지로서 1980년대 대대적인 시리아군 공습과 포격을 받아 전멸했다. 이들도 자폭 공격으로 맞대응했기에 하마 전투로 불리우는데 시리아를 싫어하던 미국은 하마 학살이라고 지들이 싫어하는 이슬람 과격파들을 위한 용어로 불러주기도 했다.
  • [4] 21일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가 권력을 포기하지 않으면 리비아인들이 그를 제거해야 한다" 고 한 반카다피로 돌아선 인물.
  • [5] 장광설로 악명 높은 카다피는 이미 2009년의 UN 연설 때 96분 동안 연설을 해서 참석자들의 절반이 자리를 뜨고 통역사가 중간에 교체되는 등의 일이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원래 15분이었다.
  • [6] 알 자지라에선 토브룩에 주둔하고 있는 리비아군의 사령관과 전화 통화를 통해 그가 시위대의 편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 [7] CNN, BBC 아랍어 방송, 알 아라비아의 일부 기자들은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 [8] 89년에 트리폴리 공항에 대한항공 DC-10기가 추락한 뒤로 22년만에 대한항공 비행기가 트리폴리에 착륙한 아이러니한 역사의 현장인 셈이다.
  • [9]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으며 타국으로 도망갔다는 말도 있다. 전향은 아니다
  • [10] Press TV 보도. 아직 불확실하다.
  • [11] 이전까지 안보리가 ICC에 사건을 회부한 것은 수단 다르푸르 내전의 잔혹 행위가 유일했다.
  • [12] 더군다나 세계 각국의 언론과 인터넷에 떠도는 동영상 등의 명백한 무력 탄압의 증거가 존재하는데 이런 말을 했다는 거 자체가 드디어 정신줄을 놓았음을 암시한다.
  • [13] 육군은 아프가니스탄 문제 해결이 더 급하다. 이 외에 1980년대에 있었던 미국에 의한 공습에 대한 기억 때문에 리비아의 민중들도 미국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한다는 카더라가 있다.
  • [14] 아프리카라고 해도 북아프리카 주민들은 피부색이 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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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4-01-14 20: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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