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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교향곡의 저주

last modified: 2015-02-01 22:27:14 by Contributors

클래식 음악계에서 꽤 자주 언급되었던 (또는 지금도 언급되는) 떡밥 중 하나. 창시자(?)는 베토벤이라고 이야기한다.

Contents

1. 개요
1.1. 저주에 걸린 대표적인 작곡가들
1.2. 9번까지도 못가본 작곡가들
1.3. 번호를 아예 안붙인 작곡가들
1.4. 저주를 무력화한 작곡가들
1.5. 저주를 역관광시킨(...) 다작가들

1. 개요

고전 시대까지는 한 사람이 작곡한 교향곡의 숫자가 무척 많은 편이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경우 약 54곡을 썼고, '교향곡의 아버지' 라고 잘못 일컬어지는 요제프 하이든도 107곡 가량을 남긴 바 있다. 이런 물량공세는 그 당시 교향곡이 귀족 등 특권층의 여흥 음악으로 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창작자의 개성이 발휘되기 시작한 베토벤 시대 이후에는 오히려 교향곡이 여러 장르들 중 상위 개념에까지 오를 정도로 격상됐고, 주문받고 마구 써제끼는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과 시간을 들여 창작하는 대작(masterpiece)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베토벤은 청년 시절 수십 편의 교향곡을 완성할 수 있는 초안들을 만들었지만, 결국 완성된 것은 교향곡 제1번 한 곡 뿐이었으며, 나머지는 그의 말기시절에 작곡되었다.

베토벤은 모두 아홉 곡의 교향곡을 남기고 타계했는데, 이 때 이후로 수많은 작곡가들이 교향곡을 작곡했지만 대부분 9번 이상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거나 절필하는 바람에 '9번 교향곡의 저주' 라고 언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개 이런 저주가 그렇듯이 한 번 깨진 이후에는 무력화. 비슷한 예로는 미국 대통령들의 테쿰세의 저주인데 이것도 깨졌다.

이는 책인 글와글 클래식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1.1. 저주에 걸린 대표적인 작곡가들

  • 루트비히 판 베토벤: 9번 교향곡 저주의 시조되시는분. 건강상태가 나쁜 말년에 9번을 공개한후 몇년못가서 사망했다. 9번교향곡이 워낙 대작이었기 때문에 8번과 9번 사이의 텀이 10년이나 되었던게 문제. 2년정도만 빠르게 완성했다면 10번 교향곡을 들을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10번 교향곡은 미완성으로서 일부 스케치가 남아있는걸 짜집기해서 편곡한 버전이 있다.
  • 프란츠 슈베르트: 9번을 남긴 뒤 10번을 스케치하다가 사망했다. 다만 7번의 경우 초벌 작곡은 끝났지만 관현악 편곡이 덜 된 미완성 작품이고, 8번(흔히 미완성 교향곡이라고 불리는 작품)은 3악장 초반부까지만 쓰고 중단했으며, 그 뒤 현대 작곡가들에 의해 4악장 완성본으로 발행된 게 있다. 지금은 7번을 빼고 여덟 곡으로 추리는 경우가 많다.
  • 안톤 브루크너: 숫자로는 총 11곡이지만, 초기작인 00번과 0번은 브루크너 자신이 버로우하는 바람에 번호를 못매겼다. 결국 번호 붙은 곡 중 9번을 작곡하다가 4악장을 채 마치지 못하고 사망했다.
  • 안토닌 드보르자크: 생전에 출판된 교향곡은 모두 다섯 곡이었으며, 사후 네 곡이 추가로 출판되어 아홉 곡이 되었다. 이외에 발견된 곡은 없다.
  • 렉산드르 글라주노프: 8번까지는 제대로 썼지만, 9번은 1악장을 쓰다가 팽개치고 나머지 생애 동안 손도 대지 않았다.
  • 구스타프 말러: 일단 8번까지는 차근차근 번호를 매기다가, 아홉 번째 곡은 저주를 피하려고 번호를 안매기고 '대지의 노래' 로 적는 훼이크 스킬을 발휘했으나, 그도 역시 후속작으로 9번을 완성한 뒤 10번을 쓰다가 사망했다.
  • 프 본 윌리엄스, 르트 아테르베리, 곤 벨레슈, 콤 아놀드, 이터 라즐로: 9번까지만 쓰고 사망했다.
  • 프레드 슈니트케: 원래 1972년에 작곡한 교향곡 제1번 부터 제대로 번호를 매겼지만, 20대 때 작곡한 초기작의 경우 초연 후 한참 동안 묵혀 뒀다가 브루크너와 마찬가지로 한참 뒤에야 0번이라는 번호를 붙였다. 그리고 연이은 뇌졸중과 그로 인한 오른손과 하반신의 마비, 언어 장애 등의 심한 후유증 속에서 1997년에 간신히 9번을 완성했지만, 결국 저 곡을 끝으로 더 이상 교향곡을 쓰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나마 9번의 자필보도 유일하게 온전히 움직일 수 있었던 왼손으로 어설프게 갈겨쓰듯이 작성되었기 때문에, 미망인인 이리나 슈니트케가 동향인 작곡가인 알렉산드르 라스카토프에게 자필보의 해독을 의뢰해 2006년에야 제대로 정서된 악보가 출판될 수 있었다.

1.2. 9번까지도 못가본 작곡가들

1.3. 번호를 아예 안붙인 작곡가들

  • 엑토르 베를리오즈: 네 곡을 남겼지만 모두 번호없이 썼다. (환상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럴드, 로미오와 줄리엣, 장송과 승리의 대교향곡)
  • 프란츠 리스트: 베를리오즈와 마찬가지로 번호없이 두 곡 썼다. (파우스트 교향곡, 단테 교향곡)
  •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다섯 곡 (또는 네 곡) 썼지만 모두 번호가 없거나 제목만 붙였다. (교향곡 E플랫장조, 시편 교향곡, C조의 교향곡, 3악장의 교향곡,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 단,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은 교향곡이 아닌, 프랑스어 동음이의어인 '생포니(Symphonie. 기악 합주곡이라는 뜻)' 의 개념에서 착안한 곡이라 교향곡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울 힌데미트: 여섯 곡 썼지만 모두 번호가 없거나 제목만 붙였다. (화가 마티스, 교향곡 E플랫조, 신포니아 세레나, 세계의 조화, 콘서트 밴드를 위한 교향곡 B플랫조, 피츠버그 교향곡)

하지만 9번이라는 번호를 돌파한 교향곡 작곡가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대부분 20세기에 활동한 인물들인데, 아래 목록 참조.

1.4. 저주를 무력화한 작곡가들

  • 이 슈포어: 1번부터 9번까지는 번호 붙여서 제대로 출판했지만, 마지막 10번의 경우 자신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출판도 초연도 하지 않고 방치했다. 하지만 1998년에 베를린 국립도서관에서 고문서 정리 중 자필 총보와 사보가가 작성한 파트 악보가 발견되었고, 같은 해 미국 뉴욕에서 121년 만에 초연된 뒤 2006년에 출판되었다. 작곡자 사후에 저주가 무력화된 극히 이례적인 사례.
  • 아힘 라프: 번호 제대로 붙여서 11곡을 남겼다. 19세기에 저주를 돌파한 보기 드문 인물이지만, 다만 작곡자 자신이 사후 듣보잡화되어 좀처럼 언급이 안되는 것이 안습.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역시 번호 제대로 붙여서 15곡 남겼다.
  • 리우스 미요: 12번까지 남겼다.
  • 이토르 빌라-로부스: 소실 혹은 파기된 5번을 제외하고 11곡이 현존한다.
  • 크 바딩즈: 14번까지 남겼다.
  • 란 페터손: 1번은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이후 17번까지 열여섯 곡은 모두 완성했다.
  • 두아르드 투빈: 10번까지 완성했고, 11번은 미완성.
  • 렉산드르 모이체스: 12번까지 남겼다.
  • 운영: 13번까지 남겼다.
  • 스 베르너 헨체: 10번까지 남겼다.

1.5. 저주를 역관광시킨(...) 다작가들

  • 치수아프 바인베르크: 22곡을 써제꼈다.
  • 니콜라이 먀스콥스키: 27곡을 써제꼈다. 현재 러시아 작곡가들 중 최다 교향곡 작곡가로 기록되고 있다.
  • 버걸 브라이언: 32곡을 써제꼈다.
  • 런 호바네스: 공식 추산된 곡만 67곡. ㅎㄷㄷ.
  • 이프 세게르스탐(1944~ ): 2021-01-20 현재까지 285곡을 써서 기네스북에 최다 교향곡 작곡가로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연주 시간이 20분 내외로 짧은 축에 속한다.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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