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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B48/카미

이 항목은 카미7으로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1. 정의

AKB48의 전성기인 2010년~2011년에 총선거 8위 이내에 들었던 멤버들을 뜻하는 말.


후배 멤버들이 8위 이내로 들어온다고 해도 카미8으로 불리지는 않는다. 운영이나 미디어에서는 6회 총선거에서 7위권에 들어간 와타나베 마유, 사시하라 리노, 카시와기 유키, 마츠이 쥬리나, 마츠이 레나, 야마모토 사야카, 시마자키 하루카를 '신카미7'으로 부르기는 하지만, 이런 명명법이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2.1. 제 1회 총선거 이전

스카히라7이란 본래 2006년 6월에 발매한 인디즈 싱글 '스커트 히라리(スカート、ひらり)'에서 재킷 사진에 들어간 구 팀A의 7명을 뜻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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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코지마 하루나, 나리타 리사, 마에다 아츠코, 다카하시 미나미, 이타노 토모미, ……, 오오시마 마이

당시에는 '선발 멤버'라는 제도가 없었지만, 편의상 이 멤버들을 스카토 히라리 싱글의 선발 멤버라고 부르기도 한다. 비록 구 팀A 20명이 모두 노래를 부르기는 했지만, 이 일곱 명에게는 솔로 파트를 부르는 특권이 주어졌다. 당시 뮤직 스테이션 출연 영상을 봐도 이 일곱 명만 가운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고 13명은 말 그대로 병풍(…)에 옷 색도 달랐다.


카미7이란 것이 생긴 것은 1회 총선거 때 부터였다. 그 전에는 스커트 히라리 싱글의 7인 메인 보컬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또한 AKB48 자체의 인기와 인지도가 매우 낮은 상황이어서 팬이나 대중에게 주는 임팩트는 없었다. 7명 중에서 나리타 리사는 팬들 사이의 인기가 많아서 선발에 들어갔다기보다는 당시 운영진의 푸시 라인에 있었기 때문에 메인 보컬을 맡은 것에 가까웠다.

2008년 11월 23일에 나카니시 리나와 나리타 리사가 그리고 2009년 4월에 오오시마 마이가 그룹을 졸업하면서 공석이 발생하였다. AKB48 재적 당시에도 예능 활동이 왕성했던 오오시마 마이는 한동안 활발하게 활동했고 나카니시 리나는 AV에 데뷔해서 알 사람은 아는 인기 스타가 되었지만 나리타 리사는 연예계를 은퇴하였다.

2.2. 제 1회 총선거 - 제 2회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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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타노 토모미,코지마 하루나,다카하시 미나미,와타나베 마유,시노다 마리코,오오시마 유코,마에다 아츠코
2009년 첫 번째로 실시한 1회 총선거 순위가 발표되었고, 그당시 타 멤버들에 비해 압도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가졌던 상위 랭크 7명이 방송이나 콘서트에서 스커트 히라리 무대를 가지게 된것을 계기로, 스카히라7 이라는 말이 AKB48 인기멤버 의 상징이자 모든 미디어 활동의 중심축이 되었다. 다만 이 시기 이후에는 '스카히라'라는 말보다는 '카미7'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이게 되었다.


이후 2010년에 두번재로 치러진 2회 총선거, 7위 안에서의 순위 변동만 있었을 뿐 멤버 자체의 이탈은 없었다. 이는 여타 AKB48 멤버들에 비해 이들 7인이 가지는 인기와 인지도가 뚜렷한 우위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 결과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의 각 미디어에 서는 절대로 깨지지 않을거라 예상한 이 7인의 조합을 '카미7(神7)'이라는 칭호로 부르기 시작했다. 팬들은 지네들끼리 다해먹고 짤릴일 없다고 철밥통 7으로 불리기도 했다

2.3. 제 3회 총선거

결코, 7위까지는 깨지지 않을거라 생각해 미디어에서는 이들을 카미7(神7)이라 부르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2011년 3회 총선거에서 작년 8위 었던 카시와기 유키가 많은 사람의 예상과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3위라는 무시무시한 이변을 낳고야 말았다.[2]
게다가 낙폭조차 예상하지 않았던, 오히려 2011년 초의 싱글 Dear J로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한 이타노 토모미가 8위로 하락 즉 카미7에서 광탈당하는 충격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이타노 토모미의 심정


이렇게 3회 총선거 결과로 카미7의 멤버가 바뀌게 되었지만 그 이후로 이 7인의 조합이 카미7의 상징인 스커트 히라리(スカート、ひらり)를 공연하는 일은 없었고, 더욱이 운영진 측에서 8위인 이타노 토모미의 대중적 인지도와 인기를 무시할 수 없는것과 더불어 호리프로 라는 거대 소속사의 영향 어른의 사정으로 전과 다름없는 오히려 더 좋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총선거 상위 8명이 AKB48의 중심이 되어 카미7의 +1 개념인 카미8(神8)이 된것이 아니냐 라는 말도 있었고, 8인의 조합으로 콘서트에서 夕陽を見ているか?를 공연한적도 있지만 항목을 석양 8으로 바꿔야 할 기세 여전히 '카미7'을 AKB48의 인기멤버의 상징으로 인식하는것은 변함없는듯 하다.

2.4. 제 4회 총선거

2012년 6월 6일 에 4회 총선거가 치러지기 전 자신의 졸업을 예고한 마에다 아츠코가 총선거 불출마 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윽고 치러진 4회 총선거 결과로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의 광푸쉬와, 헤타레 캐릭터로 인기가 급상승한 사시하라 리노가 총선거 4위에 랭크되어 새로운 카미7의 멤버가 될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한달 채 되지도 않아 주간문춘에서 과거 남자 팬과의 스캔들이 밝혀졌고 심야 라디오방송인 AKB48のANN(All Night Nippon)에서 2012년 6월 15일부로 HKT48로 사실상 좌천됐다.사시하라 리노 해명과 아키모토 야스시의 HKT48 이적 발언. 이로써 떡잉여 생존왕모드 발동. 때문에 마에다 아츠코의 졸업으로 인한 카미7의 공석은 한때 카미7 멤버였던... 이타노 토모미의 몫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새롭게 결성된 카미7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의 커버 촬영을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사진

2.4.1. 세대교체

카미7이 AKB48의 상징이자 얼굴이 되어 정상급의 인기 아이돌 그룹이 된것에 큰 공헌을 하였지만, 반대로 이들을 중심으로 각종 미디어의 스포트 라이트와 여러 활동등이 집중된 탓에 여타 AKB48 멤버에 비해 인기와 인지도의 차이가 넘사벽 급으로 커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점이 현재 AKB48 수명 연장의 수단인 세대교체를 가로 막는 벽이 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참고로 현재까지 카미7에 들었던 멤버들은 전부 1기에서 3기로 초기 및 선배 기수이다.

때문에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와 운영진측은 2012년 8월에 신내각 조성안을 발표하였고, 이를 계기로 카미7의 최연소 멤버인 와타나베 마유를 필두로 SKE48의 에이스 마츠이 쥬리나, NMB48 에이스 또는 조련꾼 와타나베 미유키, 그리고 9기 시마자키 하루카 등을 내세운 차세대 에이스를 밀고자 하는 의지를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카미7의 주축 멤버이자 최연장자이신 이 분은 "자리를 양보해줘야지 비로소 위로 올라가는 멤버는 AKB48에 있을 자격이 없다"며 결국 강력한 차세대 라인이 힘을 합쳐 쫓아낼 때까지는 30살 까지 졸업하지 않을 생각인듯 하고하지만 1년뒤에 졸업했지.., 다른 멤버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을 표명한바 있다. 그 이유는 현 AKB48안에서 활동하는 것이 자신의 인기 유지와 인지도 향상에 있어서 졸업으로 홀로서기 할 때보다 큰 메리트가 있다는 인기 멤버 자신과 기획사의 판단 때문. 참고로 AKB48은 멤버마다 제각기 다른 기획사에 소속되었다.

게다가 역대 아이돌 그룹의 세대교체와 관련한 팬들입장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의 이미지가 올드해 지더라도 인기멤버가 계속 활동하길 바라는 마음이 큰 경향이 있고, 지나친 세대교체 시도는 결국 그룹 이미지 저하라는 옆동네뼈아픈 선례가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AKB48 세대교체가 완전히 이루어 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2.5. 제 5회 총선거



절반의 변화, 절반의 정체

이후 개최된 5회 총선거에서 다시 변화의 흐름이 보였다. 4회 총선거에서 4위에 랭크되었으나 스캔들로 인해 HKT48로 좌천당한 사시하라 리노가 경악의 속보결과에 힘입어 결국 최종 1위 자리에 등극하였다. 2위인 오오시마 유코에 비해 1만표 이상 차이나는 결과라 뭐라 더 할 말이 없을 지경. 누구는 진격의 사시하라라 카더라.

그 동안 AKB의 주된 라이벌 구도였던 마에다 vs 오오시마 에이스 경쟁 체제에서 마에다가 졸업한 이후 오오시마 독주 체제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고, 이 독주에 대항할 멤버는 차세대 센터로 밀려고 하는 와타나베 혹은 카시와기 정도라고 예상되었지만 결국 오오시마를 밀어낸 것은 사시하라. 물론 삿시 자신도 푸쉬를 어느 정도 받은 데다가 본인의 예능감을 겸비한 노력도 물론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압도적으로 치고 올라갈 줄은 몰랐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 시노다 마리코가 5위에 랭크되었고, 이후 졸업할 것을 발표하였다. 또한 기타 다른 카미7 멤버인 코지마 하루나, 다카하시 미나미의 하락세 및 이타노 토모미의 졸업에 발맞추어 AKB48이 아닌 SKE48의 두 에이스, 마츠이 쥬리나마츠이 레나가 굳건하게만 보였던 카미7의 벽을 박살내고 각각 6,7위에 랭크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기 오리멘들이 이제 거의 대부분 무대 뒤편으로 사라져가며, 이에 따라 그들이 중심에 서 있던 철밥통 카미7 체제에 균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라는 이야기.

그러나 다카하시 미나미코지마 하루나의 그야말로 신급 절대적 인지도나 푸시가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닌데다가 이타노 토모미시노다 마리코가 졸업하는 마당이라 공석이 두 자리가 생겨 다카하시와 코지마는 어찌되었던 카미7에 다시 포함될 예정이기 때문에, 토모찡 때가 떠오르는 카미들의 생존본능 이들이 카미에서 내려왔다고 하기에는 곤란한 감이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네티즌은 "카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늘어날 뿐이다"라는 평을 했다. #

여기에 시마자키 하루카의 아쉬운 뒷심부족 역시 카미7 체제의 변화를 말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부분. 그 동안의 광푸쉬에 힘입어 속보에서 7위를 차지하자 설마 파루루가 카미7에 입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설레발말도 나왔지만, 결국 최종 결과는 12위로 마감. 물론 차세대 멤버로서 미디어 선발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그 동안 운영진에서 세대교체 명목으로 에이스로서 밀어준 것을 생각하면 그 이상의 결과도 기대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무언가 부족했다는 평이다.

결국 현재의 카미7 체제는 카미가 좀 더 늘어난 채로 혹시나 했던 거대한 지각변동 없이 앞으로도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이번 총선거에서 운영진이 기대했던 세대교체는 일말의 가능성만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총선거를 거친 이후 일본의 미디어에서는 '카미7', 또는 '카미'라는 표현이 쓰이는 빈도가 줄고 있다.

3. 이후의 움직임

6회 총선거에서는 오오시마 유코, 시노다 마리코, 이타노 토모미 등 주요 멤버들의 잇단 졸업 이후, 16위권 이내의 표 수가 줄어드는 등 전체적으로 선거의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코지마 하루나와 다카하시 미나미는 결국 7위권 복귀를 이루지 못했고, 시마자키 하루카, 야마모토 사야카가 새롭게 7위권에 들었다. 하지만 이제 '카미'란 총선 상위권 인기멤버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되었고, 여전히 꽤 사용되고는 있으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는 일상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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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7인의 조합으로 첫 공연인 2009년 8월 무도관 내각 조성축제
  • [2] 물론 카시와기 유키의 탁월한 악수회 대응과 부모님께 소개시켜 줄 수있는 아이돌이라는 좋은 이미지 포지셔닝으로 그간 카미7 진입이 유력시 되었으나 3위까지는 예상 밖이었다 라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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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4-12-12 19:5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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