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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f109

last modified: 2015-09-21 17:55:19 by Contributors

아프리카의 별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루프트바페 에이스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의 도색. 사막용으로 개조된 마르세이유의 14번 Bf109는 겔베(황색) 14로 불리며 영국 공군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Messerschmitt Bf 109

"버펄로가 신사라면, Bf109는 살인기계다." ― 에이노 일마리 유틸라이넨

빌리 메서슈미트(Willy Messerschmitt)가 설계한, 제2차 세계대전 전기간에 걸쳐 사용된 독일공군의 전투기.

스페인 내전에서 첫 실전투입이 된 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도 각국에서 주력 전투기로 활약했는데, 총 30,000대 이상이 생산되어 전투기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기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소련IL-2 슈투르모빅기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생산된 항공기로 알려져 있다.

2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독일에서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유고슬라비아, 핀란드, 스페인에서 오리지널과 전후 생산형 등을 계속 사용하였으며 스페인 공군에서는 1965년에야 퇴역하여, 1937년 정식 취역한 이후 28년이나 운용되었다. E형은 '에밀', F형은 '프리드리히', G형은 '구스타프', K형은 '쿠어퓌르스트(Kurfürst; 선제후)'라는 애칭으로 불렸기도 하다.

Contents

1. 기체사
1.1. 명칭 논란
1.2. 개발사
1.3. 초기형 : Bf 109 A~E
1.4. 프랑스 전역과 영국 본토 항공전
1.5. 중기형 : Bf 109 F
1.6. 후기형 : Bf 109 G~K
1.7. 전후 파생형


1. 기체사

전쟁 기간 내내 10여 년간 생산되고, 그 후에도 알음알음으로 생산되고 사용된 Bf 109의 개발사는 매우 길며, 제3제국의 흥망과도 연결되어 있다.

전쟁 말기에도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1944년 전반을 제외하고는 동등내지 우수한 성능으로 요격기는 물론이고 전선 전투기로도 계속 사용되었다. 게다가 플랩을 제외한 기본적인 작업 (트림이나 라디에이터조정) 을 기체가 거의 다 알아서 해주었기에 조종사의 숙달도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쉬운편 이었다. 또한 숙련된 파일럿이 타고 있을 경우 매우 위협적인 전투기였으며, 최고의 독일 공군 에이스 상당수가 첫 출격부터 종전 때까지 Bf 109만을 타고 싸웠다는 점에서라도 그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또한 1944년 초까지도 거의 동등한 격추비를 보여주었으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20배가 넘는 소티수로도 호각의 격추비를 보여 주었다 아울러 비행기의 역사가 시작되고 나서 현재까지 가장 많이 생산된 단발 전투기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첨단 기술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덕분에 오라지게 비싼 현대 전투기들을 보면 이 기록이 무너질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1.1. 명칭 논란

본래 Bf 109를 생산하던 바이에른 항공사(Bayerischen Flugzeugwerken)를 이후 메서슈미트가 인수, 회사 이름을 메서슈미트로 개칭하면서 Me 109라 부르기도 했다. 다만 실제로 독일군은 Me 109라 부르지 않았으며, 최후기형인 Bf 109K의 기체나 비행매뉴얼에도 여전히 Bf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또한 Bf-109나 Me-109처럼 하이픈('-')을 넣는 것도 잘못된 표기로, 독일군은 Bf109 또는 한 칸 띄어서 Bf 109라고만 표기했다. 이는 다른 독일군 항공기도 마찬가지로, 하이픈을 사용한 것은 개량형을 뜻하는 뒤에 오는 숫자, 이를테면 Bf 109 F-4나 Bf 109 G-10의 4나 10 같은 숫자 앞이었다. 또한 개량형 숫자 뒤에 추가적인 변형 또는 무장 추가장착 등에 슬래시('/')를 붙이고 항공기별 R키트의 이름을 썼다. Bf109 G형의 경우에는 동축기관포로 MK 108 30mm 기관포를 장착한 R4, 對폭격기 무장으로 주익에 MG151/20 기관포팩을 추가한 R6 등의 추가 세트가 유명하다.

1.2. 개발사

1933년 말,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은 새로운 단좌 단엽 전투기 개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독일의 4개 항공사가 각기 새로운 전투기 디자인에 착수했는데, 아라도(Arado), 하인켈(Heinkel), 포케불프(Focke-Wulf), 바이에른 항공사(BFW, Bayerische Flugzeugwerke)가 그들이었다. 독일 공군이 이들 항공사에 요청한 전투기의 요건은 다음과 같았다.

1. 한개의 엔진을 탑재한 완전 금속제 단좌 단엽전투기이며, 기관총 2정(각기 1000 발 장전) 혹은 20 mm 기관포(200발 장전) 1정을 장착해야 한다.

2. 6000 m 고도에서 400 kph 속력을 낼수 있어야 하며, 적어도 1시간 반 이상 비행 가능해야 한다. 또한, 한계고도는 10,000 m이상이어야 한다.

3. 최고속력으로 20분 이상 비행가능해야 하며, 조종석 시야가 좋아야 한다.[1]

4. 가장 중요한 것은 속력, 다음은 상승력, 마지막으로 기동성 순으로 우선순위를 둔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경쟁에 뛰어든 4개의 항공사 중 최종 생산권을 따내게 되는 바이에른 항공사(BFW)는 군용 항공기 설계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후발 주자였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아라도, 하인켈, 포케볼프사는 지금껏 적어도 한번 이상씩은 군용기를 만들어낸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1930년 메서슈미트사는 M22라는 쌍발 야간 전투기 겸 정찰기를 디자인한 적은 있었으나, 원형기가 시험비행 도중 추락하는 바람에 생산이 백지화된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이렇게 보면 메서슈미트 항공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경쟁처럼 보이지만, 사실 메서슈미트사는 민간용이기는 해도 완전 금속제 항공기 제작의 경험이 있었고 여기에 빌리 메서슈미트의 뛰어난 항공기 제작 감각을 감안했을 때, 다소 불리함을 안기는 했지만 절망적일 정도의 차이는 아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독일 공군의 단좌 단엽전투기 생산권을 따내게 된다.

다른 경쟁사들이 속속 원형기들을 내놓으면서 Bf 항공사도 Bf 109의 원형기를 만들어냈다. Bf 109는 밀폐형 콕핏을 채택했고, 조종석의 창이 오른쪽으로 젖혀져 열릴 수 있게 설계되었으며, 비상탈출시 조종석 후방 유리가 떨어져 나가게 고안되었다. 날개는 완전 금속제로 만들어졌는데, 플랩일러론, 방향타는 금속틀 위에 캔버스 천을 덮어 끝마무리를 했다. 플랩은 조종석 좌측에 있는 레버에 의해 작동되도록 설계되었고, 약 40도까지 동작했다. 또 수평 꼬리날개의 양측에는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지지대를 마련했는데, 이 동체 디자인은 E형까지 유지되었다.

Bf 109는 기체는 최대한 간소하게 구성하여 크기가 작고 가벼웠다. (이 특징은 독일의 또다른 주력전투기인 Fw 190과도 일맥상통한다. 최대한 경박단소한 기체에 강력한 엔진을 달아 고성능을 노리는 것이다. 다만 이 작은 기체 크기는 전쟁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극한의 개량이 가해지는 조건에서 그 확장성을 제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 랜딩 기어는 주익이 동체에 부착되는 곳에 장착해, 착륙시 날개에 가해지는 외력을 줄였으며, 경쟁사들이 설계한 주익 장착용 랜딩기어에 비교하면 주익에 별다른 장치가 필요없었고, 이동시 주익을 떼어내고 동체만 트럭에 연결할 수 있어 야전에서 운용하기에도 좋은 편이었다. 단, 랜딩기어 사이의 간격이 좁아 착륙이 다소 까다롭다는 단점이 생겨났다. (좁은 랜딩기어 폭에 의한 단점은 Bf 109의 영원한 라이벌인 스핏파이어 또한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이 점은 Bf 109가 극초기형에 비해 2-3배 이상 강한 엔진을 달게 되자 더욱 심해지게 된다. F형이 A~E형에 비해 거의 모든 부분에서 다른 기체였음에도, 이 부분은 전혀 달라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 Original uploader was B. Huber at de.wikipedia (cc-by-sa-2.0-de) from

시제기 Bf 109 V1의 삼면도

원형기에는 엔진 카울링 상당에 MG 17 기관총 2정과 프로펠러 축에 20mm MG C.30L 기관포 1정을 장착했다. 엔진은 BMW 116 엔진을 계획했었지만, 여의치 않아 유모 210 엔진을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생산에 문제가 생겨 최초의 원형기 V1기에는 롤스 로이스 케스트렐(Rolls-Royce Kestrel II) 엔진을 탑재하게 되었다. (바로 그 영국의 롤스 로이스가 맞다. 이때만 해도 영국과 독일은 전쟁상황은 아니었던지라...) 그리고 1935년 5월 28일 대망의 초도비행을 하게된다.

그러나 정작 시험비행장으로 옮겨진 후, 많은 검열관들 앞에서 비행에 들어간 Bf 109 V1기는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즉 착륙 도중, 랜딩기어가 문제를 일으켜, 한개의 바퀴로 동체착륙을 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 비행성능에 반해버린 검열관들에게 이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못했고, 기체 디자인 문제가 아닌 조종사 실수로 인정되어 메서슈미트사의 시험 비행조종사가 해고당하는 선에서 그치며 109는 큰 점수를 따내게 된 것이다. V1기에 이어 두번째로 만들어진 V2기는 예정대로 유모 210 엔진을 탑재하게 되었다.

1936년 2월말, 경쟁에 참가했던 4개의 항공사 중 아라도와 포케볼프는 기체 디자인 문제로 중도에 탈락하게 되었고, 남은 것은 하인켈사의 He 112와 메서슈미트사의 Bf 109 뿐이었다.

몇명의 엄선된 독일 베테랑 조종사들이 두 기종을 시험비행하게 되었는데, 이중에는 1차대전 독일 격추 2위의 에이스였던 에른스트 우데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시험비행 직후 거의 모두 Bf 109의 손을 들어주었다. 시험비행에는 여러가지 곡예비행 같은 비행술이 선보였는데, 두 기종 모두 급하강후 재상승 시험은 만족스럽게 통과했지만 스핀 회복 시험에서 그만 He 112기가 추락하고 만다. 다행히 조종사는 낙하산 탈출로 목숨은 건졌지만 하인켈사에게는 엄청난 감점 요인이 되었다. 게다가 He 112는 날개 면적이 넓어 Bf 109에 비해 롤 속도가 매우 떨어졌으며, 비행시 조작성도 Bf 109가 더 좋았다. 상승력에서 두 기종이 엇비슷한 점을 제외한다면 Bf109의 완벽한 승리였다. 이날 시험비행을 마치면서 검열관 프란케 박사는 Bf109를 비행한 조종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지금 자네가 Bf109를 타고 보여준 곡예비행 말인데, He112를 타고서는 할 생각도 말게나……."

1.3. 초기형 : Bf 109 A~E


© Eckert, Erhardt (cc-by-sa-3.0-de) from


제원
Bf 109 C-1

전폭 : 9.87m
전장 : 8.55m
전고 : 2.60m
익면적 : 16.2㎡
엔진 : 융커스-유모 210Ga 수랭식 12기통 역V자 엔진, 700마력
최대속도: 440km/h (고도 4,000m)
전비중량 : 2,310kg
실용상승한도 : 9,500m
무장 :
카울링 상단에 MG 17 7.92mm 기관총 2정, 정당 탄약 500발
주익 양단에 MG 17 7.92mm 기관총 2정, 정당 탄약 420발

Bf 109 E-3

전폭 : 9.87m
전장 : 8.64m
전고 : 2.60m
익면적 : 16.2㎡
엔진 : 다임러-벤츠 DB 601Aa 수랭식 12기통 역V자 엔진, 1175마력
최대속도: 570km/h (고도 5,000m)
자체중량 : 2,010kg
전비중량 : 2,505kg
항속거리 : 800km
실용상승한도 : 10,500m
무장 :
카울링 상단에 MG 17 7.92mm 기관총 2정, 정당 탄약 1000발
주익 양단에 MG FF 20mm 기관포 2문, 문당 탄약 60발
일부 기체 엔진축에 MG FF 20mm 기관포 1문, 탄약 200발( 대부분의 부대에서는 이걸 그냥 떼어버렸고, E 후기형에서는 아예 폐지하고 스피너 등의 포구를 막아버렸다.)


Bf 109의 세번째 시험기인 V3기가 생산된 직후, 새로이 유모 210C 엔진을 탑재한 A형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A형의 무장은 처음 계획했던 것과는 달리 프로펠러 축의 20mm 기관포를 없애고 카울링 상단에 MG 17 기관총 2정만을 탑재했으며, 초기 계획상 510kg 짜리 투하용 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예정이었으나, 실용화되지는 못했고 총 20대가 만들어졌다.

© Herbert Ringlstetter (cc-by-sa-3.0) from

BF 109 B-2, W-Nr.1062

A형의 뒤를 이은 B형은 화력을 보충하여 MG17 기관총 3정을 탑재하게 되었는데, 2정(각기 500발씩 장전)은 카울링 상단에 장착했고, 나머지 한정(600발 장전)은 프로펠러 축에 설치했지만 이후에 프로펠러축의 기관총은 발열 문제 때문에 제거된다. 이 문제는 E형까지 골머리를 썩히고, 영국 본토 항공전이 끝나고 나온 F형에 이르러서야 해결된다. B형은 총 341기가 만들어졌다.

C형은 1937년 3월 초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는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역시 화력의 보강이었다. 카울링 상단의 MG 17 기관총 2정의 탄환 수를 각각 1000 발씩으로 두 배나 증가시켰고 주익에 새로이 2정의 MG 17 기관총(500발씩 장전)을 장착했다. C형의 경우 엔진을 유모 210G형으로, D형은 유모 210D형으로 교체했다. 또 A형과 B형의 경우 235 리터 연료 탱크였던 것에 비해 C형과 D형은 L자형으로 생긴 337 리터 용량의 연료 탱크를 탑재했다. C형은 58대가 생산되었고, D형은 647대가 만들어졌으며, 1938년에는 109 D-1형 5대가 스위스에 판매되기도 했다. Bf-109의 세번째 원형기인 V3기부터 시작해 A, B, C, D형 등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고, 스페인 공화국을 위해 분전한 러시아제 전투기 I-15나 I-16보다 훨씬 월등한 기량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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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 53의 E-3. 1939/1940년경

Bf 109 E(Emil, 에밀) 형은 진정한 메서슈미트 109의 시작을 알리는 효시라 할 수 있는 버전으로 인류 사상 최대의 항공전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본토 항공전 당시 독일의 주력 전투기로서 활약한 기종이다. 외형적으로도 E형은 어떤 우아한 면마저도 풍기는 기종으로, 빌리 메서슈미트가 가장 깔끔한 외형과 가장 간단한 구조, 가장 소형의 전투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고심한 작품이다. 이런 소형이면서 유선형의 기체는 공기 저항을 최소화해서 엔진의 파워가 작아도 기동이 화려할 수 있었고, 또 연료의 소모량도 줄일 수 있었다. 물론 작은 외형으로 피탄률이 낮다는 장점도 있었다.

© The original uploader was B. Huber at German Wikipedia
(Original text: Björn Huber) (cc-by-sa-2.0-de) from

Bf 109 E-3, JG2 제 3 그루페

Bf109 A형부터 D형까지는 무장과 유모 엔진의 버전이 조금씩 바뀐 것 이외에는 큰 변화는 없었으나 E형부터는 본격적으로 주목할만한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엔진이 종전의 유모 엔진에서 직접 연료 분사 방식의 강력한 다임러 벤츠 601A 엔진으로 교체되어, 동시대 어느 전투기에도 뒤지지 않는 속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대부분 전투기들이 그렇듯, 엔진의 변화는 전투기 디자인 자체의 변화를 야기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Bf109도 새로운 엔진의 탑재로 카울링 부분의 디자인이 대폭 수정되었다. 크기가 커진 엔진을 장착하기 위해 카울링 부분이 길어지면서 냉각 장치는 주익 아래에 위치하게 되었고, 엔진의 파워가 향상되면서 프로펠러도 종전의 양날에서 3개의 날을 가진 것으로 교체되었다. 구조변화에 따른 늘어난 무게는 약 450kg에 달해, 기체 전체 프레임도 내구성을 높여야 했다.

E형중 가장 많이 생산된 버전은 E-3형으로 이때부터 주익의 기관총 대신 무장도 MG FF 20mm 기관포를 각 주익에 1개씩(각기 60발 장전) 장착했으며, 기본 무장인 카울링 상단의 MG 17 7.92mm 기관총은 그대로 유지시켰다. 프로펠러 축의 기관포는 있긴 했으나, 대부분의 경우 과열 등의 문제로 사용하지 않아 대부분의 자료에서도 없는 듯 취급한다. E-3형은 총 1246대가 생산되었고 이중 일부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위스, 스페인, 일본 등지에 수출되기도 했다.

Bf109_Galland_Gerippe.jpg
[JPG image (15.44 KB)]

JG26의 Bf 109 E-4, 1940년 프랑스. 아돌프 갈란트 탑승기체

E-4부터는 이 엔진축 기관포를 완벽히 폐지하여 스피너 끝에 캡을 씌운 모습을 보여 준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E의 세부 버전으로는 E-7형이 있는데, 이미 참패한 영국의 항공전에서 절실하게 체험한 부족한 항속거리를 보상하기 위해 300 리터 짜리 외부 보조 탱크를 달기도 했고, 일부 북아프리카에 파견되기도 했는데, 모래사막에서 엔진을 보호하기 위해 에어필터와 강렬한 열사의 태양빛을 차단하기 위한 썬스크린 등을 추가하여 운용되었다(사막용으로 /Trop을 붙여 구분한다.) 또한 E-4형부터는 엔진을 DB 601 N형으로 바꾸었고, E-7형은 새로운 추가 출력 장치인 GM1 부스터 시스템을 장착했는데, 이것은 액체 일산화이질소(N2O)를 이용해 특히 고공에서 약 250마력 이상의 출력을 더 얻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튜닝된 차에서 흔히 쓰는 니트로 시스템과 같은 것이다.) 최종적으로 E형은 마지막 버전인 E-9형까지, 총 4000대 가량이 생산되었다.

1.4. 프랑스 전역과 영국 본토 항공전

Bf 109 E형은 폴란드 침공프랑스 침공에서 적수가 없는 최강의 전투기로 군림하게 된다.

이후 독일은 세계최강의 공군력을 자부하게 되었으나, 얼마후 그들의 자부심도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영국이라는 끈질긴 상대를 만난 후부터라 할 수 있다. Bf 109 E는 속도가 300mph를 넘게 되면, 조종성이 둔해지기 시작하고 400mph 이상시에는 에일러론이 조종불능 상태가 되어 이 속도에서는 거의 롤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점은 G형으로 가면서 플레트너 탭이 장착되고 해결된다.)

또 결정적으로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스핏파이어보다 선회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Bf109의 개발과정에서 최우선 순위가 속력, 상승력, 선회력 순이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그렇다고 Bf 109 E도 당시 선회력이 특출나게 나쁜 기체는 아니었다. 동시기의 미국 육항대 주력 전투기로 채택되려 하던 P-40B와 비슷한 수준.) 에밀은 스핏파이어보다 예리하게 선회할 수 없었지만 상승력은 훨씬 우수했고, 또 한계고도도 더 높았으며 급강하 능력도 좋아 에너지 파이팅에서는 한 단계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두 기체의 성능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호각지세로, 공중전에서는 파일럿의 능력에서 승부가 갈리게 되는 정도의 차이였다. 선회력의 스핏파이어, 상승력의 백구라고 말하긴 하지만 실제 저 두 기체는 '생각한 것 보다 상승력 좋은 스핏파이어, 생각한 것 보다 선회력 좋은 백구'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실제 전후 백구를 몰아본 영국 파일럿들은 생각보다 좋은 선회력에 놀란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항속거리가 부족해 영국 상공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짧았고, 폭격기 호위를 위해 폭격기와 속도를 맞추어 비행하면서 Bf 109의 장기인 기동성을 희생해야만 했으니, 영국 전투기와의 대결은 불리한 조건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정이 어찌되었건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는 결과적으로 영국공군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사실 독일공군은 과거 복엽기를 운용하던 시절부터 보조연료탱크를 장착하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Bf 109의 경우에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연료부족에 시달린 후, E-7형에서야 겨우 보조연료탱크를 채택하였다. 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2차대전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경우 보통 다음 3가지를 원인으로 제시한다.

  1. 유럽 본토에서 작전을 펼치는 동안 Bf 109의 연료문제가 제기된 적이 없다. 무엇보다 유럽 본토에서의 작전은 공군의 지원을 등에 업은 독일육군이 거침없이 진격하여 적국 공군기지를 점령하면 이 기지를 활용하는 식으로 작전을 한 경우가 많았다.
  2. 계속되는 승리와 영국공군을 얕잡아보던 헤르만 괴링이하 공군 수뇌부의 자만심으로 영국공군 따위는 쉽게 도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3. 원래 폭격기 호위임무는 Bf 110이 맡기로 되어 있었고, Bf 109는 자유롭게 영국 전투기를 추적하여 격추시키는 임무를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근데 막상 전투를 시작해보니 Bf 110이 영국 전투기에게 개털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Bf 109가 호위임무에 투입되면서 독일공군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였다.

사실 영국 본토 항공전 초기에는 영국 남서부 지역의 항공기지 공습에 주로 투입되었고, Bf109의 경우 초기 자유추적임무를 받았기에 연료부족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점점 폭격기 호위 임무를 수행하게 되고, 여기에 한술 더 떠 훨씬 거리가 먼 런던을 공습하게 되자 곧 심각한 연료부족문제에 직면하였다. 런던대공습 당시 Bf 109가 런던 상공에서 체류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5 ~ 15분 남짓. 상황이 이 모양이니 영국 전투기들을 제대로 상대할 시간조차 없었고, 연료의 한계로 귀환할 때는 결국 독일군 폭격기들이 영국 전투기들에게 일방적으로 도살당하는 것을 손놓고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꼭지돌아서 영국 전투기에게 도전한 조종사들도 있었지만 이 경우 귀환할 연료부족으로 귀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결국 항속거리가 짧은 Bf109들이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 영국에 툭툭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 영국상공에서 격추된 Bf109보다 프랑스 해안에 불시착한 Bf109들이 더 많다는 기록도 있었을 정도이니….

충분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서 결국 비참한 결과를 맛보게 되었다. 뒤늦게 보조연료탱크를 장착할 수 있도록 메서슈미트 박사에게 설계변경을 의뢰하였으나 보조연료탱크 장착이 가능한 Bf 109가 일선에 배치되었을 때는 이미 영국 본토 항공전이 끝나 버렸다. 그리하여...

영국 본토 항공전의 손실결과
영국 독일
  • Bf109 610기
  • Bf110 235기
  • 폭격기 937기
총 1149기 총 1782기




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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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폭기형의 Bf 109 E-7/b

이 이후로 E형은 주된 전선인 유럽 전역에서는 퇴역하나, 소련 침공 초기와 아프리카 전역에서는 계속 활약하였다.

한편, 독일의 항공모함 계획인 그라프 체펠린에 탑재될 전투기도 E계열의 T형이었다. E-7n의 주익을 11.6m로 연장한 기체로서, 항모 계획이 묻혀 버리자 같이 묻혀버리고 기체는 북유럽의 지상기지에서 운용되었다.

1.5. 중기형 : Bf 109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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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치킨 에이스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의 F-4/Trop, '황색 14번'. 1942년.

제원
Bf 109 F-4

전폭 : 9.94m
전장 : 8.97m
전고 : 2.45m
익면적 : 16.1㎡
엔진 : 다임러-벤츠 DB 601E 수랭식 12기통 역V자 엔진, 1350마력
최대속도: 670 km/h (고도 6,300m)
자체중량 : 2,080kg
전비중량 : 2,890kg
항속거리 : 570km, 300L 드롭탱크 장착시 850km
실용상승한도 : 11,600m
무장 :
카울링 상단에 MG 17 7.92mm 기관총 2정, 정당 탄약 500발
엔진축에 MG 151/20 20mm 기관포 1문, 탄약 200발


영국 본토 항공전 이후 새로운 엔진을 장착한 개량형인 F형이 등장하였다. F형은 기체 전체가 대폭 재설계되어 동체 전방과 주익은 완전히 형체가 바뀌었고, 수평미익의 버팀목 등도 제거되어 더욱 매끈한 형상이 되었다. 이 형태는 Bf 109의 초기형과 중-후기형을 갈라 놓는 중요한 구분 포인트이다.

이제서야 기축 기관포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최초에 의도했던 대로 주익의 MG FF 2문 대신 기축의 MG 151 1문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형태의 무장 배치는 조준하기는 편하나 화력 자체는 줄어들었고, 또한 F 초기형에 장착된 기축 기관포는 20mm가 아닌 15mm 구경의 MG 151이었다. 때문에 기총 조준실력이 좋았던 조종사들은 거리를 신경쓸 필요가 없어(주익에 무장이 달린 경우 몇 m에서 조준선에 맞도록 세팅해 놓기 때문에, 그 거리를 넘거나 더 가까워지면 조준이 흐트러진다.) 좋아했던 반면, 그렇지 못한 일반 조종사들은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아돌프 갈란트 같은 경우가 대표적. 이 양반은 F형의 기수에 MG 131을 달고, 주익에도 기관포를 매달아 마개조한 기체를 몰고 다녔다. 이 화력 문제는 MG 151의 구경을 확대한 MG 151/20 20mm 기관포가 신뢰할 만한 탄도와 뛰어난 신뢰성을 발휘하자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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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51 소속의 Bf 109 F-2. 르너 묄더즈 탑승기체.

이래저래 F형은 당시 세계 최강의 제공전투기로서, 가벼워진 무게와 높아진 출력의 엔진 등으로 한껏 높아진 능력을 뽐내며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F형의 에이스로는 독일 공군의 전술에서는 보기 드문 이단아인 한스 요아힘 마르세이유가 유명하다. 이후 동부전선에 대량 투입, 30년대 초반 모델들이었던 소련 공군기들을 도륙하며 활약했다.그 때문인지 러시아 업체들의 게임들은 이 당시 러시아 기체들을 사기로 구현하여 Bf 109를 디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고도 전투기형으로 F형의 주익을 연장한 H형 또한 등장하였지만, 많이 쓰이지는 못하였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시에 고공 정찰 임무(지상으로부터 15km 상공이라 프랑스 해변 전체를 시야에 넣을 수 있었다고 한다)를 띠고 비행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영국 항공전이 끝난 후 정찰 용도로 주로 사용되었다. 다만 투입 대수가 매우 적었다.

또한, F형의 기체를 이용해서 쌍두마차 2발 요격/전폭기를 만들어보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Bf 109 Z (Zwiling)이라 불리는데, 그야말로 쌍둥이 두 대를 붙여놓은 모양이다. 기수에는 30mm 기관포를 5~6정에, 500kg 이상의 폭탄을 장비할 수 있는 컨셉으로 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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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격기, 전폭기 등의 용도로 개발이 거의 완료되었고 1대의 프로토타입만 만들어 둔 상태로 상부의 생산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서슈미트사의 공장은 생산 지시만 떨어지면 이 기체를 당장 생산할 수 있는 상태였으나 '현재 생산 중인 기체를 사용할 것'이라는 제국항공성의 요구(당시는 G형으로 Bf109의 생산라인이 옮겨가고 있었다)로 인해 생산이 지연되었다. 44년에 상승력, 속도 등 많은 측면에서 Z형보다 우월한 Me 262 프로젝트가 성공하였기 때문에 쌍둥이 비행기를 제작할 필요성이 사라졌다. 결국 이 기체는 잊혀진 기체가 되었다.
스트라이크 위치즈에도 등장했다 #

1.6. 후기형 : Bf 109 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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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27 소속의 Bf 109 G-6. 1944년 이탈리아

제원
Bf 109 G-6

전폭 : 9.97m
전장 : 8.95m
전고 : 2.60m
익면적 : 16.4㎡
엔진 : 다임러-벤츠 DB 605A 수랭식 12기통 역V자 엔진, 1475마력
최대속도: 650km/h (고도 6,600m)
자체중량 : 2,250kg
전비중량 : 3,200kg
항속거리 : 560km, 300L 드롭탱크 장착시 850km
실용상승한도 : 12,000m
무장 :
카울링 상단에 MG 131 13mm 기관총 2정, 정당 탄약 300발
엔진축에 MG 151/20 20mm 기관포 1문, 문당 탄약 200발

Bf 109 G-10

전폭 : 9.87m
전장 : 8.95m
전고 : 2.60m
익면적 : 16.4㎡
엔진 : 다임러-벤츠 DB 605DB 수랭식 12기통 역V자 엔진, 1435마력(MW-50 부스터 사용시 1800마력)
최대속도: 685km/h (고도 7,400m)
자체중량 : 1,970kg
전비중량 : 3,280kg
항속거리 : 560km, 300L 드롭탱크 장착시 850km
실용상승한도 : 12,500m
무장 :
카울링 상단에 MG 131 13mm 기관총 2정, 정당 탄약 300발
엔진축에 MG 151/20 20mm 기관포 1문, 탄약 200발

Bf 109 K-4

전폭 : 9.97m
전장 : 8.95m
전고 : 2.60m
익면적 : 16.4㎡
엔진 : 다임러-벤츠 DB 605DC 수랭식 12기통 역V자 엔진, 1370마력(MW-50 부스터 사용시 2000마력)
최대속도: 715km/h (고도 7,400m)
자체중량 : 1,970g
전비중량 : 3,500kg
항속거리 : 560km, 300L 드롭탱크 장착시 850km
실용상승한도 : 12,500m
무장 :
카울링 상단에 MG 131 13mm 기관총 2정, 정당 탄약 300발
엔진축에 MK 108 30mm 기관포 1문, 탄약 65발


점점 독일이 수세에 몰리면서, Bf 109의 성격도 제공전투기에서 점차 요격기로 변해갔다. G형으로 넘어오면서 가장 중요한 변경점은 고공 요격을 위한 여압 장치[3]가 된 조종석과 폭격기 기총 화력에서 조종사를 보호할 수 있는 장갑판, 방탄 유리의 채용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요격을 위해 튜닝된 고출력의 엔진도 포함된다. 덕분에 F형에 비하면 무거워졌다. 또한, 생산성을 위해 꼬리 바퀴를 F형의 수납식에서 고정식으로 교체한다. 당시 독일 조종사들은 공장에서 요격용으로만 양산되는 Bf109들이 저속이든 고속이든 순수하게 폭격기만을 잡기 위해 조종성과 기동성을 대폭으로 갉아먹는 "중무장"덕에 독일 조종사들은 사전에 일부 Bf109를 경무장화 시킨 연합군 전투기와의 공중전을 벌이는 편대와 요격편대를 따로 나눠서 운용하였다.

요격을 더욱 중시한 G-5 등의 파생형부터는 기수의 기관총이 MG 131 13mm 기관총 2정으로 바뀌었고, 기존의 MG 17보다 더 커진 이 신형 무기 때문에 엔진 카울링에는 G 중기형 특유의 벌지가 생겨났다. (이후 G-10 등 엔진 카울링이 확대된 기종에서는 이 벌지가 다시 사라진다.) 또한 G-6 부터 기축 기관포로도 한 방 한 방의 위력이 확실한 MK 108 30mm 기관포를 탑재하는 일도 잦았다. MK 108은 구경에 비해 가벼워 Bf 109 같은 경량기체에도 탑재할 수 있었으나, 포구 초속이 느리고 연사가 느려 대형폭격기 공격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작은 전투기를 상대로는 맞추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그리고 43년 말 부터 전쟁 상황이 매우 악화되기 시작하자 기체 후방 구조물(수평 꼬리 날개 등)을 원가 절감을 위해 목재로 만들기 시작한다. (잘 보면 수직 꼬리 날개 부분에서 G-6형과 G-10, K의 차이점을 볼 수 있는데, 키가 큰 쪽이 이 목재를 이용한 꼬리 날개다.) 목재로 만든 꼬리 날개는 높이가 더 높아서 고속 안정성을 확보해 주었으나, 도리어 무게가 늘어나서 앞쪽에 밸런스용으로 무게추를 더 넣어야 했다고 한다. 즉, 전체적인 무게는 더 늘어나, 둔중해진 것이다. 그리고 목재가 금속보다 방호력이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금속은 구멍이 나고 너덜너덜하게 유지되지만, 목재는 그 정도 데미지를 입으면 그대로 깨져버리기 때문.

당시 보조 전투기로 개발되던 Fw190이 중저고도에서는 Bf 109보다 훨씬 우수한 성능을 보였고, 또한 조종하기도 편하다는 점 때문에 일선 전투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떨어져 갔으나, 대신 상승력이 우수하고 고공에서도 성능저하가 적은 수퍼차저 탑재형 수랭 엔진을 가진 덕에 영미 폭격기군에 대항하는 요격기로 대량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연합군의 중폭격기, 특히 B-17에 대항하기 위해 계속 화력증강을 꾀하였으나 이 덕분에 적 전투기를 상대하는 능력은(특히 기동성이) 차츰 저하되어 갔다. 거기다가 요격에 참여하는 기체들은 기관총 2정 + 20mm 기관포 1정의 화력을 약하다고 생각하여 날개 밑에 추가로 20mm 기관포를 좌우 1정씩 달아맸기 때문에, 이렇게 둔해진 109들은 스핏파이어 후기형이나 P-47 썬더볼트, P-51 머스탱 등의 연합군 신형 전투기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물량과 질 모두 상대가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이는 독일 공군의 요격 전술로 인한 것이기도 하다. 전쟁 후반으로 가면 독일 공군의 요격 편대는 호위기들은 무시하고 폭격기들만 요격하고 귀환하는 전술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호위기와의 전투를 가급적 회피하였다. 그 과정(폭격기만 좇다가 꼬리에 적기가 붙어 버린 경우 등.)에서 격추된 독일기들 때문에 Bf109의 성능이 저하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부각된 이유는 무장을 늘리고, 엔진 출력을 강화시키느라 최대 속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썬더볼트/머스탱과 스핏파이어 후기형들은 사실 저속 선회전 실력은 형편 없었던 기체들이었고, G-6의 경우는 속도가 딸림에도 불구하고 저공에서 이들과 저속 선회전을 벌이면 도리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또한, 상승력(요격기 컨셉이므로 당연히)과 급강하(썬더볼트 제외)시 이들보다 잠깐이나마 우위를 유지할 수 있었으므로,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에이스라면 충분히 이들과 교전할 수 있었다. 문제는 44년 초만 되어도 독일 공군에서 숙련자를 찾아볼 수 없어졌기에...


한편, 소련군은 노획한 Bf 109를 보고 상당히 좋은 평을 내렸다. 일단 출력 관련 부분이 전부 기계식으로 자동 조절되는 부분은 그 당시 소련군으로써는 가히 외계인 납치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프로펠러 피치 조정이 전기식으로 되어 있어 시동이 꺼져도 쉽게 대응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반면 러시아 기체는 유압식이라 엔진이 꺼지면 프롭 피치를 조절할 수 없어 재시동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다.(프롭 피치란 프로펠러가 공기를 가르는 각도를 의미한다. 이 각도에 따라 상승력이 달라지는 한편 속도가 떨어지는 등 장단점이 존재한다. 전투 상황마다 이를 적절하게 조절해주는 게 필요했다. 여기 설명된 엔진이 멈춘 상황에서도 비행기의 관성+공기 흐름에 맞출 수 있도록 피치를 조절을 해 줘야 재시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외에도 정비가 상당히 편리하며 라디에이터도 피탄되었을 당시 단계적으로 정지시키는 기능이 장착되어 있는 등 기계적인 완성도는 당시 소련에서 사용하던 어떤 기체들보다 나았다고 한다. 한편, 러시아 기체들은 연료 탱크가 날개에 장착되어 있었고, 장갑도 별로 탄탄하지 않아(La-5FN 같은 경우는 제로센처럼 후줄근한 금속도 아니고, 아싸리 목재로 만든 비행기다...) 피탄시 제로센처럼 불타는 경우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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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3 소속의 Bf 109 G-10, 1945년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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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G3 소속의 Bf 109 K-4

1945년 4월 이후 G-10 등의 파생형에서는 더욱 강력해진 엔진을 탑재하여 성능의 확대를 꾀하였다. G-10이나 K-4 등의 최후기형들은 최대 속도도 700km/h 정도에 달하였으며, 연합군의 최신예 전투기들보다 한 수 위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모든 Bf 109에는 얼라 하우베(Erla Haube)라는 프레임이 적은 신형 캐노피를 장착하여 조종사의 시야 향상 또한 꾀하였다. 그러나 이미 독일에는 이런 전투기를 몰 조종사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K-4는 전후 미육군항공대에서의 고옥탄 가솔린으로 시험 비행에서 747Km/h라는 일급의 스피드를 낼 수 있었지만...나치 독일은 이미 패망한 후였다. (미군과 영국은 보통 항공기 테스트시에 5분간 지속출력에 고옥탄유를 기준으로 삼기에 독일이 스펙에서 떨어져 보이지만 독일은 30분 지속출력에 자동차에나 쓸 법한 87옥탄유를 사용하였다)

K-4에는 MK 108 기관포가 표준장비로 자리잡았으며(사실상 G-10부터 이 30mm 기관포를 기본 장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MK 108보다 더욱 크고 아름다운 고속탄을 발사하는 MK 103 30mm 기관포를 기축 기관포로 쓰려는 계획도 있었다.


1.7. 전후 파생형

보통 나치 독일 패망과 함께 퇴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G를 베이스로 개조된 버전들도 계속 사용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중동전쟁에서 사용하였던 체코제 Avia 199 기체가 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마개조한 Ha 1112도 유명한데, 이 기체는 1970년대까지 운용하였다. 게다가 Ha 1112는 현재도 비행 가능한 잔존기체가 많다보니 2차대전 영화를 찍을 때 Bf109의 대역으로도 간간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하지만 Ha 1112는 기수 모양이 꽤나 달라서 눈치 빠른 사람들은 구분할 수 있다.) 이들 기체의 공통점은 오리지널 DB 엔진을 구할 수 없어 다른 엔진을 사용했다는 것으로, Avia 199는 Fw 190 D도 장비했던 유모 계열 엔진을 사용하였으나 Ha-1112는 재미있게도 영국의 멀린 엔진을 장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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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초기형의 경우, 장갑판이 적게 배치되어 있어 의외로 시야각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G형부터는 시야각이 매우 갑갑하게 변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후기형은 칵핏 프레임을 바꾸었다.
  • [2] MG FF가 그리 쓸만한 기관포가 아니었던 것도 크다. 제로센 초기형의 '소변탄 문제'의 그 기관포가 MG FF와 동일한 설계이다... 하지만 Bf109가 사용한 기관포 탄약은 탄피가 제로센용 기관포의 그것보다 더 긴 물건이었다(바꿔 말하면 위력에 관한 한 독일 것이 일본 것보다 더 높았다는 이야기).(사실 원조버전에 가까운건 일본 쪽이다. 원래의 Oerlikon FF F는 20밀리 72구경장탄을 썼는데 독일군이 쓴 MG FF는 80구경장, 일본군이 쓴건 72구경장이다) 적어도 기관포탄의 궤도가 엉망진창이었다는 이야기는 Bf109에게서는 없었다.
  • [3] 참고로, G-홀수 s 의 경우 여압 장치가 기본 장착된 고공 요격기였고, G-짝수의 경우 홀수 버젼에서 여압 장치를 제거한 전투기 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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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9-21 17:5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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