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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A

last modified: 2015-04-14 16:48:02 by Contributors

이 항목은 본명권보아로도 검색해서도 들어올 수 있다.
대한민국가수.

gwonboa.jpg
[JPG image (66.47 KB)]
본명 권보아(權寶雅)
출생 1986년 11월 5일, 경기도 남양주시
본관 안동 권씨[1]
가족 부모님, 2남 1녀 중 막내.
신체 155-157cm[2], 45kg, AB형
데뷔 2000년 1집앨범 'ID : PEACE B'
소속 SM엔터테인먼트
종교 천주교(세례명: 끼아라)
링크 공식사이트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팬카페

Contents

1. 소개
2. 가수활동
2.1. 데뷔당시의 근황
2.2. 1집의 실패
2.3. 일본에서의 데뷔와 성공
2.4. 한국으로의 금의환향 그리고 전성기
2.5. 하락세의 시작, 미국진출과 일본활동
2.6. 현재
3. 음반사에서 차지하는 위치
3.1. 보아를 존경한다고 밝힌 가수들
4. 음반
5. 실력, 음악성
6. 보아에 관한 사건사고
6.1. 노래
7. SNS
8. 기타
9. 연기 활동


1. 소개

한국 최연소 가요대상,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최정상의 인기를 얻고 실력까지 인정받은 여솔로 댄스팝가수[3]

2000년 8월 25일 'SBS인기가요'에서 "ID : Peace B"로 국내에 데뷔했다.[4] 2001년에는 데뷔곡을 일본어로 번안해서 일본에 데뷔하였다. 2008년에는 "Eat You Up"으로 미국 본토에서 데뷔. 데뷔만 3번 한 여자다.

사실상 SM엔터테인먼트가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가장 큰 공로를 한 인물로, 그 공로 덕인지 회사 내에서도 거의 간부급의 위치에 있다.[5] 2014년 3월에는 강타와 함께 비등기 이사로 선임되었다.* 비단 SM엔터테인먼트만의 성장이 아닌, 한국인 가수의 본격적인 해외진출 성공에 한획을 긋고 최연소, 최초, 최다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등 한국 가요계의 역사을 쓴 인물이다. 강타가 무릎팍 도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수만이 가장 아끼는 인물이라고.

보컬과 댄스 모두 수준급인 사기캐. 대한민국에 얼마 안되는 키만 빼고 춤, 노래, 얼굴이 다 되는 솔로 여자 가수이다.

SM엔터테인먼트 안에서도 이수만 본인에게 캐스팅된 연예인은 얼마 없는데 그 중 1명이다.

특히 보아오디션SM내에 전설과 같이 구전되고 있는데, 보아의 데뷔는 잘 알려져있듯 오디션보러 간 둘째 오빠를 따라 갔다가 보아만 캐스팅 되었다는 흔한 얘기. 그러나 후에 자세한 이야기가 공개되었는데, 비보이인 둘째오빠가 참가한 백화점 댄스경연대회에서 무대에 올라 나이키를 하는 등 격한 춤을 추며 그 당시 연예기획사들로부터 명함을 15개가 넘게 받았고, 거기에 SM도 있었다. 그렇게 SM 오디션을 보러가서 오디션을 보게 되었는데 관계자들에게는 춤으로 캐스팅, 이수만에게는 노래로 캐스팅된 특이 케이스. SM오디션에서 보통 춤, 노래 한가지로만 캐스팅 되는데 반해 보아는 두 가지 모두로 캐스팅된 희귀한 사례.[6]

영어, 일본어, 한국어의 3개 국어를 한다. 데뷔 전부터 신비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모든 어린 소녀들을 뒤져 해외진출용 가수로 키워질 예정이었는데, 당시 보아를 발견하여 옳다구나 캐스팅 함. [7] 보아는 노래와 춤의 트레이닝 이전부터 일본어영어 등 언어 교습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고 한다. 본인이 자신에게 가장 대견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언어습득력. 해외활동이 길었을 때는 살짝 한국어 발음이 샜는데, 다시 교정함.

팬클럽 명칭은 JUMPING BoA(점핑보아). 세계로 도약하는 보아를 뜻한다고 한다. 팬클럽 이름이 채택된 데 2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는 보아가 직접 채택했다는 설. 두번째는 2000년 당시 팬클럽이름 공모가 있었을 때, 후보로 팬클럽 이름이 5가지 정도 있었다. 가장 많은 득표를하는 이름을 채택하겠다고 하여 점핑보아 말고도 예쁜 이름이 많이 있었으나 데뷔 전부터 시기와 질투로 무장된 백만안티대군이 예쁜 이름을 채택하지 못하도록 이상한 것들에 투표 몰빵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위기감을 느낀 보아팬들은 그나마 나은 점핑보아로 투표를 몰아주기 시작했으며 결국 팬클럽이름은 점핑보아가 되었다. 2설은 많은 늙고 충실한 보덕에 의해 전해지고 있으며 1설의 진위는(선후관계) 파악하기 어려우나 2가지 모두 정설인 것으로 보고 있다.[8]

일본의 팬클럽 명칭은 SOUL(소울). 2003년 공식적으로 출범되었으며 1년에 4번씩 꼬박꼬박 회지를 내주며 점핑보아와는 다르게 그나마(?) 팬클럽다운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얘네도 답없긴 매한가지

그 밖의 해외에도 많은 팬사이트들이 있긴하지만 공식적으로 팬클럽이 유료 운영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곳이다.

전성기가 지난지 10년이나 된 2015년 현재, 보아의 팬카페 회원수는 약 25만명으로, 현역으로 뛰고있는 소녀시대 팬카페 회원과 맞먹는다!! 그때당시 보아의 인기를 짐작할수 있는 점. #

2. 가수활동

2.1. 데뷔당시의 근황

데뷔당시에 SM 당시 소속가수인 H.O.T.S.E.S, 신화 등의 팬들이 많은 루머를 쏟아냈다. 이수만과 보아가 그렇고 그런 사이라서 이수만이 보아를 싸고 돌았다는 소문, 이수만이 보아를 잘 안 돌봤던 선배가수들, 즉 신화나 H.O.T. 멤버들을 폭행했고 심지어 다른 소속사 가수인 god까지도 폭행했다는 말도 안 되는 루머들이었다.[9]실제로 데뷔 전후로 피묻은 칼이나 난도질 된 곰인형 등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들 또래의 여자아이가 자신의 오빠들과 함께 한다는 모습이 질투를 불러온 듯 하다. 그리고 승승장구에서 보아 본인이 언급한 바에 의하면 그 당시에 H.O.T 해체설이 돌았는데, H.O.T 팬덤에서 'H.O.T는 푸대접하면서 저런 어린애한테 H.O.T가 벌어다 준 돈을 다 퍼붓는다'는 오해를 하고 보아의 안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팬들은 보아가 자살 안 한 게 용하다라고 할 정도.

이 때문에 데뷔하기 전부터(!) 많은 안티를 양산하게 되었다. 같은 소속사 가수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퍼졌을정도. 당시 PC통신망이나 인터넷 상 공개게시판에서 심심찮게 보아에 대한 루머나 비방을 볼 수 있었다. 여기의 루머나 비방을 믿고 보아를 싫어하는 일반인도 있었다. 사실 지나치게 어린 나이(만 13세)에 데뷔해서 '어린애가 가수질한다고 나왔다'는 것이 일반인에게 비호감이었던 원인. 문희준이 무뇌충으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비방의 대상이 된 것의 프로토 타입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이 때 쓰여진 보아의 안티 팬픽들이 유명하다. 심지어 보아의 안티 팬픽을 보고 성에 눈을 떴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아 안티 팬픽은 데뷔 당시, 보아의 안티들이 이수만과의 루머를 조직적으로 양산할 때 보아와 이수만이 등장하는 야설을 써서 유포한 것으로, 당시 어린이들이 멋모르고 클릭했다가 야설을 보며 놀라거나 흥미를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유명 안티 팬픽의 첫 구절인 "어느 날 XX님이 절 OO으로 부르셨어여..."는 현재까지도 종종 패러디되고 있다. 이 야설은 당시 모든 인터넷 게시판에 (심지어 쥬니어 네이버나 야후 꾸러기 같은 곳에도) 도배가 되었으며 이 때 유행한 만화나 게임의 팬페이지 개인홈피 방명록에도 이 야설은 도배가 되어 있었다. 제목도 기억하고 내용도 생생하나 너무 끔찍하기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10대 초반 소녀를 상대로 한 성적인 언어폭력, 악질적인 루머와 욕설은 분명히 도를 지나쳤고, 이후에도 안티로 비견될 자가 없으며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사실상 문희준 뿐이다. 2집 No.1 이후 전국적으로 뜨면서 "아시아의 별"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안티들을 오직 실력 하나로 잠재운 어마어마할 정도로 무시한 정신력의 여자다. 지금쯤 나이 먹고 이불킥 할 놈들 많을거다

2.2. 1집의 실패

그렇게 약 3년간의 고된 트레이닝과[10] 준비기간을 거쳐 2000년 8월 1집 ID:PEACE B를 발매하며 데뷔하게 된다.

보아의 데뷔는 SM에게는 대형 프로젝트 중 하나였는데, SM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해외진출의 초석으로 여기며 오랜 기간과 비용을 투자했기 떄문이었다. 실제로 각종 다큐멘터리에서 밝혀진 바로는 보아의 방학기간동안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보내며 현지 아나운서 집에서 홈스테이를 시켜 가며 일본어에 능숙해지도록 교육을 시켰다. 게다가 보아 1집은 김형석, 유영진, 방시혁, 김조한, 박진영 등 지금 들어도 거물급인 작곡가, 프로듀서진들이 대거 투입하여 만든 대형 프로젝트였다. 뮤직비디오도 쉬리강제규 감독이 참여하며 화제가 되었고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약 30억[11]이 보아의 데뷔에 들어간 비용이었다고.... 이 때문에 SM의 입장에서는 자사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기획물이었던 셈이었다.

하지만 ID:PEACE B는 난해한 곡 스타일과 유영진 특유의 괴상한 가사로 인해 거부감을 잔뜩 불러일으키며 실패하게 된다.[12] 설상가상으로 이 당시 H.O.T. 팬들을 비롯한 신화 등등 각종 보이그룹 팬들의 악성루머와 또래 연령층의 질투로 안티층을 대거 양산하는 결과를 낳고 만다. 지금이야 가요계 짬도 높아졌고 위상이나 실력 면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지만, 저 당시 보아는 대중적인 기반이 전혀 없는 쌩신인이었다. 당연히 안티들에게는 만만한 대상일수밖에 없었고 이 당시 공격은 지금 생각해보면 무시무시하였다.[13]

ID:PEACE B의 최고 성적은 공중파 2위, 당시 1위는 핑클의 NOW였었다. 판매량은 15만장으로 신인 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당대 최고의 아이돌을 내세우며 가요계를 폭격하다시피 한 SM의 대형 신인으로는 누가봐도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다.

이후 2001년 3월에 1.5집인 Jumping into the new World - Don't Start Now를 스페셜 앨범으로 발매하고 활동하지만 그다지 큰 호응은 얻지 못하고 조기에 활동을 끝낸 후, 바로 일본 데뷔 준비를 하게 된다. 사실 이 앨범으로 큰 반응 자체를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보아가 세계무대로 활동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보여준 앨범으로 실제 앨범 수록곡은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구성되어 있다.

2.3. 일본에서의 데뷔와 성공

보아의 일본데뷔는 앞서 기술한대로 SM의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SM은 과거 S.E.S.의 실패 노하우를 분석해 보아의 데뷔를 준비한다. 음반시장에서 지원여력이 충분한 에이벡스와 계약을 하고 쇼케이스를 하며 데뷔를 준비해나가게 된다. 덧붙여 에이벡스의 소속가수만 당시에 200팀이 넘었다. 이 중에 스타급은 상위 10% 정도밖에 없었으며 '대형 음반사'와 계약한 것만으로 성공을 가늠할 수 없었다.

에이벡스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에 능통하고 춤과 노래가 완벽한 천재여가수'라는 홍보전략을 세우고 보아를 홍보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2번째 싱글인 Amazing Kiss까지는 큰 반응이 오지 않았고, 이때 보아도 향수병에 걸려 벽을 보며 대화하고, 무척 외로워했다고 한다. 스케줄도 없어 매일 연습만 했다고 하는데, 특히 이후 독감에 걸려 30kg대까지 빠지며 입원을 하게 되어 잡혀있던 스케줄도 취소되고 울어도 달라지는게 없다고 하여 독하게 마음먹고 재즈댄스를 배운다.[14]이 때 아파서 활동을 못하였을 때 싱글 하나가 엎어졌다고 하며[15] 공백기가 길어지자 일본활동이 망한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으나 이때 보아는 재즈댄스를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회심의 재즈댄스를 익혀 발매한 '기모치와 츠타와루'[16]부터 점차 반응을 얻어오기 시작한다. 이 당시 아직 1집앨범도 안낸 신인가수였지만 NHK가 주관하는 슈퍼 드림 라이브에 초청되 라이브할 수 있는 기회를 따내게 된다. 보아는 여기서 자신의 노래를 올라이브로 격렬한 댄스와 함께 소화해내며 시청자들의 반응을 얻어냈다. 당시 방영후 NHK예능국에 '저 가수 누구냐?'라는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고 하니 그 반응은 어느정도인지 짐작하리라 본다.

이후 LISTEN TO MY HEART가 예상치 못한 호응을 얻어내며 인기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노래 악곡 자체는 당시 유행하던 J-POP흐름에 반하는 R&B느낌이 강한 댄스팝이었지만 매력적인 멜로디와 곡전개, 곡을 능숙히 소화해내는 보아의 보컬등으로 히트를 치게 된다. LISTEN TO MY HEART는 과장조금 보태 일본 블랙뮤직의 판도를 바꾼 노래 라고 평한 평론가도 있을만큼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모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좋은 평가를 받아낸다. 이 당시 보아는 한국 2집 No.1의 발매준비를 위해 한국에 있었으나 일본에서 LISTEN TO MY HEART가 오리콘 데일리 차트 3위에 올라간 덕분에 빨리 일본으로 돌아오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리고 발매된 정규 1집인 동명의 LISTEN TO MY HEART 앨범역시 90주가 넘게 차트인을 하며 무시무시한 롱런을 보여주며 밀리언에 준하는 판매량을 얻어내 대브레이크를 시작한다. 사실 판매량 인증으로는 100만장 인증이었지만 오리콘 차트가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판매량 집계를 100위까지만 했었기 때문에[17] 오리콘 기준에선 90만장 선. 한국에서는 출시 당일 1위 소식이 공중파 9시 뉴스에 보도되었다.

보아의 성공배경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중요한건 SPEED 이후 암전이었던 '춤과 노래에 능한 소녀가수'컨셉의 빈틈을 보아가 적절히 파고들었다는데 있다.[18][19] 사실 SPEED 이후로 Folder5나 Earth같은 비슷한컨셉의 걸그룹들도 많이 나왔지만 이렇다한 인상을 못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그 빈자리를 적절히 메꿔놓았다는 평.

2.4. 한국으로의 금의환향 그리고 전성기

일본진출 당시만해도 '한국에서도 성공못한 아이가 일본에서 어떻게 성공하냐'며 반신반의하던 대중들은 보아의 성공에 모두 놀라게 되었다. 보아의 경제적 가치를 분석하는 뉴스자료가 연일 쏟아지기 시작하였고, 중고등학교뻘 되는 나이에 9시뉴스 대담에 초청되어 생방송 인터뷰를 하는 등 일본에서 성공한 뒤 보아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어마어마하였다.

그리고 2002년 4월 한국에서 2집 No.1을 발매하게 된다. 신나는 비트와 파워풀한 댄스는 한국 대중들에게도 크게 먹혔고 보아에게 '우리 오빠를 넘보는 나쁜X'정도의 시선을 보이던 또래층 역시 팬층으로 흡수해내며 한국에서도 히트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그해 8월 여름에 걸맞는 댄스곡 Valenti를 발매하게 되는데 보아 최고의 히트곡이 된다. 일본에서 아직도 보아하면 '타이토나 진즈니~'를 부르며 등장함 그리고 그 해 처음으로 에이네이션[20]에 메인게스트로 올라서며 전국을 순회하게 된다.

이후 일본에서는 기적, Jewel Song같은 노래를 발매하고 모두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안정적인 인기궤도에 오른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일본에서의 히트곡들을 번안한 2.5집 Miracle 앨범을 발매하고 기적, Valenti등의 노래로 활동하며 3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그러나 원곡에 비해 한없이 다운그레이드 된 코러스와 일본가사를 그대로 직역해놓은 한국정서에 전혀 안맞는 난해한 가사등으로 혹평받았다. 심지어 Valenti는 원곡의 후반부 애드리브를 절반가량 덜어내며 혹평받기도. 보아의 번안곡들은 이런식으로 애드리브나 미세한 사운드가 빠진 경우가 많다.

이 해 2002년 한국에서 2장의 앨범을 발매하여 한국에서 총판 90만장을 넘게 기록하였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인해 넘버원으로 길게 활동하지 못했음에도 대히트하게 된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한일 양국을 잇는 문화 전도사라는 이미지와 함께 프랑스의 르몽드지에 기사가 실리기도, 그리고 일본에서는 그 해 연말 NHK에서 주관하는 최고의 가요프로그램 홍백가합전에 첫 출전하는 영광을 얻고 한국에서 역대 최연소 나이로 가요대상을 타내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2003년 1월에는 일본에서 2집앨범 VALENTI를 발매하게 된다. 이 음반은 높은 퀄리티와 구성력으로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 모두 좋은 호응을 얻어내고 발매 당일 출하량 100만 돌파, 총판 12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넘기며 매우 히트하게 된다. 앨범발매 후 처음 치룬 자신의 첫 일본투어 콘서트는 본래 4회 예정이었으나 호응이 좋아 2회 더 연장하고 매진. 일본의 전총리인 모리총리까지 보러 오는 등의 성공을 거둬 한국에서도 보도되었다.

같은 해 한국에서도 3집 앨범 Atlantis Princess를 발매한다. 멜빵바지와 고글 안경을 쓴 코디가 화제가 되기도 한 이 앨범은 30만장을 넘기며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상대적으로 빈약한 수록곡 퀄리티와 앨범 구성 때문에 혹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 때 보아는 직접 9월쯤에 한국에서도 콘서트를 열겠다고 하였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콘서트는 2013년도에 처음 열림.

일본에서는 Shine We are/Earthsong 을 발매하였다. 이 싱글은 보아의 첫 오리콘 차트 싱글 데일리 차트 1위를 획득한 곡으로 일본 한국에서 모두 화제가 되었다. 위클리에선 2위를 하였지만 SM측에선 그냥 데일리 1위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또한 이 시기 혼다기업 전체의 이미지 모델을 맡았는데, 우리로 치면 외국인으로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중인 f(x)빅토리아나 뭐 이런 가수가 삼성이나 LG기업의 이미지 모델을 했다고 생각하면 맞을 듯 하다. 이 인연으로 보아 첫 아레나투어 오프닝에 자사 개발 로봇인 시모가 등장하기도 하였고,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었다.

이후 한일양국에서 DOUBLE을 동시 발매하게 된다. 당시 에이벡스 사장은 "에이벡스 최고의 악곡을 보아가 부를 수 있게 하였다."며 이 노래가 히트할것을 확신하였지만[21] 판매량은 8만장대에 준하는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 여담으로 작게나마 브리트니 노래 'Let me be'와 표절 시비가 있었다.

그래도 연말정산에서 에이벡스 자사 연예인들중 하마사키 아유미 다음으로 높은 수익을 거두고 홍백가합전에도 2회 연속 초청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에이벡스내 뿐만 아니라 전체 일본 여가수 수익 2위를 기록. 그냥 에이벡스가 다 해먹었다. 또한 보아는 일본 연말 가요제에 출연하느라 한국 연말 가요제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헬기를 타고 이동하려는 계획도 있었으나 국가간 헬기 이동은 무리였는지 취소됨.

2004년 1월에는 Love & Honesty앨범을 발매하고 정규앨범을 3연속 차트 1위에 올리며 인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렇다할 히트싱글이 나오지 못하면서 판매량이 감소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판매량도 65만장대로 전작의 절반에 준하는 성적을 거두었다.

이 시기 처음으로 아레나투어를 시작한다. 5회예정이었던던 투어규모는 4회 연장해서 9회정도 공연을 하고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말이 다른 가수들의 아레나 투어와 비교할때 한참 모자른 투어 규모라던가.[22] 비슷한 인기대의 다른가수들이 보아보다 적은 규모의 투어를 진행하는 모습과 대비되 '무리하게 투어를 돌리는거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었다. 일례로 보아와 판매량과 인기가 비슷했던 나카시마 미카의 당시 콘서트를 봐보면 규모가 상당히 작다. 소규모 무대에서 별다른 퍼포먼스없이 보컬 위주로 진행.

그래도 콘서트 질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콘서트 내내 대부분의 노래를 라이브로 격렬한 춤과 함께 소화하는 모습 또한 호평받았으며, 특히 시각적으로 뛰어난 효과와 함께 혼다 개발 로봇인 '아시모'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그해 6월 자신의 4집 앨범 My Name을 발매하고 활동에 돌입한다. 이 시기 유명한 인물로 옆에서 같이 백업댄서를 맡은 가희가 있다.[23]미모의 백댄서로 당시 화제가 되었었다. 4집 앨범은 이전과 다른 파워풀한 컨셉과 강렬한 안무등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일본 유명 클럽을 대여해 찍었던것도 화제였고 이전까지 틴팝위주의 부드러운 멜로디의 노래만 부르던 모습과 대비되 어반알앤비풍의 세련된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강렬한 색조화장을 한 보아의 모습은 그 당시 큰 충격으로 각인되었다. 4집의 이미지변신은 큰 성과를 거두어 이후 보아의 한국활동에 중요한 기점으로 작용하게 된다.[24] 2003년엔 이효리에 밀려 여가수 선호도 조사에서 2위를 했던 보아가 이 시기엔 1위로 치고나왔다.
이 시기 남희석의 사회로 진행된 팬미팅에서 올해 한국 콘서트 계획이 있다고 했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이후 일본에서는 Quincy를 발매하고 그럭저럭 중박에 준한 성적을 거두고 그 해 10월 메리크리를 발매. VALENTI이후 자신의 대표 히트곡을 만들며 화제가 된다. 메리크리는 시즌겨냥송으로 당시 쟁쟁한 가수들과 함께 발매되었지만[25] 연말 공연 버프까지 받으며 꾸준히 차트에서 롱런, 히트하게 된다. 결국 초동의 3배 이상을 팔게 되고 선행싱글이었던 메리크리의 인기는 이후 발매된 베스트 앨범의 밀리언 버프를 더한다.

05년도 초에는 자신의 첫 베스트앨범인 BEST OF SOUL을 발매하고 100만장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하며 히트한다. 이후 발매한 DO THE MOTION도 위클리 차트 1위를 기록하며 수록곡 모두 FASIO, 립톤, KDDI같은 유명 회사제품들에 타이업 되며 좋은 판매량을 보였다.

한국에서는 5집 Girls On Top을 발매. 초창기 난해한 가사와 컨셉때문에 혹평을 받았지만 무대위에서 보여준 강렬한 퍼포먼스와 뛰어난 안무실력등을 뽐내며 후속곡 MOTO까지 모두 좋은 반응을 얻으며 히트한다. 전작 My Name보다는 대중의 반응이 약했지만 댄서의 등에 올라타는 춤이 화제를 모았고 보아가 하고 나왔던 울프컷 헤어스타일이 여자 중,고생들에게 대히트를 쳤다. 2005년~2006년 졸업 앨범을 봐보자 한 반에 5명 이상은 그 머리다.(...) 그리고 연말 엠넷 시상식인 MKMF에서 뛰어난 공연을 선보이며 화제가 되었다.

2.5. 하락세의 시작, 미국진출과 일본활동

사실 일본에서는 2집 Valenti을 기점으로 판매량이 조금씩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왔었다. 물론 메리크리같은 시즌히트송도 나오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Valenti~베스트앨범을 발매한 뒤로는 인기가 한풀 꺾였다는 반응들이 나오기 시작. Make a Secret부터는 5만장대 판매량으로 떨어지며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이전에도 보아 렌탈수치는 높은편이었지만[26] 판매량이 급감한건 인기가 하락했다는 요인으로밖에는 해석할 방법이 없기 때문. 이후 다키시메루도 비슷한 판매량을 보이며 조금씩 하락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Make a secret의 기대도나 렌탈수치때문에 노래 자체 인기가 좋았다는 말도 있지만, 기대도는 1위를 한건 맞지만 2위였던 w-inds의 싱글과 거의 차이가 없을정도로 근소하였고,[27] 렌탈차트 자체는 말그대로 대여 순위인데 사실 진짜 곡자체에 매력을 느낀다면 렌탈을 하는게 아니라 CD자체를 구매하는게 맞다.

보아의 하락세 요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2집 이후 입지가 높아진 상황에서 한국활동과 병행하면서 확실히 일본에서 자리매김할 타이밍을 놓친것이 제일 크다. 실제로 Shine We are!발매 까지 거의 반년 가까이 신보가 없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기존에 보아에게 호감을 가지던 대중들은 '춤과 노래에 능한 당찬 외국인 소녀'이미지에 호감을 느꼈는데 사실상 2집 이후부턴 일본어도 능숙해지고 나이도 점점 먹어가면서 이런 메리트가 줄어들었던것도 요인. 이후로 Quincy나 Do the motion에서 성숙한 이미지를 보여주며 나름대로 이미지 변신을 꾀했지만 크게 먹혀들지 못했던 것도 원인.

그러나 전성기 이후로 음반판매량이 급감한 배경은 역시 코어팬이 적은게 가장 큰 이유. 하마사키 아유미같이 강력한 코어팬층을 가진 가수들은 전성기가 지나도 확고한 고정팬들 덕분에 대중들에게는 한물간 가수처럼 취급되어도 계속 코어팬중심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은데 보아는 대세가수였던건 맞지만 전성기 시절에도 인기에 비해 코어팬은 적은편이었다. 보아의 일본내 이미지는 건강하고 밝은 천재 외국인 소녀가수 이미지 정도일뿐 아무로 나미에다쿠미처럼 패셔니스타, 여성워너비 이미지는 아니었기에 코어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따라서 베스트 이후 코어팬을 잡을 컨셉과 노선을 확실히 했어야 하는데, 보아가 가장 잘하고 자신있어하는 보이시하고 파워풀한 모습은 결정적으로 일본에서 반기지 않는 컨셉이었다. 한국에서의 마이네임 걸스온탑 등의 여덕몰이를 한 컨셉을 일본팬들이 보고 기절초풍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반응이 좋았던 Lose Your Mind, Sweet Impact 등의 컨셉은 일본에서 먹히지 않았다. 애초에 베스트 이전 보아의 트레이드 마크는 5:5 긴생머리 였고, 보아의 최전성기 시절 이를 따라하는 10대, 20대 여성 또한 많았기 때문에 보아의 숏컷, 단발머리 컨셉에는 거부감을 보였다.남팬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고

한국에서의 활동은 사실상 5집 이후 5년동안 끊겼기때문에 하락세라고 하기도 뭐하다. 나중에 SM이 회사차원에서 보아는 미국활동 준비를 해왔다고 했으나 [28] 보아의 한국활동은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고 봐도 좋을정도. 이후로 애니밴드같은 프로젝트성 활동에 참여도 하였지만 대부분 단발성 프로젝트나 OST 몇 곡 부르는 정도에 그쳤고 예전만큼 왕성한 방송활동은 보여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당시 보아도 한국에서의 무대와 팬들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특히 07년도 제주 한류엑스포 공연에서 한국에서의 무대에 굶주려 있었다고 본인이 입으로 직접말하는 것을 보고 팬들도 같이 오열. 이 때만해도 공백이 5년이나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2007년 즈음 SM과의 계약이 마무리되어 엠넷미디어 등 다른 기획사에서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으나 쿨하게 SM과 재계약했다.


08년도말 데뷔싱글 Eat You Up을 발매하고 미국진출을 시작한다. 뮤직비디오를 내수용, 미국용으로 나눠서 찍었는데 위가 내수용이고 아래가 미국용이다. 보면 알겠지만 나름대로 기존 팬들 정서에 맞고 무리한 연출이 없는 내수용에 비해 난해한 연출과 저렴한 CG(...), 그리고 댄스브레이크 부분에서 꼭 동네 꼬마애가 낙서해놓은듯한 뒷배경등 여러모로 싼티나는 연출로 인해 혹평을 받았다.[29]

미국 1집은 한국인 최초 메인 앨범 차트에서 127위를 기록. 동양인 치고 어느정도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성공이라고 보기 힘든 수준. 아시아 톱가수로 성장한 보아가 미국에서 3번째 데뷔를 하며 불합리한 스케줄 (비행기에 탑승해서 가고 있는데 현지 스케줄이 취소됨. 그러나 미리 알려주지 않음 등등)을 소화. 일본진출 때와는 달리 자아가 이미 형성된 상황에서의 해외진출은 또 다른것이었기에 여러모로 힘든 경험을 해야했다. 3번째 싱글인 Energetic으로 레이디가가가 섰던 무대인 SF프라이드(San Francisco Pride) 무대에 서고 차트에서도 반응이 슬슬 오던 중. SM은 동방신기의 소송문제에 휘말리게 된다. 이에 보아를 미국 진출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프로듀서로서 케어하던 이수만이 헐레벌떡 급거 귀국. 보아의 모든 미국활동은 올스탑. 무려 5년을 투자한 모든 계획이 엎어지게 된다. 미국에서 지역가수들은 투어를 하면서 점점 관객을 모으고 지역을 기반으로 인기를 모으며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데, 보아도 이와 같은 프로모션이 일환으로 전미투어를 계획하고 있었다. 각종 인터뷰와 언론매체에서 전미투어 소식을 알렸고 이것은 미국활동에서의 가장 큰 핵심 활동계획이었으나 투어계획 발표 2달도 안되어 소송이 터짐. 이런 상황속에서 보아의 미국활동을 더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고 본인을 케어하거나 홍보를 할 여력도 없었으며 이렇다할 활동도 없이 다시 아시아시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비록 상업적으로 실패하였지만 보아는 후에 자기 입장에서는 더 넓은 시장도 경험하고 음악적 성장에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고 인터뷰하기도 하였다.[30]

2.6. 현재

일본에서의 인기는 이미 전성기도 충분히 겪어보았고 본인도 음악적 성장에 보다 주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사실상 라이브 활동에 주력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대중적인 노출도 심하게 줄어들었고 BoA The Live같은 소규모 라이브 활동에 집중하는 편.

일본에서의 현재 취급은 '추억의 가수'. 이 한단어로 요약된다. 인지도는 한 때 대세 여가수였던 만큼 높고 두고두고 회자되는 히트곡도 몇 개 있지만 현역수준으로 활발히 소비되지는 않고 트렌드에 한참 못미치는 가수정도. 근래에는 미디어 노출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있다. 싱글을 내면 심야음방, 라디오 1회~2회 정도 출연에 그치고 있다. 인지도는 여전히 높지만 일본대중에게 '보아는 요즘 뭐해?' '보아는 이제 활동하지 않는가?' '추억의 가수'로 간간히 회자되고 있다.

겨울마다 04년에 발매한 '메리크리'가 매년 크리스마스송의 각종 차트에 들며 11월부터 음반차트와 음원차트 역주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시간이 갈 수록 일본의 국민 크리스마스 명곡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듯. 최근 높은 인기에 힘입어 메리크리 발매 10주년이라며 깜짝 CM을 깜짝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의 음악활동은 2011년 12월 일본데뷔 10주년 기념 싱글 1탄[31] 인 'Milestone'을 낸 이후 2년 동안 활동이 전무하였다. 그야말로 암전. 그리고 이 때의 엠스테 출연이 마지막. 보아역시 음방이 막히게 되었다. 2년의 공백기에는 K팝스타의 심사위원 때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고, 보아 본인이 시즌2를 마지막으로 하차할 때, 더 이상 가수로서의 활동을 미룰 수 없어서 라는 말을 하였다. 이후 2013년 2월 일본에서 한국 7집인 Only One을 번안한 싱글로 활동재개. 4~5개월에 한장씩 싱글이 나오며 음악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2014년 9월 마침내 4년만에 일본 정규 8집 WHO`S BACK?[32]을 내며 같은 달 4년 반만에 전국투어 콘서트를 개최. 콘서트 좌석을 매진시키며 전문가들로부터 공연 구성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동일 콘서트에서 부른 자작곡 'FLY'를 12월에 발매하여 일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에서의 활동은 그래도 간간히 노래 내주면 음원차트 상위권에도 들고 어느정도 화제가 되는 수준. 6집 허리케인 비너스를 발매할때는 5년만에 컴백이라고 하며 컨셉사진이나 뮤직비디오 공개가 검색어 상위권에도 오르고 수록곡들이 전부 차트에도 드는 등 화제가 되었으며 여성 솔로로 그해 음반 판매량 1위를 기록하였다.[33] 곡 자체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그래도 퍼포먼스는 역시 믿고 보는 보아정도의 반응을 얻으며 화제. 하지만 허리케인 비너스의 컨셉이 기대한 것과는 달리 너무나도 난해하여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34]이후 2012년 여름엔 본인 작사 작곡의 자작곡 미디움템포 댄스곡인 Only One이 공개후 전음원차트 올킬, 전문가들에게 높은 평을 얻었으나,[35] 같은 시기 싸이강남스타일런던올림픽, 티아라의 왕따사건이 터지면서 묻힌 감이 있다. 팬들이나 대중들이나 이노래는 봄이나 가을에 나왔으면 대박이 터졌을거라며 아쉬워 함.[36] 가수로서의 전환점이 된 노래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의미 있는곡.

2011년도에는 K팝 스타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출연하였다. 10년 넘게 갈고닦은 내공과 오랜 무대경험, 연예계 짬밥을 바탕으로 양현석, 박진영같은 대선배들 사이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내뱉는 심사평이 큰 호응을 얻었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지나치게 과잉된 심사평이나 심하게 주관적이다 싶은 심사평으로 논란이 되는것과는 달리 실력 위주의 냉철한 심사, 참가자의 장단점을 정확히 지적하는 심사, 멘토를 맡을때 참가자의 단점을 확실히 고치는 모습등으로 큰 호평을 얻었다. 또한 그동안 미디어 노출이 극히 적었기 때문에 보아가 어떻게 생겼는지 처음 알았다는 평이 대다수. K팝스타로 입덕한 신생팬도 많다고 한다. 이후 시즌2에도 심사위원 자격으로 출연하고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더 이상 가수활동을 미룰 수 없다며 시즌3부터는 불참. 그 자리는 안테나 뮤직유희열이 대신해 심사를 하고 있다.[37]

2013년도 1월에 한국에서의 첫 단독콘서트BoA Special Live 2013 Here I am을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개최. 13년 만에 한국에서 콘서트를 진행해 수많은 팬들이 환호. 그동안 일본에서의 콘서트를 보며 부러워 끙끙대는 한을 드디어 풀게 되었다. 티켓팅이 열리고 약 30초만에 매진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1회 예정이던 콘서트가 1회 추가 공연이 결정되었고, 그 추가공연도 1분만에 전석매진. 이렇게 열성적인 모습을 보인 탓인지 결국 전국투어가 결정되었고, 대만 콘서트까지 진행되었다. 콘서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으며 이 때 팬들을 위한 자작곡인 '그런 너'가 공개 'Only One'의 전 이야기로 팬들이 무척 아끼는 곡이 되었다.

보아 본인은 일본과 한국 둘다 갈데까지 올라가 보았기 때문에 별 미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음악 활동도 국내에서는 Only One 이후로 방송활동도 뜸해지고 K팝스타와 같은 멘토성 활동에 중심을 두는것을 보면 가요계의 원로로서 대우받는쪽을 더 원하는 듯 하다.

3. 음반사에서 차지하는 위치

매니지먼트 회사가 거액을 투자해서 이윤을 뽑는 형태의 투자양상으로는 굉장히 이례적으로 꼽히기 때문에 이후 관련 업계에서는 두고두고 벤치마킹 되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특히나 요즘 아이돌 시장에서 흔한 '연습생 이후 데뷔'의 사실상 모범사례나 다름 없기 때문에 보아의 성공은 이후 데뷔하는 가수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연습생 문화의 초석을 다져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전에도 연습생 시스템은 존재하였지만 대형기획사가 아닌이상 대부분 주먹구구식이었으며[38] 시스템을 갖춰놓아도 지금만큼 치밀한 육성시스템을 가지지는 않았다. 보아만 하더라도 연습실 환경이 낙후되서 거울도 없이 댄스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할정도니..

후배 가수들. 특히 아이돌 가수들에게는 그야말로 우상이나 다름없는 존재.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에 큰 성공을 겪었고 무엇보다 실력면에서는 자타공인 댄스여가수 탑이기 때문에 존경하는 가수들이 많다. 실제로 후배가수들이 트리뷰트형식으로 과거 보아의 노래를 커버하는 경우도 더러 있기도 하고.

3.1. 보아를 존경한다고 밝힌 가수들

티파니 - 데뷔전부터 보아팬이었던걸로 유명. 이외 다른 소녀시대 멤버들도 존경하는 선배로 보아를 뽑는다
다미 - 호주 엑스펙터의 2013년도 우승자. 보아를 존경해 가수의 꿈을 키워왔다고 밝힌적이 있다.
윤하 - 별밤에서 Only one을 틀어놓고 보아 선배님 나와달라고 줄창 외쳤다가 보아가 정말로 출연하자 아침부터 꽃단장을 하고 나왔다. 자칭 '성공한 보아 덕후'(...)
루나 - 보아를 롤모델로 삼아서 가수가 된 케이스.
백아연 - K팝스타에서 보아의 팬이자 롤모델이라고 밝힘.
아이린 - 이쪽도 보아의 팬이자 롤모델로 보아처럼 춤, 노래, 랩을 잘하는 팔방미인이 되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힘.
- 실제 점핑보아 멤버였으며 보아의 팬임을 자주 언급했다.
도희 - 인터뷰에서 보아를 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인터뷰에서 밝힘.
이후 다른 연예인들이 있으면 후에 추가 바람.
샤넌 - 5dolls 멤버였으나 보아처럼 되고싶다는 뜻을 밝히고 팀을 탈퇴
다솜 - 이쪽은 보아의 광팬이다.
한선화 -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 무대를 보고 가수가 되고 싶다고 결심.
원더걸스소희, 혜림, 선미 - 어린 시절에 보아를 보고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4. 음반

앨범 발매의 상세한 내용은 BoA/음반 목록 참고.

5. 실력, 음악성

솔로 댄스 여가수 중에서는 최상위권의 실력을 자랑한다. 특히 보아 정도의 퍼포먼스를 라이브로 소화할 수 있는 가수는 정말 몇 없다. 댄스곡 위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단순한 댄스 가수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순수한 가창력만 따져도 동급의 가수들과 비교해 뛰어난 수준이다. 애초에 일본에서 뜨게된 계기가 이만큼 춤과 노래를 동시에 소화해내는 어린 여가수가 역대 J-POP 역사상 없었던 탓.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LISTEN TO MY HEART 활동 시절 일본의 반응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보러 미국에 갈 필요가 없다!'였을 정도였다. 워낙 라이브를 쉽게 해 내기도 하고, 고친 창법의 특성 탓에 노래가 굉장히 부르기 쉬워보이게 들리는 탓도 있다. 노래방에서 부르려면 목에서 피 토하기 딱 좋다. 댄스곡이건 발라드건 3옥타브 파~솔 정도 찍는 건 꽤 흔하다. 물론 고음이 가창력의 척도는 아니지만.

보이스 컬러는 여성 치고는 상당히 허스키한 편. 데뷔 당시의 1집 앨범과 최근의 앨범을 들어보면 목소리가 꽤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데뷔 당시에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목소리에서부터 어린 티가 팍팍나고 미성과 탁성의 중간에 있었던 느낌이라면 2003년 이후론 탁성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보아 특유의 창법은 많은 사람들에게 호불호를 가르게 하였다. 탁하고 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감정 표현에는 적격이지만 너무 답답하게 들리고 가사전달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 이 것은 고음을 낼 때 목에 무리가 갈 수 밖에 없는 창법이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보면 가수 생명에 지장이 올 수도 있었다.

본인도 이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지 2008년 즈음에 박선주에게 집중적인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이 탁성을 싹 고쳤다(!). 연습생 시절을 포함하여 10년 가까이 그렇게 부른 것을 바꾼다는 건 보통 노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지금은 그 전에 비해 상당히 깨끗하고 청아한 보컬을 가지게되었다.

하지만 그 전의 탁한 창법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탁성이 포인트였던 발라드들[39]을 너무 간드러지게 부르게 되었다는 것. 또한 이 맑은 음색으로는 노래들이 그 전처럼 파워풀하게 들리지 않고 너무 가볍게 들린다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비음이 심해졌다는 평도 상당수이다.

예전의 보아 노래와 현재의 보아 노래가 많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 곡 스타일이 달라져서도 있겠지만, 창법의 변화도 한 몫한다.

한일 양국에서 최고의 클래스라고 평가되지만, 일본에서는 고정팬이나 열성팬보다는 노래나 이미지를 좋아하는 정도의 라이트 팬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노래가 듣기 나쁘거나 홍보가 안되면 오리콘 차트 순위가 낮은 안습의 결과[40]가 나타나곤 한다.

2001년 일본 정규 1집의 밀리언셀러를 시작으로 2002년 발렌티, 2004년 겨울에 발매한 싱글 메리크리와 2005년의 베스트 앨범까지 말그대로 대박. 아레나 투어 콘서트를 열고 가수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특히나 2004년 발표한 메리크리는 발표한지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겨울이 되면 일본 음원차트, 벨소리차트 등에서 상위권(10위정도)에 오르는 등 고정팬이 아니더라도 많은 일본인들이 사랑하는 곡이 되었다. 팬들 사이에서는 괴물크리, 곱등크리, 연금크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후 7집 IDENTITY 는 보아의 자작곡이 4곡, 작사곡은 6곡으로 총 앨범 수록곡 13곡의 반 정도를 셀프 프로듀싱하여 본인의 음악적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낸 앨범으로 대중적 인기에는 실패했지만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현재 일본에서 보아가 주력으로 밀기 시작한 장르는 R&B인데 한국에서 낸 6집 앨범은 일렉트로닉 댄스다. 한국에서의 이미지나 트렌드가 있으니 어쩔 수 없었던 듯. 그래도 한국 7집 Only one은 미디움템포의 곡이었고, 이 곡이 음원 차트 등에서 상당히 선방하면서 한국에서의 음악적 노선을 조금씩 변경해나갈 가능성이 생겼다.

2008년에는 미국에 진출. Energetic, I did it for Love, Eat you up이라는 곡으로 활동했다. 큰 성공은 없었지만 앨범 기준으로 한국인 최초의 빌보드 메인 순위 진입이었다.

영화 메이크 유어 무브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어 2011년에 촬영해 이듬해 개봉한다고 했지만 밀리고 밀려서 2014년에 개봉했다.

인터뷰에서 여러번 말했지만 2007년이 본인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고 가수 생활을 그만두려고까지 생각했다고 하는데 2008년 미국 진출이 그런 회의감을 없애는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전미 투어까지 준비하고 지방 라디오 활동부터 시작해서 밑바닥부터 천천히 올라갈듯 했던 미국 활동이 흐지부지하게 끝난 이유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동방신기-JYJ사건으로 틀어진 SM과 AVEX의 관계가 작용했을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게다가 이 때 JYJ사건 때문에 이수만이 미국 진출한 보아 도와주다가 다 집어치우고 한국으로 달려오기도 했으니... 실제로 보아도 미국 투어가 잡혀있었으나 투어가 갑자기 취소되고 AVEX에서 하는 A-NATION 에 강제 참여하게 되었다. 2007년에도 참여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스케줄에도 없는 갑자스런 참여가 여러 의혹을 낳고 있다. 보아가 인터뷰에서도 일본 기획사 몰래 미국 진출을 하느라 한국에서 활동하는 시간까지 줄였다고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일본 기획사가 보아의 미국 진출을 싫어했다는건 확실한 사실이다.

싱글 조차 내지 않고 월드스타 언플을 하는 다른 가수와는 달리[41] 정규 앨범 발매 후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 메인차트 중 하나인 빌보드 200에 125위로 진입하며 미국 투어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일본에 와서 작년에도 안나갔던 a-nation에 나와서 노래를 하고 있다거나 소리 소문도 없이 일본에서 싱글과 베스트앨범이 나오는 등 팬들에게는 여러가지로 의문이 많았던 미국 활동의 결말이었다.

원더걸스가 HOT 100에 진입한 직후 한국인 최초 메인차트 진입이라고 언플을 한 탓인지 보아도 빌보드 메인차트에 진입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원더걸스가 진입한 빌보드 HOT 100 의 경우 싱글 차트, 보아가 진입한 빌보드 200은 앨범 차트로 둘 다 메인차트가 맞다. 그리고 보아가 먼저 빌보드 200에 진입했으니 한국인 최초 메인차트 진입은 보아가 맞다. 박진영은 SM가수 팬들의 원수

어쨌거나 2013년 개봉 예정인 헐리우드 영화 메이크 유어 무브의 아시아 쪽 배급을 SM과 극적으로 화해한 CJ가 맡게 되어 미국 활동의 또다른 가능성이 열렸다. 미국 쪽 배급사는 영화 쥬만지 등을 배급했던 회사.

2011년에 메이크 유어 무브 촬영으로 미국에 가있느라 일본에서 음반을 안 내면서 휴식기를 가지다가 2011년 12월 DVD 싱글 "Milestone"으로 일본 활동을 재개했는데 아이튠즈 순위가 7년전에 발매한 메리크리와 20위에서 투닥거리며 다투다 결국 Milestone 은 70위권 밖으로 밀려났고 메리크리는 여러 신곡들을 제치고 7위를 기록하며 대 이변을 기록했다. 메리크리가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같은 해에 나온 신곡들이랑 벨소리 순위 같은 곳에서 경쟁하던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이건 뭐... 괜히 괴물크리가 아니다 본격 겨울판 벚꽃엔딩



6. 보아에 관한 사건사고

  • 구설수에 오른 경우는 거의 없다. 큰 화제가 있었던 경우가 있다면 2005년 일본 현지 스타일 리스트와의 열애설과, 2007년 god의 멤버 데니안과의 열애설이 있다.

  • 일본인 스타일리스트와의 열애설은 일본의 유명 파파라치 잡지인 프라이데이에서 스타일 리스트와의 밀애 장면 사진을 찍어 공개한 사건이다. 모자와 마스크 등으로 최대한 감추고 거리, 자동차 안 등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사진들이 공개되자 일본을 비롯해 한국에서도 큰 화제를 모으게 된다. 보아는 공식 홈페이지에 열애설은 사실 무근이라는 글로 심경을 밝혔으며, 이 열애설로 인해 정규 5집 앨범의 발매가 앞당겨지게 된다.

  • 데니안의 경우 2007년 해커가 보아의 알려지지 않은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해킹해 데니안과 함께 찍은 사진을 유출하겠다 협박하였고, 데니안 측이 먼저 경찰에 신고함으로써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다. 찍힌 사진도 딱 1개고, 이 사건 뒤로 바로 헤어진 걸로 보아서 사귀긴 사귀었지만 약간 애매한 사이였다. 보아가 이 시기 한국에 있던 시간도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길어야 한 두달 사귄 정도로 생각된다는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 2014년 경기도 남양주에 보아가 소유하고 보아 아버지가 거주하는 자택이 그린벨트 지역에 무단으로 조성되어 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6.1. 노래

  • DOUBLE (2003) vs Britney Spears - Let Me Be (2001)
  • Everlasting (2006) vs UNDERGRAPH - ツバサ (2004)
    위의 두 곡은 모두 일본인 작곡가 하라 카즈히로原一博가 작곡한 곡이다.
    하라는 보아에게 큰 인기를 가져다 준 《Listen To My Heart》와 《VALENTI》의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보아가 일본에서 발표한 노래 중에서 표절 의혹이 불거진 곡은 모두 하라 작곡의 노래이다. 하라는 보아 이외에도 하마사키 아유미, KAT-TUN의 노래를 작곡하면서도 표절 의혹을 불러 일으킨 전적이 있다. 만들어 낸 명곡은 많은데 삐끗하는 경우가 많은 작곡가
    표절 의혹이 불거진 뒤에도 보아는 연말 무대와 콘서트에서 《DOUBLE》을 자주 부르는 것 같았지만, 2005년 이후 일본 콘서트를 비롯해 어느 무대에서도 《DOUBLE》을 부른 적이 없다. 이건《Everlasting》도 마찬가지.

7. SNS


싸이월드 초창기 시절 주변 지인들과의 친목 위주로 미니홈피를 운영했으나 얼마 못가 폐쇄하고 회사에서 관리해주는 미니홈피로 전환하였다. 일상생활을 담은 사진이나 글은 없이 공식 프로필 사진 위주의 운영. 그렇다고 업데이트가 활발한 것도 아니었다. 이 시기 본인의 사생활은 거의 일본쪽 블로그에 올렸었는데 이 마저도 몇년 못 버티고 폐쇄. 지금은 SNS 운영이 활발한 보아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신비주의 컨셉이었던게 이유였던 듯.



2010년에 트위터를 개설하고 꽤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한때 국내 여자 연예인 트위터 팔로워 수 1위였으나 다른 SM 아티스트 팬들과의 마찰로 공격도 받고 지금은 일상보다는 일적인 용도로 주로 쓰고 있다. 현재 제일 활발하게 활동하는 SNS는 인스타그램이다. 12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 중.



8. 기타

  • 2003년 보아를 주인공으로 한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보아인더월드가 발매되기도 했다. 발매 당시 SM에서 제작사에 큰 지원을 하지 않았던 탓에 게임의 판매량은 전적으로 팬들 위주로 매겨지게 된다. 이후 제작사의 직원들은 열악했던 개발 당시의 상황에 큰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으나, 게이머들은 물론 팬들 사이에서도 쿠소게로 꼽힌다고 한다.

  • “∼∼해 보아요”라는 일종의 유행어가 있다. 보아의 전성기 시절 일양약품의 브레인 트로피아 닷컴의 광고에 쓰이며 인터넷에서 곧잘 쓰이던 멘트. 보아 스스로가 만든 멘트라고 한다. #☜ 문제의 그 브레인 트로피아 닷컴 광고.
    여담 한때 일양약품에선 브레인 트로피아 닷컴배 바둑 대회까지 열 정도로 이 음료를 주력 상품으로 밀었으나 한 해를 넘기지 못 하고 곧 소리 소문없이 판매 중단되고 만다.

  • 일본 연예인 중에선 1986년생 동갑이기도 한 마츠우라 아야, 그리고 리스탈 케이와 친하다고 알려져 있다. 보아의 일본 활동이 뜸해지면서 마츠우라 아야와의 우정을 드러내는 에피소드가 드러나지 않아 많은 팬들 사이에서도 이젠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것인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현재 마츠우라 아야는 오랜 연애 끝에 그룹 W-inds치바나 케이타와 결혼했으며, 크리스탈 케이는 2012년 이후 신보를 발매하지 않고 있다.

  • 김연아는 보아의 팬이라고 한다.

  • 남양주시그린벨트내 창고를 주택으로 사용한 보아 부친을 고발했다. 관련기사 

  • 무심한 듯 시크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다. 그 원전은 보그 매거진의 2008년 ?월호이다.

"정지된 자세에서 루주하게 '뚝'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으면 좋겠어."
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모스키노의 인형처럼?"
순간, 고개를 흔드는 패션 에디터를 본 그녀가 까르르 웃으며 다시 말했다.
"오케이, 알겠어요. 그러니까 앤 드멀미스터의 모델들처럼 말이죠?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하긴, 두 시간 전, 보아는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외쳤었다.
"아, 지난 5월호 <보그>의 컬렉션 부록은 최고였어요. 그 풍부한 비주얼과 명료한 텍스트, 깜찍한 사이즈는 바로 내가 바라던 거에요!"'


  • 보아가 런닝맨 220회에 게스트로 참여했는데 최초로 참여한 버라이어티 개그 예능이고, 개리와 유재석과 한팀이 되어 우승했다.
    하지만 그 다음회인 이상한 나라의 런닝맨 편에서 이광수에게 기습당해 이름표를 뜯겼다. 삐져서 힌트까지 준 건 덤.

  • 일본 유명 여가수 아무로 나미에와 더불어 일본 베테랑 게닌 다운타운마츠모토 히토시를 때릴 수 있는 몇 안되는 여자 연예인이라고 한다.[42]

  • 보아 어록 모음집 #

9. 연기 활동

  • 보아는 2010년 《아테나:전쟁의 여신》에서 카메오로 인기 가수인 본인의 역을 맡아 출연했다.

  • 2011년 주연을 맡아 영화 《코부 3D(COBU 3D)》를 촬영. 상대 역은 미국의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했던 릭 허프. 촬영을 마치고 뉴욕에서 열렸던 SM 콘서트에서 트레일러가 공개되었다. 이후 《코부 3D》라는 제목 대신, 《MAKE YOUR MOVE 3D》로 제목을 바꾸고 2013년 동아시아와 유럽에서 먼저 개봉하게 된다. SM이 영화에 SM 아이돌 끼얹기를 시전해서 영화음악은 안습이 되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예삐오가 나오는 순간부터 돈 주고 본 관객들은 상영관을 뛰쳐나가고 싶었을 것.

  • 2013년 9월, KBS는 전작 《칼과 꽃》의 시청률 참패를 딛기 위해 새로운 시청자들을 유입하고자 《비밀》 방영 전 단막극 《연애를 기대해》를 편성하게 된다. 보아는 이 작품에서 ‘주연애’역으로 정극 데뷔를 마친다.

  • 2014년 2월 개봉 영화 《관능의 법칙》에서 보아는‘송범식’이라는 이름으로 카메오 출연을 했다.

  • 보아는 2014년 하반기에 개봉한 영화 《매치》에 수경 역할로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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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안동권씨 37세손, 오빠 두명이 純짜돌림을 쓴다.
  • [2] 칸 영화제에서 157cm인 에이브릴 라빈과 나란히 섰을때 거의 똑같았다.
  • [3] 일본에서 2장의 밀리언셀러 앨범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한일음반총판이 천만장을 돌파하였다.
  • [4] 데뷔 전에 데뷔일을 알리는 CF까지 나왔다. 그 당시 상품이 아니라 가수의 데뷔를 알리는 CF가 지상파 TV에 나온다는 건 생소한 일이었다. SM에서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상품'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 sm티저에 삽입된 '에!쓰엠~엔터테인먼트'라는 구호는 2000년대까지 꽤 오랫동안 사용되었는데, 이 목소리는 H.O.T.토니의 목소리임
  • [5] 이사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직접 밝힌 바로는 공식 직함이 아니고, 회사 높은 분들이 반농담으로 권이사라고 부른다. 실제로도 KPOP Star에서 SM을 대표하여 YG양현석JYP박진영과 심사위원석에서 나란히 앉을 정도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오랑캐 추장을 만나는 당나라 절도사 정도의 위치는 됩니다. 당연히 황제는 이수만
  • [6] 후에 보아이수만에게 왜 자기를 캐스팅했냐고 물어보자 이수만은 '웃는게 예뻐서'라는 의외의 대답을 함 (2012.06.05 방영된 '김승우의 승승장구' 출연당시 보아가 했던 말)
  • [7] 이때 SM에는 신비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캐스팅된 다른 여자 연습생들도 많았는데, 알려진 사람으로는 장나라가 있었으며 장나라는 후에 소속사를 옮겨 데뷔하게 됨. 소녀시대로 데뷔했던 제시카크리스탈역시 이때 캐스팅 되었다는 루머가 있다.
  • [8] 당시 팬클럽 이름 공모를 방해했던 세력은 1세대 아이돌들의 팬들이며 이들은 이름도 소름끼치는 보아의 가장 대표적 안티카페인'권보아살생군단'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악질 루머를 생성하고 퍼트리고 다녔다. 지금쯤 다들 애엄마가 되어 있을듯.
  • [9] 당시의 늙고 충실한 보덕들의 증언에 의하면 SM건물 앞에는 항상지금도 빠순이들은 늘 죽치고 있었고, 보아가 지나가면 '보아야!!'하고 불러서 보아가 웃으며 쳐다보면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붓거나, 보아가 '사라'로 활동할 때 후렴구에서 '안사!, 안사!'를 외치거나 다함께 '꺼져라!'를 외치는 등의 행패를 부림.
  • [10] SM의 사옥은 서울인데 보아의 집은 당시 남양주시였다고 한다. 매일 지하철로 왕복 2시간 넘게 다니며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게다가 당시 SM은 시설도 변변치않아서 비새는 건물에서 댄스 트레이닝도 거울없이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을 보며 하는 등 여러모로 열악했다고.
  • [11] 이 기획의 이름은 '신비 프로젝트'로 보아에게 투자한 30억을 다 쓰기 전 일본에서 대박을 치면서 투자원금을 모두 회수하고 흑자 전환한 프로젝트.
  • [12] 이 때 유영진은 신화의 Only One을 1년이 넘도록 공들여 작업하고 있었는데 후에 너무 신경쓰느라고 보아의 데뷔곡을 대충 만들었다고 사과 인터뷰를 함.
  • [13] 이 당시 팬덤 문화가 좀 그런 경향이 심했다. 지금이야 보는 시각들도 많아지고, 자칫 잘못하면 팬뿐만 아니라 해당 가수한테까지 찌라시가 빠순이들을 까대면서 매장을 하는 등 악영향을 끼쳐서 웬만하면 조심조심하는 편이지만.. 특히 H.O.T.팬들의 베이비복스 멤버 테러 사건이라던지 젝스키스 팬들의 DSP사옥 테러사건 및 영구 차량 피해사건은... 그리고 나이를 먹고 이불킥 하는 놈들 많을거다
  • [14] ID ; peace B 는 당시 일본인들에게 무섭다는 반응. 이에 여성스럽게 수정해서 나온게 Amazing kiss. 그러나 이때 보아를 보면 날아다닌다. 그리고 살이 너무 빠져 뼈밖에 없었지만 미소녀....의 정석을 보여줌. 그리고 탄생한 곡이 바로 훗날 2집에 실리는 'moon&sunrise'이다. 보아 작사 곡으로 혼자인 외로움을 담은 가사로 히라가나밖에 몰라 한자는 눈물 루(淚)밖에 없었음.
  • [15] 싱글로 나오려던 곡이 'Next step'이라는 설이 유명함
  • [16] 한국제목 '마음은 전해진다'
  • [17] 현재는 200위까지 집계
  • [18] SPEED의 해체 이후로는 친근한 옆집 누나 이미지를 무기로 내세웠던 모닝구 무스메가 일본 걸그룹의 패자로 등극한다.
  • [19] 아무로 나미에의 후계자라고 보기엔 춤과 노래에 능하다는것 이외엔 딱히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아무로는 춤과 노래이외에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여성 워너비 적인 캐릭터이므로 이부분은 누가뭐라해도 하마사키 아유미가 적정
  • [20] 에이벡스에서 자사 소속사들을 메인으로 출연시키며 전국을 투어하는 콘서트.
  • [21] 자사 대표가 이런식으로 어느 노래에 대해 자신하며 홍보하는 경우는 이례적이었기에 이후에 이노래가 그다지 좋은 판매량을 거두지 못했을때 여러번 회자되었었다. 실제로 판매량이나 반응면에서는 Shine We are쪽이 더 호응이 좋았음에도 DOUBLE로 홍백가합전에 출전한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자신이 있었던 모양
  • [22] 아레나 공연장도 요코하마, 사이타마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홀 공연장같은 작은 규모의 공연장에서 투어를 진행했다.
  • [23] 가수 애프터 스쿨의 멤버이자 리더였던 그 가희가 맞다.
  • [24] 이 때쯤부터 보아 본인이 앨범에 자기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었으며 sm에서는 spark를 타이틀곡으로 하자고 했으나 보아 본인이 장문의 편지를 써 my name으로 타이틀 곡을 결정하였다.
  • [25] 마츠우라 아야, 나카시마 미카, 오오츠카 아이 같은 가수들과 경쟁
  • [26] 유독 판매량 대비 렌탈이라던가 다운로드 순위가 높았다. 렌탈차트에선 종종 1위도 하고. 라이트팬이 많은 영향이 큰 듯
  • [27] 둘다 기대도가 70정도로 큰 차이도 없을뿐더러 사실 그렇게 큰 기대도 수치도 아니다. 애초에 기대도 수치 자체가 100~200이상 월등히 높지 않고서는 공신력이 없다고 봐도 무방. 게다가 설령 기대도가 그렇게 높게 나와도 막상 차트성적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 [28] sm과 avex는 1년 단위로 보아를 한국6개월 일본6개월 나누어서 활동을 시켰다고 한다. 연말연초가 되면 매니저를 비롯한 보아의 한일 스탭들의 신경전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주로 오가는 대화는 "작년에는 한국에서 ㅇㅇ일 더 일했으니 이번에는 일본에서 ㅇㅇ일 더 일하도록 하죠?" 따위의 대화.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 6개월의 시간을 미국진출 준비에 썼다고 하니
  • [29] 참고로 이 감독의 전작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Genie in a bottle, 제니퍼 로페즈의 Get Right로 유명 히트곡의 뮤직비디오를 다수 찍어왔던 감독. 위 작품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대체 보아 뮤직비디오는 왜 저렇게 찍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 [30] 이 인연으로 보아는 새로운 안무가와 프로듀서들을 접하며 보다 넓은 음악적 인맥을 가질수 있게되었고, SM입장에서도 미국시장쪽과 인맥이 터진 덕분에 다양한 프로듀서와 관계자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 [31] 일본데뷔 10주년 기념 1탄으로 홍보해 놓고 티저까지 뽑는 등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으나 1탄 이후 감감 무소식. 많은 팬들에게 분노와 실망을 안겼다.
  • [32] 후즈백의 신곡은 First Time 단 한 곡. 어떤팬들은 신곡이 1곡 뿐이라며 실망하며 논란이 되기도 하였으나, 정작 곡수보다 논란이 된 것은 성의없는 앨범 디자인. 3분 완성짜리 디자인으로 자켓디자이너도 보덕살생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앨범을 내지 못한 4년동안 쌓인 싱글이 무척이나 많았고, 앨범을 내려다 한 번 엎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활동곡을 모은 베스트앨범 격의 앨범. 그런만큼 수록곡 하나하나 퀄리티가 높다.
  • [33] 당시 선공개곡인 GAME은 공개되자마자 30만건 이상의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였으나 SM에서 뮤비 속 글자 하나의 스펠링을 틀리는 바람에 삭제. 영상을 교체하며 조회수가 다 날아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GAME은 히치하이커로 활동하는 지누가 만들었으며 뮤비는 보아의 둘째 오빠인 권순욱 감독이 제작. 보아가 앤디워홀의 뮤즈 에디세즈윅에게 영감을 얻어 '한국의 에디세즈윅'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 팩토리걸의 에디세즈윅을 오마주한 컨셉으로 대호평을 받음.
  • [34] 허리케인 비너스의 코디는 예란지. 역대 최악의 코디라고 말해지며 충격의 보라돌이는 아직도 회자됨. 보아가 직접 같이 일해달라고 부탁해 모든 옷은 수작업으로 공을 많이 들인 옷을 제공하였으나 너무나 독창적인 세계관과 보아의 체형을 고려하지 않은 의상, 과한 메이크업 등으로 총공깽으로 불림.
  • [35] 후크송 일색인 아이돌노래 판에 멜로디로 승부를 둔 노래라는 점이 좋은 평가를 얻은듯
  • [36] 5월에 컴백하려 했으나 밀렸다는 소리가 있음
  • [37] 보아는 K팝 스타로 SBS 연예대상에서 특별상을 수상. 이로써 미디어 노출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요대상, 연기대상, 연예대상에서 모두 상을 받는 희귀한 경험을 함.
  • [38]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냥 길가다가 예쁘고 잘생기면 기획사 명함을 주고 가고 캐스팅 되는 경우도 흔했다. 1세대 아이돌그룹들은 대부분 이런식으로 캐스팅 되었었다.
  • [39] 특히 메리크리, 윈터러브
  • [40] 근데 낮아봐야 오리콘차트 6~8위다.
  • [41] 물론 이 사람은 가수보다는 배우로 진출했다고 보는 쪽이 맞긴 하다. 물론 교포 불러서 콘서트 해 놓고 월드스타 언플하던 건 쉴드가 안 되지만...
  • [42] 때린다는 건 웃으면서 자연스럽게 등짝이나 어깨 같이 손에 닿기 쉬운 부위를 때리는 걸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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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16: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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