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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last modified: 2015-04-09 18:43:32 by Contributors


2015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H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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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헝다
(Guangzhou Evergr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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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턴 시드니
(Western Syd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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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마
(K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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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Seoul)

© from
FC 서울
정식명칭 FC 서울 프로축구단
영문명칭 FC Seoul
법인명 GS스포츠
구단형태 기업구단
모기업 GS그룹
소속리그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
창단연도 1983년[1]
연고지 서울특별시
팀명 변천사 럭키금성 황소 (1983~1991)
LG 치타스 (1991~1996)
안양 LG 치타스(1996~2004)
FC 서울 (2004~현재)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 서울월드컵경기장
(66,806명 수용)
구단훈련장 구리 GS 챔피언스 파크
상징색 빨간색 , 검정색
용품 스폰서 르꼬끄스포르티브
셔츠 프린팅 GS SHOP[2]
구단주 허창수 (GS그룹 회장)
대표이사 장기주
단장 이재하
감독 최용수
마스코트 씨드
공식 웹 사이트 http://www.fcseoul.com
트위터
페이스북
수상 기록
K리그 클래식
(5회) [3]
1985, 1990, 2000, 2010, 2012
리그컵
(2회)
2006, 2010
FA컵
(1회)
1998
슈퍼컵
(1회)
1988
전국축구 선수권대회 우승
(1회)
2001
클럽 수상
2010 K리그 올해의 베스트팀
2011 K리그 올해의 페어플레이
2012 K리그 올해의 베스트팀

GS스포츠
FC 서울
(축구)
GS칼텍스 서울 KIXX
(배구)

Soul of Seoul, FC SEOUL

Contents

1. 연고지 역사
2. 이모저모
3. 타 팀과의 관계
3.1. 수원 삼성 블루윙즈
3.2. 인천 유나이티드
3.3. 전북 현대 모터스
3.4. 포항 스틸러스
3.5. FC 안양
4. 시즌별 일람
5. 역대 감독
6. 사건사고
7. 유소년 시스템
8. 그 외

1. 연고지 역사

FC 서울의 연고지 역사
기간 1984 ~ 1989
6년
1990 ~ 1995
6년
1996 ~ 2003
8년
2004 ~ 현재
연고지 충청도[4] 서울특별시 (동대문) 안양시 서울특별시 (상암)

LGbull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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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금성 황소
Lucky-Goldstar Hwangso

1983년 슈퍼리그가 출범하고 이듬해 인 1984년에 충청도를 연고로 럭키금성 황소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어 리그에 참여했다. 본래 모기업인 럭키금성그룹은 창단 준비때부터 서울 연고를 희망하고 있었지만[5][6] 당시 유공 코끼리 축구단(현 제주 유나이티드)이 이미 서울 연고[7]였기 때문에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충청도 광역연고로 자리잡게 된다.

1988년 초부터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추진중이었으며 1990년에 도시 지역 연고제가 시행됨에 따라 서울로 첫 번째 연고지 이전을 하지만, 곧 1995년 2월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에서 의결[8]하여 1996년시행된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인해 서울에서 강제로 떠나 안양시로 다시 연고지를 옮기고 팀명도 안양 LG 치타스로 바꾼다. 이 때 서울 구단들이 받아든 선택지는 서울에 동대문 아닌 곳에 신구장을 건설하고 서울 연고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서울을 떠나느냐였는데 LG,유공,일화 모두 연고지 이전을 선택하고, 이 신구장 건설 조건부 서울연고 허가는 추후에라도 축구전용구장을 건설할 경우 서울로의 연고 복귀를 허용한다라는 단서 조항으로 이어진다..[9]

안양으로 연고를 옮긴지 4년만인 2000년부터 안양 LG 치타스는 서울로의 복귀의사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한다.[10][11] 이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 끝난 뒤 수도 서울에 축구단이 없는 것에 대해 수도에 축구단이 있을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일차적으로 시민구단 형태의 서울 유나이티드를 창단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서울시 측에서는 신생팀 창단에 따르는 비용을 들어 난색을 표하였고[12], 기존의 기업구단이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안양 LG 치타스부산 아이콘스가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을 희망했고,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부산의 모기업 현대산업개발보다는 안양의 모기업인 LG가 오는 것이 낫다 싶어 안양의 손을 들어주게 되고 이로 인해 2004년에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한바탕 광풍이 몰아닥치게 된다.[13][14][15]

그리고 LG그룹이 2004년 LG와 GS그룹으로 분할을 시작하면서 LG가 야구단을, GS가 축구단을 가져가게 되면서 2004년 6월 1일 GS스포츠가 공식 출범하여 현재의 모기업은 GS가 되었다. 자신들을 안양시민의 구단이라고 칭하는 등 안양 지역의 축구 팬들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어 왔었기에 연고지 이전 후 안양 팬들을 비롯한 K리그 팬들에게 엄청난 욕을 먹으며 부모(연고지)를 버린 자식(구단)이라는 뜻의 패륜[16]라는 불명예스런 타이틀을 얻었다.

FC 서울 구단 측에서는 1996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정부가 2002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전국적인 축구 열기를 확산시킨다는 명목을 서울 연고지를 공동화시키고 지방으로 연고지을 이전시킨 이른바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안양으로 연고를 옮긴 축구단이 서울로 연고지 복귀를 한 것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연고지 복귀라고 치더라도 연고 이전인건 이전이다 따라서 연고 이전이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두번째 연고지라고 치더라도 자기들을 사랑해주던 팬들은 버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후처는 마음대로 버려도 되냐

2. 이모저모

모기업의 풍부한 지원과 서울 프리미엄으로 선수진이 막강해 K리그에서도 손꼽히는 강호다. 하지만 2007 시즌에는 주전 선수들, 특히 공격수들의 줄부상으로 대전 시티즌에 밀려서 7위를 기록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8 시즌에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1위 자리를 위협하면서[17] 2위로 시즌을 마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후 6강 플옵에서 최종적으로 올라온 울산 현대을 4:2로 이김으로서 다시 한 번 결승에서 수원과 만났으나 1차전 홈에서 1:1, 2차전 수원 원정에서 1:2로 패배하면서 2008시즌은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고 만다.

2002년 월드컵에서 터키를 이끌고 3위를 기록한 세뇰 귀네슈 감독 부임 이후 이청용-기성용의 쌍용을 중심으로 젊은 선수들을 적극 기용되었고 이후 강력한 미드필드 진을 필두로 한 빠르고 짧은 패싱을 주무기로 삼는다. 경기 당 한번씩은 꼭 공을 받지 않고 흘리거나 다이렉트로 뒤로 차주는 플레이를 펼쳐보이는게 특징. 빠른 패스와 공수전환으로 전방에서 부터 압박해 치고 올라가기 때문에 K리그 전체에서도 수준급 경기를 보여주는 팀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최용수 감독 부임 이후 경기력이 하락하면서 귀네슈 감독 시기 보여줬던 팀 컬러가 희미해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특히 2014시즌 데얀, 하대성이 이탈하고 몰리나의 노쇠화로 인해 이러한 면이 두드러졌다.[18]

국가대표급 중앙 수비진을 보유했지만 한때 중앙 수비진의 실책으로 인한 실점이 많은 편이었으며[19]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탓에 마인드에서 약점을 보여줬는데 거친 파울이 많았고 상대가 조금만 흔들면 제풀에 무너져 버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 팬들의 속을 태웠다. 김한윤, 이을용 등 몇 안되는 노장선수들도 굉장히 거칠고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타팀팬들에게 자주 까였다. 연고지 이전의 역사도 있어서 더더욱.

그러나 빙가다 감독이 재임한 2010시즌부터 팀을 대폭 물갈이하고 조직력을 쇄신한 결과 이런 모습은 사라졌고,[20] 최용수 감독 체제에선 몇 년째 클래식에서 가장 파울 적게하는 팀으로 꼽힌다. 때문에 서울이라면 일단 트집부터 잡고 보는 안티들도 이제 파울이나 멘탈 관련해선 잘 건드리지 않는다.

연고지 이전의 역사가 있어 항상 까이기는 하나, 팀 운영이나 마케팅 등 여러 면에서 K리그에서 가장 모범적인 구단으로 꼽힌다.[21] 관중 수는 2005년 이후 항상 1, 2위를 다투고 있고 2010년 이후로는 서울 구단으로 완전히 정착하는 단계에 와있다.

덕분에 그동안 잠재적 기대치로 평가받던 대한민국 수도, 천만도시 서울의 무지막지한 관중동원력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한때는 연고의식 없는 서울시민들 데리고 헛짓한다는 비웃음을 들었지만 2005년 박주영을 내세워 스타 마케팅을 실시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팬들과 소통한 끝에 서서히 광활해 보였던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관중석을 채우기 시작해, 수원과의 슈퍼매치나 챔피언결정전 등 빅매치 시에는 4~5만명의 관중을 동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K리그 관중동원실적에서도 몇년째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가 2013년 총 관중 순위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게 역전당했다. 이는 FC 서울의 관중 동원 전략을 무료표를 줄이고 객단가를 높이는 방향으로 잡은 것으로 인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2013년 FC 서울의 총 관중 순위는 수원 블루윙즈에 이어 2위였지만 유료 관중 비율(85%)와 객단가(6452원)에서는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총 입장 수익 또한 20억원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고 이는 2013년 K리그 클래식 전체 입장 수익중 1/4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이러한 수치들을 볼때 K리그 전체를 통틀어 가장 관중 장사를 잘하는 구단이다.

그러나 이것도 과거 얘기고 데얀, 김주영 등 간판 선수들의 이적과 최용수 감독의 루즈한 경기운영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관중동원에 있어 고전을 겪고 있다. 특히 주중경기의 관중 동원은 천만명의 배후인구를 가진 팀 치고는 처참한 수준. 단적인 예로 2015 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팀들 중 원체 인기팀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북 현대 모터스는 그렇다 치더라도, K리그의 전통적 비인기팀이자 시민구단인 성남 FC보다도 홈경기 관중수가 적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팬들도 이러한 흐름에 대해 경각심을 느끼고 있고 구단의 운영철학에 대한 의문도 많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이다. 아무래도 직관의 재미 저하를 가장 잘 느낄 이들이 바로 골수팬들일 테니... 그리고 서울 이랜드 FC가 창단하면서 경쟁 구도가 성립되었다. 강남권 팬층은 일부 서울이랜드로 흡수된 것으로 추측되며 훗날 클래식으로 승격한다면 홈구장인 레울 파크의 접근성도 좋은 만큼 관중 동원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최대 라이벌은 수원 삼성으로 서울과 수원의 슈퍼매치는 K리그 최고의 흥행카드이다. 수원 다음으로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있는데 이둘의 대결은 경인더비라 칭한다.

3. 타 팀과의 관계

상술한 연고지 문제로 인해 리그의 악의 축 포지션을 확보한 것부터 시작하여,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더불어 리그 내 최대 규모의 서포터를 보유함으로써 여러 좋지 못한 사건들이 벌어지기도 하고 성적도 매년 상위권을 찍다보니 K리그 판에서 가장 많은 안티를 보유한 팀이라고 볼 수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 거의 대부분의 타 팀 팬들은 FC 서울을 적대시한다. 애당초 축구판에서 서로 우호적인 팀들이 있긴 한가 싶지만

3.1. 수원 삼성 블루윙즈

명실상부한 FC 서울 최대의 라이벌.

경기 외적으로 팬들 끼리 가장 심하게 충돌하는 팀이자 실제 경기에서도 상당히 껄끄러운 상대이다. FC 서울의 연고지 논란을 가장 강하게 공격하는 K리그 팬들이 수원 서포터들이며, 이에 따라 현재까지도 수원 서포터들의 공식 입장[22]'FC 서울은 존재하지 않는 구단으로 취급한다.'이다. FC 서울을 라이벌로 칭하는 언론 보도등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FC 서울을 '북패'나 좀 더 순화해봐야 'FC GS'등으로 호칭하는 근본적인 이유.[23] FC 서울에 대한 반감이 가득한 일명 '패륜송'은 FC 서울과의 경기마다 불려진다.[24]

이러한 적대심으로 당연히 FC 서울 팬들에게도 상당한 적대감을 불러일으켜 양 팀 서포터 간에 여러 차례의 사건과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수원과의 2군 경기에서 서울팬들이 안정환에게 인격모독적인 발언을 하여 안정환이 관중석까지 뛰쳐 올라간 유명한 사건이나, 수원 팬들이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방화를 저지른 사건들이 대표적. 이런 몇 차례의 충돌 끝에 최근에는 최대한 물리적 충돌은 서로 피하는 분위기이다. 이러한 충돌은 온라인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는데 슈퍼매치가 다가오면 양 팀 팬들이 게시판에서 서로를 강하게 도발한다.[25]

이러한 분위기를 보듯 양 팀 팬들은 서로를 라이벌로 인식하기 보다는 예의와 존중따윈 집어치운 그저 쳐 죽여야될 상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2008년에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수원에 패하며 우승을 넘겨주는 등, 우승을 차지했던 2010시즌을 제외하고 2012시즌까지 경기 내적으로 FC 서울이 약세를 보였던 거의 유일한 팀이다. 윤성효 시절에는 수원에게 9연속 무승(2무 7패)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3시즌 서정원 감독 부임 후 이전까지 절대적 열세였던 분위기에서 반전하여, 2014년 4월 27일 K리그 클래식 10라운드 수원 원정경기에서 2008년 10월 29일 이후 5년만에 승리를 거두는 등 13, 14시즌 도합 8전 5승 1무 2패(2014년 11월 9일 기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5년 3월 10일 박주영의 FC서울행이 확정되면서 절대 못 뚫는 창을 보유한 FC 서울과 절대 못 막는 방패를 보유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모순더비'가 확정되었다.

3.2. 인천 유나이티드

일명 경인 더비로 불리우는 경기. 양 팀간의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양 팀 서포터들의 충돌로 더욱 유명하다. 철창 반대편에서 도발하던 인천팬을 철창 사이로 깃대를 집어넣어 찌르려 시도한 일명 '콕콕신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로도 수원과 더불어 FC 서울에 가장 큰 적대감을 드러내는 구단이기도 하다. 때문에 FC 서울 팬들은 인천을 '개랑 2중대'라 칭하기도 한다.[26]

거의 항상 상위권에 위치하는 FC 서울과 주로 중위권을 기록하는 인천 유나이티드 간의 경기이지만 맞붙으면 꽤 팽팽한 경기가 펼쳐진다. 다만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서울이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3.3. 전북 현대 모터스

서울과 전북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서로 2번씩 리그 우승을 나눠먹었다. 한마디로 우승 경쟁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맞붙게 되는 팀. 전북과의 경기는 거의 항상 리그 우승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기인 일명 '승점 6점짜리 경기'가 되며 이에 따라 경기가 굉장히 과열되곤 한다.

서울이 열세인 수원과는 달리 이 쪽은 서울이 대체적으로 강세를 보인다. 반면 수원은 전북에게 약세. 서울 < 수원 < 전북 < 서울의 구도가 꽤 오랫동안 이어져오고 있었지만 2013년 들어 서울이 수원을 잡고 전북이 서울을 잡고 수원이 전북을 잡는 등 이러한 구도가 조금씩 깨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0년 전북을 상대로 한 서울의 홈 개막전에서 초대가수인 티아라가 전북의 유니폼을 연상시키는 초록색 의상 깔맞춤으로 하프타임 공연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경기는 서울의 1:0 패.

3.4. 포항 스틸러스

박주영 하이재킹 사건으로 인해 포항팬들이 박주영에 느끼는 반감만큼 FC 서울에 느끼는 반감도 강하다. 거기에 더 추가로 포항 스틸러스가 창단 이래로 포항,경북에서 터를 잡고있으며 여러 부분에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리그에서 가장 강한 구단이다 보니 연고이전 논란에 대해서도 반감이 크다. 유니폼 컬러가 동일한 검빨이라는 것[27] 조차 싫어할 정도로 포항팬들은 서울과 엮이는 것 자체를 꺼리는 편. 인천 유나이티드와 마찬가지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서울이 압도적인 승률을 보인다.
2014시즌 9월 8일 현재, 두 팀은 한 시즌만에 6번이나 만났다. 리그 3전, FA컵 1전, ACL 2전.
전적은 1승 4무 1패, 승부가 났던 두 경기 모두 1대0 한골차이 승부일만큼 박빙이지만, 속내를 보면 4무 가운데 3경기는 토너먼트 경기였고 ACL 1차전을 제외한 2경기 모두 승부차기 혈투 끝에 서울이 이겼다. 특히 주전 골키퍼인 김용대의 부상을 틈타 주전으로 발돋움한 유상훈 골키퍼가 매경기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먼저 경기였던 FA컵에선 승부차기에서 한차례 선방을 보여 승리를 이끈 데 이어 ACL 경기에선 상대 키커 3명의 킥을 3번 다 막는 미친활약을 보여주며 승리로 이끌었다. 재밌는건 유상훈 골키퍼가 포항전에만 5경기나 출전했는데 단 한 차례도 지지 않았다! (1승 4무, 4무 가운데 2경기는 승부차기 승) 특히 단 2실점만을 허용하고, 승부차기 선방도 4차례나 해내는 등 포항 킬러로 떠오르고 있다.

3.5. FC 안양

FC 서울의 연고지 관련 논란 속에서 2013시즌부터 안양시의회와 안양 축구 팬들 주도로 안양이 K리그 챌린지에 참가하게 되었다. 안양은 창단때부터 지속적으로 서울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심을 내비치고 있으며 자기들 증오한다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 서울도 안양을 매우 싫어한다. 현재는 안양이 2부 리그에 속해 있으므로 만날 일이 없으나, FA컵 대회에서 만나게 되거나 안양의 승격 혹은 FC 서울의 강등이 이루어져 경기가 벌어지면, 안양 LG시절부터 K리그에서 가장 폭력적인 서포터로 악명을 떨쳤던 레드와 역시 사고 경력이 화려한 수호신간의 폭력 사태가 우려된다.[28]

4. 시즌별 일람

FC 서울 시즌별 일람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5. 역대 감독

초대 - 박세학(1984~1987)
2대 - 고재욱(1988~1993)
3대 - 조영증(1994~1996)
4대 - 박병주(1997~1998)
5대 - 조광래(1999~2004)
6대 - 이장수(2005~2006)
7대 - 세뇰 귀네슈(2007~2009)
8대 - 넬로 빙가다(2010)
9대 - 황보관(2011)[29]
10대 - 최용수(2011~현재)

6. 사건사고

FC 서울/사건사고 항목 참고바람.

7. 유소년 시스템

유소년 시스템
U-18 팀 서울 오산고등학교
U-16 팀 서울 오산고등학교/오산중학교
U-14 팀 서울 오산중학교
U-12 팀 Future of FC 서울

8. 그 외

챌린지의 서울 이랜드와 함께 서울특별시 연고의 프로축구단이지만 서울특별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게만 돈을 퍼다주면서 체면을 구겼다. 그리고 홈구장도 맨유에게 헌납했다. 이 때문에 2010시즌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의 시축에 관중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2007년 맨유가 아시아 투어 차 서울과 경기를 가졌을때 4:0 떡관광 스코어로 깨지는 바람에 욕만 줄창 얻어 먹은 데다, 그날 홈 경기장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맨유에 무상봉헌되는[30] 등 뭔가 맨유랑 악연이 있는 듯하다. 2009년 여름에 벌어진 맨유와의 2번째 친선경기에선 훨씬 나아진 경기력으로 대등한 시합을 보여줬으나 2-3으로 석패했다.

2012 시즌까지 U-18팀이 서울 동북고등학교라 동북고로 박주영이 교생실습을 온 적도 있다. 현재는 오산고등학교.

팀 정책적으로 젊은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장려하고 있으며 몇 명은 어느 정도 족적을 남겼다. 김동진, 박주영, 이청용, 기성용이 대표적인 예. 이들은 이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국가대표로 큰 활약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축구 전반적인 미래를 봤을 때는 바람직한 일이나 이적 건이 나올 때마다 FC 서울 팬들과 수호신 멤버들의 속은 아주 그냥 타들어간다.

장사 수완이 좋아서 트레이드 잘 하는 구단중 하나로 꼽힌다. 대승적 차원 운운하며 주력 선수들을 헐값에 외국팀에 빼앗기기 일쑤인 다른 구단들[31]에 비해 제 값 확실하게 받고 판다.[32] 리그에서 경쟁 상대가 될 강팀에는 함부로 주력 선수를 팔지 않고 팀의 잉여 자원들을 상대팀 주전, 준주전들과 바꿔서 손실은 최소화하고 효율은 극대화 시키는 트레이드의 기본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며 현장과의 소통도 나쁘지 않아서 감독이 원하는 선수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곧잘 물어다준다.

제주 유나이티드의 천적으로 2006년 이후 단 1패(리그컵)만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리그 최강팀중 하나인 전북 현대 모터스에게 2012년까지 약 2년간 패배가 없었다. 반면 라이벌격인 수원에겐 2010년 중반기 이후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그 수원은 또 전북에게 굉장히 약한 게 특징. 팬들은 각 팀 컬러에 맞춰 파이리(서울)->꼬부기(수원)->이상해씨(전북)->파이리(서울)의 관계로 칭하고 있다.

풍부한 자금력과 국내 선수 대상으로 보여주는 좋은 육성능력, 뽑기 능력에 비해 외국인 선수를 못 뽑는 편이다. 히칼도가 떠난 이후 2008 시즌 무삼파와 제이훈, 2009 시즌 케빈과 안데르손, 2010 시즌 에스테베즈까지 매해 실패를 거듭했다. 2010 시즌 전까지 돈값을 해준 외국인 선수는 히칼도, 아디, 데얀 뿐이었고 이중에서 데얀은 서울이 아니라 인천에서 뽑아 이미 검증을 마친 선수였다. 이 징크스는 2010시즌 임대 영입된 세르베르 제파로프가 맹활약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면서 깨졌다. 이후 2011 시즌 몰느님 마우리시오 몰리나가 영입되면서 데얀이 뛴 2013 시즌까지는 외국인 선수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2013 시즌 종료 후 아디의 은퇴, 데얀의 이적, 몰리나의 노쇠화로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데얀의 대체자로 데려온 하파엘 코스타[33]는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한채 6개월만에 임대 이적했으며,[34] 대신 데려온 성남출신의 에벨톤은 영입 초반 스탯 좀 쌓다가 역시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13 시즌 후반부터 부진하던 몰리나는 2014 시즌 전반기를 통째로 날렸고 이후로도 회복의 기미가 안보인다. 그나마 아디 대체자로 영입한 수비수 스마르는 매경기 평타 이상 해주고 있다.

서포터즈인 수호신은 수원의 프렌테 트리콜로와 함께 K리그에서 가장 거대한 서포터즈이다. 수도 많고 응원열기도 뛰어나다. 결성 초반 클린 서포팅을 모토로 삼고, 소모임 위주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유지해 K리그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흑역사로는 안정환 권오크 도발 사건이 있는데, 수원과의 2군 경기에서 서울팬이 수원 소속이던 안정환의 가족을 욕했던 사건이다. 분개한 안정환은 경기 도중에 관중석으로 뛰어 올라갔다가 퇴장을 당했으며, 언론에도 보도되며 서울 서포터들이 한동안 많은 비난을 받았다.

그동안 아디다스에서 용품 후원을 받았으나 2012년부터는 르꼬끄스포르티브와 함께 한다. 르꼬끄와 연계해서 전국 각 르꼬끄 매장에서 유니콤과 트레이닝복 등 각종 상품을 판매할 계획이라고. 그런데 그 규모가 무려 4년간 80억원! 축구 뿐만 아니라 국내 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이다.

GS그룹 산하에 있는 관계로, 홈페이지 회원으로 가입하면 FC 서울 GS&포인트 카드를 우편으로 배송해 준다. GS25 등지에서 적립용으로 써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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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1983년으로 창단연도를 기록한다. 엠블렘의 2004년은 서울에서 새롭게 잘 해보자는 의미의 제2창단의 해이다. 구단측에서는 2004년에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제2의 창단을 표방해서 구단의 역사가 1983년을 시작으로 보는 것인지 2004년을 시작으로 보는 것인지 혼동을 낳았지만 한국프로축구연맹과 FC 서울은 공식적으로 1983년 럭키금성 축구단부터의 역사를 인정하고 있다.
  • [2] 주식회사 GS홈쇼핑의 브랜드
  • [3]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기록은 5회 우승으로 나온다. 서울로 연고지 이전 후의 우승은 2번이며 서울 동대문 시절 우승까지 포함하면 서울 연고지에서 3번의 우승을 달성하였다. 2010년 우승후 별을 4개를 다느니 하나만 다느니 말이 많았고 결국 별을 달지 않는 쪽으로 마무리 지었다.
  • [4] 충청지역 광역연고 대전, 청주, 천안 포함
  • [5] # 경향신문, 1980년 03월 19일자
  • [6] 구단 창단 주체가 창단을 희망하고 추진해 온 연고지에 자리잡지 못하고 연맹에 의해 연고지가 배정되는건 오늘날의 기준에서 볼 때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그만큼 당시 한국 프로축구계의 행정력이 얼마나 후진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 그와 별개로 이를 근거로 이후의 서울 연고지 이전을 정당화 할 수는 없다.
  • [7] 정확히는 서울+인천+경기 연고. 서울만을 연고로 한 최초의 프로축구팀은 일화였다.
  • [8] 이사회는 각 구단 구단주들로 구성되어 있다. 즉 LG 구단주 역시 이사회에 참여하였지만 LG 구단 스스로 서울 공동화에 찬성했다는 것은 볼 수 없으며 1995 2월 이사회 직전 김기복 사무총장의 인터뷰를 보면 이번에 기어코 의결 시키겠다는 코멘트로 보아 몇차례 거부를 하다 1995년 2월 이사회에서 겨우 타결되었는데 이때도 다수결로 눌려서 어쩔수 없이 승인되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http://www.fntoday.co.kr/bbs/list.html?table=bbs_219&idxno=86985&page=2&total=577&sc_area=N&sc_word=지나가다
  • [9] 일각에서는 경기장 건설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과 기간, 조건 등을 고려해볼때 사실상 구단 입장에서 서울에 남는 것이 불가능한 조항이며 '시키는대로 나가라'라는 표현을 돌려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후의 연고이전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삼지만, 사실 1995년 당시만 해도 이미 포스코가 모기업 자금으로 이미 전용구장을 두 곳이나(포항, 광양) 지었기 때문에 이걸 못 짓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유공과 LG는 모두 포스코 이상가는 굴지의 대기업이었고 문수르의 일화의 자금력 역시 K리그에서 최고로 꼽혔을 정도였다. 돈지랄로 리그 3연패를 두 번이나 했으니... 세 기업이 의지가 있었으면 비용을 분담하여 전용구장 짓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LG는 단독으로 서울에다 축구장보다 훨씬 비싼 돔구장을 지으려고까지 했었다!
  • [10] # 베스트일레븐 2000년 5월호
  • [11] # 베스트일레븐 2000년 6월호
  • [12] 당시 운영중이던 서울시청 축구단조차 "남자축구는 이미 활성화될 대로 활성화되었으니 대신 여자축구를 육성하겠다"는 괴랄한 명분을 들어 해체시킬 정도였으니 당시 서울시가 축구에 쓰는 돈을 얼마나 아까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13] # 안양 LG 치타스의 연고이전 공고문
  • [14] FC 서울은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연고를 옮기며 서울 연고 입성비(사실 상암의 서울 월드컵 경기장 사용료 명목이었지만 점차 서울 연고구단의 입성비처럼 의미가 변질되었다.)의 반액인 75억원이라는 거액을 납부하였다. 위에 언급된 축구전용구장 건설시 서울로의 연고 복귀를 허용하겠다는 당초의 조항을 백지화한 것.
  • [15] 당초 서울시에서 책정한 서울 월드컵 경기장 건설비 중 서울 연고 프로구단의 분담금은 총 150억이므로 나머지 75억원을 납부하는 또 다른 팀이 나오고, 그 구단이 서울 월드컵 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결정한다면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2팀이 사용하는 구장이 된다.
  • [16] 2006년 부천 SK제주도로 연고지를 이전하면서 2002년 이후 K리그에 연고지 이전 구단이 둘이 되었고 각각 북패남패라는 비칭을 얻게 되었다.
  • [17] 빅버드에서 펼쳐진 슈퍼매치에서 기성용의 결승골로 승리하며 우위를 점해 단 1패로 정규리그 우승도 가능할 것으로 보여졌으나 단 2경기만을 남겨두고 나선 부산 원전에서 멘탈 문제를 드러내며 0-2 참패하고 골득실에서 뒤져 2위로 밀려났다.
  • [18] 최용수 감독에 대한 비판이 주로 이런 팀 컬러와 전술 문제에서 나온다. 반면 옹호하는 쪽은 2012년 K리그 클래식 우승, 2013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등 성과를 들고 반박하는 편
  • [19] 이 팀 2007, 2009 시즌 최소실점팀이다. 다만 아디, 김치우, 현영민, 이종민 등이 버티고 선 측면이 워낙 견고해 보이고 중요한 순간에 중앙수비가 크게 무너지는 경우가 있어 그런 인상이 박힌 것. 사실 이 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09시즌 이후 바람잘날 없는 오른쪽 측면이다.
  • [20] 09~10년을 기점으로 이을용, 김한윤, 기성용, 이청용 등 한 성질하던 트러블 메이커들이 다 떠났다.
  • [21] 마케팅에 투입하는 인원 부터가 타팀과 3~5배 차이가 난다. 또한 채용, 연수과정도 철저해서 스포츠마케팅 전공한 고학력자들을 채용해 현장에서 철저하게 굴리면서 학습시킨다. K리그에서 처음으로 외국인들 상대로 이벤트를 펼친 구단이기도 하다.
  • [22] 사실 수원 서포터의 공식 입장이라기 보다는 FC 서울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연고이전에 반대하는 팬들의 입장.
  • [23] 상기한 FC 서울의 혐칭은 수원 서포터로부터 시작된 명칭들이다.
  • [24] 사실 패륜송은 FC 서울과의 경기를 빼고도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도 부른다. 다만 제주와의 경기에서는 가뭄에 콩나듯 부르는게 사실이며 어떨 때는 아예 단 한번도 부르지 않고 경기를 끝낼 때도 많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우에도 FC서울과 경기할 경우에는 응원송을 부를 때 상대 팀명 대신에 "패륜"이라고 부른다.
  • [25] 아이러브사커같은 커뮤니티는 슈퍼매치를 전후하여 이러한 도발전으로 여러 명의 서울팬과 수원 팬이 활동 정지를 당한다.
  • [26] 정작 인천과 수원은 서로 사이가 굉장히 좋지 못하다. 물론 양 팀 모두 서로보다는 FC 서울을 더 증오한다.
  • [27] FC 서울은 세로 스트라이프이며 포항 스틸러스는 가로 스트라이프이다.
  • [28] 팀을 불문하고 서포터중에는 이런 충돌을 미화하거나 바라는 사람들도 꽤 있는데 상식적으로 무슨 사정이 있건 폭력은 범죄고 리그의 흥행을 떨어뜨리는 요소이며 강성 서포터들이 동경해 마지 않는 유럽땅에선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 [29] 구단 사상 최초로 성적 부진으로 중도 사임한 감독으로서 그가 낸 참담한 성적 때문에 서울팬들 중에서도 감독 취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30] 2007년 첫 투어 당시 몇몇 정신나간 맨유팬들이 Here is another Old Trafford 라는 현수막을 걸었었다. 그리고 몇몇 정신나간 꾸레들이 "Catalunya is not Spain"을 2010년 K리그 최대 굴욕인 올스타전 사건 때 걸려고 했는데.
  • [31] 성남은 팀 에이스이자 K리그 MVP였던 김두현을 겨우 11억원에 웨스트 브롬위치에 팔았고 포항은 아예 한 푼도 못 받고 이동국을 미들즈브러로 보냈다.
  • [32] 김동진 23억, 박주영 32억, 이청용 41억, 기성용 약 38억
  • [33] 참고로 영입했을때 많이 까였다. 몰론 영입된 선수를 비난하고 싶진 않겠지만 팬들입장에선 k리그 최고의 용병으로 꼽히고 몬테네그로 대표팀에 자리 잡고 있는 선수를 대체한다는게 고작 브라질 하부리그에서 반짝활약한 무명선수를 데리고왔으니 팬들 입장에선 뚜껑열릴일 거기다 하필 옆나라에선 대형스타 디에고 포를란을 영입한 바람에 일본도 맘잡고 스타영입에 신경쓰는데 우린 이상한 용병만 데려온다고 비교당했다. 거기다 이전에 불가리아 대표팀 공격수 출신 보지노프가 서울 이적설이 나와서 K리그 팬들에게 많은 기대감을 줬지만 루머로 끝난바람에 아쉬움이 컸던 모양
  • [34] 그래도 체격이 탄탄하고 좋으니 키는 뻥튀기 했지만 믿어보자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fa컵에서 인천2군 상대로 선발로 나왔음에도 OME급 플레이를 보여주는 바람에 그를 감싸주는 팬들마저도 등을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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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9 18:4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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