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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이재원 제대 후에 같이 모인 멤버들.

Contents

1. 개요
2. 그룹명
3. 멤버
4. 이력
4.1. 해체
4.2. 솔로 활동
4.3. 재결합 가능성
5. 스타일
6. 평가
6.1. 실력
6.2. 작사, 작곡
6.3. 영향과 파급 효과
6.4. 관련 산업
6.5. 노예계약
7. 팬덤
7.1. 팬픽 문화의 시초
8. 음반

1. 개요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었던 5인조 남성 아이돌 보이밴드로, 1996년 9월 데뷔하여 2001년 5월 해체했다. 1990년대 중후반을 휩쓴 전설의 아이돌 그룹이자, 1세대 한류 스타이다. 이후 나온 젝스키스, NRG, 신화, god 등의 1세대 아이돌 그룹에 큰 영향을 주었다.[1]

2. 그룹명

정확한 그룹명은 'H.O.T.'. High-five Of Teenager의 약자로, '십대들의 승리'라는 뜻이다. 물론 영어 숙어는 아니고 끼워 맞춘 조어인데, 어색한 표현이고 저것을 '승리'라고 해석하는 것도 다소 억지스럽다. 훗날 god와 H.O.T.가 함께 출연한 방송에서 김태우가 말하길, 원어민인 박준형이 H.O.T.의 뜻을 듣고 웃었다는 후문이 있다.

각각의 알파벳이 약어이기 때문에 T에도 생략부로서의 온점이 붙는다. 당시만 해도 아이돌 그룹에 대한 언론에서의 대접은 그 인기에 비해 많이 못하여서, 기사 등에서 온점을 신경써서 표시해주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었고, 그 때문에 당시 H.O.T. 팬들 사이에서 이 온점의 개수는 상당히 예민한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초창기에는 너도나도 '핫'으로 읽는 통에 난감했던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첫 데뷔 무대에서 소개 멘트혜수언니이이이이ㅠㅠ도 H.O.T.가 아닌 '핫'. 당시 아이돌 문화를 제대로 아느냐 모르느냐는 H.O.T.를 어떻게 읽느냐로 판단되기도 했다. 약칭도 있는데 에쵸티 혹은 쵸티.

3. 멤버

H.O.T.
문희준 장우혁 토니 안 강타 이재원

  • 문희준(1978년 3월 14일생) : 리더 및 서브 보컬, 서브 랩퍼, 안무 담당
  • 장우혁(1978년 5월 8일생)[2] : 메인 랩퍼, 안무 담당
  • 토니 안(1978년 6월 7일생) : 서브 보컬, 서브 랩퍼
  • 강타(1979년 10월 10일생) : 메인 보컬. 그리고 비주얼과 인기 담당간간히 전사의 후예나 투지에서 랩을 하기도 했다. 전사의 후예는 강타(feat. 문희준,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 수준의 노래라 그가 노래의 대부분을 거의 다 맡았다.
  • 이재원(1980년 4월 5일생) : 서브 랩퍼

1세대 아이돌 치고는 특이하게도, 2015년 현재까지도 결혼한 멤버가 한 명도 없는 그룹이다. 같은 1세대인 젝스키스SES, 핑클, 베이비복스 멤버들 중 각각 최소 한 명 이상은 결혼식을 올렸던 걸 생각해보면 특이한 케이스. 신화도 있잖아

처음 결성 당시에는 졸업 시스템을 적용해서, 20세가 되면 탈퇴하고 새 멤버를 받는 식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생각 외로 큰 인기를 끌면서 그냥 그대로 가기로 했다고. SM은 이후 슈퍼주니어에서 졸업 시스템을 계획했지만 역시나 팬들의 큰 반발로 무산되었다.

참고로 원빈이 데뷔 전에 SM에 오디션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이수만이 원하던 컨셉과는 이미지가 안 맞아서 탈락했다고 한다. 만약 붙었다면 십중팔구 에쵸티 멤버가 되었을 거라고...

4. 이력

H.O.T.는 신화를 데뷔시키기 전에 SM에서 실험 격으로 데뷔시킨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허나 H.O.T.가 대박이 터지면서 반대로 신화는 H.O.T.의 후발주자가 된다. 1996년 9월 7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첫 데뷔하여 1집 타이틀곡인 학교폭력을 주제로한 갱스터랩 '전사의 후예'는 잠깐 주목받았다. 1996년 10월 중순경부터 KBS, MBC, SBS 가요 프로에서 20위권에 안착했었다. 1996년 11월 17일 SBS TV가요20에서는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러나 TV가요20은 당시 너무 청소년 취향으로 치우쳐져 있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곡은 사이프레스 힐의 표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일찍 활동을 접었지만 후속곡인 '캔디'가 대박이 나면서 9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자리잡았다.

4.1. 해체

해체 원인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발표도 없고 관련인물들의 말도 다 다른지라 정확한 정보는 없다. 알려진 것은 문희준강타를 제외한 멤버, 장우혁, 토니 안, 이재원이 일방적인 방출통보를 받고 해체되었다는 것 정도. 멤버간 각각 상이한 계약 문제로 인해 일부 멤버가 반발하기 시작하고 멤버들간 불화가 생긴 것이 원인이라는 소리도 있다.

4.2. 솔로 활동

문희준은 그룹 해체 이후 SM 엔터테인먼트에 남아 파란과 논란의(…) 록커 생활을 하였다. 전국민이 안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SM을 떠나 PS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활동하다 2005년 현역으로 군에 입대. 제대 후에는 이더스 HQ로 소속사를 옮겨 연예생활을 하고 있었다가 2012년에 인엔터테인먼트로 옮겼었다. 그 뒤 2015년 1월, 엔스타즈와 계약했다.

강타 역시 SM 엔터테인먼트에 잔류하여 솔로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북극성>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아시아 활동에 매진하던 중 SM의 이사가 되었다. 역시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SM에서 고위 임원직을 겸임하고 있다. 중국 위주로 활동하는데, 중국에서는 본명인 안칠현으로 활동 중.

장우혁과 토니안, 이재원은 해체 이후 SM에서 나와 2001년에 프로젝트 그룹인 jtL을 결성하여 2003년까지 활동하다 이후로는 솔로의 길을 걷는다.

장우혁은 솔로로 전향하여 활동하다 턱관절 문제로 인해 멤버들 중 유일하게 공익근무 후 제대했다. 원래도 평발 때문에 공익판정이었으나, 신체검사를 받기 조금 전에 높으신 분 아들의 병역문제가 터져 신검기준이 대폭 강화된 탓에 현역판정을 받았다는 안습한 스토리가 있지만 결국 공익판정. 공익활동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제대후에는 2011년 6월 솔로앨범을 내고 활동을 재개했으나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한국보단 중국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토니안 역시 솔로 전향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다가 TN 엔터테인먼트, 스쿨룩스, 샤인에니스 등의 사업이 성공하여 "토사장" 등으로 불리며, 미국 영주권이 있음에도[3] 군대에 현역으로 입대하여 복무를 마쳤다. 제대 이후 무릎팍도사에서 말하길 당시에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해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고...이후 군생활로 우울증은 완전히 극복했다고 한다. 이후 현재 스매시라는 보이그룹을 제작, 같이 활동중...이었지만...혜리랑 공개연애했었다가[4] 2013년 가을 불법도박때문에 망함. 2014년 2월 13일 스포츠서울의 기사를 통해 지난해 12월부터 KBS방송 전체에서 H.O.T의 모든 노래가 방송 부적격 곡, 즉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도박으로 인해 물의를 빚은 토니 안이 KBS로부터 한시적 출연규제 조치를 받은 것과 관련해 출연 정지 대상자가 등장하는 영상물이나 음원은 방송될 수 없다는 조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다만 MBC에서는 노래가 금지 규정이 없어서 금지곡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이재원은 솔로 전향 후 2008년 가수 지망생에 대한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준비중이던 정규 2집마저 급버로우, 사건은 성폭행 재판 중 합의로 마무리. 다른 성폭행범이 일행에 있었는데 여자쪽에서 일방적인 오해를 하였다고 한다. 참조 이후 바로 군대에 현역으로 입대하게 된다. 이후 2011년 3월 제대. 중국과 아시아권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4.3. 재결합 가능성

2010년 7월 7일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강타의 말에 따르면, 그룹이 해체된 것은 멤버 간에 계약과 관련하여 서로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오해는 1년 정도후에 각자 다 풀었다고 한다. 문희준도 라스에 출연했을때, 그때 당시 3대 2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인정.

SM에서 나간 세 멤버들은 'jtL'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 1집 53만장을 기록하여 2001년 음반 판매량 10위 기록 임에도 불구하고 SM측의 보이콧 등으로인해 제대로된 방송은 커녕 시상식조차 참가하지 못했다. 자세한 것은 박진영 항목의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 부분 참고.
이외에도 1.5집과 2집은 10만장 이상을 기록 하였다.

2010년 6월 24일SM 엔터테인먼트 이사인 강타가 재결합을 천명하겠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오보임이 밝혀졌다. 그날 기자의 이메일, 전화, 팩스는 모두 불통이 되었다고. 다만 멤버들과 이야기중에 있다고는 한다.

핫젝갓알지 은희상담소에서 재결합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문희준이 직접 밝힌 바로는 해체 이후 재결합 이야기가 몇번 나왔었지만 전설은 전설로 남기자는 데에 멤버들이 모두 동의를 했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과연 전설로 남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한다고...어쨌든 만약 재결합을 한다고 하면 꼭 예전처럼 아이돌 활동을 다시 한다는 의미가 아닌 콘서트나 미니 앨범 발매 식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핑클도 각자 다른 기획사임에도 디지털 싱글을 발매한 적이 있다. 토니 안도 엄연히 중견급 기획사 사장이고, 문희준이경규, 김구라, 이윤석 등이 소속돼 있는 인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그런데 토니안이 사고쳤잖아…안될거야.

이재원 역시 라디오 스타에서 재결합에 대해 밝힌적이 있는데 이재원이 제대하던 날 멤버들 전원이 모였을 때 재결합을 밝힐 계획이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결국 불발되었다고 한다.

2014년 11월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H.O.T. 섭외를 위해 강타가 출연했는데[5], 강타는 H.O.T. 재결합을 조심스럽게 보고 있는 시각이 비춰졌다.[6] 결국 토토가 출연은 불발되었다.[7] 하지만 토토가 본편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H.O.T. 코스프레를 하였고 이후 토토가에 출연했으면 싶은 가수 설문조사에서 H.O.T.가 1위로 뽑히기도 하였다.

5. 스타일

간단하게 보는 주요 활동곡들

활동당시 모습은
  1. 타이틀곡은 사회비판 가사와 강렬한 SMP가 인상적인 곡으로 활동
  2. 후속곡은 밝고 귀여운 곡 or 잔잔한 발라드 곡
이라는 사이클의 반복으로, 지금까지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SM 스타일.(…)4집은 제외한다

4집 타이틀곡인 아이야는 실제 사건인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의 추모곡으로 인기를 얻었다.[8] 이후 투지, 환희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H.O.T.의 역사중에서 사실상 제일 인기가 많고 가장 화려했던 시기였다.

6. 평가

6.1. 실력

1집과 2집에서 강타를 제외한 멤버들의 노래 실력이 상당히 안습했었다. 사실상 1보컬 4래퍼 체제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3집과 4집을 거치면서 서브 보컬을 겸하는 문희준과 토니 안의 보컬 실력도 꽤 상승하여 두 사람이 강타보다 더 많은 파트를 맡기도 했다.[9]

2집 후속곡 행복 live 영상

H.O.T.의 곡들이 강렬한 SMP 곡들이 많다보니 활동 중엔 대부분 립싱크로 대체해버렸다.(...) 그렇지만 의외로 콘서트 영상이나 라이브 영상들을 찾아보면 나름 안정적인 라이브를 하는 영상들을 찾을 수가 있다.[10] 이 가창력 논란은 H.O.T.와 팬덤에게 있어선 거의 원죄 수준으로 따라붙는 꼬리표인데 아무래도 당시 급조 아이돌이 난립하는 가운데 아이돌의 대표 비슷한 위치였던 점도 있고, 궤멸적인 초창기 가창력으로 강한 인상을 남겨줬는데 또 이 첫인상을 확 불식시켜버릴 정도의 가창력을 갖추지는 못했던 터라 이래저래 떼 버리기는 어려울 듯.

6.2. 작사, 작곡

작곡/작사나 프로듀싱에도 직접 참여하는 식으로 뮤지션으로 거듭나고자 스스로 노력했는데, 3집의 후속곡인 빛은 강타가 작사/작곡한 노래고 4집과 5집의 활동곡들도 문희준이 작사/작곡한 곡들이다[11]. 특히 5집은 멤버들만으로 작사/작곡/프로듀싱을 해서 화제가 됐었다. 지금에야 그려려니 하지만, 당시 아이돌들이 직접 곡을 쓴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선배 아이돌이라 할 수 있는 서태지나 듀스는 전부 다 자작곡을 냈고, 다른 가요프로 1위급 가수들이 좋은 가창력을 보여주거나 작사작곡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감안해야 한다.

6.3. 영향과 파급 효과

당시 영세 기획사였던 SM 엔터테인먼트를 한국 최고의 기획사로 키워낸 그룹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혜성같은 등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10대 팬덤을 타켓으로한 기획형 아이돌의 시작이다. 이때부터 대형기획사가 철저하게 사전분석하고 조립한 아이돌의 댄스뮤직이 대중문화를 석권하고 한류의 시작이 된다.[12] 이때 외국에서의 인기도 엄청나서, 따로 활동하지 않던 일본이나 아시아권 뿐만 아니라 유럽권에서도 매니아층이 생겼을 정도였다.

서태지 문화를 향유하기에는 조금 어렸던 사람들 대부분(통상적으로 1983~88년생.)[13]H.O.T.에 관한 추억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서태지 세대보다 어린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에쵸티 세대"라고 칭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태지처럼 앨범 판매량에 대한 얘기는 많이 오가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판매실적이 저조했던 것도 아니다. 1집이 80만장으로 시작해서 2집이 150만장, 3집이 110만장에 4집 138만장, 마지막 5집도 88만장을 파는 기록을 세웠다.[14]

6.4. 관련 산업

인기에 힘입어 H.O.T.의 데포르메 그림을 그려넣은 틱톡이라는 음료수가 발매된 적이 있다. 팬사이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종류는 핑크, 블루, 그린 세종류. 디자인은 3종 모두 밝은 형광색으로 한 것이 특징. '이 음료수는 신기하게도 전부 모아 섞으면 투명한 색으로 변한다'라는 루머가 있었지만 그럴리가...

3집 무렵엔 한불 화장품과 손을 잡고 H.O.T. 향수도 발매했으며, 4집 때는 DNA 목걸이를 팔기도 했다. 이 무렵엔 '평화의 시대'라는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흑역사 흥행 실적 1만이라는 성과로 묻혔다. 보다보면 정말 열심히 연기하는 멤버들이 불쌍할 지경.

6.5. 노예계약

당시 멤버 개개인이 받았던 인세가 고작 20원밖에 안되었다는 사실이 해체 후에야 뒤늦게 드러나면서 당시 H.O.T.의 열렬한 팬이었던 사람들은 지금도 적지않은 수가 이수만을 굉장히 곱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현진영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20원이 어디냐는 말까지 했고(…), 거기다 동방신기마저 H.O.T.의 전례를 따라간다는 소릴 들으며 확인사살[15][16].

심지어 장우혁해피투게더에서 밝힌 바로는 H.O.T. 활동하며 번 돈보다 jTL 활동하며 번 돈이 훨씬 많았다고 한다.

7. 팬덤

H.O.T.가 인기가 많아지면서 흔히 말하는 팬클럽, 빠순이라는 말이 퍼지게 됐는데, 공식 팬클럽을 비롯해 팬덤 문화라는 것은 H.O.T. 팬들이 거의 만들다시피한 것들이 많다. 응원 도구로 흰색 풍선만 사용한다거나, 현수막, 플랜카드, 응원봉 등을 조직적으로 사용한 것도 Club H.O.T.가 최초다. 심지어 응원봉을 만들기 위해 팬들이 직접 일본에서 흰색 LED를 직수입해와 만들 정도로 열성과 충성도도 높다.그럴려고 준 용돈이 아닐텐데 가사가 없는 전주 부분에 멤버들의 이름을 외치거나 구호를 외치는 것도 Club H.O.T.가 처음이며, 심지어 가사 검열로 묵음처리 된 원가사를 팬들이 대신 불러주기도 했다.

공식 팬클럽은 Club H.O.T. 활동 당시에 공식 팬클럽 최다회원수 15만명, 비공식 팬클럽 25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움과 동시에 최초로 안티사이트가 생긴 가수로도 기록에 남았다. 당시에 존재하던 팬클럽 중 가장 무서운 팬클럽이었다고.[17] 문희준이 과거 해피투게더에 출연했을 때 전성기 시절땐 공식으론 78만, 비공식적으론 158만 정도였다고 직접 인증했다.

현재도 선후배 관계(?)간의 기강이 빡센 팬덤계에서 가장 무서운 팬덤으로 통한다.[18] 얼마나 무섭냐하면 신화창조가 초창기에 Club H.O.T.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하다가 몇개월동안 무시당했고(말그대로 공기인간 취급당했다.) 나중에 울며불며 허리숙여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다녔다는 소리도 있고, 심지어 당시 같은 H.O.T.를 좋아하던 남자 팬들은 여자 팬들이 무서워서 콘서트를 관람하는 것 보다는 앨범을 사는 등 간접적으로 활동하는 팬들이 많았고 그 당시 어린시절을 보낸 남자애들의 이야기거리 중에서는 항상 "H.O.T.의 여자 팬들이랑 결혼하는 남자들이 있을까? 만약 그들과 결혼하는 남자들이 만약 아내의 과거를 알게되면 십중팔구 이혼할걸" 같은 말이 포함될 정도였다. 최근에도 일부 엘프들에게 사과문을 받을 정도로 아직도 건재하다.[19]

팬들의 열기만큼 막장도도 심해서 팬덤 문화에서 나오는 각종 사건사고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 당시 H.O.T. 팬들의 막장도가 어찌나 높았냐면 문희준이 모 아이돌 여가수와 스캔들이 나자마자 혈서를 보내고 죽여버리겠다는 협박편지가 전국에서 다반사로 보내지고, 그 여가수를 화장실에 가둬놓고 당장 우리 오빠와 헤어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때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하면서 팬들의 사랑이라는 걸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를 토론했다.

또한 멤버들의 생일파티에 참가한다거나 콘서트가 열리는 날이면 전국의 여학생들이 대거 조퇴를 해버려서 교육부에서 조퇴금지령을 직접 공문까지 내렸으며 9시 뉴스에 멤버들의 생일파티가 이뤄졌다/수능을 보았다는 식의 보도도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H.O.T 9.18 콘서트에서는 문희준이 무대에서 미끄러져서 떨어질 때 200여 명의 팬들이 실신하는 사건이 벌어졌으며, 콘서트를 보고 온 한 팬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관련 영상

동시대에 활동했던 젝스키스가 라이벌로 여겨지고 있지만 실제로 사회적 파장과 인기규모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확실하게 H.O.T.가 당시 아이돌 계의 1인자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문희준이 콘서트에서 사고를 당해 실려 나갔다가 다시 등장했을 때 기절하는 팬들도 있었고, 사고를 당했다는 뉴스가 나오자마자 투신을 시도하는 사건들이 여럿 발생했다. 해체가 확실시 됐을 때 자살시도를 하는 팬들도 있었을 정도(...). 은지원도 "사람들이 젝스키스가 H.O.T.의 라이벌이라고 하는데, 우리 입장에서는 따라가기도 벅찼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팬들이 바라본 시선과 달리 젝스키스와 사이는 괜찮았으며 싸움도 자기네들이 보기에도 서로 민망할 정도라, 우리도 친하다는 걸 보여주길 위해 젝스키스가 캔디를 불러서 했는데 만일 이게 또 말이 나올까봐 H.O.T도 같이 합세해서 춤을 췄다. 하지만 역효과 나버려 더 싸움만 났다고(...).

풍선색은 흰색. 멤버들이 솔로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도 흰색을 사용하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신성시 되는 색이라 신승훈[20]을 제외한 어떠한 가수도 풍선색을 흰색으로 사용하지 못한다. 장우혁이 트위터에 쓴 말이나[21], 문희준도 강심장에서 흰색은 우리거라는 간판을 내 걸었을 만큼 멤버들도 소중하게 생각한다. 비나 비스트 등 후대 아이돌 후배들과 응원색을 가지고 엄청난 대립을 하기도 했으며, 현재 마이네임이라는 보이밴드와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7.1. 팬픽 문화의 시초

나우누리와 천리안 시대, 멤버들을 데리고 팬픽을 쓴 것도 H.O.T.팬들이 처음이었다. 덕분에 다비도프 워터를 쓰는 팬픽 남주의 원조가 되었다.

2012년 11월 17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에 장우혁과 토니안이 출연했다. SNL답게 온갖 망가짐과 짤방감을 뽑아내 H.O.T 팬들에게 동심파괴를 동반한 호응을 얻었다. H.O.T를 재현하기 위해 SNL 크루인 권혁수와 김민교, 박상우가 나머지 멤버 대역을 맡았는데, 이를 역이용해 이미테이션 상황극에서 가짜 멤버들이 진짜 멤버들을 구박하기도 했다.[22] 이건 뭐 노골적으로 문희준, 강타, 이재원 소환 요구. 김민교는 이후에도 문희준 코스프레와 춤을 따라 한다 진짜가 나오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결정타는 팬픽의 BL을 소재로 그대로 재현한 드라마. 팬픽 속 오글거리는 대사와 사랑의 방해꾼 난입, 키스(!)까지 그대로 재현했다. 10대 때 이런 팬픽 썼던 팬이 이걸 보는 심정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H.O.T.를 파는 코어팬들이 아직까지도 있다!! 데뷔 17주년을 맞아 홍대에서 전시회를 열기도...정말 엄청난 충성도를 자랑한다.[23]

2012년, H.O.T. 팬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이 방영되었다.

8. 음반

발매연월제목싱글(활동곡)판매량
1996.09We Hate All Kinds of Violence전사의 후예/캔디90만장
1997.07Wolf and Sheep늑대와 양/행복/We Are The Future150만장
1998.09Resurrection열맞춰/빛1,103,255장
1999.09I Yah!아이야!/투지/환희1,383.985장
2000.10Outside CastleOutside Castle/그래! 그렇게875,38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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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제로 젝스키스와 NRG는 H.O.T.가 대박 터지기 전에는 2인조로 활동할 예정이었다. 젝스키스는 은지원, 강성훈 2인조로 데뷔할 예정이었고, NRG는 이미 이성진과 천명훈의 2인조 그룹인 하모하모로 데뷔를 했었다. 그러나 둘 다 이대로 성공하기엔 무리라 여겨 젝스키스와 NRG로 바뀌게 된 것이다.
  • [2] 현재 포털 사이트에는 그의 생년월일이 비공개로 되어있다.
  • [3] 한국은 미국의 적성국이 아니므로 군 복무 한다고 영주권이 상실되지 않는다. 시민권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지만...
  • [4] 현재는 결별.
  • [5] 이때 강타의 절친한 친구들인 이지훈, 신화신혜성도 함께 출연했었다.
  • [6] 그도 그럴 것이 토니 안은 범죄자의 몸이 되어서 방송에 비추기가 어려워졌고, 다른 멤버들도 제각기 갈 길을 잘 가고 있다.
  • [7] 방송출연 금지를 당한 토니 안은 말할것도 없고 문희준도 동시간대 타 방송 프로에 고정패널로 출연중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까운 섭외였다. 워낙 90년대 시절 H.O.T.의 위상이 어마어마하다보니 아예 무시할 수도 없어서 섭외시도라도 해본걸로 추측된다.(이는 역시 비슷한 이유로 출연이 불가능했던 젝스키스도 마찬가지)
  • [8] 15년 후인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발하면서 이 노래가 다시 주목받기도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 [9] 토니 안은 캔디에서 많은 클럽 H.O.T. 회원들이 그렇게도 단지라는 사람을 극혐했다는 후렴구를 불렀고, 문희준 역시 캔디에서는 랩 없이 보컬만 했으며 사실 이 노래는 장우혁만 랩한다. 이재원도 짧게 나마 노래만 한다 행복, 빛 등의 노래에서도 그의 보컬을 들을 수 있다. 사실상 이 두 사람이 다른 멤버에 비해 압도적인 파트를 가졌던 노래는 4집 후속곡 투지인데 이 노래는 문희준으로 시작해서 토니 안으로 끝이 난다. 투지에서는 그 강타가 파트가 줄어 상당히 오랜만에 랩을 할 정도였다.
  • [10] 물론 초창기엔 프로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라이브 영상들이 있지만 당장 1집과 2집의 라이브 영상을 비교해 보면 급성장한 실력들을 볼 수 있다. 뭐 급성장했대봐야 2집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고...1집은 경악 수준 그래도 성장을 계속해서 해체할 때쯤인 4, 5집 정도 가서야 멤버들 개개인의 실력이 적당히 올라왔다. 안 그랬으면 세번이나 단독 콘서트를 열지도 않았을거고, 콘서트들에선 대부분 립싱크 없이 라이브로 소화했다. 단 이 부분은 멤버들에게 알맞은 부분을 배분해주는 프로듀싱 능력도 절묘.
  • [11] 문희준은 후에 솔로로 데뷔해서 안티의 아이콘이 된 적도 있지만 가요곡을 쓰는 능력은 괜찮았다. 록을 하겠다고 한 것이 문제였지.
  • [12] 최근에 아이돌 세대 구분을 하면서 나오게 된 '1세대 아이돌'이라는 말에 어폐는 있을지언정 소속사에 의해 철저히 멤버 각각의 역할이 분담되고, 10대 팬덤을 타깃으로 하는 등 현 세대 아이돌의 기본적인 구조를 성립한 그룹으로서 H.O.T.가 선두에 서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13] 1980년대 초반 생들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1세대 아이돌 문화를 둘 다 향유하였다. 1992~96년 당시 국민학생들도 서태지와 아이들 싫어하는 사람 없었으므로...그 국민학생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어 1세대 아이돌 문화의 주축이 되었다. 국민학교는 1995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나, 실질적으로 폐지된 것은 사실상 1996년이다.
  • [14] 여기서 5집은 세 달 동안 집계한 수치다. 2000년 10월 발매해 그 해 연말까지의 기록이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엔 팬층의 비중이 높은 아이돌일수록 초반에 엄청 팔리고 차트에서 빠르게 순위가 내려갔으므로 의문을 가질 수가 없는 판매량이다. 저 판매량으로도 조성모 3집과 리메이크, god 3집, 서태지 6집 다음으로 그 해 5위의 순위를 기록했다. 마지막 앨범이었던데다 강타의 음주운전으로 활동을 갑자기 접었고, 워낙 강자들이 쏟아져나온 별들의 전쟁 시기였으므로 조작 의혹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 [15] 사실 앨범 판매에 의한 수익분배 문제는 H.O.T. 등의 SM 소속 가수들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닌 국내외 음악계 전반에 널리 퍼져있는 문제이다. 지금도 곡 하나를 MP3로 사면 가수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고작 20원. 물건너 일본 역시 1000엔짜리 싱글 한 장이 팔리면 가수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1%가 안되는 9엔에 불과하다.(…)
  • [16] 동방신기는 2대3으로 멤버가 나뉜 것과 나간 멤버들이 자신들의 영문 이니셜로 새 그룹 이름(JTL과 JYJ)을 만든 것까지 H.O.T와 똑같다. 노래로 전 회사 디스한 것도 같다. 그나마 SM에 남은 멤버들이 동방신기 활동을 계속 이어가서 표면상 해체는 아니지만.
  • [17] 이후 동방신기가 공식팬클럽 20만명, 인터넷 팬클럽 회원수 80만명으로 기록갱신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으나 club H.O.T.는 그 당시 유료 팬클럽 회원수만 집계한 것이고(이때 회비도 학생들에게 상당한 금액이었던걸 감안하면 엄청난 숫자) 동방신기 팬클럽 80만명은 공식카페의 회원수이다. 당시 H.O.T.의 공식 외의 팬클럽과 천리안등의 PC통신의 회원수를 합치면 80만명은 아주 우스운 수이다.
  • [18] 현재는 H.O.T. 멤버들의 개인 팬덤을 모두 아울러 제일 위에 놓고 있다.
  • [19] 다만 이 경우에는 엘프들이 '~~온탑'이란 닉네임 소유권을 주장하고 쓰기 시작한것도 최초라고 우기면서 어그로를 끌었고 이에 H.O.T.팬이 나서서 고대의 자료들을 보여주면서 닥버로우하고 사과문을 쓴 것.
  • [20] 원래 신승훈 팬들이 먼저 사용하던 색이나, 당시에는 '공식 색깔'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 [21] 흰색은 무조건 우리꺼죠. 누가 뭐라고 하던가요?
  • [22] 아예 본인들이 "믹키유천(토니안)이랑 슈주 은혁(장우혁) 이미테이션하다 왔어요"라고 대사를 치는 등 온갖 망가짐을 감수했다.(…)
  • [23] 해체한지 10년이상 지난 아이돌그룹을 아직까지 좋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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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0 02: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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