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IL-2

last modified: 2014-11-02 01:01:47 by Contributors

Contents

1. 지상공격기 IL-2
1.1. 개발과정
1.2. 2차대전기의 IL-2
1.3. 여담
2. 게임 IL-2


1. 지상공격기 IL-2

(ɔ) no info from


베를린 전투에서


IL-2 슈투르모빅(Штурмови́к)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항공기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맹활약한 구소련의 대지공격기. 1943년 7월 쿠르스크 전역에서의 활약으로 독일군에게서는 '''Schwarzer Tod ― 흑사병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또는 "날으는 T-34"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IL-2 시리즈의 총 생산량은 3만 6,000대 이상. '슈투르모빅'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소련군(러시아군)이 '대지공격임무를 주로 하는 군용기'를 가리키는 군용항공기의 구분으로, 직역하면 '공격기'가 된다. 가끔 Il-2가 슈투르모빅이라 불리는 건 이 기체가 가장 유명한 슈투르모빅이기 때문이며 원래는 이 기체를 가리키는 고유명칭이나 애칭은 아니다. 슈투카와 비슷한 케이스.

소비에트중앙설계국의 기사 세르게이 블라디미로비치 일류신이 설계하였으며 강력한 무장과 방어력[1]을 갖춘 걸작 공격기라는 평가를 받는다. 두꺼운 강철판으로 조종석을 보강하여 조종사 생존율을 높이고[2] 기관포와 기관총, 로켓탄 등 다양한 무장을 탑재하였다.

1.1. 개발과정

1938년 말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항공기에 주목한 소련정부가 소비에트중앙설계국에 대지공격기 개발을 지시하였다. 1939년 10월 TsKB-55라고 불린 2인승 시제기가 첫 비행에 성공하였으나 문제가 드러나면서 엔진을 교체한다.

그러나 여기서 초대형 병크가 발생했으니, 그것은 바로 소련수뇌부가 후방사수를 없애고 그 자리에 연료를 더 채우라고 요구한 것. 그렇게 되면 후방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설계진은 반대했지만, 스탈린의 명령에는 항거할 수 없었고 그래서 1인승 TsKB-57가 만들어졌다. TsKB-57는 1940년 10월 시험비행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었고 1941년 초 양산되면서 IL-2라는 제식이름이 붙었다.


1.2. 2차대전기의 IL-2


독소전쟁이 터지자 소련수뇌부의 병크는 제대로 보답을 받았다. 독일 전투기들이 Il-2의 뒤로 몰려와서 공격을 해댄 것. 덕분에 전장에 투입된 IL-2 대부분이 격파당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청이 빗발친다. 그러나 높으신 분들의 의사에 거역하는 것은 그 당시 소련에서는 자살행위였고, 결국 야전부대에서 알아서 아래처럼 구식 폭격기나 수송기에서 분리한 포탑등을 이용하여 후방사수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포탑은 당연히 부족했고 대부분의 야전부대는 그냥 후방에 기관총을 달고 조종석 뒤쪽에 공간을 만들어 후방총좌로 이용하였다. 물자가 부족한 일부 부대에서는 천으로 만든 해먹임시 좌석(...)이 있었을 정도라고... 그리고 이런 임시방편식 후방총좌는 당연히 중량 증가와 항력 증가로 인해서 로켓 탑재를 줄였음에도 기동성의 저하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정치장교가 꼴통이면 그런 것도 없다 히틀러 총알에 죽기 vs 스탈린 총알에 죽기

그리고 독소전쟁 초기에 소련 공군의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어서 IL-2도 대지공격이 아니라 요격기도 자주나갔으며, 안그래도 무거운 기체중량과 기동력 저하로 인하여 날랜 독일 전투기들의 밥이 되었다. 가끔씩은 Ju-87 슈투카와 지상공격기대 지상공격기의 매치를 하기도 했다고.

1942년에야 상부의 허가가 떨어졌고, 후방사수석을 신설한 IL-2M이 개발되었다. 처음에는 장갑판으로 후방사수를 보호하려고 했지만, 무게 문제가 있어서 그러지 못하고 측면에만 빈약한 방탄판을 설치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독일 전투기들은 IL-2의 후상방에서 총을 쏘았고, 그쪽으로는 아무런 방호장비도 없었다!

게다가, 독일 전투기들이 후방사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일부러 IL-2의 직후방으로 접근하는데, 이렇게 될 경우 후방사수는 비행기의 꼬리날개가 시야를 방해하고, 기관총 발사시 꼬리날개가 파손되면 비행기가 추락할 것을 우려해서 사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반해 독일 전투기는 맘놓고 후방사수부터 정밀하게 조준해서 끔살시킬 수 있었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결국 병사들은 후방사수 자리를 거부하게 된다.

그래서 소련군은 형벌 부대에서 선발한 인원으로 공군 형벌부대를 만들고, 이들을 후방사수석에 태웠다. 물론 딱 기관총 사격훈련만 시키고, 낙하산 따위는 지급하지 않았으며, 그런 것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원래 형벌 부대란 것이 소모품 이하의 취급을 받은데다가, 어차피 비행기가 격추되기 전에 제일 먼저 적 전투기의 집중사격을 받고 죽을 것이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죽어도 독일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기관총에 스프링을 달았다는 점이다. 독일 전투기의 총격에 후방사수가 죽을 경우 기관총이 아래로 푹 쳐지는데, 그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3]

그러나 후방사수 역을 맡은 사람이 모두 형벌부대원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반병사가 후방사수역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으며, 일반 병사들도 이 후방사수자리에 앉아서 싸우다가 전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련측에서는 결국 후방사수 보호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1944년도가 되면 후방사수석 주위에도 13mm의 장갑판을 붙이기도 했다. 또한 DAG-10이라는 수류탄 투척기를 달았다.[4]

일단 독일군 요격기가 따라 붙으면 Il-2는 저공으로 내려와서 독일 요격기가 실속해서 추락하거나 후방사수의 기관총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후반으로 가자 IL-2 파일럿들이 대공방어편대를 펼치면서 출격해서 독일 요격기가 이들을 공격하기 매우 껄끄러웠다.일단 엄청나게 향상된 소련 공군기와 파일럿들 부터 먼저 상대해야 한다는 함정이 있지만 게다가 이 당시에 독일군도 숙련자들은 서부로 보내 더 심각한 방어력을 가진 B-17을 막는데 투입해야 했다.

그리고 개발된 것이 날개를 15도 정도 후퇴시켜 비행성능을 개선한 IL-2M3이다. IL-2M3는 1720마력의 미쿠린 AM-38F 수랭식 피스톤 엔진 1개를 탑재하였고 무장은 양쪽 날개에 23㎜ 기관포 2문과 7.62㎜ 기관총 2정, 조종석 뒤에 12.7㎜ 중기관총 1정을 장착하였다. 또 동체 안 폭탄창과 동체 아래 100㎏ 또는 250㎏ 폭탄, 주날개 아래에는 RS-82 또는 RS-132 로켓탄을 탑재하였다.

이후에는 대전차용으로 37mm 기관포[5]를 장착한 버전도 나타나며,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소련군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지속적으로 출격한다.

중장갑으로 떡칠했기 때문에 다른 연합국의 지상공격기, 예를 들어 P-47 썬더볼트나 호커 타이푼보다는 폭장량이 떨어졌다. 또한 Ju-87와 같이 족집게처럼 목표를 타격하는 급강하 폭격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공격의 정밀성도 떨어졌다. 게다가 신병이나 다름 없는 파일럿을 자주 출격시켰기 때문에(수많은 여성파일럿들이 Il-2를 몰았으며, 심지어는 농부를 징집해서 몇시간 비행 경력으로 전투에 출격시키기도 했다 했다), 일반적으로 초보 파일럿들이 몰았다. 그럼에도 워낙 대규모로 생산되고 출격했기 때문에 이런 단점을 물량으로 상쇄하였다. Il-2는 많이 생산된 만큼 손실량도 엄청났다.[6]

쿠르스크 전투에서 Il-2는 맹활약 했는데, 이때쯤이면 소련 공군이 동부전선의 제공권을 두고 독일군과 대등하게 싸웠기 때문에, Il-2는 적의 요격기를 신경쓰지 않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었다. 그래서 떼거지로 몰려오는 Il-2는 독일군 기갑부대에게 저승사자 노릇을 했다.[7] 독일군은 이 IL-2를 가르켜 흑사병이라고 할정도 였다.

그 최종개량형인 IL-10은 전후에도 양산되며 많은 국가에 제공되었고, 6.25 전쟁에도 북한 공군 소속으로 참여하게 되지만 이미 시대는 제트기의 시대, 며칠만에 미국의 P-80 슈팅스타에게 모두 박살났다.

1.3. 여담


여담으로 오토 카리우스가 지휘한 티거 중전차에게 한 대가 격추된 적이 있다. 편대로 진격해오던 IL-2 중 한 기를 카리우스의 티거가 기총도 아닌 주포로 잡은 것. 현실에서 배틀필드 찍는다 우연의 일치라는 주장도 있지만 일단 독일 기갑사단의 티거 레전드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8] 원래 티거의 주포인 88mm이 대공포이긴 핬지만 티거용은 포신이 짧아지고 앙각이 작아졌음을 고려하면.......

또 다른 여담으로 이오시프 스탈린의 차남 바실리 스탈린도 전쟁 당시 IL-2 파일럿이였다. 26번 출격했다고 하며, 20 대에 공군 장성까지 진급. 26번 출격 이외의 공식 전과로는 독일군의 Fw-190의 격추도 있는데, 이게 요즘으로 비유하자면, A-10으로 Su-27을 격추한거나 다름이 없으니 구라가 아니라 진짜라면 대단한 전과이긴 하다. 장성으로 진급해도 괜찮을만한 대기록.. 그리고 전후 모스크바의 승전기념 에어쇼에서 충돌사고가 나자 스탈린이 직접 책임을 물어 해임했다.


또 또다른 여담으로 전쟁 초기에 우랄 산맥 근처로 공장들을 이전했는데 너무 급하게 옮기느라 지붕을 덮지 않고 공장을 가동할 정도 였다고 한다. 가혹한 환경때문에 생산량이 저조하자 "IL-2는 우리 군의 빵과 공기처럼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현재의 생산량이 너무나 저조한것에 실망하고 있다"라는 스탈린의 편지를 받기 무섭게 생산력이 급 상승하여 1941년 1134기의 생산량중 독소전 발발후 885기 생산이라는 무시무시한 업적(?)을 이룩하였다.

이 기체가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지 러시아 게임 워 썬더에서는 독일 공군을 무려 도그파이트로 농락하는 위력적인 기체로 재탄생했다. 응?

2. 게임 IL-2

목참조
----
  • [1] 설계 당시 날개를 단 탱크라는 생각으로 설계했다고 한다.
  • [2] 이른바 욕조형 구조라는 것이며, 미국의 A-10도 따라할 정도다.
  • [3] 이 방법을 고안한 자는 레닌훈장을 받았다! 흠좀무
  • [4] 이 수류탄은 발사후 낙하산이 펴진뒤 3초후 폭발하였다. 전투기 격추용 보다는 심리용 무기였다.
  • [5] 비슷한 시기에 슈투카 역시 37mm 대전차포를 장착하였다
  • [6] 물론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미국의 자원 지원으로 인한 기체 방호력의 향상과 파일럿들의 숙련화로 손실량은 점점 줄어 들었다. 오히려 독일이 파일럿들에 대한 확보부족과 지속된 전략 폭격으로 질적인 면에서 점점 소련 공군에 꼬리를 잡혔다.
  • [7] 23mm 기관포는 웬만한 장갑차량은 걸레짝으로 만들수 있었다.
  • [8] 오토 카리우스 회고록을 읽어 보면 맨날 똑같은 경로로 가길래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세팅해놓고 쐈는데 격추했다고 한다. 우연과 계산의 합작.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4-11-02 01:01:47
Processing time 0.1686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