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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1983년

last modified: 2014-12-12 14:23:12 by Contributors

역대 K리그
1983시즌 1984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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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리그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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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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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로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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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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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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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독수리

Contents

1. 창설 배경과 준비
2. 대회 방식
3. 시즌 결과
4. 의의
5. 관련 항목


1. 창설 배경과 준비

실업축구로 진행되던 한국의 성인 축구리그는, 최순영 前신동아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프로화의 닻을 올리게 된다. 최 회장의 공약 중의 하나가 바로 프로화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실업리그를 1부리그와 2부리그로 나누고 승강제를 진행하려는 노력이 1975년에도 있었고, 1980년에도 시도하려다 실업팀의 반발로 실패한 적이 있었다.

또한 당시 정권의 3S정책에 힙입은 바도 있었고, 무엇보다 전두환 대통령이 축구광이란 점이 가장 큰 배경이었다. 사실 전년에도 축구와 야구를 놓고 어느 종목을 먼저 프로화할 것인지 논의가 있었다. 당시 최순영 전 대한축구협회장은 축구의 프로화계획에 대해 물어보기에 축구는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확신을 갖고 말했지만, 청와대 수석참모들이 축구 대신 야구를 밀어줬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야구와 축구 중 프로화에 드는 비용을 놓고 이견이 있었다고 하며, 축구협회 측에서 프로화 비용으로 139억원을 국비로 요구하게 되자, 비용에 난색을 표했고, 야구계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1983년 2월에는 슈퍼리그 창설위원회가 축구협회 산하에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끊임없이 장애물들은 등장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 프로팀 초청건이었다. 국가대표팀과 브라질 프로팀과 초청경기를 통해 축구열기를 지핀다는 계획은 참신했지만, 당시 지방의 각 시도의 협회 지부는 "프로야구 때문에 관객유치가 곤란하다. 적자를 내면서까지 대회를 유치할 수는 없다"며 반대한다. 뿐만 아니라 프로화에 대해 오히려 실업팀이나 프로팀마저 슈퍼리그에 제각각의 이유를 대며 딴지를 거는 통에 협회는 내부간 싸움까지 겹쳐 어수선한 상태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일신한 것은 그해 개최된 대통령배로, 협회는 첫 개막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무료로 개방함으로써 72게임 동안 20만명의 관중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주택은행한일은행, 그리고 현대자동차-오늘날 울산 현대-가 슈퍼리그 참가를 요청해올 정도로 열기는 무르익게 된다.

2. 대회 방식

당시 대회 방식은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주, 춘천, 마산, 안동 등 총 9 도시를 순회하며 모두 40경기를 벌이는 것이었다. 하루에 두 경기씩 토요일, 일요일에 경기를 개최했고, 형식상 각 팀당 지역연고는 존재했으나 사실상 미약했다.

3. 시즌 결과


순위 승점 득실차 비고
1 할렐루야 독수리 20 6 8 2 +8 우승
2 대우 로얄즈 19 6 7 3 +7
3 유공 코끼리 17 5 7 4 +4
4 포항제철 돌고래 16 6 4 6 0
5 국민은행 까치 8 3 2 11 -19

수퍼리그 1983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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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독수리
첫 번째 우승

4. 의의

본격적인 프로 리그의 출범이자 원년이라는 의미 뿐만 아니라 흥행도 평균 2만여명을 동원하는 등 우수한 성적을 보였던 한 해였다. 뿐만 아니라 시즌 경기가 TV를 통해 중계됨으로써 저변을 확대할 수 있었고, 그동안 사그러들던 축구열기를 다시 지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총 5팀 중 프로팀은 2개, 실업팀은 3개로 구성되어 있어 아직 진정한 의미의 프로리그라고 보기가 힘들었고, 하루에 2경기씩을 개최하는 살인적인 일정 또한 아직 프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쨌든 슈퍼리그의 출범으로 인하여 기존의 실업팀 중 프로화를 생각하는 팀이 늘어났고, 프로화는 대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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