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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뉴스 9

last modified: 2015-04-12 16:58:03 by Contributors


매일 밤 9시에 방송되는 KBS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 그리고 공중파 중 유일한 9시 뉴스. 한시간 느린 뉴스 KBS 9시 뉴스

종편의 경우 JTBC 뉴스 9이 있었으나 2014년 9월 22일부터 이름을 바꾸고, 밤 8시로 옮겨갔다. 다만 평일에 9시 40분까지 방송하기 때문에 여전히 경쟁대상이다.

KBS 1TV, U-KBS star(DMB),KBS 제1라디오, KBS 제3라디오, KBS 한민족방송, KBS 월드(단파, 위성 TV 모두)에서 방송된다. 한때 KBS 제2라디오로도 동시 방송된 적이 있었다.

Contents

1. 역사
2. 타이틀, 스튜디오, 그래픽
3. KBS 스포츠 9
3.1. 진행자와 역대 진행자
4. 방송사고
5. 관련항목


1. 역사

국영방송이던 시절에도 저녁 뉴스는 존재했지만[3] 지금과 같은 TV 메인뉴스 개념은 1973년에 공사화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를테면 그때 그때의 속보 원고가 아닌, 하루 동안에 일어난 리포트를 정리해서 한번에 방송하는 형식.

단, MBC 뉴스데스크TBC 석간[4] 같은 경우와 달리 KBS의 경우는 아나운서가 원고를 읽어서 보도하는 유럽식 뉴스캐스터 방식을 1980년대까지, 상당 기간 유지했다. 이웃나라 일본의 NHK, 그리고 본고장 유럽의 BBCARD가 이런 방식이었다[5](물론 요즘은 유럽도 기자를 동원하는 미국식으로 전환하는 추세). NHK는 심지어 지금도 상당수의 뉴스 원고를 아나운서 읽는 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 점은 NHK보다 KBS쪽이 더 빨리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초창기인 1973년에는 'KBS 뉴스와 해설'이라는 타이틀로 밤 9시에 방송되었다. 동년 가을 개편 때에 'KBS 종합뉴스'로 타이틀을 변경하면서 MBC 뉴스데스크에서 시도되던 리포팅 형식을 받아들었으며, 1974년 봄 개편 때 밤 10시로 옮겼고 토요일 밤 뉴스를 'KBS 뉴스'로 분리하였다. 1975년 봄 개편 때 9시로 복귀하고, 그 해 가을 개편 때에는 분리되었던 주말 KBS 뉴스를 KBS 종합뉴스로 재통합시켰다. 지금의 타이틀인 KBS 9시 뉴스는 1977년 가을개편 때부터 시작. 1980년 가을 개편 때에는 컬러방송 시대를 맞아 일요일 밤 9시뉴스를 뉴스 파노라마라는 이름으로 독립시켰고 일본식 연성뉴스와 심층취재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 때 진행을 맡았던 사람이 '사랑방중계'로 유명한 원종배 아나운서. 그리고 1980년부터 1981년까지 한 동안 토요일 밤 9시뉴스를 KBS 토요뉴스라는 이름으로 분리시키기도 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뭐 공공기관이 다 그렇지 철 되면 뗐다 붙였다

1984년 가을개편 때 'KBS 뉴스센터 9'로 타이틀을 바꾸었었으며 그런데 아예 대놓고 NHK 뉴스센터 9시을 베낀 티가 난다.[6] 1986년 가을개편 때에 다시 'KBS 9시 뉴스'로 타이틀이 환원되었다. 물론 기사의 질이 조선 중앙 텔레비죤과 자웅을 겨룰 수준이라는 건 바뀌지 않았었지만... 1988년 봄 개편 때에는 일요일 밤 9시에 방영되었던 '지구촌 지금'이 KBS 9시뉴스로 통합되고, 1989년1993년 두 차례씩 심층뉴스 코너인 뉴스초점이 분리되기도 했다.

약 40여년의 9시 뉴스 역사 중 딱 한번 방송중단이 된 적이 있다. 바로 1990년 KBS 파업 때 박성범 앵커(당시 보도본부장, 전 한나라당 의원)의 뉴스송출 중단 지시가 그것. 민주화 이후 불붙기 시작한 노동투쟁 과정에서, KBS 본사와 서영훈 사장 해임과 서기원 당시 사장의 낙하산 인사를 반대하는 노조와의 충돌이 원인이라고 한다. KBS 노조의 폭력성을 검증하기 위해 낙하산 사장을 임명 해보겠습니다. 뉴스가 특집으로 편성되거나 혹은 뉴스특보로 대체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2014년에도 길환영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노조쟁의가 일어나 단축뉴스는 계속되었다. (후술하는 내용 참고바람) 뉴스 자체가 중단되었던 것은 저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참고로 이 당시 KBS 9시뉴스 주말 앵커였던 신은경 전 아나운서는 평일 KBS 9시뉴스 앵커인 박성범과 결혼했다. 참고로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무려 18살(…).[7][8] 여하튼간에 이 시기에 KBS 사태가 결국 노조의 패배로 돌아오면서 보도성향도 다시 친정부적으로 돌아왔다.

1991년 봄개편 들어 일요일 밤 9시 뉴스를 르포 60이랑 통합시키면서 "일요 9"라는 명칭으로 변경시켰고, 1992년 봄 개편 당시에는 타이틀이 KBS 9 뉴스현장으로 바뀌었고, 일요9은 기동취재 현장[9]이 일요일 밤 9시 20분으로 시간대가 옮겨지면서으로 20분정도로 축소시켰다가, 그 해 가을에 KBS 일요9을 기동취재 현장과 통합시켜 KBS 일요9현장으로 변경시켰고, 이듬해인 1993년 봄개편때 KBS 뉴스라는 쌈박한 명칭으로 변경하더니, 1993년 가을 개편 때 현재의 KBS 뉴스9라는 타이틀로 변경되었다.

MBC의 뉴스데스크에 뒤져 시청률 콩라인이었던 KBS 뉴스 9은 1994년 10월 1일 KBS 1TV의 상업광고가 폐지되고 보도 프로그램을 강화하면서[10] 기세를 얻고 덧붙여서 "그대가 그리워 질때", '옛날의 금잔디'의 시청률 상승까지 힘입어 MBC 뉴스데스크를 추월, 마침내 시청률 1위를 기록. 이 시청률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11] 2013년 현재 웬만한 주중 10시대 드라마나 타사의 일일극 또는 주말극이 20%를 넘기며 흥하지 않는 이상 주간시청률에서 KBS의 주말 드라마일일 드라마에 이어 3위를 고수하고 있었으며 2013년 하반기부터는 KBS 2TV의 일일 드라마가 가세하면서 4위를 고수하는 편.[12] 당연하지만 KBS에서 하는 뉴스프로그램 중 가장 시청률이 높다.[13] 현재 시청률은 대략 15%를 넘나들고 있다.

또한 KBS 뉴스 9의 우산효과도 한 몫 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거의 매일 평일 시청률 1위를 유지하는 8시 20분~9시에 방영되는 일일 연속극의 인기도 상당히 좋아서 아무리 못해도 시청률 20%이며 주 시청층이 중·노년층이라 웬만해서는 주 시청층이 이탈되는 현상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막장 드라마들인건 안 자랑. 오죽하면 KBS 뉴스 9 시작하기 기다리면서 평소에 안 보던 일일 연속극을 5~10분 정도 시청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 故 이낙훈 선생의 '옛날의 금잔디'가 공전의 히트를 쳤던 것을 시작으로, 몇 차례 MBC나 SBS에게 일일연속극 시청률을 뺏긴 것 빼고는 KBS의 일일 연속극 방송 시간은 거의 절대시간이나 다름없다(...)

경쟁 프로그램이었던 MBC 뉴스데스크가 드라마와 함께 경쟁에서 밀려나 2010년 11월 6일부터 주말 8시로, 이후 2012년 11월 5일부터 주중도 8시로 개편됨에 따라 지상파 방송에서는 유일한 9시 뉴스로 남게 되었다.한시간 느린 뉴스, 유일한 9시 뉴스, KBS 뉴스 9입니다 그리고 2013년 가을개편에서 JTBC 뉴스 9를 의식했는지 앵커와 스튜디오를 교체한건 물론이고 통상적으로 20:58분에 방영하던 헤드라인을 9시 정각에 오프닝 음악이 나온 뒤에 나오게 하고 있고, KBS ID를 내보낸 뒤에 시보 영상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아날로그 형태의 시계가 나타나면서 9시를 알렸으나, 현재는 KBS ID를 배경으로 디지털 형식으로 시보를 안내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보 당시에는 맑은 음과 함께 5초 동안 보여줬으나(아래 참조), 지금은 영상 ID에 디지털 형식의 시계를 그대로 넣어서 내보내고 있다. 게다가 효과음도 예전의 "뚜- 뚜- 띠!"로 바뀌었다. 또한 2013년 9월 6일 방영분 부터는 유튜브에서도 9시 뉴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 하지만 옆 방송국이 하는 다시보기 서비스에 비하면…

2014년 5월 6일,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들을 교통사고 사망자와 비교하는 발언을 한 것이 밝혀져 큰 물의를 빚었다. 결국 5월 8일 팽목항의 유족들이 서울로 올라와 KBS 사장을 불러내었고[14], 이윽고 이들이 청와대까지 몰려가는 등 사태가 험악해지자, 길환영 KBS 사장은 유족에게 사과하였고 김시곤 보도국장은 사임했다. 그런데 김시곤 보도국장의 사임 기자회견에서 길환영 사장의 청와대와의 유착을 주장하며 사임을 요구하는 깜짝 발언이 나왔고, 사태는 일파만파 커져 결국 언론장악을 시도하는 청와대 규탄과 KBS 사장 사퇴 요구가 거세지게 된다.

결국 5월 19일부터 KBS 기자협회가 친정부 보도를 강요하는 등 뉴스 제작에 개입한다는 혐의를 받는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그 날부터 방송시간이 20분으로 단축되었다. 이 기간동안 9시 뉴스를 비롯한 모든 KBS 뉴스 프로그램에서 기자협회원이나 노조원이 아닌 기자를 동원하기 힘든 경우에 한해 NHK 뉴스처럼 앵커가 기사내용을 읽어줬다. 제작거부는 이후 PD와 아나운서 직군까지 확대되었으며, 결국 길환영 사장의 해임이 가결된 후 6월 6일부터 다시 정상적인 뉴스가 나가고 있다. 길환영 사장이 떠난 직후인 6월 11일 KBS 뉴스 9는 첫 뉴스부터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의 부적절한 발언을 터뜨리면서 근래의 관변 뉴스의 스탠스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였다. KBS 기자협회의 변7월 30일에는 3개월 동안 묵혀놓았던 윤일병 구타살해 사건의 전말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여담으로 이 리그베다 위키 내에선 뉴스 프로그램들 중엔 그나마 항목이 빨리 개설된 편이나 왜인지 모르게 거의 듣보잡에 불과한 8時 뉴스파노라마보다도 늦게 항목이 개설되었다(…).

2. 타이틀, 스튜디오, 그래픽


1980년부터 현재까지 쓰는 오프닝 변천사. 뉴스파노라마의 흥겨운오프닝도 섞여있다. 옆동네 간판뉴스와는 달리 1993년부터 2008년까지 음악 편곡은 하나도 안했다.[15]


1982년 당시 오프닝 및 엔딩. 저 둥근 "9"로고를 보라!
지금과는 다르게 매우 건전한(?) 뉴스 시그널이 특징. 6-70년대 뉴스 시그널을 듣는 느낌이다.[16]전두환의 만국순방소식 특집뉴스(...)가 나온다.

1986년 당시 "KBS 뉴스센터 9". 1984년부터 1986년까지에는 뉴스센터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대놓고 대통령 외국 순방 일정 찬양 뉴스 보도하는 건 덤

1987년도 후반 오프닝.[17] KBS 9시 뉴스는 이 즈음부터 대략 'NHK 뉴스센터 9시'의 영향과 80년대의 '못해도 2등'이라는 안일함에서 벗어나 자체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1987년 후반부턴 제대로된 3D 그래픽도 쓰인다. 하지만 뉴스내용은 아직 땡전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88년초 ~ 1990년 초반 오프닝. 약 2년간 사용한 오프닝인데 종전과는 완전 다르게 상당히 잘 뽑혀져 나왔다. 당시 세계 수준을 고려해도 전혀 꿀리지 않고 오히려 수준급. 솔직히 1990년대까지 썼어도 간지 촬촬이었을듯.

이 당시 KBS는 1) 군사정권 방송 이미지 벗기 2) 서울 올림픽을 대비한 방송 퀄리티 상승이라는 2가지 아젠다 때문에 쇄신을 요구받고 있었다.

1988년초 ~ 1990년 초반 클로징(1989년 녹음)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의 오프닝 일부. 김수녕 선수의 시상 장면이 오프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의 오프닝 완전판. 폐막식이 거행된 1988년 10월 2일 밤의 방영분이다. 이렇게 보니 레알 간지 작살

1990년 한 해 동안 사용된 오프닝이다. (이 때는 1990년 5월 24일) 기존 CG는 그대로 사용하고 동시에 스튜디오를 추가로 비추고 있다. 덤으로 BGM도 변경되었다. 어째 1988년 당시 오프닝 곡이 더 나아보이는 건 기분탓인가.

1991년 오프닝. 종전하고는 다르게 '9'가 필기체로 쓰인 건 덤. 어째 더 퇴보한 것 같다. 그래도 음악은 좋다.

1992년 오프닝 1992년 4월부터 1993년 5월까지는 평일은 KBS 뉴스9현장 주말은 일요9=>일요9뉴스현장이라는 명칭이었다.
1993년 5월~10월 오프닝

1993년 10월~1995년 오프닝. KBS 뉴스9라는 명칭이 드디어 정착되었던 시기다. 그런데 그래픽이 묘하게 80년대 중반 BBC 9 o'clock News 짝퉁인데 이 당시부터 사용된 시그널 음악은 2008년까지 사용되었다.[18] 사실 2008년 이후에 쓰이는 것도 이 버전을 관현악으로 어레인지한 것에 불과하긴 하다.

1999년 오프닝

2010년 5월부터 2014년 12월 31일까지 사용되었던 오프닝. 중국 CCTV처럼 시보광고를 집어넣어도 될듯
음악은 이미 2008년에 어레인지 되었고, 오프닝 효과도 2010년 이후론 별 다른 변화가 없다.[19] 심플하고도 세련된 SBS 8 뉴스의 시그널이나 스튜디오에 가상 효과까지 이용한 뉴스데스크 시그널에 비하면 단순한 편이다. 참고로 이 뉴스는 2014년 1월 27일자. 매우 친숙하지 않은가?

2015년 1월 1일새해특집 오프닝 #

2015년 1월 2일부터 사용하고 있는 오프닝이다. 9 로고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게 어쩐지 1991년 오프닝을 떠올린다. 그리고 뉴스 9 로고를 백스크린에 비춘다. 그리고 음악은 하나도 안 변했다 2000년대부터 KBS1 채널 전반에 사용하고 있는 블루+화이트+유리질감 큐브 CI를 전면적으로 채용했다. (타이틀 플레이 직전에 나오는 '한국인의 중심채널' 슬로건 옆 CI랑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2013년 10월 28일 개편의 여파로 ID가 끝난 뒤 꽤나 간지나는 시계를 배경으로 시보 영상을 사용한 적 있으나,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는지 얼마 안 가 이는 사라지고 시보를 ID에 디지털 시계를 넣고 "뚜- 뚜- 삐!" 하는 형식으로 교체했다(…).

2014년 10월까지 헤드라인을 아나운서가 녹음해 내보냈지만 2014년 11월 가을 개편 이후로 기자가 헤드라인을 진행한다. 상위 오프닝 영상과 현재를 비교하면 밑의 자막도 살짝 바뀌었다.

과거에는 보도국 한켠의 스튜디오[20]에서 진행했으나 그래서인지 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 모습을 보면 타이틀을 여러차례 변경했음에도 그게 그거같아 보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전용 스튜디오로 바뀌었다(심지어 전용 지미집까지 있다! 뉴스 오프닝과 엔딩, 집중취재 타이틀 이렇게 딱 세번 쓰지만…).

참고로 현재 사용되는 스튜디오는 2013년 10월 21일 가을개편과 동시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KBS 뉴스광장, KBS 뉴스5, KBS 뉴스7, KBS 뉴스라인에서도 사용된다. KBS 뉴스라인을 보면 알겠지만, 메인스튜디오의 오른쪽 아래 옆쪽에 또다른 뉴스진행이 가능한 곳[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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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97.94 KB)]

뉴스를 순서대로 진행하는 데 필수적인 '큐 시트'. 그러나 속보가 들어오거나 하면 이대로 방송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심할 때는 뉴스 시작 직전에 다섯 번이나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고...;;


날씨 영상 제작과정. 최근에는 버추얼 스튜디오 활용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KBS에서는 각종 멀티큐브 시스템과 통합하여 미디어 월이라고 부르고 있다.

3. KBS 스포츠 9

대표적인 스포츠 소식을 보도하며, 평일 밤 9시 45분 및 주말 밤 9시 30분에 방송된다. 9시 뉴스가 특집으로 방송을 해야 하는 경우, 뉴스 편성 상황에 따라 방송을 하지 않기도 한다.

1999년 12월 22일에 첫 방송을 했다. 그 이전에는 KBS 스포츠 뉴스라는 명칭으로 KBS 뉴스9과 따로 편성되었다. 그와는 별개로 2000년대 초반까지도 2TV 주말 밤 시간대에도 KBS 스포츠뉴스가 별개로 편성되어있었긴했다. (평일에는 "스포츠 중계석"이라는 명칭이었다. 어째 20세기 BBC에서 쓰던 스포츠 중계 타이틀인 Grandstand가 생각난다 NHK에 이어 BBC성애자 인증하는 KBS)

홈페이지에서 2000년 3월 22일 VOD부터 다시보기 가능하다. 참고로 KBS 뉴스 9의 VOD 서비스가 시작된건 1997년부터이나, 홈페이지 개편과정을 거치며 볼 수 없게 되었다… SBS 8 뉴스도 1997년부터 VDO 서비스가 시작되었는데 DB자체는 살아있어서, 내용자체는 알수 있기는 하나, 동영상이 올라온지 너무 오래되어서 90년대말-2000년대 초반부 자료의 영상 부분은 볼 수 없다. 하지만 1987년 자료부터 보여주는 뉴스데스크를 생각하면…

3.1. 진행자와 역대 진행자

평일은 이승현 아나운서, 주말은 한상헌 아나운서가 진행한다.

4. 방송사고

2012년 11월 28일 방송도중 약 15분 가량 화면송출이 끊기고 소리만 나오는[25] 초대형 방송사고가 터졌다.

이 방송사고는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되었습니다. 우린 존나 예전에 끝났어, 국영이라 하는거지.

대체적인 반응을 살펴보면, 아날로그와 DMB쪽은 괜찮았다고 하는데 디지털송출만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후에 올라온 기사들을 살펴보면 9시 20분부터 25분까지 약 5분간 사고가 발생했다고 언급하는데 틀렸다. 약 15분간 장애가 발생하였다. 축소의혹

2014년 2월 3일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의 이석기 의원에 대한 선고 보도를 하던 도중, 다른 기자의 VCR 보도로 이어지자 영철 앵커가 "어우 깜짝이야"라고 말하는 방송사고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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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예고 방송에서도 "9시 뉴스에서 뵙겠습니다."(…)
  • [2] 사실 뉴스 9, 뉴스 7식으로 쓰는 제목도 원래는 NHK가 원조다. 이쪽은 정말 NHK 뉴스 나인, 뉴스 세븐이라고 읽는다. 물론 1980년대 초까지는 '뉴스센타 구지'라고 읽긴 했지만 이미 80년대 후반쯤 가면 NC9로 쓰고 NC나인으로 읽게 된다.
  • [3] 이 흔적이 현재 KBS 제1라디오의 7시 저녁 종합뉴스로 남아있다. 20세기 중반의 느낌이 물씬 나는 클래식 음악을 2009년까지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을 정도. 2010년 KBS 뉴스 CI를 대대적으로 변경하면서부터 KBS 2TV 뉴스 7(2001~2002, 현재의 1TV 뉴스 7과 다름) 엔딩 뒷부분 음악을 편곡해서 사용하고 있다.
  • [4] 지금으로 따지면 JTBC 뉴스룸에 해당하는 뉴스였다.
  • [5] 그래서 ARD의 '슈프레헤만(Sprechemann)'의 권위는 아직도 상당하다. 물론 요새는 오후 8시 뉴스(Tagesschau, 15분 짜리 뉴스 프로그램)에 방송되는 기사는 취재한 기자가 직접 읽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으며, 심층 취재(?)는 Tagesthemen을 통해 내보내고 있다. ARD 뉴스는 2009년까지도 프롬프터를 쓰는 일이 없었는데 이는 슈프레헤만의 직업적 긍지(?)와 관련있다고 한다.
  • [6] 심지어 오프닝 형식조차도 1970년대 중,후반 NHK 뉴스센터 9시와 비슷하다. '9'자의 둥근 부분이 블루스크린을 겸한 시계인데 바늘이 9시를 가리키면 화면이 합성되며 뉴스타이틀이 뜬다. 다만 이건 KBS 9뉴스 시절(80년대 초반) 얘기다.
  • [7] 박성범은 1940년생. 신은경은 1958년생이다.
  • [8] 2008년에는 신은경씨가 박성범 전 의원의 뒤를 이어 중구 지역구에서 나경원과 맞붙었다.
  • [9] 91년 5월부터 방영되온 2TV의 데일리 시사프로그램이었다.
  • [10] 그 이전엔 주말 9시 뉴스 전후에 블록광고를 편성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2012800209209014&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2-01-28&officeId=00020&pageNo=9&printNo=21721&publishType=00020
  • [11] 이때부터 메인뉴스 콩라인에 머물던 MBC 뉴스데스크는 2010년 김재철이 MBC 사장직에 취임한 이후 SBS 8 뉴스 시청률에도 크게 뒤쳐지며 꼴찌로 자리를 굳혀버렸다.
  • [12] 2013년 1월 14일주부터 2월 25일주까지 7주 연속으로 3위 고정이었다.
  • [13] 시청률 순위는 KBS 뉴스9>>KBS 뉴스7>KBS 뉴스광장>>KBS 뉴스라인>KBS 뉴스12의 순서
  • [14] 나오지는 않았다.
  • [15] 뉴스데스크는 워낙에도 오프닝 변천사가 많아 모음집이 20분이 다 되가는데 KBS 뉴스 9는 5분도 안된다(…). 몰론 뉴스데스크가 10년 먼저 시작한 점과 따로 광고를 붙혀 제공자막 부분이 나와 오프닝 길이가 길다는 걸 감안해서도 KBS 뉴스 9는 변천사가 상당히 적다. 물론 MBC 뉴스데스크와는 다르게 80-90년대 방영분이 VOD화 되지않는것도 한 몫하지만 70년대 방영분까지 VOD했으면 길이가 7분은 됐을듯
  • [16] 참고로 MBC는 70년대 중후반 '뉴스의 현장' 시그널은 상당히 호러스러운 음악을 썼었고 80년대 초반 뉴스데스크 시그널은 베꼈지만신디사이저를 가미한 오프닝을 썼다.
  • [17] 첫 번째 동영상에서 나왔듯 1987년 초에는 9시의 '시'자가 한자(時)로 나온다.
  • [18] 참고로 보도국 내부의 제보에 따르면 현재 KBS의 모든 뉴스 시그널음악은 음대 출신 기자 한 분에 의해 편곡되고 있다고... 안습 단, 실제 음원제작은 프로 음악가의 손을 거친다고 한다.
  • [19] 맨 위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폰트가 바뀌었다.
  • [20] 보도국 내에서는 '어항'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생각보다 매우 좁다.
  • [21] 사실 그 자리가 2013년 가을 개편 전까지 9시뉴스를 진행하던 자리였다.
  • [22] 2001년 1월 20일부터 4월 29일까지 주말 앵커를 하다가 다음날부터 평일 앵커로 승격.
  • [23] 2003년 6월 28일 부터 2004년 5월 2일까지 주말 앵커를 하다가 다음날부터 평일 앵커로 승격.
  • [24] 마지막 방송에서 눈물을 보였다, 평일 최초의 여자 진행자.
  • [25] 15분간 계속 그랬던 것은 아니고 10여초 정도 영상은 제대로 나오는데 소리가 아주 작게 나오다가 화면이 다시 몇분동안 끊기는 증상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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