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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84 하야테

last modified: 2015-09-21 17:59:48 by Contributors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 항공병기
육군 전투기 Ki-27 97식 전투기, Ki-43 하야부사, Ki-44 쇼키, Ki-61 히엔, Ki-84 하야테, Ki-100 5식 전투기
육군 쌍발 전투기 Ki-45 토류, Ki-102 4식 습격기
육군 습격기/폭격기 Ki-21 97식 중폭격기, Ki-32 98식 경폭격기, Ki-51 99식 습격기. Ki-49 돈류, Ki-67 히류
함재기 함상전투기 A5M 96식 함상전투기, A6M 0식 함상전투기, A7M 렛푸
함상폭격기 D3A 99식 함상폭격기, D4Y 스이세이
함상공격기 B5N 97식 함상공격기, B6N 텐잔, B7A 류세이
함상정찰기 C6N 사이운
해군 소속 육상공격기 G3M 96식 육상공격기, G4M 1식 육상공격기, P1Y 깅가
해군 소속 국지전투기 N1K-J 시덴, J1N 겟코, J2M 라이덴, J4M 센덴, J7W 신덴
기타 항공기 M6A 세이란


Contents

1. 개요
2. 스펙
3. 개발
4. 성능
4.1. 화력
4.2. 속도
4.3. 기동성
5. 실전
6. 결론
7. 대중매체의 하야테


1. 개요


陸軍 四式戦闘機 キ84 疾風
Japanese Army Type 4 Fighter Nakajima Ki-84 Hayate 'Frank'

태평양 전쟁당시 일본 육군 항공대의 전투기.
이름의 '하야테'는 질풍(疾風)이란 뜻으로, 개발을 앞두고 당시 일본 신문에서 신형 전투기의 이름을 응모하는 코너에서 일본 국민들에게 최다 득표되어 명명되었다는 여담이 있다. 공식명칭은 '육군 4식 전투기 하야테'. 연합국 코드명은 프랭크(Frank).

2. 스펙

제원

Ki-84 1형 甲 (キ84-Ⅰ甲)

전장 : 9.93m
전폭 : 11.23m
전고 : 3.38m
주익면적 : 21m²
익면하중 : 172kg/m²
자체중량 : 2,665kg
전비중량 : 3,616kg
엔진 : 나카지마 Ha-45 21형 복열 18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1,990마력
최대속도 : 687km/h (고도 6,000m)
항속거리 : 순항속도 278km/h 때 연료 만충시 2,920km
무장 : 기수 상면에 12.7mm Ho-103 기관총 2정 (탄약 350발)
주익에 20mm Ho-5 기관포 1문씩 (탄약 150발)


3. 개발

이전 나카지마 비행기에서 제조하던 두 종류의 단좌 전투기인 Ki-43 하야부사Ki-44 쇼키에서 생각했던 투톱 체계에서 교훈을 얻은 육군과 나카지마 사는 앞으로는 더 뛰어난 전투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경쟁사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개발된 Ki-61 히엔이 제식전투기로 채택되자 이에 뒤지지 않기 위해 신형전투기 개발사업에 착수한 쪽에 가까우며, Ki-43의 기동성과 Ki-44의 속도, 화력을 겸비하는 전투기를 목표로 하였다.

우선 나카지마 사는 이전까지의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가 안 나는 일본군 전투기의 방어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방의 창을 방탄유리로 제작하고 동체 부분에는 13mm의 방탄 강판을 부착함과 함께 모든 연료탱크에 누설방지 고무를 붙였다. 그리고 하야부사에서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받던 화력강화를 위해 무장은 기수에 12.7mm 기관총 2정, 주익에 20mm 기관포 2문을 장비시켰다.

사실 그동안 이런 개수가 어려웠던 것은 일본이 고성능 전투기에 사용될 고출력 대형엔진을 확보하지 못했던 까닭이 큰데, 때마침 나카지마 사에서 1,800마력급 고출력 엔진을 개발하면서 드디어 그 숙원을 이룰 수 있었다.

결국 최대속도 640km에 일본기로써는 최고높이인 34,000피트까지 상승이 가능한 것이 확인되면서 조종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게 되었고, 원형기의 스펙에 만족한 일본 육군우왕ㅋ굳ㅋ을 외치며 생산에 돌입.

어쨌든 전선에 투입된 하야테를 처음 본 미군 조종사들은 하야부사로 착각하여 깔보고 있다가 뒷통수를 제대로 까였고,[1] 이 비행기의 식별 요령을 확립한 대령 프랭크 맥코이의 이름을 따서 'Frank'라는 식별명을 부여하고 경계할 것을 지시했다.

4. 성능


미군에서 테스트 받고있는 하야테.

4.1. 화력

하야테의 실전투입년도인 1944년을 기준으로, 12.7mm 기관총 2정과 20mm 기관포 2문이라는 무장은 전체적으로 평균적인 수준이었다. 물론 장착했던 Ho-5 기관포의 내구력 문제로 인하여 약장탄을 사용해야 했으나 실전에서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4.2. 속도

전후 미국으로 끌려가 실험되었는데, 제대로 정비[2]받고 미제 고옥탄가의 고급 연료를(140옥탄가)(원래 설계는 100옥탄가기준인 엔진이었지만 일본군이 쓰던건 87옥탄가) 사용하고 나자 비행성능이 카탈로그 스펙보다 좋게 나왔고[3] 상당수 성능지표에서 P-51 머스탱과 대등 또는 근소하게 우수한 성능을 기록하여 미 관계자들이 놀랐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 고옥탄이 아닌, 일본과 같은 92옥탄가 연료를 썼다는 기록이 있다.
http://www.wwiiaircraftperformance.org/japan
이경우 속도가 빨라진건 과거 일본의 측정법이 미국과 달랐기 때문이다.(부스팅을 하지 않고 쟀다.) 애초에 100옥탄가를 사용하도록 설계된 엔진에 100옥탄기름을 넣던 140옥탄 기름을 넣던 성능은 거기서 거기다.

이 결과를 가지고 "하야테는 연합군 기를 뛰어넘는~"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일단 하야테와 무스탕은 실제로 직접 비교 테스트를 한 적이 없다. 일단 저 위의 타 기체를 뛰어넘는 수치가 전 고도에서 그런 게 아니라 저고도 비행 테스트 한정이긴 하다. 하야테는 고공전투기었으므로 고고도에서 더 좋은 성능을 낼 가능성이 크지만.

미공군이 테스트한 하야테는 전비중량 3,601kg을 충족한 상태에서 해수면 속도 363mph, 20000ft에서 427mph를 기록했는데,

이를 다른 공랭식 기체와 비교해보면 해수면 속도 365mph, 20000ft에서 최고속도 431mph를 기록한 F4U-1 후기형과 맞먹는 수준이며 Fw 190 A계열과 비교할 경우 가장 빠른 A-9 1.82 ata 기체보다도 모든 고도에서 더 빨랐다.

그러나 본문에서 언급된 머스탱과 비교할 경우 해수면에서 388mph, 최고 속도 444mph 의 머스탱보다 모든 고도에서 더 느렸으며 심지어 45년 일본 본토 근처에서 활동했던 기체는 44년 유럽전선의 104/150 옥탄유로 매니폴드압 75"hg 을 찍는 기체보다 더 빠른 115/145 옥탄유의 80"hg 기체였다.

게다가 공랭식 엔진기체 만으로 한정한다고 해도 44년 말에 등장한 미해군/해병 항공대의 F4U-4가 100/130 옥탄유의 60"hg 나 115/145 옥탄유의 70"hg 매니폴드압으로 기록한 해수면 속도 383mph~389mph, 최고 속도 455~463mph 에 비하면 많이 느렸다.

4.3. 기동성

미군의 보고서에 따르면 롤 등의 선회력은 제로센 52형보다 약간 열세한 수준으로 훌륭하며 기본적으로 보조익과 러더가 가벼웠지만 승강타가 기존 일본군 전투기에 비해 무거운 편이라, 당시 중일전쟁과 개전 초 태평양전쟁에 참가해 에너지 파이팅이 아닌, 제로센과 하야부사의 월등한 기동성을 이용한 선회전에 숙달된 일본군 파일럿들로부터 "유사시 적의 총알을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눌러도 당겨도 끄떡 않는 전투기" 라고 불평을 받기도 했다고 했다.

5. 실전

일단 하야테에 도입한 Ha-45 엔진은 그 출력에 비해 크기가 꽤 작았고,[4] 따라서 설계과정이 극단적이었으며 좋은 금속재료와 고도의 가공기술, 고품질의 연료를 필요로 했다.[5] 그러나 1944년 시점에서 일본의 공업계 사정은 시궁창이라, 시원찮은 공작기계에 시원찮은 재료와 역시 저질스러운 연료, 그리고 기술이 딸리는 직공들이 제작하는 상황이었다.[6] 그리하여 신뢰성을 깎아먹는 모든 요소가 겹쳐 버리는 바람에 출력저하는 기본이요, 비행 중 정지하는 치명적인 경우도 발생했다. 게다가 점점 일본의 유류사정이 악화되면서 가뜩이나 신뢰성 딸리는 엔진에,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훈련기에도 넣을 생각을 못 할 정도의 저질 기름을 연료로 사용했으니 항공기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런 전투기를 몰아야 했던 조종사들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심지어 최전선에서 근무하며 하야테를 정비하던 정비병의 수기엔, 막 보급받은 조악한 수준의 하야테들을 가지고 그나마 멀쩡한 부품들을 떼다가 아예 야전에서 하야테를 새로 하나 만드는 수준이었다고 하니..

(ɔ) USAAF from

전후 김포 육군항공대 비행장에서 폐기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제85 비행전대 소속의 하야테. 제22 비행전대 소속 하야부사도 보인다.

그야말로 근성으로 만든 품질이 조악한 하야테를 베테랑 파일럿 상당수가 불귀의 객이 된 상황에서 겨우 3~4시간 비행이 전부인 신참 조종사들이 미군과 맞서 싸우게 되면서 역시 선임들의 뒤를 이어(...) 불타는 일본전투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야! 신난다~ 당연히 고출력 엔진의 숙명이랄 수 있는 '엔진의 토크' 현상 때문에 비전투손실로 기록된 기체도 많았으며, 그 덕분에 전투중에 사망한 조종사만큼 이륙 도중에 사망한 조종사들도 꽤나 됐을 정도.[7]

여기에 빠른 속도로 비행할 수 있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기체의 특성상 저속 격투전보다는 고속 기동을 장기로 하도록 개발되어 속도가 붙으면 묵직해지는 바람에 근접 격투전에 익숙한 일본군 조종사들에게는 조종이 어려웠다고 한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480km/h를 넘게되면 에일러론 작동이 어려웠다고 한다. 일본기 치곤 유압장치(!!)까지 있을 정도였으나 대부분은 생산과정에서 누락되는 일이 흔했고 그 결과 0점 수준의 롤을 가진 하야테가 대다수를 차지하여 정상적인 하야테의 이름마저 먹칠을 하게된다.

한 일본군 조종사는 이런 말을 하기까지 했다.

1945년에 생산된 하야테의 조종석에는 절대 타지마라. 최근에 생산된 녀석들일수록 불량품이 더 많아서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같은 것들이다. 차라리 1944년에 생산된 초기형이 더 믿을만하다.

이쯤되면 그냥 야언좆 막장. 이런 상황에 직면한 조종사들은 그래도 신뢰성은 보장되는 하야부사를 더 선호했다고 한다. 덕분에 하야부사만 생명연장했다.

이미 안습의 끝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생산성만큼은 하야부사보다도 우월하여 하야부사가 1기 제조에 1만 인시 이상의 제조시간이 필요했던 반면에 하야테는 4천 인시만으로 1기를 제조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45년이 되면서 본격화된 도쿄 대공습 이후로 생산이 중단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우리의 근성 일본핵크리를 맞기 전까지 지하공장에서 하야테를 생산했는데 금속재료가 부족한 시점에서 만들어진 것이 "Ki-106". 바로 목재로 만들어진 하야테였다. 그러나 이 Ki-106은 투입되기 전에 일본이 핵을 맞고 항복하면서 종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북한군에서도 일부 하야테를 하야부사와 더불어 6.25전쟁 초기까지 사용했었다.[8]

6. 결론

스펙은 뛰어났지만, 일본군의 무기체계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해버린 전투기다. 기동성은 확실히 좋았지만 전투는 커녕 전쟁물자 보급에도 급급한 전쟁 말기의 상황에서 신뢰성이 극도로 뒤떨어졌기에 우주쓰레기로 전락해버렸다. 만약 일본이 아닌 정상적인 국가에서 제대로된 생산과 정비를 받고 전투에 나섰다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두었겠지만(...)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미군이 노획해 쓴다던지..

7. 대중매체의 하야테

스트라이커즈 1945 II에도 등장하는데 거의 사기성 보조샷과 차지샷으로 인기가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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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미군 파일럿들이 하야부사인 줄 알고 섣불리 헤드온을 걸었다가 하야테에서 발사된 수많은 예광탄 궤적들을 보고 기겁했다는 일화가 있다.
  • [2] 관련문건에는 소모성 부품인 볼베어링,점화 플러그 등을 교체했다고 한다. 노획한 적 항공기를 테스트하기위해 굳이 돈 들여서 부품을 교체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기타 소모성 부품만 교체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본군이 운용했던 하야테보다 미군이 운용했던 하야테가 더욱 정상이라는 뜻인데, 그야말로 아이러니...
  • [3] 687km/h. 당시 일본이 얼마나 개막장의 유지능력을 보여주었냐면, 그리스를 정비인력들이 식물성 기름에다가 비누나 나무 수액을 섞어서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엔진오일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첨가제의 공급도 전쟁 이전부터 미국에 의존하던 판이었다. 대전말에는 이런 엔진오일 등을 만들 수 없어지자 교환주기가 지난 엔진오일에다 석유 등을 부어서라도 사용했으며, 심지어 소나무 뿌리에서 테레빈유를 짜내 연료로 사용하기도 헀다.(!!)
  • [4] 전면 투영면적은 작지만 출력이 부족한 사카에 발동기에서 실린더를 네 개 추가해 18기통으로 만든 것. 당시 일본의 공업기술력을 생각하면 2000마력급 엔진을 생산하는 것이나, 관리하는 것이나 엄청난 일이었다. 그것뿐이라면 다행이겠지만, 2000마력대의 출력을 실린더 용량 35리터짜리 엔진에서 발휘하게 하기 위해서 아직 생산과정에서 검증받지 않은 새로운 기술을 대거 투입했다.
  • [5] 미국쯤이나 되어야 호마레를 제대로 굴릴 수 있었겠지만, 정작 미국이 믿고 갔던 엔진은 크고(배기량 46리터대 였다!) 아름답고 튼튼한(중량이 1톤에 달했다!) R-2800 더블 와스프 계열이었다. 참고로 전쟁 전에 일본이 가진 항공기용 발동기 중에서 더블 와스프와 비슷한 42리터대의 배기량을 가진 것은 대형 폭격기용으로 개발된 미츠비시 14기통 카세이(火)星였다.
  • [6] 참고로 전쟁전에 보유하던 숙련공들은 전쟁이 심화되자 징집되었다. 당시 일본의 공업구조상 정밀기계가 부족하고 표준화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에 숙련공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게다가 대신해서 충당된 공원들이라는 게 성인 부녀자 정도면 양호한 편이어서 미성년 여학생은 기본이고 심지어는 여학생 정도의 지식력조차 없었던 조선인들까지 투입되었다. 거기다가 공작기계라는 것들은 죄다 "영미귀축"에게서 수입해오던 건데 전쟁을 시작해서 그걸 더이상 못 사오면?!?!!
  • [7] 1차 대전의 명기인 영국의 솝위드 카멜은 그 강력한 엔진의 출력을 제어하기가 힘들어서 독일군 조종사보다 연합군 조종사들을 더 많이 잡은 전투기라고도 불린다(...). Bf109스핏파이어 역시 엔진의 토크 때문에 조종사들을 몹시 괴롭혔다.
  • [8] 한국군에 하야테가 있었다는 기술이 있었지만, 오독으로 보인다. 해방 후 김포 공항에 버려진 일본 항공기가 꽤 많았지만, 대부분 밥그릇으로 환생(...)하거나 날 수 있을 정도로 멀쩡한 것은 미군정에서 귀신같이 챙겨가서 폐기해 버렸다. 덕분에 한국 공군이 줏어쓴 일본 비행기는 복엽기인 Ki-9 훈련기 1대가 고작이다. 공군이 공식 기록으로 남기진 않았음에도 전쟁 중에 Ki-9을 운용한 사진 기록은 도처에서 발견되지만, 하야테는 커녕 일제 비행기는 한 대도 없다. 미군정이 인심이나 썼으면 한국전쟁 초기에 한국 공군이 관측기로 수류탄을 투척하는 안습한 지경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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