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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262

last modified: 2015-03-15 16:27:23 by Contributors



운용과 퇴역
초도비행 1941년 4월 18일(피스톤 엔진)
1942년 7월 18일(제트 엔진)
도입 1944년 4월
퇴역 1945년(독일)
1951년(체코슬로바키아)

제원(A-1a기준)

승무원 : 1인
길이 : 10.60미터
너비 : 12.60미터
전고 : 3.50미터
익면 : 21.7제곱미터
공시중량 : 3,795킬로그램
표준중량 : 6,473킬로그램
전비중량 : 7,130킬로그램
동력 : 융커스 유모 004 B-1 터보젯 2기
종횡비 : 7.32
최고속력 : 900 km/h
항속거리 : 1,050 km
상승한도 : 11,450 m
상승률 : 1,200 m/min
추력대중량비 : 0.28
무장 :
30mm MK 108 기관포 4문(A-2a형은 2문)[1]
55 mm R4M 로켓 24기
250kg 폭탄 2기 / 500kg 폭탄 2기(A-2a형 한정)


세계 최초제트 전투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이 개발한 제트 전투기/전폭기[2]. 일명 '슈발베(제비)'.

Contents

1. 개요
2. 문제점
3. 기타
4. 관련 문서
5. 관련 항목

1. 개요


Me262 at the ILA2006 in Berlin (original sound)


Wings of the Luftwaffe - Me-262 - Swallow (2 of 14)


"What was that?! What the hell is that?!" by 미군 조종사 이거 뭐야 대체 뭐냐고

사상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 전투기다. 제트 폭격기로는 Ar 234가 있다, 융커스 유모 터보젯 엔진을 2기 장비한 Me262의 성능은 그야말로 놀라운 것으로 2차 대전에 참전한 모든 전투기보다도 빨랐다. 물론, 프로펠러기에게 털린 최초의 단좌 제트 전투기라는 타이틀도 있다. 제공권 개판일때의 상황을 보여주는 좋은 예

독하디 독한 메서슈미트 빠였던 아돌프 갈란트 중장도 "난 Bf109 5대보다 이 녀석 하나를 고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참고로 갈란트 중장은 포케불프 Fw190이 실전배치되는 중에도 Bf109를 선호한 사람이다(둘 다 메서슈미트 제품이기는 하지만...;;).
참고로 Bf109는 메서슈미트 박사의 작품이며 Fw190은 쿠르트 탕크 박사의 작품이다(..)
설마..콩라인..?

탑승해본 갈란트 曰 : 뒤에서 누가 밀어주는 느낌이었다.[3]

전후 Me262와 미군의 신예 제트 전투기인 F-80 슈팅스타의 테스트 파일럿을 맡았던 척 예거는 "기술자들에게 F-80과 Me262의 성능이 거의 동등하다고 말했더니 그들이 기겁했다"고 회상할 정도였다.

보통은 사상 최초의 제트 엔진 전투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하인켈사가 1939년에 먼저 He 178 제트기의 시험 비행에 성공했고, 이를 잇는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He 280의 개발에 성공했으므로(채택되지는 못했다.),[4] 엄밀히 말하자면 사상 최초로 실전배치된 제트 전투기일 뿐이다.


후퇴익을 채용한 것으로 인해서 선진적이다, 혹은 오호 역시 독일!! 이라는 이미지를 주었지만, 사실 후퇴익은 고속을 위해 채용한 것이 아니라 무게 중심을 잡기 힘들어서 채용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5] 하지만 속력 상승에 도움이 있었다고.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폭격기 요격에 많이 투입됐는데, 대전 말기에는 기수에 50mm 기관포(…)를 장비하여 장거리에서 강한 화력으로 폭격기를 조진다던지, 다연장 로켓을 사용하기도 했다. 로켓의 경우 위력도 위력이지만 여러발이 꼬리를 물고 사방으로 퍼져나오는 모습 때문에 폭격기들의 편대를 흐트러놓기 좋았다.

2. 문제점

Me262는 여러가지 문제점에 봉착해서 실제의 활약상은 미미하기 그지 없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 풋내기 조종사들: 대전 말기의 추축군은 엉망진창이었다. 기라성같은 베테랑들이 여기저기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기 때문에 조종사들을 훈련시킬 교관도, 그들을 전장에서 이끌어 줄 고참들도 거의 없었다. 반면 연합군은 어느정도 경험이 쌓이면 후방의 교관으로 돌려서 인명손실도 막고, 조종사들의 기량도 향상되었기 때문에 이 격차는 더더욱 벌어져갔다.

  • 엔진: 손이 많이 갔고, 연료도 많이 먹었으며, 결정적으로 엔진 수명이 고작 80시간 정도였다. 적기를 스쳐지나간 다음에 선회하려다가 엔진이 맛이 간 적도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6] 엔진 수명의 문제는 독일 사정상 레어메탈의 수급이 어려워 고온과 고압에 견뎌야 하는 엔진 각 부품의 수명이 짧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쟁 말기가 되면 물자 부족에 부품 품질도 조악해져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극히 드문 엔진 실물들을 보면 말 그대로 부품이 갈려나간 흔적을 볼 수 있을 정도다.

  • 이/착륙 때는 속도가 크게 느려지기 때문에 거의 빈틈투성이. 이 때를 노린 연합군 전투기들의 습격을 받아 손실되는 일이 많았다. Me262를 채용한 '코만도 노보트니' 비행단의 단장이자 독일의 에이스인 발터 노보트니 중령도 엔진 고장으로 귀환, 착륙하는 중에 P-51 무스탕의 습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전사했다. 여담이지만 이때 아돌프 갈란트 중장이 비행단을 방문하고 있었던 관계로 노보트니 중령의 추락을 직접 목격했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Me262를 상대를 해본 연합군 조종사들이 하나같이 급상승과 급하강은 번개같이 빠르지만, 선회가 엄청 느리다는걸 지적을 했는데. 축류식 엔진의 단점과 설계의 오류로 인한 문제점이었고. 공중전을 이해를 하고있는 독일군 에이스들은 급상승과 급하강을 이용해 공중전을 벌이지만은, 풋내기 조종사들은 무리하게 선회를 돌다 잡아먹히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 아돌프 히틀러의 삽질: 히틀러가 이 신형기의 성능을 보고 받고서 헤르만 괴링과 나눈 대화를 보자.
히틀러: 훌륭하군. 그런데 이 전투기는 그렇게 빠른가?

괴링: 그렇습니다 총통. 연합군 놈들의 그 어떤 전투기보다도 빠르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그렇다능! 어떤 전투기보다 빠르다고 확신한다능!

히틀러: (잠시 생각하다가) 그러면 이 전투기에도 폭탄을 실을 수 있나?

괴링: 네, 이론적으로는 1, 2발 정도 탑재할 수 있습니다만...어 뭐 대충 한 두발은 달 수 있다능...

히틀러: 좋아. 이 전투기에 폭탄을 달아! 처칠 놈에게 폭탄을 먹이는 거야! Me262는 폭격기로 생산한다!
 
...상황이 막장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도 폭격기로 개발하라는 히틀러.[7] 덕분에 전투기형의 Me262의 숫자는 턱없이 모자랐고,[8] 부하들은 이런 처사를 격렬하게 비난했는데 히틀러는 "씁 어쩔 수 없지"하면서 전투기 버전을 소량만 제작하도록 했다.[9]

다만 흔히 알려진 것처럼 히틀러의 이 결정 탓에 Me262가 개발이 느려진 것은 아니었다. 전폭기 버전은 전투기 버전에 비하여 끽해야 폭탄 탑재소가 추가되고 기관포 숫자가 줄어든 것에 불과했다. 실제로 Me262를 수령한 야전부대에서는 폭탄창을 철거하고 기관포를 더 달아서 전투기로 개조하고 날렸다고 한다... 사실 Me262의 개발이 지연된 것은 제트 엔진의 트러블 탓이 훨씬 컸다. 신뢰성이 극악이었던지라 조정에 한동안 애를 먹었으며, 간신히 완성되고 나자 이번에는 기름이 다 떨어졌는데 뭐로 날릴겨?

단 이콧수염이 파일럿 훈련을 무조건 폭격기 파일럿으로 훈련시키라고 닥달해 한동한 쓸모없는 파일럿들이 와서 골치였다고... 전투기가있는대 파일럿이 무쓸모...

더욱이 이쯤 되면 연합군의 무자비한 전략폭격 덕분에 사방으로 흩어진 메서슈미트 사의 생산라인에서는 전문공도 기술자도 자원도 연료도 부족했다. 그러니까 대충 구색만 갖춘 허접한 공장에서 질이 떨어지는 재료로 풋내기 기술자들에 의해서 조립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제대로 된 시설에서도 그만큼 애를 먹었는데... 일설에 따르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서 접착제와 테이프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이쯤되면 제대로 안습이다.

물론 2차 대전 말기의 독일 명품 무기들이 다들 그렇듯이, 필요한만큼의 수량을 채우기에는 턱도 없는 숫자가 결정타였지만.

그러나, 야전부대에서는 히틀러의 명령을 무시하고 Me262의 태반을 전투기로 생산했으며, 이걸 알게 된 히틀러는 길길이 날뛰면서 당시 공군기술총감으로 항공기 생산의 감독을 책임지고 있던 에른하르트 밀히로부터 권한을 빼앗아 군수성에 그 권한을 넘겼다.[10] 그래도 계속해서 반발이 일자 결국에는 요격 전투기용으로 생산을 전면 허가하지만, 그래봤자 다 진 전쟁을 슈퍼 무기 한 두개만 가지고 이길 리가 없다. 결국 다른 무기들과 함께(…) 연합군의 귀중한 전리품으로 노획되었고 이후 미/소 양국의 제트 전투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11]

3. 기타

전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에 의해 아비아 S-92(A-1a), 아비아 CS-92(B-1a : 복좌형)이라는 이름으로 생산되어 1957년까지 체코슬로바키아 공군에서 운용되었고, 2003년부터 미국에서 레플리카를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져 2006년에 완료[12]되었다.

일본도 독일의 기술을 약간 받아서[13] 비슷하게 생긴 J9Y 깃카라는 물건을 어영부영 만들었지만 아예 실전투입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처참한 스펙만 남긴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봉인당했다.


2006년 베를린 에어쇼에서 공개된 레플리카. 다만 엔진은 J-85로 교체[14]되었는데 이는 미국 항공법 때문.

참고로
인류 최초로 음속을 넘었을지도 모르는 전투기이다. 1945년 4월 9일에 전투 도중 한스 뮛케(Hans Guido Mutke)가 전투중 고도 12,000m에서 시속 1,100 km/h 을 기록했다고 보고 했기 때문(해당 고도에서 음속은 1,062 km/h). 링크
단 이 기록은 40도로 강하하고 있던 당시의 속도기 때문에 공식 기록이 될 수 없으며 지금도 논쟁중이다.

스트라이크 위치즈 2기 4화에 제트 스트라이커로 나왔다.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에서는 유태인 과학 비밀단체의 기술력을 훔친 덕에 B-2 수준으로 대폭 마개조되어 1945년부터 영국 공군을 괴멸시키며 승승장구하는 효자노릇을 했다. 심지어 U보트도 덩달아 항공모함 잠수함 수준으로 마개조되고 이걸 1960년까지 함재기로 잘 써먹고 있다.

4. 관련 문서

5.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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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50mm BK 5 기관포(A-1a/U4형) 장착도 가능했지만 실전 투입은 안됐다.
  • [2] 히틀러의 희망사항 인데 이 희망사항은 연합국인 미국이 달성했다.
  • [3] 또는 '마치 천사들이 밀어주는 느낌이었다'라고 했다고 한다. 좌우간 정말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 [4] 정확히 말하자면 Fw190와의 경쟁 당시의 독일군 관계자들의 제트 엔진에 관한 무관심 덕분에 Fw190에 밀려 채택되지 못하였다. 또한 초기 제트 엔진의 고질적인 문제와 Jumo004 엔진이 Me262에서 더 좋은 성능을 보여주면서 계획이 취소되었다.
  • [5] 날개 앞에 후퇴각을 준 프로펠러 항공기는 의외로 여럿있다.
  • [6] 급격하게 러더를 차서 사이드 턴을 걸었을때 엔진이 정지하는 문제는 당시의 축류식 터보젯 엔진 공통의 문제로, 엔진으로 공기가 제대로 흡입되지 못해 엔진이 정지되는 증상이다(이후 J79 엔진에 가변 터빈을 채용해서 해결됐다).
  • [7] 고작 1천km 날아서 어쩌려고? 이건 영국 항공전에서 항속거리가 모자라 애먹고 소모전만 하던 BF109와 항속거리가 같다. 둘리틀 폭격대?
  • [8] 하지만 폭격기로 생산하라는 명령도 일리가 있긴 하다. 그 어떤 연합군 전투기보다 빠른 폭격기라는 것은 대공포, 요격기, 격추를 못한다는 소리가 되니 폭탄만 떨구고 튀는 즉 치고빠지기 전술에 써먹으려 했을 것이다, 물론 히틀러가 상식인이었다면(...) 괴링이 Me262를 과장 설명만 안했어도(...) 그런데 당시 모든 비행기보다 빠르다는 것은 과장도 거짓말도 아니다 허나 그 이전부터 운용되어오던 제트 폭격기 Ar 234가 500대 가량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리 유명하지 않다.
  • [9] 이 의견에도 일리는 있는 것이, 당시 연합군도 독일군도 지상지원을 주력으로 하면서 공중전 역시 수행할 수 있는 쌍발 고속 전투폭격기를 활용한다는 개념에 상당히 집착했다. 영국의 모스키토가 가장 성공적인 사례. 다만 독일군은 거기에까지 국력을 나눌 여유가 없음에도 그런 짓을 시도한 것이며, 이는 사실 1943년 당시 독일에서 이미 벌어지고 있던 일이었다. 독일이 전투기 생산을 폭격기 생산보다 중시하게 된 것은 1944년 들어서의 일이었다. 그 이전에 Ar 234 쌍발 제트 폭격기가 있었다 그런데 얘들은 호위기보다 빠른속도로 날아댕겼다
  • [10] 사실 밀히의 실각은 Me262 생산이 아직 본격화되기 전인 1944년 8월의 일이었다. 실각의 이유는 Me262의 생산보다는 독일 공군의 전투기 조달 효율이 낮고 본토방공전 전략에서 히틀러 및 괴링과 의견 충돌이 심했던 것이 더 크다.
  • [11] Me262가 전후의 후퇴익기에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Me262가 현대 제트 전투기의 원조라는 주장까지는 지나친 과장이다. Me262는 실전배치에 이른 최초의 제트 전투기로만 보는 것이 옳으며, 그나마 영국보다 딱 3개월 빨랐다(성능은 Me262가 더 나았지만, 신뢰성은 영국 쪽이 나았다). 제트 엔진의 개발 또한 영국의 프랭크 휘틀이 독일보다 2년 빨랐고, 독일만의 개념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 [12] 국내 군사잡지에도 제작과정과 완성후 비행모습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제작과정의 주체는 독일계 미국인이었으며 2차대전당시 독일 항공기술 관련 계통에서 밑바탕을 다진 사람으로 모든 부품을 당시 방식으로 일일이 제작했다고 한다. 다면 항공전자장비와 엔진(F-5 전투기 엔진을 썼는데 F-5 전투기 엔진이 크기와 중량이 훨씬 작으면서도 추력은 더 강했기에 무게중심 등을 맞추고자 겉에 원 엔진 모양의 커버를 추가했으며 추력도 제한 - 조종간에 제약을 걸었지만 좀더 힘을 써서 조작하면 제한된 추력 이상을 낼 수 있다고 - 했다.)은 현대제품을 사용했으며 주문제작으로 판매한다고 했다. 완성품으로 나온 기체는 복좌형이었다.
  • [13] 원래 선박 엔진 기술을 주는 조건으로 004 엔진과 그 기술을 모두 받는다는 조건이었는데 다행히도(...) 004 엔진과 설계도들을 실었던 잠수함이 돌아오다가 기뢰를 건드리는 바람에 삽시간에 망해버렸다.
  • [14] F-5E/F에 쌍발로 사용된 엔진이다. J-85 엔진이 유모 엔진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유모 엔진 껍데기를 만들어 안에 따로 설치하는 개조를 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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