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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last modified: 2015-04-14 04:04:22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NBA 소속 팀
2.1. 동부 컨퍼런스
2.2. 서부 컨퍼런스
3. 상세
4. 규칙
5. 살인적인 일정
6. 샐러리 캡
7. 역사
7.1. 창설 이전
7.2. 창설 이후
8. 한국에서의 NBA
9. 관련 항목
10. 기타


1. 개요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미국프로농구협회. NBA라고 하면 정확히는 이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편의상 이 단체가 주관하는 프로농구리그를 가리키는 단어를 의미한다. 전세계 모든 농구선수들이 가고자 하는 세계최고의 프로농구리그. 30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다.

2. NBA 소속 팀

NBA_MAP.jpg
[JPG image (211.42 KB)]

3. 상세

메년 11월 경 시즌을 시작하여 각 구단이 총 82경기[1]를 치르고, 컨퍼런스별로 1위 vs 8위 2위 vs 7위 식으로 16강(동부 8팀+서부 8팀)-8강-4강(컨퍼런스 파이널) 토너먼트를 치른 후, 6월쯤 동-서부 컨퍼런스 챔피언팀끼리 챔피언 결정전을 치른다.[2] [3]

NBA 로고속의 인물은 1960년대 LA 레이커스에서 활약했던 백인 가드 '제리 웨스트'를 모델로 하였다.

4. 규칙

NBA의 규칙은 국제 농구연맹 FIBA가 제정한 농구 규칙과 조금 다르다.
영문으로 작성된 농구규칙 차이점

간략하게 눈에 띄는 차이만 서술한다면
  • 3점슛라인이 1미터 정도 더 멀다. 7.24m
  • 게임시간이 쿼터당 2분이 더 추가되어 48분. 이때문에 타임아웃도 1개 많고 파울아웃도 5반칙이 아니라 6반칙.
  • 경기중 작전타임을 선수가 부른다.
  • 벤치에 총 13명의 선수가 앉을 수 있다.[4]

NBA의 인기로 인해 표준농구규칙이 NBA 기준으로 바뀐 게 많다. 쿼터제 등이 그런 예.

5. 살인적인 일정

NBA의 경기일정은 정말정말 빡세다. 정규 시즌만 25주간(약 6개월) 82경기를 치른다. 평균적으로 이틀에 한경기 꼴로 경기를 치른다. 경기시간도 해외의 다른 리그보다 8분 더 많다. 거기에 백투백 경기라 하여 2일 연속 경기도 심심찮게 있다. 그게 미국 동-서부를 가르는 장거리라도 얄짤없다. 거기에 플레이오프가 1라운드부터 7전 4승의 시리즈라 파이널까지 갈 경우 최대 110경기, 최소 98경기를 소화한다.

다른 리그도 이렇지 않은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NBA 다음으로 많은 경기를 치루는 리그가 한국의 KBL이다. 22주에 54경기. 우선 경기수부터 30경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다가, 원정거리로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5]

세계 대부분의 농구리그는 1주에 한경기씩 해서 30경기 안팎을 치른다.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유럽 상위리그의 경우 한 시즌에 평균적으로 34경기를 소화한다. 유로리그 결승 토너먼트까지 가는 유럽 상위권팀이 유로리그와 국내리그 다 합쳐서 8개월간 60경기정도 소화한다.

경기 시간까지 감안하여 세계 평균이랑 따졌을 경우 NBA는 거의 3배에 달하는 일정을 소화한다. 그야말로 지옥의 레이스.

6. 샐러리 캡

NBA의 샐러리 캡 제도는 굉장히 복잡한데 샐러리 캡을 절대로 넘지 못하는 하드캡이 아닌 래리 버드 예외조항(Larry Bird exception) 등 프랜차이즈 스타를 우대하는 수많은 예외 조항이 있는 소프트 캡이기 때문에 다수의 구단이 샐러리 캡을 넘는 금액으로 연봉 총액을 구성할 수 있다. 이 조항으로 인해 1996-97, 97-98 2시즌의 마이클 조던 같은 경우는 혼자서 팀 전체의 샐러리캡을 넘는 3천만불 이상의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았다.[6] 그런데도 스카티 피펜같은 피해자[7]가 생기기 때문에 선수들의 불만이 많은 제도. 그런데 이 예외조항은 한국에 들어오면서 쏙 빠져버렸다(...). 자세한 것은 샐러리 캡 항목 참조.

7. 역사

7.1. 창설 이전

최초의 프로농구 리그는 1899년에 창설된 NBL이었지만, 오래 못 가 1904년에 해체되었고, 그 다음 1925년에 ABL이 창설되었으나, 이 역시 오래가지 못하고 1931년에 해체되었다.[8]

그러나 1930년 FIBA의 창설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농구 종목 채택을 계기로 농구의 저변이 넓혀졌고, 1933년에 ABL의 재개, 1937년에 NBL이 창설되어 NBA의 탄생을 위한 씨앗이 뿌려지게 된다.

7.2. 창설 이후

1946년에 BAA라는 이름으로 창립, 1949년도에 NBL[9]을 흡수합병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BAA 시절 원년 팀은 필라델피아 워리어스, 뉴욕 닉스, 디트로이트 팰컨스, 보스턴 셀틱스, 시카고 스탁스, 워싱턴 캐피톨스, 토론토 허스키스, 프로비던스 스팀롤러스, 세인트루이스 봄버스, 클리블랜드 레벨스, 피츠버그 아이언맨이었지만, 현재 남아있는 팀은 뉴욕 닉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보스턴 셀틱스이다.

1948년에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포트 웨인 졸너 피스톤즈, 로체스터 로열스, 인디애나폴리스 제츠 등 4개팀, 1949년에 시라큐스 내셔널즈,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 시보이건 레드스킨스, 데이턴 렌즈(Dayton Rens), 덴버 너게츠(현재의 덴버 너게츠와는 무관), 앤더슨 패커스 등 6개팀이 각각 합류함으로써 17개 팀 체제가 정립되었으나, 너무 많아서 관리에 어려움이 생기자, 다음 해에는 11개 팀으로 줄었고, 1954년부터 8개팀 체제로 바뀌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셀틱스의 황금기 등으로 주목을 받자, 1960년대부터는 새 팀의 가입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1976년부터 경쟁단체인 ABA를 흡수하면서 4개팀(인디애나 페이서스, 뉴저지 네츠, 덴버 너게츠, 샌안토니오 스퍼스)이 가입했고, 1979년에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의 데뷔, 1984년에 입단한 마이클 조던의 활약으로 NBA는 인기가 급상승했고, 마침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메이저리그미식축구에 좀 밀리는 감이 있지만 그 대신 세계적인 인기가 미국 내 구기종목에서 최고라 유럽 및 아시아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상당하다.농구인기가 많은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세계 2위라고 한다[10]. 메이저리그에서 이걸 보고 자신들도 중국 진출을 했으나 그다지 성과는 없다. 미국구기종목에서 가장 국제적으로 홍보를 잘한 프로 스포츠로 알아준다. 앙골라나 여러 아프리카 및 많은 나라에 현역선수들이나 농구 유망주들을 보내 친선경기 및 사인회를 꾸준히 하기 때문이다.

2011년 7월부터 단체교섭이 결렬되어 직장폐쇄에 들어갔다. 덕분에 시즌아웃이 될 뻔한 상황에서 타팀으로 이적도 막혔기에 선수들이 타국 리그로 건너가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단체교섭이 늦게나마 타결되어 2011년 크리스마스에 시즌 개막하기로 합의하고 2011~12시즌을 66경기 시즌으로 진행했다.

2014년까지 총재는 유대인 출신인 전직 변호사 데이비드 스턴(1942년생)으로 1984년부터 총재를 맡고 있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NBA가 세계적 인기를 얻은 것에는 엄청난 기여를 했으며 올림픽에 NBA 주전들을 내보내게 하는 일도 이 사람의 활약이 컸다. 다만 30년 가까운 장기집권에 대하여 스턴에 대한 반대도 심해져서 결국 스턴은 2014년 딱 30년 만에 총재에서 물러나고 부총재인 애덤 실버(역시 유대인) 5대 총재가 되었다. 현재로서의 실적은 대체적으로 괜찮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있는편. [11]

8. 한국에서의 NBA

1990년대 마이클 조던과 드림팀을 앞세운 NBA의 세계화 전략을 통해 한국에도 NBA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1990년대 초중반 슬램덩크마지막 승부, 그리고 농구대잔치의 붐과 맞물려 한국에서도 NBA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초등학생들까지도 NBA를 챙겨보고 선수들의 카드를 모았을 정도. 적어도 TV에서 NBA를 보기는 지금보다 편했을 정도다. AFKN이나 위성 NHK, 스타 스포츠 등을 통해서 쉽게 볼 수 있었고 국내 공중파 방송사중에선 SBS가 한창도 위원[12]의 해설과 함께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매 주마다 한 경기씩 녹화중계를 방영했다. 이후 케이블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인천방송이나 SBS 스포츠, MBC ESPN 등에서 생중계를 방영하였다.

한국 선수는 한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나, 그 이후 90년대 NBA 세계화의 주역들인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등이 은퇴하고 농구 붐이 사그라들면서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다소 매니악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시절이 워낙 인기가 많았고 80년대~90년대 슈퍼스타들을 추억하는 팬들이 많기에 잠재적인 국내에서의 인기는 실제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크다.

TV 중계는 2012년에 SBS Sports가 중계했고, 2014년부터는 SPOTV 2에서 중계하고 있다.

10. 기타

  • 2011년경 촬영된 <Ultimate All-star Fantasy Draft>. 찰스 바클리, 케빈 맥헤일, 레지 밀러, 크리스 웨버, 스티브 커, 케니 스미스 등 NBA 출신 해설자들이 모여서 역대 NBA 선수들을 놓고 가상 드래프트를 펼쳤다. NBA 전현직 농구인들이 대충 선수들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자료. 참고로 바클리는 올스타전인줄 알고 알렌 아이버슨을 1픽으로 골라버렸으며(...) 케빈 맥헤일은 셀틱스 출신답게 셀틱스 레전드 래리 버드를 2위로 뽑았다. [13] 이게 웬 떡이나며 마이클 조던을 픽하려는 레지 밀러에게 주변에서 "샘 보위"를 픽하라고 놀리고 있다 : ##

  • NBA 선수의 평균 체격 조건은 12-13시즌을 기준으로 신장 6'7" (약 201cm), 체중 222lbs(약 101kg)이다.[14][15] 미국 4대 스포츠 중 신장은 가장 크고 체중은 NFL 다음으로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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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예외가 몇 번 있는데 예를 들어 98-99시즌은 파업직장폐쇄로 50경기로 진행되었다. 2011-12 시즌도 직장폐쇄로 66경기만 치뤄졌다. 두 차례 모두 파업(strike)이 아니라 직장폐쇄(lockout)였는데 국내팬들은 이 차이를 인지못하고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일할수 없다고 나서는거고 직장폐쇄는 회사 측에서 일자리를 주길 거부하는 것이다.NBA의 경우 이 사태가 일어난 원인은 새로운 연봉체제에 대한 선수노조와 구단주(일반 노사갈등에 대입하면 사측의 입장에 해당한다) 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 [2] 2005-2006시즌까지는 승률보다 디비전 내 성적을 우선시 해서 플옵 시드와 실제 승률간 괴리가 있었다. 즉 각 디비전 1위팀간 승률에 따라 1,2,3번시드를 먹고 2위팀 중 가장 성적 좋은 팀이 4번시드를 먹는 방식이었는데 이렇다보니 예를들어 2005-2006시즌 덴버 너기츠는 44승 38패로 승률은 서부 공동 7위였는데 당시 노스웨스트 디비전이 죄다 막장이었던 관계로 그 성적으로 디비전 1위를 차지하면서 3번시드를 가져갔는데 1라운드 대진에서 만난 6번시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가 47승 35패로 오히려 성적이 좋았다. 플옵 결과도 1승 4패로 덴버의 광탈. 또한 05-06시즌의 경우 서부 1,2위의 승률을 거둔 스퍼스와 매버릭스가 같은 디비전이라 메인 이벤트여야 될 이들의 대결이 2라운드에 벌써 이뤄지기도 했다.
  • [3] 이로 인해 05~07시즌부터는 포맷이 바뀌었는데 기존처럼 디비전 1위팀 세팀과 이들을 제외하고 가장 성적이 좋은 팀 하나를 묶어서 이들 네팀들을 성적순으로 세우는 것이다. 극단적읋 예를 들어 같은 디비젼이서 서부 1,2,3위팀이 나왔다고 치자. 그러면 06시즌까지는 서부1위팀만 1번 시들를 받고 나머지 팀들은 4,5번 시드가 되어 1라운드에서(!!) 부딫치게 된다. 그러나 바뀐 방식으로는 위의 예시에서 1위팀은 1번시드, 2위팀은 2번시드를 받고 나머지 디비전의 1위팀들이 각각 3,4번 시드를 받게 된다. 물론 이렇게 되더라고 서부 3위팀이 5번시드를 받아 좀 억울한 감이 있지만 기본 방식보다는 훨씬 공평하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웬만해선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면 디비전 우승팀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기존 방식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강한 디비전에 속한 팀을 억울하게 하지 않는 상당히 균형잡힌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 [4] 이는 원래 2011~12시즌 일정의 빡빡함때문에 예외적으로 CBA에서 조건부로 확대했었는데 그 이후 시즌에도 적용되었다.
  • [5] 하지만 KBL도 리그 선수층에 비해 일정이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장 사용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
  • [6] 다만 커리어 대부분을 NBA 평균을 겨우 넘는 수준의 헐값으로 뛰었다. 1995-1996 시즌 조던의 연봉은 피펜의 292만불보다 조금 더 많은 385만불. 사실 조던은 96-97, 97-98 시즌동안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기는 했지만 그가 NBA 전체의 가치에 영향을 줄 정도로 거물인데다 불스에 가져다준 수익을 감안하면 연봉면에서는 오히려 피펜보다도 더 억울하다고 볼수 있다. 포춘지는 조던이 98년 은퇴당시 농구관련 사업에 100억달러 정도의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는데 그가 커리어 내내 받은 연봉은 1억달러도 안되었다.
  • [7] 피펜의 1996-1997 시즌 당시 연봉은 225만불로 론 하퍼(384만불)나 룩 롱리(279만불)보다도 낮은 팀내 6위였다. 조던이 은퇴하자마자 다른 팀으로 낼름 튀어버린게 이해가 갈 정도. 허나, 불스시절 마이클 조던의 연봉은 마지막 2시즌을 제외하면 피펜보다 조금 많은 정도였다. 참고로 조던과 피펜이 헐값에 뛴건 샐러리캡 제도 때문이 아니라 80년대에 초장기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NBA는 90년대 초반부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며 거액의 중계계약을 맺는등 수익이 엄청나게 커졌다. 샐러리캡은 BRI(농구 관련 수익)의 50% 언저리로 계산되기 때문에 수익이 커지만 당연히 샐캡도 커진다. 이에 개나소나 백만불 연봉을 넘기고 주완 하워드, 샤킬 오닐 등은 천만이 넘는 연봉을 받았는데 이미 장기계약으로 묶여있던 조던과 피펜은 의도치않은 염가봉사를 하게 된 셈. 참고로 피펜은 루키 시즌 끝나고 10년 계약을 맺었고 조던은 이미 슈퍼스타이던 시점에 장기계약을 맺었는데 두 선수 모두 계약 당시엔 괜찮은 금액이었다. 조던은 당시 기준으로 버드, 매직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거대계약이었고 피펜도 당시 20분을 뛰는 평범한 벤치멤버에게는 상당히 많은 액수였다. 두 선수의 실책이라면 NBA는 수익이 그렇게 단시간 안에 크게 상승할 걸 예측못한것과 너무 장기계약을 맺었다는 것.
  • [8] 현재 NBA에 존재하는 팀인 보스턴 셀틱스가 ABL 팀인 '오리지널 셀틱스'에서 따온 것이다.
  • [9] NBA 이전에 존재했던 미국의 프로농구리그
  • [10] 월간 루키 2012년 10월호 참고. 코비 브라이언트 및 NBA 중국 수익관련기사
  • [11] 인종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LA 클리퍼스 前구단주 스털린 사건에 관해 신속하게 처리해 많은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 [12] 당시 본업은 이화여대 농구부 감독이었다.
  • [13] 그는 여기서 로스터 전원을 셀틱스에서 뛴적이 있는 선수 위주로만 구성했다.
  • [14] 각 포지션별 차이는 있다. 알다시피 센터가 가장 크고 포인트가드가 가장 작다.
  • [15] 하지만 NBA에서 가장 작은 포지션인 포인트가드도 평균 6'2"(약 188cm)로 매우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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