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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 에어라코브라

Bell P-39 Airacobra


Contents

1. 개요
2. 제원
2.1. P-39 에어라코브라
2.2. P-63 킹코브라
3. 역사
3.1. 개발
3.2. 마개조와 좌절
3.3. 미운 오리새끼, 백조가 되다
4. 평가와 후일담


1. 개요


미 육군 전용 미드쉽카
잘 보면 진짜 이쁘게 생겼다

에어코브라가 아니고 에어라코브라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전투기. 다만 최대 운용국은 고향이 아닌 소련으로, 현재의 헬리콥터 명가인 (Bell) 항공사에서 개발했다. NATO 코드명은 프레드(Fred). NATO 결성 이후에도 소련에서 한동안 현역으로 잘 굴려먹었기 때문에 미국 전투기로는 유일하게 나토 코드명이 붙는 기묘한 대우를 받았다. 지못미.

2. 제원

2.1. P-39 에어라코브라

  • 전장 : 9.2m
  • 전폭 : 10.4m
  • 전고 : 3.8m
  • 중량 : 2,420kg
  • 엔진 : 앨리슨 V-1710
  • 출력 : 1,200hp
  • 최대속력 : 605km/h
  • 항속거리 : 1,770km
  • 상승고도 : 10,700m
  • 무장 : 37mm T9 기관포 1문, 12.7mm 기관총 4정 또는 7.62mm 기관총 4정, 폭탄 225kg
  • 승무원 : 1명
  • 생산량 : 9,584대

2.2. P-63 킹코브라

  • 전장 : 9.96m
  • 전폭 : 11.68m
  • 전고 : 3.84m
  • 중량 : 2,892kg
  • 엔진 : 앨리슨 V-1710-93 수냉 12기통
  • 출력 : 1,325hp
  • 최대속도 : 660km/h
  • 항속거리 : 724km
  • 상승고도 : 13,106m
  • 무장 : 37mm M4 기관포 1문, 12.7mm 기관총 3정, 폭탄 227kg
  • 승무원 : 1명
  • 생산량 : 3,303대

3. 역사

3.1. 개발

미 공군의 전신인 미 육군항공대는 미군의 고전적인 떡밥 중 하나인 어디선가 날아올지 모를 적 폭격기를 요격하기 위한 전투기 개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미 육군항공대의 신예기 요구에 당시 신생 항공기 개발업체이던 벨사는 타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신규기술을 대량으로 도입한다.

먼저 엔진을 조종석 뒷쪽에 두어 무게 중심이 기체 중앙에 오게 만들어 높은 선회성을 얻었고 그 결과로 씹지랄맞은 스톨 특성을 지니게 되었으며 공기 흡입구를 기체 뒤편으로 옮겨 유선형 디자인이 가능해져 공력을 향상시켰다. 이로 인해 비게 되는 전면 공간에는 전투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대형 폭격기도 한 두발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던 대구경 기관포(M4 37mm)가 탑재 가능해져 무시무시한 펀치력도 얻었다. 사실 엔진을 뒤쪽에 둔 이유가 이 37mm 기관포를 장착하기 위해 기수 부분에 공간을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자동차 등에서는 이미 쓰이고 있던 동력 전달 방식[1]을 채용한 최초의 실용기로, 비행기에는 새로운 방식이라며 망설이는 기술진에게 설계자가"아니 왜 안 된다고만 하는 겁니까? 배나 자동차를 보세요! 이미 샤프트를 통해서 동력을 얻는데 왜 비행기는 그게 안 된다는 겁니까?"라고 질책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본격 나는 미드쉽 차량 프로젝트 발상의 전환인 셈이랄까... 다만 피탄이나 폭발시 고속으로 회전하는 샤프트가 부러지면 조종사를 덮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으므로 조종석 하부에 방탄철판을 삽입하여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실제 그런 식으로 발생한 사고도 없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전방 랜딩 기어와 측면에 자동차와 비슷한 여닫이식 탑승구같이 동세대 전투기들과는 다른 특이한 면모가 많은 기체였다.

아무튼 카탈로그 데이터만큼은 킹왕짱인 P-39의 등장에 미군은 물론이고 영국 공군까지 우왕ㅋ굳ㅋ을 외치며 대량 발주에 나섰고 벨사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리고 1941년부터 미육군 항공대에 배치가 시작된다.

3.2. 마개조와 좌절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예상 성능보다 시제기의 속력이 좀 느리게 나오자 제작사에서는 NASA의 전신인 NACA에 풍동실험을 의뢰했는데, 그 결과가 이 비행기의 운명을 뒤틀어 놓았다. 풍동 실험의 결과 NACA에서는 튀어나온 터보 차저 장치 때문에 공기역학적인 문제가 생겨서 설계 예상 성능보다 느려진 거다라는 결론을 내렸고, 이 결론에 따라 개량이랍시고 엔진의 터보 차저(강제과급기)가 떨어져 나가고 방탄판이 증설되는 등의 황당한 개악이 가해져 양산기는 프로토타입의 두배에 달하는 중량으로 뚱보가 되어 버렸다! 당장 프로토타입에서 1.8t이었던 기체가 양산형인 D형에서는 3.7t에 달했다.

이렇게 되니 고공성능이 매우 실망스런 수준이 된 것은 당연했다. 터보 차저 없는 엔진은 고도 4,000m만 올라가도 숨이 끊어질 듯 헐떡거렸고 37mm 기관포는 한번 쐈다하면 조종석 안으로 초연과 일산화탄소를 사정없이 불어넣어 가뜩이나 산소 마스크도 없는 조종사 또한 숨이 끊어질 듯 헐떡거리게 만들었다.

또한 속도는 최초 설계보다 50km/h나 떨어져서 600km/h 근방을 왔다갔다 했으며, 그나마 이 속도를 유지했으면 대전 초반의 전투기로서는 매우 준수했지만, 문제는 조금만 고공으로 올라가면 미친듯이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상승력과 가속능력, 항속거리 또한 당시 미군 전투기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미 육군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실전에서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기체결함이 무려 19가지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런 문제 때문에 고공까지 올라갈 일이 없어져 버려 고공용으로 만든 산소공급장치 등의 고공전용 장비들이 제거되어 영·미 공군에서는 저공 전투기 겸 공격기로나 좀 사용되었다.

물론 저공에서의 비행성능은 기대만큼 뛰어났으나 정작 상대해야 할 제로센이나 Bf109는 고도 5,000m 이상에서 득시글댔으니 적을 잡으러 가기는 커녕 표적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한마디로 야라레메카가 되고만 만 것이다.

미제 원형을 카리브(Caribou)I으로, 주문 생산형을 에어라코브라I(미군명 P-39D-1)으로 이름붙여 도입 했던 영국마저 실망스런 성능에 더 이상 도입하지 않기로 하였고, 이미 받았던 기체들은 전부 소련으로 렌드리스를 통해 보내버린다. 반면 주문이 취소되어 재고로 쌓여 있던 물건들은 진주만 공습 이후 급히 물자가 필요한 미군에 의해 P-400으로 재명명하여 도입했다. 이 물건들은 이미 영국의 요구에 맞추어 생산되었으므로 37mm 대신 20mm 히스파노를 장착했다. 400이라 붙인 이유는, 그 당시 400 mph를 최고 속도로 낼 수 있다는 카탈로그 스펙 덕분이었으나[2], 영국에서 실제로 테스트해본 바에 의하면 350 mph도 간신히 낼 수 있던 수준이었다.

미국은 이렇게 퇴짜맞은 물건을 태평양 전쟁에 투입했다가 영 시원치 않은 성과를 내고 있었으며, 새로운 전투기들을 찾게 되는 바람에 사용률이 바닥을 쳐서 덕분에 재고가 넘쳐나게 된다. 마침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이 헬프신공을 보내자 남아돌던 기체들을 선심쓰듯 아낌없이 무기대여법으로 공여해주었다. 정작 미군과 영국군은 1942년 중반까지 완전히 전선에서 강판시켜 버린다.

미국내에선 상당량의 기체들이 일선에서 사용되지 못하고 물러나 조종사들의 훈련기로 사용되었는데 훈련병들조차 자신들이 P-39를 타고 훈련을 받는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런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Don't give me a P-39, the engine is mounted behind.
She'll tumble and roll, and she'll bore a deep hole.
Don't give me a P-39.

저에게 P-39를 주지 마세요. 엔진이 뒤에 달려있어요.
그녀는 구르고 구르다 깊은 구멍을 내버릴 거세요.
저에게 P-39를 주지 마세요.


역도입 버전의 기체 명칭이 P-400인 걸 이용한 이런 농담도 있었다

P-400이 무슨 뜻인 줄 알아?
응. 꽁무니에 제로(0)가 붙은 P-40

아무리 기체가 끔찍해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일류 파일럿

그래서 이 전투기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중반을 넘기지도 못하고 태평양 전선 및 서부 전선에서는 실패작으로 분류되었다. 영국군에서도 덩커크 근처 독일 선박 공격하는 데 한 번 투입하고 전부 뒷전으로 돌렸으며, 해당 비행대는 스핏파이어로 기종 전환하게 된다. 안습의 안습...

그러나...

3.3. 미운 오리새끼, 백조가 되다

tank_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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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소련 공군에 공여되는 킹 코브라. 에어라 코브라도 저렇게 벌떼처럼 굴렸다.

그러나 독소전쟁에서는 이 천덕꾸러기들이 슈퍼 아이돌로 변신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곳의 공중전 양상은 지상군을 지원하는 공격기와 이 공격기들을 노리고 달려드는 전투기, 그리고 이런 적 전투기들을 가로막는 호위기끼리의 도그파이트였고, 대부분의 공중전이 고도 2,000m 이하의 저공에서 벌어지는 독소전쟁의 하늘이 바로 P-39가 제 실력을 발휘할 전장이었던 것이다.

호위기로는 물론이고 폭장하여 공격기로도 활용가능한 범용성에 미제다운 튼튼한 맷집, 높은 생존성, 통상탄으로도 전투기고 공격기고 폭격기고 한방에 두 동강내는 강력한 브라우닝(Browning) M4 37mm 기관포의 파괴력에 소련 공군은 홀딱 반하고 말았다. 그래서 전쟁 후에도 서방 세계에서는 신통치 않은 전투기로 평가되었던 이 기체가 소련에서 지상공격이나 했을 걸로 생각했지만, 냉전이 끝난 후 소련측 기밀 문서가 풀리면서 경악할 만한 사실이 드러난다. 소련군은 이 기체를 적 항공기와 싸우는 게 전문인 방공군에서 굴렸던 것이다!!

기수에 장착된 M4 37mm 기관포는 분당 150발의 발사속도에 장탄수도 30발 밖에 안 됐지만, 독일군의 30mm MK 103 기관포와 마찬가지로 전투기는 일단 한발만 맞추면 박살내버리는 환상적인 파괴력을 자랑했다. 미국은 37mm 철갑탄을 소련에 공급하지 않았지만, 고폭탄만으로도 공중전은 물론 지상지원용으로도 위력이 대단했던 것이다. 독일군에서 이 37mm 기관포를 능가하는 기관포는 50mm 기관포 뿐이었는데, 이건 전투기를 상대할 게 아니라 폭격기에 쓸 녀석이고, 50mm를 장착할 수 있었던 건 쌍발 야간 전투기인 Me410 같은 대형기나 제트기인 Me262 뿐이었다.[3]

특히 소련은 공여받은 P-39의 성능 향상을 위해 현지 개조도 했다. 소련 공군은 이전부터 전투기들에게도 20mm 기관포를 표준장비화 할 정도로 전투기의 화력에 집착한 화력덕후였으므로 과감하게 주포인 37mm 기관포와 기수의 12.7mm 기관총 2정만을 남기고 주익의 기관총 - 버전에 따라 7.62mm 기관총 4정 혹은 12.7mm 기관총 2정 - 은 철거해버렸다. 이로서 500kg 이상 몸무게를 줄여 약점 중의 하나인 느린 발과 짧은 항속거리를 어느 정도 개선할 수 있었고, 선회력도 향상되었다. 또한 복잡한 화기관제장치가 하나로 단순화되어 정비가 쉬워지고 포 발사 가스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미국의 선심으로 조종석 전면에 탄유리를 도입하여 더욱 생존성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몸무게도 좀 더 줄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독일군의 입장에서는 동체 중앙에 안정적으로 장착되어 탄도와 정밀성까지 좋은 37mm 기관포탄은 그야말로 한방만 맞으면 사망급의 재앙이었다. 브라우닝 퀄리티! 덕분에 소련의 에이스들 중 P-39로 10기가 훌쩍넘는 격추기록을 세운 이들이 득시글대는 최고의 에이스 메이커로 군림하게 되었다. 당장 소련측에서 50대 이상을 격추한 에이스 중 두 명이 P-39로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이 수치는 역사상 모든 미제 전투기로 올린 격추 기록 중 최고치다.

4. 평가와 후일담

이러니 저러니 해도 9,500여대나 생산되어 결코 실패작이라고는 할 수 없다. 미국과 영국의 혹평은 이 기체를 잘못 개조한 탓이 크다. 좀 더 고성능으로 고쳐달라고 NACA에 의뢰했더니 고공에서는 쓸모없는 바보로 만들어 버려서 사장 이하로 열 좀 받았을 듯. 지금도 NASA는 펀딩이 부족하다고 안달이지... 게다가 서부전선의 공중전은 고고도에서 벌어진 탓에 이 기체의 잠재력이 나타날 수가 없었던 전장이었다.

애초에 만약 2단 과급기를 떼어버리고 이녀석을 뚱보로 만드는 개악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에어라코브라의 저고도 기동성은 어느정도 괜찮다고 평가되며 속도도 대전 초반 등장 시기 기준에선 쓸만했다. 그런 녀석의 체중을 대폭 감소시키면? 중량이 감소하니 추중비가 상승하고 추중비가 상승하니 상승력과 속력도 좋아졌을 것이다. 또한 중량 감소로 익면 하중이 작아져 기동성이 더욱 좋아졌을 것이다. 미제 2단 과급기는 타 기체들이 보여주듯 뛰어난 성능을 가졌고, 에어라코브라의 고고도 성능을 대폭 향상시켰을 것이다. 장갑이 감소한만큼 지상공격중 손실률이 커졌겠지만, 킹코브라를 보면 그래도 잘 써먹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이런 점을 해소한 것이 킹코브라다... 물론 동체 길이나 주익의 길이 등이 차이점이 있지만 대전 초기에 저런 물건이 등장했다면 미군기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지도 모른다.

생산량 중 절반 이상을 쓸어간 소련 이외에도 자유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이탈리아의 바돌리오 정부 등 전선 뒤쪽에서 어영대는 잉여스런 연합국 공군에 뿌려져서 전투기에 목마른 자들의 갈증을 달래주었다.

1943년 후반부터 고고도 성능을 향상시킨 사실상의 최종개량형인 P-63 킹코브라도 등장했지만 역시 짧은 항속거리와 P-51 머스탱보다 느린 속도로 인해 이 물건도 3,303대라는 전체 생산량의 70%를 소련이 쓸어담아가서 쏠쏠하게 잘 써먹었다. 참고로 킹코브라란 이름은 후에 벨이 코브라를 대규모 업그레이드한 버전에도 쓰였으나 아무도 사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미 공군의 LWF 사업 때도 노스롭은 YF-17 코브라를 들이밀었으나 또 YF-16에게 패퇴. 아무래도 '코브라'라는 이름은 전투기에 쓰기에는 마가 낀 모양…. 반면에 쉘비 코브라는 우우아아아아아앙!!! 구우우우우우우웃!!!

또한 제트기 시대에도 소련 공군이 37mm 기관포에 집착했던 이유도 이 기체가 보여준 강력한 성능이 원인이라고 한다. 사실 MiG-15, MiG-17에 탑재된 N-37은 M4 37mm 기관포의 카피로 슈톨모빅, Yak-9T에도 탑재되었던 NS-37을 제트기에 맞게 개량한 것이다. 덤으로 M4의 설계자는 다름아닌 존 브라우닝 선생….[4] 이 양반은 외계인임이 분명하다.

여담으로 2차대전이 끝나고 소련에 남아있던 P-39 중 소수가 한국전쟁 때 북한에 넘겨져 조선인민군 공군 마크를 달고 미군을 공격했다는 일부 미군 조종사들의 증언이 있다. 다만 이를 증명할 구체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않아 확증은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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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연장 샤프트가 조종석 아래를 지나 내치차로 연결된 프로펠러를 돌리는 방식.
  • [2] 렌드리스 물자로 광고를 때린 거다...
  • [3] 물론 Me262도 간단하게 달 물건은 아니라서 무장을 다 철거한 후 50mm 기관포 1문만 기수에 장착해야 했다.
  • [4] 부 무장인 7.62mm 기관총(M1919)과 12.7mm 기관총(M2) 역시 브라우닝인 설계한 기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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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22 01: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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