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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 머스탱

last modified: 2015-09-21 18:05:17 by Contributors


"제2차 대전 중 미국에서 가장 빠른 전투기는 무엇이었나요? , 2차 대전 때 우리 편 전투기 중 가장 멀리 날아간 전투기는 무엇이었나요? , 다른 전투기보다 더 높이 날아간 미국 전투기는 무엇이었나요? 돌 하나로 새 여러 마리를 잡을 수 있겠군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 막강! P-51 머스탱입니다. 야후! - 밀리터리 Q&A, 히스토리 채널

잠깐, 다른 건 몰라도 고고도 성능은 P-47이 더 뛰어날 텐데? 사랑받는 만큼 독빠에게 까이는 전투기
 
North American P-51 Mustang

P-51D.jpg
[JPG image (75.89 KB)]

D/K 모델.

p51b.jpg
[JPG image (55.96 KB)]

B/C 모델. 말콤 후드는 장착되지 않은 상태이다.


Contents

1. 제원
2. 개요
2.1. 개발
2.2. 전설이 되다
2.3. 문제점
2.4. 유럽 전선에서의 머스탱
2.5. 태평양 전선에서의 머스탱
2.6. 그 뒤의 머스탱
2.7. 그 밖의 이야기들

1. 제원[1]


  • P-51D 기준[2]
  • 분류 : 단발 단좌 전투폭격기
  • 전장 : 9.83m
  • 전폭 : 11.28m
  • 전고 : 3.71m
  • 주익면적 : 21.9m²
  • 익면하중 : 217.3kg/m²
  • 자체중량 : 3,465kg
  • 전비중량 : 4,175kg, 최대 5,490kg
  • 엔진 : 패커드 V-1650-7 V자형 12기통 수냉식 엔진 1기, 1,490마력(부스터 사용시 1,720마력)
  • 최대속도 : 705km/h (고도 7,620m에서)
  • 항속거리 : 1,931km (내부 연료), 최대 3,412km (110 US갤런 외부 연료탱크 2개 장착시)
  • 무장 :
    • 주익에 브라우닝 12.7mm M2 중기관총
      • 내측 2정 : 탄약 400발 / 외측 4정 : 탄약 270발 - 총 6정 1,880발
        또는
      • 내측 2정 490발, 외측 2정 490발 - 총 4정 1920발.[3]
    • 2개소의 무장 탑재 하드포인트
      • 2,000파운드(907kg)까지 폭장 가능 [4]
      • 폭탄 장착시 6개/미장착시 10개의 5인치 H.V.A.R 로켓

  • P-51H
  • 전장 : 10.16m
  • 전폭 : 11.28m
  • 전고 : 3.88m
  • 주익면적 : 22.2m²
  • 익면하중 : 194.7kg/m²
  • 자체중량 : 2,986kg
  • 전비중량 : 4,322kg, 최대 5,216kg
  • 엔진 : 패커드 V-1650-9, 1,490마력(부스터 사용시 1,930마력)
  • 최대속도 : 758km/h (고도 7,620m에서)
  • 항속거리 : 2,172km (내부 연료), 최대 4,667km (165 US갤런 외부 연료탱크 2개 장착시)
  • 무장 :
    • 주익에 브라우닝 12.7mm M2 중기관총
      • 내측 2정 : 탄약 390발 / 외측 4정 : 탄약 260발 - 총 6정
    • 2개소의 무장 탑재 하드포인트
      • 2,000파운드(907kg)까지 폭장 가능
      • 폭탄 장착시 6개/미장착시 10개의 5인치 H.V.A.R 로켓


2. 개요


지상의 M4 셔먼 전차, 바다의 엔터프라이즈(항공모함)와 함께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상징하는 전투기.

최고의 프로펠러기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할 정도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최고의 기종 중 하나로 인식된다[6]. 일명 "하늘의 캐딜락" 다만, 이 별명은 2차 대전 당시에 나온 것은 아니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인 태양의 제국에서 나온 것이다.

개발사는 노스 아메리칸. 참고로 이 회사의 주요 작품(?)으로 T-6 택산(Texan) 연습기와 둘리틀 특공대의 도쿄 폭격으로 유명한 B-25 미첼, 제트 전투기 시대의 막을 연 F-86 세이버, F-100 슈퍼 세이버가 있다.

2.1. 개발

1940년 4월, 자국 항공기 생산력만으로는 루프트바페에 대항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영국미국에 구매단을 파견하여 좀 쓸만한 미제 전투기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전투기는 스펙상 성능에서 제로센이나 Bf109에 미치지 못하는 P-39 에어라코브라, P-40 워호크F4F 와일드캣 정도 뿐이었다.

일단 영국 구매단은 P-40을 계약한 뒤에 개발 회사인 커티스의 제조능력 부족 때문에 추가 생산해줄 회사를 찾다가 노스 아메리칸 사[7]를 방문해서 "커티스가 손이 모자라서 그러는데, P-40 좀 같이 생산해주시면 안될까요."라고 제안했다. 제임스 킨델버거 사장의 심기가 불편해졌음은 물론이다.

심기가 불편한 킨델버거 사장은 당시 주임 설계기사였던 에드거 슈미트에게로 가서 이렇게 질문했다.
"영국 신사 양반들이 우리더러 P-40을 만들어 달라는데?"
사장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던 슈미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천하의 영국 공군이 구닥다리 설계의 P-40이나 써서야 되겠습니까? 여기 제 책상에 제가 수년동안 혼신의 공력을 들여서 설계한 전투기 설계도가 있습니다. 이걸 영국 구매단에게 제안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8]
사장은 좋아라 하고 설계도를 들고 바로 영국행 비행기에 올라 영국 공군에 역제안을 하게 된다.물론 노스 아메리칸 직원들은 이 날부터 신나는야근 아 사장님 왜..

사실 설계기사였던 에릭 슈미트는 오래 전부터 최고 성능의 전투기를 개발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으며 몇 년동안 혼자서 전투기 설계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최고 성능을 목표로 했기에 당시 최신 기술인 층류익[9]이나 마이너스항력(즉 추력)을 유발하는 라디에이터 흡기구 등을 설계에 통합시켰고 결국 당대 최저의 항력계수 0.169를 가진 기체를 설계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기체를 엔진이 다 말아먹었지만

당시 영국 구매단은 P-40의 성능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국과 협의를 마친뒤에 "P-40보다 좋으면 즉시 400기 구매, 아니면 계약은 무효"라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117일만에 모든 면에서 P-40을 능가하는 신형 전투기가 탄생했다. 공밀레…공밀레… 그래도 전쟁터 끌려가서 죽는 것보다는 낫다… 이 당시 미국도 징병제.[10]

테스트 중 사고난 NA-73X

최초의 프로토타입인 NA-73X와 XP-51의 모습

이 성능에 만족한 영국 공군에서 320대를 머스탱 MK.I 이라는 이름으로 발주, 도입했다. 참고로 정확한 발음은 '머스탱'에 가까우나, 국내에서는 도입 초기부터 무스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탓에 보통 '무스탕'이라고 불렸다.

P51a.jpg
[JPG image (244.92 KB)]

A형의 모습. 엘리슨 엔진의 구조 덕분에 공기 흡입구가 프로펠러 기동축 위에 달려 있다.

그러나…

P-40에도 사용된 엘리슨 엔진을 장착한 초기형(A형)은 저고도에서는 당대의 독일 전투기보다 우수했지만[11][12], 고도 4000m만 올라가도 성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영국 공군은 머스탱을 지상공격이나 저고도에서 적 공격기를 쫓아내는 정도로만 사용했다. 혹은 정찰 장비를 장착해 고속 정찰기로 사용하던지... 물론, 지상 지원용으로 사용된 모델은 히스파노 4정을 날개에, 50구경 2정을 카울링에 장착하여 무시무시한 위력을 자랑했다.

미군도 2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영국군을 위해 개발된 전투기니 우리에겐 안맞을꺼야 흥" 이라면서 별 흥미를 못 느껴 거의 방치해두었다. 1년 가까이 방치되어있다가 나중에 머스탱을 가지고 공압식 기관총 급탄장치를 시험해보던 테스트 파일럿이 말하라는 급탄장치 이야기는 안하고 기체 이야기만 하면서 "저고도에서는 미친 것 같음."이라고 보고를 올렸는데도 별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진주만 공격 후 2차대전에 참전하자 한대가 아쉬웠던 미국에게 저고도 비행성능을 인정받아서 미 육군 항공대는 급강하용 에어 브레이크를 다는 등의 마개조를 통해 공격기 A-36 아파치로 채용했다. 아파치는 영국 공군에도 채용되어 Mustang Mk. I (Dive Bomber)라고 명명된다. 이 물건은 50구경 6정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에서도 아파치라는 이름은 얼마 안 가 머스탱으로 바뀌었고, 원본의 경우, 엔진을 고성능 엘리슨으로 교체하고 20 mm 캐논만 4정을 장착해 사용했다. 여기다 비행 성능을 높이기 위해 개량을 거친 모델은 무장을 50구경 4정으로 다운그레이드하여 영국군에 Mustang Mk. II라는 이름으로 채택된다.

이렇게 처음엔 비범한 전투기로 소개되었지만 그저 그런 기체로 사라질 뻔 한... 즉, 급강하 폭격기 내지는 저고도용 전투기로 잊혀질 뻔한 머스탱한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는데...

2.2. 전설이 되다

머스탱의 성능을 높이 평가했던 영국 공군 기술진들은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번에 들어온 미제 전투기가 상당히 좋은 것 같아. 그런데 고도만 올라가면 힘을 못 쓰는데 차라리 엔진을 바꿔보면 어떨까?"[13]해서 당시 스핏파이어, 스키토 등에 성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롤스로이스 멀린61 엔진을 달아보았다.[14]

그리고 이 발상의 전환으로 P-51은 전혀 다른 물건이 되었다!

특히 최대속도는 80km/h 이상 증가하면서 700km/h 이상이라는 충격적인 속도를 기록한 데다가 해수면 고도에서조차 600km/h를 넘기는 등 훌륭한 능력을 지닌 전투기가 만들어진 것. 이로써 머스탱의 문제는 설계가 아니라 고고도 활동을 상정치 않고 개발한 미국 수냉식 엔진의 한계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ɔ) from

이것이 바로 문제의 미제 엘리슨 V-1710 엔진

엘리슨 엔진은 설계상의 제약으로 인해 단발기에서는 1단 슈퍼차저 밖에 장착할 수 없었다는 제약으로 인해 공기가 희박한 곳에서는 성능이 매우 떨어졌다. 예외적으로 1단 터보 + 1단 슈퍼차저의 구성이 가능했던 P-38 라이트닝은 제대로 된 고고도 성능을 낼 수 있었다. 문제는 전장 상황에 따라 고고도에서의 운용이 필요한 경우도 많고 또한 이 엔진이 제 성능을 발휘하는 저고도에서만 운용하면 표적고착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원래 지상공격 중 입사각이 낮거나 빠른 속도로 인해 급강하 후 고도 회복을 못하고 그대로 추락해버리는 것을 표적고착이라고 하며 모든 비행기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프로펠러기든 제트 전투기든... 그런데 P-51은 동체가 워낙 무거워서[15] 2,000피트 이상으로 고도를 충분히 잡지못하면 그대로 추락한다. 물론 표적고착은 고도만 잘 잡으면 일어나지 않는 매우 기초적인 실수라서 보통은 일어나지 않지만 저고도로만 날아다니면 한번의 실수로도 충분히 걸릴 수 있다. [16]
때문에 일정 고도 이상 높은 고도에서 활동해야 안전한데, 이럴 경우에는 엘리슨 엔진이 급격하게 힘을 잃어버렸다.

멀린 엔진 장착 시험 결과를 전해 들은 노스 아메리칸사는 대단히 기삐했으며, 영국 공군은 "어머 이건 꼭 질러야 돼!"를 외치면서 멀린 엔진 탑재형 머스탱을 머스탱 Mk.III로 명명하고 무려 1000대나 주문했다. 그러나 가장 기뻐했던 건 사실 미군이었다. 급작스럽게 전쟁을 맞이해보니 주력 전투기들이 맥을 못추는 것을 보며 골치를 썩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계 최고의 성능을 지녔을지도 모르는 자국산 전투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셈이니까. 참고로 미군은 400대를 주문했다. 물론 실질적 이유는 자신들이 필요했던 장거리 호위기의 등장때문이지만.

게다가 B형부터 조종석 후미 공간에 자동 방루 연료 탱크를 장착하고, 외부 추가 연료 탱크를 장착하니 항속거리(2,700km)도 무지막지하게 길어졌다.덤으로 동체후부에 322리터짜리 연료탱크를 탑재해 안그래도 좋지않은 기체밸런스를 더 안좋게 만들었다.[17] 덤으로 머스탱의 순항속도는 443km/h. 이는 항속거리가 길기로 유명했던 일본군의 후기형 제로센(외부 연료 탱크 추가시)보다도 무려 100km! 이상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초기형 제로센의 항속거리 3,300km(외부 연료 탱크 장착시)도 200km/h의 순항속도로 달성한 것이고, 이조차도 전력출력의 상태로 비행하면 머스탱보다 더 숏다리가 된다.

덕분에 스핏파이어는 물론, 쌍발기인 P-38 라이트닝이나 항속거리를 억지로 잡아늘려도 2,000km에 불과했던 P-47 썬더볼트보다 더 효율적으로 폭격기 호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원래 P-51 등장 이전까지는 연합군 기종 중 그래도 항속거리가 제일 길었던 P-47이 폭격기 호위 임무를 주로 수행했다. 그러나 P-47도 프랑스-독일 국경 즈음 와서는 폭격기 대열과 작별(?)하고 기지로 귀환해야 했으며, 당연히 Bf109, Fw190 등 독일 전투기들은 이 때를 기다렸다는듯이 폭격기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연합군의 폭격, 특히 미군의 주간폭격이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미군도 멀린 엔진을 롤스로이스사로부터 부랴부랴 사온 후, 탑재형 머스탱을 생산하여 P-51B/C로 제식채용했다.

그러나 P-51B 배치 직후 미 육군 항공대는 A-36 시절의 떨어지는 고고도 비행 성능 때문에 의구심을 버리지 못해서 지상 공격부대에 우선적으로 배치하였다. 이후 폭격기 호위임무에 P-51B을 한 번 투입해보니 그야말로 쓸 데 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물론 독일 공군에게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기본적으로 최우수 클래스의 속도와 호위기치곤 괜찮은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폭격기 요격에 치중하는 독일 공군의 특성상 공중전에서 P-51을 확실히 압도하기는 어려웠다. 전투기 수만큼의 폭격기를 요격하다 호위기란게 늘어났으니 게다가 그 당시 독일 상공을 수비하던 독일군의 전투기는 폭격기만 상대하면서도 조금씩 출혈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폭격기를 거의 완전히 호위하는 전투기가 따라붙게 되자 난이도가 좀 더 상승했다.[18]

한 가지 특이사항으로 물방울형 캐노피를 도입하기 전인 P-51B/C형 머스탱은 그 외형이 독일의 Bf109와 유사했다[19]. 실제로 멀리서 보면 식별이 어렵다는 말이 자주 들려왔는데 이 때문에 P-51의 기체설계를 독일 회사에서 Bf109 관계로 일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기사가 했다는 루머가 생겼다. 이 루머가 마치 사실인양 퍼져 있기도 한데 사실 에드거 슈미트(Edgar Schmued)주임설계기사가 독일에 살다가 미국에 이민 온 사람이긴 하지만, Bf109와는 관계없던 사람이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따지면 독일계 미국인 다 잡아넣어야 한다.[20]

어쨌든 이 헷갈릴 정도로 유사한 외형은 전장에서 P-51 잔혹사를 만들어냈다. 그냥 잘 날아가고 있는데 아군 대공포가 쏴버린다거나, 혹은 전장에서 아군 전투기, 심지어는 호위대상인 폭격기의 방어기총사수들까지도 적기로 착각하여 쏴버릴 정도였으니 이로 인해 아군오사로 격추당하는 수모를 당하기까지 했다.

실제 유명한 일화 중에는 한참 독일 본토 폭격이 진행중일 때, 폭격기의 기총사수가 신나게 기총을 쏘다가 실수로 아군 호위기 P-51을 격추시키는 사고를 터뜨렸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기총사수는 "아이고 맙소사 난 이제 죽었어"라 외치며 이걸 어떻게 변명해야될지 머리를 쥐어뜯다가 에라 모르겠다라며 당시 요격용으로 별로 쓰이지도 않았던 Bf109E형으로 격추보고를 올려버렸다. 그런데 다른 폭격기의 기총사수가 Bf109E 격추가 맞다고 증언해주는 바람에 적기 격추로 기록된 적도 있었다(!). 그저 독일 상공에서 아군에 팀킬당한 조종사만 지못미. 결국 수뇌부에서도 아군 오인사격좀 막아보자고 독특한 줄무늬를 그려 넣었고, 나중에는 아예 도색이 안된 기체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은빛 무도장 간지는 P-51의 상징이 됐다. 미국 외에 일본 전투기들도 나중에는 무도장 기체들이 나왔는데 이쪽은 페인트까지 다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한 짓

그리고 속도는 매우 우수했으나 전투기로서의 선회성능이나 지속상승률 등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고 화력이 다소 빈약하고 급탄 불량이 자주 일어나며 후방 시야가 불량하다는 단점도 지적되었다.[21] 때문에 물방울형 캐노피가 도입된 P-51D형(영국명 머스탱 Mk.IV)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또한 스피트파이어처럼 반쯤 버블 캐노피 형상을 가지도록 개량되기도 했다. 이를 말콤 후드라 부른다. 또한 D형이 대세가 되고, 이 B/C형을 D/K형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개조키트 또한 제공되어 많은 수가 마개조를 받게 된다. 덕분에 숫자는 P-51D가 많았으며, 이것이 P-51로 널리 알려진 모델이기도 하다. 실루엣의 개성이 확실해진 덕분에 오인사격 문제도 대폭 줄어들었다. 비슷한 개량은 P-47 썬더볼트에도 적용되었다.

P-51D형은 약 8,000대 가량 생산되면서 P-51계열 중 가장 많이 생산된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정확하게 말하면 실질적으로 활약을 시작한 게 1943년 11월 경이니 2년이 채 안 되는 기간동안 P-51 계열기가 파괴한 적기는 공중전에서 4,950대, 지상파괴 4,131대에 달한다.[22] 독일측에선 2700대가량을 잃고 3000를 격추했다하는데 이에 대해선 추가바람[23] [24] 단 독일보다 격추집계가 느슨했던 미군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압도적인 물량을 자랑했던 미국이었던 만큼 어느 정도 과장이 있더라도 격추수가 손실댓수보다 많다는 건 명확해 보인다.[25]


맥닐 육군 항공대 기지에 배치된 P-51D형. 1943년. (출처)

P-51D형은 주무장인 50구경 기관총이 B/C형의 4정에서 6정으로 늘었다. 물론 독일의 20mm 기관포MG 151보다는 위력이 약하지만 높음 발사율과 곧은 탄도, 신뢰성등이 좋아서 B-17같은 중폭격기를 상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총알의 카페트화망을 순식간에 칠 수 있는 M2 중기관총이 전투기 상대로는 충분한 화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총의 배치형태 등을 수정, 종종 발생하던 기총의 탄걸림으로 인한 작동불능 상태를 막았다. 이 점이 개선되지 않은 종전의 P-51B~C형은 종종 기총 2, 3정으로 싸우게 되는 일도 있었으므로 실질적인 화력증대는 더 컸다. 이 외에도 연료 탱크 용량이 늘어났으며 기타 몇 가지 부분이 개량되었다.

전체적으로 늘어난 중량 때문에 기동성이나 최대속도는 P-51B/C보다 약간 떨어지게 되었으나 엔진이 V-1650-3 에서 V-1650-7로 강화되면서 중-저고도에선 오히려 약간 빨라졌으며 강한 화력과 좋은 시야 때문에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P-51D를 선호하였다. 물론 일부 조종사들은 그래도 속도/기동성이 뛰어난 P-51B/C를 더 선호하기도 했다. 나중에 P-51B/C도 말콤 후드라는 측면이 불룩 튀어나온 캐노피를 사용하여 후방확인이 쉬워지고, 기총문제를 해결하여 기총고장 문제를 줄이기도 했다.

D후기형에는 자이로를 채택한 K-14 자이로 조준기움직이는 조준기가 장착되었다. 조종사들 끼리는 통칭 '에이스 메이커'라 불리웠는데, 자이로 장치와 연동되어 예측 사격을 도와주는 흠좀무한 물건이었다. 정작 초짜조종사들에게나 에이스메이커 소리를 들었지 후반가면 걸리적거린다고 아예 떼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이 당시 외계인 고문에 특화되었던 독일군도 이런 장치는 돈이 없어서 양산기에는 장착하지 못했다. 독일이 자이로 조준기를 채택한 것은 Ta152인데, 이건 양산기지만 워낙 늦은 1944년 12월에나 양산체제로 들어가는 통에 양산기 취급도 못받는다. 쿠르트 탕크가 Ta-152를 조종하는 도중에 조우한 머스탱 4기를 최대속도-750km/h-로 따돌린 건 유명한 이야기다. 물론, Ta-152가 양산 체제에 들어갈 정도로 독일이 버틸 수 있었다면 이미 하늘은 P-80 슈팅스타Me262 제트기전이 벌어질 시점이었으니 if로서도 큰 의미는 없다. 그리고 Ta-152가 겨우 실험단계에서 머무를 동안, P-51의 경량 고속 파생형인 P-51H는 그 Ta-152보다 더 빠른 최고속도를 기록하며서도 실제로 수백대나 양산되었다. 전쟁 종결 시점에서 P-51 계열은 여전히 최속의 지위를 유지했다.


Mustang Vs. Bf 109(구스타프로 보인다.)...
실제 일화에 대한 증언을 바탕으로 재현한 CG이다. 상승력, 선회력, 기동성 모두 앞선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단 여기 나오는 상황은 신빙성을 의심하기 어렵다. 저 상황 자체가 퇴역 조종사(영상에 나오신 할아버님)의 증언을 토대로 구현된 것인데, 한국과 달리 북미 지역은 참전 용사가 받는 대접은 상당하며, 그만큼 그들도 명예를 지킨다. 저런 사소한 걸 사기친다는 것은 스스로 명예에 먹칠한다는 의미이므로 믿어도 좋다[26]


P-51D의 연료를 반 정도로 계산해보면 도리어 수치상으로 Bf109 G-6와 호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선회율# 및 상승률#을 시뮬레이션해본 수치(단 이 "시뮬레이션" 이라는 것은 RC비행기를 위해 개인이 excel로 제작한 그래프이다. 신뢰성은 보장 못한다.)를 보면 매우 느린 속도가 아닌 이상 호각이다가 빠른 속도로 갈 수록 P-51D의 성능이 더 나은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G-6는 MW50을 장착하지 않았다면 기본적으로 G-2와 같은 성능이고 G-2는 머스탱보다 1년 일찍 나왔던 기체라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2.3. 문제점


P-51계열기 전체는 장거리 호위기인 만큼 다량의 연료를 싣는데, 이 연료 탱크의 위치 문제로 동체의 균형이 비행시간 동안 극심하게 변화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이러한 문제점은 조종석 뒤 연료 탱크가 신설된 B/C 후기형과 D/K형에서 심했다. P-51의 엔진은 스핏파이어와 같은 계열임에도 스핏파이어와 비교하여 넘사벽의 비행거리를 보여준 것은, 그 자체의 공기역학적 설계가 출중하였던 탓도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연료를 엄청 많이 싣고 다녀서였다.

P-51 B/C 후기형 이후부터는 주익 중앙부근과 조종석 바로 뒤 후방에 연료 탱크가 있었는데 따지고보면 꽤 위험한 자리이지만(조종석 바로 뒤와 바로 밑에 폭발물질인 연료통이 있는 셈) 이 문제는 연료통에 구멍이 나면 자동으로 막히는 자동방루식(Self Sealing)설계로 해결 하였다. 그러나 조종석 후방의 연료 탱크에 연료가 25갤런 이상 남아있으면 P-51의 무게중심을 지나치게 뒤로 옮기기 때문에 기체가 불안정하여 조종사가 조종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일단 이륙과 순항이야 지속적인 트림 조절로 해결할 수 있지만, 운 나쁘게 비행 특성이 최악일 경우 공중전이 벌어지면 조종사는 행여 불안정해진 기체탓에 실속이나 하지 않을까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다른 전투기들은 장거리 작전을 위해 외부 연료 탱크를 달게 되면 일단 이 외부 연료 탱크의 연료를 먼저 써버린다음 동체 내부의 연료를 썼지만, P-51 조종사들은 조종석 후방 연료 탱크를 최우선적으로 써서 작전지역에 도달할때 즈음에는 조종석 후방 연료통이 다 비도록 했다.

특히 P-51의 수냉식 엔진은 평소에는 신뢰성 높아서 잘 작동하지만, 튼튼한 다른 부위와 달리 이 엔진은 한 발이라도 피탄될 경우 냉각수 유출로 순식간에 엔진 과열 크리가 작렬한다. 이럴 경우에는 회복이 불가능하여 조종사들은 엔진이 피탄될 경우 엔진을 정지시켜야 했었다. 이 약점은 1944년 중후반 이후 독일 공군 전투기의 씨가 마르면서 P-51의 지상공격 임무 비중이 늘어나는 바람에 더욱 부각되었다. 각종 대공포화는 물론, 심지어 소총수가 발악하듯 쏴대는 소총탄, 기관총탄도 P-51 조종사들에게는 큰 부담과 위험이 된 것. 실제로 지상공격 와중에 희생된 에이스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지상 공격과 공중전은 약간 범주가 다르다. 제 아무리 공중전의 신이라도 지상 포화가 작렬하는 지상군을 공격하러 갔다가 살아 나오는 것은 운빨이 제법 작용한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당시에는 스탠드 오프 무장 시스템 같은 건 없었다.

물론, 이 문제는 P-51 덕분에 사기 맷집유닛인 P-47과 호커 타이푼 등 공격기들이 하루 종일 지상공격 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어지간한 수냉식 전투기는 이런 문제를 전부 가지고 있다. 게다가 수냉식 엔진의 호커 타이푼도 사실은 Fw 190을 잡으려고 만들어진 기종이지 지상공격을 목적으로 만든 게 아니다.

가장 심각한 약점은 사실 피탄에 약한 엔진도, 무거운 동체도 아닌 저속 비행시 불안정성이었다. 이 문제가 다른 것들보다 심각한 이유는 전투를 안 하거나 회피하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이착륙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속도가 거의 스톨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지면 특정 상황(공격각, 기수 각도, 프롭 피치 등 복합적인 상황) 요우 축(양 옆으로 움직이는 축)의 안정성이 떨어져버렸고, 이렇게 느린 상황에서 약간이라도 조종간을 잘못 만지면 급작스럽게 롤[27]이 되어버리는 괴악한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이 급작스러운 기동이 이루어지면(당연하게도 조종사가 일부러 한 것이 아니다!) 조종면이 날아가거나 아예 날개가 부러지는 등... 기체가 손상을 입게 되었고, 추락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B/C모델 중 이 문제로 추락한 경우가 보고되었으나 D/K형에서도 일어났던 문제다. 이 덕분에 개량을 거쳐 수직 꼬리날개를 앞쪽으로 살짝 늘리고[28] 러더 트림을 설치(B형에도 있었지만 약간 개량함)하는 등 개량을 하게 된다. 그러고보니 후속작 F-100도 세이버 댄스라는 악명깊은 문제점이 있었다... 노스 아메리칸의 전통인가...

그리고 머스탱은 수냉식 단발기 치고는 꽤 크고 무거운[29] 기체였기 때문에 전비중량에서의 익면하중이 높고[30] 추중비가 낮아 에너지의 소모 또한 상당히 큰 편이었다 그리고 추중비와 익면하중이 저러니 지속상승력이나 수평가속력도 평범한 편이었다.

일단 선회력은 당시 적기였던 독일기들도 폭격기 요격을 위해 건포드까지 덕지덕지 붙이면서 출격한 기체들이 많다보니 대체적으로 영 좋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지속상승력이나 수평가속력은 Bf 109 G-10이나 K-4같은 후기형 기종들이 머스탱을 능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기종들을 상대로 상황우위를 점하지 못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그리고 자체적인 기체 디자인에 문제점이 다소 있었다. 속도를 올리는데 좋으나 안전성에서 기존 주익 보다 불리한 편인 층류익을 채택하여 날개 피격시의 기체 안정성을 떨어뜨린 것이다. 독일 공군이 전적으로 폭격기 공격에 집중하지 않고 머스탱과의 교전 또한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머스탱의 격추수는 분명 지금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또한 이러한 층류익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고 항공기 기술력으로 어느정도 커버하여 층류익중에서는 상당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전쟁 중엔 그에 대한 문제점 지적이 없다시피 했지만 층류익의 태생적인 문제점은 존재했기에 어느정도는 조심해야 했다.
The North American P-51 "Mustang" and the Laminar Flow Wing: A Success Story or just an Illusion?

꽤나 많은 약점들이 있었지만, P-51이 결코 약하거나 쓸모없는 기체란 소리가 아니다. 다른 기종을 언급하는 경우는 기종 자체의 전투력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이며 실제로도 대전중에는 전투기로서의 면에서 머스탱을 능가하는 기종들도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그 어떤 기종도 머스탱의 장대한 항속력과 긴 체공시간, 그리고 적절한 성능의 조합이 가져오는 제공 장악력을 따라올 수 없었다. 당장 제로센 수준의 기체가 항속거리만 길어서 유럽 전선에 배치됐다면 독일 입장에선 격추 셔틀이 추가된 수준이었겠지만, 머스탱의 성능정도에 긴 항속거리는 상당한 위협이 된다.

무엇보다 미국이 그렇게도 좋아한 전략폭격에 있어서 머스탱은 매우 훌륭한 호위기였다. 폭격 편대를 사실상 완벽히 호위가 가능한데다 속도까지 빠르니 일단 여러 문제가 있다해도 당시 미국 입장에선 굉장한 호사였을것이다. 또한 2차 대전의 전장에서 Fighter Sweep 전술을 수행하며 나치 독일의 하늘을 완전히 지배하는 머스탱 앞에선 머스탱과 맞먹거나 우위의 성능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대전 후기 독일 전투기들은 제대로 뜨기도 어려웠고 이륙에 성공해도 착륙할때 공격당해 격추당하는 데다 전투때에는 항상 상황적 열세속에서 제 성능을 살리지 못하고 소모되어 갔다. 나치독일 공군의 조종사 인적자원 수급이 44년도에 와서 붕괴되면서 단순히 성능좋은 전투기 몇 대를 더 투입한다고 해서 사정이 나아질 리도 없었고...


머스탱은 1:1 전투에서 최강은 아닐지라도 고속과 그럭저럭한 비행성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양산가가 싸고(P-38은 머스탱의 3배, F4U 콜세어는 2.5배의 가격을 자랑했다.) 상기한 제공장악력 덕분에 다른 기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전략적 우위성을 가져다 주었다. 즉 다른 전투기가 전투에서 이길때 머스탱은 특유의 체공시간과 미국이 원하는 이상적 전투/호위기로서 톡톡히 활동했으므로 최강은 아니지만 최선의 전투기, 전쟁을 승리로 이끈 기체라는 평가는 받아도 부족하지 않다. 무엇보다 속도성능에서는 대부분의 기체에 대해 우위를 점하기도 했고.

사실 머스탱보다 전투력이 뛰어나다는 기종들은 미국의 무자비한(...) 전략폭격과 지상공격등의 다양한 이유로 별로 활약하지 못했다. 거기다 폭격기 요격에 중심을 두다보니 제대로 전투하기도 힘들었다(기체 성능의 문제가 아닌 당시 우선순위의 문제로 인함). 그 앞선다는 전투력도 압도할 수준이 아니면 별로 의미가 없는 것이 2차대전의 공중전이었기 때문에 당시 유럽 하늘의 지배자가 머스탱이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4. 유럽 전선에서의 머스탱

"졌어, 우리는 이미 전쟁에 진 거야." - 헤르만 괴링

제3제국 공군장관 제국원수(Reichsmarschall.) 헤르만 괴링베를린 상공에 나타난 P-51을 본 순간 좌절하며 한탄한 말로 전해진다. P-51이 유럽 전장에 일으킨 바람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가뜩이나 B-17 등 폭격기만 상대했을 때에도 폭격기의 강력한 자체 방어 때문에 조종사/기체 손실을 차근차근 강요받았던 독일 공군에게, 호위에 중점을 둔 기체치곤 나쁘지 않은 공중전 성능을 갖춘 P-51의 호위는 재앙이었다. 강력한 P-51의 호위를 뚫고 또 다시 방어기총으로 중무장한 폭격기에 접근해야 하는, 훨씬 어려운 임무를 강요받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폭격기 요격에 나선 독일 공군, 특히 숙련 조종사의 손실은 급증할 수 밖에 없었으며, 요격에 성공한 B-17의 양도 줄어들었기에 그만큼 독일은 폭격에 더욱 노출되었다.

상기 내용 중 독일기들이 호위전투기를 무시하고 폭격기에만 달려들도록 지시받았기 때문에 교환비가 불리하게 나왔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는 신빙성이 의심스러운 내용이다. 첫째, 요격부대가 요격받을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호위전투기를 배치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전술중 하나로 막장으로 악명을 떨친 일본군의 가미가제 공격대조차도 가급적 호위기를 붙이려고 노력했다. 당연히 그나마 상식적이었던 독일 공군은 호위전투기의 위협을 받게 되자 중무장/중장갑의 FW-190에 요격임무를 주로 맡기고 Bf-109는 FW-190을 호위하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위의 호위전투기를 무시하라는 지시도 FW-190이 요격임무를 전담하고 이를 Bf-109의 호위부대가 막아낸다는 가정하에서나 성립하는 것이지 독일기 전체가 호위전투기를 무시하라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둘째, 정작 연합군의 전투조종사들은 1940년의 영국 상공에서의 독일 전투조종사들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의 불리함을 안는 것을 감수해야만 하는 폭격기 호위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차려놓은 밥상을 마다하면서까지 오히려 전투기 단독으로 수행하는 Fighter-sweep임무를 더 선호했다. 셋째, 어차피 1944년에 들어서면서 미 육군항공대와 영국 공군은 보유한 전투기가 남아도는 나머지 지상공격 임무에 전투기를 대거 투입하기 시작하고, 지상공격중 입는 손실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그걸 버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서방 연합국의 공군력이 압도적인 상황에서는 전술적 실책 한 두개가 만회되었다고 해서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다.

결국 서유럽의 하늘은 P-51을 앞세운 서방연합국 전투기들에 의해 청소되었고 미국/영국의 폭격기들이 마음 놓고 더욱 대규모로 날아와 독일 전역을 더욱 확실하게 밀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게 P-51이 불러온 독일의 가장 큰 재앙이었다.

더구나 폭격기 호위에 만족하지 않고 베를린이든 어디든 독일 땅이라면 어디든지 떼거지로 날아 와 독일 전투기들의 씨를 말려버리는 것은 물론, 심지어 기지, 비행장, 전차, 트럭, 열차, 독일군 행렬 등 눈에 보이는 모든 표적에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어 기관총탄, 폭탄, 로켓탄으로 공격을 퍼부어대는 P-51은 독일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일 수밖에 없었다. 추가로 영국의 타이푼과 미국의 P-47마저 공격하니...

더욱이 독일의 고질적인 파일럿 부족과 겹쳐져 1944년 후반이 되면 서부 전선에서는 독일 공군의 베테랑 파일럿들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때문에 P-51은 다른 연합군 전투기에서는 예를 찾을 수 없는 척 예거, 클라우드 크렌쇼, 빌 위스너, 조지 프레디 등 단 하루에 다섯 대 이상의 독일기를 격추하는 "1일 에이스"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괴링이 위와 같이 한탄했다는 건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니잘못이야 이 돼지야 항공 우세를 상실한 상황에선 사실상 종전 선고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주간(big week)이라 불린 1944년 2월 유럽 상공에서의 대규모 공중전, 그리고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에 이르기까지 영미 연합군은 공군력을 총동원하여 독일 공군을 공격했고 P-51은 P-47, B-17, 영국공군의 타이푼, 템페스트와 함께큰 역할을 수행한다. 그 후 상륙작전 당일 하루종일 상륙하는 연합군에 공습을 가한 독일기를 다 합쳐봐야 100기 정도 밖에 되었다고 한다.[31] 참고로 이날 부하 하나 데리고 둘이 출격해서 벌떼같은 연합군기의 홍수 속에서 무쌍(...)찍고 살아돌아온 용자는 요제프 프뢸러 소령, 종전까지 101기를 격추시킨 에이스다.

그리고 P-51은 히틀러가 자살하고 독일이 항복하는 그 날까지 독일 하늘을 완전히 잡게 된다. 독일 병사라면 언제 어디서나 먹이를 찾는 송골매처럼 하늘을 떠도는 P-51의 은빛 날개를 볼 수 있었고, 심지어 독일 공군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Me262도 전투 손실중의 절반 이상이 자신의 기지에서 이/착륙 도중에 P-51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는 사실은 P-51와 연합군의 제공권 장악이 얼마나 철저했는지를 보여준다.[32]

2.5. 태평양 전선에서의 머스탱

태평양 전선에 투입 된 머스탱은 일본 본토에 쑥을 재배하기 위해 폭격기를 보낼때 호위기로써 나가거나 육상에서 일본군 항공기와 전투를 벌이었고 태평양 전쟁 동안 일본군 항공기를 상대로 싸우고 있던 헬켓이나 콜세어에 비해 덜 각광받기는 했지만 여기서도 사신(死神)의 자리를 얻기는 했다.

이미 600km/h 초반대의 F6F 헬캣과 600km/h 중반대의 P-38 라이트닝에게도 죽는 소리를 내던 일본 해군/육군항공대의 안습 기종들에게 700km/h이 넘어가는 속도 + 고도에 관계없는 성능 + 고속 순항 + 장대한 항속력 +일본기들의 연료탱크에 소이탄 세례를 퍼부어줄 50구경 기관총 6정 을 갖춘 P-51은 이미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물론 극소수 살아남은 일본 에이스들은 헬캣이나 머스탱을 상대로도 격추수를 조금씩 추가해나갔다. 2차대전 시기 공중전의 특징은 공중전의 결과가 기체의 스펙만으로 결정되는 게 절대로 아니며, 조종능력, 상황판단, 무엇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골라 싸울 수 있는 기량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3,000미터 이하의 저고도에서는 저속선회전이 통용될 여기가 많았기 때문에 저고도에서는 에이스 파일럿이 모는 하야부사나 하야테가 애송이 파일럿이 모는 머스탱이나 헬캣을 잡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일본 전투기의 워낙 빈약한 방어력과 수뇌부의 병크 등으로 인해 종전까지 살아남은 일본 에이스는 독일보다 훨씬 적었다. 거기다 숙련 조종사의 부족이 독일보다 훨씬 심했던 일본군안습 그 자체. 거기에 일본 전투기 자체가 빈약한 방어력을 가졌었기에 6정의 50구경 중기관총의 사격선을 일부러 흐트러지게 정렬해서 마치 분무기로 총알을 뿌려대듯이 대충 긁어대도 그 대충 긁어댄 총알에 격추되는 일본군 전투기들은 말 그대로 줄줄히 밥이 되었다. 일단 유럽 전선의 독일기는 그래도 방어력이 시망은 아니었기에 이런식으로 조준선 정렬을 해두면 결정적인 화력이 부족해서 슬쩍 건드리고 마는 식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일본군 전투기들은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시망이라서...이런식의 정렬법은 헬켓이나 콜세어 역시 일본기를 대상으로 사용했다.

유럽전선에 비해 P-51이 그렇게 부각되지는 못했던 이유는. 유럽전선과 달리 4발 중폭격기의 대편대에 의한 전략폭격이라는 양상이 대전 후반에 가서야 벌어졌고 대부분의 항공전역이 섬을 거점으로 한 비행장간의 교전양상이 되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P-38 정도의 항속거리로도 어지간한 작전 수행에 큰 문제가 없었고, 이들의 항속거리를 벗어나는 목표물에 대해서는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한 기동부대가 목표로 다가가서 함재기로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헬캣, P-38 등 기존에 배치되었던 연합군 전투기로도 일본군 전투기들을 신나게 학살하고(...) 있던 상황에 똑같은 학살자(...)가 하나 더 늘어났을 뿐이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수 밖에.. 그래도 당시 일본의 파일럿들의 수기를 보면 머스탱은 마왕급으로 취급된다. 여기서 P-51D 보다 경량화 되고 항속거리와 속도까지 강화된 P-51H도 투입 될 예정이었지만 그전에 일본이 항복해버려서 F8F 베어캣처럼 벤치맴버가 되었다.

물론 태평양에서도 P-51의 기나긴 항속거리는 큰 힘이 되었다.

청두(성도)나 충칭(중경), 쿤밍(곤명) 등 중국 내륙에서 출격한 미군의 P-51들이 대만상하이의 일본군 공군 기지를 휩쓰는 등 상대적으로 훨씬 짧은 항속거리의 기체를 보유하고 있던 미군의 행동반경을 더욱 넓히는데에 공헌한 것이다.

P-51의 항속거리가 특히 빛을 발한 것은 1944년 6월 사이판 전투/ 전투 이후이다. 이곳에서 출격한 B-29의 본토 폭격을 엄호하는 것은 종전시까지 태평양 전선에서 P-51이 잘 수행해 낸 가장 중요한 전략적 역할. 그리고 사이판/에 이어 이오지마, 오키나와 등 본토와 더욱 가까워진 기지에서 출격한 P-51은 F6F 헬캣, F4U 코르세어 등 미 해군의 함재기들과 함께 본토의 일본군 항공기를 일소하고 제공권을 확보하는 임무(fighter sweep)까지 확실하게 수행해 낸다.

구로에 야스히코는 중국 전선에서 노획된 머스탱을 시험평가하고 이 기체로 일본본토의 항공대기지를 순회하면서 모의전을 실시하기도 했는데, 조종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머스탱의 압도적인 비행성능을 되도록 드러내지 않고 모의전을 했다고 술회했다.

2.6. 그 뒤의 머스탱



보조 출력으로 제트엔진을 사용하는 머스탱도 실험되었다. 위의 것은 XRJ-30-MA 램 제트 엔진을 날개 끝에 달아놓은 실험기고 아래는 포드 펄스 제트엔진(PJ-31-1)을 달아 놓은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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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대한민국 공군의 유일한 노즈아트 기체인 신념의 조인기.
딘 헤스 소령이 탔던 해당기체는 한국전쟁 당시 사고로 손실되었고 사진을 비롯한 신념의 조인으로 전시하고 있는 기체들은 모두 복원품이다.

미국 육군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 개편되자, P(Pursuit: 추격기) 부호는 F(Fighter) 부호로 교체되었으며, P-51도 F-51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원래는 주방위군 공군으로 돌리거나 퇴역시킨 다음에 해체하거나 표적기로 사용했는데 전투기가 부족한 한국 공군에게 공여해보니까 이게 의외로 쓸만해서, 결국 미 공군은 부랴부랴 F-51을 재취역시키기로 결정하고 남아있는 기체를 있는 대로 끌어모았다. 원래는 머스탱만 모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긴박한 상황에서 우선 수송의 편의성을 위해 한국에서 가까운 미국 서부의 주방위군 기체부터 끌어모으니 마침 미시시피강 서쪽의 주방위군 공군이 장비하는 전투기가 머스탱이었다. 미시시피 강 동쪽의 주방위군 공군은 썬더볼트를 장비하고 있었고, 대지공격 임무에는 P-47이 튼튼한 장갑과 공냉식 엔진으로 인해 더 유리한 점도 있었지만 보급 편의성 문제 때문에 한국전쟁에서는 거의 쓰이지 못했다.

이렇게 모은 지상 공격 임무에 투입되어서 대활약했다. 당시 농업이 주 산업이었던 한국의 거친 활주로에서도 아무런 문제없이 이륙할 수 있었으며, 비교적 짧은 활주로에서도 쉽게 출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시찰 당시 호위로 따라붙은 전투기도 당대 최신예 기종인 F-80이 아니라 F-51이었다. 이때 북한군의 Yak-9 전투기와 맞붙었지만 그대로 격추시켜버린 전적도 있다. 올렉 매덕스는 사기꾼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2차 대전 당시 '붉은 꼬리의 천사들'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터스키기 비행대'도 P-51로 Me262를 잡은 적이 있었다.


사진은 6.25 전쟁 당시 출격 중인 한국 공군의 F-51 전투기 편대. 태극마크와 꼬리날개에 쓰인 K표시는 대구 공군기지에 도착해 표식된 것이다.

F-51D/K형은 신생 한국공군에도 전달, 6.25전쟁 동안 사용됨으로써 한국 공군 최초의 전투기가 되었다. 여기서 K형은 한국 공군형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D형의 개량형으로 2차대전 말기부터 사용되었다. 물론 일선에서 열심히 활약해서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등 어려운 임무들을 멋지게 수행해냈다. 이 때 빨간 마후라가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상징이 되었다. 때문에 나이든 어르신들은 F-51이 상당히 눈에 익으신 편이다. 빨간마후라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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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D의 파생형으로는 P-51D의 동체 두 개를 연결한 P-82 "Twin Mustang"이 있으며 이것은 야간 및 장거리 호위/정찰용으로 사용되었다. 조종사도 두 명이며, 두 명의 조종사가 돌아가며 밥도 먹고 잠시 눈을 붙이기도 했다(...). 한국전쟁에서 처음으로 공산군의 항공기를 격추한 미 공군 전투기로 기록된다. 여기서 격추된 것도 Yak-9. 이것이 바로 고수와 초짜의 차이인 것이다(결국 그 꼴을 보다 못한 소련 공군이 개입하게 된다. 물론, 비밀리에... 심지어 투입되는 소련군 조종사들조차 기차에 탈 때 어디로 간다고 지시받지도 못했다고 한다).

P-51D는 한국전 이후에도 중동으로 팔려나가기도 했다[33]. 구매자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당시 일어난 1차 중동전쟁에서는 밀수입(?)한 P-51D를 투입하여 아랍 공군 측의 스핏파이어(?!)를 격추시키기도 했다. 더 재미있는건, 이 당시 이스라엘 공군의 장비에 독일제 Bf109도 있었을 정도였다. 드림 매치 이후 수에즈 운하 사태 및 영국을 비롯한 서방 열강의 비공식적인 지원을 받은 카데쉬 작전(1956)에도 전폭기로 투입되어 많은 활약을 한다. 어느 용자 이스라엘군 파일럿은 수에즈 시와 이집트군 사이에 깔린 전화선을 프로펠러로 갈아버려서 통신두절 사태를 초래했었다고…. 흠좀무.

1943년도에 머스탱을 받은 영국의 요구에 따라 경량화 된 머스탱 연구가 진행 되어 XP-51F를 시작으로 G, J형식의 시험기가 등장하였고 전쟁 말에 최후의 머스탱인 P-51H 형이 개발되었으나, 소수가 실전 배치 되기 쯤에 전쟁이 끝나버려 대량 생산이 좌절 되고 소수만 생산되어 알래스카 방어에 사용되었다. P-51H는 무거워진 P-51D 보다 경량화 되고[34] D형의 3,412 km 항속거리 보다 길어진 4,667 km이며 대대적인 재설계로 더욱 날렵한 형상을 가지게 되었고 최대출력 2천마력을 넘기는 신형 V-1650-9 엔진을 장착하여 최고속도가 758km/h에 달했다.[35]P-51H는 몰락 작전에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핵 두 방 맞고 일본이 데꿀멍 함에 따라 비슷한 처지의 F8F 베어캣과 함께 한국전쟁 시기 주요 벤치맴버(...)로서 전쟁에 투입되지 않고 있다가 전후에 퇴역했다. 애초부터 만능기로 두각을 나타내던 F4U 콜세어와는 P-51H나 F8F는 한국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항공기였던 것이다. 이시기 콜세어 보다 떨어지는 성능의 F-51D이었지만 프로펠러기 특유의 기동성과 저속을 살려[36] 지상공격에서 큰 축을 차지하고 있었다. 콜세어가 지상공격만이 아니라 아예 주력 야간전투기 자리도 차지하고 해군 유일의 에이스이자 프로펠러기 최후의 에이스까지 배출하는 무쌍을 찍은 것에 비하면 수수해 보이지만 머스탱의 엔진은 수냉식이었음을 명심하자.


아들 손자 증손자 앞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는 할배의 모습

간혹 에어쇼 한다고 F-4F-15, F-22와 같은 전투기와 함께(...) 날아다녀 보는 사람을 하여금 엄청난 압박(?)을 주기도 한다. P-51에서 F-22까지 몇 십 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인류 과학 기술의 발전을 실감할 수 있다.

실제로, 머스탱은 재현품이 가장 많이 남은 2차대전 전투기들 중 하나다. 특히 미국에서 종종 개최되는 프로펠러기 레이스에서도 F8F 베어캣과 더불어 매우 인기있는 기종이라고 한다. 당장 미국의 유명한 포니카 Ford Mustang의 이름도 이 P-51 머스탱(Mustang)에서 따온 것이다. 그만큼 항공 레이싱에서도 유명세를 떨쳤다. 헨리 포드가 항공 레이싱 매니아이기도 했고... 물론 항공 레이싱을 할 때는 최고의 속도를 뽑아내기 위해 모든 무장을 제거하고, 엔진을 무려 3000마력짜리고 교체하는 한편, 날개 모양을 손보는 등 마개조를 거친다.

양덕후들 중에서는 부품만 구해서 자신만의 머스탱을 만드는 사람들도 꽤 많다. 영화 촬영 때마다 해당 항목 덕후로 돌변했다던 톰 크루즈도 그 중 한 명. 물론 매일매일 철저한 정비를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60년된 '날아다니는 관'을 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양덕 중의 양덕이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짓. 후덜덜. 실제 2011년 9월 17일 미국 네바다 주 리오에서 열린 '내셔널 챔피언쉽 에어 레이스'에서 P-51D 머스탱이 관중석으로 추락했다. 에어쇼 추락사고

2.7. 그 밖의 이야기들

일부 밀리터리 사이트에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가죽옷을 무스탕이라 부르는 것이 이 P-51 머스탱(무스탕)의 조종사들 옷 때문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다. 실제로는 '머스탱(무스탕)'이란 상표의 가죽원단이 많이 들어와서 이 원단으로 만든 옷을 무스탕이라 부르게 된 것. 이 원단은 양가죽 중에서도 어른 양의 가죽을 가지고 양쪽 면을 다 쓸 수 있게 한 것으로, 원래 국제적으로는 더블 페이스라고 부른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등장. 영화가 절정 중 절정에 다다른 그 장면의 충격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P-51은 밀덕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제법 눈에 익은 기종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도 존 밀러 대위(톰 행크스 분)가 권총으로 전차를 날려버린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스티븐 시걸? 이 장면에서 라이언과 존 밀러 대위가 주고받은 대사가 꽤 인상적이다.

라이언: P-51이에요!
밀러: (P-51을 바라보며)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것 같군….

하지만 MBC 방영판의 더빙은 무슨 이유에선지 이렇게 대사를 바꿨다. 전국 P-51빠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라이언: 아군 항공기에요.
밀러: 하늘이 도우셨군.

역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인 태양의 제국에서 일본군 비행장을 박살내버리며 엄청난 포스를 뿜어낸다. 해당 영화에서 크리스찬 베일(당시 12세)이 연기한 주인공 꼬마가 이 광경을 보며 "하늘의 캐딜락이 왔다!"라고 외쳐대는 장면이 유명하다. 영화 덕에 하늘의 캐딜락이 2차 대전 당시에 P-51에 붙었던 별명이라고 아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사실 두 영화에서 P-51이 인상깊게 나온 것은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P-51팬이기 때문이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계획 단계에서 고증에 따라 이 P-51이 미군 전투기로 등장할 예정이었으나, 이후 고증을 무시하고 좀 더 강렬한 인상을 지닌 P-47 썬더볼트로 교체했다. 자세한 것은 영화속 공중전 장면의 오류 참조.

온라인 게임 라테일에서는 의인화를 당했는데, 비프로스트의 몬스터로 등장한다. 프로펠러 모자를 쓰고 날아다니며 모티브가 된 전투기 모양의 총을 쏘는 남자아이의 모습. 걸리쉬한 성격을 가진 듯 하다. 패션아이템도 나왔다. 근데 표류도시에서는 글러먹었다

슈팅 게임 스트라이커즈 1945에도 본 기체가 등장하며, 스트라이커즈 1945 II스트라이커즈 1945 PLUS 에서는 P-38 라이트닝의 지원기체로 등장한다.

참고로 내부를 신품으로 교환한 D형이 200만불에 판매되고 있다. 아아… 양덕…. 양덕….

강철의 연금술사의 등장인물인 로이 머스탱의 이름도 바로 이 전투기에서 유래했다.

큐라레: 마법 도서관에서는 유명세를 감안한 성능인지 최상등급인 슈퍼 레어+ 등급의 마도서로 등장한다. 일러스트도 예뻐서 한 인기 하는 마도서.

월드 오브 워플레인에서는 미 육군전투기 트리로 A,D,H 모델이 6,7,8 티어로 등장한다. 셋 다 고고도 전투 전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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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 [2] Pursuit 51D, 2차대전 이후 형식번호 명명법이 개편되면서 F(Fighter)-51로 변경.
  • [3] 이렇게 할 경우 중앙쪽의 기관총을 제거한다.
  • [4] 그러나 1000lb 폭탄이나 110갤런 연료탱크는 날개에 무리가 가니 사용을 자제하라고 권고한 상태였기 때문에 기본적으론 500lb 폭탄이나 75갤런 연료탱크를 사용했다.
  • [5] 미 공군이 육군 항공대를 모체로 하여 독립한 것은 2차대전 후인 1947년.
  • [6] 그러나 순수 전투기로서 평가할땐 그다지인 편이고 무엇보다 미국엔 F4U-4라는 무시무시한 전투기가 있으므로...
  • [7] 당시 미 군부에게 "우리 새 전투기 만들려고 하는데 어때요?" "필요없음."하는 식으로 무시당하고 있었다….
  • [8] 농담이 아니라 혼신의 공력을 들여 만든 설계가 맞다. P-51의 항력계수는 2차대전때 운용하던 레시프로 항공기중 최강이었던 0.169였으니...
  • [9] 원래 층류형성을 이용한 저항력 익형으로 설계 되었으나 풍동모델과 실전기체 표면의 거칠기 차이로 애초 설계 의도였던 층류형성에는 실패했다. 그런데 의외로 해당 익형이 임계 마하수 영역에서의 특성이 좋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결과적으로 저항력 달성에는 성공한 희귀한 사례가 되었다.
  • [10] 미국의 징병제는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이때는 아직 모병제.
  • [11] 여기서 말하는 저고도 성능은 속도 성능이다.
  • [12] 저고도에서 엔진수명을 팍팍 깎아먹는 고압분사를 했을시 약 3800m에서 637kph의 수평속도를 가졌다. 그에 비해서 동시대의 bf109 G-6와 같은 엔진을 지녔던 G-2의 경우 최고속력이 636kph였다 G-6는 G-2보다 무겁지만 MW50이 장착되어 있었으므로 최고속력은 비슷할 것임을 생각하면 확실히 고속이었던 모양
  • [13] 동 시기에 미군도 같은 생각을 했다
  • [14] 이 때 기수 디자인이 바뀌게 된다. 그리고 멀린 엔진이 기존의 엘리슨 엔진보다 100kg 가량 더 무거웠다. 이를 보조하기 위해 프로펠러도 4엽으로 교체. 동체 하부의 라디에이터도 큰 것으로 교체했다. 즉, 전반적으로 무거워졌다.
  • [15] 당대 미국제 전투기들과 비교하면야 가벼운 축에 속하지만, 동시기 타국 전투기들과 비교하면 영락없는 중량급 기종이다.
  • [16] 당장 한국전쟁 때 F-51을 몰던 이근석 대령도 낮은 하강고도로 추락해 전사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표적고착인지 피탄당해서 추락했는지는 불명확하나, 태평양 전쟁 당시 1,400피트만 확보해도 충분히 공격후 이탈이 가능할 정도로 가벼웠던 일본 전투기(Ki-27을 몰았다고 한다.)에 익숙했던 이근석 대령이었기에 표적고착이 유력한 추락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 [17] 연료 탱크 탑재가 성능을 저하한다고는 하지만 머스탱은 장거리 호위기라서 전투공역 상공에 도달할 때 즈음이면 성능을 저하시켰던 연료는 이미 써버리고 없어서 비행성능에 영향을 주지 않게 된다. 더군다나 항속거리 저하는 폭격기 호위임무에 피해를 준다. 영국 본토 항공전때 Bf109의 낮은 항속거리 때문에 결국 루프트바페가 패배한 것을 기억하자.
  • [18] 물론 그렇다고해서 전쟁 말기 일제처럼 손놓은 적은 없다. 기본 프롭 전투기들도 성능은 일제의 전투기,요격기에 비하면 여전히 연합군 전투기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강력했고, 무엇보다 Me262도 있던 만큼 요격은 꾸준히 이루어졌다. 성과도 상당히 있었고.
  • [19] 참고로 B/C형은 같은 물건이다. B형은 A형을 제작하던 잉겔우드 공장에서 제작되었고, C형은 라이선스를 받아 텍사스주의 달라스 공장에서 제작한 것이 차이점. 마찬가지로 D/K형도 잉겔우드 제작은 D형, 달라스에서 제작한건 K형으로 불렸다.
  • [20] 일본인이었다면 행정명령 9066호에 적용됐을 것이라는건 함정.
  • [21] 이 캐노피의 경우, 여닫는 방식이 약간 복잡해서(단순이 앞뒤로 미는 게 아니라 옆면과 윗면을 각각 열어야 했다) 탈출시 애로사항이 많았고, 키가 큰 조종사들에게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스핏파이어에 장착했던 말콤 후드를 가져와 마개조한다. 영국은 대부분 이걸로 바꿨고, 미국은 몇몇 비행대를 제외하고는 그대로 운용하다 D의 버블 캐노피로 갈아탄다.
  • [22] 미군의 P_51손실집계는 2,520대이다.
  • [23] 독일측 자료는 대전 말 혼란으로 인하여 대부분이 소실되어 버리고 각 비행대에서 각자 기록한 단편자료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 [24] 당시 독일 공군의 폭격기 요격 노력은 단발전투기 뿐만 아니라 쌍발전투기, 심지어는 경폭격기까지 동원한 총력 요격체제였고 폭격기만 중점적으로 요격하면 되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전술적 상황이 단순했다. 하지만 P-51의 등장으로 호위전투기와의 교전이 본격화 되면서 숫적으로 열세인 방공부대가 폭격기 요격부대와 요격부대의 호위부대로 이원화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폭격기의 방어화망과 호위전투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압사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연합국 전투기들이 호위뿐만 아니라 자유추적임무로 풀려나서 단독 전투기 사냥을 시작하면서 공중에서 독일기가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게 된다.
  • [25] 단적으로 서부에 배치되었던 독일공군의 소티수는 44년에 1만대를 겨우 넘겼던 반면, 같은 기간 미군의 소티 수는 60만에 달했다
  • [26] 사실, 항공전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미국에서는 현장의 조종사 출신이라고 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심각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은근히 빠심이 작용하는 분야이기도 하기 때문에 특히나 실증 및 비행역학, 유체역학연구를 통한 '실증'을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는 전통이 있다. 더구나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인간의 기억은 매우 편향적이며, 실제로 매우 제한적이다. 말 그대로 인간은 '기억하고싶은대로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종사들의 증언이나 '이야기(anecdote)'에는 항상 '조금 회의적인 태도로 들어라(take in with a grain of salt)'라는 격언이 존재할 정도. 저런 프로그램에서 '기억하는 그대로' 재현해주는 것은 실제로 조종사는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믿고 있고, 굳이 그것에 실증으로 태클걸만한 가치가 없는 흥미위주의 대중프로그램이기 때문. 바로 저 일화에 대해서도 실제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분야든 학계는 만만치 않다.
  • [27] 이 현상은 곡예 비행기들이 일부러 시도하는 기동으로 Snap-Roll이라 부른다. 에일러론을 이용한 기동이 아니라 테일 러더를 이용하는데다 엄청난 속도로 롤이 가능하기에 이런 별명이 붙었다. 에어쇼에서도 간혹가다 보여주는 재미있는 기동인데, 이걸 시행하는 기체들은 대부분 곡예 기체지 머스탱같은 전투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28] 대문 사진에 나온 물건이 바로 앞쪽으로 늘린 모델. B형과 비교해보면 수직 꼬리 날개가 약간 앞으로 늘어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 [29] 기체구조가 지나치게 튼튼하여 P-51H에서는 오히려 기체 무게를 줄이기 위한 경량화 조치가 취해졌다고 한다. P-51D의 G-limit은 설계단계에서 8/12G였는데 이는 지속/순간적인 제한치였다. 그에 비하여 P-51H는 7.3/11G을 기준으로 재설계가 이루어졌다.
  • [30] 사실 고속비행에는 오히려 적합하다. 일정 속도를 넘어 날개로부터의 양력수급이 과잉이 되면 양력은 오히려 항력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속도면에선 악영향이다. 즉 비슷한 추중비를 가진 기종이라도 설계단계에서 비행기가 날아가기 적절한 양력을 넘어서는 시점을 어떻게 잡는가에 따라 저속선회전을 장기로 하는 기종과 고속의 일격이탈을 장기로 하는 기종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를 예로 들자면 대전초기의 단엽기 중에는 복엽기보다도 속도가 느린 기종이 있었지만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자 단엽기는 일격이탈로 손쉽게 복엽기를 압도할 수 있었다. 선회력이나 속도는 물론이고 추중비에서도 오히려 밀리는 상황이었음에도 능숙하게 에너지 관리하며 지나친 양력이 발생시키는 항력으로 인해 에너지의 소모가 빠른 복엽기를 압도한 것이다.
  • [31] 폭장했다가 대기타니 폭장떼니 하다가 출격을 제대로 못했다...
  • [32] 사실은 당연한게, Me262는 제트기이다. 제트기의 속도를 이용하여 폭격기 요격을 위해 이륙했으며 속도를 이용하여 호위기를 무시하고 요격 후 이탈하는 전략의 특성상 공중전이 벌어질 일이 없으니 당연히 전투손실은 대부분 이착륙 도중에 나게 된다.
  • [33] 한국 공군에서는 1960년대까지 예비용으로 보관해 두고 있었다고 한다.
  • [34] D형 기본 중량은 7,635 lb(3,363 kg)이고 H형은 6,585 lb (2,986 kg)으로 B형 보다도 7,010 lb (3,179 kg)가벼워졌다. 단 탄약과 연료를 넣은 상태에선 B형 보단 무거웠다.
  • [35] 자주 언급되는 787km/h는 사실 잘못된 정보이다. 787km/h가 기록된 그래프는 아래의 그래프인데 공란을 보면 알겠지만 미완성된 이 그래프는 44년의 것이고 실제로 보고서에 들어간 그래프는 아래의 45년 그래프이다. 보고서 코드가 같고 리비전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완전한 보고서는 http://thehuwaldtfamily.org/jtrl/vehicle_data/Fighters/North American P-51 Mustang/NA-8284-A, Perf. Calc. for P-51H Mustang (NA-126).pdf 에서 확인할 수 있다.
  • [36] 재미있는 점은 프롭기 중에서는 오히려 두 분야에서 별로인 기종이 머스탱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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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9-21 18: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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