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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S.

  • WWE의 S.E.S를 찾아오신 분은 S.E.S(WWE) 항목으로.
  • 사회학에서 SES란 "사회경제적 지위"(SocioEconomic Status)의 약자이다.

유진이 바다에 빠졌슈[1]

카리스마 최성희, 미의여신 김유진, 사랑스런 유수영, 친구들과 S.E.S. [2]

Contents

1. 개요
2. 멤버
3. 결성 과정
4. 활동 이력
4.1. 1집 I'm Your Girl (1997)
4.2. 2집 Dreams Come True (1998)
4.3. 3집 Love (1999)
4.4. 4집 A Letter From Greenland (2000)
4.5. 4.5집 Surprise (2001)
4.6. 5집 Choose my Life - U (2002)
5. 해외 진출
5.1. 일본 활동
5.2. 대만 활동
5.3. 그외
6. 해체
6.1. 해체 후
7. 기타 사항
7.1. S.E.S. 팬이었던 가수
8. 앨범
8.1. 한국
8.2. 일본 싱글
8.3. 일본 앨범
9. 수상 경력
10. 광고
10.1. 텔레비전
10.2. 지면

1. 개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활동한 대한민국자동 출입국 심사 3인조 걸그룹.

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걸그룹의 모델로 기억되는 S.E.S.는 이미지뿐만 아니라 음악까지 인정할 수 있는 최초의 아이돌[3]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0년대에 이르러도 음악과 컨셉, 이미지 등 많은 부분에 있어 걸그룹 후배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으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사로잡은 유일무이 레전드 그룹. 한마디로 S.E.S.를 능가하는 그룹은 있을지언정 S.E.S.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걸그룹은 없다는 얘기.[4]

몇 세대의 아이돌을 거치는 동안 대한민국 가요계에는 수많은 걸 그룹이 탄생했지만 그 모든 출발점에는 S.E.S.가 있다. 이들은 훗날 등장한 걸 그룹들이 나아가는 방향의 모델이 되었고, 멤버들의 성장과 더불어 음악도 함께 성숙해지는 모습으로 대중들의 기대를 충족시킨 S.E.S.는 대한민국 걸 그룹 시대의 화려한 시작을 알렸다. [5] [6] S.E.S.는 데뷔부터 해체까지 큰 잡음이 없었고, 유진이 '친자매나 다름없다'고 할 만큼 해체 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등 여러 면에서 이상적인 걸그룹의 길을 걸었다.

2014년 빌보드 선정 역대 K-POP 걸그룹 1위 원문 둘째 문단 마지막에 "특정 순서 없이 나열했다" 라는데... [7]

2. 멤버

SES.jpg
[JPG image (152.69 KB)]

왼쪽부터 바다, 유진,

S.E.S.
Sea 바다 Eugene 유진 Shoo 슈

팀 내에서 역할은 바다가 리드 보컬, 유진이 비쥬얼, 슈는 對일본용(...)으로 기믹이 나뉘어 있었다. 2007년에 《불후의 명곡》에 출현해서 밝힌 또 하나의 기믹은 바다가 귀여움, 유진이 청순함, 슈가 여성스러움을 맡았었다고 한다. 멤버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페이지 참조.

3. 결성 과정

지금이야 실감이 나지 않는 사실이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가요 쪽에선 여자 가수들이 참 인기가 없었다. 여자 가수가 히트곡을 내는건 1년에 두세번 있을까말까한 일이었고, 가요 순위 프로에서 1위부터 20위까지 죄다 남자 가수가 싹쓸이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TV 순위프로는 너무나도 삭막했다. 박미경이나 강수지, 신효범, 엄정화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며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였다. 솔로 가수가 그럴진대 그룹은 말할 것도 없다. 90년대 초반까지는 여성 그룹의 존재 자체가 드물었고.[8], 나왔다고 해도 우정의 무대에나 얼굴 몇번 비추고 반짝 인기를 누리다 스러져갔을 뿐이었다. 당시 여성 그룹, 특히 여성 아이돌 그룹 쪽의 시장은 우리나라 음반 기획자들이나 레코드사들에겐 미지의 땅과도 같았다. 영국의 스파이스 걸스, 일본의 SPEED, 미국의 TLC와 같은 그룹들이 수백 수천만장을 팔아치우며 승승장구하는것을 보며 많은 제작사들이 의욕적으로 여성 그룹을 기획하고 도전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로 끝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레이블 반도음반에서 내놓았던 걸그룹 애플, 일본식 아이돌을 표방하며 해외 진출까지 시도했던 4인조 SOS, 한국의 TLC를 꿈꿨던 에코, 삼성뮤직의 후원아래 홍콩에서 데뷔했던 이뉴, 여성들의 대변자를 자처했던 대형 그룹 베이비복스(...)까지 많은 그룹들이 등장했으나 만족스러운 성과를 낸 팀은 하나도 없었다. 남성 팬들의 호주머니를 열게 하기엔, 여성 그룹 시장의 진입 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당시 현진영유영진을 발굴하고 H.O.T.를 데뷔시키며 선견지명을 과시했던 SM의 이수만은 여성 아이돌 그룹 시장의 잠재성을 인식하고 1996년 가을 무렵부터 걸그룹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앞선 수많은 여성 그룹들의 선례를 보면서, 여학생 팬들이 확보되어있는 남자 그룹들과는 달리 맨몸으로 부닥쳐야 하는 여성 그룹은 조금이라도 어설프게 보여서는 씨도 안 먹힐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여성 댄스 그룹을 기획하면서 2년동안 자그마치 1만명 어떤 잡지에선 무려 3만명이 넘는 소녀들을 오디션했다는 사실이 SM의 신중했던 준비과정을 말해준다. 오랜 오디션 끝에,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3명의 소녀들이 선발되었다. 안양예고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최성희, 괌 교포 출신의 김유진,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 유수영. 가창력과 외모, 춤실력은 물론이고 출신이나 나이, 외국어 구사 능력까지 고려된 결과였다. 당시 S.E.S. 후보였던 연습생은 총 8명[9]으로, 바다가 먼저 리드 보컬로 정해지고 나서 유진과 슈가 서브보컬로 정해졌다.

바다는 안양예고 재학 시절 교내 축제 무대에 선 것을 계기로 이수만에 의해 발탁되었다. 원래 바다는 뮤지컬 배우를 꿈꿨으나 아버지의 병환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대학 진학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수만이 대학 학비 전액을 지원해 주면서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가수 준비를 하게 됐다. 유진은 H.O.T.의 화보집 촬영차 괌에 갔던 캐스팅 디렉터와 이수만의 눈에 띄어 발탁이 되었고, 슈는 god손호영, 니안, NRG의 故 김환성[10]과 함께 혼성 그룹을 준비하던 중 롯데월드 지하상가에 놀러갔다가 S.E.S. 제의를 받게되면서 둘을 남겨두고 먼저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11] 세 사람에겐 각각 바다, 유진, 슈라는 이름이 주어졌고, 각자의 이름자를 따서 S.E.S.라는 팀명이 결정되었다.

오랜 준비와 투자, 트레이닝 기간을 가졌던만큼 S.E.S.에게 좀 더 야심적인 음악이나 화려한 이미지를 씌워 줄 법도 했지만 이를테면 H.O.T.의 장기였던 사회 비판 같은 SM은 오버하지 않았다. 오히려 S.E.S.를 통해 보여진 것들은 무척 심플하고 소박한 것이었다. 이것저것 다 하려 했던 다른 여성 그룹들과는 달리, SM은 히트곡을 만들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공식에 충실했다. 곡이 좋을 것. 노래를 잘할 것. 가수가 매력적일 것. 그리고 다른 요란한 이미지들 대신 그 바탕 위에서 극도의 세련미를 추구했다. 가수의 외모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깔끔하고 청순한 이미지로 단장되었고, 꽉 짜여진 안무와 감각적인 뮤직비디오가 보태졌다.


4. 활동 이력

4.1. 1집 I'm Your Girl (1997)


암유골

1997년 11월 28일, SBS 《충전! 100% 쇼》를 통해 데뷔한 S.E.S.는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단숨에 인기스타로 급부상하게 된다. S.E.S.의 데뷔곡인 〈I'm Your Girl〉은 뜨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로 흠잡을데 없이 괜찮은 노래다. 여성그룹 시대의 서막을 열어젖히려는 듯 서서히 밝아지는 사운드와 함께 S.E.S.를 소개하는 그룹 신화의 랩이 섞이는 감각적인 도입부는, S.E.S.라는 대형 그룹의 등장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We open of the new chapters, Here we come, here come" 하는 랩 가사는 S.E.S.가 이루어낸 엄청난 성공을 알고 있는 지금 더 의미심장하게 와닿는 부분이다. 부드러운 리듬 편곡과 발랄한 멜로디, 멤버들의 풋풋하고 맑은 목소리는 더할 나위없이 달착지근하다. 이 곡은 S.E.S.가 만들어낸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가장 공들여서 만들어진 곡에 속한다. 인트로, 각 절의 배치와 후렴구, 코러스, 랩, 브리지와 애드립에 이르기까지 이 곡의 모든 부분은 놀랄 정도로 정교하고 완벽하게 통제돼 있다. 이것은 멤버들의 보컬 분담과 음역, 호흡, 사운드의 흐름, 심지어 곡의 재생 시간까지 철저하게 분석하고 계산한 결과이다. 작곡가 유영진의 재능과 더불어, 이 곡의 작업에 SM의 모든 역량이 대대적으로 투자되었음을 짐작하는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I'm Your Girl〉의 비트 자체는 힙합이다. 따라서 안무로 표현하면 동작이 끊어지는 맛이 있어서 소녀다움을 제대로 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 Your Girl〉은 누구에게나 마냥 사랑스럽고 살랑거리는 이미지로 상징될 수 있는 건 마약 같은 도입부와 세련된 훅 그리고 뛰어난 곡 해석 능력 덕분이다. 멜로디의 간결함과 완성도가 높으며 군더더기 없는 편곡과 코러스, 정돈된 캐릭터와 안무는 삼위일체 여성 그룹의 교본으로 후대에 전해졌다. 클로즈업된 눈동자에 비친 원형의 형광등 조명. 찹쌀떡처럼 노출 오버되어 강조된 톤은 한동안 아이돌 뮤비의 정석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기준이 된다는 것은 중요하다. 다이아몬드 원석이 깎는 대로 빛을 발하는 것처럼, 이때의 S.E.S는 후배 여성 그룹들에게 공통적인 영감을 주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노래가 바로 〈I'm Your Girl〉이다. 이 곡의 깜찍함만을 빌리려고 도전했다가 어설픔만 드러내는 후배 그룹들의 무대를 종종 보면서 S.E.S가 얼마나 기념비적인 출발이었는가를 새삼 깨닫곤 한다.


이장우의 2집 수록곡인 〈널 만난 후로〉를 리메이크한 〈Oh, My Love〉는 비교적 평범한 노래였던 원곡에 SM 특유의 힙합적인 느낌과 S.E.S.의 예쁘장한 화음이 더해져, 보다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곡으로 바뀌었다. 예쁜 가사와 상큼한 멜로디, S.E.S.의 아기자기한 속삭임이 조화를 이루는 곡으로, 원래 남자 가수의 노래였다는게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여성스럽고 나긋나긋한 느낌을 주는 곡이기도 하다. 〈I'm Your Girl〉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에 조금 빛이 바라는 것 같기도 한 곡이지만, 이 노래가 있었기에 S.E.S.의 요정같은 세련되고 산뜻한 이미지가 후속곡에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S.E.S.의 성공은 예견된 결과였다. SM의 철저한 기획과 트레이닝, 멤버들의 빼어난 미모와 재능, 훌륭하게 만들어진 타이틀곡과 근사한 뮤직비디오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SPEED, 스파이스 걸스, TLC와 같은 여성 그룹들이 해외에서 대박을 거듭하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던 우리나라 가요팬들에게, 그리고 소녀들이 H.O.T.나 젝스키스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시샘했던 소년들에게 S.E.S.의 등장은 너무나도 적절하고 나이스한 타이밍이었다. 남학생들은 마치 홀린 것처럼 레코드가게로 들어가 집단으로 이들의 CD를 사댔고, 데뷔한 12월부터 나우누리 팬클럽 게시판에는 하루에 1,000개가 넘는 글들이 매일 올라왔다. M.netKMTV에서는 프로그램마다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한번씩 방송했고, 순위에 진입하자마자 이들은 공중파 3사의 순위프로를 싹쓸이했다. 이 모든 것들이 한달 안에 이루어졌다. '혜성과도 같이 등장해서 가요계를 점령' 과 같은 구태의연한 표현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예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S.E.S.의 성공은 가요계의 지형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그동안 잠재하고 있었던 전국의 무수한 여드름 소년들과 빡빡머리 군인들, 기타 등등의 남자 팬들이 어엿한 구매층으로 떠올랐고, 60만장이라는 높은 판매고로 그들의 구매력은 입증되었다. 남자 팬들은 S.E.S.의 등장으로 여성 가수를 좋아한다는 즐거움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여가수들은 S.E.S.의 대박에 힘입어 약진을 거듭해 남자 가수들을 능가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핑클을 비롯해 이들의 아류로 출발한 미소녀 그룹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앨범을 내며 가요계에 뛰어들었음은 물론이다. 황무지에 하나의 꽃이 피어나 그 꽃가루를 퍼뜨려 향기로운 꽃밭을 만들어내듯(...) S.E.S.의 등장은 남자들이 득세했던 삭막한 가요계에 수많은 미소녀 그룹들이 피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영턱스 여자 멤버들을 보며 누가 예쁘다고 싸우던 불우한 남학생들은 이런 미소녀 그룹들의 등장으로 지금까지의 무료함을 완전히 씻어낼 수 있었다.

이전에도 S.E.S.와 같은 형태의 그룹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모범적인 기준을 제시한 건 아니었다. 이전의 걸그룹들이 최대 수요인 젊은 남성층에게 어필하기 어려운 컨셉, 예를 들어 사회비판이나 실력을 전면에 내세운 미국식 등을 내세운 것과 달리, S.E.S.는 이들에게 소구하기 쉬운 순수하고 청순한 컨셉으로 준비되었으며, 곡 자체도 누구나 무리없이 들을 수 있는 세련된 스타일의 팝 댄스곡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시장에서 가급적이면 많은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 취했던 접근방식이며 동시에 당시 시장에서 검증된 유일무이한 여성 아이돌 강수지의 뒤를 잇는 안전한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여기에 더해 추가적으로 당시로서는 강도높은 댄스를 준비했다는 것은 특이할 만한 점이다. [12] 성공이라는 단어보다 평정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기존의 여자 가수들을 싹쓸어버리면서 가요계에 확고부동한 위치에 자리한 S.E.S.는 활동 막바지에 〈데자뷰〉, 〈완전한 이유〉, 〈넌센스〉로 구성된 메들리 활동을 선보인 후 본격적으로 일본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 IMF 한파에도 불구하고 앨범 발매 첫 주 김건모에 이어 3위를 기록, 발매 10여 일만에 15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여자 가수도 인기가 구매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위축될 대로 위축된 소비자들의 심리를 고려하면 평상시의 30만장에 필적할 히트였다
  • 데뷔 앨범이 6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여성 및 신인가수로는 유일하게 당해 연간 음반판매량 10위 안에 랭크되었다. 이 앨범으로 《골든 디스크》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는데, 이래적으로 여자 신인상을 두 팀이나 받게 되면서 한 팀이 대차게 까이게 된다. 판매량으로만 따지면 본상까지 같이 타야하는 상황인데
  • 중국, 대만 등지에서 판매된 것까지 포함하여 아시아 전역에서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는 비공식 기록이 있다.
  • 일명 무인도 버전이라 불리는 〈Oh, My Love〉의 첫 번째 뮤직 비디오가 1998년 3월 말부터 방송을 타기 시작했으나, 방송에는 적합하지 않은 퀄리티라는 이유로 일주일 정도 만에 자취를 감추고 새 버전으로 재촬영을 하게 된다.
  • 휘성이 〈Oh, My Love〉의 백업댄서로 활동하였다. 2007년 《놀러와》에 출연하여 무대에서 춤을 추는 유진을 보면서 저렇게 예쁜 사람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하였다. 김원희가 휘성에게 소개팅을 제안했으나 당시 스튜디오에 있던 팬들이 격하게 반발을 해서 무산. 이외에도 도전 1,000곡에 출현해서 〈I'm Your Girl〉 안무를 능숙하게 추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신승훈에 이어 한국가수로서는 2번째로 미국 빌보드 지에 소개되어 '새로운 아시아 스타'라고 평가받았다.
  • 1998년 5월 31일,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열린 공식 팬클럽 《친구》 창단식을 마지막으로 공식적인 방송활동을 마무리한다.
  • 당시 팬클럽 회계 보고서에 따르면 1기 팬클럽 가입자수는 2,263명으로 추산된다.
  • M.net 가요베스트27에서 선정한 《1998 가요 베스트 100》에서 〈I'm Your Girl〉이 2위, 〈Oh, My Love〉가 38위를 차지했다.
  • MKMF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98 M.net 좋은 뮤직비디오 시상식》에서 〈I'm Your Girl〉이 여자 신인 부문을 차지했다.

4.2. 2집 Dreams Come True (1998)


S.E.S.의 성공 이후 본격적인 걸그룹의 태동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검증되지 않았던 남성층이 걸그룹의 새로운 구매층으로 떠올랐고, 1998년은 S.E.S.를 필두로 한 여성 댄스그룹 붐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된 해였다. S.E.S.의 데뷔에 이어 숙명의 라이벌 핑클[13]이 여러 곡의 히트 싱글을 터뜨리며 강자로 부상했고, 한중일 합작그룹 써클이 출범했으며 베이비복스가 컨셉을 크게 바꾼 두번째 앨범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2집 타이틀곡 〈Dreams Come True〉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외국곡을 차용한 유로 댄스팝이었으며, S.E.S.는 당시 라이벌 구도에 있던 핑클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신비스럽고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하여 청순을 극대화한 요정 이미지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1집에 비해 한층 파워풀해진 안무와 비음 섞인 목소리 등 국내 정서와는 다른 이질적인 곡 분위기 때문에 거부감을 갖는 팬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들이 신선하게 느껴져 대히트를 하게 된다.

〈Dreams Come True〉는 핀란드의 여성 듀오였던 나일론 비트의 〈Like A Fool〉을 리메이크한 곡으로, 앨범 발표 당시 리메이크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1997년, 이수만이 폴란드에 머물고 있던 작곡가를 만나 판권을 사들였는데, 노래길이가 길고 지루한 데다 곡의 절정부문이 약해 곡을 사오는 과정에서 이 노래를 S.E.S.의 분위기에 맞춰 보완할 경우 우리나라 작곡자 이름을 함께 올려도 되냐는 허락을 받아 유영진이 원곡에 새로운 멜로디와 스캣랩 등을 추가하여 공동작곡가로 이름을 올려놓았다. [14]

당시 일본에서도 막 데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주일 단위로 양국을 오가며 활동을 병행하게 되는데, 막 활동을 발표한 S.E.S.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앨범 판매량은 호조를 보여 일주일 만에 33만 장을 기록하며 월간 1위를 차지한다. [15]


이후 후속곡인 〈너를 사랑해〉[16]까지 대중적으로 큰 히트를 거두면서 걸그룹의 선두주자로 자리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S.E.S.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소녀 스타일의 스쿨룩 컨셉이 호평을 받으면서 활동 2주 만에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빠른 속도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가수의 이미지와 컨셉이 딱 들어맞을 때 어떤 파급력이 생기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당시 후속곡 활동 일주일 만에 1위 후보에 올랐던 S.E.S.가 그 다음주에 바로 1위 후보에서 제외되자 순위 선정에 의문을 품은 팬들이 《인기가요》에 강하게 항의하는 일이 있었는데, 결국 《인기가요》에서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가수는 1위 후보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시인하기에 이른다. 1집 때부터 일본에 갔다하면 3위를 하는게 우연이 아니었음

게다가 활동 막바지에는 슈가 만성 위염으로 쓰러지면서 굿바이 무대도 가지지 못한 채 급하게 활동을 마무리하게 된다. 당시 S.E.S.는 일본과 대만을 오가며 가히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었는데, 귀국하자마자 출연한 《뮤직뱅크》 방송이 끝나고 슈가 실신해서 병원에 실려가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2집 마지막 방송 활동이 돼버렸다. 리허설 때도 실신해서 대기실에서 응급조치를 받으며 누워있었다고 한다. 사람 하나 보낼 일 있냐 슈는 1집 때부터 만성위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아플 당시에는 독한 약을 하루에 6번씩 먹으면서 버텼다고 한다. 나중에 이것과 관련해 라이벌 그룹 팬들이 악성루머를 퍼트리는 바람에 여자 아이돌로는 치명적인 내용의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17]

  • 원래 11월 1일에 컴백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Dreams Come True〉과 〈Eternal Love〉등 4곡을 재녹음하게 되면서 발매가 미루어졌다.
  • KMTV 《가요대전》에서는 신인상 후보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서 팬들이 거세게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이에 KMTV 측은 2집을 발표했기 때문에 후보에서 제외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18]
  • 1998년 '한국 사이버 방송연예대상' 설문조사에서 김희선, 송윤아에 이어 S.E.S.가 '올해의 미스 네티즌' 3위에 선정됐다. 이는 KBS 2TV의 《연예가 중계》가 광장커뮤니케이션에 의뢰해 1998년 12월 약 한 달간 전국의 PC통신 사용자 6,631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이다.
  • KBS 국제방송이 방송의 날을 맞아 1999년 8월 한달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국내외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네티즌의 선택, 한국 가요 베스트 10》 인기투표에서 S.E.S.의 〈Dreams Come True〉가 3,950표로 가장 좋아하는 곡 1위로 뽑혔다. 더불어 90년대 한국 가요계 장르 흐름을 선도한 50곡 후보 가운데서도 1위를 기록. 2위와 3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신승훈이 각각 올랐다.
  • 《케이팝 세계를 홀리다》라는 책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언타이틀, 보아, 태양, 2NE1, 샤이니, 브라운 아이드 걸스 등과 함께 역대 아이돌 10대 명반에 포함되었다. [19]

4.3. 3집 Love (1999)


*본 영상은 일본어로 되어있다.(영상에 마우스를 대어 제목옆의 가나 문자를 봐라.)

3집 타이틀곡 〈Love〉는 한국적 멜로디 위주의 전략을 내세운 다른 걸그룹과는 다르게 파격적인 염색과 비비드 장식으로 화려함을 더한 이국적인 컨셉으로 고급스런 접근을 시도했고, 〈Love〉라는 곡으로 음악적인 퀄리티에 있어서 만큼은 타 여성 댄스 그룹들의 수준을 저만치 따돌려 놓기에 이른다. S.E.S.는 등장했을 때부터 처음이라고는 믿기 힘든 완성도를 지닌 그룹이었고 결과야 어찌됐든 해외 활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험을 거의 유일하게 쌓고 있었던 만큼 그에 걸맞는 포지션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원산지가 해외인 〈Dreams Come True〉에서는 이질적인 요소도 함께 부담해야 됐지만 자체적으로 공수한 〈Love〉는 한 치 부족함이 없는 높아진 위상 그 자체였다.

그동안 S.E.S.하면 천박하거나 성적인 코드를 발산하지 않으면서도 예쁘다는 느낌을 꾸준히 주었으며 거기에 적절히 외국 느낌이 나는 세련됨으로 앞서가는 그룹의 전형을 만들어 내었지만 그것은 전부 〈Dreams Come True〉까지 보여주 듯 어린 요정이라는 아이돌 가수의 틀 안에서 구현된 것들이었다. 하지만 〈Love〉는 어렵지 않게 그녀들을 아이돌이라는 한계에서 탈출하게끔 해주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아름다운 노랫말, S.E.S.라는 그룹의 이미지와 아주 적절히 맞아 떨어졌을 뿐더러 아이돌 댄스라는 한정된 디렉토리 안에서 '음악만으로도 승부를 할 수 있는' 여성 댄스 그룹의 존재로 한 발 더 나아가게 된다.

노래 제목처럼 S.E.S.가 〈Love〉에서 노래하는 사랑이라는 화두는 어리기만 했던 그때와는 분명히 다른 감정으로 노래된다. 〈I'm Your Girl〉처럼 너무 철없이 들뜨지도 않고 그렇다고 〈Dreams Come True〉처럼 환상으로만 둘러쌓여져 있지도 않은채 조금씩 생활안에 편안함으로 묻어나는 사랑의 현실적 감각을 미디움 템포안에서 캐쥬얼한 발라드로 표현해 내며 기존 10대 팬들의 호응과 20대 팬들의 또 다른 발견을 이끌어 낸다.


이후 S.E.S.의 인기는 기세좋게 〈Twilight Zone〉까지 이어졌고, 다시 한 번 S.E.S.는 1999년 연말부터 2000년의 초반부를 확실하게 장악하게 된다. 특히 〈Twilight Zone〉 활동 시기의 슈의 보라색 브릿지 머리는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경이로운 감각의 헤어스타일이라고 한다.

마치 게임에서 하나의 미션을 컴플리트하면 몇 분의 시간이 더 주어지는 것처럼 S.E.S.는 3집의 성공으로 20대에도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1, 2집이 S.E.S.의 전기라고 한다면 3집으로 인해 S.E.S.의 후기 활동의 막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녀들은 아이돌 댄스 그룹에서 더 나아가 여성 보컬 그룹이라는 수식어도 민망하지 않은 유일한 그룹이 된다. 같은 소속사의 H.O.T.가 사회비판 컨셉을 이어가며 팬덤을 충실히 이끌던 것과 마찬가지로, S.E.S. 역시 특유의 고급스런 컨셉을 유지하며 대중성 위주의 접근을 취하던 핑클과 서서히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 3집은 앨범 발매 3일만에 55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넘는 등 여전한 인기를 과시했으나 활동에 있어서는 악재로 가득한 시기였다. 보수적인 성향의 KBS는 머리색을 문제삼아 '노랗게 염색한 머리 색깔이 시청자에게 혐오감을 주고 청소년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을 금지시켰고, SBS는 특정가수가 자사의 음악 방송 《인기가요》를 통해 컴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S.E.S.의 방송출연을 금지시키면서 공중파에서는 MBC만 출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후속곡 활동을 하면서부터 3사 공중파 출연이 가능해졌다
  • CD 버전에는 노래와 더불어 토크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 8번 트랙에 수록된 〈Blue Sky〉의 영어 내레이션 가사가 일본 록밴드 엑스 재팬의 가사를 표절한 사건이 있었으나, 일본 측과 정식으로 내레이션에 대한 사용허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 80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리며 공식적으로 한국 여가수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다. 특히 여자 가수로서는 유일하게 대한민국 역대 음반 판매량 TOP 25안에 랭크. 3집 활동 당시 여러 문제로 KBS와 SBS에 출연금지를 당해서 MBC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어찌보면 방송도 안타고 여성그룹 최대판매량을 했다고 볼 수도.
  • 2000년 3월 19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A Sweet Kiss from the World of Dreams》 이름으로 첫 단독 콘서트를 열어 1만 3천석이 넘는 좌석을 매진시켰다.

4.4. 4집 A Letter From Greenland (2000)


일본 활동으로 오랜 공백을 가진 끝에 1년 2개월 만에 발표한 앨범으로,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과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아이돌 가수로서는 거의 유일하게 평단과 대중의 지지를 동시에 이끌어내며 가수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발판이 된 앨범이다. 이는 당시의 시점에서 뽑아낼 수 있는 아이돌 팝의 최고점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수준이다. 특히 일본 활동을 통해 멤버들의 실력 및 안목이 한층 향상된 상황에 소속사의 전폭적인 지지가 결합된 수작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S.E.S. 아니면 다른 누가 부를 수 있을까 싶은, S.E.S.가 쌓아올린 고급스러운 화성과 스타일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나는 〈Be natural〉을 시작으로 MISIA의 곡에 비해 떨어지긴 하지만 J-pop의 에센티얼을 왜곡없이 펼쳐보이는 〈감싸 안으며〉, 내 친구 바다의 이별 이야기를 살짝 훔쳐 듣는 것처럼 그녀의 감정이 100% 묻어나오는 앨범 최고의 트랙 〈Story〉에 이르기까지 이 앨범은 한국 가요계에서 위치하고 있는 S.E.S.라는 그룹의 저력을 들려주었다.


당시 재외국민 선발학생 부정입학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연예인 특례입학 문제도 함께 불거져 나왔는데, 유진과 슈가 졸업한 한국켄트외국인학교가 학력인가를 받지 못한 학교로 밝혀지면서 유진과 슈의 대학입학문제가 구설에 오르게 된다. 발단은 부정입학 수사를 하던 와중 '이같은 방법을 통해 부정입학한 연예인이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부터였다. 당시 유진과 슈는 재외국인 전형이 아닌 각각 음악과 외국어 특기생으로 입학을 한 케이스였지만 정작 문제는 두 사람이 졸업한 외국인학교가 학교로 인정이 되지 않으므로 고졸학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01학년도 수시모집에서 특기자전형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합격한 슈와 신화의 앤디가 입학이 취소되었다.

파문이 진정될 때까지 컴백을 무기한 연기하자는 의견까지 나오는 등 소속사 내부적으로도 활동 여부를 놓고 논란이 많았으나, 활동을 중단한 채 시간을 벌기보다는 오히려 능동적으로 활동하면서 이번 파문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게 낫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컴백을 강행하게 된다. 당시 시끄러웠던 대학입학문제에도 불구하고 S.E.S.가 쓰러지지 않을 수 있던건 S.E.S.의 앨범이 팬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대중에게도 '음악'으로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었다. 3집까지만 해도 팬들에게만 인정받던 아이돌 가수에 불과했지만 4집에서 아이돌이라는 말만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어떤 한계를 넘어섰고, 그것은 한국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아이돌의 대중성과 보컬그룹에 대한 음악적 인정을 획득하는 그룹의 이미지를 갖게 해줬다.

활동 전부터 순탄치 않은 시작이었지만 앨범 발매 1주일 만에 50만장을 돌파하고,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게릴라 콘서트》에서 11,745명의 관객 동원으로 최고 기록을 갱신하는 등 호조를 보이게 된다. 일본에서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여러 무대를 라이브로 소화하고, 타 아이돌 그룹 앨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정통 재즈 스타일의 곡 〈Be natural〉을 과감하게 후속곡으로 선보이는 등 음악적으로 진지하게 어필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S.E.S.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어갔다.

  • 타이틀 곡 〈감싸 안으며〉는 S.E.S.의 일본 데뷔곡 〈めぐりあう世界〉를 써준 시마노 사토시의 곡으로, 일본 R&B의 선두주자 MISIA의 히트곡을 번안한 곡이다. 〈감싸 안으며〉는 공중파와 케이블을 통틀어 SBS를 제외한 7개 방송사 전 음악 프로그램 왕중왕(3주 1위)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 〈Be natural〉은 2014년 10월에 레드벨벳이 리메이크했다.
  • 당시 S.E.S.는 SBS 《인기가요》에서 왕중왕까지 마지막 1위 만을 남겨두고 있었는데, 지난주까지 2주 연속 1위를 한데다 사전집계 조사에서 3천여포인트나 앞서 있었기 때문에 별 이변이 없는 한 1위를 할 것이라 예상했으나 포지션의 〈I Love You〉에 밀려 2위를 하게 된다. 이에 소속사였던 SM 엔터테인먼트는 《인기가요》 순위 선정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소속 가수들을 《인기가요》에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

4.5. 4.5집 Surprise (2001)


2001년에 발매된 4.5집은 일본에서 활동했던 곡을 한국어로 번안하여 발표한 앨범. 국내가수 중 거의 유일하게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해외 활동 경험이 있던 그룹이었기에 발표할 수 있었던 앨범으로, 그간의 일본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발표한 앨범이기도 하다.[20] 처음에는 싱글 타이틀곡이 전부 수록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과적으로 일본 정규 1집 수록곡 위주로 구성되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수록되지 못한 곡도 있다고.

* 걸그룹 에이핑크의 미니 3집 《Secret garden》의 타이틀곡 〈No No No〉(신사동 호랭이작곡)가 〈꿈을 모아서〉의 코드진행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4.6. 5집 Choose my Life - U (2002)


5집 타이틀곡 〈U〉는 미카(mica)라는 가수가 부른 〈I'll Consider You Mine〉을 번안한 곡으로,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겠어'라는 능동적인 여성 컨셉만 돋보일 뿐 정작 음악적인 부재가 S.E.S. 답지 않기 때문에 S.E.S. 노래를 통틀어 이질적인 곡 중 하다.


당시 소속사와의 계약이 끝나가는 시점이었기에 전폭적인 지원를 받지 못했으나 후속곡 〈Just a Feeling〉젖소필링이라는 후기 히트곡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 곡은 S.E.S.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곡이지만 활동한 S.E.S. 노래 중 1위를 못 해 본 2곡 중 하나이기도 하다.[21] 어반 자카파의 앨범에서는 어쿠스틱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하였으며, S.E.S.에 대한 후배들의 오마쥬 무대라든가 각종 가요 프로그램의 타 가수곡 부르기 무대에서도 높은 확률로 선곡되는 노래. 앨범에는 1번 트랙과 14번 트랙에 각각 오리지날과 리믹스 버전으로 수록되었는데, 리믹스 버전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인지도나 인기도는 리믹스 버전이 압도적. 오리지널 버전은 앨범의 첫 곡임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전체적으로 들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런것도 있었어?' 정도의 인지도.안습

5. 해외 진출

SM 엔터테인먼트의 해외진출이 본격화된 것은 1997년 H.O.T.의 중국 진출부터다. 당시 중국은 공산국가의 잔재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남자의 경우 입출국을 할 때 군대 문제로 매번 여권을 반납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고, 일본은 복수여권이 나오기 전이라 남자 연예인의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SM은 군대 문제 등이 얽혀있는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여자가 해외 활동을 하기에 더 수월하다는 판단을 하게 됐고 이에 따라 다국적 멤버로 구성된 S.E.S.를 기획하여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5.1. 일본 활동

S.E.S.의 일본 진출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S.E.S. 일본 진출 과정 참고.

  • 싱글 1집 めぐりあう世界 (1998)
  • 싱글 2집 夢をかさねて (1999)
  • 싱글 3집 愛という名の誇り (1999)
  • 싱글 4집 T.O.P. (1999)
  • 싱글 5집 Sign Of Love (1999)
  • 싱글 6집 Love (2000)
  • 싱글 7집 Lovin' You (2000)

5.2. 대만 활동

1999년, 한국 앨범에 있는 곡을 모아 발매한 셀렉션 앨범 《I'm Your Girl》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S.E.S의 음반이 발매되기 시작한다. 우주최강미소녀군단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달고 나온 한국 셀렉션 앨범과 일본 1집 앨범 《REACH OUT》이 연달아 2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아시아 대표 걸그룹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국내에서 발간된 첫번째 영상집 2천권이 대만으로 건너가자마자 매진사례를 기록하고, 그다지 활발하지 않던 활동에도 불구하고 1999년 5월 21일 카오셩에서 열린 대만 공식 팬클럽 창단식에는 5천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들기도 했다. 나중에는 S.E.S.의 영향을 받은 S.H.E.라는 그룹마저 나올 정도.

일본 1집 앨범은 대만 《삼립 텔레비전 HITS CHART(동양권 부문)》에서 11주간 1위를 기록하면서 1999년 연간 차트 1위를 기록했고, 한국 3집 앨범는 14주 1위를 기록하면서 1999년 연간 차트 9위, 2000년 연간 차트 8위를 기록했다. 대만 내에서만 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는 얘기도 있지만 대만 음반 시장 규모를 봤을 때 정확한 정보는 아닌 듯.

5.3. 그외

미국의 래퍼슨 사를 비롯한 네오비전, 존 미디어 등 3개의 프로덕션으로부터 미국 진출 제의를 받았으나 미국 팝계의 높은 벽(인종차별, 음악적 문화적 차이 등)을 허물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판단해 진출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일본 진출만으로도 쉽지 않았음을 보건대 현명한 판단. 다만 진지한 형태의 제의였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음.


6. 해체

2002년 12월 19일, SM 엔터테인먼트에서 유진이 SM을 떠나 독자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함으로써 S.E.S.의 해체가 공식화되었다. 당시 SM은 유진과 바다가 SM과의 재계약을 포기했기 때문에 S.E.S.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것처럼 언플을 했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부분은 회사와 두 멤버간의 재계약 불발로 인해 팀이 깨지는 것이 아니라 멤버 셋 모두가 S.E.S.라는 팀을 마무리하고 개인적인 미래를 준비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5집 때부터는 대놓고 인터뷰에서 해체 늬앙스를 풍기기도 했었고. 이후 인터뷰에서 바다는 '세 멤버의 동의로 이루어진 해체'라는 점을 강조하였고, 일본활동을 마감하고 국내 활동을 준비할 당시부터 SM 잔류 여부와 상관없이 각자의 길을 걷기로 이미 합의를 끝낸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해체 발표 당일 S.E.S.의 해체 여파로 SM의 주가가 6.25% 급락했는데, 이에 SM은 그동안 S.E.S.의 음반 판매가 부진했기 때문에 소속사에서 많은 투자를 해오지 않았고 올해 활동이 다소 부진했기 때문에 협상결렬이 전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알다시피 S.E.S.의 음반 판매량은 SM 내에서도 상위를 다투는 수준이었고 2002년만 하더라도 가수 보아에 이어 SM 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음반 판매고를 올렸기 때문에 저런 언플이 먹힐 리가 없었다.

바다는 MP엔터테인먼트와 20억 계약설이 있었으나 양측의 입장차이로 계약이 무산되면서 웅진코웨이개발 산하 웅진 미디어와 5억원에 전속계약을 체결하고, 유진은 S.E.S. 데뷔 당시 SM 엔터테인먼트에서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정해익과 4억원에 계약, 슈는 그대로 SM 엔터테인먼트와 재계약을 맺게 된다.

6.1. 해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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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해체는 하였지만 멤버간의 불화나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해체한 것이 아닌 멤버들의 자발적 의지로 해체한 것이기 때문에 해체 후에도 서로의 활동을 자주 서포트하는 편이다. 위 사진만 봐도 최소 1년에 한 번씩은 공식적인 자리를 갖고 있으며 사석에서 따로 만나는 건 굳이 정리할 필요가 없을 정도. 해체 이후 S.E.S. 공식 활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S.E.S. 해체 후 페이지를 참고할 것.

7. 기타 사항

  • 가요프로그램에서는 1위를 많이 수상하고 여러 상을 휩쓴 S.E.S.는 아이돌 1세대 6대천왕 (혹은 4대 천왕) 중에서는 유일하게 연말 가요 대상과는 인연이 없는데, 주로 연말에 컴백해서 해를 넘겨 활동하다보니 시상식에서 손해를 많이 보는 편이었다. 대표적인 게 신인상인데, 당시 음반 판매량이나 인기로 봤을 때 당연히 전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석권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2집을 발표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가 되는 등 이래저래 피해가 많았다. 게다가 같은 기획사 내에 H.O.T.라는 절대 강자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 가수상은 언감생심 꿈도 못꾸는 상황이었다. 당시 1999년 KMTV 《가요대상》에서 여자댄스가수상 수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가요대전 당일 KM 측에서 일방적으로 수상을 취소하면서 갑작스럽게 스케줄이 취소돼 버리는 일도 있었다. 이는 연제협과 SM의 불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H.O.T.가 전 부문을 석권한 상황에서 무시무시한 H.O.T. 팬들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만만한 S.E.S.를 희생양 삼아 SM 독점 수상을 저지당한 꼴이었다.
  • 방송의 날 50주년 기념으로 KBS 라디오 《홍진경의 가요광장》에서 104명의 가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S.E.S.가 총 35표를 얻어 여그룹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핑클, 빅마마, 소녀시대, 펄시스터즈&서울시스터즈 순으로 2~5위를 차지했다.
  • 2010년, 음악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겨레에서 실시한 최고의 아이돌 설문조사에서 4위에 선정됐다. 1위는 보아, 2위는 소녀시대, 3위는 빅뱅, 4위는 S.E.S., 5위는 동방신기가 차지했다. 1세대 아이돌로는 유일하게 순위권에 포함됐다.
  • 2014년, 빌보드가 뽑은 역대 K-POP 걸그룹 1위에 S.E.S.가 선정됐다. S.E.S.에 이어 2위는 소녀시대, 3위는 핑클, 4위는 원더걸스가 차지했다. 빌보드는 S.E.S.를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케이팝에 엄청난 충격을 준 그룹'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당시 남성 지배적이던 가요계에 태풍을 몰고 온 격'이었다며, '중독적인 비트에 따라 하기 쉬운 가사, 스쿨걸 이미지 등으로 쟁쟁한 히트 메이커들을 재치고 큰 인기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 영원한 가요계의 요정이란 소리를 듣고 있지만, 사실 대놓고 요정 콘셉트로 나간건 2집 뿐이다. 1집은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콘셉트였으며 3집부터는 요정보다는 세련된 도시 여자 이미지가 더 강했다. 하지만 워낙 2집 때의 요정 콘셉트가 강렬한 임팩트를 가지고 있었고 또 본인들도 활동 당시 요정이미지에 대한 강박관념에 언제나 시달렸다고 하는데, 이때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서 주로 주유소 화장실을 이용하였으며 심지어 유진같은 경우는 탄산음료나 커피조차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바다의 증언에 의하면 다른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 몇 안되는 걸그룹이며 정확한 규모를 추산하기는 힘들지만 신화보다도 팬덤의 규모가 컸다고 한다.[22]

7.1. S.E.S. 팬이었던 가수

  • 권정열, 윤철종 (10cm) : KBS 2FM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서 걸 그룹 노래 대결을 앞두고, 유희열이 어떤 그룹의 팬이었냐고 질문하자 권정열이 학창시절 S.E.S.의 노예였다고 대답함.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주에 S.E.S.의 'Oh, My Love'를 커버해서 부름. 윤철종은 MBC '무한도전'(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편) 출연 당시, 바다의 모습이 비춰질 때마다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져 웃음을 자아내기도 함.
  • 보아 : SM 오디션 당시 S.E.S.의 '완전한 이유'를 불러 오디션에 합격함. SM에서 일을 하게 되면 정말 좋아하던 S.E.S.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한동안 보지 못하다가 일본으로 어학 연수를 가서야 우상이었던 S.E.S.를 볼 수 있었다고 함.
  • 유노윤호 (동방신기) : 공식 팬클럽 '친구' 5기. 학창시절 유진을 보기 위해 S.E.S.의 사인회를 찾아다니고 S.E.S.의 모든 노래를 외워 부르고 다닐 정도였다고 함. 2005년 MKMF 공연 때 S.E.S.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유노윤호의 모습이 화면에 잡히기도 했는데, 당시 유노윤호가 깨방정(?) 떤 모습을 믹키유천이 SBS '더스타쇼'에서 그대로 재현해내 폭로함.
  • 려욱 (슈퍼주니어) : 공식 팬클럽 '친구' 5기. '천상의 목소리 최.성.희'라는 문구로 현수막을 신청한 이력이 있음. 데뷔 초창기에 '바다처럼 노래 잘하는 여자'를 이상형으로 꼽기도 함. 슈퍼주니어 멤버들 사이에서도 바다 팬으로 유명하며, 방송에서 수차례 언급된 부분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
  • 예성 (슈퍼주니어) : KBS 스타 골든벨(2010/01/30)에 출연하여 S.E.S. 1집부터 스페셜 앨범까지 전집을 가지고 있다고 밝힘. 또한, 싸이월드 미니홈피 100문 100답에 처음 좋아한 가수가 S.E.S.라고 적어놓기도 함.
  • 이특 (슈퍼주니어) : 유진과 함께 KBS '해피 투게더'(2010/06/24)에 출연했을 당시, 유진이 S.E.S.로 가요계 요정으로 자리잡고 있었을 때부터 팬이었다고 밝힘.
  • 다나 (천상지희) : 천상지희 멤버 모두 오디션 때 S.E.S.의 노래를 불러 합격했는데, 그중 다나는 S.E.S.의 앨범을 듣고 가수가 되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함. 솔로 1집 땡스투에 '영원한 나의 우상 바다언니'라고 적어놓을 만큼 바다에 대한 애정이 깊은데, 특히 바다 3집이 나왔을 때는 미니홈피 음악을 전부 바다 신곡으로 바꿀 정도로 열정적인 모습을 보임. 텔존 스타인터뷰에서 S.E.S. 팬카페에도 가입한 적이 있다고 밝힘.
  • 티파니 (소녀시대) : 보아팬으로 유명한 티파니는 데뷔 초창기부터 닮고 싶은 가수로 보아와 S.E.S.를 누누히 강조해왔는데, 웬만한 S.E.S. 노래는 다 꿰고 있을 정도라고 함.
  • 윤아 (소녀시대) : 초등학교 시절 S.E.S.가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고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함. 데뷔 초, S.E.S.가 롤모델이고 우상이라는 인터뷰를 함.
  • 써니 (소녀시대) : 일간 스포츠 창간 인터뷰에서 롤모델로 S.E.S. 바다를 꼽음.
  • 박진영 : 본인 소속사 가수가 아닌, 사심으로 좋아해서 곡을 준 유일한 그룹이 바로 S.E.S.. S.E.S. 첫번째 단독 콘서트에도 왔었고, 예전에 S.E.S. 같은 여자 걸그룹을 만드는게 꿈 중에 하나라는 인터뷰를 하기도 함. S.E.S. 데뷔 10주년 팬미팅 축하 메시지에서 S.E.S.가 가요계에 획을 그었다고 말하기도.
  • 데니안 (god) : god 시절 유진을 좋아했었다고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얘기하고 다님.
  • 조권 (2AM) : KBS '달콤한 밤'(2010/03/07)에 출연해 학창시절 S.E.S.를 좋아했다고 밝힘.
  • 선예 (원더걸스) : 초등학교 시절, SBS 오디션 프로그램 '영재육성프로젝트 99%의 도전'에 출연해 유진을 연상케하는 외모로 주목을 받은 선예는 S.E.S. 10주년 팬미팅의 축하 메시지 영상에서 S.E.S.를 동경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말함.
  • 예은 (원더걸스) : 데뷔 초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가수로 S.E.S.를 꼽음. MBC 라디오 '심심타파'에서는 S.E.S.를 너무 좋아해서 춤도 따라추고 그랬다고 함.
  • 임시완 (제국의 아이들) :KBS 뮤직뱅크(2011/08/28)에서 출연 가수를 대상으로 실시한 역대 최고의 아이돌을 뽑는 투표에서 유노윤호과 함께 최고의 아이돌 가수로 S.E.S.를 뽑음.
  • 신해철 : S.E.S.에 대한 마왕의 격한 애정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 마왕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그 진가(?)가 발휘됐는데, 쭉방이 특집과 미소녀 특집에서 S.E.S.가 모두 1위를 할 정도로 총애를 받고 있음. 마왕의 S.E.S. 관련 에피소드는 하도 양이 많아 따로 정리할 수조차 없을 정도.
  • 김창렬 (DJ DOC) : 바다 공식 홈페이지 헬로바다에 가입해서 글을 남길 정도로 바다 팬임을 인증함. '예쁘면서도 노래도 잘부르는 바다가 무조건 좋다'며, '딸을 하나 더 얻는다면 바다와 같은 아이를 낳고 싶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함. 바다 첫번째 단독 콘서트에도 참석.
  • 싸이 : 데뷔 당시 각종 쇼프로그램에 출연해 'S.E.S 의 유진이가 내 이상형'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힘. KMTV '쇼뮤직탱크'의 녹화장에서 S.E.S.의 분장실을 찾아 유진에게 애정표현(?)을 하기도 했다고.
  • 휘성 : S.E.S. 1집 때 백업 댄서를 하기도 했던 휘성은 유진이 너무나 예뻐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다고 함. 이후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유진이 이상형이라고 밝히면서 유진과 친분을 쌓음.
  • 이현 : 공식 팬클럽 '친구' 출신. 유진의 사진을 600여장이나 모을 정도로 광팬이었으며, 이메일 주소마저 '유진현짱'이었다는 다소 충격적인(?) 사실이 방송을 통해 밝혀짐.
  • 박정민 (SS501) : MBC '황금어장'의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S.E.S. 멤버 중 바다를 좋아했다고 밝힘.
  • 싸이먼디 (슈프림팀) : MBC '세바퀴'(2010/08/07)에서 베이비복스를 좋아했냐는 질문에 S.E.S.를 좋아했다고 밝힘.
  • 장재인 : 라디오와 행사 등에서 S.E.S.를 좋아했다고 밝힘.
  • 에일리 : 어려서부터 한국 가수를 좋아했다며, 친구들이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엔싱크 노래를 들을 때 S.E.S.와 핑클 노래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함.
  • 권순일 (어반자카파) : S.E.S.의 'Just a Feeling'를 어쿠스틱 버전으로 커버하여 화제를 모은 어반자카파의 멤버 권순일은 어릴 때부터 S.E.S. 팬이었으며 특히 유진을 좋아했다고 함.

8.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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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반산업협회 공식집계 (2015년 2월 기준)

8.1. 한국

발매일앨범명활동곡판매량비고
1997.12.24SESI'm Your Girl[23], Oh, My Love, 완전한 이유600,000장1998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차트 9위
1998.11.23Sea&Eugene&ShooDreams Come True, 너를 사랑해[24]651,331장1998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차트 21위
1999.10.29LoveLove, Twilight Zone[25], 샤랄라760,475장1999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차트 4위
2000.12.23A Letter From Greenland감싸 안으며, Be Natural, I will...[26]635,713장2000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차트 16위
2001.07.11Surprise꿈을 모아서, Unh Happy Day357,319장2001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차트 16위
2002.02.14Choose My Life-UU[27], Just a Feeling, 달리기[28]406,528장2002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차트 11위
2002.11.21FRIENDSoul to Soul94,654장2002년 한국음반협회 연간차트 66위

8.2. 일본 싱글

순위는 오리콘 주간 차트 최고 순위.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비고
1998.10.21めぐりあう世界37위13,780장
1998.12.10夢をかさねて83위 2,470장
1999.02.21愛という名の誇り60위 8,930장
1999.06.23T.O.P.60위 4,840장
1999.12.08Sign Of Love78위 3,280장
2000.04.21Love100위 2,030장
2000.07.21海のオ?ロラ--차트 진입 실패
2000.08.21Lovin' You--차트 진입 실패

8.3. 일본 앨범

순위는 오리콘 주간 차트 최고 순위.

발매일제목순위판매량비고
1999.03.10Reach out50위10,290장
2000.03.15PRIME64위 3,750장
2000.05.24Be ever wonderful93위2,760장
2001.03.16Here & There ~S.E.S. Single Collection--차트 진입 실패
2002.07.10S.E.S. BEST--차트 진입 실패
2003.06.25Beautiful Song--차트 진입 실패

9. 수상 경력

S.E.S.의 수상 경력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S.E.S. 수상 경력 참고.

10. 광고

10.1. 텔레비전

  • 1998년 농심 새우깡 (기차 여행 편)
  • 1998년 대한민국 홍보 CF
  • 2000년 에뛰드(Etude) (Orange Flavor, 리얼 파우더, 시너지아이즈마스카라, 컬러 토핑 편)
  • 2000년 동아오츠카 화이브 미니 (깨끗한 피부와 친하다 편)
  • 2001년 동아오츠카 화이브 미니 (속 좋은 여자가 되자 편)
  • 2001년 일본 관광청 홍보 CF
  • 2002년 유니레버 커레스 바디워시

10.2. 지면

  • 1998년 7nani (의류)
  • 1999년 롤롤 (의류)
  • 2000년 일본 JustSystem megavi
  • 2000년 LG 테크폰
  • 2002년 롯데 캐논
  • 2002년 JVIM CLUB (의류)
  • 2002년 FRJ (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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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데뷔 초창기부터 유행했던 문구로, 바다가 토토가에서 인증했다. 저 피켓을 든 팬들은 정말 초창기때부터 응원해준 팬들이라고.
  • [2] S.E.S.의 공식 응원 문구.
  • [3] 평론가, 음악지 편집장, 기자, 방송작가 등을 대상으로 한겨레에서 실시한 최고의 아이돌 조사에서 나온 평가. 참고로 1위는 보아, 2위는 소녀시대, 3위는 빅뱅, 4위는 S.E.S., 5위는 동방신기가 차지했다. 1세대 아이돌로는 유일하게 순위권에 포함.
  • [4] 더불어 SM 입장에서 S.E.S.가 없었으면 보아도 동방신기도 소녀시대도 없었다. SM의 일본진출 1호 가수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S.E.S.에게서 배웠다. 결과적으로 S.E.S.는 일본진출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보아의 성공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 [5] 《M.net 레전드 100 아티스트》 중 걸그룹 시대를 연 원조요정 (S.E.S. 편)에서 발췌. 참고로 레전드 아티스트로 뽑힌 100팀 중 걸그룹으로는 유일하게 S.E.S.만 포함되었다.
  • [6] S.E.S.가 현재 한국 걸그룹의 형태를 제시한 시초이자 원조로 꼽힌다. 데뷔 시기로만 따지면 베이비복스가 몇 개월 빠르지만 베이비복스 1집 Equalize Her갱스터 스타일을 추구하다가 시원하게(...) 망했다. 베이비복스가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98년 BABY VOX II에 수록된 '야야야'라는 노래부터로, S.E.S.의 영향을 받아 콘셉트를 대대적으로 바꾼 후였다.
  • [7] 빌보드는 S.E.S.를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케이팝에 엄청난 충격을 준 그룹'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당시 남성 지배적이던 가요계에 태풍을 몰고 온 격'이었다며, '중독적인 비트에 따라 하기 쉬운 가사, 스쿨걸 이미지 등으로 쟁쟁한 히트 메이커들을 재치고 큰 인기를 얻었다'고 설명함. http://www.billboard.com/articles/list/6032628/top-10-k-pop-girl-groups-korea-sistar-2NE1-girls-generation
  • [8] 1980년대 선구자적인 아이돌로 세또래가 있긴 하다. 이 중 한 명은 이후 베이비복스의 멤버로 다시 나타나게 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베이비복스 항목 참조.
  • [9] S.E.S.의 라이벌 그룹이었던 핑클이효리도 그 중 하나. H.O.T.의 열렬한 팬이었던 이효리를 캐스팅 디렉터 김수현이 데려왔는데 사무실에 오자마자 줄행랑을 쳐버렸다고.
  • [10] 故 김환성도 천명훈의 추천으로 이적하면서 팀을 나갔다.
  • [11] 이 때문에 손호영과 데니안은 멘붕에 빠졌다고 했지만 결국 god로 대박이 났으니 전화위복이 된 셈. 가수를 준비중이었지만 정식으로 계약서에 서명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 [12] 이후 유사한 컨셉은 소녀시대와 에이핑크 등에 계승된다.
  • [13] 스파이스 걸스가 대박난 후 숙명의 라이벌 올 세인츠가 나왔던 것처럼, S.E.S.가 성공을 거두었을 때부터 라이벌 그룹의 등장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 [14] 당시 한국을 방문해 S.E.S.의 녹음 과정을 지켜본 원작곡가가 대단히 만족해했다는 후문.
  • [15] 신나라 판매 차트에선 무려 9주 동안 주간 1위를 기록.
  • [16] 원래 1집에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2집 타이틀로 했으면 좋겠다는 이수만의 의견에 따라 2집에 수록하게 됐다. 녹음까지 다 해놨는데
  • [17] 결국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면서 해당 내용을 보도한 매체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함.
  • [18] 소속사 이해관계 때문에 현장에서 급하게 바뀌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 [19] (책 내용) S.E.S.의 두번째 앨범인 《Dreams Come True》는 본격적인 아이돌 그룹의 시대가 열린 뒤 음악적으로 얘기할 만한 '꺼리'가 있는, 혹은 평단의 관심을 받은 최초의 아이돌 음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첫 싱글로 핀란드 출신 가수의 유로 팝 〈Dreams Come True〉를 커버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앨범은 깔끔하고 세련된 콘셉트를 지향하였다. 그리고 음악부터 스타일, 패션까지 '요정'이라는 콘셉트를 두고 비교적 일관된 이미지를 구축했다. '아이돌'이란 낱말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좋은 팝 앨범이었다.
  • [20] 사실 이 시기는 일본 앨범의 라이센스가 한국에 발급이 안 됐기 때문에 SM은 가사를 번안해 발표하는 방법을 택했다. 보아의 스페셜 앨범들도 이래서 발표된 것.
  • [21] 다른 한곡은 4집의 〈Be Natural〉.
  • [22] 체조경기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 걸그룹은 S.E.S.와 소녀시대, 핑클, 카라 등이 있다.
  • [23] 안무는 문희준 영어랩은 신화에릭, 앤디가 맡았다.
  • [24] 랩 피처링은 블랙비트, 글파이브 멤버였던 심재원이 맡았다.
  • [25] 이 역시 '너를 사랑해'의 피쳐링을 맡았던 심재원이 했다.
  • [26] 2008년, 장리인이 리메이크했다.
  • [27] 스웨덴 작곡가 닉 마닉과 키스 보보아의 'I'll Consider You Mine' 곡을 사온 것이다.
  • [28]신해철윤상의 프로젝트 그룹 노땐스 앨범에 처음 실렸던 곡. 수능철이 되면 라디오에서 주구장창 들을 수 있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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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16 23: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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