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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D 돈틀리스

last modified: 2015-04-11 10:39:56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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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개발
3. 성능
4. 활약상
4.1. 해군의 돈틀리스
4.2. 육군의 돈틀리스
4.3. 대공의 사무라이를 잡다
4.4. 진정한 대공의 사무라이
5. 바리에이션
6. 평가

1. 개요

SBD Dauntless

제원
SBD-5

분류 : 단발 복좌 함상 급강하폭격기
전장 : 10.08m
전폭 : 12.66m
전고 : 4.14m
날개 넓이 : 30.19m²
자체중량 : 2,905kg
최대 이륙중량 : 4,853kg
최대속도 : 410km/h
순항속도 : 298km/h
항속거리 : 1,795km
상승력 : 정상 출력에서 8.6m/초
익면 하중 : 140.6kg/m²
무장 : 날개에 50구경 중기관총 2정, 후방 사수석에 2연장 7.6mm 브라우닝 M1919 기관총 1정.


"Slow, But Deadly" [1]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더글라스(Douglas)에서 개발하여 미국 해군항공대에서 운용하였던 급강하폭격기. 항공모함 함재기로도 운용되었고, 해병대가 지상기지에서 운용하기도 하였다. 발음하는 사람에 따라 돈트리스, 돈틀레스 등으로 읽기도 한다.

2. 개발

사실 처음부터 더글라스에서 개발했던 기체는 아니다. 원래 1930년대 중반에 미 해군이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급강하폭격기를 발주하였을 때 노스롭에서 BT 급강하폭격기를 제작하여 XBT-1을 납품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노스롭의 BT는 정식으로 채택되지 못하였고 이후 노스롭은 더글라스의 자회사로 흡수되었다.

이에 더글라스에서는 기존 노스롭에서 개발한 XBT-1에 자신들이 지닌 노하우 등을 접목시킨 새로운 급강하폭격기를 개발하였다. 초창기에는 XBT-1에서 발전시킨 형이기 때문에 XBT-2란 코드를 사용했지만, 이후 SBD란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이미 기본적인 틀이 완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개발자체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미 해군에서도 몇 차례 시험비행을 해본 결과 아주 우수한 항공기란 평을 내리고 주력 급강하 폭격기로 채택하였다. 그리고 정식으로 돈틀리스(Dauntless, 불굴)란 이름이 부여되었다.

육군에서도 약간의 개량을 거쳐 A-24 밴쉬라는 이름으로 채용했다.

3. 성능

속도는 좀 느리지만, 급강하시 안정성이 높고 자로 잰 것처럼 정확한 폭격이 가능하여 파괴력을 인정받았다. 날개에 난 저 '치즈 플랩'이라고 부르는 특유의 구조 덕분이었다. 저 플랩의 성능은 굉장히 우수해서 이후 커티스의 헬다이버도 동일한 방식의 에어브레이크를 채용한다.

후방석에 기관총좌를 장착하여 방어를 하도록 함으로써 생존성까지 높일 수 있었다. 실제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이 후방기총에 격추당한 일본기들이 최소 1 ~ 2기 이상은 있다고 한다.

태생이 급강하폭격기라 기본적으로 12G에 달하는 중력압박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설계와 의외로 뛰어난 조종성능을 갖고 있어서 종종 일본군의 항공기들과 직접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이런식으로 돈틀리스가 전투를 했던 가장 유명한 해전 두가지로는 산호해 해전 당시 부족한 전투기 숫자를 메우기 위해 뇌격기 요격에 동원된 것과 로호 작전(라바울 항공전) 때 다른 미군 항공기들과 같이 신나게 일본기 사냥에 끼어든 것이 있다.

4. 활약상

진주만 공습 이후 육군의 A-24 밴쉬가 먼저 일본군과 상대를 하였을 때 "속도가 너무 느리고, 항속거리가 짧고, 무장이 빈약하다"는 디스질이 계속돼서 해군에서도 이게 구식이라서 답이 안나오는 거 아닌가는 우려를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정작 해군에서는 속도가 느린 점이 흠으로 지적되긴 하였지만 전반적인 성능에 대한 불평은 크지 않았고, 미 해군에서는 태평양 전쟁 내내 사용되었다.

4.1. 해군의 돈틀리스

돈틀리스의 우수한 성능과 조종성은 미군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는데, 같은 시기 돈틀리스와 같이 적함을 격침시키는 역할을 해야 할 TBD 데버스테이터는 구닥다리 성능과 쓸모없는 어뢰의 조합으로 인해 태평양 전쟁에서 올린 전과가 다른 함재기들에 비해 확연히 낮았다. 그렇지만 돈틀리스가 그 빈곳을 메꿀 수 있었기에 미 해군이 첫 2년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돈틀리스가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미드웨이 해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도착하여 일본 정예 항공모함 3척을 날려버리면서 아예 태평양 전쟁의 판도를 뒤엎는 요소로 작용하였고, 최후의 한척 히류마저 돈틀리스들의 손에 가라앉아버려 일본은 미군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돈틀리스는 창작물에서 라이터 취급 받는다. 론슨 라이터와 반대로 불을 붙이는 역할로

과달카날 전투에서도 캑터스 항공부대 소속 돈틀리스들이 항공모함 함재기와 합작으로 일본군의 상륙과 보급을 저지하는 등 맹활약을 했고 산타크루즈 해전에서는 비록 적함을 격침시키지는 못했지만 두척의 항공모함을 저승 문턱까지 밀어내면서 일본이 제해권을 쥐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후 비슷한 시기에 배치되었던 F4F 와일드캣, TBD 데버스테이터가 후계기로 교체되었음에도 계속 일선에 남아서 화끈한 손맛을 느끼고 다녔다.

트럭 섬 공습 당시 기수의 50구경 기관총을 활용해 초계정 두척을 잡아낸 엽기적인 사례도 존재한다.[2]

1943년 말부터 커티스에서 개발한 신예 급강하폭격기 SB2C 헬다이버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필리핀 해 해전은 SBD가 해군항공대의 함재기로서 참전한 마지막 전투가 되었다. 하지만 헬다이버의 경우 2류 개새끼(Son-of-a-Bitch 2nd Class)라고 불릴 정도로 조종성이 거지같은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뛰어났고 항속거리가 길었던 돈틀리스도 완전히 퇴역하지는 않고 해병항공대를 중심으로 실전부대에 남아 계속 운용이 되었다. 결국 돈틀리스는 종전까지 미군과 함께했다.

특히 항속거리가 길다는 장점은 1944년 6월 20일의 필리핀 해 해전에서 드러나는데, 귀환이 가능할 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일본 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출격한 SB2C 51기 중 43기가 손실되었고 그 중 70% 이상이 연료 부족으로 인한 불시착으로 인한 손실이었는 데 비해 SBD는 27기 중 격추된 기체를 포함해 3기만이 손실되었다.

4.2. 육군의 돈틀리스

육군항공대에서도 해군에서 개발한 돈틀리스를 운용하였다. 이유는 당시 유럽 전선에서 독일군슈투카가 맹활약을 하자 "저거 좀 짱인듯"이란 생각에 별도로 급강하폭격기를 개발하려 하였다. 근데 사정이 여의치않자 어쩔 수 없이 SBD-3를 개랑하여 A-24 밴쉬란 이름으로 채택하였다.

그런데 막상 도입하고 보니 전략폭격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육군항공대 입장에서는 별로 활용가치가 없었다. 그 때문에 이렇다할 전과를 남기지는 못했다.

4.3. 대공의 사무라이를 잡다

대강 보고 넘어가면 F4F 와일드캣과 흡사하게 생겼기 때문에 일본의 에이스인 사카이 사부로한테 죽음의 공포를 안겨준 기종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오랜 비행으로 피로에 찌들어 있던 사카이 사부로는 후방기총이 없는 와일드캣의 뒤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이 돈틀리스였다. 근데 돈틀리스는 후방기총이 있다. 사카이는 아차 싶었으나 곧 돈틀리스들의 뒤에 달린 후방기총의 집중포화를 맞았고 때문에 한 쪽 눈까지 잃었다. 그런데 결국 사카이 사부로는 그런 지옥도에서 살아서 귀환하는데 성공했다.

굳이 사카이 사부로가 아니어도 실제로 가까이서 보기 전엔 둘의 구분이 힘들어 후방기총에 격추당한 사례가 많았다. 그 반대로 폭장한 와일드캣을 돈틀리스로 본 사례도 있다고. 구라망 클라스

4.4. 진정한 대공의 사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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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147.54 KB)]

날개로 제로센을 베어버린 용자. 스탠리 '스위드' 베타사 대위.

산호해 해전에서는 전투기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일본군의 뇌격기를 요격하는 임무에 투입되기도 했다. 5대의 돈틀리스를 이끈 사람은 스탠리 '스위드' 베타사 대위였는데, 그가 마주친 적기들의 정체는 뇌격기가 아니라 제로센이었다! 베타사는 일본기와 대결하기 위해 좌선회를 지시했지만 편대원들은 그 지시에 따르지 않았고, 곧 4대의 돈틀리스가 격추당했다. 오직 좌선회를 한 베타사만이 살아남았지만, 제로센들은 곧 베타사의 돈틀리스를 격추시키기 위해 몰려들었다. 폭격기 1대 VS 전투기 3대의 대결이 벌어진 것.

그런데 베타사의 돈틀리스는 놀라운 기동으로 적기 2대를 전방기관총 사격으로 격추시켜 버렸다! 마지막 한 대의 제로가 정면에서 그에게 달려들었고 두 기체는 정면충돌했지만, 돈틀리스는 자신의 날개로 제로센의 날개를 잘라버렸다. 제로센은 연기를 뿜으며 사라졌고, 베타사는 무사히 요크타운으로 귀환했으며 해군은 그에게 해군십자훈장을 수여했다.

사실 날개로 제로센을 베어버리고 왔다는 이야기가 워낙 유명하긴 하지만, 양자의 내구도 차이나 충돌 부위를 고려해볼 시 굳이 그가 탄게 돈틀리스가 아니었어도 가능은 했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단한건 아군기가 이미 다 격추당해버린 둔중한 폭격기가 후방사수 없이 3:1의 수적 열세속에서 적기를 먼저 2기 떨어트리고 기어코 1:1 헤드온까지 끌고 들어간 그 실력과 대담함이다.

이후 그는 전투기 조종사로써의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아 항모 엔터프라이즈와일드캣 조종사가 되고, 그 뒤 미드웨이 해전 이후 벌어진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일본기를 한 번 출격에 무려 7대를 잡아내는 실력을 과시했다. 저 중간에도 적기를 한번 격추한 적 있어 산타크루즈 해전 종료 직후 총 11기 격추로 더블 에이스를 달성해냈다. 이후 제트화한 해군 항공대에서도 승승장구, 1970년까지 복무하며 대령으로 예편한다. 복무기간에 해군십자장만 세번이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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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최강 전투기 대전의 폭격기 vs 전투기 에피소드에서 출연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셨고 2008년에도 엔터프라이즈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Battle of 360'에서도 다시 한번 본인이 직접 출연해서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의 전황을 설명해주었다. 격전도 몇번씩 치뤘고 조난당해 죽을뻔한 고비를 넘기기도 하는 등 호랑이 기수 못지않게 사신이 싫어하는 사람이었지만... 애초에 사신 부대에서 근무했잖아? 결국 13년 5월에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등지셨다. #

5. 바리에이션

1930년대 말 최초 양산형 SBD-1이 해병대에 배치되기 시작하였으며, 1941년 초에는 연료탱크의 용량을 늘리고 몇 가지 무장을 개조한 SBD-2가 해군에 배치되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캐노피를 방탄유리로 변경하고, 무장을 기총 네 정으로 늘리고, 연료탱크 피탄시에 고무로 자동봉인이 되도록 처리하는 등의 개량이 이루어진 SBD-3가 생산이 되었다.

이후 태평양 전쟁 발발과 함께 내부 전기시스템을 12볼트로 올린 SBD-4가 개발이 되어 배치되었다. 이후 1000마력에서 1200마력 엔진으로 교체하고 방어용 기총을 강화한 SBD-5가 등장하였으며 SBD 최대 생산형으로 기록되었다.

최종버전인 SBD-6도 개발이 되었지만, 해군 항공대엔 이미 SB2C 헬다이버가 주력으로 운용되고 있었던 관계로 해병대에만 배치되었고, 1944년 여름에 생산이 종료되었다.

6. 평가

전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 해군 소속의 그 어떠한 병기보다 많은 선박을 격침시켰다고 한다. 또한 태평양 전쟁 당시 손실된 돈틀리스가 약 120기였는데 돈틀리스가 격추시킨 적기는 100여기로 폭격기로썬 놀라운 교환비를 이뤄냈다.

결국 돈틀리스는 미 해군에게는 태평양 전쟁에서 고난과 영광의 시기를 함께 지내며 다대한 전과를 올린 급강하 폭격기로써 역사에 자기 이름 한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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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파일럿들이 돈틀리스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실제 SBD의 의미는 Scout Bomber Douglas. 더글라스제 초계 폭격기쯤 된다.
  • [2] 히스토리 채널 'Battle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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