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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T신관

last modified: 2015-07-08 23:36:05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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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T 신관의 구조 출처

Contents

1. 개요
2. 명칭에 얽힌 이야기
3. 원리
4. 개발
5. 사용
6. 타국에서의 대응
7. 여담

1. 개요

제2차 세계대전미군이 사용한 근접신관. 국군은 접근신관이라 부른다더라. 주로 3인치부터 6인치까지의 구경을 가진 대구경 대공포(기관총이 아니라 커다란 대포) 포탄의 신관으로 썼다.

2. 명칭에 얽힌 이야기

VT라는 코드명 때문에 초기엔 가변 시한(Variable Time)신관으로 잘못 알려졌다. 즉 앞서 기술한 종전의 대공포탄인데 시간 세팅을 더 쉽게 한 종류로 알려진 것. 사실은 '탄약국'의 V섹션이 이 프로그램을 추진했고, 코드명을 T로 했기 때문에 VT였다. 덕분에 일본을 비롯한 추축국은 VT 신관의 정확한 작동메커니즘을 잘못 알았다고 한다. 타이밍을 가변설정할 수 있는 지연신관은 그거대로 양산했다

3. 원리

작동원리는 주변으로 전파를 방사하다가 전파가 되돌아오면 작동한다. 전파가 되돌아 왔다는 것은 주변에 무언가 물체에 부딪혀 반사되어 되돌아왔다는 뜻이며, 즉 주변에 무언가 물체가 있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쉽게 이해하려면 원시적인 레이더라고 보면 된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신관 껍데기 자체가 일종의 안테나 역할을 하는 매우 단순한 구조다. 전파는 70MHz 범위의 주파수를 사용했으며, 진공관은 3기를 사용한다. 진공관은 1기는 전파 발신기 겸 도플러 효과 검파기를 담당하고, 다른 1기는 하이패스 필터를 담당해서 전파 검출패턴의 보정 및 신관 작동시간 지연과 파편 살포 패턴을 조정한다. 나머지 1기의 진공관은 도플러 효과 검파값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방전 퓨즈를 녹이는 작동을 해서 신관을 발화시키며, 포탄의 종류에 따라 신관의 감도를 조정하기 위해 해당 진공관에 연결되는 회로 중에 가변 저항기를 연결시킨다.

그리고 대공포탄을 발사한 직후에 VT신관이 너무 일찍 작동되는 바람에 대포의 포신이나 발사한 함선을 감지해서 폭발하는 자폭을 막기위한 장치가 붙는다. 일단 폭탄이나 로켓용으로 사용하는 프로펠러식 발전기를 사용해서 프로펠러가 일정 회수 이상 회전한 후에야 근접신관을 기폭회로에 연결하는 장치를 도입했고, 6.25 전쟁때는 포탄 내부에 전해액이 들어간 유리 앰플을 넣은 후, 발사한 후 충격을 받은 앰플이 파열하면 전해액이 흘러내리면서 전류를 통하게 만들어서 수 분정도 신관이 작동하도록 하였다.

4. 개발

1930년대 후반에 영국에서 대공 방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실험을 진행했는데, 이 중에는 전파를 이용한 근접신관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실험까지 진행해놓고도 영국에서는 해당 실험의 중요성에 대해 그렇게까지 중요하다고 인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미국이 해당 실험에 관심을 보였다. 이리하여 영국 수상인 처칠과 미국 대통령인 루즈벨트 사이의 비공식적 협정으로 미국은 영국의 실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 및 기술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에서 진행된 근접신관 개발은 존스 홉킨스 대악 응용 물리학 연구소와 미국 해군이 협력해서 진행되었으며, 1942년 1월에 시제품이 나오게 된다.

VT신관을 개발 할 때의 첫번째 난관점은 그 당시에 그리도 비쌌던 첨단 부품인 진공관을 포탄 하나하나에 다 집어넣었다는 점이다. 과연 진리의 쇼미더머니 미군. 2000년대로 치자면 포탄 한발 한발에 CPUSSD를 집어넣은 셈이다. 아니, 미국은 현대에도 진짜로 그런다. 혼자서만 TL을 다르게 노는 미국군

그리고 두번째 난관점은 VT신관을 대공포탄에 사용될 예정이었으므로 일반적인 폭탄이나 로켓에 사용할 때 신관에 걸리는 압력인 100G 정도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의 압력인 20,000G의 압력이 대공포탄을 발사할 때 신관에 걸린다는 점과, 대공포탄이 강선에 의한 회전으로 탄도를 곧게 유지하기 때문에 발사 직후의 기준으로 30,000rpm의 회전이 걸린다는 점이다. 여기서 중대한 문제는 핵심 부품으로 쓰인 진공관. 그냥 50cm 정도의 높이에서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손으로 꽉 쥐기만 해도 충분히 깨져나가는 취약한 진공관이 이런 압력과 회전을 버텨야 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대단한 도전이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난관점은 VT신관은 다른 신관처럼 독자적으로 사용되는 것보다는 다른 기기와의 연합을 통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노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목표를 추적하는 레이더와 사격관제컴퓨터의 개발 및 양산으로 인해 가능해졌다. 일례를 들면 90mm 대공포에 SCR-584 자동추적레이더와 M-9 사격통제컴퓨터를 달고 VT신관을 사용한 대공포탄을 쏘니 그 동안 대공포로 격추가 어려웠던 V1의 요격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인해 개발에는 맨해튼 계획에 필적하는 자금이 투입되었고, 개발이 완료된 이후에도 생산단가는 매우 비쌌다. 1942년도 기준으로 한발당 가격이 732달러. 현재 가치로는 9347.54달러다. 그러나 이후 대량생산에 들어가면서 1945년도 기준으로는 18달러, 현재 가치로 약 221.13달러까지 내려갔다.

5. 사용

2차대전 중에는 주로 대공포탄에 많이 쓰였다. 미사일이 없던 2차대전 당시에는 먼 거리의 항공기를 공격하기 위해 대구경 대공포를 쏘아서 '대충 적 항공기 근처에서 터지도록' 시간을 세팅하여 발사했는데, 따라서 포탄 발사 이후 항공기가 비행코스를 바꾸면 속수무책이다. 그리고 급속도로 접근하는 항공기를 만날 경우에는 비행코스 변경의 문제보다는 발사 타이밍이 더 문제였다. 신관세팅하다가 적기가 근접해서 폭탄을 던지거나 어뢰를 투하하면 땡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VT 신관은 이보다 더 정확하게, 대충 15m 근방에 적 항공기가 있다면 알아서 터진 덕에 명중률이 훨씬 좋았다. 기존의 시한식 대공포탄에 비해서 대충 7배 정도의 명중률 향상을 보였던 모양이다.[1] 물론 레이더와 FCS를 도입한 이후의 대공화기 명중률 상승이 약 100배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 당시의 초보적인 VT신관은 대공화력망 강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는 견해도 있긴 하지만 애초부터 VT신관은 레이더 및 사격관제장치와 연동해서 쓸 목적으로 만들어졌기에 충분하게 제 역할을 다 했다. 그리고 대공화기 명중률 7배 상승은 충분히 괄목할만한 성과다.

VT신관의 첫 출전은 산타크루즈 해전. 당시 공격 간 일본 항공대가 전멸해서 상부에 보고도 못했다고 한다. 다만 생산량이 딸렸던 초기에는 전선에 투입되는 양이 적어 그리 많은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던 모양. 일본군의 항공기들이 말 그대로 작살 나버린 필리핀 해 해전 당시도 미군의 전투기들이 무쌍을 찍어버린 탓에 정작 격추된 일본의 항공기 378기 중 대공포화에 격추된 수는 19기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아직 VT신관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한 때라 신관수량이 모자라서 당시 발사한 대공포탄중 근접신관을 사용한 포탄량이 20% 정도였던 탓도 있다. 그리고 당시까지만해도 일본군이 가장 경계하던 대공무기는 VT 신관이 아닌 포스 40mm 대공기관포. 실제로 미군이 운용한 대공무기중 일본기를 가장 많이 격추한 것도 이쪽이다.[2]

결국 VT 신관이 본격적으로 그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전쟁 말기에 들어 일본군이 카미카제 특공대를 운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가 되었다. 카미카제는 함선으로 똑바로 최고속력으로 돌입하기 때문에, 계산하고 신관세팅하고 발사하는 동안 항공기는 쑥 접근. 반면 VT신관은 세팅할 게 없고, 카미카제의 돌입코스는 뻔하기 때문에, 그냥 빨리 쏘기만 하면 됐다. 더 많은 사격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태평양전쟁 말기가 되면 미국은 구축함급에도 지금 기준으로야 초보적이지만 화기관제컴퓨터를 달아서 반응시간을 더 줄였다. 그리고 카미카제를 완전히 막기 위해서는 40mm 기관포도 뭔가 모자르다는 점을 느끼고는 40mm의 후계자로 VT신관을 사용가능한 3인치 대공포를 선정하고 전쟁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도입한다.

이 외에도 VT신관은 독일의 V1 미사일을 요격하는데도 유용하게 쓰였으며, 야포탄에 적용하여 야포탄이 땅에 닿기 전에 공중에서 터지도록 해서 도로나 시설물에 손상을 주지 않고 사람만 제거하는데도 쓰였다. 이 경우에는 지면에 전파가 반사되어 포탄으로 돌아가므로 VT신관의 기폭이 가능하기 때문에 별도의 변경이 요구되지 않는다. 또한, 공중에서 터지는 VT신관의 출현은 포탄 한발로 사상할수 있는 인원을 더 높혀주었고, 일반적인 포탄의 경우처럼 포복해 버리면 파편들이 위로 지나가서 살상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공중에서 폭발해서 파편을 사방으로 내리는 방식으로 극복. 인마 살상력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후에 공중에서 폭발해서 플레쉐트를 뿌리는 포탄등의 모태가 되었다. 단, 지상용으로 쓰는 것은 한동안 꽤나 자제되었는데, 만에 하나 불발된 VT신관이 적국(특히 독일)의 손에 넘어가서 적국이 VT신관의 파해법을 알아내거나 아니면 복제품을 제조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44년 아르덴 대공세 때부터는 이미 추축국이 패전직전이라 비밀을 알아내도 양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는지 그냥 그런거 상관 없이 야포탄에도 VT신관을 대량으로 사용하였다.

6. 타국에서의 대응

실제로 독일군은 VT 신관을 노획하고도 조그마한 포탄 한발 한발마다 진공관이 들어가는 이런 물건을 자국은 양산할수 없음을 알고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독일이 항복한 후 노획한 문서에서는 독일은 자체적으로 30가지 이상의 근접신관 연구를 했지만 대부분 양산에는 실패하였고, 단 1종류만 양산품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해당 양산품은 폭탄이나 로켓용은 있었으나 대공포탄과 같이 고압력, 고회전이 걸리는 곳에 사용할 물건은 끝까지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일본은 종전까지 미국이 근접신관을 실용화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 불명확한 소스에 의하면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역시 공돌이들을 악랄하게 갈아넣어서 야마토 정신으로 어떻게든 비슷한 걸 만들긴 했지만 저 말이 안나오는 가격 탓에 도저히 대량생산 같은 건 무리리고 판단해서 보류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일본보다 레이더 및 포탄 기술이 앞섰던 독일의 경우를 생각해보건데 고압력과 고회전이 걸리는 대공포탄용 신관은 못만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련은 스파이인 줄리어스 로젠버그가 1940년대에 미국으로부터 VT신관의 기술을 훔쳐다가 KGB에 전달함으로서 기술을 입수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역시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해당 기술은 2차대전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못했고, 냉전시기에 꽃을 피우게 된다.

결국 VT신관은 그야말로 미국만이 가능한 돈지랄의 끝판왕이었다.

7. 여담

이 신관의 전과 중에는 6.25 전쟁 당시 아군 오폭도 있다. 바로 김영옥 대령과 그 부대를 "너무 북진해서 적인 줄 알았다."며 포격한 포병대가 쏜 탄이다.(…) 이 일로 김영옥 대령은 중상을 입고 한국전쟁 전선에서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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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래서 해전게임 네이비필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밸런스 브레이커
  • [2] 다른 기록에 따르면, 20mm 오리콘 기관포가 숫자로는 가장 많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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