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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shiki

last modified: 2015-03-22 22:33:33 by Contributors

X JAPAN의 멤버
Yoshiki SUGIZO HEATH PATA TO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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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애초에 이 놈이 까여도 할 말 없는 놈이라… 게다가 본인 팬 한테도 까일 정도면 뭐…
요시키! 이노무시키!

미모가 절정이던 시기[1]



아무것도 없는데 왜 벗어...? 그래도 20여년동안 수차례 과 회복을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 외모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이 상당한 독종임을 알 수 있다.

林佳樹임가수(…) 1965.11.20 ~

뮤지션이 실력도 어정쩡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이고 안하무인한 태도에 성질 더러운 꼴통이라면 그건 퇴물만도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인.

Contents

1. Biography
2. Works
3. 음악적 성향과 역량
4. 여담

1. Biography

일본비주얼계 록밴드 X JAPAN의 리더이자 드럼, 피아노 담당.

한때는 인디즈 레이블인 Extasy Records의 대표이사이자 Polydor 계열회사인 플래티넘 레코드의 사장에 워너와 합작한 Extasy Japan의 대표이사였지만 전부 2002년에 자진 도산. 이후 소속사는 없다.

X 활동 당시부터 다른 멤버들과 차별화하는 신비주의 컨셉으로 그의 생년월일이나 혈액형 등을 전부 X로 프로필에 표기했다. 과거에는 이런 신비주의가 멋으로 먹혔지만 지금은 사람들 관심에 벗어나 있는 중. 애초에 딱히 팬이 아닌 이상 알고 싶어했던 사람도 없었고...

본래는 본명도 밝히지 않았으나, 방송에서 토시가 실수로 본명을 말해버리는 바람에 만인이 그가 하야시 요시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전공했던 그는 어느날 고교 동창이기도 했던 토시와 함께 록밴드 KISS의 공연을 보게 된다. 그 둘에게 이 공연은 굉장한 컬쳐쇼크로 다가왔으며 공연이 끝난 후 두 사람은 함께 "반드시 밴드를 만들자"라고 했다고. 결국은 고교 졸업 후에 두 사람을 주축으로 X 결성. 활동 당시부터 거의 모든 곡의 작사와 작곡을 맡았으며 독단적 리더쉽으로 밴드를 운영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독단적인 성격 때문에 다른 멤버들과 불화도 자주 일어나기도 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타이지와 히쓰.어째 둘 다 베이시스트다. 밴드는 드럼과 베이스가 쿵짝이 잘 맞아야 잘 굴러가는데 이 시점부터 글렀다.

멤버 중 타이지와 가장 많이 싸웠으며 그를 스튜디오 뮤지션(세션)으로 취급하는 등 온갖 모욕을 주면서 결국 해고했다던가, 타이지 후임 베이시스트 히쓰가 X JAPAN 해산후 "X와 히데를 그만 우려먹어라"는 충고를 했다는 이유로 한동안 히쓰와 사이가 안좋아져 히데 관련 행사에도 초청하지 않았다던가 하는 식으로 인간적,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 X JAPAN 활동 때부터 지금까지 말이 많고 주위에서 항상 좋은 소리가 안 나온다. 한때 친했던 주위 뮤지션들이나 후배들과 모조리 틀어져서 꼭 안좋게 끝났다.

인디즈 레이블 Extasy Records를 경영하던 시절 LUNA SEA, ZI:KILL, LADIES ROOM, 무엇보다 GLAY 등을 발굴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인 즉슨 대부분의 유명 밴드들은 히데가 픽업해낸 것이고 요시키 본인이 데뷔시킨 밴드들은 LADIES ROOM을 제외하고 하나같이 망했다. 스카우터로서의 능력은 전무하다라고 보는게 중평. 그 GLAY조차 실제로는 hide의 추천으로 가까스로 데뷔했고 요시키는 실제로 L'Arc~en~Ciel을 Extasy Records에서 데뷔시키길 강력히 원했으나응? 보는 눈이 없는 건 아닌지도 L'Arc~en~Ciel 멤버들이 거절, 특히 요시키를 개인적으로 싫어했던 hyde의 강력한 반대로 실패, 히데가 재차 추천하는 바람에 대타로 영입한 것이 GLAY라니 뭐...[2] 그리고 9:1 노예계약 달성, 우왕 굳 이후 일본의 국민밴드가 된 GLAY의 인기폭발로 인해, 이 선택은 요시키에게는 자신의 재력에 엄청난 도움을 주게 되는 신의 한 수가 되고 GLAY에게는 그야말로 최전성기를 넘어 소속사를 몇 번 옮겨서 자기들이 세운 회사에 재적 중인 지금까지도 요시키에게 수입을 삥뜯기게 되는 악마의 계약이 되어버린 셈이다.이런 천하의 개쌍놈이 있나…

상황이 이러니 주위 뮤지션들 중에 요시키에 대해 좋은 말을 한 뮤지션들은 없다. 찾아보면 겨우 한 명 나올까 말까 정도일까....[3] 오히려 괜히 허세를 부렸다가 싸움이 나서 두들겨 맞거나 욕을 얻어먹거나 했다는 사연이 양파처럼 나온다. X 시절에도 토시와 요시키의 불화가 해체의 원인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다른 멤버들도 모두 요시키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X의 기타리스트였던 히데가 상당히 스킨십이 좋고 대인배적인 성격으로 유명한데도, 해체할 즈음에 요시키하고 사이가 안 좋아서 대화도 제대로 안했다고 한다. 히데가 그 정도인데 다른 멤버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히데는 요시키가 말썽을 피우면 말려주고 수습해주고 붙잡아주는 역할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4] 그런데 그런 히데가 죽자 요시키는 성격이 더 막나가기 시작했다는 후문도 있다.나이를 거꾸로 먹는건가?

타이지가 해고된 것도 요시키의 돈 욕심에서 시작되었다. 같은 밴드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시키 혼자 배 이상의 수익을 챙기고 있었다. 밴드의 경우 인세는 인원수대로 골고루 배분하는 게 룰인데 이것을 깨버린 게 요시키이다. 그렇잖아도 평소에 타이지와 이런저런 마찰을 빚었는데, 타이지가 인세 문제를 거론한게 결정타가 된 것. 요시키의 작곡 능력 못지 않게 아주 중요한 요소가 타이지의 편곡 능력이었는데, 그런 타이지를 짤라 버렸으니 밴드가 잘 굴러갈 리가 없었다. 오랜 친구였던 보컬 토시도 요시키를 가리켜 "그는 나를 노래 부르는 기계 정도로만 생각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타이지가 나간 이후, 새로운 베이시스트로 영입한 히스를 보고 요시키가 했던 첫말이 너도 깝치면 짤라버린다. 였었다는 후문도 있다.

현재는 과거 X JAPAN 시절의 유산이나 팔아먹으면서 꾸준히 스스로의 명성에 오점을 더해가고 있는 중이다. 고작 정규앨범 4장(인디즈 포함)임에도 수십종에 달하는 비정규 앨범이 디스코그래피를 채우고 있다는 현실이 이를 온전히 비춰주고 있다. 온갖 종류의 베스트 앨범에 수록곡과 편곡도 유사한 라이브 앨범, 심지어 팬의 개인 녹음을 가져온 부틀렉 앨범 등의 각종 비정규 앨범을 참으로 탐욕스럽게 발매하였으며[5] X JAPAN 해체 10년 후에는 그간 X JAPAN으로 치뤄진(타이지가 재적하고 있던 X 시절이 아닌) 모든 도쿄돔 라이브 영상을 DVD로 발매했는데 이전 영상과 겹치는 것도 부지기수에다가(라스트 라이브 발매 한참 후에 라스트 라이브 완전판을 내는 등)한정판 프리미엄은 덤 자기 이름 붙인 한정판 쥬얼리를 어머어마한 가격에 팔아먹는 식으로 팬으로서도 차마 실드치기 힘든 행보를 거듭해왔다. 요시키의 온갖 뻘짓을 필터링하고 실드치는 광팬들도 돈독이 오른 것만은 절대 부정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자신들도 요시키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전성기 때에도 거의 요시키의 개인적 사유[6] "긴급"을 붙인 공연 중단, 늘상 반복되는 발매 연기 등으로 관련 업계에서의 악평이 많았는데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는 순간에도 워낙 화려한 전적이 거듭되어(신작 연기, 마스터테이프 분실 떡밥, 레코드사와의 불화 등으로) 현재 어떤 일본 내 레코드사도 계약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 안습. 대표적으로 AVEX에서 부활 이후의 X JAPAN과 계약한다는 떡밥이 돌았지만 마츠우라 에이벡스 사장이 트위터에서 대놓고 안한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다. 그리하여 X JAPAN의 신곡 "I.V"와 "JADE"조차도 CD화하지 못하고 웹 다운로드로만 판매했다. 도쿄돔 라이브 DVD와 블루레이들은 전부 인디즈 레이블에서 발매했다. 다만 2013년 나온 솔로 앨범인 "YOSHIKI CLASSICAL"의 경우 WARNER MUSIC 레이블을 통해 일본 국내에 발매되었는데 이것은 해외 발매본과 함께 계약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근래에 요시키와 가장 가깝게 지낸 인물은 각트인데, 각트는 요시키를 의외로 재미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상하게 남들이 화를 내지 않을 때 화를 내는 등 정말 알 수 없는 장난감 상자 같다고 평가했다.[7]
그러나 각트와 함께 결성한 밴드인 S.K.I.N의 미국 공연 때, 크게 다툰 이후로 이제는 친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되어졌으나 2014년 어떤 팬이 "요시키는 잘 지내나요?"란 말에 각트가 "친하게 지내긴 하는데, 여전히 다툰다."라고 답변. 다만 각트가 주변 인물들과 불화가 있더라도 잘 해결하는 편이고, '직접적으로 다툰다.'라는 식의 언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에선 '의외로 심하게 싸우는 거 아니냐?'란 추측도 있었으나 2014년 1월 경 각트가 트위터를 통해서 "여전히 다투지만 잘 지낸다."라고 팬들에게 답장을 했고, 요시키 역시 각트의 새 노래인 P.s I LOVE you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과 S.K.I.N의 재결성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과연 하려고 할까? 각트가? 각트 입장에서는 요시키와 같이 활동했던 게 인생 최악의 경험이었을 것이다.

2011년 7월 히데에 이어 베이시스트였던 타이지도 사망함으로써 예전 히데때처럼 요시키가 얼마나 죽은 타이지를 팔아먹으며 돈을 벌지 예의주시 중이다.[8]

원래 집안이 상당한 재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후 레코드사를 설립하여 사업가로서 활동한 탓인지 물론 대부분 GLAY가 벌어들인 막대한 수입을 노예계약으로 빼먹은 것이 가장 크지만 재력과 인맥이 절륜하여 정작 음악활동보다는 이런 저런 행사에 불려다니는 경우가 더 잦다. 일본 국내외를 막론하고 온갖 기금마련행사나 시상식에 참여하고 고이즈미로 대표되는 극우 자민당 세력과도 친분이 있어 고이즈미 전 총리가 개인적으로 호감을 표한 "Forever Love"가 자민당 CM송으로 쓰이기도 하고, 2005년 아이치 만국박람회 이미지송에 참여하거나 2012년 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로고송을 제공한 것도 인맥의 결과물이다.

2015년, 방송에서 드디어아니 또 한번 X JAPAN의 새 앨범의 작업이 마무리 중이며 4월 중에 끝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젠 아무도 자기 말을 믿지 않을 것 같다며 쓸쓸히 웃으며 자폭 발언을 내뱉었으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가 될까? 2015년 2월 본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15곡이 수록된 마스터 CD의 사진을 올렸다. [9]

2. Works

곡 재탕의 끝판왕.[10]

X의 메이저 데뷔 2번째 앨범 "Jealousy"가 밀리언을 달성하는 등 한참 인기 절정기를 달리던 1991년 12월 요시키 본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곡을 모은 "YOSHIKI SELECTION" 선곡집을 발매했다. 이례적인 인기를 끌어서 클래식 차트 상위에 올랐다. 이 앨범은 국내에도 2000년 정발되었다.

같은 해(1991년) TM NETWORK(TMN)의 코무로 테츠야와 함께 프로젝트 V2를 결성했다. 12월 5일에 모차르트 사망 200주기를 기념한 라이브 공연을 성공리에 마쳤으며 이듬해 1월 발매된 V2의 유일한 싱글은 40만 장을 상회하는 판매량을 보이면서 제법 성공한 편이다. 물론 당시 TMN 활동만으로 인기가 정상을 달리던 코무로 테츠야의 인기가 더해졌음은 고려해야겠지만. 코무로가 직접 부른 극악의 보컬은 논외로 하고

1993년 4월 당시 솔로활동 소속사였던 TOSHIBA-EMI에서 기획하여 비틀즈의 프로듀서 조지 마틴의 편곡과 프로듀싱을 거쳐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X JAPAN의 기존 곡을 클래시컬하게 편곡한 "YOSHIKI Presents~Eternal Melody"을 발매하였다. 20만 장 정도로 역시 클래식 계에선 이례적인 판매고를 기록. 신곡으로는 "Amethyst"가 새로이 작곡되어 클래식 곡으로 수록되었다.

1993년 11월 3일, TBS 방송사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인 NOA라는 유닛의 "今を抱きしめて"가 발매, 요시키 작사[11], 작곡, 편곡 및 프로듀스 담당으로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대단한 인기와 주목을 받았던 싱글이며 [12] Eternal Melody에 수록된 "Amethyst"를 담은 싱글이 같은 해에 발매되었다. [13]

1994년 영국 밴드 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와 협업, 공동 프로듀서로 싱글 "Foreign Sand"를 발매했다.로저 테일러에겐 인생 최악의 경험이었을듯 1번 트랙 "Foreign Sand"의 작곡과 편곡을 담당, 2번 트랙 "Final Destination"은 로저 테일러가 작곡했고 요시키는 로저 테일러와 공동 편곡을 담당했다. 역시 TOSHIBA-EMI의 기획.

같은 해(1994년) GLAY 데뷔 싱글인 "RAIN"의 작사 및 공동 작곡, 편곡 및 프로듀스를 담당했는데, 현악과 피아노 등 자신만의 색채를 너무 입혀서 훗날 GLAY는 라이브 구현도 어려운 편곡이며 자신들의 분위기도 아니라면서 새롭게 편곡해서 앨범에 수록한 전례가 있다.

1996년 11월, 본인이 작곡하여 당시 라이브 투어 오프닝 곡으로 쓰이던 "Amethyst"를 수록이라기 보다 재탕[14] 두번째 클래식 선곡집 "Yoshiki Selection 2" 발매. 당시 사실상 X JAPAN은 신작 정규앨범 "DAHLIA"의 판매고가 전작의 절반 수준이었던 64만 장에 머무는 등 인기가 끝물이었던 만큼 이 선곡집도 전작 만큼의 반향은 없었다.

1997년 12월 31일, 같은 해 4월 보컬 토시의 탈퇴 요구[15]로 촉발된 팀의 와해로 인해 은퇴 발표 후 도쿄돔에서 거행된 THE LAST LIVE를 마지막으로 X JAPAN은 일단 공식적으로 해체하였다.


1998년 기타노 쇼코의 Begin(6월)과 薔薇と緑(10월) 두 장의 싱글을 발매히면서 프로듀싱, 작사 작곡 편곡을 도맡았다. 그녀는 저 유명한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딸로서 무려 PV 감독을 부친인 거장 기타노 다케시가 맡았던 정도가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단지 그것 뿐, 연예계에 데뷔할 수준의 몸매도 외모도 안되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연예계에서 버틸만한 멘탈도 되지 못했다. 그나마도 PV에서도 흔한 일본 폭력물의 일진 소녀처럼 나와서 대중의 호감을 얻는데 실패했고 무엇보다 비음에 가려져 코맹맹이 소리에 가까운 가까운 답답하기 그지없는 쇼코의 보컬은 모든 면에서 감점사항이 되었다.

첫 싱글의 첫곡인 "Begin"은 그저 거슬리는 소음에 가까운 싸구려 전자음과 천박한 느낌의 기타 리프, 80년대 유로비트 팝 에 못미치는 마이너버전임을 연상시키는 수준의 전혀 그루브감 안느껴지는 저질스런 리듬프로그래밍이 가미된 댄스곡, 제대로 된 싸비조차 없는 발라드 I Believe는 그렇다치고 두번째 싱글인 薔薇と緑의 경우는 주선율의 일부를 연주하는 도입부 피아노가 뭔가 기대감을 주나 그것 뿐, 드라마틱한 구성을 염두에 둔 멜로디 자체는 조금 더 나은듯 하지만 Begin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조금 빠른 비트의 곡, 귀에 거슬리는 노이즈에 가까운 배경음으로 처리되는 기타리프는 역시 혐오스러울 정도이며, 프로듀싱한 여타 아티스트는 물론이거니와 X JAPAN 재결성 후의 곡들에서 계속해서 이 기타"노이즈"가 등장한다는 측면에서 이후 요시키의 음악 작업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안좋은 시도의 시작이라 평할 수 있으리라. 후반부 뜬금없이 반복되는 베이스 솔로도 그 자체로는 나쁘지는 않으나 곡의 완결성과 연결되지 못해 감흥이 없다. 종반부의 피아노 선율 반복이 다소 청량감을 주기도 하나 무엇보다도 세 곡 다 미친듯 반복되는 주선율 돌려막기는 짜증을 유발할 정도. 요시키가 VIOLET U.K 등을 통해 시도하고자한다던 다양한 장르의 결합이 처음으로 나타난 최악의 결합물. 프로듀서 겸 작곡가인 요시키 본인이 익숙한 음악~~클래시컬한 대중가요 발라드거나, 클래식이 들어간 팝발라드라거나, 관현악이 투입된 발라드곡 등등 ~~ 이 아니라면 나머지 장르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물론 본인의 솔로 프로젝트 음반이 아니었다고는 해도 같은 해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던 X JAPAN의 동료 멤버 hide가 비슷한 시기에 남겼던 솔로 및 공동작업들이 얼터너티브락, 일렉트로니카, 인더스트리얼, 하드락, 팝과 재즈까지 솜씨좋게 결합하여 최강의 결과물로 평단-대중의 호평과 상업적 성공을 함께 거두었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양자의 음악적 역량의 차이는 이미 현격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기타노 쇼코의 싱글은 연예계의 거물인 부친인 극진한 서포트에도 불구하고 혹평 속에 처절하게 망했다. 그나마 90년대 초반에 X JAPAN과 NOA의 "今を抱きしめて" 싱글 등의 성공을 통해 쌓아두었던 프로듀서로서의 명성도 큰 타격을 입음.


1999년 5월 1일, 그 전해에 사망한[16] X JAPAN의 동료 hide의 헌정앨범 "hide Tribute"에 도입곡 격인 "Introduction" 및 엔딩곡인 "Goodbye"를 본인이 담당.

"Intriduction"은 hide의 솔로 1집에 수록된 "Eyes Love You"를 피아노 솔로로 편곡, "Goodbye"는 hide의 솔로 2집 앨범에 수록되어 있었던 동명의 곡을 피아노 및 현악을 활용한 소편성 클래식으로 재편곡하여 수록하였다.

같은 해 11월 12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주선으로 헤이세이 덴노의 즉위 10주년 기념일 날 피아노 협주곡 Anniversary라는 곡을 헌정하고 피아노 연주를 맡기도 했다.


2000년에 설립한 Extasy Japan에서 신인 및 데뷔시킨 밴드들을 야심차게 프로듀스 했지만 다같이 망했다. [17] 그리고 회사는 도산 크리, 사실 Dir en grey 정도를 제외하면 프로듀스 성공작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Dir en grey의 싱글 중 요시키가 작업한 곡들도 상술한 GLAY와 유사하게 그들의 골수팬들에게 Dir의 색깔이 없는 곡이라고 까이는 걸 감안하면 성공이라 부르기가 좀 애매하긴 하다. 한편으로 한국인으로 이루어진 기획 록밴드[18]트랙스의 일본 데뷔 프로듀스를 맡았고 자신이 작곡 및 편곡까지 담당한 "Scorpio"와 X JAPAN 시절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TEARS"까지 재편곡 용으로 제공했다. 기획사[19]에서 한일 양국에서 100% ROCK이니 뭐니 ㅎㄷㄷ할 정도로 거하게 언플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판매량과 인지도는 처참했다.[20]

동시에 솔로 프로젝트로 Violet U.K.를 10년 넘게 기획해오고 있다고 밝히며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 2000년에 세븐일레븐 광고로 선보인 곡들이나 2002년에 나온 Last Live의 DVD에 프로모션 영상이 수록되었다. 그동안 요시키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했다던 음악인 Violet U.K.의 이후 15년간 데뷔만 홍보하게 되는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던 건 맞는데, 그리고 아무런 소식이 없다. 영상에 따르면 X JAPAN 활동 당시부터 기획해 오고 있었던 프로젝트라고 한다.

2002년 갑작스럽게 코무로 테츠야의 그룹인 globe에 객원 멤버로 참가하기도 했다. globe의 경우는 싱글 "Seize the Light" 발매. 그외 다카라즈카 극단에 제공한 곡을 보컬 케이코가 부른 데모 음원 하나만 떠돌고 있을 뿐, 사실상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다.

같은 해 도쿄 시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Yoshiki Symphonic Concert featuring VIOLET UK란 콘서트를 거행, 훗날 이 공연은 2005년 DVD로 정발되었다. 실황 음원들이 훗날 나올 두 앨범에 끝없이 우려먹기로 수록되는 것은 덤

2003년, 2005년 아이치 만국 박람회의 주제곡을 맡아서 하와이 출신의 일본인 혼혈인 여성 보컬 DAHLIAX JAPAN의 정규앨범명과 예명이 동일의 곡 "I'll be your love" 2년 먼저 싱글화, 그러나 아이치 만박에서는 그 누구도 이 곡을 공식 테마곡으로 기억하지못할 만큼 폭망, 안타깝게도 달리아 양은 이 데뷔싱글곡 하나만 남기고 버로우. 도입부에 바로 나오는 주선율의 멜로디는 일견 좋으나 단조로운 구성으로 인해 정작 감상 후에 기억에 남을만한 주제 선율이 없다는 점은 행사 주제곡으로서의 결정적인 문제라 볼 수 있다. 신인급 아티스트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불안한 음역대의 보컬과 일본어 발음 미숙도 지적할 수 있으며 요시키 편곡의 최대 문제점으로 불리는 후렴부의 의미없는 반복과 불필요한 현악남용은 여전했다.

2005년 3월 Eternal Melody 2를 발매하였다. 2000년에 도입부 데모만 살짝 공개했던 히데의 추모곡 "Without You"의 클래시컬 버전이 수록되었다. 99년 공개된 일본 덴노 즉위 10주년 봉축곡 "Anniversary"도 최초 음원화, 그외에 원래 음원조차 공개되지 않은 Violet U.K의 클래시컬 곡이 수록되었던 것까지는 좋으나, 그 옛날 93년 Amethyst 싱글의 커플링 곡 "今を抱きしめて"부터 96년 X JAPAN 싱글로 발매된 "Longing~절망의 밤"에 2002년 심포닉 콘서트 실황 음원까지 그간 발매했던 음원들이 트랙리스트의 대부분을 빼곡히 채우고 있으니 그저 별 노력없이 이미 팔아먹은 음원 채워놓은 충실한 재활용판이라 보는 비판도 있다. 사실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얼마 안되는 솔로 작업에서의 이런 재탕크리는 양반이고 정규앨범 4장에 각종 베스트 앨범을 포함한 비정규 앨범이 수십장에 달하는 X JAPAN의 재탕크리들은 거의 경악스럽기까지 할 지경이니까, 그 모든 것이 이 양반의 기획하에 이루어진 것이니... 어쨌든 국내 정발. 판매량은 그닥...

2005년 9월 22일에 Violet U.K 데뷔 앨범 발매를 다시 고지했으나 보란듯이 연기.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다. 어쩌면 비치 보이즈의 Smile의 기록을 깰지도 모른다. 그나마 Smile은 발매되자마자 '시간의 오카리나' 취급이라도 받았지 Violet U.K.의 지금까지 공개된 곡의 수준을 보면 절대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다. 이후 마스터테이프 분실 떡밥도 던졌지만 아무도 안믿는다.[21] 계속되는 발매 연기로 빡친 소속사에서 소송크리. X JAPAN의 정규 마지막 앨범 DAHLIA가 포함된 Atlantic 산하에서 발매된 음원의 본인 소유 저작권을 모조리 넘기는 걸로 합의한 후 계약 해지. 양치기 소년의 최후랄까. 아… 눈물 좀 닦고. 꼴 좋다!

2012년 9월 Violet U.K. will finally debut in 2013!이라는 티저를 띄웠다. 물론 역시나 이후 아무런 소식이 없다. 본인이 계획했다고 하는 X JAPAN 시절까지 합치면 실로 20년의 떡밥.[22]

2013년 9월 요시키의 솔로 앨범 YOSHIKI CLASSICAL이 발매 되었다. 문제는 역시 Violet U.K 활동과는 상관없다는 사실. 신곡은 제일 첫 트랙 "MIRACLE"이 전부이며 그외 최근에 온라인 음원으로 발매된 "Golden Globe Theme"(2012)이 '최초로 CD화 되었다' 정도로 의미부여할 수 있으며, 같은 곡이 Quartet(4중주) 버전으로 재편곡된 버전도 수록되어있다. 나머지는 과거에 발매한 Eternal Melody 1, 2의 수록곡이 대부분이다. 곡 재탕의 끝판왕이라니까!

일본판과 해외판이 다른 것도 특징. 일본 내 발매본에는 2002년에 치뤄진 본인 클래식 콘서트에서 연주된 "The Last Song" 클래식 버전이 실황 녹음으로 실려있고 해외 발매본에는 그 대신에 무려 1993년에 Eternal Melody 1에서 수록된 "Say Anything"의 클래식 버전이 수록, 그외 곡 순서가 상이하고 재킷 사진 차이 정도가 다르다. 일단 일본 및 세계 동시 발매이며 일본판은 오리콘 앨범 차트 주간 4위로 데뷔, 차트에 8주간 머물렀으며 iTunes 클래식 차트에서 좋은 성적은 거두었다.

3. 음악적 성향과 역량

감성적이면서 유려한 멜로디를 잘 잡아낸다. 워낙에 인성이 안좋은 것으로 실제로도 안 좋지만 업계에 소문이 났지만 그의 멜로디 감각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지나치다. 하지만 X 시절에는 팬이였다가 X JAPAN 이후 안티로 돌아선 팬들은 음악성에 대해서도 상당히 크게 지적을 한다.[23] 90년대 일본 음악시장이 분명 거대했지만 90년대 초에 락밴드로서 밀리언을 달성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으며, 사실 한국에서 X JAPAN의 인기가 상당부분 과대포장되어 알려져 있지만 어쨌든 주간 오리콘 차트 1위에 싱글과 앨범을 자주 올린 것 또한 사실이니까, X 시절까지는 평단에서 주목받는 밴드이기도 했으며 작곡가로서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 이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것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주로 발라드에서 그 멜로디의 장점이 크게 부각되는데, 밴드 X를 인디계의 유망주에서 일약 메이저 밴드로 확실히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게 된 발라드 Endless Rain[24] 1992년 NHK 홍백가합전 주제곡이자 이후 X JAPAN의 곡으로 발매되어 요시키 개인 및 X JAPAN 역사상 최다 싱글 판매작인 Tears(1993년 발매, 83만장 판매) 같은 곡에서 멜로디 감각은 최근작(?)인 "Without You"(2005, 클래식 버전으로 발매, 히데 추모곡으로 작곡됨), "Scarlet Love Song"(2011, 극장용 애니메이션 "Buddah"의 O.S.T), 정말 극히 최근작인 "Golden Globe Theme"(2012)에서도 여전하다. 2000년의 어느 일본 예능프로그램에서 그 유명한 파문전사 50대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가 리포터로 LA의 요시키 자택을 방문했을 때 즉석에서 피아노로 만든 곡이 해당 프로그램의 로고송이 되었으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뭐.[25]

그러나 장점은 여기까지. 그의 멜로디 메이킹 능력이 최고의 장점이자 이제는 유일한 장점인 것으로 들통이 났달까? 문제는 극악의 편곡력에 있다. 자신의 곡을 편곡해줄 사람이 없다면 소위 멜로디 돌려막기만 하다가 끝난다라는 악평을 평론계에서 들을 정도로 편곡 능력이 좋지 못하다. X 및 X JAPAN 시절 작곡자가 요시키임에도 굳이 편곡자가 X 혹은 X JAPAN인 이유가 있다. 특히나 록 성향의 곡을 편곡하는 능력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X 시절에는 베이시스트였던 TAIJI가 사실상 편곡을 전담하여 WEEK END, 紅, SILENT JEALOUSY 등 수많은 명곡을 함께해냈고 그의 조력이 있었기에 결과물이 가장 빼어났던 시절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타이지가 요시키에 의해 쫓겨난 이후 음악성의 저하와 팬층의 이탈로 어어졌다.

인디즈 데뷔 앨범인 "Vanishing Vision"부터 바로 그 타이지의 해고 전에 발매된 마지막 음반인 "Jealousy" 까지의 앨범과, 원래 "Jealousy" 수록곡으로 기획되어 타이지가 편곡과 녹음에 참여했었던 미니앨범 "Art of Life", 그리고 타이지 탈퇴 후 그나마 기타 리프를 짜주던 히데가 참여했던 "DAHLIA" 앨범끼리만 서로 비교해도 곡의 짜임새와 드라마틱한 구성에 현격한 차이가 있고 두 명의 사망 이후에 발매된 신보들의 경우는 그 사운드의 빈약함이 과연 같은 작곡가의 음악인가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아무리 드러머 출신이라지만 무려 데뷔 30년이 넘은 밴드의 리더가 "기타 리프" 하나 짜지 못하고 그저 배경 노이즈로만 처리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또한 곡 메이킹을 보면 락이란 장르에 대해 이해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엑스 해체 이후 요시키가 프로듀싱한 곡들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는 특징 중 하나로, 본인이 좋아하는 피아노와 관현학 멜로디가 본격적으로 곡을 구성하고 있고 기타와 베이스음은 뒷배경으로 밀려나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관현악 멜로디와 락 사운드가 조화롭게 편곡되어 있었다면 모를까 전체적으로 요시키가 만든 노래에서는 그 두 사운드의 궁합이 좋지 않다. 그냥 꼭 넣어야 하니까 기타 사운드를 억지로 집어넣은 듯한 느낌이랄까. 엑스 재결성 이후 요시키가 프로듀싱한 곡 jade에서도 이 특징이 드러나는데, 인트로 부분에서 뭔가 대단한 음악이 나올 것처럼 기타 리프가 요란하게 튀어나왔다가 막상 본 멜로디가 시작되니 기타 리프는 그냥 배경 간주 수준으로 밀려버린다.

좋은 편곡 능력이 있는 뮤지션과 콤비를 이루고 활동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평. 실제로 엑스 시절 타이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툭하면 치고 싸웠지만, 능력 면에서는 최상의 궁합이었다. 요시키 작곡-타이지 편곡 콤비는 X 초창기 시절 많은 명곡들을 만들어냈다.[26]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시키 본인의 인성 문제와 성격 때문에 X JAPAN 해체 이후에도 본인이 편곡 능력을 기르는 건 물론이고 타이지 같은 콤비 뮤지션을 구하는 것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작사의 원천은 자살. 어릴 적 아버지가 자살한 모습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겨 자살과 죽음에 대한 가사가 굉장히 많다. 엑스재팬의 대표곡인 "Blue Blood", "Week End"과 "Silent Jealousy"만 하더라도 자살이 소재로 쓰였을 정도. 그런데 자서전이고 방송에서건 자기 부친의 죽음을 하도 우려먹어 식상한 면도 적지 않다.부친이 안 죽었다면 아마 평생 동안 아마추어 뮤지션으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90년대 한참 X JAPAN의 인기가 국내에 드높던 시절 한국에만 들리던 소문으로 전세계적으로 3위의 드러머 안에 든다는, 참으로 근거없는 헛소리가 유행했다. 우선 드럼 "실력"에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실력이라는 것이 성적처럼 점수를 매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연주하는 장르도 다르며, 같은 장르라고 해도 연주자에 따라 각자 연주하는 스타일이 있는 법인데 순위를 매긴다는 자체가 넌센스. 실력이 아닌 인기 투표는 실제 있긴 하지만 어떠한 드러머 관련 인기 투표에서도 요시키가 3위권 안에 들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또한 드럼은 다른 악기와 달리 타악기라는 특성상 분당 몇 번 치는지 재거나 하는 일도 있는데 이 부분에서도 요시키가 그동안 보여준 속도로는 최상위권은 택도 없는 수준이다.

초기 메이저 데뷔 시절인 "Blue Blood"와 인기 절정의 시절이라 할 수 있는 "Jealousy" 앨범까지는 트윈 베이스 연주를 즐겼지만 점점 체력이 딸리는지 점점 비중이 줄어서, 이젠 그냥 없다고 봐도 된다. 92년 도쿄돔 공연을 들어보면 마지막 곡 X에서 속도가 줄어든다. 그냥 조루(...). 그나마 불쌍해서 칭찬을 하나 해주자면 드럼을 재밌게 곡에 짜 넣는 능력은 있다. 쳐 보면 재밌는 부분이 많다. 어려운 부분은 아니지만(…).

드럼은 평균 이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레코딩에서 세션을 기용하기도 한다.[27][28] 또한 드럼을 칠 때 특유의 자세와 세팅 때문에 허리와 목 디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재결성 공연 이후 다시 목에 깁스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쪽은 실력이라기보다는 특유의 자세의 문제나 세팅 노하우에 가깝지만.

극악한 고음병 환자로 토시에게 무리하게 고음을 내지르게 하는 등 마치 고음과 테크닉에 집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히데의 곡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확실히 히데의 곡에서 토시의 보컬이 더 안정적으로 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3년 2월 1일 NHK 50주년 기념 공연에서 조성모와 SPEED의 전 리더 시마부쿠로 히로코가 "君だけだから"[29]를 부르는데 당시 전성기가 아니었다 해도 맑은 고음으로 이름 높은 그 조성모가 가성으로 헉헉댈 정도로 극악의 고음을 요구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 성향은 요시키가 프로듀스한 거의 모든 가수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4. 여담

만화 BECK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앞길에 태클을 걸며 비주얼록의 대부로 통하는 ''이라는 캐릭터의 모티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란의 외모와 대외적인 이미지는 요시키를 빼다 박은 듯이 닮았다. 가운데 이마가 드러나는 머리라든지,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모습이라든지, 돈만 지독하게 밝히는 모습은 완전히 요시키 그 자체다. 더욱이 란은 느와르 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비주얼계 밴드 출신이며 지나치게 돈과 명예에 매달리는 란에게 일갈했던 기타리스트와 사이가 안좋았고 그 기타리스트는 자살로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30]

요시키는 프로듀싱도 했던 경력이 있으므로 정말 무서울 정도로 많은 점이 닮았다.


니코니코 동화에서 활동하는 드러머 카와구치 센리(川口千里)가 요시키에게서 배웠다는 말이 있다.왜 하필 요시키인지? 요시키보다 성격 좋고 실력도 좋은 드러머가 많을텐데(...)[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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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화장품 CF까지 찍었다.
  • [2] GRAY에게 대놓고 너희는 라르크의 대타라는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3] 있다. 밴드 멤버에게 심한 말을 해서 자살로 이끌었다는 Versailles의 Hizaki... 동족끼리 알아보는 것인가?
  • [4] 대표적으로 호테이 토모야스와의 일화를 꼽을 수 있는데, 여러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공연에 개인적인 이유로 지각해놓고 대선배격인 호테이 토모야스에게 한 소리 들은거 가지고 공연이 끝나고 술쳐먹고 꽐라되서 일본도 들고서 호테이가 투숙해 있던 호텔로 쳐들어가 깽판부리던걸 말린게 히데고, 그 때 계기로 히데와 호테이가 서로를 알게되고 사이좋은 선후배가 되었다.
  • [5] 사실 갑작스럽게 밴드 해체가 이루어짐에 따라 당시 재적되어 있던 레이블과의 계약조건을 충족시켜줘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경우.
  • [6] 그런데 그 사유라는게 절반 정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깝치다가 얻어맞음으로 인한 잦은 부상이었고,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순간의 감정 변화 혹은 게으름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이 문제(...).
  • [7] LA에서 스텝진들과 식사하던 각트를 만나러 요시키가 왔을 때 스텝진들이 식사하겠냐고 권하자 3번 정도 거절하다가 4번째 말을 거니깐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면서 "먹으라면 먹을게!" 했다고... 근데 너무 잘 먹어서 한번 더 권하자 갑자기 또 버럭 화를 내면서 "알았어! 그렇게 먹어라고 하니깐 먹을거니까 먹을거야!"라고 했다고...아니 것보다 먹어라고 하니깐 먹을거니까 먹을거야!라니 대체 뭐라는 거야 각트조차 '재미있긴 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라고 평가.
  • [8] 그러나 어쨌든 지난 2년간 워낙 활동이 없어서 그런지 X JAPAN 라이브에서 이름 몇 번 부르고 끝인 듯.
  • [9] https://instagram.com/p/zhpDQZL9B6/
  • [10] 원래 볼드처리도 없었고 취소선 처리되어 있던 문장이지만 엄연히 사실이므로...
  • [11] 白鳥 瞳(시라토미 히토미)는 요시키의 가명이다.
  • [12] 2013년에 리메이크 되기도 하였다.
  • [13] 今を抱きしめて의 클래시컬 버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싱글에만 수록되어 있어서 나름 희귀성을 인정받던 이 트랙은 당연하게도 2005년에 발매된 ETERNAL MELODY 2에서 재활용된다 -.-;
  • [14] 해당 음원은 "Eternal Melody"와 요시키 솔로 싱글에 수록된 그 음원 그대로다.
  • [15] 훗날 부인으로부터 전도받은 "홈 오브 하트" 라는 사이비 종교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 그녀 또한 원래부터 사이비 종교 교주의 내연녀였으며 X시절의 명성과 부를 노려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 [16] 불의의 사고라는 설이 우세하다.
  • [17] 자신의 전 연인이었던 쿠도 시즈카를 영입해서 "深紅の花"라는 곡을 주고 프로듀서로서 싱글을 발매했다. 사실 쿠도 시즈카는 왕년의 대스타였지만 이미 전성기가 지나 가창력도, 미모도 예전만 못한 그녀가 음악으로 성공하긴 불가능했으며 자기도작 수준의 발라드 곡이란 혹평을 나올 정도로 곡의 퀄리티도 수준미달이었으므로 상큼하게 망함. 다만 그녀의 음원 성적과는 별개로 같은 해에 일본 연예계 최고의 인기남인 2살 연하의 키무라 타쿠야를 잡아채서 결혼에 골인한 행운의 여자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그외 여성보컬인 Shiro와 밴드 BEAST、Revenus 등의 아티스트 들을 프로듀스했으나 지금은 그 누구도 기억되지 않고 있다.
  • [18] 어느정도 독자적인 문화로서 궤도에 올라 있었던 일본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에서도 인디씬이 홍대 인근에서 한참 불타오르고 있었던 시기였지만 애초에 그런 경험 따위는 없었던 일천한 수준의 연습생들을 가지고 한일 양국을 노린 기획상품으로 만든 밴드, 연주력은 물론이거니와 보컬 또한 비슷한 착안의 기획 상품인 문차일드 수준만도 못했다.
  • [19] 국내 기획사는 SM엔터테인먼트이었고 일본 기획사는 당시 SM이 제휴했던 최대 레이블인 AVEX TRAX.
  • [20] 불행 중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트랙스의 멤버였던 노민우는 빼어난 외모와 나쁘지 않은 연기력을 통해 현재 연기자로 활동 중인데 TV 드라마 락락의 주연을 맡는 등 배우로서의 입지를 제법 굳힌 상태다.
  • [21] 애초에 마스터테이프가 도둑맞았다는 기사가 떴는데 그 이후 음원은 어디에서도 유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저 음원발매연기를 위한 짜고치는 고스톱이었을 뿐이라는 말이 가장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 [22] 단 한 곡도 정식적인 CD로 발매된 게 없고 드라마나 영화 삽입이나 컴필레이션 앨범 또는 인터넷 상에서 다운로드 판매로 몇 곡 나온 게 전부다. 혹평이 두려워서, 혹은 거품이 꺼져서 망하는게 두려워서 일반에 내놓지 못한다는 게 정설.그러는 주제에 솔로 앨범은 잘만 냈다. 솔로 앨범 내지 말고 이거나 내지 그래?
  • [23]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편곡을 담당하던 TAIJI해고탈퇴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 [24] 한국 녹색지대의 "준비없는 이별", 김민종의 "나를 위해" 등의 원곡이다. 즉 당시 많은 한국가요들이 대놓고 베낀 곡. 일본에서도 X JAPAN 최고의 발라드로 인기가 높지만, 한국에서의 인지도와 인기가 훨씬 높았던 대표곡. 요시키의 발라드곡 들은 확실히 한국인 감성에 훨씬 더 호소하는 바가 큰 것으로 보인다.
  • [25] 요시키의 아직도 남아있는 팬들 중에는 요시키의 이런 능력이 좋아서 팬이 된 경우도 있다. 물론 이 경우에는 요시키 개인의 인성은 싫어한다. 굳이 우리나라 사정에 비유한다면 신해철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실제로 디시인사이드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모 사이트같이 전반적으로 극우 성향이 강한 사이트에서도 신해철의 인격이나 정치 성향(자신들과 정반대니까), 발언이나 행적들은 가루가 되도록 까이지만 그의 음악성&노래들은 절대 안 까인다는 점이 비슷하다.)
  • [26] X의 대표곡인 "紅"도 요시키가 이 노래를 작곡한 이후, 그냥 처박아두고만 있었는데 타이지가 이 노래를 발견해서 직접 편곡을 해 명곡으로 완성시켰다.
  • [27] 작곡이나 프로듀싱 이것저것 다 하기 때문에 프로 드러머로서의 자각이 부족한 것일지도.
  • [28] DAHLIA 일부 부분에서는 레코딩시 연주가 아닌 전자음을 사용했다고 직접 밝히기까지 했다.
  • [29] 한국명은 "그대 뿐이어서", 조성모 5집 수록곡
  • [30] 물론 히데가 자살을 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고 지금도 모두들 사고사일 것이라 추측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인은 자살이다.
  • [31] 우리나라는 보컬 말고는 딱히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선 보컬인 토시를 리더로 생각한 듯 하다.
  • [32]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스승은 스가누마 코조(菅沼孝三)라는 드러머이다. 같이 연주한 영상도 많으며, 호흡도 잘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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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22 22: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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