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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즈 올드린

(ɔ) NASA from


"이쪽은 달 착륙선 파일럿입니다. 이 기회를 빌려, 나는 이 방송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누구도, 또 어디에 있어도, 당분간의 행동을 멈추고, 이 수 시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심사숙고 해, 각각의 방법으로 감사를 해 주었으면 합니다."
- 버즈 올드린[1]

Contents

1. 개요
2. 생애
3. 콩라인?
4. 버즈 올드린의 달 사진
5. 버즈 올드린 관련 에피소드


1. 개요

Edwin "Buzz" Eugene Aldrin, Jr. (1930 ~ )

닐 암스트롱에 이어서 달에 두번째로 발을 디딘 사람. 그리고 인류 최초로 달에서 성찬식을 한 사람. 좀 장난스러운 타이틀이지만 인류 최초로 우주에서 셀카를 찍은 사람이기도 하다.

콩라인 때문에 닐 암스트롱의 존재감에 밀리는 감이 없지 않지만, 대중에게 달과 우주개발 홍보에 좀 더 앞장선 것은 이 분이시다.


2. 생애

1930년 1월 20일 뉴저지 주 글렌 리지에서 태어났고, 미국 보이스카우트에 입단했다. 그리고 뉴저지 주 몬트클레어에 있는 몬트클레어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미국육군사관학교를 거쳐 미 공군 조종장교로 임관[2]하고 6.25 전쟁에도 조종사로 참전했는데, 본인이 F-86 세이버로 격추시킨 MiG-15 조종사의 탈출 장면을 찍은 희귀한 사진이 1953년 6월 8일 <LIFE>지 금주의 사진으로 수록되었던 바 있다. (29페이지) 미군에서 공개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 조종사는 소련군이었다고. 최종 계급은 대령. 그리고 1979년에 버즈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3년 MIT에서 궤도상 랑데부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3] NASA 우주비행사로 뽑혔다. 당시 올드린이 쓴 궤도역학 논문이 이후 궤도상 랑데부 연구[4]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우주비행사로서의 업적 외에도 그가 우주개발사에 남긴 영향은 어마무시한 수준. 그리고 제미니 9호의 백업 승무원이 되었으며[5], 후에 제미니 12호에서 제미니와 아지나 타겟의 마지막 도킹과 3회의 EVA(당시 기준으로 최장시간 기록)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며 제미니 계획의 목표였던 궤도상에서의 자유로운 미션 수행 연습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1969년에는 닐 암스트롱과 마이클 콜린스와 같이 아폴로 11호에 탑승해 달 착륙선 조종사가 되었다.[6] 닐 암스트롱 다음으로 달에 발을 내디뎠고, 그 후 우주 공학자가 되어 여러 우주 탐사 계획을 세웠다.

3. 콩라인?

미국에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지만, 미국 외의 국가에서는 그냥 암스트롱이랑 달에 같이 간 사람 정도의 인식만 있고 묻혀지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모 대기업이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라는 광고를 할 때 그 예를 든 잊혀진 2등 중 하나가 바로 버즈 올드린이었다. 하지만 이 분은 경쟁에서 밀려 2등이 됐다고는 할 수 없는 만큼 다소 빗나간 예시일 듯하다.

물론 우주덕들은 버즈 올드린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비록 2등이긴 했어도 실질적으로는 버즈 올드린이 암스트롱보다 훨씬 더 앞장서서 민간인들에게 달과 우주개발에 대해 홍보했다는 평가가 있다. 암스트롱은 달에 다녀온 뒤 엄청난 유명세와 음모론자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대학 교수로 사실상 은둔생활을 한 반면에[7] 올드린은 영화나 방송 출연 저술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영국 언론인이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을 인터뷰한 후에 쓴 책 '문더스트'를 참고해 보시라.

'인류 최초로 달에서 성찬식을 했다'는 것은 물론 2등으로 치부할 수 없게 만드는 사실이다. 이 성찬식은 아폴로 8호가 성경을 읽은 후 종교색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하여 당시엔 숨겼다가 자신의 저서 '달로부터의 귀환'에 실으면서 비로소 밝혀졌다.

4. 버즈 올드린의 달 사진

(ɔ) NASA from

흔히 닐 암스트롱의 사진이라고 알려진 아래 사진은 사실 버즈 올드린의 사진이다. (찍은 사람이 닐 암스트롱. 사진 속 우주인의 헬멧 부분에 쬐끄맣게 비쳐 보이는 우주인이 암스트롱이다)


이 발자국 사진도 버즈 올드린의 발자국이다.

바람도 공기도 없고 지각 활동도 없는[8] 달의 특성상, 운석이 떨어진다거나 이후의 다른 사람이 착륙해 훼손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그나저나 흔적도 못 남긴 콜린스는... 지못미.

발자국과 관련된 여담으로, 21세기인 현재 인도중국이 유인 달 탐사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터라, 이걸 유적이라고 주장하는(...) NASA가 이 발자국이 있는 곳을 출입금지구역으로 정해야한다고 주장했었다.[9] 하지만 "그럼 달이 미국 땅이냐? 무슨 자격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해외의 비아냥을 듣고 있다. 게다가 UN도 지구 외 다른 별을 특정 나라가 영토화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런 주장은 미국 정부가 아닌 NASA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서...

나이가 들었지만 이제 몇 남지 않은 NASA 리즈시절의 원로로서 존경받고 있으며, 과학계와 공학계의 여러 현안에 대해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도 인간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의견을 피력[10]하기도 했으며, NASA가 달에 다시 가겠다는 야망을 크게 떠벌리자 과거의 영광만을 바라보지 말고 또다른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는 쓴소리를 했다. 화성 유인 탐사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화성은 목적지가 아닌 또다른 출발지여야 한다는 간지나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5. 버즈 올드린 관련 에피소드

  • 달에 다녀온 후, 그는 다시 달에 가려고 했으나 미국 정부는 절대로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달 여행을 떠났다가 그가 죽기라도 하면 국가적인 손실이기 때문이다. 유리 가가린 같은 전설적인 우주비행사와 똑같은 이유인데, 올드린 본인은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자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정신병원에 가기도 했다.

  • 아폴로 계획 음모론을 펴던 바트 시브렐은 올드린에게 "그게 사실이라면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해 보라"는 등의 망언을 하다가 주먹으로 응징당했다. 오오 참교육 오오... 링크 법원에서는 올드린이 정당방위를 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올드린의 인터뷰는 여기를 참조하자.

  • 토이스토리의 주인공 버즈 라이트이어의 버즈라는 이름도 버즈 올드린에게서 따온 것.

  • 트랜스포머: 다크 오브 더 문(2011)카메오로 출연했다.

  • 매스 이펙트 3의 에필로그에서 카메오로 출연했다.

  • 시트콤 빅뱅 이론에서는 하워드가 우주에 다녀온걸 자랑하지 못해서 미쳐갈 때, 아직도 달에 다녀온걸 꼬마들에게 자랑하는 모습으로 출연하여 하워드가 자랑을 멈추게 만들었다.

  • 우주형제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 포켓몬스터(애니메이션) 213화 '거대 구구의 섬!'편에 나오는 구구 '올드린'의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날지 못하는 거대 구구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보통 구구로, 조종사 헬멧을 쓰고 있다.

  • 지구에서 달까지에서는 브레이킹 배드월터 화이트로 유명한 라이언 크랜스턴이 연기했다.

  • 딸에게 최고의 선물을 한 아버지로 유명하다. 그가 달에 갔을 때, 버즈 올드린은 자신의 딸의 이름을 달 표면에 새겼다. 알다시피 우주 공간의 특성 때문에 달 표면에 쓴 글씨는 자연적으로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즉 딸의 이름을 달에 영원히 새긴것이다. 그 딸은 밤 하늘을 올려다 볼 때마다 그곳에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마음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는 것. 시트콤 모던 패밀리에서 아버지인 필은 “저걸 어떻게 이기냐”라며 불평했을 정도. 그런데 그런 딸이 루이스 C.K.를 간지럽히다가 후드려맞고 실려가자 분기탱천하여 바트 시브렐 응징하듯 루이를 패고는 종신 노예로 만드셨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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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선외활동을 하기 전, 그리고 인류 최초의 달에서의 성찬식을 하기 직전의 발언.
  • [2] 미 공군이 육군에서 독립한 것은 1947년이지만 미국공군사관학교는 1954년 설립되었기 때문에(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보다도 늦다) 한동안 육사를 나와서 공군으로 입대하는 인원이 꽤 있었다.
  • [3] 원래 고등학교 졸업할 때 MIT를 지원해서 전액장학금을 보장받으며 합격했지만 쌩까고 웨스트포인트를 선택했다고...
  • [4] 그 덕에 최초의 지구 궤도상 도킹은 소련이 아니라 미국의 제미니 8호에 의해 이뤄졌다. 이 미션을 성공시킨 제미니 8호의 사령관은 닐 암스트롱.
  • [5] 제미니 9호는 당초 엘리엇 시와 찰스 배셋이 승무원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1966년 2월 28일 T-38 추락사고로 두 승무원이 사망하면서 토머스 스태퍼드진 서넌이 정규팀으로 돌려졌고(미션 이름도 제미니 9호가 아니라 제미니 9A호로 바뀌었다) 짐 러벨과 올드린이 새 백업으로 뽑혔다. 이 둘은 이후 12호에서 함께 활동하게 된다.
  • [6] 다만, 원래는 달 착륙선 조종사가 아니었다. 아폴로 8호의 백업 팀을 구성했던 암스트롱의 팀은 사령선 조종사가 올드린이고 달 착륙선 조종사는 아폴로 13호레드 헤이즈였다. 하지만 최초의 달 착륙과 달 궤도에서의 사령선 단독 비행이라는 중책은 더 실력 있는 조종사에게 맡겨야 한다며 더 높은 직급인 사령선 조종사로 콜린스가 들어왔고 헤이즈를 백업으로 내쫓고(...) 올드린이 착륙선 조종사가 되었다. 이렇게 헤이즈는 이래저래 NASA의 우주개발사에서 설움을 꽤 겪었던 편.
  • [7] 심지어 암스트롱이 한번 농장에서의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되어 접합수술을 받은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을 정도.
  • [8] 사실 달에서도 지진이 일어나긴 하지만, 지구에서와 같은 지각판 운동은 없다.
  • [9] 절대로 버즈 올드린이 주장했다는게 아니다.
  • [10] 의외지만 이런 초창기 시대의 NASA 우주비행사들 중 지구온난화 논쟁에서 인간의 영향에 대해 낮게 보는 사람이 좀 있었다. 아폴로 17호의 승무원이자 달을 밟은 유일무이한 전문 과학자인 리슨 슈미트도 '인류에 의한 지구온난화' 논쟁은 너무도 뻥튀기되어 정치적 목적(그것도 국가사회주의적으로!)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한 예가 있다.
  • [11] 루이 시즌4에 사진만으로 등장한다. 설정상 누군지 정확히는 안 나왔지만 배경으로 등장하는 사진만으로 우주덕 시청자들을 경악시키기엔 충분했다. 아쉽게도 배우는 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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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1 08: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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