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존 로메로

last modified: 2015-01-12 18:52:59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커리어
2.1. 이드 소프트웨어 시절
2.2. 결별
2.3. 이온 스톰 시절
2.4. 그 후 현재까지
3. 평가
4. 기타
5. 관련 항목


1.jpg
[JPG image (28.93 KB)]

리즈 시절

romero2.jpg
[JPG image (15.5 KB)]

최근 모습지상렬?!

1. 개요

John Romero. 게임개발자. 존 카맥과 함께 초기 이드 소프트웨어를 이끈 두 명의 '천재 존' 중 한 명. 공식 홈페이지

2. 커리어

2.1. 이드 소프트웨어 시절

존 로메로는 전설적인 개발사인 오리진 시스템즈에서 프로그래머로써의 인생을 시작했지만, 그 당시 오리진 시스템은 분위기가 뒤숭숭했던지라 오래 머무르진 못했다. 그 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작은 게임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그가 창립했던 회사 중 하나가 Ideas from the Deep인데, 이는 이드 소프트웨어의 이름인 ID의 유래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회사는 IFD로 개명하여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리저리 일자리를 옮겨다니다 결국 소프트디스크사에 정착한다. 로메로는 그곳에서 존 카맥, 톰 홀, 아드리안 카맥 등의 동료 개발자들을 만나게 되며 이들은 91년 1월, 이드 소프트웨어를 세운다.

존 로메로는 이드 소프트웨어 내에서 주로 레벨 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다. 기획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톰 홀(Tom Hall)이 주로 맡았다. 톰 홀은 둠 개발 중 개발 방향에 대한 견해차로 퇴사했으며, 후에 로메로와 다시 뭉쳐 이온 스톰을 설립했고 이온 스톰에서 아나크로녹스를 제작했다.

존 로메로가 디자인한 의 에피소드 1(셰어웨어 버전에 기본적으로 포함된 것이기도 하다.)은 게임의 백미로 꼽힌다. 또한 존 카맥 만큼은 아니더라도 자신도 뛰어난 프로그래머였던 만큼, 둠과 퀘이크의 에디터를 프로그래밍하기도 했다.

2.2. 결별

존 로메로는 울펜슈타인과 초기 둠 시리즈의 성공 이후 이드의 얼굴마담으로 나서 행사나 언론 인터뷰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곤 했는데, 비밀리에 개발 중이었던 퀘이크에 대해 확정되지도 않은 부분을 언론에 떠벌린다던가 둠의 성공에서 자기 역할을 부풀려 동료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로메로 자신이 엄청난 게임광이라 둠 발매 후 둠 멀티플레이에 시간을 쏟으며 하며 자신의 일을 등한시한 것이었다. 이에 존 카맥을 비롯한 팀원들은 로메로에게 불만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가디언지에 실린 둠 20주년 기념 인터뷰에 따르면 톰 홀이 있던 시기의 이드 소프트웨어는 주 7일, 하루 14-16시간 근무가 일상적이었다고 한다. 일 중독자에 가까운 이들의 시선에 로메로가 어떻게 보였을지는 뻔하다.

이러한 불만이 직접적으로 터져나온 것은 퀘이크 제작에 들어가면서 부터다. 퀘이크는 존 로메로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프로젝트였으나, 그는 둠 멀티플레이 및 대외활동을 하면서 구체적인 기획안을 내는데 매우 게을렀고, 퀘이크 개발은 기술적인 어려움과 함께 방향을 잃고 표류하였다. 팀원들이 최소한의 기획안을 보여달라고 할때 마지못해 A4 두 장에 대충 휘갈겨서 적어준 게 전부였다고 한다. 하지만 로메로는 제대로 개발조차 되지 않던 퀘이크에 대해 떠벌렸고 팀원들은 불만이 폭주하였다.

이후 기술개발이 완료되고 최종적인 퀘이크의 방향을 설정할 때 존 카맥은 존 로메로의 기획안을 제외하였다. 당연히 이 상황에 로메로는 반발하였지만 결정적으로 로메로는 그때까지 말만 앞세웠지 결과물이 단 하나도 없었기에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결국 로메로는 뒤늦게 레벨 디자인을 하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으나, 이미 기울어진 부정적인 시선은 쉽게 거둬지지 않았다. 결국 퀘이크 발매 2주 후, 존 로메로는 해고당했다. 해고사유는 태업.

존 로메로는 퀘이크를 개발하면서 프로그래밍에는 둠에서 만큼 넓게 참여하지는 않았고, 대신 레벨 디자인에 집중했다. 그는 총 10개의 레벨을 제작했다. 도입부 레벨, 에피소드 1, 3의 첫 레벨과 최종 보스 레벨, 그리고 에피소드 2의 여섯 개 맵이 그의 작품이다. 에피소드 2는 그의 관심분야인 중세 테마로 만들어졌다. 둠과 퀘이크에 짙게 드러나는 피 범벅의 오컬트 분위기에 로메로기 크게 기여했다고 알려져있으나, 후일 동료들의 회상에 따르면 오컬트 분위기는 대체로 아티스트였던 아드리안 카맥의 영향으로 아드리안 카맥의 이러한 성향은 그가 게임 디자인을 담당한 위험한 데이브 2, 3에 잘 나타나있다.반면 로메로는 그보다는 중세시대에 매료되어 있었다고 한다. 로메로의 중세시대에 대한 관심은 후일 다이카타나에서도 크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2.3. 이온 스톰 시절

존 로메로는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해고되었으나, 자신이 개발에 참여했던 둠이나 퀘이크는 이미 엄청난 대박 게임으로써 자리잡았기 때문에 많은 투자자들과 유통사의 러브콜을 받았으며, 이러한 후원에 힘입어 1996년 11월, 죽마고우인 톰 홀 등과 함께 이온 스톰(Ion Storm)을 차렸다. 로메로는 이온 스톰을 창립하면서 '디자인은 곧 법' (Design is Law) 이란 슬로건을 내걸었고, 인터뷰를 통해 이드 소프트웨어를 무지 씹기도 했다.(...) 이에 이드 소프트웨어는 "존 로메로는 자기 스스로 나간 게 아니라 짤린 것이다."라며 응수하기도 했다.

그가 만드는 다이카타나(Daikatana)는 여러 유명 PC 잡지에 헤드기사로 실릴 정도로 엄청난 기대를 모았다. 개발 초기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한 광고를 하였는데, E3 1997에서 선보인 "John Romero's about to make you his bitch"라는 문구가 적힌 도발적인 광고가 유명하다. 직역하면 "존 로메로가 널 그의 시다바리로 삼으려 한다!" 굳이 풀어서 말하자면 다이카타나가 너무 재미있어서 다들 로메로에게 반할 거라는 이야기. 하지만 우리들은 호구가 아니었지 해당 광고 하단에는 'Suck It Down'이라는 표현까지 있었다. 해석하자면, '먹고 뒈져라'(...)] 로메로는 후일 이 광고를 자신의 가장 큰 실수로 뽑았고, 게이머들에게 사과하였다.

info.png
[PNG image (156.78 KB)]

사진은 댈러스에 위치한 체이스 타워. 최상층 라운지를 임대해 스튜디오를 차렸다. 당시 이온 스톰을 방문한 기자들은 온 빌딩을 대리석으로 도배하고 천장엔 돔구장에서나 볼법한 기계식 개폐기구까지 설치가 되어 있는 스튜디오의 호화찬란함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당시 이온 스톰은 포브스에서 '가장 근무하기 좋은 회사'에도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게다가 록스타 처럼 살고 싶어서 제작비나 다른 용도로 돈을 펑펑 써댔다.

당초 발매예정일은 1997년 크리스마스였으나 개발은 결코 그의 바람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이온 스톰 댈러스 지부는 개발사로써 균형을 갖추지 못한 곳이었으며 로메로는 개발자로써 비현실적인 포부와 이상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많은 분야에 간섭했다. 다이카타나에서 디렉터, 프로듀서, 아티스트, 레벨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등 갖가지 영역에 참여했고, 이는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이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

존 로메로는 특히 프로젝트의 관리자로써 형편없었고, 게임의 개발기간을 비현실적으로 예상하고 아마추어들을 고용하면서 개발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 예로 이온 스톰의 레벨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으면 그 전의 경력과는 관계없이 그냥 그림 몇 장, 또는 자작 판타지 소설 하나만 들고가면 그 자리에서 OK인 적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아마추어들이 개발에 투입되면서 게임 개발은 한없이 디뎌졌다. 이온 스톰 이후에 설립한 멍키 스톤 게임즈에도 당시 애인이었던 스티비 케이스(Stevie Case, 퀘이크 데스매치에서 로메로를 이긴 여성 게이머)가 게임의 최고 매니저(COO)로 있기도 했다. 게이머로써 COO가 된 전무후무한 기록. 물론 회사는 망했으며 로메로는 후일 멍키 스톤에는 제대로 된 경영 전략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그렇게 1997년 연말에 발매한다고 했던 게임이 2년 반에 가까운 발매 연기를 겪으며 2000년 5월에야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리고 이온 스톰 설립 당시 쏟아졌던 커다란 기대와는 정반대로 다이카타나는 엄청난 버그와 후달리는 그래픽 등 총제적 난국을 맞아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대판 참패하였다. 로메로는 모두가 망했다고 간주하는 이 게임을 두고 "다이카타나는 사실 20만장 정도가 팔렸으며, 본전은 뽑았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이온 스톰에서 존 로메로 본인의 실적은 처참했으나 그래도 그가 올린 커다란 성과가 하나 있다. 그것은 워렌 스펙터로 하여금 데이어스 엑스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 것. 이온 스톰은 둠과 퀘이크의 실적 덕분에 엄청난 금액의 투자를 받았고, 로메로는 워렌 스펙터에게 다가가 "무제한적으로 지원해줄테니까 우리 회사로 들어올래?"라고 제안했다. 후일 워렌 스펙터는 이를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온 스톰에서 워렌 스펙터는 자신이 구상한 게임을 현실과의 타협 없이 구현할 수 있었고, 그 결과물인 데이어스 엑스는 게임 역사상 손꼽힐만한 명작이 되었다.

2.4. 그 후 현재까지

다이카타나의 실패 이후 당연히 이온 스톰에서 해고되었으며 이후 이드 소프트웨어 시절부터 자신의 단짝이었던 톰 홀과 함께 멍키 스톤 게임즈라는 이름의 모바일 / 휴대용 게임 회사를 차렸으나 게임 하나 내놓고 망한 후 다시 여러 회사를 전전하였다. 2005년 말, 다시 자신의 개발사 슬립게이트 아이언웍스를 차리고 MMO 게임의 개발을 시작했다. “2007년 까지는 게임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하여 완성이 멀었음을 예고했으나, 2007년은 고사하고 2010년까지도 공개되지 않았고, 결국 2010년 11월에 회사를 떠났다.

2010년 11월, 그는 여성 베테랑 게임개발자이자 아내인 브랜다 브래쓰웨이트와 함께 소셜 게임 회사인 룻 드랍이라는 회사를 차렸고 두 달 후, 그의 단짝인 톰 홀이 합류했다. MMO에서 소셜 게임으로 방향을 갑자기 선회한 이유는 자신이 감수를 맡은 레이븐우드 페어라는 페이스북 게임이 1,000만 명의 유저를 모으는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3년 9월, 아내와 함께 UC 산타크루즈 대학교의 게임 디자인 교수로 초빙되었다.

2014년 8월, 인터넷 팟캐스트에서 다이카타나 이후 14년 만에 새로운 슈터를 제작 중임을 알렸다. 현재는 극 초기단계라고 한다.

3. 평가

존 로메로가 이드 소프트웨어 시절 커다란 역할을 했음에는 이견이 없으나, 그 비중이 언론에 비춰진 것만큼 컸는가 하는 점에는 이견이 있다. 이드 소프트웨어는 2003년 인터뷰에서 "존 로메로는 여러 개발자 중 한 명이었을 뿐", "전설은 항상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다."며 세간에 떠도는 전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출처: GamePro 웹사이트. 2011년도에 GamePro가 폐간되면서 현재는 링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도 로메로가 레벨 디자이너로써 매우 훌륭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둠과 둠 2에서의 그의 작업물은 흔히 둠 커뮤니티에서 각 게임의 최고 레벨들로 꼽히며 특히 둠 에피소드 1은 고전 슈터 게임의 가장 훌륭한 레벨 디자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퀘이크에서 만든 레벨들은 비록 둠에서만큼 독보적이지는 않지만 역시 수준급. 이 또한 로메로의 능력이 떨어졌다기 보다는 아메리칸 맥기나 팀 윌릿츠 같은 다른 디자이너의 포텐이 폭팔한 것도 한몫했다.

E3 1997에서의 악명높은 다이카타나 마케팅은 본인도 인정하다시피 자신의 커리어 사상 최악의 실수로 이전까지 게이머 친화적이었던 이미지를 완전히 망쳐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본 게임이 엉망진창으로 나온 건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 이 마케팅은 다이카타나 이후로도 뒤를 줄곧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된다. 지금도 해외 게임 사이트에서는 로메로의 이름이 뉴스에 오르면 해당 문구가 당연하다는 듯이 덧글로 따라 나온다. 막상 다이카타나를 플레이한 이는 많지 않지만 한 순간의 실수 때문에 영원히 조롱당하는 어찌 보면 불쌍한 케이스.

존 로메로가 이드 소프트웨어를 떠나면서 회사가 내놓은 게임의 스타일이 고착화되고 점차 하향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예전 팬들은 이드 소프트웨어로 재결합하길 바라는 이도 많다. 로메로가 새롭고 야심찬 게임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만약 게으름때문에 디자인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이드 소프트웨어가 둠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게임들을 내놓았을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 '새로움과 야심찬' 디자인과 결과물이 다이카타나 같은 게임이라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로메로는 후일 다크사이더스가 자신이 기획하던 퀘이크의 본 모습이었다고 술회했으나, 퀘이크와 다이카타나의 개발 역정을 고려하면 그의 디자인대로 순조롭게 게임이 나올 수는 있었을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4. 기타

존 로메로는 매우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들은 다 잊어버렸을법한 오래 전 일을 방금 전처럼 기억해낸다고. GameSauce 인터넷 매거진과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이는 사교적인 성격과 자주 회고하는 습관 덕분인 듯 하다. 에빙 하우스의 망각곡선이 자연스럽게 체득된 경우.

존 로메로은 게임 실력이 매우 뛰어나 어릴적부터 오락실의 하이스코어를 자신의 이름으로 도배했으며, 둠 발매 후에는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아무도 그를 둠 데스매치에서 이기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울펜슈타인 3D와 둠, 그리고 퀘이크에서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데모, 게임구동 후 한동안 아무 조작도 안 하면 자동으로 시작되는 녹화된 영상은 로메로의 플레이다.

media 2.0에서 출판한 '둠: 컴퓨터 게임의 성공 신화 존 카맥 & 존 로메로'(데이비드 커시너)에 소개된 일화에 따르면 존 카맥이 자기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한 사람이기도 하다. 자신과 말이 통함은 물론이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특히, 로메로는 프로그래밍 뿐만 아니라 미술과 기획분야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기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단, 이 책은 흥미를 위해 디자인의 천재 존 로메로와 기술의 천재 존 카맥이란 두 축을 전제로 해서 쓰여져, 드라마틱하게 각색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어쨌거나 흥미로운 뒷얘기들이 가득하므로 이드의 팬이라면 한번 읽어볼만한 책.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1-12 18:52:59
Processing time 0.1937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