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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곤

last modified: 2015-04-04 13:15:12 by Contributors

편곤(鞭棍)

Contents

1. 개요
2. 상세
2.1. 용법
3. 역사
4. 현재


1. 개요


근거리 무장의 끝판왕. 서양에 비슷한 무기로 플레일Flail이 있다.

구조가 간단하여 만들기 쉽고 튼튼하여 보급이 용이하다보니 제식병기로서 매우 유용했고, 굳이 오래간 훈련을 받지 않아도 다루기 쉬워서 그냥 양손으로 들 수만 있어도 실전에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길고 짧은 두개의 곤/봉을 쇄슬로 엮은 장병기이다보니, 상대방과 정면으로 대치한 상황에서도 상대의 뒤통수나 등을 가격할 수 있을 정도로 공격반경이 넓으며, 거기에 더해 공격을 시작하여 타격이 완료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아 방어하는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 설사 방어장비로 막는데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편곤은 둔기이기 때문에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 방패로 막으면 방패와 팔뼈가 부서지고, 갑옷으로 받으면 갑옷과 인체가 함께 우그러진다. 그야말로 약점을 찾을 수가 없는 최종병기본격 성전사 최강 전설. 일본도 최강설은 와패니즈나 일빠들만 주장하는 신빙성 없는 이야기다.나기나타 하나도 못이겨서 빌빌대는게 어딜 감히 편곤 앞에서...

다만 카운터 병기가 없는건 아닌데, 조선시대 포졸들이나 들고 다녔다고 우습게 보곤 하는 당파, 즉 삼지창이 바로 그것이다.[1] 사실 당파는 대부분의 장병기에 대해 우세를 보이는 동족살해자(일종의 소드브레이커)로, 편곤에 대해서도 역시 강점을 보인다. 구조를 생각해보면 간단히 눈치챌 수 있는데, 삼지창의 창첨 사이에 편곤을 끼워서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키거나 아예 부러뜨려버리면 편곤과 같은 장병기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된다. 사실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동양에서 당파를 비롯한 갈래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은 적의 무기를 받아내며 싸우다보니 용맹한 자들을 선발해 투입했다.

무예도보통지 4권에 나오는 무예로 쇠도리깨와 비슷한 형태의 무기와 그를 사용하는 무술기법을 칭한다. 서양 무기에서는 플레일이 비슷하게 생겼다. 사슬무기와 장병기라는 특이한 조합으로서, 잡는 부분이 타격하는 부분보다 월등히 길다. 이는 쌍절곤이나, 삼절곤 아니면 플레일 등의 사슬무기에서 발생하는 제어 불능이나 자신이 자신을 치는 단점을 없애준다. 더 나아가 이나 월도, 나기나타에 비해서 상대가 거리를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이점도 있다. 물론, 날붙이가 아니기 때문에 파괴력을 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다. 또한 무예도보통지에는 중국식 편곤과 한국식 편곤을 소개하고 있는데, 중국 것은 자편과 모편 사이 쇠사슬이 상당히 긴 데 반해 한국식은 위 그림에 나오듯이 자편과 모편 사이 쇠줄의 길이가 짧아 기존의 쇠도리깨와 비슷하다.

쇠도리깨. 고들개철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은입사로 예쁘게 만든 것도 있다.링크

2. 상세

일설에는 송태조 조광윤이 전투중 창이 부러져 급한대로 줄로 묶고 싸웠는데 그게 더 효과가 좋았고, 이것이 편곤의 유래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서융족의 무기였다는 설이 더 우세하다.

다만 서융의 무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족이 이 무기를 도입한 이후에는 되려 한족이 더 편곤을 잘 다루게 되었다고. 이는 수렵민족이었던 서융족과 달리 한족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라 그들이 자주 쓰는 도리깨와 비슷했기 때문이라 한다.

여담으로 자편과 모편 사이의 쇠사슬이 길면 잘 엉키고, 짧은 것이 실용적이라고 한다.무예24기 덧글 참조.

2.1. 용법

곤을 사용하는 용법이 비슷하므로 곤방과 비슷한 세법이 주를 이룬다.

편곤의 메리트는 역시 끝에 달려 있는 추 부분으로, 동일한 길이의 장병기여도 추 부분이 상대의 방어너머로 머리를 가격할 수 있다. 게다가 길이가 짧아 통제가 어려운 쌍절곤과 달리 편곤은 사슬 무기 범주에 속함에도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이런 특성과 함께 농경민족들에게는 그네들에 익숙한 도리깨질의 용법이 쉽게 익숙해지기도 하여 굉장히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또한 조선시대의 기병들에겐 창 이후에 주무기로써 자리잡게 된다. 서양의 레일 역시 농민이나 농민 출신들이 애용하던 병기였다.

3. 역사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새로 징집한 병사들이 창칼 쓰는데 능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유성룡이 중국에서 쓰는 쇠편곤이 매우 좋다며 추천하여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양에 사는 명회란 사람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편곤 한자루로 왜군을 400명을 죽였다는 예를 들었다 한다. 선조도 마침 조선의 농민들은 도리깨를 자주 쓰니 이와 용법이 비슷한 편곤을 무기로 쓰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채택하게 되었다. 야사같지만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실화다.[2]

이후 익숙해진 병사들은 편곤을 들고 마상에서 싸우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이후 편곤의 중요성은 인조때까지 강조되어 적진을 뚫는데는 편곤만한 게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기병들은 아예 환도 없이 활과 편곤만 장비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멜 표류기에도 언급된 이야기다.

고고학 자료로는 고구려 국내성 유적에 둔기 타격부로 추정되는 유물이 나온적 있어 사실 비슷한 무기류는 이미 이때부터도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당시 삼국이 전쟁이 격화되고, 중장화되면서 화살촉도 관통능력이 좋은 형태로 변하는 양상이 관찰된다.

4. 현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것만 같은 편곤이지만 의외로 최근까지 일부에서 사용되었다.


(사진속 편곤형 무기는 장봉에 단봉을 엮은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남중대라고 불리었던 광주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진압중대에서 사용한 편곤형식의 진압봉이다. 정식으로 지급된 것이 아니라 전남중대의 진압대상이 그당시 대협에서도 전투력 NO.1이었던 오월대와 녹두대를 상대해야 해서 자구책으로 사용자들이 부러진 봉들을 전깃줄 등으로 연결해서 만들었다. 편곤이란 무기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없는 상태로 시위대와의 백병전(…)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 진압하라고 쥐어준 경찰봉은 말그대로 속이 빈 플라스틱막대기라서 너무 허접한데 쓸 건 저것밖에 없고, 그렇다고 허접한 경찰봉 들고 진압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보니 자구책으로 나온 것이며[3] 때문에 사용자들도 편곤이란 이름보단 그냥 쇠도리깨 혹은 쌍절곤이라고 불렀다고 한다.저속에 쇠심이 들어 있다는건 함정


최근 경찰기동대에서도 사용하였으며 빨간 원 안이 편곤(쇠도리깨라고 표현했다). 위 사진은 쌍용자동차 시위 진압 당시의 사진이다. 이쪽은 급조가 아닌 정식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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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엄밀히 말해 둘은 약간 다르다. 해당항목 참조.
  • [2] 해당 내용 링크#
  • [3] 방패가 있긴 하지만 진압봉 들고 접근하다가 붙잡히면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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